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 & 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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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홀 & 오츠는 대릴 홀과 존 오츠로 구성된 미국의 듀오로, 1967년 필라델피아에서 만나 결성되었다. 록, 팝, R&B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한 음악 스타일로 '블루 아이드 소울'의 대표 주자로 평가받으며,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Rich Girl", "Kiss on My List", "Maneater"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활동을 이어가다, 2000년대 이후 활동을 재개했으며 201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23년, 법적 분쟁과 함께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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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 오츠 - [음악 그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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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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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Hall & Oates |
출신지 |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
장르 | 팝 록 블루 아이드 소울 소프트 록 R&B 어덜트 컨템포러리 |
활동 기간 | 1970년 – 2022년 |
레이블 | 아틀란틱 RCA 아리스타 레코드 U-Watch |
웹사이트 | hallandoates.com |
멤버 | 대릴 홀 존 오츠 |
관련 인물 | |
이전 멤버 | 대릴 홀 존 오츠 |
2. 역사
1972년 레코드 데뷔 후, 타바레스가 She's Gone을 커버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75년 앨범 『Daryl Hall & John Oates』 (빌보드 200 17위)와 싱글 「Sara Smile」(1976년, 미국 4위)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She's Gone」(1976년), 「리치 걸」(1977년, 미국 1위), 「It's a Laugh」(1978년), 「Wait for Me」(1979년)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77]。
1980년대에는 「Kiss on My List」(1981년), 「Private Eyes」(1982년), 「I Can't Go for That (No Can Do)」[79](1982년), 「Maneater」(1983년), 「Out of Touch」(1984년) 등이 히트하며 블루 아이드 소울 장르에서 성공을 이어갔다[80]。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 템테이션스의 에디 켄드릭스, 데이비드 러핀과 합동 공연을 펼쳤고,[81] USA 포 아프리카의 「We Are the World」에서 리드 보컬을 맡았다.
1991년 활동 중단 후 1995년 재개, 그룹 활동과 솔로 활동, 프로듀서 활동을 병행했다. 미국 톱 10 히트곡 16곡 중 7곡은 홀의 전 연인 사라 앨런과 그녀의 여동생 자나 앨런과의 공동 작업이었다(1993년 자나 앨런은 백혈병으로 사망).
2009년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201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40년 이상의 커리어 동안 TOP40 히트곡 29곡, TOP10 히트곡 16곡, No.1 히트곡 6곡, 플래티넘 앨범 8개, 골드 앨범 6개, 골드 싱글 6개를 기록하며 총 4,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2023년 판권 관리 회사 지분 매각 문제로 홀이 오츠를 고소하며 관계가 악화되었다. 2024년 오츠는 "홀 & 오츠는 끝났다"고 발언했고,[82] 홀도 "그룹을 볼 일은 없을 것"이라며[76] 사실상 그룹 해산 및 솔로 활동을 표명했다. 홀은 [https://amass.jp/176073/ 인터뷰]에서 "나는 항상 솔로 아티스트였다. 존과는 함께 일했을 뿐이다.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연주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2. 1. 결성 및 초기 (1967-1974)
대릴 프랭클린 홀과 존 윌리엄 오츠는 1967년 필라델피아의 애덜피 볼룸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각자 자신의 음악 그룹을 이끌고 있었는데, 밴드 경연 대회에 참석했다가 같은 음악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둘 다 템플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0][11][12] 함께 시간을 보내며 친분을 쌓았고, 결국 도시에서 여러 아파트를 함께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중 한 아파트 우편함에 "Hall & Oates"라고 적혀 있었고, 이것이 듀오의 일반적인 별명이 되었다.[12][13]1969년에 정식으로 음악 듀오를 결성하였고,[14] 오츠가 유럽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돌아온 1970년부터 두 사람은 진지하게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다.[10] 1972년 애틀랜틱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데뷔 앨범을 발매했다.[14]
