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FIFA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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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6년 FIFA 월드컵은 잉글랜드에서 개최된 제8회 FIFA 월드컵으로, 1960년 FIFA 총회에서 잉글랜드가 개최국으로 선정되었다. 잉글랜드, 서독, 스페인이 유치 경쟁을 벌였으나, 잉글랜드가 34표를 얻어 개최국이 되었다. 이 대회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국가에서 열린 첫 번째 월드컵이었다. 16개 팀이 참가하여 조별 리그와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잉글랜드가 서독을 4-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우는 9골로 득점왕을 차지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아시아 국가 최초로 월드컵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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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FIFA 월드컵 - [국제 축구 대회 정보]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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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정보 | |
대회 이름 | 1966 FIFA 월드컵 |
다른 이름 | World Championship Jules Rimet Cup England 1966 |
개최국 | 잉글랜드 |
개최 기간 | 1966년 7월 11일 ~ 7월 30일 |
참가 팀 수 | 16 |
대륙 연맹 수 | 4 |
개최 도시 수 | 7 |
경기장 수 | 8 |
결과 | |
우승팀 | 잉글랜드 |
우승 횟수 | 1 |
준우승팀 | 서독 |
3위팀 | 포르투갈 |
4위팀 | 소비에트 연방 |
통계 | |
총 경기 수 | 32 |
총 득점 | 89 |
총 관중 수 | 1,635,000 |
득점왕 | 에우제비우 (9골) |
기타 | |
이전 대회 | 1962 |
다음 대회 | 1970 |
2. 개최국 선정
1966년 FIFA 월드컵 개최지는 1960년 8월 22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결정되었다.[3][4] 잉글랜드, 서독, 스페인이 유치 경쟁을 벌였으나, 스페인은 유치를 포기하였다. 투표 결과 잉글랜드가 34표, 서독이 27표를 얻어 잉글랜드가 개최국으로 선정되었다.[3][4]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국가에서 열린 첫 번째 대회였다.[3][4]
개최국 | 득표수 |
---|---|
잉글랜드/England영어 | 34 |
서독/West Germanyde | 27 |
스페인/Spaines | — |
1966년 FIFA 월드컵 경기는 8개 도시의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과 화이트 시티 스타디움, 버밍엄의 빌라 파크,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퍼드, 리버풀의 구디슨 파크, 셰필드의 힐즈버러 경기장, 선덜랜드의 로커 파크, 미들즈브러의 에어섬 파크가 사용되었다.[24]
총 70개국이 1966년 FIFA 월드컵 예선에 참가했으며, 이 중 16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유럽에서는 10개 팀(유럽 (UEFA)), 남아메리카에서는 4개 팀(남미 (CONMEBOL)), 북중미에서는 1개 팀(북중미&카리브 (CONCACAF)), 아시아에서는 1개 팀(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 (CAF·AFC·OFC))이 각각 본선에 진출하기로 결정되었다.[5]
3. 경기장
웸블리 스타디움은 결승전을 포함한 9경기가 개최되어 가장 많이 사용된 경기장이었다. 1966년 당시 43년 된 경기장이었던 웸블리는 잉글랜드의 국립 경기장이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축구 경기장으로 여겨졌다.[24] 웸블리에서는 잉글랜드가 출전한 6경기를 포함하여 결승전과 3위 결정전까지 총 9경기가 열렸다. 굿디슨 파크는 5경기, 로커 파크와 힐스버러는 각각 4경기가 열렸고, 올드 트래퍼드, 빌라 파크, 에어섬 파크는 각각 3경기가 열렸으며, 이 경기장들은 토너먼트 경기는 개최하지 않았다.[24]
조별 예선 경기는 서로 가까운 두 경기장에서 치러졌다. 1조 경기(개최국 포함)는 모두 런던에서 열렸다. 웸블리에서 5경기, 런던 서부의 화이트 시티 스타디움에서 1경기가 치러졌다. 1908년 하계 올림픽을 위해 건설된 화이트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루과이와 프랑스의 조별 예선 경기는 웸블리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그레이하운드 경주가 예정된 금요일에 편성되었다. 웸블리 소유주가 경주 취소를 거부했기 때문에, 경기는 런던의 대체 경기장으로 옮겨져야 했다.
