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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자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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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류자후이는 1955년 출생한 홍콩의 배우로, 1970년대 무술 영화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1973년 영화계에 데뷔하여, 1978년 《소림 36방》에서 삼덕 화상 역을 맡아 쿵푸 스타로 발돋움했다. 1980년대 이후 액션 영화 악역이나 TV 드라마로 활동 영역을 넓혔으며, 2003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 시리즈에 출연하여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2011년 뇌경색 발작으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으나, 배우 활동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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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자후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본명승금희 (冼錦熙)
출생일1955년 8월 22일
출생지중국 광둥성 포산
국적불명 (문서에 명시되지 않음)
직업배우, 무술가
활동 기간1973년–현재
개인 정보
배우자마페이펑 (馬 Fei-feng) (1991년 결혼, 2009년 이혼)
자녀앙지 신 (딸,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
보니 신 (딸,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
크리스 신 (아들, 마페이펑과의 사이)
소니아 신 (딸, 마페이펑과의 사이)
가족 관계
양아버지유담 (劉湛)
형제라우 카량 (유가량, 劉家良)
라우 카윙 (유가영, 劉家榮)
중국어 정보
간체자刘家辉
병음Liú Jiāhuī
광둥어 로마자 표기Lau4 Gaa1-fai1
본명 (간체자)冼锦熙
본명 (병음)Xiǎn Jǐnxī
기타 정보
관련 인물라우 카량 (사형)
경력무술 지도, 영화 감독
외부 링크
웹사이트해당 정보 없음

2. 생애

1955년 8월 22일 중화인민공화국 광둥성 포산에서 신캄헤이(Sin Kam-hei)라는 이름으로 태어나[5] 어린 시절 홍콩으로 이주했다. 황비홍 계보를 잇는 류잔(劉湛, 유담)의 대자(代子)가 되어[6] 그의 도장에서 홍가권(洪家拳)을 익혔고, 류잔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류자후이'(劉家輝, 유가휘)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류잔의 아들들이자 훗날 홍콩 영화계에서 함께 활약하게 될 류자량(劉家良, 유가량) 및 류자룽(劉家榮, 유가영)과 의형제를 맺었다.

중학교를 중퇴 혹은 졸업 후 잠시 해운 사무원으로 일했으나, 무술에 대한 열정으로 의형 류자량의 권유를 받아 영화계에 입문했다. 1973년 《살출중위(殺出重圍)》 출연을 시작으로[6] 대만 창궁 영화사 등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다. 초기에는 작은 역할을 맡다가 1976년 홍콩으로 돌아와 류자량 감독의 《육아채와 황비홍(陸阿采與黃飛鴻)》에서 주연 황비홍 역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1][6]

1978년 영화 《소림36방(少林三十六房)》에서 주인공 삼덕 화상 역을 맡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국제적인 쿵푸 스타로 발돋움했다.[1][6] 이 영화로 삭발한 소림 승려 이미지는 그의 상징이 되었고[1][6], 이후 다수의 관련 영화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1980년대 이후 쿵푸 영화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홍콩 TVB와 계약하여 텔레비전 드라마로 활동 영역을 넓혔고, 무술 연기 외에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6][5] 2000년대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 시리즈 출연으로 다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볼리우드 영화 《차이니즈 차이니즈》(2009)에도 출연했다.[7]

개인적으로는 두 번 결혼하여 네 자녀(2남 2녀)를 두었다.

2011년 8월(일부 자료 9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부분 마비와 언어 장애를 얻고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되었다.[9][8] 투병 과정에서 가족 및 재산 관련 분쟁을 겪기도 했으나,[10][11] 이후 요양원에서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12]

2. 1. 어린 시절과 무술 수련

1955년 8월 22일 중화인민공화국 광둥성 포산에서 신캄헤이(Sin Kam-hei)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5] 어린 시절 홍콩으로 이주하였으며, 다른 가족에게 입양되었다는 설도 있으나[5] 실제로는 황비홍의 제자인 임세영의 제자였던 류잔(劉湛, 유담)의 대자(代子)였다.[6] 이 때문에 종종 류잔의 양자이자, 영화 감독 겸 배우인 류자량(劉家良, 유가량)과 류자룽(劉家榮, 유가영)의 의붓 형제로 잘못 알려지기도 한다.[6]