홀 & 오츠는 초기 포크, 소울, 록, 팝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며 자신들만의 음악 스타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29] 그러나 초기 앨범인 ''홀 오츠'', ''Abandoned Luncheonette'', ''워 베이비스''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29] 아리프 마르딘과 토드 룬드그렌 같은 유명 프로듀서가 제작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히트 싱글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Abandoned Luncheonette''에 수록된 "She's Gone"이 루 라울스와 타바레스에 의해 커버되었고, 특히 타바레스 버전은 1974년 R&B 차트에서 1위에 오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29][15] 이 곡은 홀의 첫 번째 아내 브리나 루블린(홀)을 위해 쓰여졌으며, 오츠가 새해 전날 데이트에 바람을 맞은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 다른 ''Abandoned Luncheonette'' 싱글인 "Las Vegas Turnaround"는 홀의 여자 친구이자 승무원, 미래의 작곡 파트너인 사라 앨런에 대해 쓰여졌으며, 그녀의 이름이 언급되었다.[16]
2. 2. 전성기 (1975-1985)
RCA 레코드(RCA Records)로 이적 후 1975년에 발매된 앨범 ''Daryl Hall & John Oates''(팬들 사이에서는 '실버 앨범'으로 불림)는 그들의 첫 번째 주목할 만한 성공을 가져다주었다.[29] 이 앨범에는 홀이 사라 앨런을 위해 작곡한 발라드곡 "Sara Smile"이 수록되어 있었으며,[29][17] 빌보드 핫 100(Billboard Hot 100) 차트에서 4위에 오르며 홀 & 오츠의 첫 번째 톱 10 히트곡이 되었다. 이후 애틀랜틱에서 재발매된 "She's Gone"도 7위에 올랐고, ''Abandoned Luncheonette'' 앨범은 33위에 올라 38주 동안 차트에 머물렀다.[19]
그해 말, 홀 & 오츠는 더 팝 지향적인 앨범 ''Bigger Than Both of Us''를 발표했다. 첫 싱글 "Do What You Want, Be What You Are"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두 번째 싱글 "Rich Girl"은 대성공을 거두며[29] 1977년 3월 26일 주에 홀 & 오츠의 첫 번째 1위 히트곡이 되었다.[20]
1980년대에도 "Kiss on My List"(1981년), "Private Eyes"(1982년), "I Can't Go for That (No Can Do)"[79](1982년), "Maneater"(1983년), "Out of Touch"(1984년) 등이 연이어 히트하며 블루 아이드 소울 장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80]
1985년에는 라이브 에이드에 출연하여 템테이션스의 에디 켄드릭스, 데이비드 러핀과 함께 공연했으며,[81] USA 포 아프리카에 참여하여 자선 싱글 「We Are the World」의 브리지 부분에서 리드 보컬을 맡았다.
2. 3. 후기 및 솔로 활동 (1986-2006)
1986년, 홀 & 오츠는 아리스타 레코드로 이적하여 ''Ooh Yeah!'' (1988년)와 ''Change of Season'' (1990년)을 발매했다. ''Ooh Yeah!''는 플래티넘, ''Change of Season''은 골드 인증을 받으며 상업적 성공을 이어갔다.[77]1991년 잠시 활동을 중단했으나, 1995년에 활동을 재개했다. 1993년에는 홀의 전 연인이자 작곡 파트너였던 사라 앨런의 여동생 자나 앨런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77] 홀과 사라 앨런, 자나 앨런은 함께 많은 곡을 만들었으며, 특히 미국 톱 10에 진입한 16곡 중 7곡이 이들의 공동 작업이었다.[77]
이후 듀오는 ''Marigold Sky'' (1997년), ''Do It for Love'' (2003년), ''Our Kind of Soul'' (2004년), ''Home for Christmas'' (2006년) 등의 앨범을 발매하며 활동을 지속했다.
2. 4. 명예의 전당 및 재결합 (2007-2023)
2007년부터 2023년까지 홀 & 오츠는 각자 솔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활동 중단 기간을 가졌다. 2014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9] 대릴 홀은 웹 시리즈 ''Live from Daryl's House''를 시작해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했다. 이후 듀오는 투어를 재개했으며, 새로운 앨범 제작을 시도하기도 했다.2. 5. 법적 분쟁 및 해체 (2023-현재)
2023년, 홀 & 오츠는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두 사람이 설립한 판권 관리 회사 "홀 & 오츠 엔터프라이즈"의 주식 절반을 오츠가 투자 펀드에 매각하려 하자, 홀이 오츠를 고소하면서 관계가 악화되었다.[82]2024년 4월, 오츠는 언론 인터뷰에서 "홀 & 오츠는 이제 끝났다"라고 발언했으며,[82] 5월에는 홀 역시 "그룹을 볼 일은 이제 없을 것"이라고 언급하며,[76] 사실상 그룹 해체와 각자의 솔로 활동을 공식화했다.
