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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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두가 진실이다는 오슨 웰스가 1940년대 초에 기획한 옴니버스 영화이다. 이 영화는 노동자의 존엄성, 북미 문화, 민족 다양성을 기념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재즈의 역사를 다룬 "재즈의 이야기", 멕시코 소년과 황소의 우정을 그린 "나의 친구 보니토",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을 담은 "카니발", 브라질 어부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가데이루" 등 여러 에피소드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웰스는 넬슨 록펠러의 제안으로 라틴 아메리카 친선 대사로 임명되어 영화의 배경을 라틴 아메리카로 변경하고 삼바와 브라질 어부들의 이야기를 추가했다. 그러나 RKO 픽처스의 경영진 교체와 자금 지원 중단으로 인해 영화는 완성되지 못했다. 이후 촬영된 영상들은 다른 영화에 활용되거나 유실되었으며, 일부는 복원되어 다큐멘터리 영화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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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진실이다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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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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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모두가 진실이다 |
원제 | It's All True |
국가 | 미국 |
장르 | 다큐멘터리 영화 |
제작 | |
감독 | 오슨 웰스 노먼 포스터 ("나의 친구 보니토") |
각본 | 오슨 웰스 존 판테 노먼 포스터 로버트 멜처 |
원작 | 로버트 J. 플래허티 (《황소 보니토 이야기》) |
제작자 | 오슨 웰스 리처드 윌슨 (조감독) 로버트 J. 플래허티 ("나의 친구 보니토") |
음악 | 호르헤 아리아가다 |
촬영 | 플로이드 크로스비 ("나의 친구 보니토") 윌리엄 하워드 그린 ("카니발" 및 "장가데로스" 테크니컬러) 해리 J. 와일드 ("카니발" 흑백) 조지 판토 ("장가데로스") |
편집 | 에드 막스 |
제작사 | 머큐리 프로덕션 |
배급사 | RKO 픽처스 |
기타 | |
예산 | 120만 달러 |
2. 역사적 배경
오슨 웰스는 1941년에 다큐멘터리와 다큐픽션을 결합한 옴니버스 영화 형식의 영화 ''모두가 진실이다''를 구상했다.[2] 이 영화는 시민 케인(1941), ''The Magnificent Ambersons''(1942)에 이은 웰스의 RKO 세 번째 작품이었다.[3] 초기 기획은 "재즈 이야기", "내 친구 보니토", "선장의 의자", "러브 스토리"로 구성되었다.[11]
1941년 7월, 넬슨 록펠러의 제안으로 웰스는 라틴 아메리카 친선 대사로 임명되어 미주 문제 조정관 사무국(OCIAA)과 협력하게 되었다.[18] OCIAA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행정부의 선린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문화 외교를 통해 반구적 연대를 증진하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추축국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13]
웰스는 ''It's All True''가 파시즘, 인종 차별, 노동 불안의 시기에 시민적 통합과 문화 간 이해를 장려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밝혔다.[18] 당초 "내 친구 보니토" 에피소드만 제작할 계획이었으나,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관한 옴니버스 영화로 기획을 수정했다.[18] 수정된 기획에는 "재즈 이야기" 대신 삼바 이야기가 포함되었고, 4명의 브라질 어부(장가데이로)가 국가 영웅이 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피소드가 추가되었다.[11][8]
RKO는 영화에 120만달러를 투자했고, 미주 문제 조정관 사무국은 손실에 대해 30만달러를 보장했다.[1] 웰스는 미국 정부 특사로서 무보수로 일했으며, ''It's All True'' 외에도 OCIAA가 후원하는 문화 사절단의 일환으로 라디오 프로그램, 강연, 인터뷰 등을 담당했다.[18][14] 그의 임무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등 다른 국가로도 연장되었다.[18]
