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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애클레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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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버니 에클레스톤은 1930년생으로, 포뮬러 원(F1)을 상업적으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그는 FOCA를 설립하고 텔레비전 중계권 비즈니스를 도입하여 F1을 세계적인 스포츠로 만들었지만, F1 머니를 사유화하고 독점적인 이익을 취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에클레스톤은 브라밤 팀을 소유하기도 했으며, 1970년대부터 F1의 상업적 권리를 관리하며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그는 2017년 F1 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명예 회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여러 차례 논란을 일으켰으며, 탈세 혐의 등으로 기소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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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애클레스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버니 에클레스턴 2012 바레인
에클레스턴 (2012년 바레인 그랑프리)
본명버나드 찰스 에클레스턴
출생일1930년 10월 28일
출생지세인트 피터 사우스 엘름햄, 서퍽 주, 잉글랜드
국적영국
활동 기간1950년–현재
직업사업가
모터스포츠 경영인
레이싱 드라이버
알려진 이유포뮬러 원 그룹의 설립자 겸 최고 경영자 (1987–2017)
배우자아이비 뱀포드 (1952년 결혼, 1967년 이혼)
슬라비차 에클레스톤 (1985년 결혼, 2009년 이혼)
파비아나 플로시 (2012년 결혼)
자녀4명 ( 타마라 에클레스톤, 페트라 에클레스톤 포함)
포뮬러 원 경력
국적영국
개인 코넛
참가 횟수2회 (0회 출발)
우승 횟수0회
챔피언십 우승 횟수0회
포디움 횟수0회
획득 점수0점
폴 포지션0회
가장 빠른 랩0회
첫 출전1958년 모나코 그랑프리
마지막 출전1958년 영국 그랑프리
기타 정보

2. 유년 시절 및 초기 경력

(내용 없음)

2. 1. 유년 시절

애클레스톤은 1930년 10월 28일, 벙게이에서 남쪽으로 약 4.83km 떨어진 작은 마을인 세인트 피터, 사우스 엘름햄에서 태어났다.[7][4][5] 그의 아버지는 트롤 어선 선장인 시드니 애클레스톤이었으며, 가족은 원래 켄트주 출신이었다.[7][112] 어머니는 버사 소피아(결혼 전 성은 웨슬리)였다.[7]

애클레스톤은 서퍽의 위셋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6][5] 어린 시절 오른쪽 눈이 약시라는 것이 밝혀져 이후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112]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38년, 가족과 함께 런던 남동부의 벡슬리히스, 던슨 로드로 이사했다.[6][5][112] 전쟁 중에는 시골로 피난가지 않고 가족과 함께 지내며 영국 본토 항공전의 전화를 겪어야 했다.[7][112] 당시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학교 근처 빵집에서 팔던 빵을 등교길에 사재기하여 학교에서 되파는 방식으로 용돈을 벌기도 했다.[112]

16세에 다트포드 웨스트 센트럴 중학교를 졸업하고,[7][112] 지역 가스 공장의 화학 실험실에서 조수로 일하며 가스의 순도를 검사했다.[8][112] 그는 또한 울위치 공과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으나,[7] 고등 교육을 정식으로 마치지는 않았다.[112] 학업 외에는 오토바이 타기를 취미로 삼았다.[7][112] 이후 모은 돈으로 중고차 판매업을 시작하여 사업 기반을 닦았다.[112]

2. 2. 모터스포츠 경력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애클레스톤은 오토바이 부품 거래 사업을 시작하여 프레드 컴턴과 함께 '컴턴 & 애클레스톤' 오토바이 대리점을 설립했다.[113] 1949년에는 500cc 포뮬러 3 시리즈에 참가하며 레이싱 경력을 시작했고, 1951년에는 쿠퍼 Mk V 차량을 구입했다. 그는 주로 지역 서킷인 브랜즈 해치에서 경주에 참가하여 몇 차례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으나,[9] 몇 번의 사고 이후 레이싱에서 잠시 물러나 사업에 집중했다.[10] 그는 '컴턴 & 애클레스톤'을 단독으로 경영하며 영국 최대 규모의 오토바이 체인점으로 성장시켰고,[113] 부동산 투자, 대부업, 중고 자동차 경매 회사('Weekend Car Auctions') 설립 등 사업가로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사업 중에도 4륜 레이싱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 쿠퍼의 머신으로 가끔 F3 경기에 출전했으며(1950년 영국 그랑프리 전야 레이스 포함), 1951년 브랜즈 해치에서의 사고 이후 다시 본업에 집중했다.

