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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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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동일은 일제강점기 함흥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이다. 4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한국 전쟁 중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스쿨에서 수학했다. 1965년 레벤트리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뉴욕 필하모닉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미국, 캐나다, 유럽, 아시아 등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쳤으며,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울산대학교 학장과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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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한동일 (1962년)
이름한동일
한자韓東一
로마자 표기Han Dong-il
출생일1941년 12월 4일
출생지함흥, 일본 제국 조선
사망일2024년 12월 29일
국적대한민국
직업피아니스트
활동 시기1956년 ~ 2024년
장르서양 고전 음악
음악 활동
관련 활동백악관 연주 (1962년)
도미 50주년 기념 음악회
기타

2. 어린 시절과 한국 전쟁

한동일은 일제강점기 함흥에서 태어났다. 만 4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 전쟁 중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하여 서울에 정착하였다.[2] 10살 때, 미군 위문 공연 휴식 시간에 무대에 올라 연주하던 모습을 본 병사들이 5000USD의 유학 기금을 모금해주었다. 이 기금은 前 주한 미 제5 공군 사령관인 새뮤얼 E. 앤더슨 중장의 후원으로 마련되었다.

2. 1. 출생과 초기 음악 교육

한동일은 교회 찬양대 지휘자였고 후에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팀파니스트가 된 아버지의 영향으로 만 4살 때부터 피아노와 작곡 공부를 시작하였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서울에 정착하였다.[2]

2. 2. 한국 전쟁과 월남

한국 전쟁으로 인해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서울에 정착하였다.[2]

3. 미국 유학과 초기 활동

만 4살 때부터 피아노와 작곡 공부를 시작한 한동일은 한국 전쟁 이후 1946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했다.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연주했고,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을 세계에 알린 공로로 한동일에게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여했다.[1] 1965년 레벤트리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한국인 최초로 국제대회 입상자가 되었다.[3]

한동일은 미국, 캐나다,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 25개국에서 순회연주를 가졌다.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로열 필하모닉, 몬테카를로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폴란드 국립 라디오 오케스트라, 부다페스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과 협연했으며,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샤를 뒤투아, 오이겐 요훔, 로버트 쇼, 데이비드 진먼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함께 연주했다.

3. 1. 미국으로의 이주와 줄리어드 음악학교

10살 때 미군 위문 공연 휴식 시간에 무대에 올라 연주하던 모습을 본 병사들이 모은 5000USD를 前 주한 미 제5 공군 사령관인 새뮤얼 E 앤더슨 중장의 후원으로 마련하였다.[1] 13살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1954년 7월 25일 CBS TV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해 한국에서 온 피아노 신동으로 소개되었다. 뉴욕 줄리어드 스쿨에서 로지나 레빈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줄리어드 스쿨 대학원 석사를 마쳤다.[3] 뉴욕 필하모닉이 주최한 영 피플스 콘서트 경연대회에 합격한 후, 1956년 4월 28일 카네기 홀에서 뉴욕 필하모닉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지휘: 윌프리드 펠레티어)을 협연하였다.

3. 2. 초기 연주 활동과 에드 설리번 쇼 출연

한국 전쟁으로 인해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서울에 정착하였다. 10살 때 미군 위문 공연 휴식 시간에 무대에 올라 연주하던 모습을 본 병사들이 5000USD의 유학 기금을 모금하였고, 前 주한 미 제5 공군 사령관인 새뮤얼 E 앤더슨 중장의 후원으로 이 기금을 마련하였다.[1] 13살의 나이로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1954년 7월 25일에는 CBS TV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여 한국에서 온 피아노 신동으로 소개되었다. 뉴욕 줄리어드 스쿨에서 로지나 레빈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줄리어드 스쿨 대학원 석사를 마쳤다. 뉴욕 필하모닉이 주최한 영 피플스 콘서트 경연대회에 합격한 후, 1956년 4월 28일, 카네기 홀에서 뉴욕 필하모닉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 번(지휘: 윌프리드 펠레티어)을 협연하였다.