그는 중학교를 중퇴했다는 설과 1971년 졸업 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련했다는 설이 공존한다. 어린 시절(15~20세 무렵)에는 부모님 몰래 학교를 빠지고 중국 무술 훈련을 받기도 했다. 그는 황비홍(黃飛鴻)의 제자인 임세영을 사부로 둔 류잔(劉湛)의 무술 도장(무관 武館)에서 홍가권(洪家拳)을 수련했다. 류잔의 무술 학교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고, 류잔의 아내는 그의 훈련을 돕기도 했다. 류자후이는 류잔 부부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본명을 '류자후이'(劉家輝, 유가휘)로 개명했다. 이는 성과 이름만 바꾼 것이며, 류씨 가문의 호적에 정식으로 입양된 것은 아니다. 이 인연으로 류잔의 아들인 류자량(劉家良, 1934년~2013년) 및 류자룽(劉家榮, 1944년~)과 의형제를 맺고 각각 맏형과 둘째 형으로 모시게 되었다. 류잔에게 직접 지도를 받았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의형인 류자량의 지도를 주로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무술에 대한 열정이 깊었지만, 처음부터 배우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생계를 위해 잠시 해운 사무원(shipping clerk)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의 관심사는 항상 무술에 있었고, 결국 의형인 류자량으로부터 영화계 데뷔 제안을 받게 된다.

2. 2. 영화계 데뷔와 초기 활동

1966년 15세 때 홍콩에서 월극 배우로 처음 무대에 섰고, 1년 뒤인 1967년 홍콩 영화 《공중녀살수(空中女殺手)》를 통해 영화배우로 정식 데뷔했다.[1] 1971년 중학교를 졸업한 후 낮에는 생계를 위해 일하고 밤에는 의형이자 쿵푸 스승인 라우 카렁(劉家良, 유가량)에게 본격적으로 홍가권을 포함한 무술 지도를 받았다.[6]

1973년, 라우 카렁이 제작한 영화 《살출중위(殺出重圍)》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6] 이후 라우 카렁의 소개로 대만에서 활동하던 유명 감독 장철(張徹)이 이끄는 창궁 영화사(長弓電影公司)에 합류했다.[6] 하지만 당시 장철 감독은 강대위, 적룡 등 이미 스타덤에 오른 배우들을 주로 기용했기 때문에, 류자후이는 한동안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하고 《소림오조(少林五祖)》(1974), 《홍권여영춘(洪拳與詠春)》, 《사형사제(四王一后)》(원제: 마르코 폴로, 1975) 등에서 단역이나 작은 조역으로 출연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1][6][4]

1976년, 창궁 영화사와의 계약을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온 그는 라우 카렁이 감독한 영화 《육아채와 황비홍(陸阿采與黃飛鴻)》에서 주인공 황비홍 역을 맡아 뛰어난 홍가권 실력과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1][6] 이 영화는 그가 민간 영웅 황비홍 역을 맡아 연기한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4] 이후 《강남팔대협(江南八大俠)》(원제: 소림사 흑수당, 1977) 등에 출연하며 입지를 더욱 굳혔다.[4]

1978년은 류자후이의 경력에서 정점을 찍은 해였다. 먼저 영화 《살출중위(殺出重圍)》에서 주연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으로 영화 감독과 무술 감독으로 데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1] 뒤이어 출연한 라우 카렁 감독의 영화 《소림36방(少林三十六房)》에서 주인공 삼덕 화상(三德和尚) 역을 맡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1][6] 이 영화는 소림사 내부의 엄격하고 독특한 35개 방의 수련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5] 그해 홍콩 10대 흥행 영화에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며 류자후이를 국제적인 스타로 만들었다.[6][5]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민머리에 계인(戒印)을 찍은 소림 승려의 이미지로 전 세계 팬들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으며, 최고의 무협 영화 배우 중 한 사람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1][6] "무명에서 영웅으로"라는 서사는 그의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그를 국제적인 아이콘으로 만들었고, "철완(鐵腕)"이라는 별명을 얻게 했다.[5]

삭발한 소림사 승려 역할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창이나 곤봉 같은 무기를 들고 승복을 입거나 상반신을 드러낸 모습만으로도 팬들이 즉시 알아볼 정도로 독보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1] 당시 라우 카렁, 라우 카윙과 함께 '류씨 3인방'으로 불렸지만, 배우로서는 류자후이가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며 홍콩과 동남아시아에서 슈퍼스타급 인기를 누렸다.[1] 한국에서도 그의 민머리와 이마의 계인 자국은 큰 인상을 남기며 널리 알려졌다.[1]

한편, 류자후이는 1960년대1970년대에 다수의 영화를 한국에서 한홍 합작 형식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배우 장미희, 김영일, 황정리, 왕룡 등 당시 한국의 유명 배우들과 함께 한국 로케이션 촬영을 하며 호흡을 맞춘 바 있다.[1]