홀은 최근 미국 빌보드지와의 https://amass.jp/176073/ 인터뷰에서 "나는 (자신은) 항상 솔로 아티스트라고 말해왔다. 존과는 함께 일했을 뿐이다.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연주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3. 음악 스타일
홀 & 오츠는 녹음 초기에 포크, 소울, 록, 팝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을 정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29] 초기 앨범들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타바레스가 커버한 "She's Gone"이 R&B 차트 1위에 오르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29][15]
1975년 발매된 앨범 ''Daryl Hall & John Oates''는 홀 & 오츠의 첫 উল্লেখযোগ্য 성공작으로, 사라 앨런을 위해 작곡한 발라드 "Sara Smile"이 수록되어 있다.[29][17] "Sara Smile"은 1976년 빌보드 핫 100 차트 4위에 올랐고, "She's Gone"도 재발매되어 7위에 오르는 등 인기를 얻었다.[19]
이후 홀 & 오츠는 더욱 팝 지향적인 앨범 ''Bigger Than Both of Us''를 발표, "Rich Girl"이 1977년 첫 1위 히트곡이 되었다.[29][20] 디스코 음악이 유행하던 시기에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며 "Back Together Again", "It's A Laugh" 등의 히트곡을 냈다.
1980년대에 들어서 발표한 ''H2O''는 세련된 신스 사운드가 강조된 앨범으로, 듀오의 가장 큰 성공작 중 하나가 되었다. "Maneater"는 4주 동안 1위를 차지했으며, "One on One", 마이크 올드필드의 "Family Man" 커버 역시 톱 10에 진입했다.[24]
홀 & 오츠는 블루 아이드 소울 장르에서 특히 성공한 듀오로 평가받으며,[80] 1980년대 이후에도 "Kiss on My List", "Private Eyes", "I Can't Go for That (No Can Do)",[79] "Out of Touch"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미국 톱 10에 진입한 16곡 중 절반에 가까운 7곡은 홀의 전 연인이었던 사라 앨런과 그녀의 여동생 자나 앨런과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4. 멤버
- - --
- '''대릴 홀''' (Daryl Hall, [83]) - 보컬, 기타, 키보드, 만돌린, 비브라폰
- '''존 오츠''' (John Oates, [87]) - 기타, 보컬, 키보드
1972년 레코드 데뷔 후, 1974년 타바레스가 "She's Gone"을 커버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75년 앨범 『Daryl Hall & John Oates』가 빌보드 200 17위, 1976년 싱글 "Sara Smile"이 미국 4위를 기록했다. 이후 "She's Gone"(1976년), "리치 걸"(1977년, 미국 1위), "It's a Laugh"(1978년), "Wait for Me"(1979년) 등 히트곡을 발표했다.[77]
1980년대에도 "Kiss on My List"(1981년), "Private Eyes"(1982년), "I Can't Go for That (No Can Do)"[79](1982년), "Maneater"(1983년), "Out of Touch"(1984년) 등이 히트하며 블루 아이드 소울 장르에서 성공했다.[80]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 템테이션스의 에디 켄드릭스, 데이비드 러핀과 공연했다.[81] 1991년 활동 중단 후 1995년 재개, 그룹 활동 외 솔로 및 프로듀서로도 활동했다.
미국 톱 10 히트곡 16곡 중 7곡은 홀의 전 연인 사라 앨런과 자나 앨런 자매와 공동 작업이다.
1985년 USA 포 아프리카에서 위 아 더 월드 리드 보컬로 참여했다.
