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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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세기 철학은 1789년부터 1815년까지의 격변하는 유럽 사회를 배경으로, 데카르트와 로크의 대립에서 칸트의 통합 시도를 거쳐 독일 관념론, 생의 철학, 마르크스주의 등 다양한 사조가 등장했다. 영국에서는 공리주의가, 미국에서는 프래그머티즘이 발전했으며, 프랑스 혁명, 산업혁명, 제국주의 확산 등 사회적 변화가 사상적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 주요 학파로는 독일 관념론, 공리주의, 마르크스주의, 실존주의, 실증주의, 프래그머티즘, 영국 관념론, 초월주의, 사회진화론, 신칸트주의, 생의 철학 등이 있으며, 19세기 말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한국의 근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서양 철학은 일본을 통해 한국에 수용되었으며, 사회 개혁과 민족주의 사상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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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주의는 대상이나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철학적 입장으로, 다양한 사상적 배경에서 기원하며 현대에 이르러 여러 유형으로 발전하여 사회, 정치,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 시대별 철학 - 근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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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철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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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철학 | |
시대 | 근대 |
주요 특징 | 이상주의 비판 실증주의 실존주의 마르크스주의 공리주의 낭만주의 니체 철학 |
주요 인물 | |
철학자 | 오귀스트 콩트 카를 마르크스 존 스튜어트 밀 쇠렌 키르케고르 프리드리히 니체 아서 쇼펜하우어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프리드리히 셸링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프란츠 브렌타노 에드문트 후설 윌리엄 제임스 찰스 샌더스 퍼스 조시아 로이스 헨리 시지윅 토머스 힐 그린 프랜시스 허버트 브래들리 베네데토 크로체 알렉산더 폰 훔볼트 카를 포퍼 |
학파 및 사상 | |
이상주의 | 독일 관념론 영국 이상주의 |
실증주의 | 오귀스트 콩트의 사회학 |
마르크스주의 | 역사 유물론 |
실존주의 | 쇠렌 키르케고르 |
공리주의 | 존 스튜어트 밀 헨리 시지윅 |
낭만주의 |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프리드리히 셸링 |
니체 철학 | 힘에의 의지 영원 회귀 초인 |
현상학 | 프란츠 브렌타노 에드문트 후설 |
미국 실용주의 | 윌리엄 제임스 찰스 샌더스 퍼스 조시아 로이스 |
기타 | 분석철학 인본주의 심리학 사회학 |
주요 철학적 주제 | |
인식론 | 경험주의 합리주의 초월철학 관념론 |
형이상학 | 유물론 일원론 이원론 |
윤리학 | 공리주의 의무론 미덕 윤리 상대주의 |
사회 정치 철학 |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보수주의 |
철학적 인간학 | 실존 자유 소외 불안 |
미학 | 낭만주의 이상주의 |
2. 역사적 배경
19세기 철학의 역사적 배경은 1789년부터 1815년까지 이어진 혁명, 전쟁, 그리고 사회적 분열의 시기였다. 이 격변기에 유럽 문화는 이전 세기의 사회적, 문화적 기반이 무너지면서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와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유럽 철학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고, 참여하며,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다.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대륙합리론과 로크에서 시작된 영국 경험론의 대립은 칸트에 의해 통합되었지만, 독일 관념론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후 생의 철학,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사조가 등장했으며, "칸트로 돌아가자"는 신칸트파도 독일 학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공리주의가 부활했고, 미국에서는 프래그머티즘이 발전했다. 이러한 사상적 변화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민주주의 이념의 확산,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확장으로 인한 사회적 모순(빈곤, 가혹한 노동, 식민지 지배, 공동체 붕괴 등)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학문적으로는 과학의 발달로 학문 분야가 세분화되었고, 기독교 교리와 뉴턴 역학 등 기존의 "독단"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이루어졌다.
일본에서도 막말에서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는 변혁기에 사상적으로 큰 전환을 맞이했다.