1957년, 스튜어트 루이스-에반스의 매니저를 맡으며 레이스계에 복귀했다. 활동을 중단한 코넛 엔지니어링 팀의 머신을 경매로 사들여 되팔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직접 팀 오너가 되어 F1 모나코 그랑프리에 참가했다. 이 레이스에서 루이스-에반스는 4위를 기록한 후 반월 팀으로 이적했다.

1958년에는 "B.C. 에클레스톤"이라는 팀 이름으로 여러 경기에 참가했으며, 애클레스톤 자신도 F1 드라이버로서 모나코 그랑프리에 참가 신청을 했지만 예선에서 탈락했다. 영국 그랑프리에서는 예선을 통과했으나, 결승 레이스에서는 잭 페어먼에게 머신을 양보하고 출전하지 않았다. 그해 마지막 경기인 모로코 그랑프리에서 반월 소속이던 루이스-에반스가 큰 사고를 당했고, 6일 후 사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애클레스톤은 코넛 팀을 매각하고 다시 한번 모터스포츠계를 떠났다.

이 시기 애클레스톤은 도박을 즐겨 카지노에 자주 출입했으며, 런던 크록퍼드 카지노의 단골이었다.[112] 카지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중고차 사업을 홍보하기도 했고, 모델 트위기 등이 그의 고객이었다고 한다.[112] 레이스계 인사들과의 교류는 계속되어 존 쿠퍼와 자주 어울렸다.[112]

이 무렵, 쿠퍼 팀을 운영하던 로이 살바도리의 소개로 유망한 젊은 드라이버 요헨 린트를 만났다. 애클레스톤과 린트는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어, 애클레스톤의 집에서 카드 게임을 하며 사업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었다. 린트가 연인 니나 린콘과 결혼했을 때는 신혼여행에 애클레스톤의 동행을 원했을 정도였다고 한다.[112] 결국 애클레스톤은 린트의 매니저로서 다시 F1계에 복귀했고, 린트가 소속된 로터스의 F2 팀 공동 소유주가 되기도 했다.

1969년 린트가 F1에서도 로터스로 이적하자, 애클레스톤은 로터스 머신의 속도만큼 사고 위험도 높다고 생각해 린트에게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112] 실제로 1969년 시즌 동안 린트는 로터스의 콜린 채프먼과 머신 개발 문제로 자주 충돌했으며, 애클레스톤이 종종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112]

1970년, 린트는 드라이버 챔피언십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애클레스톤은 이를 "꿈같은 시즌"이라고 회상했지만,[112] 린트는 이탈리아 그랑프리 예선 중 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사후에 월드 챔피언으로 결정되었다.

연도소속팀섀시1234567891011WDC포인트
1958년코넛/버니 에클레스톤코넛 Type BARGMON
DNQ
NED500BELFRAGBR
DNQ*
GERPORITAMORNC
(77위)
0


  • * 표시는 예선까지 에클레스톤 본인이 출전했지만, 결승은 잭 페어먼에게 머신을 넘겨주었다.

3. 팀 소유 및 경영

포뮬러 원 레이싱 사고 이후 잠시 레이싱계를 떠났던 애클레스톤은 부동산 투자, 대출 금융, 위크엔드 자동차 경매 회사(Weekend Car Auctions)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수완을 발휘했다.[113]

1957년, 드라이버 스튜어트 루이스-에반스의 매니저를 맡으며 레이싱계에 복귀했으나,[11] 1958년 루이스-에반스가 레이스 중 사고로 사망하자 큰 충격을 받고 다시 레이싱 활동을 중단했다.[13]

이후 요헨 린트의 매니저가 되었고,[9] 린트가 소속되었던 로터스(Lotus) 포뮬러 2 팀의 지분을 일부 소유하기도 했다.[14] 린트는 1970년 월드 챔피언을 향해 가던 중 몬차에서 사고로 사망했지만, 사후에 챔피언십을 수상했다.[15]

1971년 포뮬러 원 시즌 말, 애클레스톤은 론 토라낙으로부터 브라밤 팀을 10만파운드에 인수하며[9] 팀 오너로서 F1에 본격적으로 복귀했다. 그는 고든 머레이를 영입하고 에이스 드라이버 넬슨 피케와 함께 1981년과 1983년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달성하는 등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점차 F1 전체 운영에 집중하게 되면서 1988년(또는 1987년 말[7]) 브라밤 팀을 스위스 사업가 요아힘 루티에게 500만달러 이상에 매각했다.[7]

3. 1. 코넛 엔지니어링

1951년 브랜드 해치에서의 사고 이후 잠시 레이싱계를 떠났던 애클레스톤은 1957년 드라이버 스튜어트 루이스-에반스의 매니저로 복귀했다. 그는 활동을 중단한 코넛(Connaught) 포뮬러 원 팀의 머신(섀시) 2대를 경매로 사들였는데, 처음에는 전매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직접 팀 오너가 되어 F1에 참전했다.