2. 1. 초기 기획 (1941)
오슨 웰스는 1941년에 다큐멘터리와 다큐픽션을 결합한 옴니버스 영화 형식의 영화 ''모두가 진실이다''를 구상했다.[2] 이 영화는 시민 케인(1941), ''The Magnificent Ambersons''(1942)에 이은 웰스의 RKO 세 번째 작품이었다.[3] 초기 구성은 "재즈 이야기", "내 친구 보니토", "선장의 의자", "러브 스토리"였다.[11] 웰스는 1941년 7월 29일에 영화 제목을 등록했다.[11]캐서린 L. 베나무는 "실제 사건과 연출된 사건 사이의 모호한 경계 외에도, 이 영화는 노동자의 존엄성 획득과 북미 문화 및 민족 다양성을 기념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썼다.[3]
''모두가 진실이다''는 1941년 7월 웰스가 듀크 엘링턴의 무대 쇼 ''Jump for Joy''를 로스앤젤레스에서 본 다음 날, 웰스와 엘링턴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18] 웰스는 엘링턴을 RKO 사무실로 초대하여 "나는 재즈의 역사를 영화로 만들고 싶고, 제목은 ''모두가 진실이다''로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엘링턴은 루이 암스트롱의 1936년 자서전 ''Swing That Music''에서 가져온 "재즈의 이야기"라는 가제 하에 한 부분을 작곡하는 계약을 맺었다. 엘링턴은 "저는 28마디를 작곡했고, 버디 볼든의 트럼펫 솔로가 있었는데, 이는 물론 재즈의 상징이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4]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엘링턴은 최대 12500USD를 받았다. 그러나 웰스는 그 곡을 듣지 못했고 엘링턴은 잊어버렸다. 엘링턴은 "A Drum Is a Woman에서 그 중 일부를 되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썼다.[5]
전통적인 뉴올리언스 재즈의 열정적인 팬인 웰스는 1939년에 문을 열어 1940년대 전 세계적인 오리지널 재즈 부흥에 기여한 할리우드 재즈 맨 레코드 샵 사교 네트워크의 일원이었다. 웰스는 샵 소유주 데이비드 스튜어트를 "재즈의 이야기" 각본 연구원 및 컨설턴트로, 언론인 엘리엇 폴을 각본가로 고용했다.[6]
이 에피소드는 재즈 공연 역사를 그 뿌리부터 1940년대 미국 문화 속 위치까지 간략하게 극화한 것이었다. 루이 암스트롱은 본인 역으로 중심 역할을 맡았고,[3] 재즈 피아니스트 헤이젤 스콧은 릴 하딘을 연기하기로 했다.[18] 암스트롱의 전기적 측면은 뉴올리언스, 시카고, 뉴욕 등지에서 촬영된 공연과 함께 섞여 보여질 예정이었다. 조 설리번, 키드 오리, 킹 올리버, 베시 스미스 등의 작품도 조명되며, 엘링턴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로 연결할 것이었다.[18]
"재즈의 이야기"는 1941년 12월에 제작될 예정이었다. 대부분 스튜디오에서 촬영될 예정이었지만, 뉴올리언스 재즈 선구자 키드 오리가 캘리포니아 야외에서 카메라를 직접 보며 연설하는 장면과 오스카 피싱거의 애니메이션 등 혁신적인 시도도 포함되었다.[18]
영화 학자 로버트 스탬은 "엘링턴과 웰스는 모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했고, 웰스가 남미행을 꺼린 것은 재즈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삼바가 재즈에 상응하는 브라질 음악이고, 둘 다 신세계에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표현임을 깨달았을 때, 웰스는 카니발과 삼바 이야기를 선택했다."라고 썼다.[7]
1945년, RKO가 ''모두가 진실이다''를 종영한 후 웰스는 재즈 역사 영화를 다시 만들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8] 그는 암스트롱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고, 암스트롱은 6페이지 분량의 자서전적 스케치로 답했다.[9][10]
캐서린 L. 베나무는 "암스트롱은 결국 이 프로젝트가 취소된 것을 정말로 후회했다고 전해진다."라고 썼다.[18]
2. 2. 수정된 기획 (1941-1942)
