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하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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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이클 하워드는 영국 보수당의 정치인으로, 1983년부터 2010년까지 하원 의원을 지냈다. 그는 존 메이저 정부에서 내무장관(1993-1997)을 역임했으며,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보수당 대표를 맡았다. 하워드는 변호사 출신으로, 1985년부터 여러 정부 요직을 거쳤으며, 2010년 정계 은퇴 후에는 2010년 림프니 남작 작위를 받았다. 그는 소말리아 사업 관련 논란과 욱일중광장 수훈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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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하워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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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존경 칭호 | 각하 |
이름 | 마이클 하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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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이름 | 마이클 헤흐트 |
출생일 | 1941년 7월 7일 |
출생지 | 고세이논, 스완지, 웨일스 |
정당 | 보수당 |
다른 정당 | 노동당 (1961년) |
자녀 | 2 |
모교 | 피터하우스, 케임브리지 (MA, 법학사) 인스 오브 코트 법학 학교 |
정치 경력 | |
군주 | 엘리자베스 2세 |
총리 | 토니 블레어 |
임기 시작 | 2003년 11월 6일 |
임기 종료 | 2005년 12월 6일 |
전임자 | 이언 던컨 스미스 |
후임자 | 데이비드 캐머런 |
임기 시작 | 2003년 11월 6일 |
임기 종료 | 2005년 12월 6일 |
전임자 | 이언 던컨 스미스 |
후임자 | 데이비드 캐머런 |
총리 | 존 메이저 |
임기 시작 | 1993년 5월 27일 |
임기 종료 | 1997년 5월 2일 |
전임자 | 케네스 클라크 |
후임자 | 잭 스트로 |
총리 | 존 메이저 |
임기 시작 | 1992년 4월 11일 |
임기 종료 | 1993년 5월 27일 |
전임자 | 마이클 헤셀틴 |
후임자 | 존 거머 |
총리 | 마거릿 대처 존 메이저 |
임기 시작 | 1990년 1월 3일 |
임기 종료 | 1992년 4월 11일 |
전임자 | 노먼 파울러 |
후임자 | 질리언 셰퍼드 |
하위 장관 직위 | |
총리 | 마거릿 대처 |
임기 시작 | 1989년 7월 25일 |
임기 종료 | 1990년 1월 3일 |
전임자 | 케이스니스 백작 |
후임자 | 마이클 스파이서 |
총리 | 마거릿 대처 |
임기 시작 | 1988년 7월 25일 |
임기 종료 | 1989년 7월 25일 |
전임자 | 케이스니스 백작 |
후임자 | 데이비드 트리피어 |
총리 | 마거릿 대처 |
임기 시작 | 1987년 6월 13일 |
임기 종료 | 1988년 7월 25일 |
전임자 | 로즈 보이슨 |
후임자 | 존 거머 |
그림자 내각 직위 | |
당대표 | 이언 던컨 스미스 |
임기 시작 | 2001년 9월 18일 |
임기 종료 | 2003년 11월 6일 |
전임자 | 마이클 포르틸로 |
후임자 | 올리버 렛윈 |
당대표 | 윌리엄 헤이그 |
임기 시작 | 1997년 6월 11일 |
임기 종료 | 1999년 6월 15일 |
전임자 | 존 메이저 |
후임자 | 존 메이플스 |
당대표 | 존 메이저 |
임기 시작 | 1997년 5월 2일 |
임기 종료 | 1997년 6월 11일 |
전임자 | 잭 스트로 |
후임자 | 브라이언 마위니 |
당대표 | 존 메이저 |
임기 시작 | 1997년 5월 2일 |
임기 종료 | 1997년 6월 11일 |
동반 임기 | 윌리엄 헤이그 |
전임자 | 직위 설립 |
후임자 | 마이클 앤크럼 |
의회 직위 | |
신분 | 세속 귀족 |
임기 시작 | 2010년 7월 20일 |
임기 시작 | 1983년 6월 9일 |
임기 종료 | 2010년 4월 12일 |
전임자 | 앨버트 코스테인 |
후임자 | 데미안 콜린스 |
2. 초기 생애 및 교육
하워드는 스완지의 고어세이넌에서 마이클 헥트(Michael Hecht)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베르나트 헥트(Bernat Hecht, 1966년 사망)는 루마니아 출신 유대인으로 1939년 영국에 정착했다.[3] 어머니 힐다(Hilda Kershion) 역시 유대인 가정 출신으로, 생후 6개월부터 웨일스에서 살았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라넬리에서 옷감 상인이었다. 힐다의 가족은 베르나트 헥트가 영국으로 오는 것을 도왔다.[4][5] 하워드의 할머니는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당했다.[6]
