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이스라엘 의회 선거는 2009년 총선 이후 구성된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의 정책과 탈법 논란으로 인한 조기 총선 결정으로 치러졌다. 선거에는 리쿠드 이스라엘 베이테이누, 예쉬 아티드, 노동당, 유대인의 집, 샤스 등 주요 정당들이 참여했으며, 이란 핵 프로그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프로세스, 사회 정의 시위 등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선거 결과, 리쿠드 이스라엘 베이테이누가 31석으로 원내 1당이 되었고, 예쉬 아티드가 19석으로 2당을 차지했다. 선거 후 네타냐후는 예쉬 아티드, 유대인의 집, 하트누아 등과 연립 정부 구성을 시도하여, 2013년 3월 18일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이스라엘의 선거 - 2015년 이스라엘 의회 선거 2015년 이스라엘 의회 선거는 연립 정부 내 갈등으로 조기 총선으로 치러져 베냐민 네타냐후의 리쿠드가 다수당이 되었으며, 이스라엘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여 여성 및 아랍계 의원 수가 증가하고 비례대표제로 진행되었다.
2013년 선거 - 2013년 파라과이 대통령 선거 2013년 파라과이 대통령 선거는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 탄핵 후 실시된 선거로, 콜로라도당의 오라시오 카르테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콜로라도당이 상원과 하원 의원 선거에서도 압승했으며, 페르난도 루고 전 대통령이 상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2013년 선거 - 2013년 이탈리아 총선 2013년 이탈리아 총선은 유럽 재정 위기와 긴축 정책에 대한 반발 속에서 치러졌으며, 하원에서는 중도 좌파 연합이, 상원에서는 중도 우파 연합과 오성운동이 선전했으나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여 엔리코 렛타를 총리로 하는 대연정이 출범했다.
2013년 1월 - 제19회 미국 배우 조합상 제19회 미국 배우 조합상 영화 부문에서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 제니퍼 로렌스 등이, TV 부문에서는 케빈 코스트너, 줄리앤 무어 등이 수상했으며, 앙상블 연기상은 영화 《아르고》와 드라마 《다운튼 애비》 등이, 공로상은 딕 밴 다이크가 수상했다.
2013년 1월 - 제70회 골든 글로브상 2013년 1월 13일에 열린 제70회 골든 글로브상은 영화 《아르고》와 《레 미제라블》, TV 프로그램 《홈랜드》와 《걸스》를 비롯한 다양한 부문에서 우수작을 선정하여 시상했다.
2009년 이스라엘 총선 이후, 야당 대표 베냐민 네타냐후는 우익 정당인 리쿠드, 이스라엘 우리 집, 초정통파인 샤스와 연합 토라 유대교, 종교 시오니즘의 유대인의 집, 그리고 중도좌파인 노동당을 포함하는 정부를 구성했다.[3] 연립 정당들은 국가 안보, 평화 프로세스, 정교 분리 문제에 대해 이견이 있었지만, 정부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3] 노동당의 분열로 에후드 바라크를 포함한 5명의 당원이 탈당하여 독립당을 창당하면서 정부의 안정성은 증가했다.[3] 노동당은 연립에서 탈퇴했지만, 독립당은 연립에 남아 정부가 크네세트 120석 중 66석의 과반수를 유지했다.[3]
네타냐후 총리는 임기 초 바르-일란 대학교에서의 정치 연설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팔레스타인 국가의 구상을 지지했고,[4]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 정착촌 건설 동결에 합의했다.[5] 그의 정부는 미국과 이스라엘 간의 외교 관계 악화,[6] 2010년 가자 지구 선박 공격,[7] 카르멜 산 화재와 정부 과실,[8] 이란에 대한 선제 공격 논쟁 등 여러 사건들을 극복했다.
2011년 사회 정의 시위 이후 네타냐후와 정부에 대한 인기는 하락했지만,[9]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을 위한 외교 캠페인에 이은 2011년 9월 제66차 유엔 총회 일반 토론에서의 네타냐후 연설,[10] 국경 횡단 공격 이후 빠르게 회복되었다.[11] 길라드 샬리트 포로 교환으로 길라드 샬리트가 석방된 후 네타냐후의 인기는 더욱 상승했다.[11]
2. 1. 2009년 총선과 네타냐후 정부 구성
2. 2. 네타냐후 정부의 정책과 사건
2. 3. 2011년 사회 정의 시위와 지지율 변화
2. 4. 탈 법 논란과 조기 총선 결정
하레디가 징병을 무기한 연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탈 법을 이스라엘 베이테이누와 카디마가 개정하려 했으나,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14] 독립당도 이를 지지했지만, 셰스가 입법부 장관 위원회를 통과하는 신속 처리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여 실패했다. 이는 재논의가 필요하며 통과될 수 없음을 의미했다.[13] 국회 해산은 8월 1일에 만료될 예정인 법을 6~8개월 더 자동 연장하게 했다. 네타냐후는 새로운 법이 "IDF 또는 민간 복무의 부담을 더 평등하고 공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베이테이누는 제안된 모든 사람을 위한 평등한 징병 법안에 대해 투표할 수 있도록 해산을 연기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카디마 의장 샤울 모파즈는 리쿠드당 정치 컨벤션 밖의 "얼간이 캠프"(מאהל הפראיירים) 시위자들에게 이것이 탈 법이라는 "도덕적 오점을 제거할 역사적인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 단계에서 입법부를 해산하려는 움직임이 네타냐후, 야치모비치, 그리고 하레디 정당들의 "악취 나는 정치적 속임수"라고 말했다. 카디마의 달리아 이치크도 선거 전에 새로운 법을 제정하라는 요청을 반복했다.[14]
5월 7일, 국회는 국회 해산 및 9월 4일에 선거를 실시하는 일련의 법안에 대해 투표했으며, 이 법안은 통과되었다;[15] 그러나 5월 8일 이른 아침, 제18대 국회의 임기를 종료할 법안 승인을 앞두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카디마 대표 샤울 모파즈와 현재 정부에 합류하는 데 합의하여 9월에 치르기로 했던 조기 선거를 취소했다.[16]