2. 1. 후기 계몽주의의 영향
18세기 후반에는 이전의 철학을 체계화하는 동시에, 철학이 어떻게 체계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는 장 자크 루소와 이마누엘 칸트가 언급된다. 루소는 국가와 정부의 본질을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속박되어 있다"라는 선언으로 정부의 기반에 도전했다. 칸트는 공리적 회의주의를 옹호하며, 우리가 진정한 현실을 볼 수도 없고, 진정한 현실에 대해 말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현실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표상(appearances)뿐이며,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특정한 필연적이고 주관적인 지각 형태에 종속된 표상뿐이기 때문에, 칸트는 알 수 없는 것(unknowable)이라는 개념을 가정했다(동시에 과학과 인과 원리를 표상에 국한시키면서). 헤겔이 알 수 없는 것과 상황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을 구분한 것은 헤겔의 합리적인 우주 체계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칸트에 대한 반박은 껍데기 뒤에서 작동하는 어떤 알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것의 존재에 대한 일부 지식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매우 간단하게 말하면,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곧 그것을 아는 것이다.19세기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계몽주의 후기 철학자는 피에르시몽 라플라스(1749–1827)였는데, 그의 자연 결정론 공식은 오늘날까지도 유명하다.
2. 2. 동아시아 및 한국의 상황
18세기 본거 宣장(本居宣長)에 의해 완성된 국학(国学)은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나 후지타 유우코쿠(藤田幽谷)・토코(東湖) 부자 등에 의해 보다 실용적인 학풍으로 전환되었다. 이들은 초기의 유학적 경향에서 벗어나 강렬한 존왕사상을 띄게 되었고, 이는 미토학(水戸学)으로 발전하여 막말 존황양이(尊皇攘夷) 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사쓰마-영국 전쟁(薩英戦争)이나 마관 전쟁(馬関戦争)을 통해 양이의 비현실성이 명확해진 반면, 존왕사상은 더욱 강화되었다. 국학은 일본 민족주의(주로 전전의 그것), 교육칙어, 국체(国体) 사상, 황국사관(皇国史観) 등의 기초로서 존속했다.
3. 철학 학파와 경향
19세기 철학은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대륙합리론과 로크에서 시작된 영국 경험론의 대립이 칸트에 의해 통합되었지만, 이를 극복하려 한 독일 관념론에서 정점에 도달했다. 이후 생의 철학,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사조가 탄생·발전했고, "칸트로 돌아가자"는 신칸트파도 독일 학계에서 큰 흐름을 형성했다.
영국에서는 헤겔 학파의 등장으로 경험론이 잠시 쇠퇴했지만,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공리주의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했고, 미국에서는 프래그머티즘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러한 사상적 조류의 사회적 배경으로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민주주의 이념의 확산,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확장에 따른 여러 모순(빈곤, 가혹한 노동, 식민지 지배, 공동체 붕괴 등)으로 인한 개인과 사회 구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학문적으로는 여러 과학의 발달로 학문 분야가 분산화되고, 기독교 교리와 뉴턴 역학(헤겔 철학 포함) 등의 "독단"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서도 막말의 혼란에서 메이지 유신이라는 큰 변혁기에 사상적으로 큰 전환을 맞이했다.
19세기에는 다음과 같은 철학 학파와 경향이 있었다.
- '''독일 관념론''': 칸트의 비판철학과 야코비의 비판에 영향을 받아, 하느님 또는 절대자로 불리는 관념적 원리가 스스로 전개하여 세계와 인간을 파악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피히테, 셸링, 헤겔 등이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 '''공리주의''':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에서 개인과 사회의 이익 조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철학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러미 벤섬과 존 스튜어트 밀이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 '''마르크스주의''': 헤겔 좌파와 포이어바흐를 거쳐 성립되었으며, 헤겔의 역사철학을 유물론적으로 "전도"시켜 물질의 발전 과정으로 보고, 변증법적인 역사 발전 법칙에 따라 자본주의가 전복되고 계급 없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 '''실존주의''': 키르케고르와 니체는 19세기 유럽의 도덕적 가치가 허무주의로 와해되는 것을 보고, 인간 조건의 주관성, 헌신, 신앙, 열정을 철학에 다시 도입하려고 했다.
