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화사 삼장보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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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구 동화사 삼장보살도는 죽은 이의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에 사용되는 불화로, 천장보살, 지지보살, 지장보살을 한 화면에 담은 희귀한 경우이다. 1728년 동화사 대규모 불사 때 제작된 이 불화는 18세기 초 팔공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 의균의 화풍을 보여주며, 안정된 구도, 세밀한 묘사, 높은 채색 대비 등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 1661년에 간행된 오종범음집을 근거로 제작되어 조선 후기 삼장보살도 연구에 기준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현존하는 초기 삼장보살도가 드문 상황에서 불교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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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화사 삼장보살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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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대구 동화사 삼장보살도 |
원어 이름 | 大邱 桐華寺 三藏菩薩圖 |
유형 | 보물 |
지정 번호 | 1772 |
지정일 | 2012년 8월 24일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 동화사 성보박물관 |
소유자 | 대한불교조계종 동화사 |
수량 | 1폭 |
크기 | 289×222cm |
시대 | 조선시대 |
문화재청 ID | 12,17720000,22 |
이전 정보 | |
이전 명칭 | 동화사대웅전삼장탱 |
원어 이전 명칭 | 桐華寺大雄殿三藏幀 |
이전 유형 | 문화재자료 |
이전 지정 번호 | 37 |
이전 지정일 | 2006년 4월 20일 |
이전 해제일 | 2012년 8월 24일 |
이전 문화재청 ID | 31,00370000,22 |
2. 지정 사유
삼장보살도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의식에 사용되는 불화로, 천장보살(天藏菩薩), 지지보살(持地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로 구성된다. 고려시대에는 알려진 사례가 없고 조선시대에만 나타나는 도상이다. 삼장보살도는 하나의 화폭에 세 존상을 모두 표현하거나, 두 폭 또는 세 폭으로 나누어 그리기도 한다. 동화사 삼장보살도는 가로로 긴 화면에 세 보살과 권속들을 모두 표현한 희귀한 사례이다.[1]
1728년 동화사 대규모 불사 때 조성된 중단탱의 삼장보살도로, 18세기 초반 불화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화기(畵記)에는 화승의 이름이 적혀져 있지 않으나, 당시 함께 조성된 지장시왕도의 화기에 수화승 쾌민과 보조승 체환, 체준 등 7명의 화승명이 확인된다.[1] 이들은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에 걸쳐 팔공산 권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화승 의균의 제자들이다.[1] 1707년 조성된 파계사 삼장보살도에서도 체환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1] 의균은 1728년 동시 조성된 삼장보살도와 지장시왕도에서 각각 대시주와 화주로만 참여하고 있다.[1]
1661년 간행된 오종범음집을 근거로 도설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 조선 후기 삼장보살도 연구의 기준작으로 평가된다. 주색과 녹색 외에 황색과 청색 등이 부분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삼장보살의 두광에 칠해진 진한 녹색과 신광의 밝은 녹청색이 대비된다. 동색계 색채의 세련되고 밝은 분위기는 주요 인물을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 안정된 구도와 비례, 인물의 세부 묘사, 채도가 높은 적·녹색의 안정감 있는 대비와 조화, 세밀한 필선과 정교한 문양 등 전반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까지 팔공산을 중심으로 크게 활약한 화승 의균의 화풍도 뚜렷하여 화파 연구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대구 동화사 삼장보살도는 18세기 팔공산 권역의 대표적 화승인 의균 화파의 화맥을 계승한 작품으로, 안정된 화면 구성과 세밀한 묘사가 돋보인다. 특히 현존하는 초기 삼장보살도가 희귀한 상황에서, 이 삼장보살도는 조선 후기 불교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1]