2조 경기는 셰필드의 힐즈버러 스타디움과 버밍엄의 빌라 파크에서, 3조 경기는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퍼드와 리버풀의 구디슨 파크에서, 그리고 4조 경기는 미들즈브러의 에어섬 파크와 선덜랜드의 로커 파크에서 치러졌다. 경기장 건설 비용은 현재 가치로 920만 파운드로 추산되며, 대회 조직에는 추가로 3,622만 파운드가 소요되었다.[23]런던 리버풀 셰필드 선덜랜드 웸블리 스타디움 구디슨 파크 힐즈버러 경기장 로커 파크 수용인원: 100,000명 수용인원: 62,789명 수용인원: 43,245명 수용인원: 35,756명 런던 버밍엄 맨체스터 미들즈브러 화이트시티 스타디움 빌라 파크 올드 트래퍼드 에어섬 파크 수용인원: 50,234명 수용인원: 48,765명 수용인원: 40,564명 수용인원: 26,458명
4. 지역 예선
지역 예선 국가/팀 유럽 (UEFA) 32개 팀 중 10개 팀 (10장) , , , , (개최국), , , , , 남미 (CONMEBOL) 9개 팀 중 4개 팀 (4장) , (1962년 FIFA 월드컵 우승 팀), , 북중미&카리브 (CONCACAF) 10개 팀 중 1개 팀 (1장) 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 (CAF·AFC·OFC) 18개 팀 중 1개 팀 (1장)
포르투갈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포르투갈은 1986년까지 다시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0년 대회에서 다시 본선에 진출했다. 스위스는 이 대회가 1994년까지 마지막으로 출전한 월드컵이었다. 이번 대회에는 1962년 대회 준우승팀인 체코슬로바키아와 준결승 진출팀인 유고슬라비아가 불참했다.[5][6]
4. 1. 아프리카 보이콧
1964년 FIFA는 아프리카 지역 2차 예선 3개 팀이 1966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해 아시아 지역 우승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한다는 규정을 발표했고, 이에 아프리카 15개국은 항의하며 토너먼트를 보이콧했다.[12][10] 아프리카 국가들은 자국 지역 우승이 곧 월드컵 진출 자격을 갖추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 축구 연맹(CAF)은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직접적인 진출이 부족한 것을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FIFA에 다음 대회 결승전에 최소 한 개의 아프리카 국가 진출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1958년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으로 인해 CAF에서 제명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1963년 FIFA에 재가입한 것에 대해서도 항의했다.[12][10]
이 보이콧으로 FIFA는 CAF에 5,000 스위스 프랑의 벌금을 부과했다. 당시 CAF 회장인 이드네카체우 테세마는 이에 대해 "FIFA는 아프리카 연맹들에 대해 냉혹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그 결정들은 유사한 성격의 추가적인 충동을 억제하기 위한 협박과 탄압의 방법을 닮았습니다. 저희의 의견으로는, 아프리카 국가 연맹들은... 벌금보다 존중의 표시를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11]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후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예선 조에 배정되었지만, 1964년 10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압력으로 다시 제명된 후 자격이 박탈되었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FIFA는 경쟁 및 물류 문제를 이유로 예선 방식을 변경하는 것을 거부했고, 아프리카 팀들은 항의하며 참가를 철회했다.
CAF는 이후 최소한 한 개의 아프리카 팀이 월드컵에 자동 진출권을 확보하지 않는 한 1970년 월드컵 예선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FIFA에 통보했다. 이는 1970년 FIFA 월드컵과 그 이후 모든 월드컵 결승전에 적용되었다.[12] 포르투갈령 아프리카 식민지인 앙골라와 모잠비크의 선수들은 포르투갈 대표로 참가했다.[12][13]
5. 본선 진출국
1966년 FIFA 월드컵에는 총 16개국이 본선에 진출했다.[5] 개최국 잉글랜드와 전 대회 우승국 브라질을 포함, 유럽에서는 서독, 프랑스, 포르투갈, 스위스, 헝가리, 소련, 이탈리아, 스페인, 불가리아가 진출했다. 남미에서는 우루과이, 칠레, 아르헨티나가, 북중미에서는 멕시코가 참가했다. 아시아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유일하게 본선에 진출했다.[5] 포르투갈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6. 조 추첨 및 시드 배정
1966년 1월 6일에 런던에서 조 추첨이 진행되었다.[53] 조 추첨은 남아메리카(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유럽(잉글랜드, 헝가리, 소련, 서독), 라틴 유럽(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기타(불가리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멕시코, 스위스)로 포트를 나누어 진행되었다.
포트 1 (남아메리카) | 포트 2 (유럽) | 포트 3 (라틴 유럽) | 포트 4 (기타) |
---|---|---|---|
valign="top"| | valign="top"| | valign="top"| | valign="top"| |
7. 선수 명단
1966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한 각국의 선수 명단은 1966년 FIFA 월드컵 선수 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8. 대회 진행
1966년 대회의 형식은 1962년 대회와 동일하게 진행되었다. 16개의 본선 진출 팀이 4개 조로 나뉘어 각 조에서 리그전 방식으로 경기하였다.[21] 승리 시 2점, 무승부 시 1점을 얻었으며, 승점이 동일한 팀은 골득실을 적용하고, 그래도 동일할 경우 추첨으로 순위를 결정하였다.[21] 각 조 상위 2개 팀이 토너먼트 단계에 진출하였다.[21]
토너먼트 경기에서 90분 후 동점일 경우 30분의 연장전이 진행되었다. 결승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연장전 후에도 동점일 경우 추첨으로 승자를 결정하였다. 결승전은 연장전 후에도 동점일 경우 재경기가 진행되었고, 재경기 후에도 동점일 경우 추첨으로 우승팀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재경기나 추첨은 필요하지 않았다.