- '''실증주의''': 오귀스트 콩트는 확인된 관찰들을 엄밀한 순서대로 정리하여 인간 지식의 범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회학을 새로운 학문 분야로 제시했다.
- '''실용주의''': 미국에서 시카고 대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사상의 가치가 현실 반영 정도가 아니라 실용성과 유용성에 기반한다고 주장한다. 분석철학의 원류이기도 하다. 찰스 샌더스 퍼스,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 등이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 '''영국 관념론''': 19세기 말 영국에서 칸트와 헤겔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고 영국의 경험론과 공리주의에 반발하면서 나타났다. T. H. 그린, F. H. 브래들리, 버나드 보산케트 등이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 '''초월주의''': 칸트의 초월과 독일 관념론을 뿌리로 하며, 물질적이고 경험적인 것을 '초월하는' 이상적인 영적 상태를 개인의 직관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랄프 왈도 에머슨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 '''사회진화론''': 진화의 개념인 자연선택을 인간 사회에 적용하는 이론들을 가리킨다. 허버트 스펜서와 프랜시스 골턴이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 '''신칸트주의''': 오토 리프만의 "칸트로 돌아가라!"는 구호를 계기로 칸트 이론이 부활하면서 성립되었다. 빈델반트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방법에 의한 차이"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리케르트는 "문화과학" 개념을 제시하고 상대주의를 극복한 가치철학을 구상했다.
- '''생의 철학''': 니체는 역사학이 과학으로서 객관성을 거짓으로 증명할 때 모든 가치가 파괴되고 절망과 회의를 가져오기 때문에 생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딜타이는 생을 역사의 흐름 속에 있는 객관적인 정신적 실체로 보고,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을 구별했다.
3. 1. 독일 관념론
칸트의 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첫 번째 철학자 중 한 명은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이다. 그는 칸트의 형이상학을 발전시켜 낭만주의에 영감을 주었다. 피히테는 《지식학》(Wissenschaftslehre)에서 자아가 스스로를 설정하며, 자기 생산과 변화의 과정이라고 주장한다.[1]피히테의 제자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은 피히테의 사상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낭만주의자들에게 낭만주의 운동의 공식 철학자로 받아들여졌다.[2] 셸링과 같은 방을 썼던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칸트 이후 독일 관념론 철학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부상하였다. 그의 연구는 독일 사상에서 역사적 사고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2]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헤겔의 합리주의와 낙관주의적 철학에 반대했고, 칸트의 관념론에 등장하는 물자체 개념에 맹목적 의지라는 개념을 결합하여 염세적이면서 독창적인 세계관을 세웠다. 이는 니체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1]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초월론으로 복귀할 것을 주장하면서 무신론과 결정론 등을 채택했다. 그의 세속적 사상은 다윈주의, 실증주의, 마르크스주의 및 성경의 문헌 비평의 출현과 맞물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2]
19세기 후반에는 마르부르크 학파와 바덴 학파를 중심으로 여러 신칸트주의 철학자들이 칸트 사상으로의 복귀를 주장했다.[2] 이들은 다음 세기 초까지 영향을 미쳐 신실증주의와 현상학과 같은 20세기 철학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2]
19세기 전반 독일에서 관념론에 반대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은 루트비히 파이어바흐로, 그는 유물론과 무신론을 옹호했다.[2]
칸트의 비판철학과 야코비의 비판에 영향을 받은 독일 관념론은 하느님 또는 절대자라고 불리는 관념적 원리가 스스로를 전개하여 세계와 인간을 파악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3] 주요 철학자로는 피히테, 셸링, 헤겔 외에 라인홀트, 횔덜린, 솔거 등이 있으며, 신학자 슐라이어마허도 주요 논자로 여겨진다.[3] 괴테와 슐레겔 형제 등 문학계와의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3]
3. 2. 공리주의
19세기 초 영국의 제러미 벤섬과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을 최대화하는 행동이 옳다는 생각을 펼쳤다.[1] 공리주의는 결과주의적인 규범 윤리학 접근 방식으로,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란 인간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공리주의는 여전히 규범 윤리학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는 접근 방식 중 하나로 남아 있다.[2]영국에서는 헤겔 학파의 등장으로 경험론이 일시적으로 쇠퇴했지만,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공리주의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했다.