넬슨 록펠러의 제안으로 웰스는 라틴 아메리카 친선 대사로 임명되어 미주 문제 조정관 사무국(OCIAA)과 협력하게 되었다.[18] OCIAA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행정부의 선린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문화 외교를 통해 반구적 연대를 증진하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추축국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13]웰스는 원래 "나의 친구 보니토" 에피소드만 제작할 계획이었으나, ''It's All True''의 기획을 수정하여 라틴 아메리카에 관한 옴니버스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다.[18] 이 수정된 기획에는 "재즈 이야기" 대신 삼바 이야기가 포함되었고, 4명의 브라질 어부(장가데이로)가 국가 영웅이 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피소드가 추가되었다.[11][8]
웰스는 ''It's All True''가 축의 침략, 인종 차별, 노동 불안의 시기에 시민적 통합과 문화 간 이해를 장려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밝혔다.[18] 영화 촬영은 리오 카니발 촬영과 장가데이로 항해 재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별도의 대본 없이 진행되었다.[8][14]
RKO는 영화에 120만달러를 투자했고, 미주 문제 조정관 사무국은 손실에 대해 30만달러를 보장했다.[1] 웰스는 미국 정부 특사로서 무보수로 일했으며, ''It's All True'' 외에도 OCIAA가 후원하는 문화 사절단의 일환으로 라디오 프로그램, 강연, 인터뷰 등을 담당했다.[18][14] 그의 임무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등 다른 국가로도 연장되었다.[18]
3. 구성 요소
"모두가 진실이다"는 여러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이다. 각 에피소드는 독립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다는 공통된 주제를 가진다.
- '''내 친구 보니토(My Friend Bonito)''': 멕시코 소년과 황소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로버트 J. 플래허티의 원작을 바탕으로 노먼 포스터가 연출했으며, 1941년 멕시코에서 흑백으로 촬영되었다. 투우라는 전통 문화 속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우정을 담고 있다.
- '''카니발(Carnaval)''':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의 선린 정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오슨 웰스는 넬슨 록펠러의 요청으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카니발을 촬영하여 삼바라는 브라질의 열정적인 문화를 담아냈다.
- '''장가데이루(Jangadeiros)''': 타임지에 실린 기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1941년 브라질의 가난한 어부 네 명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약 2655.41km를 항해한 실화를 다룬다. 이들은 사회 보장 혜택을 요구하며 제툴리우 바르가스 대통령에게 직접 청원하였고, 결국 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법안이 통과되었다.
3. 1. 내 친구 보니토 (My Friend Bonito)
머큐리 프로덕션은 1941년 중반에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로버트 J. 플래허티로부터 "나의 친구 보니토"와 "선장의 의자" 두 편의 이야기를 구매했다.[18] 오슨 웰스는 피터 보그다노비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했고, 그는 어떤 일도 얻지 못하고 있었고, '정말 멋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강력하고 그럴 수 있다고 느꼈다."노먼 포스터와 존 판테가 각색한 플래허티의 ''황소 보니토 이야기''[14]는 1908년 멕시코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이 이야기는 투우장에서 죽을 운명이었지만 멕시코시티의 플라자 엘 토레오에서 관객들에 의해 구제된 멕시코 소년과 어린 황소의 우정을 보여준다. "나의 친구 보니토"는 원래 네 편의 이야기 중 유일하게 제작에 들어간 이야기였으며,[3] 1941년 9월 25일부터 12월 18일까지 멕시코에서 촬영되었다. 노먼 포스터는 웰스의 감독 하에 연출했다.[18]
"보니토 더 불"은 "내 친구 보니토"로 제목이 변경되었으며, 플래허티가 제작했고 멕시코 소년과 황소의 우정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영화는 1941년 9월부터 멕시코에서 흑백 영화로 촬영되었으며, 노먼 포스터가 연출하고 웰스가 감독했다.