8. 1. 조별 리그
1966년 FIFA 월드컵은 팀들이 전술적이고 수비적인 경기를 펼쳐 득점이 적었다. 알프 램지 감독의 잉글랜드는 4골만을 넣고 실점 없이 1조 1위를 차지했지만, 첫 경기를 승리하지 못한 최초의 월드컵 우승팀이 되었다. 우루과이는 멕시코와 프랑스를 제치고 잉글랜드와 함께 8강에 진출했다.[25]2조에서는 서독과 아르헨티나가 5점으로 조별 리그를 통과했다. 스페인은 2점, 스위스는 3패로 탈락했다. FIFA는 아르헨티나의 폭력적인 플레이에 대해 경고했다.[26][27]
3조에서는 포르투갈이 3전 전승으로 1위를 차지했고, 헝가리가 2승 1패로 그 뒤를 이었다. 2연패 챔피언 브라질은 불가리아와 함께 탈락했다. 포르투갈의 우세비우는 9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4조에서는 소련이 3전 전승으로 1위를 차지했고, 북한이 이탈리아를 1-0으로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이는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 이외의 국가가 월드컵 1차전을 통과한 최초의 사례였다.
- 하위 레벨 제목(sub-sectionTitle): A조
- 하위 레벨 본문(sub-content):
```content
A조에는 잉글랜드, 우루과이, 멕시코, 프랑스가 속했다. 잉글랜드(2승 1무)와 우루과이(1승 2무)가 8강에 진출했다.
- 1966년 7월 11일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0 – 0 우루과이 (관중 87,000명)
- 1966년 7월 13일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프랑스 1 – 1 멕시코 (관중 69,000명)
- 1966년 7월 15일 화이트 시티 경기장 (런던): 우루과이 2 – 1 프랑스 (관중 40,000명)
- 1966년 7월 16일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2 – 0 멕시코 (관중 92,000명)
- 1966년 7월 19일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멕시코 0 – 0 우루과이 (관중 61,000명)
- 1966년 7월 20일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2 – 0 프랑스 (관중 98,000명)
```
- 하위 레벨 제목(sub-sectionTitle): B조
- 하위 레벨 본문(sub-content):
```content
B조에는 서독, 아르헨티나, 스페인, 스위스가 속해 있었다. 2조 경기 결과, 서독과 아르헨티나가 각각 2승 1무를 기록하며 8강에 진출했다. 서독은 스위스를 5-0으로 대파하고, 스페인을 2-1로 꺾었으며, 아르헨티나와는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과 스위스를 각각 2-1, 2-0으로 이기고 서독과 비겼다.
- 1966년 7월 12일: '''서독 5''' - 0 스위스 (힐즈브러 스타디움, 셰필드)
- 1966년 7월 13일: '''아르헨티나 2''' - 1 스페인 (빌라 파크, 버밍엄)
- 1966년 7월 15일: '''스페인 2''' - 1 스위스 (힐즈브러 스타디움, 셰필드)
- 1966년 7월 16일: 서독 0 - 0 아르헨티나 (빌라 파크, 버밍엄)
- 1966년 7월 19일: '''아르헨티나 2''' - 0 스위스 (힐즈브러 스타디움, 셰필드)
- 1966년 7월 20일: '''서독 2''' - 1 스페인 (빌라 파크, 버밍엄)
서독과 아르헨티나는 승점, 골득실, 다득점까지 모두 같았으나, FIFA 규정에 따라 서독이 조 1위를 차지했다.
```
- 하위 레벨 제목(sub-sectionTitle): C조
- 하위 레벨 본문(sub-content):
```content
C조에는 포르투갈, 헝가리, 브라질, 불가리아가 속해 있었다. 포르투갈은 3전 전승으로 8강에 진출했고, 헝가리는 2승 1패를 기록하며 그 뒤를 이었다. 반면, 브라질은 헝가리와 포르투갈에 연패하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 1966년 7월 13일 올드 트래퍼드(맨체스터)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헝가리의 경기에서는 포르투갈이 조제 아우구스투의 2골과 토흐스의 골로, 베네가 1골을 넣은 헝가리를 3-1로 이겼다.
