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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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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계순희는 평양 출신의 유도 선수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유도 48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북한 유도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이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며 2체급을 제패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하형주와 함께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하는 등 대한민국에서도 인기를 얻었으며, 2018년 국제 유도 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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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순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국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생일1979년 8월 2일
로마자 표기Gye Sunhui
한글 표기계순희
한자 표기桂順姬
매큔-라이샤워 표기Kye Sunhŭi
스포츠 정보
종목유도
체급-48 kg, -52 kg, -57 kg
소속팀모란봉체육단
세계 랭킹1
세계 랭킹 연도2001
세계 랭킹 체급여자 52 kg
세계 랭킹 연도 22003
세계 랭킹 체급 2여자 57 kg
세계 랭킹 연도 32005
세계 랭킹 체급 3여자 57 kg
세계 랭킹 연도 42007
세계 랭킹 체급 4여자 57 kg
아시아 선수권 대회 랭킹1
아시아 선수권 대회 랭킹 연도1997
아시아 선수권 대회 랭킹 연도 21998
아시아 선수권 대회 랭킹 체급 2여자 52 kg
아시아 선수권 대회 랭킹 연도 31999
올림픽 성적
올림픽 랭킹1
올림픽 랭킹 연도1996
올림픽 랭킹 체급여자 48 kg
메달 기록
메달 스포츠여자 유도
메달 국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메달 대회올림픽
금메달1996 애틀랜타 | 48 kg
은메달2004 아테네 | 57 kg
동메달2000 시드니 | 52 kg
메달 대회세계 선수권 대회
금메달2001 뮌헨 | 52 kg
금메달2003 오사카 | 57 kg
금메달2005 카이로 | 57 kg
금메달2007 리우데자네이루 | 57 kg
은메달1997 파리 | 52 kg
동메달1999 버밍엄 | 52 kg
메달 대회아시안 게임
금메달1998 방콕 | 52 kg
동메달2002 부산 | 52 kg
메달 대회아시아 선수권 대회
금메달1997 마닐라 | 52 kg
금메달1999 원저우 | 52 kg

2. 경력

평양에서 태어나 10살 때 모란봉과외체육학교에서 유도를 시작했다.[8] 1995년에는 48kg급 선수임에도 국내 무차별급 대회에서 우승하며 일찍이 재능을 보였다.[8]

본격적으로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린 것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었다. 당시 만 16세의 나이로 와일드카드를 통해 여자 48kg급에 출전하여, 세계 최강자로 꼽히던 일본다무라 료코를 꺾고 예상을 깨며 금메달을 획득했다.[5][8] 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유도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체급을 52kg급으로 올려 활동하며 1997년 세계 선수권 은메달, 1999년 세계 선수권 및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했다.[6][5] 2001년 세계 선수권에서는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6]

2003년에는 다시 57kg급으로 체급을 변경하여 2003년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했으며, 2005년과 2007년 세계 선수권에서도 연달아 정상에 오르며 세계 선수권 통산 4회 우승을 달성했다.[6]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추가했다.[5]

네 번째 올림픽 무대였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16강에서 탈락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5] 2010년 10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16] 코치로서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자 유도 대표팀을 이끌고 안금애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선수 시절의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아 김일성상을 비롯해 '노력영웅', '인민체육인' 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에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으며, 2018년에는 국제 유도 연맹(IJ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1. 어린 시절과 초기 경력

평양에서 2남 1녀 중 외동딸로 태어나 10살 때 모란봉과외체육학교에서 유도를 시작했다.[8] 1995년에는 48kg급 선수였음에도 국내 무차별급 대회에서 우승하며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8]

보통강 고급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96년, 만 16세의 어린 나이로 애틀랜타 올림픽 유도 여자 48kg급에 와일드카드로 출전했다. 당시 국제 무대에서는 거의 무명이었으나, 예선부터 강호들을 차례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결승전에서는 당시 84연승을 기록하며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던 일본의 유도 영웅 다무라 료코를 만나 예상을 뒤엎고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5][8][9][10][11][12] 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유도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으며, 계순희는 만 16세로 당시 유도 종목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록도 세웠다.