2009년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201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40년 이상 커리어 동안 TOP40 히트곡 29곡, TOP10 히트곡 16곡, No.1 히트곡 6곡, 플래티넘 앨범 8개, 골드 앨범 6개, 골드 싱글 6개를 기록, 총 4,000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2023년 판권 관리 회사 주식 매각 문제로 홀이 오츠를 고소하며 관계가 악화, 2024년 사실상 그룹 해산을 표명했다. 홀은 인터뷰에서 "항상 솔로 아티스트였다. 존과는 함께 일했을 뿐, 이제 자유롭게 연주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4. 1. 대릴 홀
대릴 홀(Daryl Hall, [83])의 본명은 대릴 프랭클린 홀(Daryl Franklin Hohl)이다. 펜실베이니아주체스터 군 노스 코벤트리에서 태어나[84], 몽고메리 군포츠타운(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성장했다.[84] 보컬, 기타, 키보드를 담당한다.독일계 미국인이며, 펜실베이니아 더치 혈통을 가진 음악가 아버지 프랭크 홀과 성악 교사인 어머니 베티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독서를 좋아하고 공상을 즐겼으며, 스포츠에 소질이 없어 학교에서 낮은 서열에 속했고, 부모에게 반항심을 가진 소년이었다. 동시에 R&B와 소울 음악에 매료되었다.
1966년 템플 대학교 입학식에서 신입생이었던 존 오츠를 만났다. 1967년 말 밴드 참여 중 댄스 공연장 분장실에서 만났다는 설도 있다.[85]
1980년대에 동거했던 러시아계 여성과의 사이에 아이를 두었다.
2005년에는 야생 진드기에 물려 감염되는 라임병으로 인해 공연을 일시 중단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현재는 완치된 것으로 보인다.
소년 시절 R&B와 소울 음악에 대한 경험으로, 아프리카계나 히스패닉 등 인종에 관계없이 친근하게 대하며 폭넓은 교류 관계를 맺고 있다.
뉴욕과 런던 등지에 여러 채의 저택을 소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음악 프로듀서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특히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곡을 제공하고 있다.
R&B와 소울의 분위기를 담은 팝 음악으로 인기를 얻어 블루 아이드 소울로 성공했지만, 젊은 시절에는 "피부가 하얗고 푸른 눈을 가진 R&B와 소울 뮤지션"으로 불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고, 음악에는 인종이 관계없다고 회고했다.[86]
4. 2. 존 오츠
존 오츠(John Oates영어, [87])는 미국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로, 본명은 존 윌리엄 오츠(John William Oates)이다.[85] 그는 뉴욕에서 태어났으며,[85] 홀 & 오츠에서 기타와 보컬, 키보드를 담당하고 있다.그의 아버지 알 오츠는 스페인계 및 아일랜드계 혈통이며, 어머니 앤은 이탈리아계이다.[85] 그의 가족은 여동생 다이앤을 포함하여 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85] 그의 부계 조부는 아일랜드계영국인 이민자였고, 조모는 모로코계(무어인) 스페인인 이민자였다. 그의 모계 조부모는 이탈리아인(시칠리아계) 이민자였다.
4살 때, 존 오츠의 가족은 아버지의 직업 관계로 필라델피아로 이사했다.[85] 5살 때, 그는 놀이공원 특설 무대에서 빌 헤일리 & 히즈 코메츠의 연주를 보고 음악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주니어 하이스쿨 시절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여 3년 동안 사립 음악 학교에 다녔다.[85] 9살 때, 그는 일렉트릭 기타를 손에 넣고 친구들과 함께 밴드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85]
고등학교 시절, 존 오츠는 아마추어 밴드에 참여하여 지역 십 대들을 위한 클럽과 파티에서 연주했다. 그의 레퍼토리는 제임스 브라운, 윌슨 피켓, 템테이션스와 같은 소울 음악이었다.[85] 그는 또한 밥 딜런 & 조안 바에즈와 같은 포크송도 들었다.[85]
1966년, 존 오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템플 대학교에 입학하여 저널리즘을 전공했다.[85] 그는 레슬링으로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스포츠에도 재능을 보였다. 학업과 더불어, 그는 "마스터즈"라는 세미 프로 소울 밴드에서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1967년 말, 웨스트 필라델피아의 댄스 공연장 "아델피 볼룸"에서 열린 파티에서 그는 "템프톤스"라는 템테이션스 커버 밴드를 만나게 되었고, 그 밴드의 멤버 중 한 명인 대릴 홀이 같은 템플 대학교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대화를 나누며 친해졌다.[85]
1968년, 그의 밴드 "마스터즈"는 멤버의 징병으로 해산되었다. 그는 "템프톤스"에 가입할 예정이었지만 밴드가 해산되면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음악 활동을 모색하게 되었다. 대릴 홀이 "갈리버"라는 록 밴드[88]의 앨범[89]을 제작 발표하는 동안, 존 오츠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85] 1970년 11월, 존 오츠가 귀국하고 "갈리버"의 앨범이 실패로 끝난 대릴 홀은 이전부터 함께 작곡해 두었던 곡들을 함께 연주하고 노래하기로 결정했다. 그해 12월, 그들은 필라델피아의 작은 클럽에서 "대릴 홀 & 존 오츠"로 활동을 시작했다.[85]
존 오츠는 1980년대에 결혼했다가 이혼했지만, 현재는 재혼하여 아들 타너를 두고 콜로라도주아스펜에서 살고 있다.
