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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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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호륜은 1925년 출생하여 일제강점기 비행훈련을 받고 조종사가 되었으며, 대한민국 공군 창설에 참여한 인물이다. 6.25 전쟁에 참전하여 초기 수도권 방어 작전, 낙동강 방어 작전, 미림기지 공격 등에 참여했고, 이후 제10전투비행전대장을 역임하며 평양대공습 작전을 수행했다. 전쟁 후 공군본부 요직을 거쳐 교통부 항공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1990년 별세했다. 그의 아들 강주순은 미국 국무부 차관보를, 손자는 공군 비행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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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륜
기본 정보
대한민국 공군 최초 전투기 F-51 인수 및 출격 재연식
대한민국 공군 최초 전투기 F-51 인수 및 출격 재연식 (2000년 6월 25일)
종류군사 재연
날짜2000년 6월 25일
위치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주최대한민국 공군
관련 인물김두만 (당시 공군참모총장)
주요 내용
목적6.25 전쟁 50주년 기념 및 대한민국 공군의 역사 재조명
행사 내용F-51 전투기 인수 및 출격 재연
공군 군악대 공연
블랙이글스 에어쇼
참석 대상6.25 전쟁 참전 용사
역대 공군 참모총장
일반 시민
기타김두만 당시 공군참모총장 기념사
F-51 전투기 조종사들의 회고담 발표

2. 6.25 전쟁 이전의 삶

1925년 4월 2일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장재부락에서 출생하였다. 광주사범학교에서 2년간 수학하다가 일제강점기 일제의 강제동원령에 따라 비행훈련을 받고 조종사가 되었다.

이후 포로로 잡혀있다가 정부 수립 이전에야 조국에 돌아와 항공 관련 사람들과 협력하여 한국 공군 창설에 노력하였고, 1948년 육군 항공부대에서 교육을 받았다. 같은 해 9월 미군으로부터 L-4 항공기 10대를 인수한 조종사였으며, L-4 항공기로 9월 15일 서울 상공을 시위비행한 최초의 공군 조종사 10명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듬해 10월 1일 공군 독립과 함께 10월 25일 공군 소위(군번 50045)로 임관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여순 10·19사건 진압작전과 제주 4·3 사건 진압작전 및 지리산 공비 토벌전에 참가하여 많은 활동을 하였다. 또한 1950년 5월 초 도입이 완료된 T-6 항공기 10대의 조종사 중 하나로 5월 14일 오후 2시 여의도기지에서 편대 비행을 하기도 하였다.

3. 6.25 전쟁 시기의 활동

6.25 전쟁 발발 직후, 강호륜은 T-6기에 15kg 폭탄을 싣고 출격하여 남진하는 적 전차와 차량 행렬을 공격, 적 전차 및 트럭 여러 대와 병력 250여 명을 사살하는 등 수도권 방어 항공작전에 참가하였다.[1] 그는 대한민국 공군 최초로 미 공군의 P-51 머스탱(F-51)을 인수한 조종사 10명 중 한 명이었다.[1]

3. 1. 1950년

1950년 6월, 6.25 전쟁 발발 직후 수도권 방어를 위한 항공작전에 참가하여 T-6기에 15kg 폭탄을 싣고 출격하였다. 적의 대공포화 속에서도 초저공 비행을 하며 남진하는 적 전차와 차량 행렬을 공격, 적 전차 및 트럭 여러 대와 병력 25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1] 대한민국 공군 최초로 미 공군의 P-51 머스탱(F-51)을 인수한 조종사 10명 중 한 명으로, 7월 3일부터 본격적인 출격작전을 시작하였다.[1] 8월에는 낙동강전선 방어작전에, 10월에는 북한 미림기지 공격을 위한 출격작전에 참가하였다.[1] 그해 겨울, 중공군의 2차 공세로 후퇴하면서 제주기지로 이동하여 비행훈련을 지도하였다.[1]

3. 2. 1951년

1951년 10월부터 한국 공군의 강릉기지 단독 출격 작전에서 제10전투비행전대(현 제10전투비행단의 모체) 소속 비행대대장으로 출격 작전을 지휘하였다.

3. 3. 1952~1953년

1952년 1월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에서는 강릉전진부대장인 김신 대령을 도와 작전처장으로 출격 편대와 폭격작전을 계획하였다. 1952년 6월 16일부터 1953년 1월 16일까지 제10전투비행전대장을 역임하며 UN 공군이 주도하는 평양대공습 작전에 참가하는 등 총 78회의 전투출격 임무를 수행하고, 전대장 및 참모로서 후배들의 출격작전을 계획하고 지휘하였다.

4. 6.25 전쟁 이후의 삶과 자손들

전쟁 후 강호륜은 공군본부 인사국장, 작전국장, 감찰관 등을 역임하며 공군 발전에 힘썼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51년 을지무공훈장, 1952년 충무무공훈장, 1956년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1961년 7월 4일 공군 준장으로 전역한 후 교통부 항공국장, 관광국장, 기획관리실장 등 정부 요직을 역임하였고, 이후 미국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90년 3월 12일 별세하였다.

아들 강주순(미국명 엘리엇 강)[2]은 미국 국무부 차관보를 역임했다. 한국계 인사가 미국 연방정부 부처의 차관보에 임명된 것은 토드 김 법무부 환경·천연자원 담당 차관보 지명 이후 두 번째이다.

손자는 강호륜 준장의 뒤를 이어 학군 42기 공군 비행사가 되었다.

참조

[1] 뉴스 공군의 최초 전투기 F-51 인수.출격 재연식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21-11-09
[2] 뉴스 Ho Ryun Kang, 64, Ex-South Korean Aide. https://www.nytimes.[...] 1990-03-13
[3] 웹인용 https://www.mpv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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