3. 2. 카니발 (Carnaval)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이후 2주 후, 오슨 웰스는 당시 미주 담당 조정관이었던 넬슨 록펠러의 요청을 받아 무보수로 비상업적 영화를 제작하여 선린 정책의 일환으로 전쟁을 지원하게 되었다.[18] 록펠러가 주요 주주이자 이사였던 RKO 라디오 픽처스가 비용을 지불하고, 미주 담당 조정관 사무소는 잠재적 재정 손실에 대비해 최대 30만 달러를 보증했다.[18] 프로젝트에 동의한 후, 그는 1942년 2월 브라질로 친선 사절단을 파견하여 테크니컬러와 흑백으로 리우데자네이루의 카니발을 촬영했다. 이것이 "삼바 이야기"로도 알려진 에피소드의 기초가 되었다.[18]
존 헤이 휘트니(John Hay Whitney)가 이끌던 미주 문제 조정관 사무국(OCIAA)의 영화 부서는 1942년 2월 초에 열리는 연례 리우 카니발 축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달라는 브라질 정부의 요청을 받았다.[18]
웰스는 "삼바가 재즈에 상응하는 브라질의 음악이고, 둘 다 신세계에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카니발과 삼바 이야기를 선택했다"라고 썼다.[7]
3. 3. 장가데이루 (Jangadeiros)
Jangadeirospt는 1941년 12월 8일자 타임지에 실린 "뗏목 위의 네 남자"라는 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15] 이 기사는 1941년 9월, 돛 뗏목인 '상 페드루'(jangada)를 타고 포르탈레자를 출항한 네 명의 가난한 브라질 어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마노엘 올림피오 메이라("자카레"라고 불림)가 이끈 이 뗏목 어부(jangadeiros)들은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의 절반을 뗏목 소유주에게 바쳐야 하는 경제적 착취 시스템에 항의했다. 남은 절반은 그들과 가족을 겨우 부양할 정도였다. 또한 뗏목 어부들은 다른 브라질인에게 부여된 사회 보장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61일 동안 약 2655.41km를 항해 장비 없이 바람, 비, 뜨거운 태양에 맞서 싸우며, 도중에 많은 우호적인 기항을 거친 후, 그들은 국민적 영웅으로 리우데자네이루 항구에 입항했다. 네 사람은 당시 브라질 수도에 도착하여 고충 처리를 대통령 제툴리우 바르가스에게 직접 제기했다. 그 결과 바르가스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이 통과되어 뗏목 어부들에게 모든 노동 조합 노동자에게 부여되는 것과 동일한 혜택—퇴직 기금, 미망인과 자녀를 위한 연금, 주택, 교육 및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주어졌다.[15]
4. 촬영
1942년 2월 초, 오손 웰스는 영화 ''매그니피센트 앰버슨스'' 편집과 ''공포 속으로의 여행'' 촬영을 마무리하고, CBS 라디오 쇼를 끝냈다.[14] 그는 워싱턴 D.C.에서 브리핑을 받은 후, 편집자 로버트 와이즈와 함께 마이애미에서 ''앰버슨스''의 러프컷을 만들었다.[11]
웰스는 2월 4일 브라질로 출발하여 1942년 2월 8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촬영을 시작했다.[11] 브라질 현지 촬영은 즉흥적인 조명 및 음향 기술을 활용하여 진행되었다.
브라질에서 촬영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17]
촬영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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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와 주변 지역의 3개의 카니발 전야제 |
4일 밤과 3일 낮의 카니발 (즉흥적인 조명 및 음향 기술 활용) |
도시와 주변 언덕 및 산의 모든 상상 가능한 풍경 명소 |
포르탈레자의 어부들에 대한 테스트 영상 |
오루 프레투에서 열린 3일간의 부활절 행사 |
리우의 모든 삼바 나이트클럽에서 대부분의 장면을 리허설하고 연출 |
잔가데이루의 리우 항구 도착 재연 |
웰스가 임대했던 시네디아 스튜디오에서 2주 동안의 클로즈업과 오케스트라 녹음 |
"카니발" 세그먼트에는 그란데 오텔로, 오데테 아마랄, 린다 바티스타 등이 출연했다.[18]
잔가데이루 촬영 중 사고가 발생했다. 1942년 5월 19일, ''상 페드루''호의 도착 장면 촬영 중 잔가다를 예인하던 발사체가 급회전하여 선이 끊어졌다. 뗏목이 뒤집혀 네 명 모두 바다에 빠졌고, 리더 자카레가 사망했다. 웰스는 자카레를 기리기 위해 에피소드를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자카레의 형제가 자카레 역을 대신했고, 이야기는 젊은 어부(프란시스카 모레이라 다 실바와 결혼)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도록 수정되었다.[18]
리우에서의 촬영은 1942년 6월 8일에 종료되었고,[18] 이후 7월 24일까지 브라질 남동부에서 촬영이 계속되었다.[18]
5. 프로젝트 중단
1942년 RKO 픽처스는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브라질 프로젝트의 주요 후원자였던 넬슨 록펠러가 이사회를 떠났고, RKO에서 웰스의 주요 후원자였던 조지 셰이퍼 스튜디오 사장도 사임했다. RKO는 ''Ambersons''의 통제권을 가져갔고, 스튜디오가 상업적인 형식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편집했다. 웰스는 자신의 버전을 보호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19][20] 남아메리카에서 웰스는 ''It's All True''를 완성하기 위한 자원을 요청했다. 제한된 양의 흑백 필름 재고와 무성 카메라를 사용하여 장가데이에 대한 에피소드는 촬영을 마쳤지만, RKO는 영화의 추가 제작을 지원하는 것을 거부했다.