1987년, 그는 아이스하우스의 대표곡 일렉트릭 블루(미국 7위)를 보컬 아이바 데이비스와 공동 작사했으며, 코러스에도 참여했다. 그는 솔로 앨범에서 존경하는 미시시피 존 허트에게 헌정하는 곡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존 오츠의 트레이드마크는 콧수염이었지만, 현재는 깨끗하게 면도한 상태이다. 그는 가끔 턱수염이나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기도 한다.

그의 솔로 앨범은 다음과 같다.
앨범명 | 발매 연도 |
---|---|
펑크 슈이 (Phunk Shui) | 2002년 |
1000 마일스 오브 라이프 (1000 Miles of Life) | 2008년 |
미시시피 마일 (Mississippi Mile) | 2011년 |
굿 로드 투 팔로우 (Good Road to Follow) | 2013년 |
아칸소 (Arkansas) | 2018년 |
4. 3. 백 밴드 (세션)
연도 | 이름 | 악기 |
---|---|---|
1972 | 조니 립 | 기타 |
1972 | 마이크 맥카시 | 베이스 |
1972 | 짐 헬머 | 드럼 |
1972 | 빌 키스 | 페달 스틸 |
1972–1973 | 닐 로젠가든 | 색소폰 |
1973, 1976–1977 | 리랜드 스클라 | 베이스 (스튜디오) |
1973 | 폴 아이언스 | 기타 |
1973–1974 | 케니 애론슨 | 베이스 |
1973–1974 | 윌리 윌콕스 | 드럼 |
1974 | 릭 레이드 | 베이스 |
1974년 12월 – 1977년 7월 | 에디 진 | 드럼 |
1975–1978 | 데이비드 켄트 | 키보드 |
1975 – 1977년 6월 | 토드 샤프 | 기타, 백 보컬 |
1976 – 1977년 2월 | 스티븐 디스 | 베이스, 백 보컬 |
1976–1985, 1986, 1990–2024 | 찰스 드샹트 | 색소폰, 플루트, 퍼커션, 키보드, 백 보컬 |
1977–1979 | 케일럽 콰예 | 기타 |
1977년 6월 – 1980년 9월 | 케니 파사렐리 | 베이스 |
1977–1979 | 로저 포프 | 드럼 |
1977 | 제프 포카로 | 드럼 (스튜디오) |
1979–1980, 1981–1985, 1986 | G. E. 스미스 | 리드 기타, 키보드, 백 보컬 |
1979 – 1980년 2월 | 제리 마로타 | 드럼 |
1980 | 척 버기 | 드럼 |
1980 | 제프 사우스워스 | 기타 |
1979 – 1981년 12월 | 존 시글러 | 베이스 |
1980–1982 | 래리 패스트 |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 |
1981–2010 | 톰 "T-Bone" 월크 | 베이스, 기타, 백 보컬, 키보드, 만돌린, 하모니카, 아코디언, 음악 감독 |
1981–1985, 1986 | 미키 커리 | 드럼 |
1983–1990 | 마이크 클바나 | 키보드, 신시사이저 |
1985 | 키스 메리트 | 퍼커션 |
1985 | 로비 킬고어 | 키보드 |
1985 | 웰스 크리스티 | 키보드, 신클라비어 |
1985 | 지미 마엘렌 | 퍼커션 |
1985 | 레니 피켓 | 테너 색소폰 |
1985 | 스티브 엘슨 | 바리톤 색소폰 |
1985 | 맥 골레혼 | 트럼펫 |
1985 | "할리우드" 폴 리터럴 | 트럼펫 |
1985 | 레이 앤더슨 | 트롬본 |
1986, 1988–1989 | 토니 비어드 | 드럼 |
1988 | 팻 부캐넌 | 기타 |
1988–1994, 1996–1998 | 밥 메이요 | 키보드, 기타, 백 보컬 |