1966년과 1970년 영국 총선에서 하워드는 노동당의 텃밭인 리버풀 에지힐 선거구에 보수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베르나트 헥트는 회당의 하프(Cantor)였으며, 처가의 직물 사업에 종사하다가 나중에는 라넬리에 세 개의 상점을 소유한 지역 사업가로 자리 잡았다.[7][8] 하워드가 여섯 살 때, 그의 부모는 영국 국적을 취득하고 가족 성을 헥트에서 하워드로 변경했다.[9][10]
하워드는 1952년 11플러스 시험에 합격하여 라넬리 남자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15세에 영 보수당에 가입하며 일찍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케임브리지의 피터하우스에 입학하여 경제학 트라이포스의 첫 부분을 2:1 성적으로 마친 뒤 법학으로 전향, 1962년에 2:2로 졸업했다. 같은 해 케임브리지 유니온 회장을 역임했다.[1]
케임브리지 재학 시절, 하워드는 '케임브리지 마피아'라고도 불리는 보수 성향 학생 그룹의 일원이었다. 이 그룹 출신들은 훗날 마거릿 대처와 존 메이저 정부에서 고위직을 차지하게 된다. 케네스 클라크에 따르면, 하워드는 1961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보수당 협회(CUCA)가 파시스트 정치인 오스왈드 모즐리를 초청한 것에 항의하여 잠시 영국 노동당으로 당적을 옮겼으나, 다음 해 다시 보수당으로 복귀했다.[11]
1964년 내부 사원에서 변호사 자격을 얻었고, 고용법과 도시계획법을 전문으로 다루었다. 그는 변호사로서 경력을 꾸준히 이어가 1982년에는 여왕 칙명 변호사가 되었다. 이는 단순히 명예직으로 직함을 받은 일부 정치인 출신 변호사들과는 다른 경우였다.[12]
1960년대 후반, 하워드는 보수당 내 싱크탱크인 보우 그룹에서 활동하며 1970년 4월 의장직에 올랐다. 같은 해 10월 보수당 대회에서는 정부의 노동조합 권력 억제 시도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으며, 파업 중인 노동자 가족에 대한 국가 지원을 줄이거나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10여 년 후 대처 정부가 실제로 추진한 정책 방향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에는 영국의 유럽 경제 공동체(EEC, 공동 시장) 가입을 강력히 지지했으며, 초당파적인 유럽 내 영국 그룹 이사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3. 정치 경력
1982년 6월, 켄트의 폴크스톤 앤드 하이쓰 선거구 보수당 후보로 선정되었고, 1983년 영국 총선에서 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다. 이후 빠르게 승진하여 존 메이저 내각에서 고용부 장관(1990-1992), 환경부 장관(1992-1993)을 거쳐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내무장관을 역임했다.
1997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에 대패하여 야당이 되자, 존 메이저의 뒤를 이을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으나 1차 투표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윌리엄 헤이그에게 패배했다. 이후 1999년까지 그림자 내각에서 그림자 외무·영연방·개발장관을 맡았으며, 이후에는 백벤처 의원으로 활동했다.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 개전에 찬성하는 결의안에 투표했으나, 이후 대량살상무기(WMD) 정보 문제를 들어 토니 블레어 정부와 미국을 비판하는 입장으로 선회하기도 했다.
2003년 11월, 이언 던컨 스미스의 사임 후 다른 유력 후보들의 불출마 및 지지 선언에 힘입어 별도의 경선 없이 보수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2005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은 이전 선거보다 의석 수를 늘렸으나 정권 교체에는 실패했다. 하워드는 선거 다음 날 당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고, 데이비드 캐머런이 후임으로 선출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2010년 영국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계를 은퇴했다.
2016년 11월, 일본 정부로부터 욱일중광장을 받았다.
3. 1. 하원 의원 (1983-2010)
1966년과 1970년 영국 총선에서 하워드는 노동당의 강세 지역인 리버풀 에지힐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응원해 온 리버풀 FC에 대한 지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도 했다.