- 1966년 7월 19일 구디슨 파크(리버풀)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브라질의 경기에서는 시몽에스와 에우제비우의 2골로, 히우두가 1골을 만회한 브라질을 3-1로 제압했다. 이로써 포르투갈은 조 1위를 확정지었다.
- 1966년 7월 20일 올드 트래퍼드(맨체스터)에서 열린 헝가리와 불가리아의 경기에서는 다비도프의 자책골, 메쇠이와 베네의 골로 헝가리가 아스파루호프가 1골을 넣은 불가리아를 3-1로 이겼다.
```
- 하위 레벨 제목(sub-sectionTitle): D조
- 하위 레벨 본문(sub-content):
```content
D조에는 소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탈리아, 칠레가 속했다. 소련(3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승 1무 1패)이 8강에 진출했다.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탈리아를 1-0으로 꺾는 이변을 연출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순 위 | 팀 | 승 점 | 시 합 | 승 리 | 무 승부 | 패 전 | 득 점 | 실 점 | 득실 차 |
---|---|---|---|---|---|---|---|---|---|
1 | 22px 소비에트 연방 | 6 | 3 | 3 | 0 | 0 | 6 | 1 | +5 |
2 | 22px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3 | 3 | 1 | 1 | 1 | 2 | 4 | -2 |
3 | 22px 이탈리아 | 2 | 3 | 1 | 0 | 2 | 2 | 2 | 0 |
4 | 22px 칠레 | 1 | 3 | 0 | 1 | 2 | 2 | 5 | -3 |
- 1966년 7월 12일 에이섬 파크 (미들즈브러): '''소련''' 3 - 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1966년 7월 19일 에이섬 파크 (미들즈브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 - 0 이탈리아 (경기 내용)
8. 1. 1. A조
A조에는 잉글랜드, 우루과이, 멕시코, 프랑스가 속했다. 잉글랜드(2승 1무)와 우루과이(1승 2무)가 8강에 진출했다.- 1966년 7월 11일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0 – 0 우루과이 (관중 87,000명)
- 1966년 7월 13일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프랑스 1 – 1 멕시코 (관중 69,000명)
- 1966년 7월 15일 화이트 시티 경기장 (런던): 우루과이 2 – 1 프랑스 (관중 40,000명)
- 1966년 7월 16일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2 – 0 멕시코 (관중 92,000명)
- 1966년 7월 19일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멕시코 0 – 0 우루과이 (관중 61,000명)
- 1966년 7월 20일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잉글랜드 2 – 0 프랑스 (관중 98,000명)
8. 1. 2. B조
B조에는 서독, 아르헨티나, 스페인, 스위스가 속해 있었다. 2조 경기 결과, 서독과 아르헨티나가 각각 2승 1무를 기록하며 8강에 진출했다. 서독은 스위스를 5-0으로 대파하고, 스페인을 2-1로 꺾었으며, 아르헨티나와는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과 스위스를 각각 2-1, 2-0으로 이기고 서독과 비겼다.- 1966년 7월 12일: '''서독 5''' - 0 스위스 (힐즈브러 스타디움, 셰필드)
- 1966년 7월 13일: '''아르헨티나 2''' - 1 스페인 (빌라 파크, 버밍엄)
- 1966년 7월 15일: '''스페인 2''' - 1 스위스 (힐즈브러 스타디움, 셰필드)
- 1966년 7월 16일: 서독 0 - 0 아르헨티나 (빌라 파크, 버밍엄)
- 1966년 7월 19일: '''아르헨티나 2''' - 0 스위스 (힐즈브러 스타디움, 셰필드)
- 1966년 7월 20일: '''서독 2''' - 1 스페인 (빌라 파크, 버밍엄)
서독과 아르헨티나는 승점, 골득실, 다득점까지 모두 같았으나, FIFA 규정에 따라 서독이 조 1위를 차지했다.
8. 1. 3. C조
C조에는 포르투갈, 헝가리, 브라질, 불가리아가 속해 있었다. 포르투갈은 3전 전승으로 8강에 진출했고, 헝가리는 2승 1패를 기록하며 그 뒤를 이었다. 반면, 브라질은 헝가리와 포르투갈에 연패하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1966년 7월 13일 올드 트래퍼드(맨체스터)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헝가리의 경기에서는 포르투갈이 조제 아우구스투의 2골과 토흐스의 골로, 베네가 1골을 넣은 헝가리를 3-1로 이겼다.
- 1966년 7월 19일 구디슨 파크(리버풀)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브라질의 경기에서는 시몽에스와 에우제비우의 2골로, 히우두가 1골을 만회한 브라질을 3-1로 제압했다. 이로써 포르투갈은 조 1위를 확정지었다.
