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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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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 법" 집단은 13세기 전반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종교 집단으로, 정확한 명칭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불교학자 미나가 노부미에 의해 "그 법"으로 명명되었다. 이들은 해골 의식과 성적 의식을 결합한 독특한 특징을 보이며, 13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최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14세기 초, 다른 종교 종파들의 비판과 민간 신앙으로의 전락으로 소멸했다. 20세기 이후, 사료 비판을 통해 다테카와류와는 다른 집단임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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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 집단
성적 묘사 관련 알림
일반 정보
일본어 표기「彼の法」集団 (카노 호우)
일본어 독음카노 호우 슈단
관련 경전내삼부경류

2. 명칭

이 집단은 정확한 명칭이 알려져 있지 않다.[1] 애초에 이름을 갖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1] 비슷한 시대에 료부 신도나 이세 신도 등의 종교 사상 운동이 있었지만, 이들의 이름은 나중에 붙여진 것이며 당시 사람들은 특별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1]

2018년 불교학자 미영 신미는 이 집단을 "그 법" 집단으로 명명했다.[2] 이 명칭은 이 집단에 관한 유일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인 『수법용심집』에서 일관되게 "그 법", "이 법"으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2] 미나가는 이외에도 '''이른바 "입천류"'''[3]나 '''"이른바"가 붙은 "입천류"'''[2]라고 호칭한다.

2008년 진언종 승려 시전 켄룡은 '''내 삼부경류'''라는 명칭을 제안했다.[4] 시바타가 이 명칭을 제안한 이유는 해골 본존의 교단이 근본 문헌에 "내 삼부경"이라는 제목의 경전을 사용하고 있었던 점과 『수법용심집』에 "여기에 사법이 있다. 내 삼부경[5]이라고 명(이름)한다"라고 되어 있는 점을 들었다.[5]

이 문서에서는 편의상 "그 법" 집단으로 통일하여 호칭한다.

3. 역사

"그 법" 집단은 13세기 전반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원은 불명이다. 다테가와류의 신정은 "그 법" 집단이 정규 진언승이 아닌, 민간 신앙의 샤먼적인 인물들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1] 진언종을 흉내 낸 아마추어가 만든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2]

미나가 노부요시는 창시자가 밀교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진 인물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나라 시대(618–907년)의 『대불정광취다라니경』에는 해골을 사용한 의식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 경전의 내용을 읽었거나 전해 들은 사람이 중심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3] 이 경전에는 성적인 내용이 직접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남녀 해골의 유용성에 차이가 언급되어 있어, 성적인 내용으로 오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3] 불전에 정통한 인물에 의해 창립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4]

성적 의식은 중세 밀교의 "적백이체론"과 "태내오위설"에서 발전했다.[5] "그 법" 집단은 해골 의식과 성적 의식 두 가지를 조합하여 성립되었다.[6] 13세기 당시에는 해골 의식과 성적 의식을 각각 행하는 일파가 있었지만, "그 법" 집단은 이 둘을 조합하여 에로스와 타나토스적인 기분 나쁨을 느끼게 했다.[6] 또한, 성적 의식을 중심 의식으로 삼았다는 점도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특징이다.[6]

밀교에는 사제 관계의 역사를 기록한 혈맥이 있지만, "그 법" 집단의 혈맥은 진언승이나 불교학자가 보면 날조라고 판단될 정도로 혼란스러운 계보를 가지고 있다.[7] "관정의 혈맥"과 "삼경일론의 상속 혈맥"이라는 두 개의 혈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유파는 정통 진언 밀교에는 존재하지 않는다.[7] 이는 진언종 다이고파산보인의 격식 있는 혈맥을 갖춘 진짜 다테가와류와는 대조적이다.

"그 법" 집단의 성적 의식을 해석할 때는 당시 사람들의 성행위에 대한 인식을 고려해야 한다. 미나가에 따르면, 나라 시대부터 에도 시대 말기까지 일본에서는 성에 대해 말하거나 보여주는 것이 웃음거리로 여겨졌다. 후지와라 아키히라의 『운주소식』에는 후시미이나리 제사에서 남녀 연예인이 구경거리로 "교접"을 하여 관중들의 폭소를 유발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법" 집단은 13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최성기를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1] 무주의 『잡담집』(가겐 3년(1305년))과 히로하시 쓰네미쓰의 『민경기』(분에이 4년(1267년) 11월 24일 조) 등에 관련 기록이 나타난다.[2][3][4] 『민경기』에 따르면, 분에이 4년(1267년) 태정대신 사이온지 킨무네의 장례식 밤에 누군가가 킨무네의 시신에서 목을 베어가는 사건이 발생했고, 당시 "髑髏法上人"(해골 의식을 행하는 승려)들에게 혐의가 쏠렸다.[4][5] 이 사건은 『증경』에도 채택되었다.[5]