1982년 6월, 현직 보수당 의원인 앨버트 코스테인 경이 은퇴를 결정하자, 하워드는 켄트의 폴크스톤 앤드 하이쓰 선거구 보수당 후보로 선정되었다. 그는 1983년 영국 총선에서 이 지역구에 출마하여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3. 2. 정부 요직 (1985-1997)
하워드는 빠르게 승진하여 1985년 무역산업부(Department of Trade and Industry)의 국무차관(Parliamentary Under-Secretary of State)이 되어 런던 시티의 금융 거래 규제를 담당했다. 이 직책은 1986년 새로운 기술 도입을 통한 금융시장 규제 완화 조치인 빅뱅(Big Bang)을 감독하면서 중요성이 커졌다. 1987년 영국 총선 이후에는 지방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당시 백벤처였던 데이비드 윌셔의 제안을 받아들여, 동성애 "홍보"를 금지하는 28조(Section 28) 개정안을 포함시키고 이를 옹호했다.
1988년, 하워드는 마거릿 대처 총리의 새로운 지방세 제도인 커뮤니티 차지(Community Charge, 일명 "인두세")를 도입하는 지방자치 재정법(Local Government Finance Act)을 하원에서 통과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이 세금 제도를 지지했으며, 보수당 내 반대 의견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여 대처 총리의 신임을 얻었다. 1988년부터 1989년까지 수자원 및 계획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의 물의 민영화를 책임졌다.
1990년 1월, 노먼 파울러의 사임 후 고용부 장관으로 승진하며 내각에 입성했다. 고용부 장관으로서 그는 노동조합의 클로즈드 숍 관행을 폐지하는 법안을 처리했다. 1990년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는 초반에 대처 총리를 지지했으나, 그녀가 사임하기 하루 전 승리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마이클 헤셀타인을 꺾을 가능성이 더 높은 존 메이저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존 메이저 정부에서도 내각직을 유지했으며, 1992년 영국 총선 기간에는 노동조합의 권한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주도했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선거 후 개각에서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환경부 장관으로서 그는 미국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 정상회의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1993년, 노먼 라몬트가 재무장관에서 해임되면서 이루어진 개각을 통해 내무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1997년 보수당이 총선에서 패배할 때까지 내무장관직을 유지했다.
3. 3. 내무장관 (1993-1997)
마이클 하워드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존 메이저 총리 정부에서 내무장관을 역임했다. 이 시기 그는 "교도소는 효과적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발언으로 요약되는 강경한 범죄 대응 방식을 추구했다.[14] 그의 재임 기간 동안 기록된 범죄율은 감소했으나,[14] 이러한 정책의 효과와 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따랐다.[15] 그는 피고인의 침묵권 제한 등을 포함한 1994년 범죄 사법 및 공공 질서 법을 추진하며 판사 및 교도소 개혁가들과 충돌하기도 했다. 그의 내무장관 재임 중 발생한 여러 결정과 사건들은 이후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3. 3. 1. 논란
내무장관 시절 마이클 하워드는 "교도소는 효과적이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강경한 범죄 대응 정책을 추진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기록된 범죄율은 16.8% 감소했다.[14] 2010년 하워드는 1993년 이후 범죄율이 45% 줄었다고 주장했지만, 같은 기간 수감자 수는 42,000명에서 거의 두 배인 85,000명으로 늘어났다. 이에 대해 켄 클라크는 새로 출소한 수감자의 재범률이 60%에 달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가정 및 차량 보안 강화나 경찰 활동 강화 같은 다른 요인들이 범죄율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15]
하워드는 피고인의 침묵권을 제한하는 등 강경 조치를 통해 범죄를 단속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판사 및 교도소 개혁가들과 여러 차례 충돌했다. 이러한 조치 중 일부는 1994년 범죄 사법 및 공공 질서 법에 포함되었다. 그는 1983년과 1990년에는 근무 중인 경찰관 살해나 총기 사용 살인에 대한 사형제도 재도입에 찬성표를 던졌으나,[16] 1993년에는 입장을 바꿔 반대했고 1994년 2월에도 반대표를 던졌다.