1958년에는 "B.C. 에클레스톤"이라는 팀 이름으로 여러 경기에 출전했다. 애클레스톤 본인도 F1 드라이버로서 1958 모나코 그랑프리에 직접 참가하여 예선 통과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나중에 이를 "진지한 시도는 아니었다"고 회고했다.[11] 같은 해 1958년 영국 그랑프리에서는 예선 통과에 성공했지만, 결승에서는 잭 페어먼에게 머신을 양보하고 자신은 출전하지 않았다.[12]

한편, 애클레스톤이 매니저를 맡았던 루이스-에반스는 Vanwall 팀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그해 최종전인 1958년 모로코 그랑프리에서 루이스-에반스는 엔진 폭발 사고로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결국 6일 뒤 사망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에 큰 충격을 받은 애클레스톤은 코넛 팀을 매각하고 다시 한번 모터스포츠계에서 손을 뗐다.[13]

3. 2. 브라밤

초기 사업가로서 부동산 투자, 대부업, 중고 자동차 경매 회사('Weekend Car Auctions') 등을 운영하며 자산을 축적한 애클레스톤은[113] 1971년 포뮬러 원 시즌 말, 브라밤 팀의 소유주였던 론 토라낙에게 팀 인수를 제안했다. 토라낙은 약 10만파운드 (당시 약 12만달러)에 팀 전체를 매각하는 애클레스톤의 제안을 수락했다.[9] 토라낙은 디자이너로 남아 공장 운영을 맡았으나, 지배적인 성격의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고 결국 토라낙은 1972년 포뮬러 원 시즌 초에 팀을 떠났다.[16]

애클레스톤은 팀 오너가 된 후, 잭 브라밤과 토라낙이 성공적으로 운영하던 고객용 자동차 생산 사업을 중단하고 모든 자원을 포뮬러 원 워크스팀 활동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포뮬러 원에서 최상위권 경쟁을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1973년 포뮬러 원 시즌을 앞두고 그는 젊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디자이너 고든 머레이를 수석 디자이너로 승진시켰다. 머레이는 삼각형 단면 구조가 특징인 BT42를 시작으로 성공적인 포드 엔진 기반 경주차들을 설계했고, 이는 카를로스 로이테만과 카를로스 페이스가 1974년과 1975년에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애클레스톤(오른쪽)과 카를로스 로이테만 (1975년 오스트리아 그랑프리)


포드 엔진 차량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애클레스톤은 1976년 포뮬러 원 시즌부터 알파 로메오와 계약을 맺고 강력하지만 무거운 플랫 12 엔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이탈리아 유가공 업체 파르말라트의 스폰서십 확보 등 재정적으로는 유리했지만,[9] 새로운 BT45 경주차는 무거워진 무게와 엔진 신뢰성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1976년과 1977년 포뮬러 원 시즌 동안 브라밤 팀의 성적은 다시 하락했다. 하지만 1978년 포뮬러 원 시즌에는 머레이의 혁신적인 BT46 디자인과 오스트리아 출신 니키 라우다(두 차례 월드 챔피언)의 영입에 힘입어 다시 2번의 레이스 우승을 차지했다.

브라밤-알파 로메오 시대는 1979년에 끝났다. 알파 로메오가 자체적인 포뮬러 원 팀 운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애클레스톤은 다시 코스워스 DFV 엔진으로 전환했으며, 머레이는 이를 "휴가를 가는 것과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환영했다. 이 시기 팀에는 젊은 브라질 드라이버 넬슨 피케가 합류하여 애클레스톤 및 팀과 긴밀하고 오래 지속되는 관계를 맺었다. 피케는 1980년 앨런 존스에게 아쉽게 챔피언십을 내주었지만, 1981년(코스워스 엔진)과 1983년(BMW 터보 엔진)에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1981년 여름부터 브라밤은 BMW 터보 엔진 차량 테스트를 시작했고, 1982년 포뮬러 원 시즌에는 BMW의 터보차저 4기통 M10 엔진을 탑재한 BT50을 선보였다. 초기에는 보쉬와 함께 신뢰성 및 주행성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포드 엔진 기반의 BT49D를 계속 사용하기도 했다. 애클레스톤과 BMW 간의 파트너십은 1982년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터보 엔진 차량의 첫 승리를 거두면서 궤도에 올랐고, 1983년에는 피케가 터보 엔진으로 구동되는 차량으로는 최초로 월드 챔피언십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팀은 1985년까지 경쟁력을 유지했지만, 그해 말 피케는 애클레스톤이 제시한 연봉에 불만을 품고 7년간 몸담았던 팀을 떠나 윌리엄스로 이적했다. 이듬해에는 1973년부터 팀의 성공적인 차량들을 설계했던 머레이마저 맥라렌으로 떠났다. 핵심 인력 이탈 후 브라밤은 1987년 포뮬러 원 시즌에 단 8포인트만을 획득하며 부진했고, 시즌 종료 후 BMW 역시 포뮬러 원에서 철수했다.