분에이 5년(1268년), 도겐이 『촉루법사정기』를 저술하여 천태종의 입장에서 촉루법을 비판했다.[6] 같은 해, 진언종 승려 신정이 『수법용심집』을 저술하여 "그 법" 집단의 "촉루본존"을 비판했다.[7] 신정은 "그 법" 집단이 500권 이상의 성교를 가지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14세기 전반에는 민간 신앙으로 전락하며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1] 고소의 『계람습엽집』(14세기 전반)에는 여우, 개, 너구리 등의 해골을 소지하고 있는 무녀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야산 진언종의 학승 유쾌(1345년 - 1416년)는 덴주 원년/에이와 원년(1375년)에 보경초를 저술하여 "그 법" 집단, 입천류, 분칸보 홍진을 연결시켜 비판했다.

2000년대 이후, 독일일본학자 슈테판 켁(Stefan Köck) 등에 의해 본격적인 사료 비판이 시작되면서 "그 법" 집단(해골 본존의 교단), 진언종 입천류, 문관파가 각각 다른 집단임이 판명되고 명예가 회복되었다.[4]

3. 1. 기원

"그 법" 집단은 13세기 전반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다테가와류의 신정은 "그 법" 집단이 정규 진언승이 아닌, 민간 신앙의 샤먼적인 인물들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1] 즉, 진언종을 흉내 낸 아마추어가 만든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2]

미나가 노부요시는 창시자가 밀교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진 인물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나라 시대(618–907년)의 『대불정광취다라니경』에는 해골을 사용한 의식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 경전의 내용을 읽었거나 전해 들은 사람이 중심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3] 이 경전의 해골 의식에는 성적인 내용이 직접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남녀 해골의 유용성에 차이가 언급되어 있어, 이 부분이 성적인 내용으로 오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3] 즉, 불전에 정통한 인물에 의해 창립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4]

또한, 성적 의식은 중세 밀교의 "적백이체론"과 "태내오위설"에서 발전했다고 한다.[5]

"그 법" 집단은 해골 의식과 성적 의식 두 가지를 조합하여 성립되었다.[6] 13세기 당시에는 해골 의식과 성적 의식을 각각 행하는 일파가 있었지만,[6] "그 법" 집단은 이 둘을 조합하여 에로스와 타나토스적인 기분 나쁨을 느끼게 했다는 특징이 있다.[6] 또한, 성적 의식을 중심 의식으로 삼았다는 점도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특징이다.[6]

밀교에는 사제 관계의 역사를 기록한 계보인 혈맥이 있지만, "그 법" 집단의 혈맥은 진언승이나 불교학자가 보면 날조라고 판단될 정도로 혼란스러운 계보를 가지고 있다.[7] 또한, "관정의 혈맥"과 "삼경일론의 상속 혈맥"이라는 두 개의 혈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유파는 정통 진언 밀교에는 존재하지 않는다.[7] 이는 진언종 다이고파산보인의 격식 있는 혈맥을 갖춘 진짜 다테가와류와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그 법" 집단의 성적 의식을 해석할 때는 당시 사람들의 성행위에 대한 인식을 고려해야 한다. 미나가에 따르면, 나라 시대부터 에도 시대 말기까지 일본에서는 성에 대해 말하거나 보여주는 것이 웃음거리로 여겨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후지와라 아키히라의 『운주소식』에는 후시미이나리 제사에서 남녀 연예인이 구경거리로 "교접"을 하여 관중들의 폭소를 유발했다는 기록이 있다.

3. 2. 융성과 몰락

"그 법" 집단은 13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최성기를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1] 무주의 『잡담집』(가겐 3년(1305년))과 히로하시 쓰네미쓰의 『민경기』(분에이 4년(1267년) 11월 24일 조) 등에 "그 법" 집단과 관련된 기록이 나타난다.[2][3][4]

『민경기』에 따르면, 분에이 4년(1267년) 태정대신 사이온지 킨무네의 장례식 밤에 누군가가 킨무네의 시신에서 목을 베어가는 사건이 발생했고, 당시 "髑髏法上人"(해골 의식을 행하는 승려)들에게 혐의가 쏠렸다고 한다.[4][5] 이 사건은 『증경』에도 채택되었다.[5]

분에이 5년(1268년), 도겐이 『촉루법사정기』를 저술하여 천태종의 입장에서 촉루법을 비판했다.[6] 같은 해, 진언종 승려 신정이 『수법용심집』을 저술하여 "그 법" 집단의 "촉루본존"을 비판했다.[7] 신정은 "그 법" 집단이 500권 이상의 성교를 가지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 법" 집단은 14세기 전반에는 민간 신앙으로 전락하며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1] 고소의 『계람습엽집』(14세기 전반)에는 여우, 개, 너구리 등의 해골을 소지하고 있는 무녀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3. 3. 유쾌에 의한 비판

고야산 진언종의 학승 유쾌(1345년 - 1416년)는 덴주 원년/에이와 원년(1375년)에 보경초를 저술하여 "그 법" 집단, 입천류, 분칸보 홍진을 연결시켜 비판했다.