웰스는 나중에 "그것은 세금 공제였으므로 그들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거기에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애썼을 것이다. 아무리 형편없어도 나이트클럽 장면만으로 나쁜 뮤지컬을 만들 수 있었다. 돈을 돌려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돈을 돌려받고 싶어하지 않았다. 바다에 버리는 것이 더 나았고, 그들은 그렇게 했다."[2]
웰스는 남아메리카에서 6개월 이상 보낸 후 1942년 8월 22일 미국으로 돌아왔다.[11] 그는 다른 곳에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려고 시도했고 다른 영화 스튜디오에 ''It's All True''의 완성을 위한 자금 지원을 설득하려 했다. 웰스는 결국 영화의 일부 장면을 구매하는 데 성공했지만, 영화 보관 비용을 지불할 수 없어서 소유권을 RKO에 반환하게 되었다.
웰스는 영화가 저주받았다고 생각했다. 1955년 BBC-TV 시리즈 ''오슨 웰스 스케치 북''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웰스는 ''It's All True''를 위해 의식을 준비하고 있던 부두교 의사가 영화가 중단된 것에 깊이 분노했다고 말했다. 웰스는 그의 각본이 긴 바늘로 완전히 관통된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바늘에는 붉은 양털이 달려 있었다. 이것이 부두교의 표식이었다"고 웰스는 말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결말은 영화가 끝났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그것을 완성할 수 없었다."[21][22]
6. 이후
RKO는 1952년 재고 조사에서 《모두가 진실이다》의 "나의 친구 보니토" 21릴, "장가데이루스" 15릴, "카니발" 장면의 흑백 필름 7릴과 컬러 필름 1릴, 그리고 "카니발"을 위해 촬영된 미편집 테크니컬러 네거티브 약 60960.00m와 음악 사운드 네거티브 약 15240.00m를 보관하고 있었다.[18] 그러나 1953년, 촬영 감독 조지 판토는 RKO로부터 영상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18]
1957년 12월, RKO가 데시루 프로덕션에 인수되었을 때, 이 영화는 여전히 금고에 있었다. 데시 아르나즈는 RKO와의 협상에서 모든 스톡 영상을 거래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다고 회상했다.[28] 미국 영화 협회(AFI)는 아르나즈가 오슨 웰스의 친구였으며 1960년대 중반에 네거티브의 일부를 인쇄하는 것에 대해 문의했다는 것을 알고 영상 자료를 찾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18]
1967년, 이 영상은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통제를 받게 되었고, 일부 요소는 파라마운트의 스톡 필름 라이브러리에 통합되었다. 1960년대 말 또는 1970년대, 파라마운트는 테크니컬러 질산염 네거티브 약 약 60960.00m를 태평양에 버렸다.[18]
엘리엇 폴은 오슨 웰스에게 "재즈 이야기" 부분을 써달라는 계약을 맺었고, 이후 루이 암스트롱과 빌리 홀리데이가 출연하는 재즈의 역사를 다룬 영화 뉴올리언스(1947)의 각본가로 이름을 올렸다.[27] 1946년 12월, 웰스의 조수 리처드 윌슨은 변호사에게 ''뉴올리언스''의 줄거리와 "재즈 이야기" 개념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편지를 썼다.[18]
1956년, RKO는 젊은 멕시코 소년과 투우장에서 죽을 운명이지만 관중들에 의해 구제되는 황소의 우정을 그린 영화 브레이브 원을 개봉했다. 각본가 "로버트 리치"가 아카데미상 최우수 스토리를 수상하면서 영화는 큰 논란에 휩싸였다. 오슨 웰스는 나중에 "달튼 트럼보가 가명으로 썼다. 그는 블랙리스트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크레딧을 받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웰스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트럼보나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로버트 플래허티의 것이었다.[11] 영화학자 캐서린 L. 베나무는 ''브레이브 원''은 저예산 스튜디오 영화 제작에서 표절이 어떻게 주요 방식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썼다.[18]
