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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오물투척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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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은 1966년 9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두한 의원이 삼성그룹의 밀수 사건에 항의하며 정일권 국무총리와 장기영 부총리 등 각료들에게 인분을 투척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삼성그룹의 한국비료공업 사카린 밀수 사건에서 비롯되었으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밀수를 5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언론의 집중 보도가 더해지면서 사회적 파장이 커졌다. 김두한은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으며, 삼성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 주식을 정부에 헌납하고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은 권력형 비리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받으며, 검찰의 재벌 밀수 조사와 국회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구성으로 이어졌으나 뚜렷한 결말 없이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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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오물투척사건
사건 개요
사건명국회 오물 투척 사건
발생 일시1969년 11월 10일
장소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장
가해자김대중 (당시 신민당 국회의원)
피해자박정희 대통령 및 다수의 국회의원
사용된 오물인분
배경
당시 정치 상황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 강행
신민당의 강력한 반발
정치적 대립 격화
김대중 의원의 동기정부 여당의 강압적 태도에 대한 항의
야당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한 행동
경과
사건 발생김대중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오물을 투척
당시 상황국회는 아수라장으로 변함
박정희 대통령에게 오물이 튐
국회의원들이 격렬하게 항의
사건 직후김대중 의원은 국회 윤리위원회에 회부됨
큰 사회적 파장
야당은 김대중 의원 제명 반대
여당은 김대중 의원 제명 요구
결과 및 영향
징계김대중 의원 30일간 등원 정지
정치적 영향박정희 정권의 강압적 통치에 대한 반발 심화
야당의 투쟁 강도 강화
훗날 김대중 의원의 정치적 입지 강화
사회적 영향국회 오물 투척 사건은 정치적 항의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음
관련 문서
관련 문서김대중

2. 발단

1966년 9월 15일 경향신문을 통해 사카린 밀수 사건이 폭로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어났다.[1] 이 사건은 1966년 5월 24일,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 주식회사가 건설 자재로 위장하여 사카린의 원료 58톤을 밀수한 사건이다. 6월 초에 벌금 추징으로 일단락되었으나, 뒤늦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확산되었다. 특히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가져온 데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밀수'를 '5대 사회악'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었다는 점과, 삼성 소유의 중앙매스콤과 경쟁 관계에 있던 다른 언론들이 이 사건을 호재로 삼아 연일 대서특필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자극했다는 점이 작용하였다.

3. 전개

1966년, 삼성 재벌 계열의 한국비료주식회사가 요소비료 공장 시운전에 필요한 보조자재인 척 일본에서 밀수한 오르토톨루엔술폰아미드를 원료로 한 인공감미료 사카린을 시중에 판매한 사실이 경향신문에 보도되면서 정계와 언론계를 뒤흔들었다.

밀수 사건 자체는 5월에 발생했고, 6월에 벌금형이 선고됨으로써 형사상 처벌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밀수를 “5대 사회악”으로 규정했고, 삼성 재벌 계열 언론기관(중앙일보·동양방송)과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언론기관들이 이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사건은 9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두한 의원이 국무총리를 비롯한 일부 각료들에게 오물(인분)을 투척하면서 극도로 증폭되었다.[2]

사태가 심각해지자 사건 당일 이병철 한국비료공업 사장(삼성그룹 회장)은 사카린 밀수사건과 관련된 한국비료공업을 국가에 헌납하고 언론 및 학원사업에서 손뗄 것을 선언하였다. 이후 이병철 사장은 헌납 교섭을 맡았던 장기영 부총리가 해임되었고 개각 1주일 만인 1967년 10월 11일 한국비료공업 주식의 51%를 국가에 헌납하였다.