1980년대에 들어 쿵푸 영화의 인기가 점차 시들해지고 그가 주로 활동했던 쇼 브라더스 스튜디오 역시 쇠퇴하면서 그의 활동에도 변화가 찾아왔다.[6] 액션 영화에서 악역을 연기하는 빈도가 늘어났고, TV 드라마로 활동 영역을 넓혀 수년간 홍콩TVB와 계약을 맺고 활동했다.[6][5] TVB에서는 주로 무술 고수 역할이나 홍콩 경찰 역할을 맡았다.[5] 1985년에는 영화 《묘탐자보(妙探孖寶)》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영화 제작자로 데뷔하기도 했다.[1] 1980년대 후반에는 라우 카렁 감독의 《폴리스 스토리 2 - 구룡의 눈》(1988)과 같은 영화에서 비중이 작은 역할을 맡기도 했다.[5]

2. 3. 전성기: 소림사 시리즈와 무협 스타

1973년, 형부인 라우 카 렁(劉家良, 유가량)이 제작한 영화 《살출중위(殺出重圍)》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8] 이후 라우 카 렁의 소개로 장철(張徹) 감독이 이끄는 대만의 영화사 창궁 영화사(長弓電影公司)에 합류했다. 이 시기 창궁 영화사는 쇼 브라더스의 자회사 격으로 운영되었으며, 류자후이는 《소림오조(少林五祖)》(1974), 《홍권여영춘(洪拳與詠春)》, 《오조사》, 《소림권》 등에서 단역이나 작은 역할을 맡았다.[8] 당시 장철 감독은 강대위(姜大衛), 적룡(狄龍) 등 인기 배우들을 주로 기용했기에 한동안 중요한 역할은 맡지 못했다.

1976년, 창궁 영화사와의 계약을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와 형부 라우 카 렁이 감독한 《육아채와 황비홍(陸阿采與黃飛鴻)》에서 주인공 황비홍(黃飛鴻) 역을 맡아 뛰어난 홍가권(洪家拳) 솜씨와 연기를 선보이며 처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민간 영웅 황비홍을 다룬 작품으로, 류자후이에게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이후 소림사를 소재로 한 여러 영화들을 통해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78년은 류자후이 경력의 정점이었다. 먼저 《살출중위(殺出重圍)》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영화 감독과 무술 감독으로 데뷔했다. 뒤이어 라우 카 렁 감독의 대표작 《소림36방(少林三十六房)》에서 주인공 삼덕(三德) 화상 역을 맡아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최고의 무협 스타 반열에 올랐다.[8] 이 영화는 소림사 내부의 엄격한 훈련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며 35개의 관문을 통과하는 삼덕의 성장기를 그렸는데, 이러한 "무명에서 영웅으로" 서사는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소림36방》은 그해 홍콩 10대 영화 중 하나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8]

이 영화의 성공으로 삭발한 머리에 승복을 입은 소림사 승려 이미지는 류자후이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이마 한가운데에 찍힌 계인(戒印) 자국과 함께 창이나 곤봉을 든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전 세계 팬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그는 류씨 집안의 유명 무술가이자 영화인인 류잔(劉湛, 유담), 류자량(劉家良, 유가량), 류자룽(劉家榮, 유가영) 등과 함께 활동했지만, 배우로서는 가장 두드러진 성공을 거두며 당시 홍콩 무술 영화계와 동남아시아에서 슈퍼스타급 인기를 누렸다. 한국에서도 그의 소림사 무승 이미지는 널리 알려지며 큰 인기를 끌었다.

전성기 시절 류자후이는 한국과의 인연도 있었다. 1970년대에 다수의 영화를 한국 로케이션으로 촬영하며 한홍 합작 형태로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배우 장미희, 김영일, 황정리, 왕룡 등 당시 유명했던 한국 액션 배우들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소림36방》의 성공 이후 류자후이는 한동안 최고의 무협 스타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비록 근육질의 "철권"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체형이었지만, 뛰어난 무술 실력과 카리스마로 국제적인 아이콘이 되었고, 1980년대 초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1985년에는 《묘탐자보(妙探孖寶)》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영화 제작자로도 데뷔했다.