최초로 산업혁명에 성공하여 ‘세계의 공장’으로 발전한 영국에서는 일찍부터 개인 간의 이익 또는 개인과 사회의 이익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했던 도덕 이론이 등장해야 했다. 그래서 등장한 명제가 바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탄생한 철학이 공리주의이다.
3. 3. 마르크스주의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 발전된 마르크스주의는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에 기반한 사회정치적·경제적 견해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관념론에 반대하여 유물론적 관점을 지지한다. 마르크스는 역사 자체를 변증법의 형태로 나타나는 계급 투쟁의 진행으로 분석했다. 그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라고 주장했다.마르크스에 따르면, 역사는 원시 공산주의(수렵 채집 사회) 단계에서 시작하여 신석기 혁명 이후 노예 사회로 발전하고, 이어 봉건 사회를 거쳐 산업 혁명 시대에 이르렀다. 그는 다음 단계는 프롤레타리아가 산업 소유자들을 타도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수립하는 것이며, 이는 더 나아가 계급 차이, 화폐, 국가가 완전히 소멸하는 공산주의 사회로 발전할 것이라고 보았다.
헤겔 좌파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를 거쳐 마르크스주의가 성립되었다. 그 출발점은 헤겔의 역사철학에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겔이 관념의 발전 과정으로 파악한 역사를 유물론적으로 “전도”시켜 물질의 발전 과정으로 보고, 자연과 인간, 대립하는 힘과 힘이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운동이 되어 발전하는 사물의 총체가 바로 세계이며, 이러한 변증법적인 역사 발전 법칙에 따라 자본주의는 전복되고 계급 없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3. 4. 실존주의
실존주의는 철학적 운동으로서 엄밀히 말하면 20세기 운동이지만, 그 중요한 선구자인 쇠렌 키르케고르와 프리드리히 니체는 실존주의가 부상하기 훨씬 이전에 저술 활동을 펼쳤다.[10] 1840년대 유럽의 학문적 철학은 헤겔의 뒤를 이어 개인적 삶의 문제와는 거의 완전히 단절된 채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체계를 추구하는 데 몰두했다. 키르케고르는 소크라테스의 정신에 따라 인간의 조건의 일부인 주관성, 헌신, 신앙, 열정을 철학에 다시 도입하려고 했다.키르케고르와 마찬가지로 니체도 19세기 유럽의 도덕적 가치가 허무주의(키르케고르는 이를 '평준화' 과정이라고 불렀다)로 와해되는 것을 보았다. 니체는 그 기반을 폭로함으로써 전통적인 도덕적 가치를 무너뜨리려고 시도했다. 그 목적을 위해 그는 주인과 노예 도덕을 구분하고 인간은 유럽의 노예 도덕의 온순함과 겸손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철학자 모두 시대에 맞서 싸우는 "위대한 인물"에 대한 중요성으로 인해 다른 여러 사상들과 더불어 실존주의의 선구자이다. 키르케고르는 19세기 유럽에 대해 이렇게 썼다. "각 시대에는 고유한 타락이 있다. 우리 시대의 타락은 아마도 쾌락이나 방종이나 관능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에 대한 방탕한 범신론적 경멸일 것이다."[10]
3. 5. 실증주의
오귀스트 콩트는 스스로를 근대 사회학의 설립자로 공언하였고, 인간 지식의 범위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확인된 관찰들을 엄밀한 순서대로 정리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수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그리고 "사회의 변동을 연구하는 동학(dynamics)과 사회 질서를 연구하는 정학(statics)"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학문 분야인 "사회학" 순으로, 뒤로 갈수록 복잡성이 높은 과학이 되기를 희망했다.[11]3. 6. 실용주의 (프래그머티즘)
미국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와 윌리엄 제임스는 19세기 후반에 실용주의 철학을 발전시켰다.[4] 이 사상은 어떤 사상의 가치가 현실을 반영하는 정도가 아니라 실용성이나 유용성에 기반한다고 주장한다.[4]프래그머티즘은 미국에서 시카고 대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870년대 초 찰스 샌더스 퍼스가 "형이상학 클럽"이라 불린 젊은 철학자 모임에서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한다.
