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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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릉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일대에 위치한 신라 시대 고분군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노동동 고분군, 노서동 고분군, 황남동 고분군, 황오동 고분군, 인왕동 고분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봉황대, 금관총, 서봉총, 호우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 다양한 고분들이 있으며, 각 고분에서는 금관, 금동관, 천마도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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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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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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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경주 대릉원 일원 |
로마자 표기 | Daereungwon Ancient Tomb Complex, Gyeongju |
유형 | 사적 |
지정 번호 | 512 |
지정일 | 2011년 7월 28일 |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노동동 261 등 경주 노동동·황남동 |
관리 | 경주시 |
참고 사항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
면적 | 602,314m2 |
좌표 | 35° 50′ 16.6″ N, 129° 12′ 44.6″ E |
문화재청 ID | 13,05120000,37 |
2. 노동동 고분군
경상북도 경주시 노동동에 있는 고분군이다. 이들 중 봉황대는 밑둘레 230m, 지름 82m, 높이 22m로 대한민국에서는 큰 규모의 무덤이다.[1] 봉황대 남쪽에 1924년 발굴 조사한 금령총 터와 식리총 터가 있는데, 내부 구조는 모두 돌무지 덧널무덤이다.[1]
2. 1. 주요 고분
봉황대는 대한민국에서 큰 규모의 무덤 중 하나이다. 금령총과 식리총은 1924년에 발굴되었으며, 돌무지덧널무덤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3. 노서동 고분군
이 고분군에는 넓은 평지에 크고 작은 고분이 14기가 있다. 노동리의 봉황대 고분과 더불어 그 규모에 있고, 쌍벽을 이루는 제130호 고분을 비롯해, 1921년에 금관이 출토된 금관총, 1926년에 일본 방문 길에 스웨덴의 황태자이며 고고학자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들러 발굴을 조사 참관한, 서봉총이 있다. 1946년에 고구려 광개토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 그릇이 발견되어, 신라 고분 연대 추정에 도움을 준 호우총과 은평총, 쌍상총, 마총 등도 있다. 쌍상총에서 토기 조각, 마총에서 말뼈와 안장 조각이 출토하였다.
3. 1. 주요 고분
1921년 금관이 출토된 금관총,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6세가 발굴에 참여한 서봉총,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 그릇이 발견되어 신라 고분 연대 추정에 기여한 호우총 등이 주요 고분이다.4. 황남동 고분군
경주시내 황남동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신라 초기의 무덤들로 일부는 대릉원 구역 안에 있다. 일제 강점기에 붙여진 일련번호 90~114, 151~155호인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30기의 무덤이다. 큰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이고 주변에는 봉분이 없어진 작은 무덤이 있다. 대릉원 안에는 전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이 있다.
1973년 4월 6일부터 12월 4일까지 발굴조사된 천마총은 지름 47m, 높이 12.7m로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나왔다. 당시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드리개가 출토되었기 때문에 '천마총'이라 이름하여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발굴조사된 황남대총은 남북길이 120m, 동서길이 80m, 높이 23m의 거대한 쌍무덤으로 남쪽 무덤에서는 금동관과 남자의 뼈 일부 및 많은 유물이 나왔다. 북쪽 무덤에서도 금관과 부인대라는 글씨가 있는 은팔찌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남쪽 무덤의 주인은 남자, 북쪽 무덤의 주인은 여자로, 부부의 무덤을 붙여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4]
4. 1. 주요 고분
1973년 발굴되어 천마도가 출토된 천마총, 1973년~1975년에 발굴되었고 남북으로 이어진 거대한 쌍분으로 금동관, 금관, 은팔찌 등이 출토되었으며 부부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황남대총, 대릉원 내에 위치한 미추왕릉 등이 주요 고분이다.5. 황오동 고분군
경상북도 경주시 황오동에 크고 작은 신라시대 무덤들이 밀집되어 있다. 오랜 세월 관리가 되지 않아 봉분이 많이 손상되었으나, 고분임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10여 기에 이른다. 이 무덤들은 인접 지역에서 발굴된 무덤 구조로 미루어 볼 때, 주로 4~5세기경의 왕족 또는 귀족을 묻은 돌무지 덧널무덤(積石木槨墳)으로 추정된다.[5] 쪽샘지구는 4~5세기경 왕족 또는 귀족의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추정된다.
5. 1. 주요 고분
쪽샘지구는 4~5세기경 왕족 또는 귀족의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추정된다.6. 인왕동 고분군
이 고분군은 월성(月城)의 북쪽 지대에 분포하는 황오동 고분군(皇吾洞 古墳群)에서 동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경주 중심부 평야지대에 남아 있는 고분군 가운데는 가장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13기(基)(경주 고분의 일련 번호 19∼27, 147∼150호)의 봉토분(封土墳)이 확인되었고, 새로 10기의 고분이 더 분포하고 있는 것이 조사되었다. 고분들 가운데 19호분, 20호분, 149호분과 나중에 확인된 고분 가운데 1기(156호분)가 발굴조사되었다. 그리고 1977년에는 19호분과 20호분의 북편에 화물주차장이 건립됨에 따라 그 일대가 발굴조사되어 삼한시대(三韓時代)의 목곽묘(木槨墓), 옹관묘(甕棺墓)를 비롯하여 삼국시대의 수혈식 석곽묘(竪穴式 石槨墓),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 등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곳에는 황오동 고분군과 같이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무덤이 축조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봉토가 남아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들은 대부분 적석목곽분으로 출토유물이나 유구의 크기 등으로 보아 신라 귀족들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6. 1. 발굴 조사
19호분 조사에서는 12기의 묘곽이 확인되었는데, 1기는 단일원분으로 조성되었고, 나머지 11기는 하나의 봉토 안에 여러 묘곽이 있는 다곽식 봉분으로 추정된다. 묘곽 크기는 큰 것이 길이 4.5m, 너비 2m 정도였다. 20호분은 동서 지름 18m, 남북 지름 16m, 높이 4.2m의 단일원분이며, 길이 5m, 너비 1.8m인 목곽 하나가 있는 단곽식이었다. 149호분은 단곽식으로 묘곽 크기가 길이 3.95m, 너비 1.45m 정도였다. 출토 유물로는 금제 귀걸이(金製 耳飾), 목걸이(頸飾), 은제 허리띠(銀製 銙帶) 등의 장신구와 은장 환두대도(銀粧 環頭大刀) 등의 무기류, 등자(鐙子), 행엽(杏葉) 등의 마구류(馬具類), 그리고 토기류가 있다.1977년 화물주차장 부지에서는 적석목곽묘 9기, 옹관묘 6기, 수혈식 석곽묘 10기, 목곽묘로 추정되는 묘곽 2기 등이 발굴되었다. 이 중에는 대형 적석목곽분 3기(A군 1호, B군 1호, C군 1호)도 있었는데, B군 1호와 C군 1호는 각각 일제강점기 때의 21호분과 147호분으로 추정된다. 이 대형 적석목곽분에서는 금동관, 금제 귀걸이, 곡옥이 달린 목걸이, 은제 허리띠, 은장 환두대도 등 화려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현재 봉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왕동 새터마을(구 인교동사무소 서편)의 22호ㆍ23호ㆍ24호와, 첨성대 북편의 27호가 있다.
참조
[1]
문서
경주 대릉원 일원 통합 재지정
[2]
웹인용
대릉원
https://ko.dict.nave[...]
2021-03-04
[3]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명칭 변경 및 지정·해제 고시
문화재청장
2011-07-28
[4]
현장자료
경주 황남리 고분군 안내판
[5]
현장자료
경주 황오리 고분군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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