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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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하라산은 이즈오 섬 중앙에 위치한 성층 화산으로, 폭 2.5km, 길이 3.2km의 칼데라 내에 있는 중앙 화구구이다. 현무암질 마그마 분출로 형성되었으며, 1986년 분화 당시 1.6km 높이까지 용암 분수가 솟아오르기도 했다. 1990년 분화 이후 현재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다양한 등산로와 관광 명소가 있다. 과거에는 자살 명소로도 알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자살 시도를 막기 위한 안전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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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라산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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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미하라야마 (三原山) |
위치 | 이즈오 섬, 일본 |
좌표 | 34°43′28″N 139°23′41″E |
종류 | 정상 칼데라가 있는 성층 화산 |
산 정보 | |
높이 | 764m |
등재 여부 | 해당 없음 |
첫 등반 | 정보 없음 |
가장 쉬운 등반 경로 | 정보 없음 |
지질학적 정보 | |
마지막 분화 | 1990년 10월 |
2. 지리 및 구조
이즈오 섬은 현무암질 마그마 분출로 만들어진 성층 화산이다. 섬 중앙에 있는 칼데라는 폭 2500m, 길이 3200m의 고치 모양이며, 여러 칼데라 지형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미하라 산은 그 칼데라 내 남서부에 위치한 중앙 화구구(내륜산)이다.
내륜산을 형성하는 칼데라 벽의 해발고도는 대략 600m~700m이며, 칼데라 외측 산복에는 수많은 측화산이 있다. 칼데라 바닥으로부터의 높이는 최대 약 150m, 바닥 지름 약 1.2km이며, 지름 약 800m의 화구가 있다.[3] 중앙 화구구 서쪽 용암원은 '''표사막''', 북동쪽 센즈 지구 용암원은 '''우라사막''', 그 남쪽은 '''오쿠야마 사막'''이라고 불린다[3]。
2. 1. 지형
이즈오 섬은 현무암질 마그마 분출로 만들어진 성층 화산으로, 섬 중앙에 있는 칼데라는 폭 2500m, 길이 3200m의 고치 모양이며, 여러 칼데라 지형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미하라 산은 그 칼데라 내 남서부에 위치한 중앙 화구구(내륜산)이다.주로 현무암질 마그마 스패터, 스코리아, 화산탄, 화산재의 누적으로 형성되었다. 칼데라 바닥으로부터의 높이는 최대 약 150m, 바닥 지름 약 1.2km이며, 지름 약 800m의 화구가 있다. 화구 내는 1986년(쇼와 61년)에 분화했을 때의 용암으로 메워져 거의 평탄하지만, 약간 남쪽에 지름 약 300m, 깊이 약 200m의 수직 갱도 모양의 화공이 있다. 이 화공은 분화 시 용암으로 채워지지만, 그 후 수 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점차 함몰되어 거의 같은 규모의 화공이 재생되는 현상이 지난 150년 정도의 분화에서 반복되고 있다.
2. 2. 주변 환경
내륜산을 형성하는 칼데라 벽의 해발고도는 대략 600m~700m이며, 칼데라 외측의 산복에는 수많은 측화산이 존재한다. 칼데라 바닥에는 용암류, 스코리아, 현무암 용암이 잘게 부서진 모래가 퇴적되어 있다.중앙 화구구의 서쪽 용암원은 '''표사막''', 북동쪽의 센즈 지구에 펼쳐진 용암원은 '''우라사막''', 그 남쪽은 '''오쿠야마 사막'''이라고 불린다[3]。우라사막과 표사막은 화산 가스의 영향으로 거의 식생이 없는 검은 스코리아로 덮여 황량한 풍경을 보여준다[3]。표사막은 1950년 - 1951년의 분화 이전에는 모래로 덮여 관광용 낙타가 사육되었지만, 1951년에 용암류에 덮인 이후 용암 위에 이끼 식물이 정착하고 있다.
3. 화산 활동사
미하라산은 활발한 화산 활동으로 유명하며, 1990년에 마지막 분화가 있었다.[1]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큰 분화가 기록되었으며, 특히 1986년 분화는 대규모 피난으로 이어져 큰 주목을 받았다.
