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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돌격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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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4호 돌격전차(Sturmpanzer IV)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에서 개발된 돌격포로, 4호 전차의 차체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도시 지역에서 보병을 화력 지원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150mm 곡사포를 장착하여 강력한 화력을 제공했다.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개량을 거쳐 생산되었으며, 초기 생산 차량은 서스펜션 및 변속기 문제로 고장이 잦았으나, 이후 개선되었다. 주요 참전 부대로는 216, 217, 218, 219 돌격전차대대가 있으며, 쿠르스크 전투, 노르망디 상륙 작전, 벌지 전투 등 주요 전선에 투입되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4대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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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돌격전차
개요
슈투름판처, 프랑스 소뮤르 군사박물관 전시
브룸베어 (후기형), 프랑스 소뮈르에 전시 중
명칭슈투름판처 (Sturmpanzer)
다른 명칭4호 돌격전차 (Sturmpanzer IV)
브룸베어 (Brummbär)
슈투파 (Stupa)
종류중(重)돌격포
용도보병 화력 지원
Sd.Kfz. 번호Sd.Kfz. 166
개발 및 생산
개발 국가나치 독일
설계알케트
설계 시기1942년–1943년
제작사빈 아스날 (1–III 시리즈)
도이체 아이젠베르케 (IV 시리즈)
생산 기간1943년–1945년
생산량306대
파생형(정보 없음)
제원
길이5.93 m
2.88 m
높이2.52 m
중량28.2 톤
승무원5명 (차장, 조종수, 포수, 장전수 2명)
기동성
엔진수랭식 V형 12기통 마이바흐 HL120 TRM
마력300 PS (296 hp, 220 kW)
출력비10.64 PS/톤
현가 장치2륜 판 스프링 보기
최고 속도도로: 40 km/h
야지: 24 km/h
연료 용량470 L
항속 거리도로: 210 km
무장
주무장15 cm StuH 43 L/12
부무장IV 시리즈: 1정의 7.92 mm MG 34 (후기형은 볼 마운트식 총가에 탑재)
장갑
장갑 두께전면: 100 mm
전투실 측면: 50 mm
전투실 후면: 30 mm
전투실 상면: 20 mm
차대 전면: 80+20 mm
차대 측면: 20+20 mm
차대 후면: 20 mm
차대 저면: 10 mm
엔진부 상면: 10 mm

2. 개발

4호 돌격전차는 보병 부대에 직접 화력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특히 시가지 전투에 중점을 두었다.

이전에도 독일군은 1호 전차, 2호 전차, 38(t) 전차 차체에 15cm sIG33를 탑재한 자주포 (1호 자주 중보병포, 2호 자주 중보병포, 그릴레)를 운용했으나, 방어력, 내부 공간, 엔진 출력이 부족했다.[12] 3호 돌격포의 75mm 포는 화력이 부족했다.

1941년 12월부터 1942년 1월까지 3호 전차 차체에 15cm sIG33을 탑재한 33B형 3호 돌격보병포 12량이 생산되었다. 1942년 9월 총통 회의에서 시가전용 화력 강화 요구에 따라 1942년 10월 13일까지 총 24량이 완성되었다.[13]

알케트 사는 4호 전차 기반의 개량형 개발에 착수, 4호 돌격전차를 완성했다. 1942년 10월 히틀러에게 설계도를 제시, 40~60량 생산을 지시받았다. 1943년 2월, 히틀러는 치타델 작전 투입을 위해 5월 12일까지 40량, 추가로 20량 생산을 지시했다.[14] 1차 생산분 45량은 "초기형"으로 분류되어 쿠르스크 전투에 투입되었다.[15]

1943년 12월부터 "중기형"(제2/3차 생산형)이 생산되었다. 4호 전차 H형 차체가 사용되었고, 1944년 3월~6월 생산분(제3차 생산형)은 조종수 관측창이 페리스코프로 변경, 경량화된 StuH 43/1 L/12 주포가 탑재되었다.

1944년 6월부터 "후기형"(제4차 생산형)이 생산되었다. 4호 전차 J형 차체, 생산성이 향상된 전면 장갑, MG34 기관총용 볼 마운트가 특징이다.

뒤스부르크의 도이체 아이젠베르케에서 조립된 4호 돌격전차는 1943년 4~5월 60량, 1943년 12월~1945년 3월 246량, 총 306량이 생산되었다. 초기 생산분은 4호 전차 E/F형 개조 8량, G형 차체 신조 52량, 이후 H/J형 차체가 사용되었다.

4호 돌격전차는 생산 시기, 사양 변경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로 구분되나, 이는 후세 연구가의 분류이며, 독일군은 구분하지 않았다.[16] 공식 구분은 "제 *차 생산형" 또는 "194*년 *월기 생산차"였다.[25]

2. 1. 주포

4호 돌격전차는 4호 전차 차체를 이용하여 개발했으며, 특히 도시 지역에서 보병 부대를 화력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4호 전차 하부 차체에 기존 4호 전차의 포탑과 상부 구조물을 제거하고 새로 설계한 상자형 포대(casemate) 모양의 전투실을 설치했다. 전투실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스코다가 개발한 150mm StuH43 L/12 중곡사포(Sturmhaubitze)를 설치했다. 이 포는 15 cm sIG 33 중보병포와 같은 포탄을 사용했다. 추진 장약과 탄두를 분리하여 총 38발을 탑재했으며, Sfl.Zf. 1a 조준경을 사용했다.[29]

1943년 10월, 독일군은 브룸베어의 주포인 StuH 43을 보다 가볍게 재설계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에 따라 800kg 정도 가벼워진 새로운 주포인 StuH 43/1을 개발했다. 줄어든 무게 중 일부는 장갑 일부를 얇게 재설계하면서 이루어졌다. 신형 주포는 3차 생산분부터 장착되었다.