7월 17일, 정당들이 이 문제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자 카디마는 연립 정부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17] 그러나 연립 정부는 카디마가 없어도 여전히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스라엘 베이테이누와 같은 민족주의 단체와 셰스와 같은 하레디 단체로 분열된 축소된 연립 정부는 법에 규정된 날짜에 2013년 예산을 통과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예산을 통과시킬 수 없는 이러한 상황은 조기 선거가 치러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되살렸고, 이는 네타냐후 총리가 10월 9일 공관에서 한 특별 연설에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18]
10월 9일, 네타냐후는 다음 회계 연도의 예산을 12월 31일 마감일까지 통과시키지 못한 것에 대응하여 텔레비전 연설을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스라엘의 더 나은 이익을 위해 지금 가능한 한 빨리 선거를 치르는 것이 좋다고 결정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1년 동안 지속되고 이스라엘 경제에 피해를 주는 캠페인보다 3개월의 짧은 캠페인을 치르는 것이 더 낫습니다."[35]
2012년 10월 25일, 리쿠드의 의장이자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와 이스라엘 베이테이누의 의장인 아비그도르 리버만은 2013년 총선에서 이스라엘 베이테이누와 리쿠드가 공동 명부를 제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36] 네타냐후는 "힘의 결합은 우리에게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방어할 힘을 주고,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이끌 힘을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고,[36] 리버만은 "우리가 직면한 도전을 고려할 때, 우리는 국가적 차원의 책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진정한 대안을 제공하고, 시민들이 지도력과 정부를 안정시킬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36]
2011년 12월 초,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리쿠드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초기 예비 선거 개최를 발표했다.[58] 2012년 1월 31일에 실시된 리쿠드 당내 경선에서 네타냐후는 모셰 페이글린을 누르고 승리하였다.[62]
2012년 10월 25일, 리쿠드 의장이자 총리인 벤야민 네타냐후와 이스라엘 베이테이누 의장이자 외무부 장관인 아비그도르 리버만은 다가오는 선거를 위해 두 정당을 통합하여 단일 블록으로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64] 새로운 정당은 리쿠드 이스라엘 베이테이누로 불릴 것이며,[65] 네타냐후가 명단 1위, 리버만이 2위가 될 것이다.[66][67]
리쿠드 예비 선거 결과, 베니 베긴, 미카엘 에이탄, 단 메리도르, 아비 디히터 등 주요 리쿠드 당원들이 명단 상위권에서 제외되었다. 반면, 차키 하네그비와 모셰 페이글린 등이 새롭게 명단 상위권에 포함되었다.
2012년 12월 14일, 아비그도르 리버만은 사기 혐의로 기소되어 이스라엘의 외무부 장관과 이스라엘 부총리직에서 사임했다.[68]
'''예쉬 아티드'''
2012년 1월, TV 방송인 야이르 라피드는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 언론인 경력을 끝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스라엘 언론인이자 텔레비전 방송인 야이르 라피드는 언론 경력을 끝내고 이스라엘 정치에 입문할 가능성에 대한 추측이 제기되었으나, 처음에는 이를 일축했다.[70][71]
야이르 라피드는 언론인으로서 활동하는 것과 그의 정치적 포부 사이의 윤리적 갈등으로 인해, 채널 2의 CEO에게 정치에 입문하기 6개월 전에 사임할 것이라고 알렸다.[72]야이르 라피드는 2012년 1월 초에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 언론 경력을 끝낼 것이고, 새로운 정당을 이끌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74][75]야이르 라피드는 결국 자신의 정당 이름을 ''예쉬 아티드''로 결정했다.[76] 그의 아버지 (토미 라피드)의 세속주의 운동 정당 시누이는 선거 기호 '예쉬'를 사용했다.[77]
'''노동당'''
2011년 초, 노동당 대표 에후드 바라크는 연립 정부 내 노동당의 입장에 대해 당내 반대에 직면했다. 2011년 1월 17일, 바라크는 평화 프로세스 관련 연립 정부 정책 지지에 대한 환멸로 인해 다른 크네세트 의원 4명과 함께 독립 창당을 위해 노동당을 탈당했다.[78] 이로 인해 모든 노동당 정부 장관들이 사임했고, 당은 한동안 대표가 없는 상태로 대중과 언론에 쇠퇴하는 정당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라크의 탈당은 당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79]
2011년 9월 12일 1차 투표에서 셸리 야키모비치가 1위를 차지했고, 아미르 페레츠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이츠하크 헤르조그와 암람 미츠나는 각각 3, 4위를 차지했다.[80] 어떤 후보도 40%의 문턱을 넘지 못해 2011년 9월 21일에 2차 투표가 치러졌고, 야키모비치가 페레츠를 약 10% 차이로 이기고 대표로 선출되었다.[81][82]
야키모비치의 승리는 국가 안보 문제보다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당의 강조점을 두었고, 2011년 사회 시위 이후 당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많은 여론 조사에서 당이 20석 가까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어, 카디마를 제치고 리쿠드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정당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83] 그러나 야이르 라피드의 정치 입문 선언 후, 야키모비치의 인기와 당의 인기는 다소 완화되었다.[84] 2012년 1월, 노암 샬리트 (길라드 샬리트의 아버지)와 국제 범죄 수사대의 전 대표 모셰 미즈라히가 당에 합류할 것이라고 발표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85][86]
'''유대인의 집'''
유대인의 집 당내 경선 승리자 – 나프탈리 베넷.
