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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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2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는 2012년 9월에 치러졌으며, 2009년 총재로 선출된 다니가키 사다카즈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실시되었다. 아베 신조, 이시바 시게루, 이시하라 노부테루, 마치무라 노부타카, 하야시 요시마사 등 5명이 출마하여 경쟁이 치열했으며, 이시바 시게루가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수를 넘지 못해 아베 신조와 결선 투표를 치르게 되었다. 결선 투표에서 아베 신조가 승리하여 총재로 당선되었다. 선거 과정에서 후보들의 건강 문제, 네거티브 캠페인, 특정 음식 섭취 논란 등 다양한 사건과 논란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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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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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정보 | |
선거 이름 | 2012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
국가 | 일본 |
선거 유형 | 총재 선거 |
이전 선거 | 2009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
이전 선거 연도 | 2009년 |
선거일 | 2012년 9월 26일 |
차기 선거 | 2015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
차기 선거 연도 | 2015년 |
선거 제도 | 총재 공선 규정에 따른 총재 선거 |
공시일 | 2012년 9월 14일 |
유권자 수 | 중의원 의원: 116표 참의원 의원: 82표 도도부현: 300표 총합: 498표 |
후보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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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1 - 국회의원 투표 | 54 |
후보 1 - 당원 투표 (환산) | 87 |
후보 1 - 합계 (1차 투표) | 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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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2 - 국회의원 투표 | 34 |
후보 2 - 당원 투표 (환산) | 165 |
후보 2 - 합계 (1차 투표) | 1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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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3 - 국회의원 투표 | 58 |
후보 3 - 당원 투표 (환산) | 38 |
후보 3 - 합계 (1차 투표) | 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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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4 - 국회의원 투표 | 27 |
후보 4 - 당원 투표 (환산) | 7 |
후보 4 - 합계 (1차 투표) |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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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5 - 국회의원 투표 | 24 |
후보 5 - 당원 투표 (환산) | 3 |
후보 5 - 합계 (1차 투표) | 27 |
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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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 | |
직책 | 총재 |
선거 전 총재 | 다니가키 사다카즈 |
선거 후 총재 | 아베 신조 |
2. 선거 배경
다니가키 사다카즈 총재의 임기 만료(2012년 9월)가 다가옴에 따라 후임 총재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2012년 8월 8일, 다니가키 자민당 총재, 노다 요시히코 총리 (민주당 대표),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는 3당 당수 회담을 열고 사회보장 법안 및 소비세 인상 법안의 국회 처리를 조건으로 "관련 법안 통과 후 조만간 국민의 신임을 묻는다"는 중의원 해산에 합의했다.[1] 이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 시기를 둘러싸고 자민당 내 파벌 간 갈등이 벌어졌다.[2] 민주당 대표 선거와의 일정 중복을 피하기 위해,[3] 자민당 총재 선거는 본래 일정보다 조금 앞당겨 9월 14일 고시, 26일 투개표로 결정되었다.[3][4]
당초 다니가키 총재는 재선을 노렸으나, 이시하라 노부테루 간사장과의 단일화 실패 및 당내 중진들의 이시하라 지지로 9월 10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자민당 내 유력 파벌인 세이와 정책연구회에서는 아베 신조와 마치무라 노부타카가 모두 출마하여 파벌이 분열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편, 파벌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이시바 시게루가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3. 후보자
일심으로 한 길을 관철하여 올바른 국가 건설 2회 (2008년) 하야시 요시마사 고가 파벌 참의원 의원 (3기・야마구치)
당 정무조사회 회장 대리침착한 정치로 일본 경제를 재생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