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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계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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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계 한국인은 한국에 거주하거나 귀화한 러시아 혈통의 사람들을 지칭한다. 1884년 한러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러시아인들이 한국에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1990년 수교 이후 러시아인들의 유입이 증가했다. 주요 러시아인 거주 지역으로는 서울 광희동, 부산 중앙동 등이 있으며, 박노자, 신의손, 데니스 락티오노프 등 여러 인물이 한국으로 귀화했다. 한국 정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와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으나,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정교회 국가 출신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슬라브어를 사용하는 신자들을 위한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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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계 한국인
개요
총 인구71,689명 (2024년)
거주 지역
주요 거주 국가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언어 및 종교
사용 언어러시아어
한국어
종교한국 정교회

2. 역사

러시아인이 한국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884년 한러 수호 통상 조약 체결 이후부터이다. 이후 러시아 내전 시기인 1922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 함락을 피해 약 7,500명의 러시아인 난민이 원산항으로 들어왔으나, 대부분은 다른 나라로 떠나고 일부만 한국에 정착했다.

소비에트 연방과의 관계 단절 이후 한동안 교류가 뜸했으나, 1990년 대한민국과 소비에트 연방이 다시 국교를 맺으면서 서울, 부산 등지에 러시아인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일부 러시아인들이 대한민국으로 귀화하기 시작했으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축구 선수 신의손, 학자 박노자, 축구 선수 데니스 락티오노프 등이 있다.[16] 2008년에는 한 러시아 과학자의 귀화가 주목받기도 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영주권자, 결혼 이민자, 취업 이민자, 유학생 등 다양한 목적으로 약 5만 명의 러시아 국적자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약 2만 명은 한국계 러시아인으로 추산된다.[17]

2. 1. 초기 역사 (1884년 ~ 1945년)

한러 수호 통상 조약이 1884년에 체결되면서 러시아인이 한국에 처음으로 거주하기 시작했다. 스위스계 가문 출신 건축가인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사바틴은 한국에서 가장 초기에 확인된 러시아인 중 한 명이다. 그는 1884년 청나라 톈진에서 고종의 초청을 받았다. 이듬해 1885년 4월, 카를 이바노비치 베버는 서울에서 러시아 제국의 공식 대표가 되었다.[3]

서울의 구 러시아 공사관


정식 외교 관계 수립과 함께 1890년대에 더 많은 러시아인들이 주로 만주를 통해 한국으로 이주했다.[5] 당시 공동체는 1890년에 개설된 러시아 공사관과 1903년에 개설된 성 니콜라스 러시아 정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 두 곳 모두 서울의 정동(현재의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었다. 선교사, 외교관, 사업가들이 당시 이민 공동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러시아는 당시 한국 정치에 영향력이 컸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러시아는 1905년 러일 전쟁에서 패배한 후 한국에서의 영향력이 약해졌다.[6]

1922년, 러시아 내전 중 블라디보스토크가 적군에게 함락되면서 새로운 러시아 난민들이 유입되었다.[7] 같은 해 10월, 15,000명 이상의 난민이 강원도 원산에 도착했다. 약 절반은 상하이로 가는 여비를 마련했지만, 귀중품을 챙기지 못한 사람들은 겨울 동안 원산에 머물러야 했다. 그들은 자선 기부와 임시 노동에 의존하여 생존했다. 윌리엄 아서 노블, 한국 주재 미국 선교사에 따르면, 문맹률은 20%를 넘지 않았다. 그들은 과밀한 배나 부두의 거의 난방이 되지 않는 세관 창고에서 살았다.[8] 1923년 초, 난민들은 흩어져 하얼빈으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하얼빈 러시아인과 같은 대규모 러시아 공동체가 있었고, 일부는 라틴 아메리카로 이동했다.[9]

1925년 2월, 일본소련을 인정하고 러시아 공사관 건물을 새로운 소련 대사에게 양도했다. 1920년대 후반에는 약 100명의 러시아인이 서울에 남아 있었다. 전직 귀족과 관리들은 정동에 살았고, 타타르인 공동체는 남대문과 혼마치(현재의 명동) 근처 시장에서 살면서 일했다. 그러나 공동체 내의 계급 분열로 인해 이 두 그룹은 자주 교류하지 않았다.[10] 시베리아로 추방된 폴란드 귀족의 손자인 게오르기 얀콥스키는 청진에 동아시아 러시아 공동체에서 인기가 있었지만, 다른 서양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휴양지를 운영했다. 소련의 만주 침공이 일어나자 그곳에 살던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체포되어 소련으로 강제 송환되었다.[11]