화기(畵記)를 통해 18세기 초 대표적인 화승(畵僧) 중 한 명인 의균(義均)이 대시주(大施主)로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동화사 불화 외에도 경주 거동사 내원암의 삼단탱, 신녕 수도사 감로왕도, 운문사 청련암 명부도(지장시왕도로 추정), 창녕 용흥사 아미타설법도, 영지사 향로전 관음보살도 등도 함께 제작되었다. 이를 통해 당시 동화사가 팔공산 인근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던 화가들의 주요 거점 혹은 작업 공간으로 활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1]
16세기 이전의 삼장보살도는 대부분 해외에 있고, 17~18세기 초에 제작된 석탑사 삼장보살도(1699)나 대구 파계사 삼장보살도(1707) 조차 소재가 불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화사 삼장보살도는 불교회화사적으로 큰 의의를 가진다.[1]
또한, 안정된 구도와 비례, 인물의 세부 묘사, 채도가 높은 붉은색과 녹색의 안정적인 대비와 조화, 세밀한 필선과 정교한 문양 등 전반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까지 팔공산을 중심으로 크게 활약한 화승 의균의 화풍이 뚜렷하여 화파(畵派) 연구에도 중요한 작품이다.[1]
3. 제작 배경 및 화풍
동화사 삼장보살도는 동화사 지장시왕도와 함께 18세기 팔공산 권역의 대표적 화승인 의균 화파의 화맥을 계승한 작품으로, 안정된 화면 구성은 물론 안정된 신체 비례와 세선의 치밀한 묘사가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설채는 주색과 녹색 외에 부분적으로 황색과 청색 등을 활용하였는데, 특히 삼장보살의 두광에 설채된 진한 녹색과 신광의 밝은 녹청색이 대비되며, 동색계 색채의 세련되고 밝은 분위기는 주요 인물을 한층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1661년에 간행된 오종범음집을 근거로 도설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 조선 후기 삼장보살도 조상 연구에 기준작으로 평가된다. 특히 16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는 작품들은 대부분 일본 등 해외에 유존하고 있고, 그나마 17세기·18세기 초에 제작된 석탑사 삼장보살도(1699)나 대구 파계사 삼장보살도(1707) 조차 도난으로 그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 삼장보살도가 갖는 불교회화사적 의의는 크다.
안정된 구도와 비례, 인물의 세부 묘사, 채도가 높은 적·녹색의 안정감 있는 대비와 조화, 세밀한 필선과 정교한 문양 등 전반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화풍상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까지 팔공산을 중심으로 크게 활약한 화승 의균의 화풍도 뚜렷하여 화파 연구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4. 도상학적 특징
5. 의의 및 평가
안정된 구도와 비례, 인물의 세부 묘사, 채도가 높은 적색과 녹색의 안정감 있는 대비와 조화, 세밀한 필선과 정교한 문양 등 전반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까지 팔공산을 중심으로 크게 활약한 화승 의균의 화풍이 뚜렷하여 화파 연구에도 중요한 작품이다.[1]
동화사 삼장보살도는 동화사 지장시왕도와 함께 18세기 팔공산 권역의 대표적 화승인 의균 화파의 화맥을 계승한 작품으로, 안정된 신체 비례와 세선의 치밀한 묘사가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설채는 주색과 녹색 외에 부분적으로 황색과 청색 등을 활용하였는데, 특히 삼장보살의 두광에 설채된 진한 녹색과 신광의 밝은 녹청색이 대비되며, 동색계 색채의 세련되고 밝은 분위기는 주요 인물을 한층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동화사 삼장보살도는 화기를 통해 1728년에 대웅전 상·중·하단의 불화를 조성할 때 지장시왕도와 동시에 그려진 작품임을 알 수 있고, 작자 역시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상분석을 통해 1661년에 간행된 오종범음집을 근거로 도설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 조선 후기 삼장보살도 조상 연구에 기준작으로 평가된다. 특히 16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는 작품들은 대부분 일본 등 해외에 유존하고 있고, 그나마 17·18세기 초에 제작된 석탑사 삼장보살도(1699)나 대구 파계사 삼장보살도(1707) 조차 도난으로 그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 삼장보살도가 갖는 불교회화사적 의의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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