2. 4. 1980년대 이후: 다양한 역할 도전과 TV 드라마 진출

1980년대에 들어 쿵푸 영화 붐이 쇠퇴하고 쇼 브라더스 역시 하락세를 겪으면서 류자후이의 활동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그는 액션 영화에서 악역을 맡기 시작했고,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수년간 홍콩TVB와 계약을 맺고 활동했는데, 여전히 무술 고수 역할을 맡기도 했지만 코미디, 자학적인 캐릭터, 감성적인 인물 연기까지 소화하며 연기 폭을 넓혔다. TVB에서 그가 자주 맡았던 역할 중 하나는 홍콩 경찰의 경찰관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형부 라우 카 렁이 감독한 영화 《폴리스 스토리 2》와 같은 작품에서 작은 역할을 맡기도 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오랫동안 류자후이의 팬이었고, 자신의 영화에 그를 캐스팅하기를 원했다. 이는 2003년 영화 《킬 빌》 시리즈 출연으로 실현되었는데, 파트 1에서는 야쿠자 보스 조니 모 역을, 파트 2에서는 백발의 무술 사부 파이 메이 역을 연기했다. 《킬 빌》에서의 인상적인 연기는 류자후이의 국제적인 인지도를 다시 한번 높였고, 중국 본토 제작자들의 새로운 관심을 끌었다. 《킬 빌》 이후 그는 홍콩 TVB에서의 텔레비전 활동을 계속하면서 다시 영화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홍콩 액션 영화의 주요 배우이자 할리우드 진출 외에도, 류자후이는 2009년 영화 《차이니즈 차이니즈》 (Chandni Chowk to China)에 출연하며 볼리우드에 데뷔했다.[7] 이 영화에서 그는 밀수업자이자 숙련된 무술가인 악당 호조 역을 맡았다. 같은 해, 그는 로렌조 데 루카가 제작한 무술 영화 역사에 관한 최초의 이탈리아 다큐멘터리 《드래곤랜드》 (Dragonland)에 스승 라우 카 렁과 함께 본인 역으로 출연했다. 류자후이는 로마에서 열린 시사회에 특별 게스트로 참석하여 처음으로 이탈리아 팬들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8월(일부 자료는 9월), 류자후이는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이 과정에서 계단에서 넘어져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인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고, 회복을 위해 모든 활동 계획을 보류해야 했다. 2012년 3월 기준으로 그는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했으며, 이후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8]

2. 5. 1990년대와 2000년대: 국제적인 활동과 <킬 빌>

1980년대 후반, 쿵푸 영화 붐이 사그라들고 쇼 브라더스가 쇠퇴하면서 류자후이의 활동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는 라우 카 렁이 참여한 영화 등에서 작은 역할을 맡기도 했으며, 홍콩의 주요 방송국인 TVB와 계약을 맺고 텔레비전 드라마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 TVB에서 그는 수년간 활동하며 주로 무술 고수 역할을 연기했지만, 때로는 코미디나 감성적인 캐릭터, 심지어 홍콩 경찰 역할까지 소화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미국의 유명 영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오랫동안 류자후이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자신의 영화에 그를 캐스팅하기를 희망했다. 이 바람은 타란티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킬 빌》 시리즈를 통해 현실화되었다. 류자후이는 《킬 빌 1부》(2003)에서 야쿠자 조직 '크레이지 88'의 두목 조니 모 역을, 그리고 《킬 빌 2부》(2004)에서는 우마 서먼이 연기한 주인공에게 쿵푸를 전수하는 전설적인 백미 노승(파이 메이)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파이 메이 역할은 그의 상징적인 삭발 이미지와 맞물려 큰 주목을 받았다.

《킬 빌》 시리즈의 성공은 류자후이의 국제적인 인지도를 다시 한번 크게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그는 중국 본토 영화 제작자들로부터 새로운 관심을 받게 되었고, 홍콩 TVB에서의 활동을 병행하면서 다시 영화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재개했다.

이 시기 그는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인도 볼리우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2009년 개봉한 인도 영화 《차이니스 차이니즈》(Chandni Chowk to China|eng)에서는 악당 호조 역을 맡아 볼리우드 데뷔를 치렀다.[7] 극중 호조는 밀수업자이자 숙련된 무술가 캐릭터로 등장했다.

같은 해,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무술 영화 역사 다큐멘터리 《드래곤랜드》(Dragonland|eng, 2009)에 그의 스승인 라우 카 렁과 함께 본인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류자후이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이 영화의 시사회에 특별 게스트로 참석하여 처음으로 이탈리아 팬들과 직접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2011년 8월, 류자후이는 뇌졸중 발작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계단에서 넘어져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게 되었고, 이후 모든 연예 활동을 중단하고 치료와 회복에 전념하게 되었다. 2012년 3월 기준으로 그는 모든 공식 활동을 취소하고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8]

2. 6. 투병 생활

2011년 8월, 류자후이는 홍콩 토콰완에서 자신의 밴드와 공연하던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머리를 부딪혔다. (일부 자료에서는 2011년 9월 뇌경색 발작 중 계단에서 넘어져 부상을 입었다고도 한다.) 이 사고의 결과로 그는 오른쪽 몸의 부분 마비와 언어 장애를 겪게 되었으며[9], 하반신 마비로 인해 이동 시 휠체어를 사용해야 했다.