2. 2. 자위용 무장

적 보병의 접근에 대비한 자위용 무장으로 MG 34 기관총을 포수석 자리에 장착했다. 이는 3호 돌격포와 비슷한 배치였다. 초기형 차량에는 MP 40 기관단총을 차량 내부에 비치하여, 적 보병이 접근했을 때 총안구를 통해 차내에서 외부로 사격할 수 있도록 했다.[29]

2. 3. 초기 문제점 및 개선

4호 돌격전차 초기형은 차체에 비해 너무 무거워 현가장치와 변속기에 잦은 고장이 발생했다. 독일군과 알케트사는 두 번째 생산분부터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려 노력했고, 몇몇 부분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다.[30] 1943년 10월, 독일군은 4호 돌격전차의 주포인 StuH 43을 더 가볍게 재설계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800kg 정도 가벼워진 새로운 주포인 StuH 43/1을 개발했다. 줄어든 무게 중 일부는 장갑 일부를 얇게 재설계하여 달성했다. 신형 주포는 3차 생산분부터 장착되었다. 찌메리트 코팅은 1944년 9월까지 모든 차량에 적용되었다.[31]

3. 생산 구분

4호 돌격전차는 생산 시기와 사양 변경에 따라 초기형, 중기형, 후기형으로 구분되지만, 이는 후세 연구가들에 의한 구분이며, 독일군이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16] 공식적으로는 "제 *차 생산형" 또는 "194*년 *월기 생산차" 등으로 불렸다.[25]

각 생산 시기별 주요 변경 사항은 다음과 같다.

구분주요 특징
초기형4호 전차 G형 차체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쿠르스크 전투에 투입되었다.
중기형4호 전차 H형 차체를 사용하고, 운전병실 장갑을 보강하는 등 초기형의 문제점을 개선했다.
후기형4호 전차 J형 차체를 사용하고, 상부 구조를 재설계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MG 34 기관총을 위한 볼 마운트를 추가했다.



뒤스부르크의 도이체 아이젠베르케에서 1943년 4월부터 1945년 3월까지 총 306량이 생산되었다. 초기 생산분 60량은 기존 4호 전차 E, F형 차체를 개조하거나 G형 차체를 사용했고, 이후에는 H형 또는 J형 차체를 사용하여 생산되었다.

3. 1. 첫 번째 생산 (1943년 4월)

1943년 4월, 4호 돌격전차 첫 생산분 60대가 생산되었다. 이 중 52대는 4호 전차 G형 차체를 사용했고, 나머지 8대는 개조된 E형 및 F형 차체를 사용했다. 1943년 12월, 생존 차량 중 약 절반이 2차 생산분 표준에 맞춰 개조되었다.[14]

3. 2. 두 번째 생산 (1943년 12월 ~ 1944년 3월)

1943년 12월, 60대의 4호 돌격전차 추가 생산이 이루어지면서 생산이 재개되었다. 이 차량들은 신형 4호 전차 H형 차체를 사용했으며, 1944년 3월까지 생산되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 돌격전차de의 실전 투입 결과, 운전병실의 장갑이 너무 얇다는 것이 밝혀져 이를 보강했다.[6] 포수의 해치는 제거되었고, 승무원들의 편의를 위해 환풍기가 설치되었다. 또한 전방 현가장치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내부 스프링이 장착된 강철 림 로드 휠이 앞쪽의 고무 림 로드 휠 2개를 대체했지만, 부분적인 성공에 그쳤다.[6]

3. 3. 세 번째 생산 (1944년 3월 ~ 1944년 6월)

1944년 3월부터 6월까지 3차 생산이 이루어졌다. 2차 생산분을 약간 개량한 것으로, 조종수 관측창은 티거 1에도 사용된 Fahrersehklappe 80으로 변경되었다. 150mm 주포는 더 가벼운 StuH 43/1 L/12로 교체되었는데, 이는 기존 주포가 4호 전차 차체에 지나치게 무거웠기 때문이다.[12] 이러한 변경 사항은 4호 전차 H형 섀시를 사용한 중기형(제2/3차 생산형)에도 적용되었다.[14]

3. 4. 네 번째 생산 (1944년 6월 ~ 1945년 3월)

1944년 초, 독일군은 브룸베어의 상부구조물을 재설계하여 4번째 생산을 시작했다. 4호 전차 J형의 차체와 HL120TRM112de 엔진을 사용했고, 1944년 6월부터 1945년 3월까지 생산되었다. 전투실 높이를 낮추고 포신 고정 장치를 재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차체 전면에 MG34 기관총을 위한 공 모양의 총안구(Ball Mount)를 도입했다. 기관총탄은 600발을 수납했다. 차장 좌석은 3호 돌격포 G형의 해치를 사용하도록 개조했는데, 대공용 기관총을 거치할 수 있었다.

4. 구조

4호 돌격전차는 4호 전차 차체를 기반으로 개발되었으며, 특히 도시 지역에서 보병 부대를 화력 지원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4호 전차 하부 차체에 기존 포탑과 상부 구조물을 제거하고 새로 설계한 상자형 포대(casemate) 모양의 전투실을 설치했다.