- 1966년 7월 20일 올드 트래퍼드(맨체스터)에서 열린 헝가리와 불가리아의 경기에서는 다비도프의 자책골, 메쇠이와 베네의 골로 헝가리가 아스파루호프가 1골을 넣은 불가리아를 3-1로 이겼다.
8. 1. 4. D조
D조에는 소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탈리아, 칠레가 속했다. 소련(3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승 1무 1패)이 8강에 진출했다.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탈리아를 1-0으로 꺾는 이변을 연출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순 위 | 팀 | 승 점 | 시 합 | 승 리 | 무 승부 | 패 전 | 득 점 | 실 점 | 득실 차 |
---|---|---|---|---|---|---|---|---|---|
1 | 22px 소비에트 연방 | 6 | 3 | 3 | 0 | 0 | 6 | 1 | +5 |
2 | 22px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3 | 3 | 1 | 1 | 1 | 2 | 4 | -2 |
3 | 22px 이탈리아 | 2 | 3 | 1 | 0 | 2 | 2 | 2 | 0 |
4 | 22px 칠레 | 1 | 3 | 0 | 1 | 2 | 2 | 5 | -3 |
- 1966년 7월 12일 에이섬 파크 (미들즈브러): '''소련''' 3 - 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1966년 7월 19일 에이섬 파크 (미들즈브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 - 0 이탈리아 (경기 내용)
8. 2. 결선 토너먼트
8강전에서는 서독이 우루과이를 4-0으로 완파했는데, 우루과이는 심판(잉글랜드의 짐 피니)이 슈넬링거의 골라인 핸들링을 인지하지 못하고 우루과이의 오라시오 트로체와 엑토르 실바 두 선수를 퇴장시킨 후에야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다.[28] 굿디슨 파크에서 열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포르투갈의 경기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22분 만에 3-0으로 앞서며 이변을 예고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 경기는 에우제비우에 의해 뒤바뀌었다. 그는 4골을 넣었고 조제 아우구스투가 78분에 추가골을 넣어 포르투갈이 5-3으로 승리했다.한편 다른 두 경기에서는 베네가 레프 야신의 뛰어난 선방에 힘입은 소련을 상대로 헝가리에 늦은 시간 득점을 기록했지만, 2-1로 패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는 잉글랜드의 제프 허스트가 유일한 골을 넣었다. 이 논란이 많은 경기(자세한 내용은 아르헨티나-잉글랜드 축구 라이벌전 참조)에서 아르헨티나의 안토니오 라틴은 웸블리에서 열린 시니어 국제 축구 경기에서 최초로 퇴장당한 선수가 되었다.[29] 라틴은 처음에 그라운드를 떠나기를 거부했고 결국 여러 명의 경찰에 의해 퇴장당했다. 라틴이 퇴장당했을 때 스코어는 0-0이었고, 정규 시간 종료 12분 전 허스트의 헤딩골로 승부가 결정되었다. 이 경기는 아르헨티나에서 "엘 로보 델 시글로"(세기의 강도)라고 불린다.[30]
모든 준결승 진출팀은 유럽 팀이었다. 잉글랜드는 보비 찰턴의 2골로 승리했고, 포르투갈은 잭 찰턴의 골라인 핸들링으로 인해 82분에 페널티킥으로 1골을 넣었다.[31][32] 다른 준결승 경기도 2-1로 끝났다. 서독은 프란츠 베켄바워가 페널티 박스 바로 밖에서 왼발슛으로 결승골을 넣어 소련을 꺾었다.[33]
포르투갈은 소련을 2-1로 꺾고 3위를 차지했다. 포르투갈의 3위는 1934년 이후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팀 중 최고 성적이었다. 이 기록은 1998년 크로아티아가 따라잡았다.
일시 | 장소 | 팀 1 | 결과 | 팀 2 |
---|---|---|---|---|
7월 23일 | 셰필드 | 서독 | 4 - 0 | 우루과이 |
7월 23일 | 선덜랜드 | 소련 | 2 - 1 | 헝가리 |
7월 23일 | 리버풀 | 포르투갈 | 5 - 3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7월 23일 | 런던 | 잉글랜드 | 1 - 0 | 아르헨티나 |
준결승전 | ||||
7월 25일 | 리버풀 | 서독 | 2 - 1 | 소련 |
7월 25일 | 런던 | 잉글랜드 | 2 - 1 | 포르투갈 |
3·4위전 | ||||
7월 28일 | 런던 | 포르투갈 | 2 - 1 | 소련 |
결승전 | ||||
7월 30일 | 런던 | 서독 | 2 - 4 (AET) | 잉글랜드 |
8. 2. 1. 8강전
1966년 7월 23일에 8강전 4경기가 진행되었다.힐즈브러 경기장(셰필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서독이 할러(2골), 베켄바워, 젤러의 연속골로 우루과이를 4-0으로 대파했다.