2. 2. 해방 이후 (1945년 ~ 현재)

1990년 대한민국은 소비에트 연방과 국교를 수립하였고, 이후 서울과 부산 등지에 러시아 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일부 러시아인들은 대한민국으로 귀화를 선택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귀화 인물로는 축구 선수 신의손, 학자 박노자, 축구 선수 데니스 락티오노프 등이 있으며, 2008년에는 한 러시아 과학자의 귀화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16] 현재 대한민국에는 영주권자, 결혼 이민자, 취업 이민자, 유학생 등을 포함하여 약 5만 명의 러시아 시민권자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약 2만 명은 한국계 러시아인으로 추정된다.[17]

대한민국의 여러 도시에는 새로운 러시아인 공동체가 자리 잡았다. 서울의 경우, 1980년대 후반부터 동대문 인근 중구 광희동에 소위 "리틀 러시아"가 형성되었다. 2004년 당시 이 지역에는 구 소련 출신 약 5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불법 체류자 단속 등의 영향으로 몇 년 전 7만 명에서 감소한 수치이다.[2] 부산에서는 중구 중앙동의 옛 "텍사스 타운" 지역에 러시아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약 200명이 영구적으로 거주하며, 단기 비자를 소지한 수백 명과 함께 많은 수의 러시아 선원들이 임시로 머무르고 있다.[12]

3. 종교

정교회는 러시아계 한국인 사회에서 중요한 종교적 부분을 차지하며, 특히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및 구소련 국가 출신 이주민이 증가하면서 그 역할이 커졌다.

대한민국 내에서는 한국 전쟁 이후의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대한 정교회가 러시아 정교회가 아닌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산하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대한 정교회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러시아인을 포함한 다양한 국적의 정교회 신자들을 위한 사목 활동을 제공하고 있다.[13]

한편, 북한 평양에도 김정일의 지시로 건설된 정교회 성당이 존재하며[15], 주로 북한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을 위해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견된 성직자들이 봉사하고 있다.[14]

3. 1. 한국 정교회와의 관계

성 니콜라스 대성당 (대한민국 서울)


한국 전쟁 (1950–1953) 이후, 대한민국 내에서는 북한과의 동맹 관계였던 러시아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의 정교회 신자들은 러시아 정교회와의 관계를 원치 않았다. 이는 대한민국 정교회 공동체와 러시아 정교회 사이의 분열로 이어졌다. 이 문제는 1955년 12월 25일 성탄절 성찬 예식 후 열린 대한민국 정교회 공동체 총회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의 관할 아래로 들어가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하면서 해결되었다. 총대주교청은 이를 수락했고, 이후 대한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관구 소속으로 남게 되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를 비롯한 정교회 국가 출신의 경제 이민자들이 대한민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한 정교회에서 안식처와 지원을 찾았다. 당시 한국 관구의 메트로폴리탄이었던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는 슬라브어를 사용하는 정교회 신자들을 위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슬라브권 신자들이 친숙함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성탄절과 같은 주요 축일에 구력(율리우스력)에 따른 특별 예배를 마련하기도 했다. 1995년에는 바르톨로메오스 1세 총대주교가 대한민국을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 방문하여 성 막시무스 그리스인 경당의 주춧돌을 놓았다.

그 후로 한국 정교회 관구는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국적의 정교회 신자들(한국인, 러시아인, 그리스인 등)과 임시 방문객 및 근로자(선원, 사업가 등)에 대한 목회적 돌봄을 책임지고 있다. 즉, 한국 내 모든 정교회 신자들은 세계 총대주교의 영적 관할권(오모포리온) 아래 보호받고 있다. 모든 신자들에게 적절한 사목을 제공하기 위해, 서울의 성 니콜라스 대성당 외에도 슬라브어 사용자를 위한 슬라브어 예배와 영어 사용자를 위한 영어 예배가 열리는 성 막시무스 그리스인 경당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부산의 수태고지 교회 내 성 게오르기우스 경당에서는 부산 및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슬라브어 사용자들을 위해 슬라브어로 성찬 예식이 거행된다.[13]