3. 1. 역사적 기록

미하라산은 1986년에 주요 분화가 발생하여 용암 분수가 1.6km 높이까지 솟아올랐다. 이 분화는 화산 폭발 지수 3을 기록했으며, 중앙 화구 분화, 방사상 균열 분화, 폭발적 분화, 용암류, 용암호 분화가 있었다. 또한 16km 높이의 준 플리니식 플룸도 발생했다. 섬의 12,000명 주민은 배를 통해 대피했다.[1] 가장 최근 분화는 1990년에 있었다.[1]
이즈오시마에서는 약 2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100년 내지 200년마다 총 100회 정도의 대분화가 일어났다고 추정된다. 섬 주민들은 예로부터 분화를 어신화, 화산을 어신화님이라고 부르며 존경해 왔다.[4] "미하라"라는 이름은 용암이나 토석류를 분출하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대 화산 활동에 대해서는 육국사 등에 기술이 있지만, 이즈 제도 안에서 이즈오시마 미하라산의 분화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즈오시마가 분화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짓센록에 "해중에 한 산이 있는데, 이름을 오시마라고 한다. 매년 360일, 날마다 불이 저절로 나온다"라고 기록된 1338년경의 모습이다. 섬 내의 모토마치 지구에 있는 약사당의 기도찰에는, 덴분 21년 9월 19일 (1552년10월 17일)에 "어하라에서 신화가 나와 동 27일 밤에, 에즈에 섬을 태워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미하라"라는 이름이 분화 장소로 나오는 최초의 기록이다.
근세의 대분화로는 1684년 (덴와 4년)부터 1690년 (겐로쿠 3년)에 걸친 분화와 1777년 (안에이 6년)의 분화가 있으며, 모두 용암이 칼데라 벽을 넘어 흘러내릴 정도였다고 한다.

3. 2. 1950-51년 분화
이 분화 전까지는 분화구 북동쪽에 있는 해발 754m의 켄가봉이 최고봉이었으나, 분화구 남부에 이보다 높은 미하라 신산(三原新山)이 생겼다. 분화 2개월 후 용암은 내륜산을 넘어 칼데라로 흘러나왔다. 미하라 신산은 수직 갱도 모양의 화구 재생에 따라 북쪽 절반이 함몰되어 사라졌다. 분화 자체는 중규모(분출량 수천만 톤)의 분화였다.[1] 1957년에는 화산탄에 의해 1명이 사망하고 53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때, 오시마정(大島町) 관공서의 피난 지시 대응이 늦었다고 질타를 받았으며, 이 당시의 기억이 1986년 분화 때 활용되었다.[1]3. 3. 1986년 분화
1986년 11월 15일, 미하라산 정상의 수직 갱도 모양 화구에서 분화가 시작되었다. 11월 19일 낮에는 직경 800m의 내륜산 안쪽이 용암으로 채워졌고, 내륜산 가장자리에 있던 화구 찻집이 소실되었다. 용암은 내륜을 넘어 북서쪽 칼데라로 800m 흘러나왔다. 5,000명이 넘는 관광객이 분화를 보려고 몰려들었다. 그 후, 분화는 일단 소강 상태가 되어 낙관적인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1]그러나 분화 시작 6일 후인 11월 21일 낮부터 칼데라 북부에서 지진이 빈발했고, 오후 4시 15분에는 칼데라 바닥에서 균열 분화가 발생했다. 이 분화는 일련의 분화에서 최대 규모였으며, 분연은 해발 8,000m에 달했다. 오시마마치 관공서는 즉시 대책 본부를 설치하고, 본부장으로 당시 오시마마치장이었던 우에무라 히데마사에 의해, 마을 조역인 아키타 히사가 지명되었다.
오후 5시 46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외륜산 바깥쪽 북서 산복에서도 균열 분화가 시작되어 용암이 경사면을 흘러내려 약 3,000명이 사는 모토마치 집락에 육박했다. 이 용암은 최종적으로 모토마치 가옥에서 수백 m 지점까지 접근했다. 처음에는 섬 남부로 피난이 이루어졌지만, 지진 활동이 남동부로 이동하고 나미우 항 주변에서 균열이 확인되어, 분화의 추가 확산이 우려되어 22시 50분에는 전도 피난이 결정되었다.
