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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일본 프로 야구 재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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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3년 일본 프로 야구 재편 문제는 퍼시픽 리그의 인기 하락과 구단 운영의 어려움 속에서 논의된 구단 합병 시도와 관련된 사건이다. 퍼시픽 리그는 센트럴 리그에 비해 관중 수가 감소하고, 일부 구단이 매각되는 등 위기를 겪었다. 닛타쿠 홈 플라이어스 구단주 니시무라 아키요시는 롯데 오리온스와의 합병을 제안했지만, 센트럴 리그의 반대와 롯데 구단주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무산되었다. 결국 닛타쿠 홈은 닛폰햄에 매각되었고, 합병 논의는 종식되었다. 이 사건은 2004년 일본 프로 야구 재편 문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2. 당시 퍼시픽 리그의 상황

1970년대 초반, 퍼시픽 리그요미우리 자이언츠의 V9 달성, 검은 안개 사건 등으로 인해 센트럴 리그에 비해 인기가 크게 떨어졌다. 1972년 경기당 평균 관중 수는 센트럴 리그가 약 15,900명이었던 반면, 퍼시픽 리그는 약 6,400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퍼시픽 리그에서는 구단 매각 및 명칭 변경이 이루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구단 매각 및 명칭 변경 하위 섹션 참조)

2. 1. 구단 매각 및 명칭 변경

1972년 말, 니시테쓰 라이온스는 후쿠오카 야구 주식회사에 구단을 양도하여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스'로 구단명이 변경되었다.[3] 도에이 플라이어스닛타쿠홈에 양도되면서 '닛타쿠 홈 플라이어스'로 구단명이 변경되었다.[4]

한편, 롯데 오리온즈는 1971년 11월 다이에이의 도산으로 본거지였던 도쿄 스타디움이 1972년 말에 폐쇄되면서, 1973년부터는 본거지를 잠정적으로 미야기 구장에 두고[6] 각지를 전전하며 공식전을 주최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이 당시 롯데는 집시 롯데 참조).

3. 1973년 시즌

1973년 퍼시픽 리그는 인기 회복을 위해 전·후기 리그제를 도입하고, 분기별 우승팀이 다를 경우 5전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 제도를 신설했다.[3]

전기 리그는 난카이 호크스가 우승했는데, 개막 초반에는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스가 5연승으로 선두를 달렸으나 개막 4연패를 당한 롯데가 6월 중순까지 선두를 차지했다. 난카이는 전기 리그 종료 시점에서 롯데에 1.5경기 차로 2위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마지막 3연전에서 전승하며 순위를 역전시켜 전기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전기 리그는 혼전 속에 경기당 약 14,600명의 관중을 동원했다.

그러나 후기 리그는 한큐 브레이브스의 독주로 인해 경기당 관중 수가 약 8,100명으로 감소했다. 연간 통산으로는 1경기당 1만 명 이상을 모았지만, 센트럴 리그에서 엄청난 혼전이 펼쳐지면서 ‘컵 속의 작은 폭풍’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난카이가 우승했지만, 평균 입장객 수는 3만 명이 되지 않았다. 난카이는 일본 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1승 4패로 패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결국 1973년 퍼시픽 리그는 센트럴 리그보다 불우한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3]

4. 합병 계획

닛타쿠 홈 플라이어스 구단주 니시무라 아키요시는 퍼시픽 리그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 롯데 오리온즈와의 합병 및 단일 리그 전환을 제안했다. 닛타쿠는 7색 유니폼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전·후기 통산 5위로 침체되었다. 롯데 구단주 신격호(시게미쓰 다케오)는 경영에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였고, 간토 권에서 정상적인 경기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양 구단의 합병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한편, 간사이 지역 스포츠 신문들은 난카이 호크스와 긴테쓰 버펄로스의 합병이나 10구단 단일 리그 체제로의 전환, 또는 닛타쿠와 롯데의 합병이 임박했다고 보도하며 퍼시픽 리그의 위기를 부각시켰다.

1973년 10월 17일, 퍼시픽 리그 구단주 간담회에서 니시무라는 롯데와의 합병을 발표했다. 롯데 측 대리인은 이 사실을 듣지 못했다고 했으나, 신격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합병에 합의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신격호는 다른 구단주들로부터 합병 반대 의사를 듣고 입장을 선회했다. 센트럴 리그 회장 스즈키 류지는 단일 리그에 반대하며, 주니치 드래건스 구단주 고야마 타케오와 야쿠르트 스왈로스 구단주 마쓰조노 나오미를 만나 단일 리그 저지 방안을 마련했다.

5. 합병 결렬, 종식

1969년부터 1970년까지 2년간 롯데 오리온스의 구단주였던 나가타 마사이치는 1리그 8구단 체제에 반대하며, "일본 시리즈를 생각한다면 양대 리그 제도가 낫다. 모두 쿄진(요미우리 자이언츠)과 함께하게 된다."라고 주장했다.[1] 그는 "가위바위보로 이긴 자가 센트럴 리그로든 퍼시픽 리그로든 원하는 쪽을 택하자"는 제안까지 했다. 이러한 나가타 마사이치의 발언과 신격호(시게미쓰 다케오)의 합병 반대로 롯데와의 합병은 무산되었다.

결국 롯데는 협약상의 연고지를 잠정적으로 도쿄도에서 미야기현으로 이전했고, 닛타쿠는 닛폰햄에 구단을 매각하면서 합병 논의는 종식되었다.[1] 닛타쿠 홈 플라이어스는 닛폰햄에 매각되었는데, 매각 과정에서 고라쿠엔 스타디움 사장 단바 하루오가 매각 시 사전 통지 약정 위반을 주장하며 닛폰햄의 고라쿠엔 사용을 백지화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닛폰햄이 고라쿠엔을 본거지 구장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1]

1974년 시즌부터 퍼시픽 리그지명 타자 제도를 도입하는 등 센트럴 리그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6. 2004년 프로 야구 재편 문제

그리고 약 30년이 지난 2004년에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간의 프로 야구 재편 문제가 발발하였다.

참조

[1] 뉴스 日拓、日本ハムに身売り 球団社長を三原氏に要請か 朝日新聞 1973-11-10
[2] 뉴스 西村前日拓オーナー 球団譲渡劇を語る 毎日新聞 1973-11-19
[3] 뉴스인용 日(일) 프로야구(야구) 구단양도교섭(교섭) 파산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72-10-24
[4] 뉴스인용 日(일) 프로야구(야구) 구단양도교섭(교섭) 파산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72-10-24
[5] 뉴스인용 中村長芳オーナーが目指すライオンズ改革... 週べ回顧1972年編 https://column.sp.ba[...] 슈칸 베이스볼 2021-05-13
[6] 뉴스인용 オリオンズからマリーンズへ。「ジプシーロッテ」フランチャイズ変遷の歴史と東京スタジアム https://news.yahoo.c[...] 야후 재팬 2018-12-06
[7] 뉴스인용 ローダイ・オリオンズの勝算はいかに/週べ回顧1972年編 https://column.sp.ba[...] 슈칸 베이스볼 2020-09-16
[8] 뉴스인용 中村長芳オーナーが目指すライオンズ改革/週べ回顧1972年編 https://column.sp.ba[...] 슈칸 베이스볼 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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