귀국 후 계순희는 김정일로부터 '인민체육인' 칭호와 함께 고급 승용차, 아파트, 조선노동당 당원 자격 등 파격적인 포상을 받았다. 또한 그의 금메달 획득을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되었는데, 이 우표에는 승리 후 환호하는 계순희와 당황한 표정의 다무라 료코가 함께 그려져 있어 일본과의 경쟁 관계를 드러내기도 했다.[13] 한편, 이 결승전에서 계순희가 도복 옷깃을 왼쪽 앞으로 여며 입은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는 당시 명문화된 규정은 없었으나 암묵적으로 지켜지던 관례를 깬 것으로, 이후 국제 유도 연맹(IJF) 규정에 도복 착용법이 명시되는 계기가 되었다. 상대였던 다무라 료코는 경기 중 계순희의 도복 때문에 기술 구사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술회했으며, 상대에 대한 정보 부족과 더불어 이러한 변칙적인 도복 착용이 승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14][15]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계순희는 체급을 52kg급으로 올렸다. 1997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는 결승에 올라 프랑스의 마리-클레르 레스토와 맞붙었으나, 경기 종료 30초를 남기고 역전패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계순희는 판정에 강하게 불복하며 한동안 매트 위에서 내려오지 않기도 했다.[6] 1998년 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6] 1999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8강에서 일본의 나라사키 노리코에게 큰 바깥 허리치기로 패했지만, 패자부활전을 거쳐 동메달을 획득했다.[6]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준결승에서 쿠바의 레그나 베르데시아에게 1-2 판정으로 아쉽게 패하며 동메달을 추가했다.[5]

2. 2.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보통강 고급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96년, 만 16세의 나이로 와일드카드를 통해 애틀랜타 올림픽 유도 여자 48kg급에 처음 출전했다.[8] 당시 국제 무대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으나, 여러 강호들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당시 해당 체급에서 84연승을 달리며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던 일본의 유도 영웅 다무라 료코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5][8][9][10][11][12] 이 금메달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유도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으며, 계순희는 만 16세로 당시 유도 종목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귀국 후 김정일로부터 '인민체육인' 칭호와 함께 고급 승용차, 아파트, 그리고 조선노동당 당원 자격을 부여받았다. 또한, 계순희의 금메달 획득을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되었는데, 이 우표에는 승리 후 주먹을 불끈 쥔 계순희와 당황한 표정의 다무라 료코가 함께 그려져 있어 일본에 대한 경쟁심을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았다.[13]

한편, 이 결승전에서 계순희가 도복을 왼쪽 앞으로 여며 입은 것이 논란이 되었다. 당시에는 명문화된 규정이 없었으나, 암묵적으로 오른쪽 옷깃을 먼저 여미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제 유도 연맹 규정에 도복 착용법이 명시되었다. 다무라 료코는 경기 중 계순희의 도복 때문에 기술을 걸기 어려웠다고 밝혔으며, 계순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던 점도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분석된다.[14][15]

2. 3. 체급 변경과 세계 선수권 대회 활약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1997년에는 52kg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그해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하여 애틀랜타 올림픽 해당 체급 우승자인 프랑스의 마리-클레르 레스토와 맞붙었다. 경기 중 포인트를 앞서갔으나 종료 30초 전에 역전패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다. 경기 종료 후, 계순희는 판정에 불복하며 한동안 매트 위에 서 있기도 했다.[6] 1998년 아시안 게임 유도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6]

1999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8강에서 일본의 나라사키 노리코에게 큰 바깥 허리치기로 패했지만, 패자부활전을 통해 동메달을 획득했다.[6] 이듬해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준결승에서 쿠바레그나 베르데시아에게 1-2 판정으로 패하여 동메달에 머물렀다.[5]

2001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결승에서 독일의 라파엘라 그로스를 유효승으로 꺾고 마침내 세계 선수권 대회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6] 그러나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8강에서 중국의 션둥메이에게 판정패하며 3위를 기록했다.[6]

