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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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목조 건축물로,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팔만대장경보다 장경판전 건물 자체가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장경판전은 자연 통풍과 습도 조절을 고려한 과학적인 설계로 팔만대장경을 보존하는 데 기여했으며, 현대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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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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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일반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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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이름 | 해인사 대장경 판전 |
영어 이름 | Haeinsa Temple Janggyeong Panjeon, the Depositories for the Tripitaka Koreana Woodblocks |
프랑스어 이름 | Temple d'Haeinsa Janggyeong Panjeon, les dépôts des tablettes du Tripitaka Koreana |
한글 | 해인사 대장경 판전 |
한자 | 海印寺大藏經板殿 |
가타카나 | 헤인사 테장굥 판전 |
로마자 표기 | Haeinsa Daejanggyeong Panjeon |
세계유산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기준 | Ⅳ, Ⅵ |
등록 구분 | 문화유산 |
등록 연도 | 1995년 |
지정 번호 | 737 |
지역 | 아시아·태평양 |
공식 웹사이트 | 해인사 공식 홈페이지 |
문화재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유형 | 국보 |
이름 |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
영어 이름 | Janggyeongpanjeon Depositories of Haeinsa Temple, Hapcheon |
지정 번호 | 52 |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해인사 (치인리) |
소유자 | 해인사 |
관리자 | 해인사 |
시대 | 조선 |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
문화재청 번호 | 11,00520000,38 |
2. 역사
가야산 중턱 해발 약 700m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어졌으며,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해 준 것에 감사하여 지었다고 한다.
이후 고려 중엽 몽골의 침공이라는 국난을 부처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팔만대장경 조판이 이루어졌고, 강화도 등 각지를 떠돌다 1398년 해인사로 옮겨졌다. 이후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소장한 '법보사찰'로 불리게 되었다.
장경판전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팔만대장경이 1397년 해인사로 옮겨진 것과 멀지 않은 시기로 추정된다. 조선 세조 3년(1457년)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년) 승려 학조가 왕실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광해군 14년(1622)과 인조 2년(1624)에 수리하였다. 광해군 14년 수리 당시 유몽인이 지은 가야산팔만대장경전상량문(伽倻山八萬大藏經殿上樑文)이 남아 있다.
2. 1. 해인사 창건과 팔만대장경
신라 의상이 802년 가야산에 창건한 해인사(海印寺)는 "바다처럼 맑고 투명한 부처의 경지·지혜"를 뜻하는 불교 용어이다.[2] 가야산 중턱 해발 약 700m 지점에 있는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해 준 것에 감사하여 지었다고 한다.고려 중엽 몽골 침공이라는 국난을 부처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팔만대장경 조판이 이루어졌다. 1236년 판목 제작을 시작하여 15년 만인 1251년 당시 수도 강화도에서 완성되었다. 팔만대장경은 강화도 등 각지를 떠돌다 1398년 해인사로 옮겨졌다. 이후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소장한, 삼보 중 '법보'(法寶)가 보존된 '법보사찰'로 불린다.
장경판전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팔만대장경이 1397년 해인사로 옮겨진 것과 멀지 않은 시기로 추정된다. 조선 세조 3년(1457년)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년) 승려 학조가 왕실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2. 2. 장경판전 건립과 중수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어졌으며,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한 것에 감사하여 지었다고 한다. 고려 중엽 몽골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팔만대장경 조판이 이루어졌고, 팔만대장경은 강화도 등 각지를 떠돌다 최종적으로 해인사에 안치되었다. 이후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소장한 '법보사찰'로 불리게 되었다.장경판전의 최초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팔만대장경이 해인사로 옮겨진 것이 1397년이므로, 장경판전 건립도 이와 비슷한 시기로 추정된다. 조선 세조 3년(1457년)에 크게 중수되었고, 성종 19년(1488년)에 승려 학조가 왕실의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1]
장경판전은 임진왜란 때도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광해군 14년(1622)과 인조 2년(1624)에 수리되었다. 광해군 14년 수리 당시 유몽인이 지은 가야산팔만대장경전상량문(伽倻山八萬大藏經殿上樑文)이 남아 있다.[1]
3. 건축
해인사 장경판전은 대장경판 보관 건물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장식적인 요소는 배제하고,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에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설치했다. 또한 안쪽 흙바닥에는 숯, 횟가루, 소금, 모래를 함께 넣어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였다.[1]
이처럼 자연 조건을 활용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설계 덕분에 대장경판이 지금까지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팔만대장경보다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1]
네이버가 2013년 6월 설립한 데이터센터 각(閣)은 그 건축 설계에 있어서 해인사 장경판전의 설계 구조를 많이 반영하였으며, '각'이라는 이름 역시 해인사 장경판전(장경각)에서 따왔다.
3. 1. 구조와 배치
해인사 장경판전은 앞면 15칸·옆면 2칸 크기의 건물 두 동을 나란히 배치한 구조이다.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 북쪽 건물은 ‘법보전’이라고 한다.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서고가 있는데, 여기에는 팔만대장경과는 별도로 해인사에서 자체적으로 간행한 경전의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1]대장경판 보관 건물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장식적인 요소는 배제되었다. 통풍을 위해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에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설치했다. 또한 안쪽 흙바닥에는 숯, 횟가루, 소금, 모래를 함께 넣어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였다.[1]
이처럼 자연 조건을 활용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설계 덕분에 대장경판이 지금까지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평가받는다.[1]
해인사 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다. 팔만대장경보다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1]
고려 팔만대장경 판목을 보관하는 목조 건축 경장인 해인사 장경판전은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1488년 건립)이다. 해인사 본당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며, 장방형 중정을 둘러싼 긴 건물 2동과 짧은 건물 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판목 보존을 위해 독특한 구조가 많은데, 이는 장경판전 내부에 자연 환기를 제공하여 기후 조건에 따라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설치류나 곤충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한다.[1]
3. 2. 과학적인 설계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은 앞면 15칸·옆면 2칸 크기의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이라 하고 북쪽의 건물은 ‘법보전’이라 한다.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서고가 있어서, 사간판 대장경 즉 팔만대장경과는 별개로 해인사에서 자체적으로 간행한 경전의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1]대장경판 보관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식 요소는 두지 않았으며,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었다. 또한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 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였다.[1]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점 등으로 인해 대장경판을 지금까지 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받고 있다.[1]
특히 판목의 보존을 위해 독특한 형태의 구조가 많은데, 이러한 구조는 장경판전 내부에 자연적인 환기를 제공하여 기후 조건에 따라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며, 설치류나 곤충의 침입도 막을 수 있다.[1]
4. 현대적 의의
해인사 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팔만대장경보다 장경판전 건물 자체가 앞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1]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점 등으로 인해 대장경판을 지금까지 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받고 있다.[1]
네이버가 2013년 6월 설립한 데이터센터 각(閣)은 그 건축 설계에 있어서 해인사 장경판전의 설계 구조를 많이 반영하였으며, '각'이라는 이름 역시 해인사 장경판전(장경각)에서 따왔다.[1]
참조
[1]
웹사이트
Haeinsa Temple Janggyeong Panjeon, the Depositories for the Tripitaka Koreana Woodblocks
https://whc.unesco.o[...]
2023-04-30
[2]
웹사이트
海印とは
https://kotobank.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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