대책 본부의 구조 요청을 받아 도카이 기선 소속 선박 8척과 주변 어선 2척이 구조에 나섰고, 제1차 나카소네 내각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 해상보안청의 순시선 8척과 해상자위대의 호위함 2척도 급파되었다.[5] 안전보장회의 설치법 적용 제1호이며, 고토다 마사하루관방장관이 주도한 구난 작전은 뛰어난 위기 관리 사례로 높이 평가받는다.[6] 반면, 스즈키 슌이치도쿄도 지사가 재해 파견을 정식으로 요청했을 때는 이미 오시마로 향한 후였다고도 하며, 국토청을 비롯한 각 성청에서는 횡포라고 비난받았고, 국회에서는 공명당 등으로부터 직권 남용, 성청 권한 침범으로 질타를 받았다.[7]
도카이 기선은 정부의 선박 파견 요청 전에 자율 판단으로 모든 소유 선박을 오시마에 파견했다. 해상자위대에서는 요코스카 항 소속 함정을 중심으로 함정이 파견되었고, 남극 관측함 시라세도 구조에 참여했다.
다음 날 22일 5시 10분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오시마 지청, 오시마마치 직원이 퇴거하고,[8] 전 도민 및 관광객 1만 226명의 구조를 완료했다. 섬 주민은 도쿄도 내와 시즈오카현으로 약 1개월 동안 피난했다. 섬 밖 피난 지시가 정식으로 해제된 것은 그 해 12월 20일이었다. 화구 주변은 1996년 11월에 해제될 때까지 출입 금지되었다.
1986년 분화는 화산 폭발 지수 3을 기록했으며, 중앙 화구 분화, 방사상 균열 분화, 폭발적 분화, 용암류, 용암호 분화가 있었다. 또한 16km 높이의 준 플리니식 플룸도 발생했다.[1]
4. 자살 명소
1928년 분화구에 처음으로 투신자살한 사람이 발생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까지 투신자살이 끊이지 않았으며, 1933년 2월부터 9월까지 129명이 투신하여 자살섬의 화산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살은 사라졌고, 현재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12]
1933년 1월 9일과 2월 12일, 실천여학교 학생들이 분화구에 투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두 사건 모두 같은 동급생이 입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해에만 129명이 투신 자살했다. "미하라산 병 환자"라고 불릴 정도로 미수자도 많았다.[13] 두 사건에 입회했던 동급생은 같은 해 4월 수막염으로 사망했다.[14] 다카하시 다카코의 소설 『유혹자』는 이 사건을 모델로 한 것이다. 언론인 아베 신노스케는 자살 사건 이후 이즈오섬이 관광지로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15]
4. 1. 마쓰모토 키요코 사건
분화구 꼭대기 근처의 전망대에서 분화구 안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한때 가능했다. 그 결과, 이 화산은 자살의 명소가 되었다. 1920년대부터 매주 이 화산에서 여러 건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자살 사망자는 당시 금기시되던 동성애 때문에 미하라산의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진 마쓰모토 키요코이다.[2] 동료 학생 토미타 마사코와 연인 관계였던 마쓰모토는 화산 가장자리로 가서 두 사람 모두 자살을 시도하려 했지만, 마쓰모토만 실행했다.[2] 이 사건 이후 그 해 자살자 수는 945명으로 급증했다.[2] 당국은 결국 자살 시도를 막기 위해 구조물 기지에 울타리를 설치했다.[2]5. 대중문화 속 미하라산
미하라산은 여러 소설 작품에 등장했다. 1965년 가메라의 데뷔작에서는 오시마섬과 화산 자체가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며, 군대가 거대 거북을 섬에 건설된 거대한 로켓에 가두기 위해 그곳으로 유인했다.
일본 정부는 영화 ''고질라 1984''에서 고질라를 미하라산에 가두었다. 5년 후, 속편인 ''고질라 vs 비오란테''에서 미하라산에 설치된 폭탄이 터지면서 고질라가 풀려나게 된다.