2003년에는 다시 체급을 57kg급으로 올렸다. 그해 체코 국제 대회에서는 일본의 이와타 치에에게 패해 3위에 머물렀지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결승에서 독일의 이보네 베니쉬에게 기권승을 거두며 52kg급에 이어 57kg급까지 2체급 세계 선수권 제패에 성공했다.[6]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결승에서 다시 베니쉬와 맞붙었으나 지도 1개를 받아 패배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5]

2005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결승에서 다시 만난 베니쉬를 안쪽 허벅다리 걸기로 꺾고 우승하며 전년도 올림픽 패배를 설욕하고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6] 2007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결승에서 스페인이사벨 페르난데스를 허리던지기 한판으로 꺾고 세계 선수권 대회 통산 4번째 금메달이자 3연패(2003, 2005, 2007)를 달성했다.[6]

2008년에는 독일 국제 대회에 63kg급으로 한 체급 올려 출전했지만, 3회전에서 일본우에노 요시에에게 유효패를 당하며 3위에 그쳤다.[6] 같은 해 베이징 올림픽에는 다시 57kg급으로 출전했으나, 2회전(16강)에서 프랑스의 바바라 아렐에게 유효패를 당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5]

2010년 10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보통강체육단의 유도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16] 2018년에는 국제 유도 연맹(IJ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시상식에는 대한민국조민선과 함께 시상대에 올랐다.

2. 4.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과 이후 활약

아테네 올림픽 57kg급 결승에서는 2003년 세계 선수권 결승 상대였던 독일의 이보네 베니쉬와 다시 맞붙었으나 지도 1개 차이로 패배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5]

이후 2005년 세계 선수권 결승에서는 다시 만난 베니쉬를 안쪽 허벅다리 걸기로 꺾고 우승했으며,[6] 2007년 세계 선수권 결승에서는 스페인이사벨 페르난데스를 허리 던지기로 꺾고 세계 선수권 2연패 및 통산 4번째 금메달을 달성했다.[6] 이러한 활약으로 김일성상 수상을 비롯해 '노력영웅', '인민체육인' 등의 칭호를 받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운동선수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베이징 올림픽에도 57kg급으로 출전했지만, 2회전(16강)에서 프랑스의 바바라 아렐에게 유효패를 당해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5]

2010년 10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보통강체육단 유도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16] 이후 런던 올림픽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유도 대표팀 코치를 맡아 안금애의 금메달 획득을 도왔다. 이는 계순희 본인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두 번째 유도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2018년에는 국제 유도 연맹(IJ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시상식에는 대한민국조민선과 함께 시상대에 올랐다.

2. 5.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은퇴

2008년에는 독일 국제 대회에 63kg급으로 출전하였으나 3회전에서 일본의 우에노 준에에게 유효로 패배하여 3위에 머물렀다.[6] 같은 해 베이징 올림픽에는 다시 57kg급으로 출전했지만, 2회전(16강)에서 프랑스의 바바라 에레에게 유효패를 당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5]

2010년 10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보통강체육단의 유도 코치로 활동을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16] 이후 코치로 전향하여 런던 올림픽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유도 대표팀 코치로 참가해 안금애의 금메달 획득을 지원했다. 이는 계순희 본인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두 번째 유도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2018년에는 국제 유도 연맹(IJF)이 선정한 19명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으며, 시상식에서는 대한민국조민선과 함께 나란히 수상하는 모습을 보였다.

3. 북한에서의 영예와 대한민국과의 관계

북한에게 있어 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중요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2006년 2월 27일, 유도 코치 김철(金哲)과 결혼했다.[18][16]

3. 1. 북한에서의 영예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유도 여자 48kg급에 만 16세의 나이로 출전하여, 당시 국제 무대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강호 일본다무라 료코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유도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으며, 당시 유도 부문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기록이기도 했다.