프래그머티즘은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 등에 의해 발전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분석철학의 원류이기도 하다. 이는 퍼스가 기호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모리스, 콰인과 같은 분석철학자들이 "네오 프래그머티스트"라고 불리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3. 7. 영국 관념론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영국 관념론이 부상하였는데, 이는 이마누엘 칸트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고 영국의 경험론과 공리주의에 반발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 운동은 제임스 허치슨 스털링의 2권짜리 저서 ''헤겔의 비밀''에 의해 부분적으로 촉진되었는데, 이 책은 영국에서 헤겔 연구를 쉽게 하고 헤겔에 대한 영국 관념론적 해석의 특징이 된 일부 요소들을 소개하였다. 칸트와 헤겔 철학의 다양한 부분을 통합하는 것 외에도, 많은 영국 관념론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과 같은 초기 사상가들의 사상을 받아들였다.[5] T. H. 그린, F. H. 브래들리, 버나드 보산케트는 영국 관념론의 주요 사상가들 중 일부로 여겨진다.3. 8. 초월주의
초월주의는 이마누엘 칸트의 초월과 독일 관념론을 뿌리로 삼는 사상으로, 랄프 왈도 에머슨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주도하였다. 이들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와 토마스 칼라일의 저서를 통해 독일 사상에 접하면서 초월주의를 이끌었다. 초월주의의 주요 신념은 물질적이고 경험적인 것을 '초월하는' 이상적인 영적 상태에 있으며, 기존 종교의 교리보다는 개인의 직관을 통해서만 실현된다는 것이다.3. 9. 사회진화론
'''사회다윈주의'''는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의 분야에서 진화의 개념인 자연선택을 인간 사회에 적용하는 이론들을 가리킨다. 이 운동의 주요 사상가 두 명은 허버트 스펜서와 프랜시스 골턴이었다.3. 10. 신칸트주의
오토 리프만이 그의 저서 《칸트와 그의 추종자들》에서 "칸트로 돌아가라!"라는 구호를 외친 것을 계기로 칸트 이론이 부활하기 시작했고, 신칸트학파가 성립되었다.[1] 이후 빌헬름 빈델반트에 의해 남서독일학파(바덴학파)가 창시되자, 딜타이가 역사주의에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며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구분한 것을 빈델반트는 비판하였다.[1] 그는 자연과학이 "법칙 설정적"(nomothetisch)인 것에 반해, 인문과학은 "개성 기술적"(idiographisch)이라고 특징지으며,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은 "영역에 의한 차이"가 아니라 "방법에 의한 차이"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인문과학에 자연과학과 다른 학문으로서의 독자성을 부여하였다.[1] 하인리히 리케르트는 인문과학을 대체할 개념으로 "문화과학"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이를 체계화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주의를 극복한 가치철학의 구상을 세웠다.[1]3. 11. 생의 철학
니체는 1874년 논문 "생에 대한 역사의 공과"에서 역사주의[9]를 처음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니체에게 역사학은 순수과학인 수학과 본질이 달랐고, 역사학이 과학으로서 객관성을 거짓으로 증명할 때 모든 가치는 무한한 역사의 흐름 속에 던져져 파괴되고, 영원한 절망과 회의를 가져오기 때문에 역사학은 학문이기를 그만두고 생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기에는 자연주의에 서 있는 과학과 생이 각각 자율적인 영역이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당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던 역사학을 비판하는 형태로 제시된 것이다. 니체는 생의 철학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키르케고르 등은 종종 익명으로 쓰여진 문학적인 에세이 형태로 나타났지만, 그 길을 연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는 생을 역사의 흐름 속에 있는 객관적인 정신적 실체이며, 철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기본적인 사실이라고 한 다음,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을 구별하고, 역사적 인식을 범형으로 하는 정신과학의 인식론적 특질은 경험·표현·이해의 연관에 기반하고 있다고 했다. 