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여자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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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여자 축구는 1882년 축구가 한국에 전파된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여성의 격한 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949년 서울운동장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축구 경기가 열리고 대한여자축구협회가 창립되면서 여자 축구가 시작되었다. 1970년대에는 여자 축구팀이 창단되었고, 1974년 한국여자축구연맹이 발족되었다. 1985년 대한축구협회 여자 축구 대표팀이 구성되었으나 1987년 해체되었고, 1990년 재출범하여 1990년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다. 2003년 FIFA 여자 월드컵에 첫 출전하고, 2009년 WK리그가 창설되는 등 여자 축구가 발전했으며, 2015년 FIFA 여자 월드컵 본선에서 첫 승을 거두고 2022년 AFC 여자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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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여자 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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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시기, 한국에 근대 축구가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참여는 사실상 전무했다. 1925년 무렵 여성의 운동 참여에 대한 논의가 일부 있었으나, 당시 사회는 축구와 같이 신체 활동이 격렬한 운동은 여성에게 부적합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1][2] 이는 남성 축구가 조선 축구 대표팀의 활약 등으로 일정 수준 발전했던 것과는[3] 대조적인 상황이었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인식과 제약 속에서 일제강점기 동안 여성들의 축구 활동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2. 1. 초기 축구 전파
영국을 모태로 하는 근대 축구가 한국에 전파된 것은 1882년 6월 (고종 19년) 인천항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피쉬호의 승무원들을 통해서인 것으로 전해진다.[1]한국 여성과 축구에 관한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1925년이었다. 당시 이화학당의 운동부장이자 여자 올림픽 참가 경험이 있던 로이스는 여자들도 남자처럼 운동을 해야 한다고 보았으나, 여자의 선천적 기능이 남자와 다르므로 축구나 육상 경기처럼 신체에 급격한 긴장을 주는 운동은 여자에게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1] 그는 올림픽 육상 경기 중 한 여학생이 졸도했던 일을 예로 들며, 여자 체육은 유희, 유쾌, 사교를 목적으로 해야 하며 승부에 집중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1] 또한, 당시 동덕학교의 한 체육 교사는 남녀의 신체적 차이를 이유로 여자에게는 정구가 더 적합하다고 말하기도 했다.[2]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당시 사회적으로는 여성에게 격한 운동을 권장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남자 축구가 조선 축구 대표팀이 일본 본토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활발했던 것과[3] 대조적으로, 일제강점기 동안 여성과 관련된 축구 활동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2. 2. 여성의 축구 참여에 대한 사회적 인식
한국 여성과 축구에 대한 논의는 1925년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 이화학당의 운동부장이자 여자 올림픽 참가 경험이 있던 로이스는 여성도 남성처럼 운동해야 하지만, 선천적인 신체 기능 차이로 인해 축구나 육상 경기처럼 신체에 급격한 긴장을 주는 운동은 여성에게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1] 그는 올림픽 육상 경기 중 한 여학생이 졸도했던 사례를 들며, 여자 체육은 유희, 유쾌, 사교를 목적으로 해야 하며 승부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1] 또한, 당시 동덕학교의 한 체육 교사는 남녀의 신체적 차이를 이유로 여성에게는 정구가 더 적합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2]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당시 사회는 여성에게 격렬한 운동 참여를 권장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조선 축구 대표팀이 일본 본토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활발했던 남자 축구계의 모습과는[3] 대조적이며, 실제로 일제강점기 동안 기록된 여성의 축구 관련 활동은 전무했다.3. 해방 이후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여자 축구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1949년이다. 그해 6월 28일, 제2회 전국여자체육대회의 일환으로 서울운동장에서 중학여중과 무학여중 간의 경기가 열렸는데,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공식 여자 축구 경기로 기록되었다.[4] 당시 언론에서도 '이 땅 최초의 여자 축구'라며 큰 관심을 보였고, 김용식, 박규정 등이 제정한 규칙에 따라 경기가 진행되었고, 김구 선생이 우승배를 수여하기도 했다.[4][5] 같은 해 10월에는 대한여자축구협회가 창립되어 제1회 전국여자축구대회 개최를 결정했다.[7]
이후 한동안 침체기를 겪다가 1970년대 들어 여자 축구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72년 전주에서 최초의 여자 축구팀인 전주 여자 축구단이 창단되었고,[8][9] 이듬해 서울 여자 축구단이 창단되어 두 팀 간의 공식 경기가 열리며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9][10] 1974년에는 한국여자축구연맹이 발족되어 김용식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고, 전주, 서울, 광주 등의 팀을 중심으로 전국 대회를 개최했다.[11]
1985년, FIFA의 FIFA 여자 월드컵 개최 움직임에 발맞춰 대한축구협회 주도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창설되었다.[12] 김화집을 단장으로 하여 젊은 선수들을 선발했으나,[12][13] 협회는 활성화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1987년 팀을 해체하여 선수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14]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1990년에 다시 본격적으로 출범하여 그해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다. 초기에는 국제 대회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실업팀과 대학팀 창단이 이어지며 점차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3년 FIFA 여자 월드컵 본선 첫 진출, 2005년 동아시안컵 우승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2009년 여자 실업 리그인 WK리그가 출범하고 지소연, 이민아, 여민지 등 우수한 선수들이 배출되면서 한국 여자 축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2010년 FIFA U-20 여자 월드컵 3위, FIFA U-17 여자 월드컵 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했으며, 2015년 FIFA 여자 월드컵에서는 본선 첫 승과 함께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2022년 AFC 여자 아시안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여자 축구의 강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3. 1.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축구 경기 (1949)
1949년 6월 28일, 대한민국 체육계에서 '''최초의 여자 축구''' 경기가 열렸다.[4] 당시 신문들은 이 경기를 '''이 땅 최초의 여자 축구'''라고 보도하며 큰 관심을 보였고, 많은 관중이 최초의 여자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4]이 역사적인 경기는 제2회 전국여자체육대회의 일부로, 1949년 6월 28일 오후 6시 서울운동장에서 중학여중과 무학여중의 대결로 펼쳐졌다. 한국 여자 축구 규칙을 처음으로 제정한 김용식과 박규정이 직접 심판을 맡았다.[4]
경기 규칙은 기존 남자 축구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경기 시간은 전후반 각각 32분으로 진행되었고, 농구처럼 선수 교체가 자유로웠다. 또한, 골키퍼는 공을 막을 때 양팔을 가슴에 붙여야 한다는 독특한 규칙이 적용되었다.[5]
첫 경기였던 중학여중과 무학여중의 시합은 두 번의 연장전에도 승부가 나지 않아 결국 추첨을 통해 무학여중이 승리하게 되었다.[4] 무학여중은 다음 날인 29일에 열린 명성여중과의 경기에서도 승리하며[6] 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김구 선생이 수여하는 우승배를 받는 영예를 안았다.[4]