전투실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스코다가 개발한 슈투름하우비츠de(StuH) 43 L/12 150mm 중곡사포를 설치했다. 이 포는 15 cm sIG 33 중보병포와 같은 포탄을 사용했으며, 추진 장약과 탄두를 분리하여 총 38발을 탑재했고, ''Sfl.Zf. 1a'' 조준경을 사용했다. 포탄과 장약의 무게 (고폭탄 38kg, 추진 장약 8kg) 때문에 장전수가 포를 높은 각도로 올릴 경우 장전하기 매우 힘들었다.[2]

적 보병의 접근에 대비한 자위용 무장으로 MG 34 기관총을 포수석 자리에 장착했다. 초기형 차량에는 MP 40 기관단총을 차량 내부에 비치했으며, 적 보병이 접근했을 때 총안구를 통해 차내에서 외부로 사격할 수 있었다. 이는 3호 돌격포와 비슷한 방식이었다.

조종석은 경사진 전면 장갑에서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었고, 티거 전차에도 사용된 Fahrersehklappe 80de을 조종수용 외부 관측장비로 사용했다. 전투실은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자연 대류를 통해 두 개의 장갑 덮개를 통해 상부 구조 후면으로 배출되었다. 측면 방호막(Sideskirts)은 모든 차량에 설치되었다.[3]

차체에 비해 너무 무거웠던 초기 생산 차량들은 서스펜션과 변속기에 잦은 고장을 일으켰고, 독일군과 알케트사는 두 번째 생산 분부터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했으며 몇몇 부분에서는 성공하기도 했다.[4] 1943년 10월, 독일군은 주포인 StuH 43을 보다 가볍게 재설계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에 따라 800kg 정도 가벼워진 새로운 주포인 StuH 43/1을 개발했다. 줄어든 무게 중 일부는 장갑 일부를 얇게 재설계하면서 이뤄진 것이었다. 신형 주포는 3차 생산분부터 장착되었다. 지머리트 코팅은 1944년 9월까지 모든 차량에 적용되었다.[5]

전투실은 용접으로 조립되었지만, 천장만은 정비 시에 분리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볼트로 고정했다. 초기형 천장에는 3개의 해치가 있었는데, 중앙부 오른쪽에는 큰 장전수용 해치, 왼쪽 뒤편에는 차장용 원형 해치, 왼쪽 앞쪽에는 포수용 해치가 있었다. 장전수용 해치 앞쪽은 수직에 가깝게 고정하여 기관총 방패로 사용할 수 있었다.[18] 중기형에서는 포수용 해치가 폐지되고 슬라이드식 커버가 달린 조준기 구멍으로 변경되었다. 후기형에서는 차장용 해치 대신 3호 돌격포와 동일한 큐폴라가 장비되었고,[19] 장전수용 해치는 소형 해치 2개로 변경되었다.

4. 1. 보기륜

4호 돌격전차는 4호 전차의 차체를 이용한 돌격포이다. 변속기, 엔진, 보조 장치, 주행 장치 등은 4호 전차와 동일한 부품을 사용했다. 단, 포탑이 없기 때문에 포탑 선회용 발전기, 발전용 엔진, 전용 배기 머플러가 제거되었다.[17]

포탑이 없고, 포 자체는 제한적이지만 좌우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세 조정 범위를 넘어서는 조준을 위해서는 차체 전체를 좌우로 움직여야 했다. 이 때문에 전차에 비해 변속기에 부담이 커져 고장이 잦았다. 또한, 4호 돌격전차는 4호 전차에 비해 포의 탑재 위치와 두껍고 넓은 전면 장갑 때문에 무게 중심이 전방으로 쏠리는 경향을 보였다. 이 때문에 전방 보기륜의 바퀴 외주 고무의 마모가 심해 앞쪽 보기륜 한 쌍, 또는 두 쌍, 심지어 전부를 강철제(바깥쪽이 아닌, 고무 완충재가 안에 들어있음)로 변경하여 마모를 억제했다.

1943년 12월, 60대의 차량을 추가 생산하며 생산이 재개되었고, 신형 4호 전차 H형 차체를 사용했으며 1944년 3월까지 생산이 이어졌다. 쿠르스크 전투에서 돌격전차de의 실전 투입 결과, 운전병실의 장갑이 너무 얇다는 것이 입증되어 이를 보강했다. 포수의 해치는 제거되었고, 승무원들의 편의를 위해 환풍기가 설치되었다. 또한 전방 현가장치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내부 스프링이 장착된 강철 림 로드 휠이 앞쪽의 고무 림 로드 휠 2개를 대체했지만, 부분적인 성공에 그쳤다.[6]

주행 장치는 당시로서는 구식인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이었으며, 이는 판 스프링을 여러 장 겹쳐서 묶고, 바퀴의 완충 장치에 연결하여 지면으로부터의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 중(重)전차, 그리고 현용 주력전차가 장비하는 토션 바 방식에 비해 완충 능력과 지형 추종 성능(스트로크 길이)이 떨어지지만, 보수적인 설계로 내구성과 생산성, 정비성이 뛰어나며, 또한 바닥 공간을 차지 하지 않아도 되었다.