로커 파크(선덜랜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소련이 치슬렌코와 포르쿠얀의 골로 베네가 한 골을 만회한 헝가리를 2-1로 이겼다.
웸블리 스타디움(런던)에서 열린 경기에서 잉글랜드가 허스트의 결승골로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었다.
- '''포르투갈 5 -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구디슨 파크(리버풀)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박승진, 리동운, 양성국이 연속 3골을 넣어 초반에 앞서나갔으나,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우가 페널티골 2개를 포함하여 무려 4골을 넣고, 조제 아우구스투가 1골을 추가하면서 5-3으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돌풍을 잠재운 경기로 평가받는다.
8. 2. 2. 4강전
1966년 7월 25일 19시 30분, 리버풀의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서독과 소련의 준결승전에서는 서독이 할러와 베켄바워의 득점에 힘입어 포르쿠얀이 한 골을 만회한 소련을 2-1로 꺾었다. 이 경기의 관중은 38,300명이였다.1966년 7월 26일 19시 30분,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의 준결승전에서는 잉글랜드가 B. 찰턴의 두 골로 에우제비우가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넣은 포르투갈을 2-1로 이겼다. 이 경기의 관중 수는 95,000이었다.
8. 2. 3. 3·4위전
1966년 7월 28일, 웸블리 스타디움(런던)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소련의 3·4위전 경기는 에우제비우의 페널티킥 선제골과 토흐스의 결승골로 포르투갈이 2-1 승리를 거두었다. 말로페예프가 한 골을 만회했지만, 소련은 경기를 뒤집지 못했다. 이 경기는 88,000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켄 대그널 심판이 주심을 맡았다. 포르투갈은 이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고, 이는 현재까지도 포르투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월드컵 성적으로 남아있다. 반면, 소련은 4위에 머무르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8. 2. 4. 결승전
1966년 FIFA 월드컵 결승전1966년 7월 30일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는 98,000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경기 시작 12분 32초 후 헬무트 할러가 서독의 선제골을 넣었지만, 4분 후 제프 허스트가 동점골을 기록했다. 마틴 피터스가 78분에 잉글랜드의 추가골을 넣으며 잉글랜드가 우승을 눈앞에 둔 듯했다. 그러나 경기 종료 1분 전, 심판이 서독에게 프리킥을 선언했고, 볼프강 베버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다. 잉글랜드는 페널티 지역에서 공이 손에 맞았다고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36]

90분 경기가 2-2로 끝나면서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연장 전반 98분, 허스트가 다시 한번 골을 넣었다. 그의 슛은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에 떨어졌고, 골로 인정되었다. 공이 골라인을 넘었는지에 대한 논쟁은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며, 이 골은 월드컵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다.[34] 잉글랜드의 마지막 골은 허스트가 다시 한번 넣었고, 이후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난입하는 축하 행렬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제프 허스트는 월드컵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36] BBC 해설자 케네스 울스턴홀름은 경기 마지막 순간을 "일부 사람들이 그라운드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는군요 ... ''[허스트가 골을 넣습니다]'' 이제 끝났습니다!"라고 묘사하며 역사에 남는 명언을 남겼다.[35]
잉글랜드는 6경기에서 총 11골을 넣어 월드컵 우승팀의 경기당 평균 득점 기록으로는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1982년 이탈리아가 7경기에서 12골을 넣을 때까지 유지되었고, 2010년에는 스페인이 7경기에서 8골을 넣으며 다시 한번 기록을 경신했다. 잉글랜드는 3골만 실점하여 월드컵 우승팀의 경기당 평균 실점 기록으로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1994년 브라질이 7경기에서 3골을 실점할 때까지 유지되었고, 프랑스는 1998년 대회에서 7경기 2골을 실점하며 기록을 다시 한번 경신했다. 이 기록은 2006년 이탈리아와 2010년 대회 스페인이 7경기 2골 실점으로 동률을 이루었다.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쥘 리메 트로피를 받았고,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국이 되었다.[36]
이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만 국가가 연주되었다. 조직위원회(FIFA와 FA)는 영국이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월드컵에 참가함으로써 대한민국과의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예선 경기에서는 국가 연주를 하지 않았다. 결승전 몇 달 전 외무부의 메모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선수들에게 비자를 거부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명시했다.[14]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은 흑백으로 방송된 마지막 경기였다.[37]
9. 우승국
10. 득점 선수
1966년 FIFA 월드컵에서는 총 47명의 선수가 89골을 넣었다.[39] 이 중 2골은 자책골이었다.[39] 에우제비우(포르투갈)는 9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고,[39] 헬무트 할러(서독)가 6골로 그 뒤를 이었다.[39]
4골을 기록한 선수는 제프 허스트(잉글랜드), 프란츠 베켄바워(서독), 페렌츠 베네(헝가리), 발레리 포르쿠얀(소련)이다.