이후 국제 대회에서도 꾸준히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주요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대회체급성적
1997년세계 선수권52kg급은메달
1999년세계 선수권52kg급동메달
2000년시드니 올림픽52kg급동메달
2001년세계 선수권52kg급금메달
2003년세계 선수권57kg급금메달
2004년아테네 올림픽57kg급은메달
2005년세계 선수권57kg급금메달
2007년세계 선수권57kg급금메달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에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김일성상을 수상했으며, '노력영웅'과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았다. 이는 운동선수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위로 평가된다.

3. 2. 대한민국과의 관계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았으며,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는 한국의 국민적 영웅으로 불리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유도 95kg급 금메달리스트 하형주와 함께 최종 성화 봉송 주자를 맡았다.[17]

4. 주요 전적

유도는 10세 때 시작했으며, 1995년에는 48kg급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무차별급 대회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다.[8]

보통강 고급중학교 재학 중이던 1996년,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16세의 나이에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유도 48kg급에 처음 출전했다. 당시 이 체급에서 84연승을 기록하며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일본의 다무라 아키코(다무라 료코)를 결승에서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5][8][9][10][11][12] 이 예상치 못한 승리는 북한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귀국 후 김정일로부터 '인민체육인' 칭호와 함께 고급 승용차, 아파트, 그리고 조선노동당 당원 자격을 받았다. 또한, 계순희의 금메달 획득을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되었는데, 이 우표에는 승리 후 환호하는 계순희와 당황하는 다무라의 모습이 함께 담겨 당시의 분위기를 전해주었다.[13]

한편, 이 결승전에서 계순희가 유도복을 왼쪽 옷깃이 위로 오도록 입은 것이 논란이 되었다. 당시에는 명문화된 규정이 없었으나 암묵적으로 오른쪽 옷깃이 위로 오도록 입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제 유도 규칙에 유도복 착용 방법에 대한 규정이 명시되었다. 다무라 료코는 경기 중 계순희의 도복 때문에 기술을 걸기 어려웠다고 회고했으며, 전혀 정보가 없던 상대였다는 점과 함께 이 부분이 승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14][15]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52kg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1997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결승에 진출하여 애틀랜타 올림픽 52kg급 금메달리스트인 프랑스의 마리-클레르 레스토와 맞붙었다. 경기 중 포인트를 앞서갔으나 종료 30초를 남기고 역전패하여 2위를 차지했다. 경기 종료 후 판정에 불복하는 듯 한동안 매트 위에 서 있기도 했다.[6]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는 우승을 차지했으며,[6] 1999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8강에서 일본의 나라사키 노리코에게 큰 바깥 허리치기로 패했으나, 패자부활전을 통해 3위에 올랐다.[6]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준결승에서 쿠바의 레그나 베르데시아에게 1-2 판정으로 패하며 동메달을 획득했다.[5]

2001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결승에서 독일의 라파엘라 그로스를 유효승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6] 그러나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는 8강에서 중국의 션둥메이에게 판정패하며 3위에 머물렀다.[6]

2003년에는 다시 체급을 57kg급으로 올렸다. 체코 국제 대회에서는 일본의 이와타 치에에게 패해 3위를 기록했지만, 2003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결승에서 독일의 이보네 베니쉬가 기권하면서 우승하여 2개 체급 세계 선수권 제패를 달성했다(올림픽 포함 시 3체급 석권).[6]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에서는 다시 만난 베니쉬에게 지도 1개 차이로 패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5]

이후에도 57kg급에서 활약을 이어갔다. 2005년 세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는 베니쉬를 안쪽 허벅다리 걸기로 꺾고 우승했으며,[6] 2007년 세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는 스페인의 이사벨라 페르난데스를 허리 던지기 한판으로 꺾고 세계 선수권 대회 2연패이자 통산 4번째 우승을 달성했다.[6] 2008년에는 독일 국제 대회에 63kg급으로 출전했으나 3회전에서 일본의 우에노 준에에게 유효패를 당해 3위에 그쳤다.[6] 같은 해 베이징 올림픽에는 다시 57kg급으로 출전했지만, 2회전에서 프랑스의 바바라 에레에게 유효패를 당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5]

2010년 10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보통강체육단의 유도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16] 2018년에는 국제 유도 연맹(IJ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시상식에는 대한민국조민선과 함께 올랐다.