투병 중, 그는 관계가 소원했던 두 번째 아내 马飞凤|마페이펑zho과 그 사이의 자녀들(아들 冼峻龙|크리스zho, 딸 冼咏珊|소니아zho)로부터 금전적인 요구를 받기 시작했다. 자신의 건강 상태와 가족 문제로 인해 우울감을 느낀 그는 요양원에 들어가 외부와의 접촉을 줄였다. 2012년 6월, 류자후이는 회복에 전념하기 위해 두 번째 아내와 이혼 절차를 밟았다.[9]

건강 문제로 인해 류자후이는 자신의 자산을 비서이자 대변인이었던 에바 펑에게 맡겼다. 그러나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펑은 그의 자산을 돌려주기를 거부했다.[10] 이에 류자후이는 2013년 홍콩 배우 판빙빙을 자신의 자산에 대한 법적 보호자로 지정하였고[11], 자산을 되찾기 위해 법적 조치를 취했다. 결국 2014년 4월 29일, 법원 출두 예정일 하루 전에 펑은 이자를 포함한 자산을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2015년의 보도에 따르면, 류자후이는 더 이상 발음 장애는 겪지 않지만 여전히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수년째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12]

3. 작품 활동

1966년 15세 때 홍콩에서 월극 배우로 처음 무대에 섰으며, 1년 후인 1967년 홍콩 영화 《공중녀살수(空中女殺手)》를 통해 영화배우로 정식 데뷔했다. 1974년 창체(張徹, 장철) 감독의 《소림오조》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소림사》, 《홍권여영춘(洪拳與詠春)》 등에 출연하며 점차 이름을 알렸다.

1976년 《육아채와 황비홍(陸阿采與黃飛鴻)》에서 주인공 황비홍 역을 맡아 뛰어난 홍가권 실력과 연기를 선보이며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후 1978년 영화 《살출중위(殺出重圍)》에서는 주연뿐만 아니라 감독과 무술 감독으로 데뷔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같은 해 개봉한 《소림36방》에서 삼덕 화상 역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최고의 무협 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삭발한 소림사 승려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그의 민머리와 승복 차림은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전 세계 팬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당시 류씨(劉氏) 3형제 중에서도 배우로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며 홍콩 무술 영화계와 동남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한국에서도 이마의 계인(戒印) 자국이 있는 대머리 스님 이미지로 널리 알려졌다.

1985년에는 《묘탐자보(妙探孖寶)》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영화 제작자로도 데뷔했다. 이후 영화와 TV 드라마를 오가며 꾸준히 활동했으며, 특히 홍콩TVB 소속 배우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세계적인 영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그의 열렬한 팬으로, 자신의 영화 《킬 빌》 1편과 2편에 그를 조연으로 캐스팅하여 그의 경력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한편, 1960년대1970년대에는 다수의 영화를 한국에서 한홍 합작으로 촬영했으며, 배우 장미희, 황정리, 왕룡 등 당시 한국의 유명 배우들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3. 1. 영화

1966년 15세 때 홍콩에서 월극 배우로 처음 무대에 섰으며, 1년 후인 1967년 영화 《공중녀살수(空中女殺手)》를 통해 영화배우로 정식 데뷔했다. 초기에는 창스 영화사(대만에서 운영되던 쇼 브라더스의 자회사) 소속으로 《오조사》, 《소림권》, 《4인의 자객》 등에서 작은 역할을 맡았다. 1974년 창체(張徹, 장철) 감독의 《소림오조》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소림사》(1976), 《홍권여영춘(洪拳與詠春)》 등에 출연하며 점차 이름을 알렸다.

1976년 《육아채와 황비홍(陸阿采與黃飛鴻)》에서 주인공 황비홍 역을 맡아 뛰어난 홍가권 실력과 연기를 선보이며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후 1978년 영화 《살출중위(殺出重圍)》에서는 주연뿐만 아니라 감독과 무술 감독으로 데뷔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같은 해 개봉한 《소림36방》에서 삼덕 화상 역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최고의 무협 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삭발한 소림사 승려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그의 민머리와 승복 차림은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전 세계 팬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당시 류씨(劉氏) 3형제 중에서도 배우로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며 홍콩 무술 영화계와 동남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한국에서도 이마의 계인(戒印) 자국이 있는 대머리 스님 이미지로 널리 알려졌다.

1985년에는 《묘탐자보(妙探孖寶)》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영화 제작자로도 데뷔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라우 카 렁 감독의 영화나 《폴리스 스토리 2》 등에서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꾸준히 출연했으며, 오랫동안 홍콩TVB와 계약을 맺고 주로 무술 고수나 홍콩 경찰 역할을 맡았다. 무술 연기 외에도 코믹하거나 감성적인 연기에도 능숙함을 보였다.