결국 애클레스톤은 F1 운영에 더 집중하기 위해 1988년(또는 1987년 말), 스위스 사업가 요아힘 루티에게 팀을 500만달러 이상에 매각했다.[7] 애클레스톤이 떠난 후 브라밤 팀은 자금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해체되었다.

4. 포뮬러 원 경영

1971년 포뮬러 원 시즌 중 브라밤 팀 소유주 론 토라낙의 제안을 받은 애클레스톤은 팀 전체를 10만파운드에 인수하며 포뮬러 원 팀 오너로서 활동을 시작했다.[9] 그는 팀 운영 방식을 자신의 비전에 맞춰 재편하며, 고객용 자동차 생산 사업을 중단하고 모든 자원을 F1 경쟁력 강화에 집중했다. 고든 머레이를 수석 디자이너로 기용하여 1974년과 1975년에 여러 차례 우승을 거두었으나, 알파 로메오 엔진 도입 후에는 성적이 부진했다. 이후 코스워스 엔진으로 복귀하고 넬슨 피케와 함께 1981년과 1983년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달성했다. BMW 터보 엔진을 도입하여 1983년에는 터보 엔진 최초의 월드 챔피언십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팀은 점차 경쟁력을 잃었고, 애클레스톤은 1988년 브라밤 팀을 스위스 사업가 요아힘 루티에게 500만달러 이상에 매각했다.[7]

팀 운영과 병행하여 애클레스톤은 F1의 상업적 지배력을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74년 포뮬러 원 컨스트럭터 협회(FOCA) 설립을 주도하고 1978년 최고 경영자가 되어 맥스 모즐리와 함께 F1 운영 구조 개편에 나섰다.[9] FOCA는 국제 자동차 스포츠 연맹(FISA)과의 치열한 대립(FISA-FOCA 전쟁) 끝에 1981년 콩코드 협정 체결을 통해 F1의 TV 중계권을 포함한 상업적 권리를 확보했다. 애클레스톤은 자신의 회사 포뮬러 원 프로모션 앤드 어드미니스트레이션(FOPA)를 통해 이 권리를 관리하며 F1을 세계적인 스포츠 비즈니스로 성장시켰다.[9][17][18]

애클레스톤은 F1의 안전성 향상에도 관심을 기울여, 1978년 시드 와트킨스를 F1 공식 의사로 영입하고 의료 및 안전 시스템 개선을 지원했다.[19] 그러나 1994년 산마리노 그랑프리에서 발생한 아일톤 세나의 치명적인 사고 당시, 현장과의 소통 오류로 세나의 사망 소식을 가족에게 잘못 전달하여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다.[20]

1990년대 후반에는 F1 관련 기업들을 총괄하는 SLEC 홀딩스를 설립하고 FIA로부터 장기 상업권을 확보했으며, 이후 지분 매각과 재인수 과정을 거치며 F1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했다.[22] 이 과정에서 EU의 담배 광고 규제에 반대하기 위해 영국 노동당에 거액을 기부한 사실이 드러나 정치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또한, SLEC 지분을 인수한 은행들과 경영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겪기도 했으며[21][25][26], 2005년 미국 그랑프리 당시 미쉐린 타이어 문제로 14대의 차량이 레이스를 보이콧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5년 사모펀드 CVC 캐피탈 파트너스가 F1의 대주주가 된 이후에도 CEO직을 유지했으나[30][31][35], 2016년 리버티 미디어가 F1을 인수한 뒤 2017년 1월 CEO 자리에서 물러났고[42], 2020년에는 명예 회장직에서도 퇴임하며 F1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73] 그는 F1 개최지 선정과 계약 조건 협상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했으며, 높은 개최권료 요구로 인해 실버스톤 서킷과 같은 전통적인 서킷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도 받았다.[40][41] 또한, 인터넷 중계나 소셜 미디어 활용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 변화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시대에 뒤처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버니 애클레스톤
2011년 모나코 GP에서