베나무는 또한 웰스가 미국으로 돌아온 후 "카니발" 영상을 일부라도 되살리기를 바라며 썼던 각본과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46년 영화 ''악명'' 사이의 유사성을 언급했다. 줄거리는 브라질에 있는 두 명의 유럽계 미국인, 그 중 한 명은 비밀 나치 작전을 발견하는 여성 스파이를 포함한다. 베나무는 웰스 각본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추가 연구를 촉구했다.[18]
6. 1. 영상의 활용 및 유실
RKO는 1952년 재고 조사에서 《모두가 진실이다》의 "나의 친구 보니토" 21릴, "장가데이루스" 15릴, "카니발" 장면의 흑백 필름 7릴과 컬러 필름 1릴, 그리고 "카니발"을 위해 촬영된 미편집 테크니컬러 네거티브 약 60960.00m와 음악 사운드 네거티브 약 15240.00m를 보관하고 있었다.[18] 그러나 1953년, 촬영 감독 조지 판토는 RKO로부터 영상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18]1957년 12월, RKO가 데시루 프로덕션에 인수되었을 때, 이 영화는 여전히 금고에 있었다. 데시 아르나즈는 RKO와의 협상에서 모든 스톡 영상을 거래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다고 회상했다.[28] 미국 영화 협회(AFI)는 아르나즈가 오슨 웰스의 친구였으며 1960년대 중반에 네거티브의 일부를 인쇄하는 것에 대해 문의했다는 것을 알고 영상 소재를 찾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18]
1967년, 이 영상은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통제를 받게 되었고, 일부 요소는 파라마운트의 스톡 필름 라이브러리에 통합되었다. 1960년대 말 또는 1970년대, 파라마운트는 테크니컬러 질산염 네거티브 약 약 60960.00m를 태평양에 버렸다.[18]
1981년, 파라마운트의 기술 서비스 이사인 프레드 챈들러는 "보니토"와 "브라질"이라고 표시된 250개의 금속 필름 통을 발견했다.[29] 챈들러는 "장가데이루스" 시퀀스의 몇몇 장면을 즉시 알아챘고, 오슨 웰스에게 알렸지만 웰스는 보기를 거부했다.[29] 챈들러는 이 필름을 AFI에 기증하고,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모두가 진실이다: 뗏목 위의 네 명의 사나이''(1986)를 제작했다.[30] 총 309개의 흑백 질산염 네거티브 통과 5개의 신원 미상 양화 필름 통이 회수되어 UCLA 영화 텔레비전 아카이브에 기증되었다.[18]
1982년 5월, 약 47초 분량의 영상이 BBC-TV 시리즈 ''아레나''의 다큐멘터리 ''오슨 웰스 스토리''에서 방송되었다.[31] 1987년 BBC-TV 시리즈 ''RKO 스토리''는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모두가 진실이다》의 제작 과정을 다루었다.[32][33]
6. 2. 표절 및 재활용 논란
엘리엇 폴은 오슨 웰스에게 "재즈 이야기" 부분을 써달라는 계약을 맺었고, 이후 루이 암스트롱과 빌리 홀리데이가 출연하는 재즈의 역사를 다룬 영화 뉴올리언스(1947)의 각본가로 이름을 올렸다.[27] 1946년 12월, 웰스의 조수 리처드 윌슨은 변호사에게 ''뉴올리언스''의 줄거리와 "재즈 이야기" 개념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편지를 썼다.[18]1956년, RKO는 젊은 멕시코 소년과 투우장에서 죽을 운명이지만 관중들에 의해 구제되는 황소의 우정을 그린 영화 브레이브 원을 개봉했다. 각본가 "로버트 리치"가 아카데미상 최우수 스토리를 수상하면서 영화는 큰 논란에 휩싸였다. 오슨 웰스는 나중에 "달튼 트럼보가 가명으로 썼다. 그는 블랙리스트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크레딧을 받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웰스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트럼보나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로버트 플래허티의 것이었다.[11] 영화학자 캐서린 L. 베나무는 ''브레이브 원''은 저예산 스튜디오 영화 제작에서 표절이 어떻게 주요 방식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썼다.[18]