세계적인 영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류자후이의 오랜 팬이었으며, 그의 영화에 류자후이를 출연시키고 싶어 했다. 이 바람은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 시리즈에서 실현되었는데, 류자후이는 1편에서 조니 모 역을, 2편에서는 백미 사부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킬 빌》 출연은 그의 국제적 인지도를 다시 한번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중국 본토 제작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킬 빌》 이후에도 TVB 활동과 병행하며 영화 작업을 이어갔다.

홍콩과 할리우드 외에도 2009년에는 볼리우드 영화 《차이니즈 조디악》(Chandni Chowk to China)에 악당 호조 역으로 출연하며 인도 영화계에도 진출했다.[7] 같은 해 이탈리아의 무술 영화 다큐멘터리 《드래곤랜드》(Dragonland)에 스승 라우 카 렁과 함께 본인 역으로 출연했으며, 로마 시사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1960년대1970년대에는 다수의 영화를 한국에서 한홍 합작으로 촬영했으며, 배우 장미희, 황정리, 왕룡 등 당시 한국의 유명 배우들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2011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회복에 전념하기 위해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8]

'''주요 출연 작품'''

연도제목역할비고
1967공중녀살수(空中女殺手)데뷔작
1973강변의 영웅(江邊英雄)엑스트라
1974소림오조장용카메오
홍가권 대 영춘권허전강
1975마르코 폴로 (馬哥波羅)아부리하 / 아부라화
소림사푼 잉의 깡패 / 승려카메오
1976육아채와 황비홍 (陸阿采與黃飛鴻)황비홍
7인의 군대 (八道樓子)몽골 사령관 #2
의화단 (八國聯軍)복서
1977홍희관상 카이위안스턴트 코디네이터
소림사에서 온 집행자 (洪熙官)통 치엔진
1978살출중위(殺出重圍)샤오 투 (차오 찬)감독, 액션 코디네이터
소림36방류유덕 / 삼덕 화상
중화장부아토
당랑권 (螳螂)소림 무승카메오
1979소림영웅방 (茅山殭屍拳)
난두하 (爛頭何)왕 춘신 (11대 왕자)
영환 소림권(影子拳)장지에
1980홍문정삼파백련교 (洪文定三破白蓮教)홍문정
소림36방 2 (少林搭棚大師)차오 젠체 / 주인걸
주먹과 용기(拳打鐵布衫)아-산 / 소림 승려
소림 전사(請帖)파 톈프로듀서
1981장배 (長輩)제임스
소림여무당 (少林與武當)감독
소림 취팔권(少林醉八拳)라오 충
보물 사냥꾼 (龍虎少爺)모 승 스님
무관 (武館)황비홍
1982소림 쿵푸의 습격(少林傳人)가-위 유
십팔반병기 (十八般武藝)티 탄카메오
광둥의 대부(廣東靚仔玉)린 시하이
팔십이 가방객(八十二家房客)아 후이
어묘환성황 (御貓三戲錦毛鼠)영희 황제카메오
1983장문인 (掌門人)리 혼 만 (아 만)
소림여무당 (少林與武當)훙 융-킷
