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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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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낭화관은 일제강점기 경성부에 존재했던 연예장이자 영화관으로, 1917년 낭화좌로 개관하여 요세와 연극을 상영하다가 낭화관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935년 영화관으로 업태를 변경하고 외화 전문관으로 운영되었으며, 1950년 전후 명동극장으로 개칭되었다. 1974년 폐관되었으며, 현재는 하나은행 명동영업부가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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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화관
기본 정보
회사 명칭명동극장
영문 회사 명칭Myeongdong Theatre
종류사업장 (소멸)
국적대한민국
본사 소재지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가 65번지
설립1917년
업종서비스업
사업 내용영화 흥행
인물
관련 인물고토 다쿠조
니시다 노보루
역사
약력1917년: 기생 및 연극 공연장 낭화좌(浪花座) 개관, 이후 낭화관(浪花館)으로 개칭
1935년: 영화관으로 변경
1950년 전후: 명동극장으로 개칭
1974년 6월 25일: 폐관

2. 연혁

1917년 일본인이 경영하는 요세・연극 극장인 '''낭화좌'''로 개관하였고, 이후 '''낭화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5] 1935년 영화관으로 업태를 변경하였다.[1][5] 1950년 전후 '''명동극장'''으로 개칭되었으며,[5] 1974년 6월 25일 폐관하였다.[6]

2. 1. 낭화관 시대 (1917년 ~ 1945년)

1917년 일본인 거주 구역이었던 경성부 명치정 1정목 65번지(현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가 65번지)에 연예장 '낭화좌'로 개관하였다.[5] 낭화좌는 요세・연극 극장으로 운영되었으며, 이후 '낭화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5] 해당 지역은 청계천 남쪽, 남촌이라 불리는 지역에 위치한 일본인 거주 구역이었으며, 명치정통(현재의 명동길)에 면해 있었다.[1] 당시 경영자는 고토 다쿠조였다. 3대 산유테이 킨바가 1959년에 저술한 에세이집 『우키요당고』에 수록된 『여행의 수치』에는, 전국의 연예장을 열거하는 부분이 있는데, 경성부 내에서 단 1곳만 언급된 "난카칸"이 이 시기의 해당 극장이다.[7]

1935년 영화관으로 업태를 변경하고 벽돌 2층 건물로 개축하였다.[1][5] 유럽과 미국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외화 전문관이었으며, 남촌의 일본인 거주 구역에서는 최초의 외화 전문관이었고, 초기부터 토키 장치를 갖춘 현대적인 영화관이었다.[1][2] 같은 해 10월에는, 해당 극장의 대각선 앞(북동쪽)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근대 건축으로 지어진 명치좌(명치정 1정목 54번지, 현재의 명동1가 54번지)가 착공되었고,[3][4] 다음 해인 1936년에는 준공, 개관했다. 후에 철거된 해당 극장과는 달리, 명치좌의 건물은 현재도 복원 리뉴얼되어 명동예술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다.[8]

1939년부터는 쇼치쿠 키네마 작품도 상영하기 시작하였다.[1]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전시 통제로 인해 1942년 일본 내 모든 영화가 같은 해 2월 1일에 설립된 사단법인 영화배급사 배급으로 전환됨에 따라, 영화관의 경영 주체에 관계없이 모든 영화관이 홍계, 백계의 2계통으로 편입되었지만, 『영화 연감 쇼와 17년판』에는 해당 극장의 흥행 계통에 대한 언급이 없다.[3] 해당 자료에 따르면, 당시 해당 극장의 경영은 니시다 노보루의 개인 경영이었으며, 지배인은 없었다.[3] 관객 정원은 350명이었으며, 1,000명 규모의 영화관이 즐비한 경성부 내에서는 작은 편의 영화관이었다.[3][4]

1940년 전후의 낭화관(오른쪽 앞). 왼쪽은 세야마 악기점.

2. 2. 명동극장 시대 (1945년 ~ 1974년)

1945년 광복 이후, 한국 민간에 의해 '명동극장'으로 재개관하였다. 정확한 시기는 불분명하다.[5] 명동극장은 미국 영화를 중심으로 상영하는 2번관(개봉관보다 1~2주 늦게 개봉하는 영화관)이었다. 1960년대에는 월터 랭 감독의 《왕과 나》(The King and I영어), 아서 크랩트리 감독의 《Caravan (1946 film)|캐러밴영어》, 조지 시드니 감독, 엘비스 프레슬리 주연의 《Viva Las Vegas|라스베가스 만세영어》 등의 외화가 상영되었다.[5] 1967년에는 명동극장 옆에 유네스코 회관이 건설되었다.

1974년 6월 25일, 명동극장은 폐관하였다.[6] 폐관 이후 건물은 중앙투자은행이 사용하다가 철거되었고, 현재는 상업 빌딩이 들어서 있으며 하나은행 명동영업부가 위치해 있다.

3. 데이터

항목내용
소재지일제강점기 경성부 명치정 1정목 65번지 2호[3][4]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가 65번지 2호, 현재 "하나은행 명동영업부" 위치)
경영
구조목조 연와 2층 건물[5]
관객 정원350명 (1942년[3]・1943년[4])


4. 갤러리

참조

[1] 간행물 1920年代-1930年代、京城の映画館 : 映画館同士の関係性を中心に https://ritsumei.rep[...] 立命館大学コリア研究センター 2013
[2] 서적 공・정 2006
[3] 서적 年鑑 1942
[4] 서적 年鑑 1943
[5] 서적 이 2001
[6] 뉴스 매일경제신문 1974-06-21
[7] 서적 金馬 1993
[8] 웹사이트 극장 http://m.mdtheater.o[...] 2013-12-02
[9] 웹사이트 The King and I http://www.imdb.com/[...] 2013-11-29
[10] 웹사이트 王様と私 http://www.kinejun.j[...] 2013-11-29
[11] 웹사이트 1964年の新聞広告 http://cfile237.uf.d[...] 2013-11-29
[12] 웹사이트 Caravan http://www.imdb.com/[...] 2013-11-29
[13] 웹사이트 キャラバン http://www.allcinema[...] 2013-11-29
[14] 웹사이트 ''明洞劇場前'' 2013-11-29
[15] 웹사이트 Viva Las Vegas http://www.imdb.com/[...] 2013-12-02
[16] 웹사이트 ラスベガス万才 http://www.allcinema[...] 2013-12-02
[17] 웹사이트 明洞通俯瞰 http://postfiles10.n[...] 2013-12-02
[18] 웹사이트 찾아오시는길 (명동) http://www.unesco.or[...] 国際連合教育科学文化機関 2013-12-02
[19] 논문 해방 전 조선 영화극장사 고찰 2002-02
[20] 뉴스 기사 매일경제 197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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