4. 2. 레이아웃 및 서스펜션

4호 돌격전차는 4호 전차 차체를 이용하여 개발했으며, 특히 도시 지역에서 보병 부대를 화력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4호 전차 하부 차체에 기존 4호 전차의 포탑과 상부구조물을 제거하고 새로 설계한 상자형 포대(casemate) 모양의 전투실을 설치했다. 전투실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스코다가 개발한 150mm StuH43 L/12 중곡사포를 설치했다. 이 포는 15 cm sIG 33 중보병포와 같은 포탄을 사용했으며, 추진 장약과 탄두를 분리하여 총 38발을 탑재했고, Sfl.Zf. 1a 조준경을 사용했다. 적 보병의 접근에 대비한 자위용 무장으로 MG 34 기관총을 포수석 자리에 장착했다. 초기형 차량에는 MP-40 기관단총을 차량 내부에 비치했으며, 적 보병이 접근했을 때 총안구를 통해 차내에서 외부로 사격할 수 있었다.

조종석은 경사진 전면 장갑에서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었고, 티거 전차에도 사용된 Fahrersehklappe 80을 조종수용 외부 관측장비로 사용했다. 전투실은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측면 방호막(Sideskirts)은 모든 차량에 설치되었다[29]. 차체에 비해 너무 무거웠던 초기 생산 차량들은 서스펜션과 변속기에 잦은 고장을 일으켰고, 독일군과 알케트사는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했으며 몇몇 부분에서는 성공하기도 했다[30].

1943년 10월, 독일군은 브룸베어의 주포인 StuH 43을 보다 가볍게 재설계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에 따라 800kg 정도 가벼워진 새로운 주포인 StuH 43/1을 개발했다. 줄어든 800kg 중 일부는 장갑 일부를 얇게 재설계하면서 이뤄진 것이었다. 신형 주포는 3차 생산분부터 장착되었다.. 찌메리트 코팅은 1944년 9월까지 모든 차량에 적용되었다.[31].

생산이 재개된 것은 1943년 12월이었으며, 1944년 3월에 생산 종료되었다. 이때 생산 대수도 60대였으며, 모두 4호 전차 H형 차체를 유용하여 생산했다. 쿠르스크 전투 당시 실전에서 드러난 문제점인 조종수 구역의 장갑이 너무 엷다는 문제점을 개선했다. 사수용 해치를 제거하고, 승무원 편의를 위해 환기용 팬을 추가했다. 내부에 탄성재가 든 강철제 테두리(rimmed)[32]의 로드휠로 전방의 고무제 테두리 로드휠을 교체했다. 교체한 이유는 앞쪽 서스펜션 부분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이 시도는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33].

4호 돌격전차는 4호 전차의 차체를 이용한 돌격포이다. 변속기, 엔진, 보조 장치, 주행 장치 등은 4호 전차와 동일한 부품을 사용했다. 단, 포탑 철거에 따라 포탑 선회용 발전기, 발전용 엔진, 전용 배기 머플러가 제거되었다.[17]

포탑이 없고, 포 자체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좌우로 지향시킬 수 있었지만, 미세 조정 범위를 넘어서는 조준을 위해서는 차체 전체를 좌우로 선회해야 했기 때문에, 전차에 비해 변속기에 부담이 커져 고장이 잦았다. 또한, 4호 돌격전차는 4호 전차에 비해 포의 탑재 위치와 두껍고 넓은 전면 장갑 때문에 노즈 헤비(전방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는) 경향을 보였다. 이 때문에 전방 보기륜의 바퀴 외주 고무의 마모가 심해 앞쪽 보기륜 한 쌍, 또는 두 쌍, 심지어 전부를 강철제(바깥쪽이 아닌, 고무 완충재가 안에 들어있음)로 변경하여 마모를 억제했다.

기본적인 레이아웃은 차체의 유용 원본인 4호 전차와 동일하며, 차체 후방의 기관실에 마이바흐 HL120TRM1 가솔린 엔진을 배치하고, 구동축을 통해 차체 전방의 변속기, 조향 변속기로 동력을 전달했다. 전달된 동력은 종감속기를 거쳐 기동륜을 움직여 궤도를 구동시켰다. 주행 장치는 당시로서는 구식인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이었으며, 이는 판 스프링을 여러 장 적층하여 묶고, 륜의 완충 장치에 연결하여 지면으로부터의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 중(重)전차, 그리고 현용 주력전차가 장비하는 토션 바 방식에 비해 완충 능력과 지형 추종 성능(스트로크 길이)이 떨어지지만, 보수적인 설계로 내구성과 생산성, 정비성이 뛰어나며, 또한 바닥 공간을 소비할 필요가 없었다.

전투실은 용접으로 조립되었지만, 천장만은 정비 시에 분리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볼트 고정이 사용되었다. 초기형의 천장 해치류는 3곳이며, 중앙부의 오른쪽으로 큰 장전수용 해치가 설치되어 있다. 왼쪽 뒤편에는 차장용 원형 해치, 왼쪽 앞쪽에는 포수용 해치가 설치되었다. 이 해치에는 더 나아가 조준기용 소형 해치가 달려있다.[18] 장전수용 해치의 앞 절반은 수직에 가까운(약간 뒤로 기울어진) 상태로 고정할 수 있으며, 이 상태에서 기관총 방패로 사용하기 위한 총안이 설치되어 있었다.

중기형에서는 포수용 해치는 폐지되었고, 슬라이드식 커버가 달린 조준기 구멍으로 변경되었다.

후기형에서는 해치 레이아웃이 크게 변경되어, 차장용으로는 해치가 아닌 새롭게 3호 돌격포와 동일한 큐폴라가 장비되었다.[19] 장전수용 해치는 폐지되어, 소형 해치가 가로로 2개 나란히 배치된 것으로 변경되었다.