4. 국제적인 명성과 연주 활동

1954년 7월 25일, 한동일은 CBS TV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여 한국에서 온 피아노 신동으로 소개되었다.[1] 1956년 4월 28일에는 카네기 홀에서 뉴욕 필하모닉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지휘: 윌프리드 펠레티어)을 협연하였다. 1962년에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연주하여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모란장)을 받았다.

귀국 후 한동일은 KBS 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대구시립교향악단 등과 협연하며 전국에서 독주자로 활동했고, 서울 스프링 페스티벌에 주요 참가자로 참여하여 실내악 연주를 하거나 젊은 음악가들과 협연했다.

한동일은 쇼팽의 24개 전주곡, 4개의 발라드와 4개의 스케르초, 베토벤의 소나타 8개(마지막 5개 포함), 슈베르트와 브람스의 소나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제목의 단편 피아노곡들을 음반으로 녹음했다. 첼리스트 레슬리 파르나스와 함께 브람스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와 슈만의 환상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케네디 백악관 콘서트"라는 제목의 CD에는 백악관 실황 공연이 담겨 있는데, 여기에는 드뷔시의 "물 위에의 그림자"와 리스트의 "메피스토 왈츠" 연주가 포함되어 있다. 2004년 6월에는 로마에서 녹음된 슈만, 베토벤, 브람스의 주요 작품들이 수록된 CD가 발매되었다.

4. 1. 레벤트리트 국제 콩쿠르 우승

1965년 레벤트리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한국인 최초로 국제대회 입상자가 되었다.[3]

4. 2.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미국, 캐나다,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 25개국 등지에서 순회연주를 가지며 활발히 활동해 온 한동일은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 로열 필하모닉, 몬테카를로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폴란드 국립 라디오 오케스트라, 부다페스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3]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헤르베르트 블롬슈테르, 샤를르 뒤트와, 오이겐 요흠, 로버트 쇼, 데이비드 진먼 등 세계 유수의 지휘자들과도 협연하였다.

4. 3. 저명한 지휘자들과의 협연

한동일은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 로열 필하모닉, 몬테카를로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폴란드 국립 라디오 오케스트라, 부다페스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과 협연하였다.[3]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샤를르 뒤투아, 오이겐 요흠, 로버트 쇼, 데이비드 진먼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도 협연하였다.[3]

5. 교육 활동과 한국으로의 귀환

한동일은 인디애나 대학교, 일리노이 대학교, 노스 텍사스 대학교, 보스턴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울산대학교 석좌 교수 및 음대 학장을 역임했고, 순천대학교 석좌 교수, 일본 히로시마 엘리자베스 음악 대학교 초청 교수로도 활동했다. 2013년에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5. 1. 미국 대학에서의 교수 활동

한동일은 인디애나 대학교 블루밍턴 캠퍼스,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노스 텍사스 대학교, 보스턴 대학교 음악과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울산대학교에서 음악대학 학장과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또한 일본 히로시마에 있는 엘리자베스 음악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7년 3월에는 한국 순천에 있는 순천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5. 2. 한국에서의 활동과 영구 귀국

1969년 인디애나 대학교, 일리노이 대학교, 노스 텍사스 대학교, 보스턴 대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마쳤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울산대학교에서 석좌 교수와 음대 학장을 역임하였다. 순천대학교에서도 석좌 교수 임기를 마친 후, 일본 히로시마 엘리자베스 음악 대학교의 초청 교수로 활동하였다. 2013년에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2019년 3월, 대한민국에 영구 귀국하여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6. 학력


  • 줄리어드 스쿨 음악학교 학사[1]
  • 줄리어드 스쿨 음악대학원 석사[1]

7. 경력

연도경력
2011제7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회 위원장
일본 히로시마 엘리자베스 음악대학 객원교수
순천대학교 피아노학과 석좌교수
2005울산대학교 음악대학 음악학부 피아노전공 교수
보스턴 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1978텍사스주립대학교 교수
1973일리노이대학교 음악대학 부교수


참조

[1] 간행물 Concert to commemorate 50th anniversary of going to the US http://article.joins[...] 2004-05-14
[2] 간행물 The three "movements" of my life were in my homeland http://eventvod2.sbs[...] 2005-04-00
[3] 뉴스 Korean Pianist, 23, Is Winner Of 24th Leventritt Competition https://www.nytimes.[...] 196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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