3. 1. 김두한의 오물 투척 사건

김두한은 1966년 9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삼성 밀수사건에 관한 대정부 질문 도중, 국무위원 석에 앉아 있던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부총리 등 여러 각료들을 향해 오물(인분)을 뿌렸다.[2] 당시 김두한의 비서였던 채원기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 전날인 9월 21일 밤 9시경 신문로에 있는 김두한의 집 화장실에서 깡통으로 만든 두레박을 이용하여 김두한이 직접 인분을 퍼서 준비했다고 한다.[3]

이 사건으로 김두한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1966년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4. 경과

1966년, 삼성그룹 계열의 한국비료주식회사가 요소비료 공장 시운전에 필요한 보조자재인 척 일본에서 밀수한 오르토톨루엔술폰아미드를 원료로 한 인공감미료 사카린을 시중에 판매한 사실이 경향신문에 보도되면서 정계와 언론계를 뒤흔들었다.

밀수 사건 자체는 5월에 발생했고, 6월에 벌금형이 선고됨으로써 형사상 처벌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밀수를 “5대 사회악”으로 규정했고, 삼성 재벌 계열 언론기관(중앙일보·동양방송)과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언론기관들이 이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두한 의원은 미리 준비해 온 인분을 국무위원석에 앉아 있던 정일권 국무총리 등 여러 각료들을 향해 던졌다. 이 사건으로 김두한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1966년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삼성 재벌 총수 이병철도 책임을 지고 한국비료 주식을 정부에 헌납하고 경영에서 물러났다.

4. 1. 오물 투척 사건에 대한 평가

김두한의 오물 투척은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에서 적군 일개 대대를 섬멸하는 것보다 더한 위력이라고 평가했다.[4] 이 사건은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적 저항 의식을 고취시킨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4. 2. 사건의 와해

검찰의 재벌 밀수 조사는 사건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나, 국민과 국회의 의혹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이에 국회 본회의는 '특정재벌 밀수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별도의 진상 규명에 나섰다. 그러나 위원회는 여당의 비협조에 불만을 품은 야당이 퇴장한 가운데 여당 단독으로 조사를 종결했다. 야당이 제출한 경제기획원장관 해임안도 부결되는 등, 재벌 밀수 사건 조사는 뚜렷한 결말 없이 끝났다. 인분을 투척한 김두한은 국회에서 제명당하고 구속되어 고문을 당했다.[5] 삼성 측에서는 이병철의 둘째 아들인 이창희가 구속되었고,[6] 이병철은 회장직을 장남 이맹희에게 넘겼다. 이병철은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히고 물러났으나, 18개월 만인 1968년 2월에 복귀했다.[7] 박정희 정부는 이 사건을 권력 쟁탈에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8]

5. 영향

이 사건은 대한민국 재벌의 도덕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주식회사가 사카린을 밀수하여 판매한 사실은 정경유착의 문제점을 드러냈으며, 권력형 비리에 대한 국민적 저항 의식을 고취시켰다.[1] 언론의 역할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사건으로 평가된다.[1] 특히 경향신문의 보도는 사건을 공론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이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1]

이 사건으로 김두한 의원은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1] 이병철 삼성 재벌 총수는 한국비료 주식을 정부에 헌납하고 경영에서 물러났다.[1]

참조

[1] 백과사전 국회오물투척사건 pmg 지식엔진연구소 1966-09-15
[2] 백과사전 사카린밀수사건 한국학중앙연구원 1966-09-22
[3] 서적 김두한 자서전 2 메트로신문사 2003-01-15
[4] 뉴스 內閣(내각)이 부끄러워 辭表(사표)낸 汚物洗禮(오물세례)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69-12-30
[5] 서적 5.16과 10.26 박정희, 김재규 그리고 나 나남 2009-08-15
[6] 서적 5.16과 10.26 박정희, 김재규 그리고 나 나남 2009-08-15
[7] 뉴스 지휘봉 다시 잡은 이병철, 삼성전자 설립해 돌파구 http://sunday.joins.[...] 중앙SUNDAY 2010-03-28
[8] 뉴스 "JP지시로 의사당 오물투척" 모략 김두한의원 중정끌려가 모진 고초 http://www4.hankooki[...] 한국아이닷컴 200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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