4. 3. 전투실

4호 돌격전차의 전투실은 4호 전차의 포탑과 상부 구조물을 제거하고 새로 설계한 상자형 포대(casemate)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이 전투실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스코다가 개발한 150mm StuH43 L/12 중곡사포(Sturmhaubitze)가 설치되었는데, 15 cm sIG 33 중보병포와 같은 포탄을 사용했다. 포탄과 추진 장약은 분리되어 총 38발을 탑재했으며, Sfl.Zf. 1a 조준경을 사용했다.[29]

적 보병의 접근에 대비한 자위용 무장으로는 MG 34 기관총을 포수석에 장착했다. 초기형 차량에는 MP 40 기관단총을 차내에 비치하여, 적 보병 접근 시 총안구를 통해 사격할 수 있도록 했다.[29]

조종석은 경사진 전면 장갑에서 앞으로 돌출되었고, 티거 전차에도 사용된 Fahrersehklappe 80을 조종수용 외부 관측장비로 사용했다. 전투실은 환기가 잘 되지 않았고, 측면 방호막(Sideskirts)은 모든 차량에 설치되었다.[29]

1943년 10월, 독일군은 StuH 43 주포를 경량화하여 StuH 43/1을 개발했고, 이는 3차 생산분부터 장착되었다. 지머리트 코팅은 1944년 9월까지 모든 차량에 적용되었다.[31]

1944년 초, 전투실 높이를 낮추고 포신 도장을 변경한 상부구조물 재설계가 이루어졌다. 차체 전면에는 MG34 기관총용 둥그런 공 모양 총안구(Ball Mount)가 도입되었고, 차장 좌석은 3호 돌격포 G형의 해치를 사용하도록 개조되었다.

초기형의 천장 해치는 3곳으로, 중앙부 오른쪽에는 큰 장전수용 해치, 왼쪽 뒤편에는 차장용 원형 해치, 왼쪽 앞쪽에는 포수용 해치가 있었다. 장전수용 해치 앞쪽은 수직에 가깝게 고정하여 기관총 방패로 사용할 수 있었다.[18] 중기형에서는 포수용 해치가 폐지되고 슬라이드식 커버가 달린 조준기 구멍으로 변경되었다. 후기형에서는 3호 돌격포와 동일한 큐폴라가 장비되었고,[19] 장전수용 해치는 소형 해치 2개로 변경되었다.

5. 장갑

4호 돌격전차는 4호 전차 차체를 기반으로 개발되었으며, 도시 지역에서 보병 부대를 화력 지원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4호 전차 하부 차체에 기존 포탑과 상부 구조물을 제거하고 새로 설계한 상자형 포대(casemate) 모양 전투실을 설치했다. 초기 생산 차량은 차체에 비해 너무 무거워 서스펜션과 변속기에 잦은 고장을 일으켰으나, 이후 개선되었다.[30]

1943년 10월, 독일군은 주포인 StuH 43을 보다 가볍게 재설계하여 800kg 정도 가벼워진 StuH 43/1을 개발했다. 줄어든 무게는 장갑 일부를 얇게 재설계하여 달성했으며, 신형 주포는 3차 생산분부터 장착되었다. 찌메리트 코팅은 1944년 9월까지 모든 차량에 적용되었다.[31]

5. 1. 차체

4호 돌격전차는 33B형보다 더 두꺼운 장갑을 갖추고 있었다. 기본 전차형보다 차체 방어력이 강화되었다. 주행 장치가 부착되는 측면 하부는 20mm 두께의 기본 장갑에 20mm 증가 장갑을 덧붙였다. 기관실 후면은 20mm, 기관실 천장 및 차체 바닥은 10mm 두께의 장갑을 사용했다.[18]

초기형과 중기형 차체 외형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변속기를 수용하는 차체 전면 하부 장갑은 50mm 기본 장갑에 50mm 증가 장갑을 볼트로 결합하여 강화했다. 이 부분의 장갑 경사는 15도였지만, 장갑 두께는 100mm로 기본 전차형보다 20mm 더 두꺼웠다. 이 위에 예비 궤도가 장착되었다.[17]

초기형·중기형 전투실은 40도 경사진 100mm 두께 전면 장갑, 25도 경사진 60mm 두께 전부 측면 장갑, 18도 경사진 50mm 두께 측면 장갑, 30mm 두께 후면 장갑으로 둘러싸였으며, 천장 부분은 20mm 장갑이 사용되었다. 천장은 안쪽에서 앞쪽으로 약간 경사져 있으며(84도), 전체적으로 변칙적인 육각형을 구성했다. 초기형 조종수석 전면에는 티거 I용 시야 바이저가 장비되었으나, 이후 폐지되고 80mm 두께 장갑판으로 단순한 상자형 돌출부를 설치하고 상면에 잠망경을 설치했다.[20]

후기형은 전투실을 단순한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전면 장갑판을 차체 소매부까지 확장하여 내부 용적을 증가시켰다. 전투실 천장은 수평 부분과 경사 부분 두 장으로 구성되었다. 가장 큰 변경점은 티거 I과 동일한 볼 마운트식 기관총 가대를 상부 좌측에 설치한 것이다. 장갑 두께는 80mm였다. 중기형에 이어 조종수석 전면은 단순한 상자형 돌출부였다.[21]

차체 측면에는 슐첸 스테를 장비하고, 4호 전차와 동일한 5장의 슐첸을 장착했다.[22] 이것은 소련군 보병의 대전차 소총에 차체 측면 하부 30mm 장갑이 관통되는 것을 막기 위한 연강제 증가 장갑이었다. 슐첸과 차체 사이 공간은 성형 작약탄에 대한 방어 효과도 가져왔다. 슐첸은 스테 갈고리에 자중으로 걸려 있어, 장애물 충돌 시 궤도나 롤러에 걸리지 않도록 쉽게 탈락하게 되어 있었다.