3. 2. 대한여자축구협회 창립 (1949)
1949년 10월에는 대한여자축구협회가 창립되었으며, 대한여자축구협회가 주최하는 제1회 전국여자축구대회를 열기로 결정했다.[7]3. 3. 초기 여자 축구팀 창단 (1970년대)
1972년 3월 18일, 전주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축구팀인 전주 여자 축구단이 창단되었다.[8][9] 이듬해인 1973년에는 서울 여자 축구단이 창단되었고, 같은 해 6월 17일에는 서울 여자 축구단과 전주 여자 축구단 간의 한국 최초 공식 여자 축구 경기가 열렸다.[9]
이 경기를 앞두고 언론에서는 '한국 축구도 남성 전유의 시대가 지났다'고 보도했으며, 선수들은 '우리도 인기 스포츠인 축구를 남성들과 함께 즐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10] 경기가 끝난 후에는 서울여자축구단 단장에게 100통이 넘는 입단 지원 전화가 쇄도할 정도로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9]
1974년에는 한국여자축구연맹이 발족되었고, 김용식이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연맹은 전주 여자 축구단, 서울 여자 축구단, 광주 여자 축구단 등을 중심으로 전국 규모의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11]
3. 4. 한국여자축구연맹 발족 (1974)
1974년에는 한국여자축구연맹이 발족되어 김용식이 명예회장으로 부임된 후 전주 여자 축구단과 서울 여자 축구단, 광주 여자 축구단을 중심으로 전국대회를 펼쳤다.[11]3. 5. 대한축구협회 여자 축구 대표팀 구성과 해체 (1985-1987)
1985년, FIFA가 FIFA 여자 월드컵 활성화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 출전을 목표로 여자 축구 대표팀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12] 협회는 김화집을 단장으로 선임하고, 18세에서 23세 사이의 미혼 여성을 대상으로 선수를 선발했다.[12][13]
그러나 대표팀은 창단된 지 불과 2년 만인 1987년에 해체되었다. 협회는 여자 축구가 활성화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14] 이에 선수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일부 선수들은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축구에 헌신했다며 협회 측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협회는 "계획 단계부터 잘못되었다"며, "전망도 없는데 연간 많은 예산을 투자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팀 해체를 강행했다.[14]
3. 6.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재출범과 발전 (1990년대-현재)
1990년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본격적으로 다시 출범하였고, 그해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였다. 이 대회에서 홍콩에 1:0으로 승리하였으나, 일본에는 1:13으로 크게 패배하는 등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실업팀과 대학팀 등이 창단되면서 여자 축구 기반이 다져지기 시작했고,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2003년에는 FIFA 여자 월드컵 본선에 사상 처음으로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5년에는 동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이후 한동안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09년 여자 축구 실업 리그인 WK리그가 창설되면서 선수 육성과 경기력 향상에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었다. 지소연, 이민아, 여민지와 같은 우수한 선수들이 등장하며 대표팀의 전력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발전을 바탕으로 2010년에는 FIFA U-20 여자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였고, FIFA U-17 여자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FIFA 주관 대회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2015년 FIFA 여자 월드컵 본선에 다시 진출하여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월드컵 본선 첫 승을 기록했고,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꾸준한 성장을 통해 2017년에는 FIFA 랭킹 14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2022년 AFC 여자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여자 축구 강호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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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간추린 축구사 - 대한축구협회
https://web.archive.[...]
2017-06-11
[2]
뉴스
치중하는 운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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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25-01-01
[3]
뉴스
경성축구단, 일제강점기 일왕배를 제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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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funding
2016-11-28
[4]
뉴스
이땅 최초의 여자축구 재작일서울운동장서성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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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4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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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보는 여자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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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7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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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4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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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4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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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팬에 선보일 여자 축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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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72-07-0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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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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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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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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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8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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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85-04-1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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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8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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