3. 3. 1. 남조와의 정치 투쟁설

고야산 진언종의 학승 유쾌(1345년 - 1416년)는 남북조 시대 북조 측 인물로, 남조의 고다이고 천황을 섬긴 분칸보 홍진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다쓰카와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설이 있다. 분칸은 뛰어난 불교학자였기 때문에 정면으로 논쟁하기 어려워, 다쓰카와류를 사교로 낙인찍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남북조 시대(1336–1392년)로, 조정은 남조북조로 나뉘어 있었다. 북조 측이었던 유쾌는 남조의 고다이고 천황고무라카미 천황을 가까이서 섬기며 권세를 떨쳤던 분칸 일파와 적대 관계에 있었다. 1374년에는 남북조의 싸움이 거의 북조의 승리로 결정되어 남조 측의 분칸파를 공격할 좋은 기회였다.

유쾌는 분칸파와의 논쟁에서 승리하면 고야산 진언종 내부에서 자신의 지위가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칸은 1,000권 이상의 방대한 불교학적 저작을 남긴 지적인 거인이었고, 그의 학설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쾌는 다쓰카와류를 희생양으로 삼아 사교로 낙인찍고, 분칸이 다쓰카와류 소속이라고 주장하면 분칸파를 쉽게 배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쾌는 덴주 원년/에이와 원년(1375년)에 저술한 『보경초』에서 분칸과 다쓰카와류를 직접 연결하지 않고, 독자가 오해하도록 유도하는 교묘한 방식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홍진류(분칸파)의 서적은 (중략) 많이 야마토의 나라와 엣추의 나라에 존재한다(후략)"라는 문장 바로 뒤에 "다쓰카와류도 또한 (중략) 엣추와 야마토의 나라에 많이 (후략)"라는 문장을 배치하는 식이었다. 미나가는 이를 두고 "저자 유쾌가 공격하려는 모든 법류를 마치 다쓰카와류와 마찬가지로 성적인 사의로 보이게 하는 방법은 매우 교묘하고 근거가 박약한 중상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출신 종교학 연구자 가에탕 라포 또한 분관보 홍진과 다테카와류가 사교로 여겨진 것은 유쾌의 『보경초』에 의한 텍스트 조작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3. 3. 2. 정사변별설

프랑스 출신 종교학 연구자인 가에탕 라포는 2017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유쾌가 적대 파벌을 효과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여러 파벌을 의도적으로 혼동하여 하나의 거대한 이단 유파로 묶었다고 주장한다. 라포는 유쾌가 분관보 홍진 개인을 집중 공격했다는 미나가 노부미의 주장과는 달리, 여러 적대 파벌을 골고루 노렸다고 본다. 예를 들어, 유쾌의 『보경초』에 의한 다테카와류 비판 중 일부는 다테카와류가 아닌 금강왕원류의 실현 등을 비판하고 있다.

라포에 따르면, 유쾌는 이처럼 혼동하기 쉬운 여러 적대 파벌을 의도적으로 묶어 하나의 거대한 이단 유파로 취급함으로써, 개별 법류에 대한 교의 분석을 회피했다. 그리고 이 가상상의 거대 유파가 후세에 다테카와류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추측한다.

라포는 유쾌의 이러한 방식이 이후 진언종에서 정(正)과 사(邪)를 변별하는 기준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승려나 저작이 유쾌(또는 그 후계자)의 목록이나 논의에 나타나 있다면, 그 교의는 내용 분석 없이도 이단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쾌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후까지 600년 가까이 이 목록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라포는 유쾌 등이 만들어낸 목록에 의한 이단 비판 방식이 현대 진언종 형성에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한다.

