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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도쿠인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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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이도쿠인 영묘는 에도 막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영묘로, 1632년 사망 후 조조지 경내에 조성되었다. 1930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현재는 시바 공원에 총문,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에 칙액문, 정자문, 어성문이 이전되어 보존되고 있으며, 1910년 영일 박람회에 출품되었던 축소 모형이 복원되어 조조지에서 전시되었다. 다이도쿠인 영묘는 에도 시대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며, 현재 남아있는 건물과 모형을 통해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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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도쿠인 영묘
지도
일반 정보
종류영묘
문화재 지정 종류국가 지정 중요문화재 (구 국보)
소재지도쿄도미나토구 시바 공원
좌표35°39′21.4″N 139°44′55.7″E
상세 정보
건립 주체도쿠가와 히데타다
창건 시기겐나 8년 (1622년)
해체 시기쇼와 33년 (1958년)
주요 건축물혼덴 (本殿)
아이노마 (相の間)
하이덴 (拝殿)
게쇼덴 ( gesture殿)
주몬 (中門)
고마몬 (御 幸 門)
스키베이가키 (透 塀)
면적약 77,000m²
주요 불상아미타여래
역사
건립도쿠가와 히데타다에 의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시는 묘소로 겐나 8년 (1622년)에 창건됨.
소실게이안 대화재 (1648년)로 소실.
재건도쿠가와 이에쓰나에 의해 만지 2년 (1659년)에 재건.
철거제2차 세계 대전 후, 쇼와 33년 (1958년)에 철거됨.
현재 상황
현재혼덴은 도쿄 프린스 호텔 부지 내에, 니텐몬은 세이쇼지로 이전됨.
관련 정보
관련 문화재조조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쿠가와 히데타다
도쿠가와 이에미쓰
도쿠가와 이에쓰나

2. 역사

도쿠가와 히데타다는 에도 막부 2대 쇼군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이어 막부의 기반을 다졌다.[1] 히데타다는 조선과의 관계 개선에도 힘썼으며, 임진왜란 이후 경색되었던 외교 관계를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간에이 9년 1월 24일(1632년 3월 14일)에 히데타다가 사망하자, 조조지 경내 남측에 그의 법명/法名일본어인 다이도쿠인(台徳院)의 이름을 딴 영묘가 조성되었다.[1][18] 영묘 건립은 같은 해 2월부터 시작되어 7월에 본전의 상량식이 거행되었다.[18] 영묘는 1930년 5월 23일에 당시 국보보존법(国宝保存法)에 근거하여 국보로 지정되었다.[18]

에도 시대의 병풍(17세기)에 묘사된 다이도쿠인 영묘를 방문한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


작은 사당(1945년 이전)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영묘 대부분이 소실되었다.[9] 1958년 히데타다의 유해를 발굴 조사하여 조조지 안국전(安国殿) 뒤편의 도쿠가와 가문 묘소에 재매장하였다.[18]

1945년 5월 25일 공습에서 살아남은 총문(惣門)은 시바 공원에 남았고, 칙액문(勅額門), 정자문(丁子門), 어성문(御成門) 3동은 1960년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 사야마 후도손으로 이전되었다.[9]

2. 1. 건립 배경

도쿠가와 히데타다는 에도 막부 2대 쇼군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이어 막부의 기반을 다졌다.[1] 히데타다는 조선과의 관계 개선에도 힘썼으며, 임진왜란 이후 경색되었던 외교 관계를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간에이 9년 1월 24일(1632년 3월 14일)에 히데타다가 사망하자, 조조지 경내 남측에 그의 법명/法名일본어인 다이도쿠인(台徳院)의 이름을 딴 영묘가 조성되었다.[1][18] 영묘 건립은 같은 해 2월부터 시작되어 7월에 본전의 상량식이 거행되었다.[18] 영묘는 1930년 5월 23일에 당시 국보보존법(国宝保存法)에 근거하여 국보로 지정되었다.[18]

2. 2. 소실과 복원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영묘 대부분이 소실되었다.[9] 1958년 히데타다의 유해를 발굴 조사하여 조조지 안국전(安国殿) 뒤편의 도쿠가와 가문 묘소에 재매장하였다.[18]

1945년 5월 25일 공습에서 살아남은 총문(惣門)은 시바 공원에 남았고, 칙액문(勅額門), 정자문(丁子門), 어성문(御成門) 3동은 1960년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 사야마 후도손으로 이전되었다.[9]

3. 건축

영묘는 두 개의 주요 건물과 탑이 있는 내부 성소로 이어지는 다양한 문들로 구성되었다. 1945년 전쟁에서 살아남은 건물은 시바 공원 내에 위치하며 원래 위치에서 동쪽으로 45미터 옮겨진 총문,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로 이전된 칙액문, 정자문, 어성문 4개뿐이다.