1943년 9월부터 1944년 9월까지 생산된 차량에는 자기력을 이용한 대전차 무기를 무효화하기 위해 짐머리트 코팅이 시공되었다.[21]

5. 2. 전투실 (초기형 · 중기형)

4호 돌격전차 브룸베어 초기형·중기형의 전투실은 40도 경사진 100mm 두께의 전면 장갑, 25도 경사진 60mm 두께의 전부 측면 장갑, 18도 경사진 50mm 두께의 측면 장갑, 그리고 30mm 두께의 후면 장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20] 천장 부분은 20mm의 장갑이 사용되었으며, 안쪽에서 앞쪽으로 약간 경사져(84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변칙적인 육각형을 구성하고 있었다.[20] 초기형 조종수석 전면에는 티거 I용 시야 바이저가 장비되었다가, 이후 폐지되어 80mm 두께의 장갑판으로 단순한 상자형 돌출부를 설치하고 상면에 잠망경을 설치했다.[20]

초기형과 중기형 차체 외형에는 큰 변경이 있었다. 변속기를 수용하는 차체 전면 하부 장갑은 50mm 기본 장갑에 50mm 증가 장갑을 볼트로 결합하여 강화되었다. 이 부분의 장갑 경사는 15도로 피탄 경사는 불량하지만, 장갑 두께는 100mm로 베이스가 된 전차형보다 20mm 두꺼웠다. 게다가 이 위에 예비 궤도가 장착되었다.[17]

5. 3. 전투실 (후기형)

1944년 초, 독일군은 4호 전차 J형 차체와 HL120TRM112de 엔진을 사용하여 브룸베어의 상부구조물을 재설계한 4번째 생산을 시작했다. 이 후기형은 1944년 6월부터 1945년 3월까지 생산되었다. 전투실 높이를 낮추고 포신 고정 장치를 변경했으며, 차체 전면에 MG34 기관총용 공 모양 총안구(Ball Mount)를 도입하여 600발의 기관총탄을 수납했다. 차장 좌석은 3호 돌격포 G형의 해치를 사용하도록 개조되어 대공용 기관총을 거치할 수 있었다.

후기형은 전투실을 단순한 사각형으로 만들고, 전면 장갑판을 차체 소매부까지 확장하여 내부 용적을 늘렸다. 전투실 천장은 수평 부분과 경사 부분의 두 장으로 구성되었다. 가장 큰 변경점은 티거 I과 동일한 볼 마운트식 기관총 가대를 상부 좌측에 설치한 것이다. 장갑 두께는 80mm였다. 중기형과 마찬가지로 조종수석 전면은 단순한 상자형 돌출부였다.[21]

5. 4. 슐첸(Schürzen)

차체 측면에는 4호 전차와 동일하게 5장의 슐첸을 장착하기 위한 슐첸 스테가 장비되었다.[22] 이것은 소련군 보병이 사용하던 대전차 소총에 차체 측면 하부의 30mm 장갑이 관통되는 것을 막기 위한 연강제 증가 장갑이었다. 슐첸과 차체 사이에는 공간이 생겨서 성형 작약탄에 대한 방어 효과도 있었다. 슐첸은 스테의 갈고리에 자체 무게로 걸려 있었으며, 장애물과 충돌했을 때 궤도나 롤러에 걸리지 않도록 쉽게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5. 5. 짐머리트 코팅(Zimmerit Coating)

1943년 9월부터 1944년 9월까지 생산된 차량에는 자기력을 이용하여 흡착하는 대전차 무기를 무효화하기 위해 짐머리트 코팅이 적용되었다.[21]

6. 무장

4호 돌격전차는 주포와 부무장으로 구성된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주포는 15 cm sIG 33 중보병포와 같은 포탄을 사용하는 150mm StuH43 L/12 중곡사포였고, 부무장은 MG 34 기관총과 MP40 기관단총이었다.

6. 1. 주포

4호 돌격전차는 4호 전차 차체를 이용하여 개발했으며, 특히 도시 지역에서 보병 부대를 화력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4호 전차 하부 차체에 기존 4호 전차의 포탑과 상부 구조물을 제거하고 새로 설계한 상자형 포대(casemate) 모양의 전투실을 설치했다. 전투실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스코다가 개발한 150mm StuH43 L/12 중곡사포(Sturmhaubitze)를 설치했다. 이 포는 15 cm sIG 33 중보병포와 같은 포탄을 사용했다. 추진 장약과 탄두를 분리하여 총 38발을 탑재했으며, Sfl.Zf. 1a 조준경을 사용했다.[29]

1943년 10월, 독일군은 브룸베어의 주포인 StuH 43을 보다 가볍게 재설계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에 따라 800kg 정도 가벼워진 새로운 주포인 StuH 43/1을 개발했다. 줄어든 800kg 중 일부는 장갑 일부를 얇게 재설계하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신형 주포는 3차 생산분부터 장착되었다.

sIG33에서 발전하여 같은 탄약을 사용하는 15cm 43식 돌격 곡사포(15cm Sturmhaubitze 43 L/12de)를 고정 전투실에 탑재했다. 포가는 구형의 방패를 갖추고 있으며, 두께는 100mm에서 145mm이다. 포 앙각 조절 핸들과 포 선회 핸들로 좌우 20도, 앙각이 -8도에서 +30도까지 가동했다. 포신 길이는 12구경이다. 포미는 수평 쇄정식이다[18]. 조준에는 직접 조준 시 SflZF1 조준기, 간접 포격 시 Rblf36 조준기를 사용했다. 또한 관측용 쌍안경이 배치되었다[23]。주포 포탄은 무게 40kg의 IGr38 FES 고폭탄, 무게 25.25kg의 IGr39 H1/A 성형 작약탄을 탑재했다. 휴대 탄수는 38발이었다.