1988–1989 | 마크 리베라 | 색소폰, 퍼커션, 키보드, 백 보컬 |
1989 – 2010년 9월 | 마이크 브라운 | 드럼 |
1990 | 래리 태그 | 베이스, 백 보컬 |
1990 | 지미 립 | 기타 |
1991–1992 | 카심 설튼 | 베이스, 키보드, 백 보컬 |
1991–1992 | 리사 헤이니 | 첼로 |
1991–1992 | 아일린 아이버스 | 바이올린 |
1993–1994 | 수지 데이비스 | 키보드, 백 보컬 (대릴 홀 소울 얼론 투어) |
1993–1994 | 앨런 고리에 | 베이스, 백 보컬 (대릴 홀 소울 얼론 투어) |
1993–1994 | 로키 브라이언트 | 드럼 (대릴 홀 소울 얼론 투어) |
1993–1994 | 빌 화이트 | 기타 (대릴 홀 소울 얼론 투어) |
1993–1994 | 노먼 헤드먼 | 퍼커션, 백 보컬 (대릴 홀 소울 얼론 투어) |
1993–1994 | 키아 제프리스 | 백 보컬 (대릴 홀 소울 얼론 투어) |
1995, 1999–2001 | 제프 레빈 | 키보드 (1995년 일본 투어) |
1996, 2006–2010 | 에버렛 브래들리 | 퍼커션, 백 보컬 |
1997–2001, 2010–2013 | 폴 페스코 | 기타 |
2001–2006 | 제프 카타니아 | 기타 |
2002–2003 | 존 코르바 | 키보드, 기타, 백 보컬 |
2003–2023 | 엘리엇 루이스 | 키보드, 백 보컬 |
2006–2011 | 제브 카츠 | 베이스 |
불명 | 짐 고든 | 드럼 |
불명 | 브래드 피델[69] | 키보드 |
불명 | 팻 콜린스 | 베이스 (템톤스) |
2009–2024 | 브라이언 던 | 드럼, 퍼커션 |
2011–2024 | 클라이드 존스 | 베이스 기타, 백 보컬 |
2011–2024 | 포터 캐롤 | 퍼커션, 백 보컬 |
2013–2024 | 셰인 테리어 | 기타, 백 보컬 |
5. 음반 목록
홀 & 오츠는 1972년 데뷔하여, 포크, 소울, 록, 팝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초기에는 뚜렷한 음악적 색깔을 찾지 못했다.[29] 1974년 타바레스가 "She's Gone"을 커버하면서 작곡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했고,[15] 1975년 앨범 ''Daryl Hall & John Oates''와 싱글 "Sara Smile"이 히트하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1970년대 후반 "Rich Girl"(1977년, 미국 1위), "It's a Laugh"(1978년), "Wait for Me"(1979년)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77] 1980년대에는 "Kiss on My List"(1981년), "Private Eyes"(1981년), "I Can't Go for That (No Can Do)"(1982년),[79] "Maneater"(1982년), "Out of Touch"(1984년) 등 수많은 곡을 히트시키며 블루 아이드 소울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80]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 출연하여 템테이션스의 에디 켄드릭스, 데이비드 러핀과 합동 공연을 펼쳤고,[81] USA 포 아프리카의 We Are the World 녹음에도 참여했다. 1991년 활동을 중단했다가 1995년 재개했으며, 그룹 활동 외에도 솔로 및 프로듀서 활동을 병행했다.
