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동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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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포동산성은 계명산 봉수를 방호하기 위해 1425년에서 1468년 사이에 축조된 토석 혼축의 담장이다. 둘레 약 50m 규모의 평면 타원형이며, 계명산 계명봉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능선 해발 200~250m 지점에 위치한다. 조선 시대 기와와 자기 조각이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잡목에 가려져 유적 확인이 쉽지 않다.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는 계명산 봉수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당시 부산 지역의 봉수는 전국 5개 직봉(直烽) 노선 중 제2경로에 속했으며, 석성 봉수에서 시작하여 황령산 봉수, 간비오산 봉수, 기장 남산 봉수를 거쳐 수도인 한성의 목멱산 봉수로 이어졌다.
노포동산성은 1425년(세종 7)에서 1468년(예종 원년) 사이에 설치된 계명산 봉수를 보호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계명산 봉수는 변방의 위급 상황을 전달하던 조선 시대의 군사 통신 시설로, 동래에서 한성으로 이어지는 제2경로 봉수 노선상에 위치했다. 노포동산성은 이 봉수의 기능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노포동산성은 계명산 계명봉에서 동남쪽 50m 아래 뻗어 내려 온 능선이 계명암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곳인 해발 200m~250m 지점으로 계명산 봉수의 아래에 위치한다.
둘레 약 50m 규모의 평면 타원형이며, 흙과 돌을 섞어 쌓은 토석 혼축 담장 형태이다. 담장은 노포소류지 위쪽 동문터 주변에서 5~6단의 돌로 쌓은 축대(석축)가 확인되지만[2], 대부분 무너져 내려 흔적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담장 안쪽에서는 조선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 조각과 자기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잡목으로 가려져 있어 유적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동쪽으로 열린 출입구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면, 석축과 함께 흙으로 덮인 담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
간행물
경부 고속 철도 공사 구간 부산 경남권 문화 유적 발굴 예비 조사 보고서
한국고속철도공단
1997
2. 역사
1425년과 1468년 사이에 계명산 봉수를 포함한 3곳의 봉수가 새롭게 설치되면서 봉수 노선은 황령산 봉수에서 계명산 봉수를 거쳐 양산의 원적산 봉수로 연결되도록 변경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1468년(예종 1)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책에는 계명산 봉수, 양산 위천 봉수(원적산 봉수), 울산 부로이산 봉수가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계명산 봉수 등이 다시 보이지 않는다. 조선 전기 부산 지역의 봉수 체계가 주로 해안을 따라 설치된 연변 봉수(沿邊烽燧)였다는 점과 함께 이 기록을 근거로, 계명산 봉수는 이후 일시적으로 폐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간이 흘러 2007년,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이 경부고속철도[1] 건설 구간에서 문화 유적 발굴 조사를 하던 중 노포동 산성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처음에는 산성 유적으로 알려졌으나, 연구가 진행되면서 계명산 봉수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호 시설이라는 견해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3. 건립
4. 위치
5. 형태
6. 현황
참조
[2]
간행물
부산 지역 매장 문화재 분포 자료집
부산광역시
2001
[3]
문서
[4]
웹사이트
당감동 성지 2차 발굴조사
https://museum.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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