6. 2. 부무장

4호 돌격전차는 4호 전차 차체를 이용하여 개발되었으며, 특히 도시 지역에서 보병 부대를 화력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4호 전차의 포탑과 상부 구조물을 제거하고 새로 설계한 상자형 포대(casemate) 모양의 전투실을 설치했다. 전투실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스코다가 개발한 150mm StuH43 L/12 중곡사포를 설치했는데, 이 포는 15 cm sIG 33 중보병포와 같은 포탄을 사용했다. 추진 장약과 탄두를 분리하여 총 38발을 탑재했으며, Sfl.Zf. 1a 조준경을 사용했다.[29]

적 보병의 접근에 대비한 자위용 무장으로 MG 34 기관총을 포수석 자리에 장착했다. 이는 3호 돌격포와 비슷한 배치였다. 초기형 차량에는 MP-40 기관단총을 차량 내부에 비치했으며, 적 보병이 접근했을 때 총안구를 통해 차내에서 외부로 사격할 수 있었다.[2]

초기·중기형에서는 차내에 부무장으로 7.92mm MG34 기관총과 MP40 9mm 기관단총)이 탑재되어 있었다. MG34는 세워서 고정하면 방패가 되는 대형 해치에서, MP40은 전투실의 좌우 사선 전방이나 측면, 후면에 있는 피스톨 포트에서 발포함으로써 적 보병의 육박 공격에 대응할 수 있었다. 탄약 탑재 수는 기관총탄 600발, 권총탄 384발이었다. 후기형에서는 전투실 전면에 전방 기관총을 갖추고 전차와 같은 볼 마운트식 총가에 MG34 1정을 장비했다.

7. 실전 기록

4호 돌격전차(Sturmpanzer)를 처음 실전에 투입한 부대는 216 돌격전차대대였다.[34] 1943년 4월 말 창설되어 5월 초 아미앵에서 훈련받고, 6월 10일 쿠르스크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9군 휘하 656 중대전차연대에 배속되었다. 8월 말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자포로제 지역으로 이동, 10월 15일 자프로치아 교두보를 포기할 때까지 전투 후 니코폴 방어전을 지원하고 12월 말 독일 본토로 철수했다.

1944년 1월 22일, 연합군의 안지오 상륙 작전에 216 대대는 28대로 반격 작전에 참가, 실패했지만 이탈리아 전선에 남았다. 1945년 4월 포 계곡 공세 시작 시 42대 보유, 5월 종전 전 모두 파괴/손실되었다.

217 돌격전차대대는 1944년 4월 20일 그라펜뵈르 훈련장 창설, 5월 말 19대 수령.[35] 7월 1~2일 노르망디 전선 출발, 연합군 공습/레지스탕스 공격으로 프랑스 철도망 피해, 콩데 수 노 노이레 하차. 부대 차량 다수 전선 이동 중 고장. 8월 7일 근처 첫 전투, 8월 19일 17대 운용(14대 정비). 팔레즈 포위망 피해 북동쪽 퇴각, 10월 22대 남아 1, 2중대 분리, 잔여 승무원 Panzer-Ersatz Abteilung 18de 전속. 벌지 전투 참가, 생 비트까지 진격, 이후 1945년 4월 루르 포위전에서 포로.

z.b.V. 218 돌격전차중대는 1944년 8월 창설, 바르샤바로 가 Panzer Abteilung (Fkl) 302de 배속.[36] 바르샤바 봉기 진압 후 동부 전선, 1945년 4월 동프로이센 전멸. z.b.V 2./218 돌격전차중대는 동시기 창설, 8월 20일 파리 이동, 프랑스 활동 미상, 연말 부대 병력 Panzer-Ersatz Abteilung 18de 전속, Sturmpanzer-Abteilung 218de 창설 예정.

218 돌격전차대대는 1945년 1월 6일 45대 3개 중대 창설 명령, 2월 3호 돌격포 수령.

219 돌격전차대대는 Sturmgeschütz-Brigade 914de에서, 1944년 9월 Sturmgeschütz-Brigade 237de 변경.[37] 9월 중순 될러스하임 훈련장 이동, 10월 15일 Unternehmen Panzerfaustde 투입 명령 시 10대, 1중대 다음 날 부다페스트 출발. 철도 폭격, 10월 19일 도착, 친독 정부 수립, 불필요. 슬로바키아 마틴 이동 훈련. 부다페스트 갇힌 독일군 구원 위해 슈툴바이센부르크 인근 이동, 소련군 진격으로 후퇴.

초기 결점 해소 후, 브룸베어는 뛰어난 화력 지원 차량 입증, "소방대" 역할, 적 공격 격렬한 곳에 사용.