2009년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201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0년 이상 활동하며 29곡의 TOP40 히트곡, 16곡의 TOP10 히트곡, 6곡의 No.1 히트곡, 8개의 플래티넘 앨범, 6개의 골드 앨범, 6개의 골드 싱글을 기록했으며, 총 4,0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2023년 판권 문제로 홀과 오츠 사이에 법적 분쟁이 발생했고, 2024년 사실상 그룹 해산을 선언했다.[82][76]
홀은 최근 인터뷰에서 "나는 항상 솔로 아티스트였다. 존과는 함께 일했을 뿐이고,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연주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5. 1. 정규 앨범
- ''Whole Oats'' (1972)
- ''Abandoned Luncheonette'' (1973)
- ''War Babies'' (1974)
- ''Daryl Hall & John Oates'' (1975)
- ''Bigger Than Both of Us'' (1976)
- ''Beauty on a Back Street'' (1977)
- ''Along the Red Ledge'' (1978)
- ''X-Static'' (1979)
- ''Voices'' (1980)
- ''Private Eyes'' (1981)
- ''H2O'' (1982)
- ''Big Bam Boom'' (1984)
- ''Ooh Yeah!'' (1988)
- ''Change of Season'' (1990)
- ''Marigold Sky'' (1997)
- ''Do It for Love'' (2003)
- ''Our Kind of Soul'' (2004)
- ''Home for Christmas'' (2006)
앨범명 | 발매 연도 | 빌보드 앨범 차트 최고 순위 | 기타 |
---|---|---|---|
Whole Oats | 1972 | - | 미도정의 귀리를 뜻한다. |
Abandoned Luncheonette | 1973 | 33위 | 아리프 마딘이 프로듀스했다. |
War Babies | 1974 | 86위 | 토드 룬드그렌이 프로듀스했다. |
Daryl Hall & John Oates | 1975 | 17위 (1976년 연간 22위) | |
Bigger Than Both of Us | 1976 | 13위 (1977년 연간 13위) | |
Beauty on a Back Street | 1977 | 30위 | |
Along the Red Ledge | 1978 | 27위 | 데이비드 포스터가 프로듀스했다. |
X-Static | 1979 | 33위 | 데이비드 포스터가 프로듀스했다. |
Voices | 1980 | 17위 (1981년 연간 8위, 1982년 연간 99위) | 첫 셀프 프로듀스 및 밀리언 셀러 앨범. |
Private Eyes | 1981 | 5위 (1982년 연간 16위) | |
H2O | 1982 | 3위 (1983년 1월 15일 ~ 4월 16일, 15주 연속), (1983년 연간 4위) | 플래티넘 앨범. 홀 & 오츠 최대 판매 앨범. |
Big Bam Boom | 1984 | 5위 (1985년 연간 17위) | |
Ooh Yeah! | 1988 | 24위 (1988년 연간 93위) | |
Change of Season | 1990 | 60위 | |
Marigold Sky | 1997 | 95위 | |
Do It for Love | 2003 | 77위 | 타이틀 곡이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
Our Kind of Soul | 2004 | 69위 | |
Home for Christmas | 2006 | - |
5. 2. 라이브 앨범
- Live time영어 (1978년) 빌보드 200 42위를 기록했다.[90]
- Live at the Apollo영어 (1985년) 빌보드 200 21위를 기록했으며, 전 템테이션스의 데이비드 러핀, 에디 켄드릭스와 함께 공연했다.
- 2003년에 A&E의 ''Live by Request'' 스페셜에서 공연한 ''Hall & Oates Live'' DVD를 발매했다.
- 2014년 7월 15일, 홀 & 오츠는 아일랜드에서 듀오로 처음 공연했다(이전에는 각자 솔로 활동을 했다). 공연은 더블린 올림피아 극장에서 열렸으며, 이 공연은 녹화되어 2CD/DVD 세트로 패키지되어 2015년 3월 27일 독일에서, 2015년 3월 30일 미국에서 ''더블린 라이브''로 발매되었다.[50] 홀 & 오츠는 녹화된 콘서트가 단 하루 동안 전국 영화관에서 개봉될 것이라고 밝혔다.[51]
5. 3. 컴필레이션 앨범
- 《Rock 'n Soul Part 1영어》 (1983년): 빌보드 핫 100 7위, 같은 해 연간 36위를 기록한 베스트 앨범으로, 신곡 2곡이 포함되어 있다.
- 《Ultimate Daryl Hall & John Oates영어》 (2004년): 빌보드 200 63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