유대인의 집과 국민연합은 2013년 선거에서 공동 명부로 출마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했다.[87] 양측은 원칙적으로 합의에 도달했으나,[88]유대인의 집은 공개 예비 선거를 지지한 반면, 국민 연합은 이를 반대하여 후보 선정 방식에 이견을 보였다.[89][90]
2012년 9월, 야아코브 카츠는 나프탈리 베넷과 공동 명부 구성에 합의했다. 미카엘 벤-아리는 아르예 엘다드와 함께 오츠마 레이스라엘이라는 친이스라엘 영토 연합으로 출마한다고 발표했다.[91] 트쿠마는 유대인의 집과 함께 출마하기로 결정했으며, 나프탈리 베넷이 연합 의장을, 우리 아리엘이 명부 2순위를 맡고, 선거 후 단일 정당으로 합병하기로 합의했다.[92] 우리 뱅크와 그의 몰레데트 정당도 합류했다.[93]
2012년 11월 6일 치러진 당 의장 선거에서 나프탈리 베넷이 67.1%의 득표율로 당 의장에 선출되었다. 32.7%의 득표율로 2위를 차지한 제불룬 오르레브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94]유대인의 집은 종교적 시오니즘을 표방하며, 정착촌 건설을 지지한다.
'''샤스'''
샤스 당 대표 엘리 이샤이
세파르딤계 종교 정당인 샤스는 엘리 이샤이, 아리에 데리, 아리엘 아티아스의 공동 지도 체제로 운영된다.[97] 아리에 데리가 정계에 복귀하면서 하레디 유대교 대중과 비하레디 유대교 대중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고, 이는 샤스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95] 이에 엘리 이샤이는 아리에 데리에게 당 합류를 제안했고, 오바디아 요세프는 데리에게 당 명단 3위를 제안했지만, 데리는 처음에는 이를 거부했다.[96] 이후 타협을 통해 샤스는 공식적인 의장 없이 데리, 이샤이, 아티아스가 공동으로 이끄는 체제가 되었다.[97]
선거 운동 방향에 대한 논쟁도 있었는데, 이샤이는 아프리카에서 이스라엘로의 불법 이민 문제에, 데리는 사회 정의 문제에 집중하길 원했다.[98][99]
'''연합 토라 유대교'''
유대 토라 연합 의장 - 야코브 리츠만
유대 토라 연합은 하레디 정당인 아구다트 이스라엘과 리투아니아계 데겔 하토라의 연합이다.
2012년, 데겔 하토라 내에서 랍비 엘라자르 샤흐의 후계자로 여기고 랍비 슈무엘 아우어바흐와 관련된 단체가 당에 의해 대표되지 않는다고 느껴 리투아니아계 하레디 대중들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났다. 조기 선거가 치러질 것이 발표된 후, 아우어바흐 랍비와 관련된 사람들의 그룹은 네체흐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정당을 등록했다. 이 그룹과 관련된 메나헴 카멜이 유대 토라 연합 명단에서 세 번째 자리를 얻지 못하자, "네체흐"가 2013년 이스라엘 의회 선거에 출마할 것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카디마당 대표 경선에서 패배하고 크네세트를 사임한 이후, 치피 리브니가 새로운 정당을 이끌고 정치에 복귀할 가능성에 대한 많은 보도가 이스라엘 언론에 퍼졌다. 11월 27일, "하트누아 - 치피 리브니가 이끄는"이라는 제목의 새 정당의 로고가 처음 공개되면서 이러한 보도는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100] 같은 날 열린 기자 회견에서 리브니는 자신이 이끌고 다가오는 선거에 참여할 하트누아 당의 창당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하트누아"(התנועה)는 히브리어로 "운동"을 의미한다.[100]
하트누아 당이 창당되자마자 카디마 소속 국회의원 7명(메이르 시트리트, 요엘 하손, 슐로모 몰라, 로베르트 티비에프, 마잘리 와하비, 라헬 아다토, 오리트 즈와레츠)이 카디마 당을 탈당하고 리브니의 정당에 합류한다고 발표했다. 12월 1일, 전 노동당 의장 암람 미츠나가 리브니의 정당에 합류했다고 발표되었다.[101]
'''메레츠'''
메레츠 지도부 선거의 승자 - 제하바 갈-온.