1993년 제임스 불거 살인 사건 이후,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11세 소년 두 명에게 폐하의 뜻에 따라(at Her Majesty's pleasure) 구금형이 선고되었고, 최소 8년형이 권고되었다. 당시 대법원장은 최소 10년 복역을 명령했다.[17] 그러나 '''더 선''' 신문이 주도하여 약 28만 명의 서명을 받아 소년들의 구금 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하워드에게 제출했고,[18] 하워드는 이를 받아들여 최소 구금 기간을 15년으로 늘렸다.[18][19] 이는 소년들이 25세가 되는 2008년 2월까지 석방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의미였다.[17] 전직 상소법원장(Master of the Rolls) 돌널드슨 남작은 하워드의 개입을 "제도화된 복수이자 정치인이 대중의 환심을 사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17] 결국 1997년 상원(House of Lords)은 내무장관이 소년 범죄자의 최소 형량을 정하는 것은 권한 밖의 행위이므로 불법이라고 판결했다.[20] 이후 고등법원과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역시 개별 사건의 최소 형량 결정은 재판장의 책임이라고 확인했다.[19]
1997년 5월, 잇따른 교도소 탈출 사건에 대한 비판적인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하워드의 명성이 손상되었다. 하워드는 교정본부 운영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고 해고된 데릭 루이스 사무총장에게 책임을 돌렸다.[21] 루이스는 부당 해고 소송을 제기하며 하워드가 교정본부 운영에 지속적으로 간섭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하워드가 파크허스트 교도소 소장의 직무 정지를 강요하며 "극단적이고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22] BBC ''뉴스나이트(Newsnight)'' 인터뷰에서 제러미 팍스먼(Jeremy Paxman)은 하워드에게 루이스를 직권으로 정지시키겠다고 협박했는지 묻는 질문(Did you threaten to overrule him?|디드 유 쓰레튼 투 오버룰 힘?eng)을 12번이나 반복했지만, 하워드는 자신이 루이스에게 지시하지 않았다고만 답하며(I did not instruct him|아이 디드 낫 인스트럭트 힘eng) '협박(threaten)' 부분에 대한 답변을 회피했다.[23] 팍스먼이 2004년 다시 같은 질문을 하자 하워드는 "정말 그걸 다시 꺼낼 겁니까? 사실,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만족하십니까?"라고 답했다. 이후 공개된 내무부 비밀 문서는 부분적으로 하워드의 주장을 뒷받침하지만, 그가 고위 공무원에게 루이스를 직권으로 정지시킬 권한이 있는지 문의했던 사실도 드러났다.[24]
이 ''뉴스나이트'' 인터뷰 직후, 당시 내무부에서 함께 일했던 앤 위드컴(Ann Widdecombe)은 하원에서 데릭 루이스 해고 건에 대해 발언하며 하워드에게 "어둠의 무언가(something of the night|섬씽 오브 더 나이트eng)"가 있다고 말했다.[25] 이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고, 1997년 보수당 대표 선거에서 하워드가 패배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26][27][28] 당시 그는 루마니아계 혈통 때문에 흡혈귀에 비유되는 부정적인 풍자를 당하기도 했는데,[26][27][28] 이는 영국 유대인 사회 일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1996년에는 내무장관으로서 헤로인 밀수 혐의로 18년형을 선고받았던 존 하아세(John Haase)와 폴 베넷을 왕실 사면으로 석방시킨 일도 논란이 되었다. 이들은 총기 압수에 기여하는 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복역 10개월 만에 풀려났다. 그러나 2008년, 하아세와 베넷은 석방을 위해 무기 발견 사건 자체를 조작했던 사실이 드러나 유죄 판결을 받고 각각 징역 20년과 22년을 선고받았다.[29]
3. 4. 야당 대표 (2003-2005)
2001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패배한 후, 하워드는 이언 던컨 스미스 신임 당수에 의해 재무부 그림자 장관으로 임명되어 다시 전면에 나섰다. 그의 활동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보수당은 그의 주도로 수년 만에 처음으로 경제 관련 토론을 주도하기도 했다.[30]
2003년 11월 6일, 이언 던컨 스미스가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자 하워드는 후임 당 대표 선거에 나섰다. 당내 유력 후보였던 데이비드 데이비스가 출마하지 않고 하워드를 지지하면서, 하워드는 별도의 경선 없이 무투표로 당 대표에 선출되었다.