3골을 기록한 선수는 루이스 아르티메(아르헨티나), 보비 찰턴(잉글랜드), 로저 헌트(잉글랜드), 조제 아우구스투(포르투갈), 조제 토흐스(포르투갈), 에두아르드 말로페예프(소련)이다.
2골을 기록한 선수는 루벤 마르코스(칠레), 우베 젤러(서독), 메쇠이 칼만(헝가리), 박승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고리 치슬렌코(소련)이다.
1골을 기록한 선수는 에르민도 오네가(아르헨티나), 가린샤, 펠레, 힐두, 토스탕(이상 브라질), 게오르기 아스파루호프(불가리아), 마틴 피터스(잉글랜드), 엑토르 드 부르고잉, 제라르 오세르(이상 프랑스), 로타어 에메리히, 지크프리트 헬트, 볼프강 베버(이상 서독), 야노슈 파르카스(헝가리), 파올로 바리손, 산드로 마촐라(이상 이탈리아), 엔리케 보르하(멕시코), 리동운, 박두익, 양승국(이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안토니오 시모네스(포르투갈), 아나톨리 바니솁스키(소련), 아만시오, 조세프 마리아 푸스테, 피리, 마누엘 산치스(이상 스페인), 르네피에르 쿠엔틴(스위스), 훌리오 세자르 코르테스, 페드로 로차(이상 우루과이)이다.
자책골은 이반 다비도프(불가리아, 헝가리전), 이반 부트소프(불가리아, 포르투갈전)가 기록했다.
순위 | 선수명 | 국적 | 득점수 |
---|---|---|---|
1 | 에우제비우 | 포르투갈 | 9 |
2 | 헬무트 할러 | 서독 | 6 |
3 | 제프 허스트 | 잉글랜드 | 4 |
프란츠 베켄바워 | 서독 | ||
베네 펠렌츠 | 헝가리 | ||
발레리 파르크야얀 | 소련 | ||
7 | 보비 찰턴 | 잉글랜드 | 3 |
로저 헌트 | 잉글랜드 | ||
루이스 아르티메 | 아르헨티나 | ||
에두아르도 말로페예프 | 소련 | ||
조제 아우구스토 | 포르투갈 | ||
조제 토레스 | 포르투갈 |
11. 최종 순위
1966년 FIFA 월드컵의 최종 순위는 다음과 같다.[41][42]
순위 | 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차 | 승점 |
---|---|---|---|---|---|---|---|---|---|
1 | 잉글랜드 | 6 | 5 | 1 | 0 | 11 | 3 | +8 | 11 |
2 | 서독 | 6 | 4 | 1 | 1 | 15 | 6 | +9 | 9 |
3 | 포르투갈 | 6 | 5 | 0 | 1 | 17 | 8 | +9 | 10 |
4 | 소련 | 6 | 4 | 0 | 2 | 10 | 6 | +4 | 8 |
5 | 아르헨티나 | 4 | 2 | 1 | 1 | 4 | 2 | +2 | 5 |
6 | 헝가리 | 4 | 2 | 0 | 2 | 8 | 7 | +1 | 4 |
7 | 우루과이 | 4 | 1 | 2 | 1 | 2 | 5 | -3 | 4 |
8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4 | 1 | 1 | 2 | 5 | 9 | -4 | 3 |
9 | 이탈리아 | 3 | 1 | 0 | 2 | 2 | 2 | 0 | 2 |
10 | 스페인 | 3 | 1 | 0 | 2 | 4 | 5 | -1 | 2 |
11 | 브라질 | 3 | 1 | 0 | 2 | 4 | 6 | -2 | 2 |
12 | 멕시코 | 3 | 0 | 2 | 1 | 1 | 3 | -2 | 2 |
13 | 칠레 | 3 | 0 | 1 | 2 | 2 | 5 | -3 | 1 |
13 | 프랑스 | 3 | 0 | 1 | 2 | 2 | 5 | -3 | 1 |
15 | 불가리아 | 3 | 0 | 0 | 3 | 1 | 8 | -7 | 0 |
16 | 스위스 | 3 | 0 | 0 | 3 | 1 | 9 | -8 | 0 |
4강 진출팀은 결승전 및 3·4위전 결과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었다. 8강 이하 단계에서 탈락한 팀은 승점, 골득실을 비교하여 순위를 결정했다. 8강 탈락 팀은 최고 5위에서 최저 8위, 1라운드 탈락 팀은 최고 9위에서 최저 16위로 결정되었다.