7. 1. 주요 참전 부대

4호 돌격전차(브룸베어)를 장비하고 실전에 투입된 주요 부대는 다음과 같다.

부대명창설일주요 참전 기록비고
216 돌격전차대대[34]1943년 4월 말쿠르스크 전투, 안지오 상륙 작전, 이탈리아 전선중부 군집단 소속 9군 사령부 직할 656 중대전차연대에 배속. 1945년 봄, 연합군의 공세에 밀려 후퇴 중 모든 차량 자폭.
217 돌격전차대대[35]1944년 4월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근처 전투, 팔레즈 포위망 탈출, 벌지 전투, 루르 포위전1945년 4월 루르 포위전에서 미군에 항복.
z.b.V. 218 돌격전차중대[36]1944년 8월바르샤바 봉기 진압이후 동부 전선에 계속 주둔, 1945년 4월 동프로이센에서 사실상 전멸.
z.b.V 2./218 돌격전차중대1944년 8월경파리로 이동프랑스에서의 전투 기록은 없음.
218 돌격전차대대1945년 1월 (창설 명령)-실제로는 3호 돌격포 장비.
219 돌격전차대대[37]1944년 9월판처파우스트 작전, 부다페스트 포위전, 23 기갑 사단 배속1945년 3월 보유 차량 소실 후 체코슬로바키아로 후퇴, 4월에 대전차여단 "트룸파"에 흡수.



1944년 3월 안치오 상륙 작전 이후 연합군 교두보를 억제하기 위해 배치된 브룸베어

8. 현재 남은 차량

독일 뮌스터의 독일 전차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브룸베어(Sturmpanzer IV)


현재 4대의 4호 돌격전차가 남아 있다. 남아있는 전차는 프랑스 소뮤어 전차 박물관(Musée des Blindés), 독일 뮌스터에 소재한 독일 전차 박물관, 모스크바 근교 쿠빙카 전차 박물관, 미국 오클라호마주 포트실 야전포병 박물관에 각 1대씩 보관되어 있다.[11]

참조

[1] 서적 Trojca & Jaugitz, p. 23, quoting DTD Report 3066
[2] 웹사이트 A German Soldier's Memory, The Eastern Front, Operation Barbarosa http://home.att.net/[...]
[3] 서적 Trojca & Jaugitz, p. 25
[4] 서적 Trojca & Jaugitz, p. 23
[5] 서적 Trojca & Jaugitz, p. 26
[6] 서적 Trojca & Jaugitz, pp. 23, 25
[7] 서적 Trojca & Jaugitz, p. 56
[8] 서적 Trojca & Jaugitz, p. 84
[9] 서적 Trojca & Jaugitz, p. 101
[10] 서적 Trojca & Jaugitz, pp. 121-3
[11] 웹사이트 Army FA museum adds WWII artillery pieces http://www.army.mil/[...] 2013-01-17
[12] 서적 山本「IV号突撃戦車"ブルムベア"」5頁
[13] 서적 山本「IV号突撃戦車"ブルムベア"」6頁
[14] 서적 山本「IV号突撃戦車"ブルムベア"」14頁
[15] 서적 山本「IV号突撃戦車"ブルムベア"」59頁
[16] 서적 山本「IV号突撃戦車"ブルムベア"」29頁
[17] 서적 山本「IV号突撃戦車"ブルムベア"」18頁
[18] 서적 山本「IV号突撃戦車"ブルムベア"」20、21頁
[19] 서적 山本「IV号突撃戦車"ブルムベア"」43頁
[20] 서적 山本「IV号突撃戦車"ブルムベア"」19、20頁
[21] 서적 山本「IV号突撃戦車"ブルムベア"」42、43頁
[22] 서적 山本「IV号突撃戦車"ブルムベア"」32頁
[23] 서적 山本「IV号突撃戦車"ブルムベア"」22頁
[24] 서적 'Sturmtiger And Sturmpanzer In Combat' Model Hobby (ポーランド) 2008
[25] 간행물 グランドパワー 2019年8月号別冊『ブルムベア / ベルゲパンター』
[26] 웹사이트 A German Soldier's Memory, The Eastern Front, Operation Barbarosa http://home.att.net/[...] 2021-02-21
[27] 문서 영어로는 불평분자 정도의 뜻을 가진 grumbler에 해당한다. "그리즐리 곰"으로도 알려졌으나, 그렇지는 않다.
[28] 서적 Trojca & Jaugitz, p. 23, quoting DTD Report 3066
[29] 서적 Trojca & Jaugitz, p. 25
[30] 서적 Trojca & Jaugitz, p. 23
[31] 서적 Trojca & Jaugitz, p. 26
[32] 문서 대한민국의 어느 군사잡지는 특별히 번역하지 않고 "림드"라고 영어 발음을 그대로 표기하곤 한다. 반대되는 용어는 테두리가 없다는 뜻의 rimless가 있다. 참고로 림드/림레스란 표현은 주로 탄약에서 사용하는데, 탄피 밑부분에 테가 돌출했으면 "림드"라 하고, 테두리가 없으면 "림레스"라 부른다. 림드와 림레스 탄약은 특히 탄띠급탄식 기관총에서 송탄 방식을 결정짓게 하는 요인이 된다.
[33] 서적 Trojca & Jaugitz, pp. 23, 25
[34] 서적 Trojca & Jaugitz, p. 56
[35] 서적 Trojca & Jaugitz, p. 84
[36] 서적 Trojca & Jaugitz, p. 101
[37] 서적 Trojca & Jaugitz, pp.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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