메레츠는 좌파 정당[107]으로, 사회 민주주의와 세속주의를 표방한다.[107] 2009년 입법 선거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후,[102] 일부 당원들은 하임 오론 당 의장의 사임을 요구했고, 하임 오론은 크네세트를 떠나[103] 당 의장직을 사임했다.[104]
2012년 2월 7일에 열린 당 의장직 예비 선거에서[105] 제하바 갈-온이 60.6%의 득표율로 당 의장으로 선출되었다.[106] 일란 길론은 36.6%로 2위를 차지했다.[106]
2012년 11월 11일, 다가오는 선거를 위한 정당 명부 작성을 위한 예비 선거가 치러졌다.[106] 정당 명단에는 제하바 갈-온, 일란 길론, 니찬 호로위츠, 미칼 로진, 이사위 프레즈, 타마르 잔드베르크, 아브샬롬 빌란, 모시 라즈 등이 포함되었다.[106]
연합 아랍 목록-타알/תע"לhe은 2개의 아랍 정당인 연합 아랍 목록(라암)과 타알/תע"לhe이 2006년 이스라엘 총선 이전에 결성한 정치 연합이다. 정당 명단은 이브라힘 사르수르 (당 의장), 아흐마드 티비, 마수드 그나임, 탈레브 아부 아라르, 탈레브 엘 사나, 무하마드 크나안 순이다.
하다시 대표 – 모하마드 바라케.
하다쉬/חד"שhe는 2012년 11월 10일에 예비 선거를 치러 정당 명단을 결정했다. 정당 명단은 모하마드 바라케(정당 대표), 하나 스웨이드, 도브 케닌, 아푸 아그바리아, 나빌라 에스파니올리, 아이만 오데 순이다. 당 대의원들은 여성 대표를 위해 명단에 특정 수의 자리를 예약하자는 제안을 거부했다(79%가 반대).
발라드 의장 – 자말 자할카.
발라드/التجمع الوطني الديمقراطيar의 정당 명단은 자말 자할카 (당 의장), 하닌 조아비, 바셀 가타스, 주마 아즈바르그, 아베드 푸크라 순이다. 2012년 12월, 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와 대법원 판사단은 하닌 조아비와 발라드 정당의 2013년 선거 자격 박탈 여부를 논의했다.[108] 오피르 아쿠니스(리쿠드) 국회의원은 조아비가 국회에서 활동하는 동안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훼손하고 정부, 기관, IDF 군인에 대해 공개적으로 선동했다고 주장하며 자격 박탈을 요청했다.[108] 조아비는 요청자들을 파시스트라고 부르며 "자유로운 선거를 국민들이 갖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에게, 나는 많은 표적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109] 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는 19대 9로 조아비의 자격을 박탈했으나,[110] 이스라엘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이 결정을 뒤집었다.[111]
'''기타 정당'''
샤울 모파즈가 이끄는 중도 성향의 카디마는 2012년 3월 27일에 열린 2012년 카디마 대표 선거에서 모파즈가 62.3%의 득표율로 치피 리브니를 누르고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16] 리브니는 이후 이스라엘 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크네세트 의원직을 사퇴했다.[117]
아리에 엘다드와 미카엘 벤-아리가 이끄는 극우 성향의 오츠마 레이스라엘은 2012년 11월 13일에 국민 연합 연합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창당되었다.[118]
하임 암살렘이 이끄는 암 샬렘은 샤스에서 탈당한 후 창당되었으며,[119] 유대교 개종, 하레디의 노동 시장 통합 등 주요 문제에 대한 암살렘의 입장과 샤스 당과의 갈등이 창당 배경이 되었다.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군소 정당들이 2013년 이스라엘 의회 선거에 참여했다.
알레 야로크: 신자유주의 운동 구성원들과 합병하여 "알레 야로크-자유주의 명단"이라는 이름으로 출마했으나 원내 진출에는 실패했다.
다암 노동자당: 2011년 이스라엘 사회 정의 시위에 참여한 좌파 정당으로, 이스라엘 아랍 언론인 아스마 아그바리에가 당 대표를 맡았다.
도르 - 새로운 연금 수령자 정당: 길 정당의 후신으로, 라피 에이탄이 대표를 맡았다.[120]
재정 정당: 대니 골드스타인과 베니 골드스타인이 창당했으며, 모든 시민을 위한 더 나은 재정 경제와 이스라엘과 아랍 및 팔레스타인 이웃 간의 평화를 목표로 했다.[121]
에레츠 하다샤: 영화 감독 라니 블레어와 변호사 엘다드 야니브가 설립한 중도 좌파 정당이다.
기타 정당: 아힘 아나흐누("우리는 형제"), 브리트 올람 레게울라트 이스라엘("이스라엘 구원을 위한 계약"), 하임 베카보드("존엄한 삶"), 하티크바 레시누이("변화에 대한 희망"), 하이스라엘림, 코아 레하스피아, 오르, 진보 자유민주, 모레셰트 아보트, 아티드 에하드, 체데크 헤브라티, 이스라엘의 녹색과 젊은이들을 위한 녹색 미래 등이 있다.