3. 2. 북한 내 러시아 정교회

평양에 위치한 생명력 있는 삼위일체 교회는 2006년에 봉헌되었다.[15] 이 교회는 김정일러시아 하바롭스크에 있는 이노켄티 이르쿠츠크 교회를 방문한 뒤, 그의 지시에 따라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15] 2022년부터는 평양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을 위해 때때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파견된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들이 종교적 봉사를 제공하고 있다.[14]

4. 주요 인물

러시아계 한국인들은 스포츠, 학술,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한민국에 귀화하여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기여하고 있다. 주요 인물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 하위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1. 귀화인

러시아 출신으로 대한민국에 귀화하여 활동하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이름 (귀화명)본명 / 다른 이름주요 활동 분야 / 직업
신의손발레리 사리체프축구 골키퍼 및 코치
박노자블라디미르 티호노프교수, 작가, 칼럼니스트
데니스 락티오노프이성남축구 선수
안드레이 란코프역사학자 및 언론인
일리야 벨랴코프
김수정
라리사
루산 지아트디노프대구 계명대학교 교수
티모페이 랍신바이애슬론 선수
루슬란 베르니코프안양 한라 하키 선수
세르게이 타라소프피아니스트, 대구 계명대학교 교수
올레그 시틴피아니스트, 대구 계명대학교 교수
안드레이 그리고레프대구 계명대학교 교수
에두아르드 데대구 계명대학교 교수
기한 텐대구 계명대학교 교수
잔나 발로드서울 서경대학교 교수


4. 2. 학계 및 기타

학계 및 기타 분야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러시아계 한국인으로는 박노자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와 안드레이 란코프 등이 있다. 박노자는 교수이자 작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안드레이 란코프는 역사학자 및 언론인으로 알려져 있다. 일리야 벨랴코프 역시 방송 활동 등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대구 계명대학교에는 여러 러시아계 교수들이 재직 중이다. 루산 지아트디노프, 세르게이 타라소프(피아니스트), 올레그 시틴(피아니스트), 안드레이 그리고레프, 에두아르드 데, 기한 텐 등이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서울 서경대학교의 잔나 발로드 교수 등이 학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외 김수정, 라리사 등도 러시아계 한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는 학계 및 기타 분야에서 활동하는 주요 러시아계 한국인 목록이다.

이름 (본명)주요 활동/소속비고
박노자 (블라디미르 티호노프)교수, 작가, 칼럼니스트
안드레이 란코프역사학자, 언론인
일리야 벨랴코프
루산 지아트디노프대구 계명대학교 교수
세르게이 타라소프피아니스트, 대구 계명대학교 교수
올레그 시틴피아니스트, 대구 계명대학교 교수
안드레이 그리고레프대구 계명대학교 교수
에두아르드 데대구 계명대학교 교수
기한 텐대구 계명대학교 교수
잔나 발로드서울 서경대학교 교수
김수정2004년생
라리사1983년생


5. 통계 (선택 사항)

영주권자, 결혼 이민자, 취업 이민자, 유학생 등을 포함하여 현재 약 5만 명의 러시아 시민권자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 수치에는 약 2만 명의 한국계 러시아인이 포함된다.[17]

참조

[1] 웹사이트 page 21 https://viewer.moj.g[...]
[2] 간행물 A taste of Russia in heart of Seoul http://english.seoul[...] 2004-11-08
[3] 문서 Pak Bella 2013
[4] 문서 Volkov 2004
[5] 문서 Pak Bella 2021
[6] 문서 Clark 1994
[7] 뉴스 The Dawn of Modern Korea: Russian Immigrants http://news.empas.co[...] 2003-10-08
[8] 문서 Clark 1994
[9] 문서 Clark 1994
[10] 문서 Clark 1994
[11] 문서 Clark 1994
[12] 뉴스 In Korea, 'Texas Town' Goes Russian http://www.iht.com/a[...] 1999-12-01
[13] 간행물 Chronicle of the Creation of Orthodox Diaspora in Korea and the Pastoral Care Offered by the Holy Metropolis of Korea https://www.orthodox[...] Korean Orthodox Church 2005-05-01
[14] 뉴스 Russian Orthodox Christians celebrate Pentecost in Pyongyang http://www.asianews.[...] 2007-05-26
[15] 웹사이트 Русский священник в Пхеньяне радуется за северокорейцев - жить сложно, но они истинные патриоты http://www.newsru.co[...] 2010-08-24
[16] 뉴스 러시아서 귀화한 블라디미르 사벨리예프 박사 http://news.mk.co.kr[...]
[17] 웹사이트 KOSIS 국가통계포털 http://kosis.kr/co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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