알프 램지 감독이 이끈 잉글랜드는 결승전에서 제프 허스트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서독을 4-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41][42] 보비 찰튼은 준결승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2골을 기록하며 잉글랜드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서독의 프란츠 베켄바워는 이 대회에서 4골을 넣으며 맹활약했고,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포르투갈의 우제비오는 9골로 대회 득점왕을 차지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탈리아를 1-0으로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8강에 진출, 아시아 국가 최초로 월드컵 8강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48][49]
이 대회부터 FIFA는 도핑 검사를 도입했지만, 위반자는 없었다.[45]
12. 오심 및 논란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나온 오심들은 여러 가지 이슈를 만들어냈고, 해외에서는 편파 판정 논란도 있었으며, 옐로카드와 레드카드 제도 도입에 큰 영향을 미쳤다.[54]
조별리그 잉글랜드vs프랑스 경기에서 바비 찰튼의 정당한 골이 오프사이드로 처리되는 오심이 있었다.[54]
8강전에서는 홈팀 잉글랜드의 상대팀이었던 아르헨티나의 주장 안토니오 라틴이 경기 35분만에 주심 루돌프 크라이틀라인에게 파울 선언에 대해 항의하다가 '언어 폭력'을 했다는 오해를 사서 퇴장 명령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는 주심과 선수가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55]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를 두고 잉글랜드가 심판을 매수했다며 분노를 표출했고[56], 안토니오 라틴은 아직까지도 이 사건에 대해 억울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57]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영국의 심판 켄 애스턴은 이러한 사태가 또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비언어적 수단을 이용하여 의사 전달을 확실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를 생각해 냈고, 차기 대회부터 카드 제도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결승전에서는 제프 허스트의 결승골이 터지며 잉글랜드가 4:2 승리를 거두었고, 잉글랜드가 우승했다. 이 골은 크로스 바를 맞고 골라인 위에 떨어졌는데, 주심 고트프리트 딘스트는 이를 정확히 보지 못해 부심 토피크 바흐라모프에게 골 여부를 물었다. 바흐라모프 부심은 이를 골로 판단하였고, 고트프리트 딘스트 주심은 골을 선언했다. 이 골은 결국 결승골이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확인해 본 결과 공이 골라인을 완전하게 넘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고, 월드컵 역사를 대표하는 오심으로 남게 되었다.[58] 44년 후,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 16강전에서 프랭크 램퍼드가 비슷한 슛을 날렸으나 골로 인정되지 않았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부터 골라인 테크놀로지가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13. 기타
13. 1. 도난 사건
1966년 FIFA 월드컵에서는 대회 개막 전 웨스트민스터에서 열린 우표 전시회에 전시되어 있던 쥘리메컵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50] 런던경찰청은 100명이 넘는 수사관을 투입하여 수색에 나섰고, 1만 5,000파운드의 현상금을 요구하는 남성이 나타났지만 장난으로 밝혀졌다.[51] 도난 1주일 후, 런던 남부 주택가에 사는 데이비드 콜베트가 피클스라는 이름의 자신의 개를 산책시키던 중, 피클스가 주차된 차 밑에서 신문지에 싸인 쥘리메컵을 발견했다.[51] 당시 IRA의 폭탄 테러가 빈번했기 때문에 데이비드는 꾸러미를 열어보는 것을 망설였지만, 결국 신문지를 풀어보니 쥘 리메컵이 들어 있었다.[51]피클스는 이 공로로 일약 스타가 되었지만, 이듬해인 1967년 불행한 사고로 6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51] 축구협회(FA)는 원본 트로피를 제때 찾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여 복제품을 제작 의뢰했는데, 이 복제품과 피클스의 목걸이는 현재 국립축구박물관(Manchester)에 전시되어 있다.[18]
13. 2. 대한민국-영국 관계
한국 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원했던 영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1966년 FIFA 월드컵 참가를 우려했다.[14][15] 영국은 북한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북한의 참가가 대한민국 및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것을 우려했다. FIFA는 어떤 국가라도 출전을 거부당하면 토너먼트가 변경될 것이라고 잉글랜드 축구협회에 통보했다.[14][15]영국 외무부의 제안에 따라 국가 연주와 선수들과의 만남은 개막전과 결승전에서만 이루어지게 되었다. 북한은 개막전에 출전할 예정이 아니었고, 결승전 진출 가능성도 낮게 여겨졌다. 북한의 조기 탈락을 예상하여 경기장 밖에 있는 깃발을 각 팀의 탈락 후 제거하자는 외무부의 제안은 교육과학부에 의해 거부되었다.[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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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not everyone remembers the 1966 World Cup as fondly as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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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start of the England-Argentina rival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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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 Germany's 1966 World Cup final 'ghost-goal' custodian Hans Tilkowski dies at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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