3. 1. 리쿠드 이스라엘 베이테이누
2012년 10월 25일, 리쿠드의 의장이자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와 이스라엘 베이테이누의 의장인 아비그도르 리버만은 2013년 총선에서 이스라엘 베이테이누와 리쿠드가 공동 명부를 제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36] 네타냐후는 "힘의 결합은 우리에게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방어할 힘을 주고,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이끌 힘을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고,[36] 리버만은 "우리가 직면한 도전을 고려할 때, 우리는 국가적 차원의 책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진정한 대안을 제공하고, 시민들이 지도력과 정부를 안정시킬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36]
2011년 12월 초,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리쿠드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초기 예비 선거 개최를 발표했다.[58] 2012년 1월 31일에 실시된 리쿠드 당내 경선에서 네타냐후는 모셰 페이글린을 누르고 승리하였다.[62]
2012년 10월 25일, 리쿠드 의장이자 총리인 벤야민 네타냐후와 이스라엘 베이테이누 의장이자 외무부 장관인 아비그도르 리버만은 다가오는 선거를 위해 두 정당을 통합하여 단일 블록으로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64] 새로운 정당은 리쿠드 이스라엘 베이테이누로 불릴 것이며,[65] 네타냐후가 명단 1위, 리버만이 2위가 될 것이다.[66][67]
리쿠드 예비 선거 결과, 베니 베긴, 미카엘 에이탄, 단 메리도르, 아비 디히터 등 주요 리쿠드 당원들이 명단 상위권에서 제외되었다. 반면, 차키 하네그비와 모셰 페이글린 등이 새롭게 명단 상위권에 포함되었다.
2012년 12월 14일, 아비그도르 리버만은 사기 혐의로 기소되어 이스라엘의 외무부 장관과 이스라엘 부총리직에서 사임했다.[68]
3. 2. 예쉬 아티드
이스라엘 언론인이자 텔레비전 방송인 야이르 라피드는 언론 경력을 끝내고 이스라엘 정치에 입문할 가능성에 대한 추측이 제기되었으나, 처음에는 이를 일축했다.[70][71]
야이르 라피드는 언론인으로서 활동하는 것과 그의 정치적 포부 사이의 윤리적 갈등으로 인해, 채널 2의 CEO에게 정치에 입문하기 6개월 전에 사임할 것이라고 알렸다.[72]야이르 라피드는 2012년 1월 초에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 언론 경력을 끝낼 것이고, 새로운 정당을 이끌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74][75]야이르 라피드는 결국 자신의 정당 이름을 ''예쉬 아티드''로 결정했다.[76] 그의 아버지 (토미 라피드)의 세속주의 운동 정당 시누이는 선거 기호 '예쉬'를 사용했다.[77]
3. 3. 노동당
2011년 초, 노동당 대표 에후드 바라크는 연립 정부 내 노동당의 입장에 대해 당내 반대에 직면했다. 2011년 1월 17일, 바라크는 평화 프로세스 관련 연립 정부 정책 지지에 대한 환멸로 인해 다른 크네세트 의원 4명과 함께 독립 창당을 위해 노동당을 탈당했다.[78] 이로 인해 모든 노동당 정부 장관들이 사임했고, 당은 한동안 대표가 없는 상태로 대중과 언론에 쇠퇴하는 정당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라크의 탈당은 당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79]
2011년 9월 12일 1차 투표에서 셸리 야키모비치가 1위를 차지했고, 아미르 페레츠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이츠하크 헤르조그와 암람 미츠나는 각각 3, 4위를 차지했다.[80] 어떤 후보도 40%의 문턱을 넘지 못해 2011년 9월 21일에 2차 투표가 치러졌고, 야키모비치가 페레츠를 약 10% 차이로 이기고 대표로 선출되었다.[81][82]
야키모비치의 승리는 국가 안보 문제보다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당의 강조점을 두었고, 2011년 사회 시위 이후 당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많은 여론 조사에서 당이 20석 가까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어, 카디마를 제치고 리쿠드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정당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83] 그러나 야이르 라피드의 정치 입문 선언 후, 야키모비치의 인기와 당의 인기는 다소 완화되었다.[84] 2012년 1월, 노암 샬리트 (길라드 샬리트의 아버지)와 국제 범죄 수사대의 전 대표 모셰 미즈라히가 당에 합류할 것이라고 발표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85][86]
3. 4. 유대인의 집
유대인의 집과 국민연합은 2013년 선거에서 공동 명부로 출마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했다.[87] 양측은 원칙적으로 합의에 도달했으나,[88] 유대인의 집은 공개 예비 선거를 지지한 반면, 국민 연합은 이를 반대하여 후보 선정 방식에 이견을 보였다.[89][90]
2012년 9월, 야아코브 카츠는 나프탈리 베넷과 공동 명부 구성에 합의했다. 미카엘 벤-아리는 아르예 엘다드와 함께 오츠마 레이스라엘이라는 친이스라엘 영토 연합으로 출마한다고 발표했다.[91] 트쿠마는 유대인의 집과 함께 출마하기로 결정했으며, 나프탈리 베넷이 연합 의장을, 우리 아리엘이 명부 2순위를 맡고, 선거 후 단일 정당으로 합병하기로 합의했다.[92] 우리 뱅크와 그의 몰레데트 정당도 합류했다.[93]
2012년 11월 6일 치러진 당 의장 선거에서 나프탈리 베넷이 67.1%의 득표율로 당 의장에 선출되었다. 32.7%의 득표율로 2위를 차지한 제불룬 오르레브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94] 유대인의 집은 종교적 시오니즘을 표방하며, 정착촌 건설을 지지한다.