동 배치도


다이토쿠인 영묘 건물군의 배치는 대략 다음과 같다. 영묘의 입구에는 '''총문(惣門)'''이 있으며, 이곳을 들어 참도를 따라 가면 '''칙액문(勅額門)'''이 있다. 칙액문을 들어 오른쪽에는 '''정자문(丁字門)'''이 있으며, 북쪽의 소겐인 영패소와의 사이를 나누는 문이 있었다. 칙액문을 지나 참도를 따라 더 가면, 좌우에 1동씩의 '''수반사(水盤舍)'''가 있으며, 정면이 '''중문(中門)'''이다. 중문 좌우에서 시작하는 '''투시 담장(透塀)'''이 어령옥을 둘러싼다. 어령옥은 '''본전(本殿)・상지간(相之間)・배전(拝殿)'''이 일체화된 권현조이다. 본전의 오른쪽(북쪽)에 '''건너 복도(渡廊)'''가 연결된다. 이들 건물군의 왼쪽(남쪽)의 작은 언덕에 안원(묘소)이 있으며, 안원으로 향하는 참도 중간에 '''어성문(御成門)'''이 있다. 안원에는 '''배전''', '''중문''', '''옥울타리(玉垣)'''가 있으며, 옥울타리로 둘러싸인 내부에, '''덮개집(覆屋)''' 내에 세워진 '''보탑(宝塔)'''(묘탑)이 있다.[7] 『에도도 병풍』에는 이들 건축물이 위치 관계를 포함하여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오중탑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7]

영묘 조영에 있어서, 총봉행은 도이 도시카쓰가 맡았으며, 부봉행의 (대목) 스즈키 나가쓰구, 기하라 요시히사 등, 돟량의 고라 무네히로와 무네쓰구 부자, 히라나이 마사노부 등이 조영에 참여했다. 배전은 桁行五間, 梁間三間, 입모양 지붕의 갈매기 박공付이며, 전면에 당파풍조의 향배를 설치했다. 본전은 方五間, 입모양 지붕. 외관은 중층으로 보이지만 一重裳階(もこし)付き이며, 方三間의 몸체 주위에 裳階(もこし)을 두른다. 전체적으로 선종 불당풍의 구조이지만 내부는 흙바닥이 아닌 다다미가 깔려 있으며, 궁전(くうでん)형의 불감(厨子)을 안치한다. 배전・본전 간을 桁行四間, 梁間一間의 상지간으로 연결한다. 각 건물은 지붕을 동기와로 덮었으며, 내외를 장식 조각, 채색, 칠 등으로 장엄한다. 안원 보탑은 원기둥 모양의 탑신 위에 보개 지붕을 얹은 형식의 목조탑으로, 평면 팔각형이며 裳階付き의 덮개집 내에 안치된다.[8]

다이토쿠인 영묘 총문


이축된 칙액문


이축된 어성문

  • 총문 - 입모양 팔각문. 시바 공원 내, 더 프린스 파크 타워 도쿄 입구에 세워져 있다. 건립 당시에는 현재 위치보다 서쪽에 있었으며, 1959년에 45미터 동쪽으로 옮겨졌다. 입모양 팔각문으로, 전체를 주칠했으며, 장식적 요소가 없는 간소한 문이다. 도쿠가와 가문 영묘에서는, 안쪽에 있는 건물일수록 화려한 장식이 이루어졌다.[11] 문 안에 안치된 금강역사(인왕)상은 원래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의 사이후쿠지에 있던 것으로 1948년에 센소지에 양도되었고, 1958년경에 현재의 총문으로 옮겨졌다.[12]
  • 칙액문 - 1960년,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로 이축. 기리즈마 구조 사각문.
  • 정자문 - 1960년,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로 이축. 일간 평당문으로, 북쪽 인접한 소겐인(히데타다 부인) 영패소로의 통용문이었다.
  • 어성문 - 1960년,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로 이축. 기리즈마 츠마이리 구조로, 가로 2칸, 세로 1칸으로 한다. 기리즈마 구조로 츠마이리(지붕의 박공이 있는 쪽을 입구로 함)의 문은 드물다. 내부 천장은 격자 천장의 중앙부를 원형의 거울 천장으로 하고 천인상을 그렸기 때문에 "천인문"이라는 별칭이 있다.


