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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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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인찬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으로, 1336년 함경도 북청에서 태어나 1357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북청천호로 선정을 베풀고 해동청을 고려에 헌상했으며, 이성계의 부하가 되어 위화도 회군에 참여했다. 공양왕 옹립 공신 및 위화도 회군 공신에 책봉되었고, 조선 개국 후에는 개국일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익화군에 봉해졌으나 곧 사망했다. 사후 문하시랑 찬성사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민이다.

2. 생애

김인찬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무신이다. 1336년(충숙왕 후 5년) 함경도 북청에서 태어나 1357년(공민왕 5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1376년(우왕 2년) 북청천호로 선정을 펼쳤다. 1383년(우왕 9) 이성계의 부하가 되었으며, 1388년(우왕 14) 위화도 회군에 참여하였다. 1390년(공양왕 2) 공양왕 옹립 및 위화도 회군공신에 책봉되었고, 1392년(공양왕 4) 동지밀직사사에 제수되었다. 조선 건국 후 이성계의 친병을 통솔하는 책임을 맡았으나 곧 죽었다. 사후 개국일등공신에 책록되고 문하시랑 찬성사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2. 1. 고려 시대 활동

1336년(충숙왕 후 5년) 함경도 북청에서 태어나 1357년(공민왕 5년) 문과 과거시험에 급제하였고, 1376년(우왕 2년)에 북청천호(北靑千戶)로 선정을 펼치면서 해동청을 고려 조정에 헌상하였다.[1]

1383년(우왕 9) 이성계가 동북면에서 안변으로 오던 중 밭 한가운데 뽕나무 위의 비둘기 두 마리를 활로 쏘아 떨어뜨리자, 길가 밭에서 김을 매고 있던 김인찬(金仁贊)과 한충(韓忠)이 이를 보고 감탄하여 이성계의 부하가 되었다.

1388년(우왕 14)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에서 회군한 뒤, 1390년(공양왕 2) 밀직부사(密直副使)의 직위로 공양왕 옹립공신에 책봉되었고, 같은 해 4월에는 위화도 회군공신에 녹훈되었으며, 1392년(공양왕 4)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제수되었다.

2. 2. 조선 건국과 사망

1383년(우왕 9) 이성계가 동북면에서 안변으로 오던 중 밭 한가운데 뽕나무 위의 비둘기 두 마리를 활로 쏘아 떨어뜨리자, 길가 밭에서 김을 매고 있던 김인찬과 한충(韓忠)이 이를 보고 감탄하여 이성계의 부하가 되었다.[1]

1388년(우왕 14)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에서 회군한 뒤, 1390년(공양왕 2) 밀직부사(密直副使)의 직위로 공양왕 옹립공신에 책봉되었고, 1390년 4월에는 위화도 회군공신에 녹훈되었으며, 1392년(공양왕 4)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제수되었다.[1]

조선 건국 후 1392년 조선 개국의 공으로 보조공신(補祚功臣), 중추원사(中樞院使), 의흥친군위 동지절제사(義興親軍衛 同知節制使), 익화군(益和君)에 봉해져 태조 이성계의 친병을 통솔하는 책임을 맡았으나 곧 죽었다.[1] 사후 개국일등공신(開國一等功臣)에 책록되고, 문하시랑 찬성사(門下侍郞 贊成事)에 추증되었다.[1] 시호는 충민(忠愍)이다.[1]

김인찬이 사망하자, 임금이 조회를 3일 동안 폐하고, 문하시랑 찬성사(門下侍郞 贊成事)를 증직(贈職)하고,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예장(禮葬)하게 하였다.[1] 김인찬은 본관(本貫)이 양근(楊根)인데, 무재(武才)가 있었다.[1] 임금을 잠저(潛邸) 때부터 따라 시위(侍衛)한 공로가 있었으며, 개국(開國)할 때에 당하여 임금을 추대하는 데 참여하였다.[1]

3. 평가

김인찬은 양근을 본관으로 하는 무재(武才)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태조를 잠저 때부터 호위하여 시위(侍衛)한 공로가 있었으며, 조선 개국 당시 태조를 추대하는 데 참여하였다.[1]

태조는 김인찬이 졸(卒)하자, 3일 동안 조회를 중단하고, 문하시랑 찬성사를 증직하였으며, 유사를 통해 예장(禮葬)을 명하였다.[1]

4. 가족 관계

관계이름
고조부김문제(金文齊) (충숙왕 때 문과 급제, 전라도 관찰사)
증조부김일성(金鎰成) (고려 충목왕 때 개성부윤, 목사)
조부김천익(金天益) (고려 충정왕 때 도승지, 화령도 상원수, 개령군)
김존일(金存一) (공민왕 때 문과전서, 안변목사, 증 숭정대부 문하시랑 찬성사)
해주 오씨(海州吳氏)
부인정경부인(貞敬夫人) 밀양 박씨파평 윤씨


5. 후손

김인찬의 후손은 다음과 같다.[1]

이름비고
김귀룡장남, 상장군 의금부사, 세습영화군
김기룡차남, 가선대부 이조참판
김검룡3남, 호익순위사우령, 산원, 훈련원 도감
김종남4남,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김영수손자, 가선대부 호조참판
김효충손자, 호조참판 의금부
김이갱고손자, 성종조 익성군에 봉군
김만일종1품 승정대부 헌마공신
김만석10세 손, 어모장군으로 이십공신회맹제 참석


6. 저서 및 관련 작품


  • 유현종, 《용의 형제들》 이성계의 개국을 도운 킹메이커 김인찬 장군 일대기 (역사소설), 김영사, 2012년
  • 김성태, 《개국일등공신 익화군 김인찬》,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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