3. 5. 샤스
세파르딤계 종교 정당인 샤스는 엘리 이샤이, 아리에 데리, 아리엘 아티아스의 공동 지도 체제로 운영된다.[97] 아리에 데리가 정계에 복귀하면서 하레디 유대교 대중과 비하레디 유대교 대중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고, 이는 샤스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95] 이에 엘리 이샤이는 아리에 데리에게 당 합류를 제안했고, 오바디아 요세프는 데리에게 당 명단 3위를 제안했지만, 데리는 처음에는 이를 거부했다.[96] 이후 타협을 통해 샤스는 공식적인 의장 없이 데리, 이샤이, 아티아스가 공동으로 이끄는 체제가 되었다.[97]
선거 운동 방향에 대한 논쟁도 있었는데, 이샤이는 아프리카에서 이스라엘로의 불법 이민 문제에, 데리는 사회 정의 문제에 집중하길 원했다.[98][99]
3. 6. 연합 토라 유대교
유대 토라 연합은 하레디 정당인 아구다트 이스라엘과 리투아니아계 데겔 하토라의 연합이다.
2012년, 데겔 하토라 내에서 랍비 엘라자르 샤흐의 후계자로 여기고 랍비 슈무엘 아우어바흐와 관련된 단체가 당에 의해 대표되지 않는다고 느껴 리투아니아계 하레디 대중들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났다. 조기 선거가 치러질 것이 발표된 후, 아우어바흐 랍비와 관련된 사람들의 그룹은 네체흐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정당을 등록했다. 이 그룹과 관련된 메나헴 카멜이 유대 토라 연합 명단에서 세 번째 자리를 얻지 못하자, "네체흐"가 2013년 이스라엘 의회 선거에 출마할 것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3. 7. 하트누아
카디마당 대표 경선에서 패배하고 크네세트를 사임한 이후, 치피 리브니가 새로운 정당을 이끌고 정치에 복귀할 가능성에 대한 많은 보도가 이스라엘 언론에 퍼졌다. 11월 27일, "하트누아 - 치피 리브니가 이끄는"이라는 제목의 새 정당의 로고가 처음 공개되면서 이러한 보도는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100] 같은 날 열린 기자 회견에서 리브니는 자신이 이끌고 다가오는 선거에 참여할 하트누아 당의 창당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하트누아"(התנועה)는 히브리어로 "운동"을 의미한다.[100]
하트누아 당이 창당되자마자 카디마 소속 국회의원 7명(메이르 시트리트, 요엘 하손, 슐로모 몰라, 로베르트 티비에프, 마잘리 와하비, 라헬 아다토, 오리트 즈와레츠)이 카디마 당을 탈당하고 리브니의 정당에 합류한다고 발표했다. 12월 1일, 전 노동당 의장 암람 미츠나가 리브니의 정당에 합류했다고 발표되었다.[101]
3. 8. 메레츠
메레츠는 좌파 정당[107]으로, 사회 민주주의와 세속주의를 표방한다.[107] 2009년 입법 선거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후,[102] 일부 당원들은 하임 오론 당 의장의 사임을 요구했고, 하임 오론은 크네세트를 떠나[103] 당 의장직을 사임했다.[104]
2012년 2월 7일에 열린 당 의장직 예비 선거에서[105] 제하바 갈-온이 60.6%의 득표율로 당 의장으로 선출되었다.[106] 일란 길론은 36.6%로 2위를 차지했다.[106]
2012년 11월 11일, 다가오는 선거를 위한 정당 명부 작성을 위한 예비 선거가 치러졌다.[106] 정당 명단에는 제하바 갈-온, 일란 길론, 니찬 호로위츠, 미칼 로진, 이사위 프레즈, 타마르 잔드베르크, 아브샬롬 빌란, 모시 라즈 등이 포함되었다.[106]
''하레츠''는 2013년 선거에서 메레츠를 지지했다.[107]
3. 9. 아랍계 정당
연합 아랍 목록-타알/תע"לhe은 2개의 아랍 정당인 연합 아랍 목록(라암)과 타알/תע"לhe이 2006년 이스라엘 총선 이전에 결성한 정치 연합이다. 정당 명단은 이브라힘 사르수르 (당 의장), 아흐마드 티비, 마수드 그나임, 탈레브 아부 아라르, 탈레브 엘 사나, 무하마드 크나안 순이다.
하다쉬/חד"שhe는 2012년 11월 10일에 예비 선거를 치러 정당 명단을 결정했다. 정당 명단은 모하마드 바라케(정당 대표), 하나 스웨이드, 도브 케닌, 아푸 아그바리아, 나빌라 에스파니올리, 아이만 오데 순이다. 당 대의원들은 여성 대표를 위해 명단에 특정 수의 자리를 예약하자는 제안을 거부했다(79%가 반대).
발라드/التجمع الوطني الديمقراطيar의 정당 명단은 자말 자할카 (당 의장), 하닌 조아비, 바셀 가타스, 주마 아즈바르그, 아베드 푸크라 순이다. 2012년 12월, 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와 대법원 판사단은 하닌 조아비와 발라드 정당의 2013년 선거 자격 박탈 여부를 논의했다.[108] 오피르 아쿠니스(리쿠드) 국회의원은 조아비가 국회에서 활동하는 동안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훼손하고 정부, 기관, IDF 군인에 대해 공개적으로 선동했다고 주장하며 자격 박탈을 요청했다.[108] 조아비는 요청자들을 파시스트라고 부르며 "자유로운 선거를 국민들이 갖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에게, 나는 많은 표적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109] 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는 19대 9로 조아비의 자격을 박탈했으나,[110] 이스라엘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이 결정을 뒤집었다.[111]
3. 10. 기타 정당
샤울 모파즈가 이끄는 중도 성향의 카디마는 2012년 3월 27일에 열린 2012년 카디마 대표 선거에서 모파즈가 62.3%의 득표율로 치피 리브니를 누르고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16] 리브니는 이후 이스라엘 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크네세트 의원직을 사퇴했다.[117]
아리에 엘다드와 미카엘 벤-아리가 이끄는 극우 성향의 오츠마 레이스라엘은 2012년 11월 13일에 국민 연합 연합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창당되었다.[118]
하임 암살렘이 이끄는 암 샬렘은 샤스에서 탈당한 후 창당되었으며,[119] 유대교 개종, 하레디의 노동 시장 통합 등 주요 문제에 대한 암살렘의 입장과 샤스 당과의 갈등이 창당 배경이 되었다.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군소 정당들이 2013년 이스라엘 의회 선거에 참여했다.