이 연관은 "생"의 자기 해석이며, 역사는 이 개별적인 자기 해석의 모든 객관화의 총체라고 하여, 역사주의에 철학적 기초가 주어졌다.4. 19세기 철학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19세기 일본에서는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 후지타 유우코쿠(藤田幽谷)・후지타 토코 부자 등이 미토학(水戸学)을 통해 국학(国学)을 실용적인 학풍으로 전환하고 존왕사상을 강화하여 존황양이(尊皇攘夷) 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사쓰마-영국 전쟁(薩英戦争)과 마관 전쟁 이후, 양이의 비현실성이 드러났지만, 존왕사상은 더욱 강화되었고, 국학은 일본 민족주의, 교육칙어, 국체(国体) 사상, 황국사관(皇国史観) 등의 기초가 되었다.
4. 1. 서양 철학의 수용과 번역
개국으로 인해 에도 막부와 각 번(메이지 유신 이후는 정부)에서 많은 유학생들이 파견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외국어와 서양의 과학, 기술 및 정치, 경제 시스템 등을 주로 흡수했지만, 일부는 서양 철학과 접촉하여 귀국 후 연구, 발표, 언론 활동 등에서 활약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컸던 인물은 후쿠자와 유키치와 나카에 조민이다.후쿠자와는 주로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나카에는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나카에 번역본은 『민약해론』)을 번역한 것으로 유명하다.
니시 아마네는 Philosophy를 "철학"으로 번역하였고, 이노우에 엔료는 서양 철학(주로 독일 관념론)과 불교의 일치를 목표로 했다. 이들은 이 시대의 핵심 인물로 거론된다.
4. 2. 사회 개혁 사상
에도 막부와 각 번(메이지 유신 이후는 정부)에서 많은 유학생들이 파견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외국어와 서양의 과학, 기술, 정치, 경제 시스템 등을 주로 흡수했지만, 일부는 서양 철학과 접촉하여 귀국 후 연구, 발표, 언론 활동 등에서 활약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컸던 인물은 후쿠자와 유키치와 나카에 조민이다.후쿠자와는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나카에는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나카에 번역본은 『민약해론』)을 번역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Philosophy를 "철학"으로 번역한 니시 아마네, 서양 철학(주로 독일 관념론)과 불교의 일치를 목표로 했던 이노우에 엔료 등이 이 시대의 핵심 인물로 거론된다.[1]
4. 3. 민족주의와 주체성 확립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 후지타 유우코쿠(藤田幽谷)・토코(東湖) 부자 등은 유학적 경향에서 강렬한 존왕사상으로 이동한 미토학(水戸学)을 통해, 18세기 본거 宣장(本居宣長)에 의해 완성된 국학(国学)을 보다 실용적인 학풍으로 전환하여 막말 존황양이(尊皇攘夷) 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1]사쓰마-영국 전쟁(薩英戦争)이나 마관 전쟁(馬関戦争)으로 양이의 비현실성이 명확해졌으나, 존왕사상은 강화되었고, 국학은 일본 민족주의(주로 전전의 그것), 교육칙어, 국체(国体) 사상, 황국사관(皇国史観) 등의 기초로 존속했다.[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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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physics Research Lab, Stanford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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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ニーチェは当時の歴史を尊重する時代風潮を「命取りの歴史熱病」と称した。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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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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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se on Positive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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