베나무는 또한 웰스가 미국으로 돌아온 후 "카니발" 영상을 일부라도 되살리기를 바라며 썼던 각본과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46년 영화 ''악명'' 사이의 유사성을 언급했다. 줄거리는 브라질에 있는 두 명의 유럽계 미국인, 그 중 한 명은 비밀 나치 작전을 발견하는 여성 스파이를 포함한다. 베나무는 웰스 각본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추가 연구를 촉구했다.[18]
6. 3. 복원 및 다큐멘터리 제작
1981년 파라마운트 픽처스 금고에서 《모두가 진실이다》의 일부 영상이 발견되었다. 미국 영화 연구소, 미국 예술 기금, 그리고 리처드 윌슨의 주도로 UCLA에서 이 영화를 보존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18] 윌슨은 1937년부터 웰스와 함께 일했으며, 《모두가 진실이다》 촬영 당시 웰스보다 먼저 브라질에 도착하기도 했다.[23]윌슨은 웰스가 복원된 영상을 보기를 거부하자, 직접 영상의 의미를 파악하는 작업을 맡았다. 그는 포르탈레자에서 촬영된 "쟁게이루스" 영상 7시간 분량을 확인하고, 이 중 일부를 편집하여 10분짜리 시퀀스를 만들었다. 이것이 '''《모두가 진실이다: 뗏목 위의 네 남자》'''라는 제목의 단편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의 나머지 12분은 윌슨과 촬영 감독 조지 판토의 해설을 담고 있다.[30]
22분짜리 단편 다큐멘터리는 1986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으며, 질산염 필름을 안전한 재료로 보존하고 옮기는 데 필요한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제작되었다.[29]
1993년에는 미겔 페레가 내레이션을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It's All True: Based on an Unfinished Film by Orson Welles영어》가 제작되었다.[37] 이 영화는 리처드 윌슨이 주도하여 제작되었으며,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빌 크론, 영화 비평가 마이론 마이젤, 캐서린 베나무 등이 참여했다. 윌슨은 암 진단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했으며, 카날 플러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뉴욕 타임스 영화 평론가 빈센트 캔비는 이 다큐멘터리를 "꼭 봐야 할 작품"이라고 평가했다.[37] 이 작품은 로스앤젤레스 영화 비평가 협회에서 올해의 최우수 논픽션 영화로 선정되었고, 전미 영화 비평가 협회로부터 특별 언급을 받았다.[36]
7. 출연
미겔 페레는 1993년 다큐멘터리 영화 《잇츠 올 트루: 미완성 영화, 오손 웰스에 기반함》의 내레이션을 맡았다.[37] 그 외에도 그란데 오텔로 등 브라질 현지 배우 및 연주자들이 다수 출연했다.
8. 보존 상태
It's All True영어의 필름은 여러 곳에 보관되어 있다. UCLA 영화 텔레비전 아카이브에는 1981년 파라마운트에서 발견되어 기증된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다.[18] 이 자료들은 309개의 흑백 질산염 네거티브 통과 5개의 신원 미상 양화 필름 통으로 구성되어 있다.[18]
캐서린 L. 베나무는 자신의 저서에서 UCLA 영화 텔레비전 아카이브에 보관된 It's All True영어 필름 목록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2023년, 파라마운트 픽처스는 UCLA 영화 텔레비전 아카이브에 남아있는 필름을 보존하기 위해 스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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