알레 야로크: 신자유주의 운동 구성원들과 합병하여 "알레 야로크-자유주의 명단"이라는 이름으로 출마했으나 원내 진출에는 실패했다.
다암 노동자당: 2011년 이스라엘 사회 정의 시위에 참여한 좌파 정당으로, 이스라엘 아랍 언론인 아스마 아그바리에가 당 대표를 맡았다.
도르 - 새로운 연금 수령자 정당: 길 정당의 후신으로, 라피 에이탄이 대표를 맡았다.[120]
재정 정당: 대니 골드스타인과 베니 골드스타인이 창당했으며, 모든 시민을 위한 더 나은 재정 경제와 이스라엘과 아랍 및 팔레스타인 이웃 간의 평화를 목표로 했다.[121]
에레츠 하다샤: 영화 감독 라니 블레어와 변호사 엘다드 야니브가 설립한 중도 좌파 정당이다.
기타 정당: 아힘 아나흐누("우리는 형제"), 브리트 올람 레게울라트 이스라엘("이스라엘 구원을 위한 계약"), 하임 베카보드("존엄한 삶"), 하티크바 레시누이("변화에 대한 희망"), 하이스라엘림, 코아 레하스피아, 오르, 진보 자유민주, 모레셰트 아보트, 아티드 에하드, 체데크 헤브라티, 이스라엘의 녹색과 젊은이들을 위한 녹색 미래 등이 있다.
4. 선거 운동 및 쟁점
베냐민 네타냐후 리쿠드당 대표는 새 정부에서 "우리가 직면하게 될 거대한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가능한 한 크고 안정적인 연립 정부 구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34] 그는 또한 높은 수준의 범죄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살인 발생 건수가 30% 감소했지만, 이러한 사건들은 잔혹하며 이러한 발생에 전력을 다해 맞서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합니다."라고 언급하며 이츠하크 아하로노비치 내무부 장관과 요하난 다니노 경찰청장에게 2011년 52건에 비해 2012년 37건의 살인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으며, 이러한 추세를 억제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34]
조기 총선 결정은 이란 핵 프로그램 논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프로세스의 교착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특히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공격과 관련된 선거 쟁점과, 2011년 이스라엘 사회 정의 시위 및 앞서 언급한 탈 법을 고려할 때, 네타냐후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간의 이스라엘-이란 관계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35] 리쿠드당의 승리는 이란에 대한 무력 공격의 명분을 강화할 수 있지만, 선거 기간 동안에는 위험도 따랐다.[32][33]
4. 1. 주요 쟁점
4. 2. 방어의 기둥 작전
2012년 11월, 가자 무장 세력이 이스라엘 마을에 로켓과 박격포를 발사하고 가자 지구와의 국경 근처에 주둔한 이스라엘 군인들을 공격한 후,[37][38][39][40] 이스라엘 정치 지도부는 이스라엘 방위군에게 방어의 기둥 작전을 시작하도록 명령했다. 작전 기간 동안 이스라엘 공군은 하마스의 무장 세력 목표물과 조직의 지도자들을 상대로 일련의 공습을 실시했는데, 여기에는 조직의 군사 부문 책임자인 아흐메드 자바리가 포함되었으며, 그는 가자 시티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암살당했다. 그 결과, 하마스는 이스라엘, 특히 이스라엘 남부 지역의 여러 지역에 로켓과 박격포를 발사하는 것으로 대응했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 중부 지역의 가장 큰 대도시 지역에 로켓을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분쟁의 영향을 받는 지역 지도
가자 지구에서의 작전은 여러 야당을 포함한 대부분의 정당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메레츠, 하다쉬,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아랍 정당을 포함한 일부 정당들은 작전에 강력히 반대했다. 일부 좌파 인사들은 이 작전이 실제로 사회 경제적 문제를 제쳐두고 국방 의제로 대체하려는 "선거 전쟁"이라고 주장하며, 이 작전이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41][42]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와 휴전 협정에 서명한 후, 나프탈리 베네트와 아리에 엘다드를 포함한 이스라엘 우익 정치계의 여러 인물들은 정부의 결정을 비판했다.[43][44] 작전 및 이스라엘 남부 포격 기간 동안, 여러 정당들은 작전이 종료될 때까지 정치 캠페인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여기에는 리쿠드당[45]과 야당인 카디마와 노동당이 포함되었다.[46]
4. 3.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 승격
2012년 11월 29일에 열린 유엔 총회 67차 회기에서 팔레스타인을 유엔 비회원 옵서버 국가 지위로 격상시키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49] 새로운 지위는 팔레스타인을 교황청과 동등하게 만들었다.[50] 이에 대응하여, 이너 내각은 예루살렘과 마알레 아두밈을 연결하는 E1 지역에 주택 건설을 승인했다.[51][52]
12월 19일, 국회의원 하닌 조아비는 "테러를 지지하고 이스라엘을 유대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13년 선거에서 재선 자격이 처음 박탈되었다.