녹정기 (鹿鼎記)강희 황제 / 시우 위엔 즈
1984오랑팔괘곤 (五郎八卦棍)양오랑
1985묘탐 마보(妙探孖寶)로 탁-파이프로듀서
제자야 광망(弟子也瘋狂)소찬
벽력십걸 (霹靂十傑)삼덕 화상
미친 소림 제자들(瘋狂少林寺)우 칭 스님
USA 닌자(龍髮威)액션 감독
1986손문의 이야기(國父孫中山與開國英雄)
1988공작왕 (孔雀王子)쿠비라
타이거 온 더 비트 (老虎出更)파이, 암살자
혈전 (殺手蝴蝶夢)라우 파이 경감
소림 대 뱀파이어(殭屍爺爺)효 다이유감독
갱스터 난동극을 벌이자(龍蛇爭霸)
1989불타는 가족(火爆行動)웨이
호랑이의 분노(猛虎發火)람보 / 망 중사액션 안무가
백련교 트리오(龍虎家族)
첩혈쌍웅 2 - 첩혈속집 (義膽群英)라이 리우
맹귀 무청(猛鬼舞廳)차이
1990타이거 온 더 비트 2 (老虎出更2)라우 파이 / 휘샤오
부귀병단 (富貴兵團)파란색 일본 사령관
1991분노의 화룡 (火燒島)웡 경감
수정 포획(怒火威龍)룽 경관
호문야연 (豪門夜宴)카메오
총의 이야기(五虎將之決裂)라우 파이 경관
1992운우 제6감(夢情人)치트-치트
불타는 치타(獵豹行動)본토 갱 리더
크라이 킬러(駁腳差佬)무술 감독
1993당백호점추향탈명 서생
황비홍 - 철계투오공 (黃飛鴻之鐵雞鬥蜈蚣)류 힝 마스터
유협 소백룡 (白蓮神教)소림 스님카메오
여인사사 (赤裸狂花)포-완 츠-산
신조협려지 동성서취 (射鵰英雄傳之東成西就)위엔-찬
가짜 경찰(走佬威龍)후드
1994쿵푸 학자(倫文敘老點柳先開)각하
취권 3리 지사
화기소림 (花旗少林)헝 치 스님
재밌는 소림 아이들(笑林小子II之新烏龍院)
1995치명적인 소녀들 2(Lethal Girls 2)
1997슈퍼 경찰(超級無敵追女仔)셩 삼촌액션 코디네이터
1998썬더 스카우트(轟天雙龍會)
1999이방인들 (異邦人たち)관 렁
2002초취권 (醉馬騮)훙이후 형사
2003스타 러너 (少年阿虎)라우 마스터
킬 빌 Vol.1조니 모
2004킬 빌 Vol.2조니 모 / 백미
소림강시 (少林殭屍)박 / 백형제
분노의 용(少林殭屍:天極)
사주(蛇咒)가오 어 박사
2005드래곤 스쿼드 (猛龍)코 (경찰 운전사)
서유기: 선리기연 (情癲大聖)옥황상제
견딜 수 없는 아이(A Side, B Side, Seaside)일본 대사
2006카타나 맨(Katana Man)
3분 선생 (Mr. 3 Minutes)삼합회 두목
헝 쿤 대 윙 춘(洪拳嫁詠春)리우 치아옥시
2007소림 대 데드: 얼티밋 파워(少林殭屍:天極)로암 쵸우
2008소림 영웅(少林僧兵)
2009차이니즈 조디악 (Chandni Chowk to China)호조볼리우드 데뷔작
프랑켄슈타인 언리미티드(Frankenstein Unlimited)세그먼트 쿵푸를 위한 살
2010사랑에 빠지다(月滿軒尼詩)은행원
시티즌 킹(打擂台)장 마스터
취권 레전드 오브 쿵푸 (蘇乞兒)신선 (올드 세이지)
핫 썸머 데이즈 (全城熱戀熱辣辣)파이 삼촌
2011해피 이어즈 이브 (全球熱戀)첸 씨
킬 빌: 더 홀 블러디 어페어 (Kill Bill: The Whole Bloody Affair)조니 모 / 백미
용문비갑환관 완 유로
2012늑대들의 녹턴 <야상곡> (大追捕)퇴직 CID 장교 룽
아이언 피스트 (The Man with the Iron Fists)수도원장
화피 2 (畫皮II)다 삼촌
블러드 머니: 불꽃의 복수 (血染鈔票)소림 스님