주요 대회 성적
연도대회개최지체급성적
1996년제26회 하계 올림픽미국 애틀랜타-48kg금메달 [5]
1997년세계 선수권 대회프랑스 파리-52kg은메달 [6]
1997년아시아 선수권 대회필리핀 마닐라-52kg금메달 [6]
1998년제13회 아시안 게임태국 방콕-52kg금메달 [6]
1999년아시아 선수권 대회중국 원저우-52kg금메달 [6]
1999년세계 선수권 대회영국 버밍엄-52kg동메달 [6]
2000년체코 국제 대회체코 프라하-52kg금메달 [6]
2000년제27회 하계 올림픽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52kg동메달 [5]
2001년독일 국제 대회독일 뒤셀도르프-57kg금메달 [6]
2001년세계 선수권 대회독일 뮌헨-52kg금메달 [6]
2002년제14회 아시안 게임대한민국 부산-52kg동메달 [6]
2003년체코 국제 대회체코 프라하-57kg동메달 [6]
2003년세계 선수권 대회일본 오사카-57kg금메달 [6]
2004년제28회 하계 올림픽그리스 아테네-57kg은메달 [5]
2005년세계 선수권 대회이집트 카이로-57kg금메달 [6]
2007년세계 선수권 대회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57kg금메달 [6]
2008년독일 국제 대회독일 함부르크-63kg동메달 [6]
2008년제29회 하계 올림픽중국 베이징-57kg16강 (2회전 탈락) [5]



(출처: [5], [6], JudoInside.com)

참조

[1] 웹사이트 Official website of the Beijing Olympic Games http://en.beijing200[...]
[2] 뉴스 Global athletes chase Olympic dream https://web.archive.[...] Xinhua 2008-06-20
[3] 뉴스 Kye Sun Hui pinned high hope to win gold at Olympics for DPRK https://web.archive.[...] Xinhua 2008-07-30
[4] 웹사이트 Moranbong District Juvenile Sports School http://www.naenara.c[...] 2016-03-10
[5] 웹사이트 Biography and Olympic Results http://www.sports-re[...]
[6] 웹사이트 listes des judokas http://www.alljudo.n[...]
[7] 뉴스 Kye Sun Hui pinned high hope to win gold at Olympics for DPRK http://news.xinhuane[...]
[8] 뉴스 大波乱 YAWARA銀の涙 夕刊フジ 1996-07-28
[9] 뉴스 애틀랜타올림픽 대회 8일째, 무명의 북한 계순희 유도 금메달로 파란 KBS 뉴스 1996-07-27
[10] 뉴스 北,유도 계순희 선수,일본 다무라 료코 꺾고 금메달 획득 https://imnews.imbc.[...] MBC 뉴스데스크 1996-07-27
[11] 뉴스 애틀랜타올림픽; 북한선수단 달라진 모습 보여 KBS 뉴스 1996-08-05
[12] 뉴스 일본 후지 TV,북한 유도 계순희 선수 소개 https://imnews.imbc.[...] MBC 뉴스데스크 1996-11-15
[13] 서적 北朝鮮事典―切手で読み解く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 竹内書店新社 2001
[14] 간행물 第26回オリンピックアトランタ大会柔道競技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1996-09
[15] 뉴스 【記者は見た~あの五輪】北の天才少女の「左前」 1996年アトランタ五輪・前編 https://web.archive.[...] 産経新聞 2012-07-06
[16] 뉴스 アトランタ柔道金ケー・スンヒが現役引退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0-10-09
[17] 뉴스 부산 아시안게임 성화 하형주 계순희 최종 점화 https://imnews.imbc.[...] MBC 뉴스데스크 2002-09-29
[18] 뉴스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계순희 북한 선수 결혼식 https://imnews.imbc.[...] MBC 뉴스데스크 200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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