4. 4. 후보 자격 박탈 논란
샤스와 연합토라 유대교는 여성 의원이 국회에 진출하는 것이 정숙함에 대한 법을 위반한다고 믿었기에 남성만으로 구성된 정당 명부를 제출했다. 이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2년 12월, 이 두 정당이 차별적이라며 자격 박탈 청원을 받았다.[53] 마찬가지로 오츠마 레이스라엘 정당은 이스라엘을 유대 국가이자 민주 국가로 부인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53] 12월 20일, 위원회는 이들 정당 중 어느 곳도 금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53]
12월 19일, 위원회는 이스라엘 아랍 국회의원인 하닌 조아비가 "테러를 지지하고 이스라엘을 유대 국가이자 민주 국가로 거부한다"는 이유로 재선 출마 자격을 박탈하기로 투표했다.[54] 그러나 이 금지령은 나중에 대법원에 의해 뒤집혔다.[55]
5. 선거 결과
2013년 이스라엘 의회 선거 결과, 리쿠드와 이스라엘 베이테누 연합이 31석을 얻어 원내 1당이 되었다. 예쉬 아티드는 19석을 얻어 2당이 되었으며, 노동당은 15석을 얻었다. 유대인의 집은 12석, 샤스는 11석을 얻었다. 연합 토라 유대교(7석), 하트누아(6석), 메레츠(6석) 등이 뒤를 이었다. 연합 아랍 리스트, 하다쉬, 발라드는 각각 4석, 4석, 3석을 얻었다. 카디마는 2석을 얻는데 그쳤다.
2013년 이스라엘 크네세트 구성
총 유권자 5,656,705명 중 3,880,394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투표율은 68.6%를 기록했다. 무효표는 40,904표였다.
선거 후, 이전 총리이자 최대 블록의 지도자인 베냐민 네타냐후는 "가능한 한 폭넓은 연립 정부"를 구성하고 예쉬 아티드와 협력할 의향이 있다고 발표했다.[137]이스라엘 노동당 의장 셸리 야키모비치는 리쿠드 이스라엘 베이테이누를 제외한 중도 좌파 연립 정부 구성을 목표로 접촉을 시도했다고 말했다.[137] 예쉬 아티드의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는 네타냐후의 새 정부 구성을 막기 위한 연립 정부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또한 평화 프로세스 재개와 탈 법 개혁에 전념하는 정부에만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137]
300px
선거 며칠 후, 국내 언론은 네타냐후의 전 비서실장 나탄 에셸이 협상에 관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에셸은 전년도에 성추행 스캔들에 연루되어 공직에서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은 비판을 받았다. 예쉬 아티드는 어떤 상황에서도 에셸과 만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138]
대통령 시몬 페레스와의 협의 회의에서 82명의 국회의원(리쿠드 이스라엘 베이테이누, 예쉬 아티드, 유대인의 집, 샤스, 연합 토라 유대교, 카디마)을 대표하는 6개 정당은 네타냐후에게 정부 구성을 요청할 것을 권고한 반면, 노동당, 하트누아, 메레츠, 하다쉬, 그리고 두 개의 아랍 정당(38명의 국회의원)은 아무도 권고하지 않았다.[139] 2월 2일, 페레스는 공식적으로 네타냐후에게 정부 구성을 위임했다.[140]
2월 19일 네타냐후는 치피 리브니와 연립 정부 협약을 체결했으며, 하트누아는 연립 정부 참여에 동의했고 리브니는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을 담당하게 되었다.[141] 이것은 네타냐후의 첫 번째 연립 정부 협약이었다. 리쿠드 이스라엘 베이테이누와 하트누아는 함께 37석을 확보했는데, 이는 정부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61석보다 24석 부족했다.[141]유대인의 집은 연립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리브니의 참여로 베네트가 이끄는 정당의 참여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밝혔다.[142]
예쉬 아티드와 유대인의 집은 서로가 없이는 정부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협약을 발표했다. 이는 네타냐후가 하레디 정당(샤스 및 연합 토라 유대교)과 함께 이들 정당 중 하나만으로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예쉬 아티드의 라피드는 하레디와 함께 정부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고[143] 예쉬 아티드의 하레디의 군 복무 면제 폐지 공약과 정당 지도자 간의 개인적인 반목을 고려할 때 그러한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낮았다.[144] 2월 25일 리쿠드는 예쉬 아티드와 유대인의 집에게 정부 참여를 요청했다고 발표했다.[143] 네타냐후는 정부를 구성하기에 충분한 지지를 얻기 위해 양당의 지지가 필요했다.
3월 5일까지, 샤스와 UTJ는 정부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쉬 아티드는 차기 정부를 위해 더 많은 정책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안식일 대중교통, 더 쉬운 유대교 개종 절차, 최고 랍비에 대한 변화.[145]
리쿠드 이스라엘 베이테이누, 예쉬 아티드, 유대인의 집, 하트누아의 연립 정부는 2013년 3월 14일에 발표되었다.[146] 이 연립 정부는 3월 18일 크네세트에서 신임 투표를 통과했고, 그날 늦게 선서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