고지 스즈키의 소설 ''링''과 그 후 영화 각색에서 야마무라 시즈코(사다코의 어머니)는 자신의 초능력을 사용하여 미하라산이 언젠가 폭발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다코가 초능력으로 기자를 살해하는 사건으로 이어진 실패한 초능력 시연 이후, 시즈코는 우울증에 빠져 결국 정신이상이 되어 미하라산 분화구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과거에는 자살 명소였다. 1933년 1월 9일과 2월 12일에 실천여학교 학생들이 분화구에 투신 자살했다. 두 사건 모두 같은 동급생이 자살에 입회한 사실이 센세이션하게 보도되었고, 이 해에만 129명이 투신 자살했다.[12] 미수자도 많아 "미하라산 병 환자"라고 불렸다.[13] 또한, 발단이 된 두 사건의 자살에 입회했던 동급생도 같은 해 4월에 수막염으로 사망했다.[14] 다카하시 다카코의 소설 『유혹자』는 이 사건을 모델로 한 것이다. 언론인 아베 신노스케는 자살자가 나온 이후 이즈오시마가 관광지로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15]
1984년에 공개된 고질라의 마지막 장면은 "고질라가 미하라산의 분화구로 유도되어 떨어져 행방불명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속편 고질라 vs 비오란테(1989년 공개)에서는 1986년 기획 시작 직후 미하라산의 분화를 실제로 촬영하여, 작중에서 고질라 부활의 조짐으로 사용했다.[16]
6. 관광
1928년, 미하라산 분화구에서 첫 투신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투신자살이 계속되었고, 1933년 2월부터 9월 사이에만 129명이 목숨을 끊어 '자살섬의 화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러한 현상은 사라졌으며, 현재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6. 1. 주요 관광 명소

칼데라 벽 서부에 관광 버스 종점인 어신화차야라는 전망대 등이 정비된 장소가 있으며, 주요 미하라산 접근로가 되고 있다. 일주 도로의 여러 곳에서 칼데라 내~미하라산으로 들어가는 등산로가 있다. 1986년 분화 때 "[http://oshima-gdm.jp/%E3%82%B4%E3%82%B8%E3%83%A9%E5%B2%A9 고질라 바위]"가 형성되어 명소 중 하나가 되었다.[10]
주요 관광 명소는 다음과 같다.
- 미하라 신사
- 우라 사막
- 화구 전망대
- 화구 찻집
- 미하라야마 전망대
- 분화구 전망대
- 신 화구 전망대
- 미하라 고개 전망대
- 미하라야마 온천
- 센바 지층 절단면
- 이즈오시마 화산 박물관
; 등산로
등산로는 다음과 같다.[11]
- 북서쪽 미하라야마 정상 입구 코스: 버스 종점인 미하라야마 정상 입구(외륜산에 있음)에서 칼데라를 거쳐 화구 주변 도로(오하치 메구리)의 미하라야마 전망대까지. 가장 일반적인 코스로, 완전 포장 완료.
- 북쪽 오시마 온천 호텔 코스: 오시마 온천 호텔(외륜산에 있음)에서 칼데라를 거쳐 화구 주변 도로까지.
- 북동쪽 텍사스 코스: 오시마 일주 도로에서 오시마 온천 호텔 코스로 정상 부근에서 합류.
- 동쪽 달과 사막 라인: 오시마 일주 도로에서 조금 차로 들어갈 수 있으며, 거기에서 "목성호 조난비"를 거쳐, 산복의 우라 사막의 제1, 제2 전망대까지.
이 외에,
- 화구 주변 도로: 내륜산을 오하치 메구리.
- 화구 접근 도로: 내륜산에서 안쪽 칼데라를 화구로.
- 표 사막 루트: 미하라야마 정상 입구 코스 도중에서, 칼데라 내의 표 사막을 거쳐, 달과 사막 라인으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바람이 강한 날이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6. 2. 등산로
미하라산의 등산로는 다음과 같다.[11]- 미하라야마 정상 입구 코스: 미하라야마 정상 입구(외륜산 위치) 버스 종점에서 칼데라를 경유하여 화구 주변 도로(오하치 메구리)의 미하라야마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코스이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로, 전 구간 포장되어 있다.
- 오시마 온천 호텔 코스: 오시마 온천 호텔(외륜산 위치)에서 칼데라를 지나 화구 주변 도로까지 이어진다.
- 텍사스 코스: 오시마 일주 도로에서 시작하여 정상 부근에서 오시마 온천 호텔 코스와 합류한다.
- 달과 사막 라인: 오시마 일주 도로에서 차로 조금 더 진입하면 나타나며, "목성호 조난비"를 지나 산 중턱의 우라 사막 제1, 제2 전망대까지 이어진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코스들이 있다.
- 화구 주변 도로: 내륜산을 일주하는 오하치 메구리 코스이다.
- 화구 접근 도로: 내륜산에서 안쪽 칼데라를 통해 화구로 접근하는 코스이다.
- 표 사막 루트: 미하라야마 정상 입구 코스 중간에서 칼데라 내의 표 사막을 거쳐 달과 사막 라인으로 연결된다.
미하라산은 바람이 강한 날이 많으므로 등산 시 주의해야 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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写真で見るジオサイト海岸周辺:伊豆大島ジオパー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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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가 가리키는 판이 섭입 당하는 판, 그 반대쪽이 섭입하는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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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소멸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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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백악기에서 고제3기에 걸쳐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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