3. 2. TV 드라마

류자후이는 텔레비전에서도 활동했으며, 수년 동안 홍콩TVB와 계약을 맺고 무술 고수 역할을 계속했다. 그는 여전히 일부 무술 역할을 수행하지만, 코미디, 자학적인, 또는 감성적인 캐릭터에도 능숙하다. TVB에서 그의 두 번째로 흔한 역할은 홍콩 경찰의 경찰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 빌》 출연 이후 인지도가 다시 높아졌고, 홍콩 TVB 방송국 활동을 계속하면서 영화 활동도 재개했다. 2005년에는 TVB 드라마 《황비홍과 십삼이》에서 황비홍 역을, 《영춘》에서 용형마교 역을 맡았으며, 2007년에는 《홍권가영춘》에 출연했다. 2009년에는 TZTV의 드라마 《선검기협전 3》에 사검선 역으로 출연했다.

2011년 8월, 류자후이는 뇌졸중을 겪었고 회복을 위해 모든 계획을 보류했다. 류자후이는 2012년 3월 기준으로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했다.[8]

연도제목중국어 제목역할
1990무적의 전설劍魔獨孤求敗쿵잔훙
1991쌍검의 미스터리日月神劍진핀친
1992쌍검의 미스터리 II捉妖奇兵
1993사조영웅전지 구음진경射鵰英雄傳之九陰真經줜잔
불교의 손바닥, 역습하다如來神掌再戰江湖응오우친산
1995사조영웅전 95神鵰俠侶금륜법왕
형사정지당안 II刑事偵緝檔案II칭간
1996서유기西遊記우마왕
1997피의 유대千秋家国梦장바오지 / 천충밍
공주의 길들이기醉打金枝레이 진 (싱핑의 8대 왕자)
1998서유기 II西遊記우마왕, 금각왕
1999증언洗冤錄닙 얀룽
상하이의 영웅中華大丈夫호이의 아버지
용의 사랑人龍傳說해룡왕
2000전설의 4대 에이스金裝四大才子
양귀비楊貴妃천현례
2001의천도룡기倚天劍屠龍刀성곤 / 원진
심정기尋秦記조 목
2003구오지존九五至尊헝양
2005리얼 쿵푸佛山贊師父연영춘
게토 어페어情迷黑森林통삼
2006수수께끼의 베갯잇施公奇案사마 조이풍
사랑과 열정의 치명적인 무기覆雨翻雲여약해
2007최고의 베팅迎妻接福증대력
첫 번째 비트에서學警出更원만
궁극의 범죄 파이터通天幹探장군(라이 춘 청)
2008사대명포少年四大名捕남 포천
2009담당자幕後大老爺대유공
선검기협전 3仙劍奇俠傳三사검선
2010수수께끼의 베갯잇 II施公奇案 II사마 조이풍
아름다움은 고통을 모른다女人最痛오 랍주
유혹의 연결誘情轉駁임 충포
2011사자의 유물洪武三十二엄 진
궁궐의 저주萬凰之王동가 숙명


3. 3. 감독/제작/무술지도

1978년 영화 《살출중위(殺出重圍)》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영화 감독과 무술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이후 1985년에는 영화 《묘탐자보(妙探孖寶)》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영화 제작자로도 데뷔하였다.

4. 기타 활동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류자후이의 열렬한 팬이었다. 타란티노는 동서양의 액션 영화와 동양 무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며, 류자후이가 노년에 접어들었음에도 존경과 오마주의 의미로 자신의 영화 킬빌과 킬빌 2에 그를 출연시켰다.

5. 류자후이의 영향과 유산

1976년 《육아채와 황비홍(陸阿采與黃飛鴻)》에서 주인공 황페이훙 역을 맡아 뛰어난 홍가권 솜씨와 연기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1978년소림36방(少林三十六房)》에서 삼덕화상 역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최고의 무협 영화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민머리로 삭발한 소림사 스님 역할로 자주 출연하여, 머리카락 없는 얼굴과 이마의 계인(戒印), 승복 차림은 그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이러한 모습만으로도 팬들이 그를 즉시 알아볼 정도로 당시 홍콩 무술 영화계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큰 인기를 누렸으며, 한국에서도 그의 독특한 이미지와 명성은 널리 알려졌다.

류자후이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다수의 영화를 한국에서 한홍 합작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배우 장미희, 김영일, 황정리, 왕룡 등 당시 한국의 유명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며 한국 영화계와도 인연을 맺었다.

그의 영향력은 후대의 영화 감독들에게도 미쳤는데, 특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류자후이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타란티노는 동양 무술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류자후이에 대한 존경과 오마주의 의미로 노년의 그를 자신의 영화 《킬 빌 1》과 《킬 빌 2》 두 편 모두에 출연시켰다. 이는 류자후이가 액션 배우로서 남긴 커다란 족적과 그의 예술적 유산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Gordon Liu Celebrates 65th Birthday https://www.dramasia[...]
[2] 웹사이트 High Kickers (2013) https://letterboxd.c[...]
[3] 웹사이트 How Shaw Brothers made Gordon Liu a martial arts superstar https://amp.scmp.com[...] 2021-06-06
[4] 웹사이트 Hall of Fame https://martialartsm[...]
[5] 웹사이트 Gordon Lau Ka-fai 劉家輝 http://www.spcnet.tv[...]
[6] 웹사이트 Gordon Liu Chia Hui http://www.kungfumag[...] Kung Fu Magazine 2011-06-08
[7] 웹사이트 'Looks like he''s recovering quite well': Former action star and stroke survivor Gordon Liu turns 68, appears in rare photo https://www.asiaone.[...] 2023-08-30
[8] 웹사이트 Far East Films - News - Gordon Liu Suffers Stroke and Left Disabled http://www.fareastfi[...] 2012-03-12
[9] 웹사이트 Gordon Liu Enters Nursing Home And Suffers Estranged Marriage http://www.jaynestar[...]
[10] 웹사이트 Gordon Liu Takes Former Assistant To Court Over Financial Dispute http://www.jaynestar[...]
[11] 웹사이트 Gordon Liu Visits Old Friends at TVB http://www.jaynestar[...]
[12] 웹사이트 Gordon Liu Watches TVB's "Four Amigos Bon Voyage" http://www.jayne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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