당 대표로서 하워드는 전임자들에 비해 당내 분열을 줄이고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앤 윈터턴 의원이 23명의 중국 이민자 사망 사건에 대해 부적절한 농담을 하자 즉시 당원 자격을 박탈하는 등[30] 단호하게 당 규율을 적용했다. 2005년 총선을 앞두고는 하워드 플라이트 당시 부위원장을 포함한 여러 후보의 공천을 취소하며 강력한 당 장악력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31][32][33]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 개전 당시에는 무력 사용을 승인하는 결의안에 찬성했지만, 이후 입장을 바꾸었다. 2004년 2월에는 토니 블레어 당시 총리가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의회를 오도했다며 사퇴를 요구했다.[34] 같은 해 7월에는 WMD 정보의 질을 알았다면 전쟁 승인에 투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이라크 침공 자체는 여전히 "안정적인 이라크라는 목표는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이유로 옳았다고 주장했다.[35] 이러한 블레어 비판은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불만을 사, 백악관 고문 칼 로브로부터 방문 자제 요청을 받기도 했다.[36]
하워드는 재무부 그림자 장관 시절의 의회 활동으로 2003년 '올해의 국회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나, 당 대표가 된 후에도 보수당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상승하지 않았다. 또한 2003년 영국항공이 파키스탄으로의 항공편을 재개하기 위한 논의에 참여했다.[37]
2005년 5월 총선에서 보수당은 이전 선거보다 의석 수를 늘렸으나 정권 교체에는 실패했다. 선거 다음 날, 하워드는 차기 총선 불출마 및 당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고,[38] 후임으로 데이비드 캐머런이 선출될 때까지 직을 유지했다.
3. 4. 1. 2005년 총선
2004년 11월, BBC의 시사 프로그램 《뉴스나이트(Newsnight)》는 하워드의 콘월 유세와 제러미 팍스먼과의 인터뷰를 보도하며 그에게 다시 초점을 맞췄다. 해당 보도는 대중이 하워드를 잘 알아보지 못하며, 알아보는 사람들조차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비춰져 보수당의 공식적인 항의를 받았다. 보수당은 《뉴스나이트》 제작진이 하워드나 보수당에 비판적인 사람들하고만 인터뷰했으며, 팍스먼의 인터뷰 방식이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인터뷰에서 팍스먼은 1997년에 하워드에게 했던 논란의 질문을 다시 던지기도 했다. (하워드는 2014년 6월 18일, 팍스먼의 마지막 방송에 카메오로 출연하여 《뉴스나이트》에 잠시 모습을 비췄다.)
2005년 5월 5일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하워드는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를 "거짓말쟁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으나, 이는 노동당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민 정책 등 일부 쟁점에서 지지를 얻어 보수당은 이전 선거보다 의석 수를 다소 늘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의 3연속 집권을 막지 못하고 정권 탈환에는 실패했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하워드는 당수직 사퇴를 발표했다. 다만 즉시 물러나지는 않았고, 데이비드 캐머런이 후임 당수로 선출될 때까지 당수직을 유지했다.
4. 정계 은퇴 이후
2005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패배한 다음 날, 하워드는 차기 총선에서는 당을 이끌지 않겠다고 밝히며[38] 당수직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후임으로 데이비드 캐머런이 선출될 때까지 당수직을 유지했으며, 2010년 정계에서 은퇴했다.
2016년 11월, 일본 정부로부터 욱일중광장(旭日重光章)을 수훈했다.
4. 1. 소말리아 사업 관련 논란
2015년, 하워드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소마 오일 앤 가스는 영국 사기수사청의 조사를 받았다.[59] 2016년 12월 14일, 영국 사기수사청은 부패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소마 오일 앤 가스에 대한 조사를 종결했다.[60]5. 기타 활동
2005년 총선 이후 예정된 사퇴에도 불구하고, 하워드는 당의 전면부를 상당히 개편했는데, 이때 조지 오스본과 데이비드 캐머런을 포함한 몇몇 떠오르는 젊은 국회의원들이 처음으로 그림자 내각직을 맡았다. 이러한 조치는 하워드가 내무장관이었을 때 특별보좌관으로 일했던 데이비드 캐머런이 보수당 대표직에 출마할 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당의 선거 과정 개혁에는 몇 달이 걸렸고, 하워드는 선거 후 6개월 동안 대표직에 남아 있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토니 블레어 총리와 자신을 비교하며 농담하기도 했다. 또한, 테러 용의자를 기소 없이 구금할 수 있는 기간을 90일로 연장하려는 정부 제안에 대해 보수당, 자유민주당, 그리고 상당수의 노동당 반란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지도록 이끌면서, 블레어 총리에게 그의 임기 중 첫 번째 의회 패배를 안겼다. 하워드는 2005년 12월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데이비드 캐머런이 그의 뒤를 이었다.
하워드는 호스피스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2010년부터 2018년까지 'Hospice UK'의 회장을 역임했다.[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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