3. 4. 문관・입천류의 그 후

문관은 음사(淫祠)와 사교의 요승이라는 낙인이 찍혀 그 일파는 남조와 함께 멸망했다.[1] 유호의 『전등광록』(1707년)은 "상주장(上奏状)"이라는 위조 문서를 인용하여 문관이 다키니텐을 모시고 산도(算道)·복서(卜筮)·주술수험을 조종하는 "외법"의 괴승으로, 음양사나 산복과 같은 부류라고 말한다.[1]

타치카와류는 희생양이 되었으나 간신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에도 시대 중기에 끊어졌다.[2]

3. 5. 문관・입천류의 명예 회복

2000년대 이후, 독일일본학자 슈테판 켁(Stefan Köck) 등에 의해 본격적인 사료 비판이 시작되면서 "그 법" 집단(해골 본존의 교단), 진언종 입천류, 문관파가 각각 다른 집단임이 판명되고 명예가 회복되었다.[4] 이 문제는 2000년 이전부터 쿠시다 료코나 코다 유운 등도 부분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4][5]

4. 교의

다음은 20세기까지의 연구에 따른 "그 법" 집단의 교의이며, 역사적 실상과 다를 수 있다.

"그 법" 집단은 진언종의 연념(인관)과 견련을 시조로 하는 법류인 입천류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본래의 입천류와 구별하기 위해 미영 신미가 제창한 명칭이다. 이들은 『수법용심집』에서 "그 법" 또는 "이 법"으로 불렸다. 시전 켄룡은 이들을 "내 삼부경류"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 법" 집단의 본존은 다키니이며,[1] 소의경전은 『유가경』, 『이취경』, 『보협인경』, 『보리심론』의 "삼경일론"이다.[1][2][3][4][5]

4. 1. 본존

"그 법" 집단의 본존은 다키니이다.[1]

4. 2. 소의경전

"그 법" 집단은 『유가경』, 『이취경』, 『보협인경』, 『보리심론』의 "삼경일론"을 소의경전으로 삼았다.[1][2][3][4][5]

4. 3. 상세

심정의 『수법용심집』(1272년)에는 "해골 본존"에 대한 해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6] "해골 본존"에는 대두 본존, 소두 본존, 월륜형(가린교)의 본존 세 종류가 있다.[7] 해골은 엄선된 것을 가공하여 본존으로 만들며, 밤마다 자축 시에 반혼향을 피우고, 반혼의 진언을 천 번 외우는 의식을 행한다.

"그 법" 집단은 "인형저"(닌교쇼)라는 독자적인 금강저를 사용했다. 이 금강저는 양쪽 끝의 한쪽은 삼고저, 다른 한쪽은 이고저가 되어 인형(히토가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법" 집단의 본류에서는 남녀 교합의 체험을 즉신성불의 경지로 보고, 남녀 교합의 모습을 만다라로 표현했다는 설이 있다. 이는 밀교의 '''자성청정'''(여래장 사상)과 『이취경』의 십칠청정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취경』에는 성행위를 포함하여, 부처나 보살의 경지에 이른다면 인간의 행위는 모두 본래 청정한 것이라고 설해져 있다.

"그 법" 집단의 교의는 동밀(진언밀교)의 흐름을 잇는 사종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대밀(천태종의 밀교)의 현지귀명단과 비교되기도 한다.

5.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

"그 법" 집단은 특이한 교리 때문에 "입천류"라는 이름으로 여러 창작물에서 소재로 사용되었다. 구로스 기이치로나 유메마쿠라 바쿠의 작품이 그 예시이다. 비디오 게임 Fate/EXTRA CCC에는 "진언입천영천류"의 마지막 교주이자 선대 교주의 딸이라는 설정의 캐릭터가 등장한다.[1]

과거에는 "다테카와류"라는 이름으로 "성행위를 통해 비술을 연마하는 비밀 결사"로 묘사되어 전기 소설이나 괴기 소설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었다. 유메마쿠라 바쿠의 『마수 사냥꾼』, 교고쿠 나츠히코의 『광골의 꿈』, 쿠로스 키이치로의 『바사라 태평기』, 아사마츠 켄의 『잇큐 암야행』 등이 대표적이다. 컴퓨터 게임 『Fate/EXTRA CCC』에는 진언 다테카와류(정확히는 그 가공의 방류인 '진언 다테카와 영천류')의 마지막 종주이자 전 종주의 딸이라는 설정의 캐릭터가 등장한다.[1]

참조

[1] 서적 理趣經 大八木興文堂
[2] 서적 理趣經 大八木興文堂
[3] 서적 講説 理趣経 四季社
[4] 서적 理趣經 大八木興文堂
[5] 서적 秘密経典 理趣経 平河出版社
[6] 간행물 いわゆる「立川流」ならびに髑髏本尊儀礼をめぐって https://www.academia[...] 智山勧学会 2018-03-31
[7] 간행물 いわゆる「立川流」ならびに髑髏本尊儀礼をめぐって・資料 https://www.academia[...] 智山勧学会 201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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