이상 4동은 국가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1930년 5월 23일 지정). 또한, 4동 중 3동이 이축됨에 따라, 1963년 관보 공시에서, "구 다이토쿠인 영묘 총문" "구 다이토쿠인 영묘 칙액문, 정자문 및 어성문"의 2건의 중요문화재로 분할되었다.[13] 4동 모두 소유자는 개인이다.[14]

3. 1. 주요 건물

다이도쿠인 영묘의 주요 건물은 다음과 같다.

  • 총문(惣門)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영묘 정문으로, 입모양 팔각문 형태이다. 원래 위치는 현재 위치보다 서쪽에 있었으나, 1959년에 45미터 동쪽으로 옮겨졌다.[11] 전체를 주칠했으며, 장식적 요소가 없는 간소한 문이다.[11] 현재 시바 공원 내, 더 프린스 파크 타워 도쿄 입구에 위치한다. 문 안에 안치된 금강역사(인왕)상은 원래 사이후쿠지에 있던 것으로 1948년에 센소지에 양도되었고, 1958년경에 현재의 총문으로 옮겨졌다.[12]

  • 칙액문(勅額門)


기리즈마 구조 사각문으로, 1960년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로 이축되었다.

  • 정자문(丁字門)


일간 평당문으로, 북쪽에 인접한 소겐인(히데타다 부인) 영패소로 통하는 문이었다. 1960년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로 이축되었다.

  • 어성문(御成門)


기리즈마 츠마이리 구조로, 가로 2칸, 세로 1칸이다. 기리즈마 구조로 츠마이리(지붕의 박공이 있는 쪽을 입구로 함)의 문은 드물다. 내부 천장은 격자 천장의 중앙부를 원형의 거울 천장으로 하고 천인상을 그렸기 때문에 "천인문"이라는 별칭이 있다. 1960년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로 이축되었다.

총문, 칙액문, 정자문, 어성문 4동은 1930년 5월 23일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63년 관보 공시에서, "구 다이토쿠인 영묘 총문", "구 다이토쿠인 영묘 칙액문, 정자문 및 어성문"의 2건으로 분할되었다.[13] 4동 모두 소유자는 개인이다.[14]

  • 본전(本殿)・상지간(相之間)・배전(拝殿)


일체화된 권현조 건물이다. 배전은 桁行五間, 梁間三間, 입모양 지붕의 갈매기 박공付이며, 전면에 당파풍조의 향배를 설치했다. 본전은 方五間, 입모양 지붕으로, 외관은 중층으로 보이지만 一重裳階(もこし)付き이며, 方三間의 몸체 주위에 裳階(もこし)을 두른다. 전체적으로 선종 불당풍의 구조이지만 내부는 흙바닥이 아닌 다다미가 깔려 있으며, 궁전(くうでん)형의 불감(厨子)을 안치한다. 배전・본전 간을 桁行四間, 梁間一間의 상지간으로 연결한다. 각 건물은 지붕을 동기와로 덮었으며, 내외를 장식 조각, 채색, 칠 등으로 장엄한다. 1910년 영일 박람회에 출품되었던 축소 모형이 조지 5세에게 선물로 주어졌으며, 이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요청으로 복원되어 2015년 일본으로 반환, 조조지 사찰에서 특별 전시되었다.

  • 수반사(水盤舍)


좌우에 1동씩 존재했다.

  • 중문(中門)


중문 좌우에서 시작하는 '''투시 담장(透塀)'''이 어령옥을 둘러싼다.

  • 건너 복도(渡廊)


본전의 오른쪽(북쪽)에 연결된다.

  • 안원(묘소, 奥院)


안원에는 '''배전''', '''중문''', '''옥울타리(玉垣)'''가 있으며, 옥울타리로 둘러싸인 내부에, '''덮개집(覆屋)''' 내에 세워진 '''보탑(宝塔)'''(묘탑)이 있다

  • 안원 보탑(奥院宝塔)


원기둥 모양의 탑신 위에 보개 지붕을 얹은 형식의 목조탑으로, 평면 팔각형이며 裳階付き의 덮개집 내에 안치된다.[8]

  • 안원 중문・보탑 덮개집


본전, 배전, 수반사, 안원, 안원 보탑, 안원 중문, 보탑 덮개집 등은 소실되었으나, 에도도 병풍에 이들 건축물의 위치 관계를 포함하여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오중탑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7]

3. 2. 건축 양식

다이토쿠인 영묘는 에도 시대 초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전체적으로 선종 불당풍의 구조를 따르면서도, 내부는 다다미가 깔려 있고 궁전형 불감을 안치하는 등 일본 전통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건물 외부는 장식 조각, 채색, 칠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단지는 두 개의 주요 건물과 탑이 서 있는 내부 성소로 이어지는 다양한 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전쟁에서 손상된 채로 살아남은 건물은 4개뿐이었다. 이 구조물 중 3개는 1960년대에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로 옮겨졌다. 소몬(惣門)은 호텔 부지를 만들기 위해 1959년에 원래 위치에서 동쪽으로 45미터 옮겨졌다.

두 개의 주요 전각의 대형 축소 모형은 1910년 런던에서 열린 영일 박람회를 위해 도쿄도에서 의뢰했다. 이는 조지 5세 국왕에게 선물로 주어졌으며, 이후 큐 왕립 식물원에서 전시된 후 해체되어 다른 왕실 보물들과 함께 은밀한 장소에 보관되었다. 이 모형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요청으로 왕립 빅토리아 훈장을 받은 호주 윌리엄 하워드 콜드레이크 교수의 노력으로 대대적으로 복원되었다. 이 모형은 2015년 일본으로 반환되어 도쿄 조조지 사찰에서 특별 전시되었다.

4. 다이토쿠인 영묘 모형

1910년 영일 박람회를 위해 도쿄도에서 제작한 다이토쿠인 영묘의 정교한 축척 1/10 모형이 현재까지 남아있다.[15] 이 모형은 너비 3.6m, 깊이 5.4m, 높이 1.8m에 달한다. 박람회 출품 후, 1936년까지 영국 왕립 식물원(큐 가든)에 전시되었다가 이후 해체되어 왕실 컬렉션 창고에 보관되었다.[16][17]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망 400주년을 맞아, 2015년 영국으로부터 장기 대여 형식으로 일본에 반환되었다.[16][17] 2014년 일본에 도착한 후 수리 과정을 거쳐, 2015년 4월 2일부터 조조지 보물 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다.[16][17]

5. 현대의 다이토쿠인 영묘

현재 다이도쿠인 영묘는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사이후쿠지에서 센소지를 거쳐 옮겨온 금강역사(인왕)상이 안치된 총문(입모양 팔각문, 도쿠가와 가문 영묘 중에서는 장식적 요소가 없는 간소한 문)을 비롯한 일부 건물과 모형을 통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11][12] 이 건물들은 1930년 5월 23일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13], 1963년 관보 공시를 통해 "구 다이토쿠인 영묘 총문", "구 다이토쿠인 영묘 칙액문, 정자문 및 어성문"의 2건으로 분할되었다.[13] 소유자는 모두 개인이다.[14] 영묘는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참조

[1] 서적 Secret Memoirs of the Shoguns: Isaac Titsingh and Japan, 1779-1822 Google books
[2] 웹사이트 Japan - Model of the Taitokuin Mausoleum https://www.royalcol[...]
[3] 웹사이트 Model of lost architectural treasure returns to Japan after more... https://www.royalcol[...]
[4] 서적 徳川家霊廟
[5] 간행물 昭和5年5月23日文部省告示第161号
[6] 간행물 昭和17年12月22日文部省告示第648号
[7] 서적 徳川家霊廟
[8] 서적 徳川家霊廟
[9] 간행물 昭和24年10月13日文部省告示第181号
[10] 서적
[11] 서적 徳川家霊廟
[12] 웹사이트 港区の文化財保護 http://www.lib.city.[...] 2014-08-10
[13] 간행물 昭和38年2月13日文化財保護委員会告示第5号
[14] 서적 国宝・重要文化財大全 別巻
[15] 뉴스 ハーバード大学建築史博士/ウイリアム・コールドレイクさん(56)台徳院霊廟の模型を日本に「建物は生きている」 http://nna.jp/free/i[...] NNA.Asia 2008-06-19
[16] 뉴스 日本の国宝建造物 の壮大な模型が東京へ里帰り https://www.gov.uk/g[...] 英国政府
[17] 웹사이트 増上寺宝物展示室 2015年4月2日OPEN http://www.zojoji.or[...] 増上寺
[18] 서적 徳川家霊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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