2006년 CVC의 SLEC 지분 인수 과정과 관련하여 독일 은행가 게르하르트 그리브코우스키에게 뇌물을 공여했다는 혐의로 2013년 기소되었다.[118] 애클레스톤은 뇌물 혐의를 부인하며, 그리브코우스키의 협박 때문에 돈을 지불했다고 주장했다.[117] 이 재판은 2014년 애클레스톤이 1억달러의 합의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종결되어 유죄 판결은 피했지만, 그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주었다.[121][122][123]

F1 경영 외에도 애클레스톤은 인터내셔널 스포츠월드 커뮤니케이터스(ISC)를 설립하여 FIA 챔피언십 방송권을 관리했으며[43], 잉글랜드 축구 클럽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를 인수하여 운영하기도 했다.[48][51] 또한, 사브 자동차 인수전에 참여하기도 했다.[47]

4. 1. FOCA 결성과 FISA-FOCA 전쟁

1970년대 초, 브라밤, 로터스, 맥라렌, 티렐, 마치 등 영국 기반의 독립 컨스트럭터들은 상호 지원을 목적으로 F1CA(Formula 1 Constructors Association)를 결성했다. 당시 브라밤 팀의 새로운 소유주가 된 버니 애클레스톤은 자신의 사업 경험을 살려 각 그랑프리 주최 측과의 출전료 협상 등을 주도하며 콜린 채프먼, 테디 메이어, 켄 티렐 등 다른 팀 소유주들의 신뢰를 얻었다.

1974년, F1CA는 '''FOCA'''(Formula One Constructors Association)로 발전하며 F1 선수권의 규모 확대를 추진했다.[9] 애클레스톤은 1978년 FOCA의 최고 경영자(회장) 자리에 올랐고, 마치 팀 창립자 중 한 명이자 변호사인 맥스 모즐리를 법률 고문으로 영입했다.[9] 이들은 F1 운영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FOCA의 세력 확대에 맞서, 국제 자동차 연맹(FIA) 내에서는 장마리 발레스트르를 중심으로 국제 자동차 스포츠 연맹(FISA)이 결성되었다. FOCA와 FISA는 F1의 운영 방식과 상업적 권리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대립했는데, 이는 흔히 'FISA-FOCA 전쟁'으로 불리는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 갈등은 발레스트르와 애클레스톤 사이의 권력 투쟁 양상을 띠기도 했다.

수년간의 갈등 끝에 1981년, 양측은 화해안인 콩코드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을 통해 FOCA는 F1 그랑프리에 대한 텔레비전 중계권 협상 권한을 포함한 상업적 권리를 FIA로부터 위임받게 되었다. 이는 애클레스톤의 F1 지배력 강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9]

애클레스톤은 FOPA(Formula One Promotions and Administration)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F1의 상업적 권리를 관리했다. 초기 합의에 따라 FOPA는 TV 중계권 수익의 23%를 가져갔고, 나머지 수익은 F1 팀(47%)과 FIA(30%)에 분배되었다. FOPA는 이 수익으로 각 그랑프리의 상금을 지급했다. 이후 애클레스톤은 FIA 부회장(프로모션 담당)을 겸임하기도 했다.

1993년에는 FOCA 시절 애클레스톤의 동료였던 맥스 모즐리가 장마리 발레스트르를 누르고 FIA 회장에 당선되면서, 애클레스톤-모즐리 콤비가 F1 운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4. 2. 상업권 확장과 리버티 미디어 인수

2011년 모나코 GP에서]]

1990년대 말, 애클레스톤은 당시 아내였던 슬라비카와 공동으로 신탁 회사인 '''SLEC 홀딩스'''를 설립하고, 그 산하에 자신이 소유한 FOH, FOA, FOM 등 F1 관련 기업(포뮬러 원 그룹)을 두어 F1의 다양한 권리를 총괄하게 했다. 2001년, FIA는 F1의 상업적 권리를 2011년부터 2111년까지 100년 동안 SLEC에 임대한다고 발표했다.

애클레스톤은 SLEC 지분 중 25%를 보유하고 나머지를 투자 은행에 매각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었지만, CEO로서 F1에 대한 지배력은 유지했다. 그러나 지분의 과반수가 F1 외부로 넘어가면서 운영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고, 자동차 제조사 연합인 GPMA가 새로운 시리즈 창설을 주장하는 등 갈등이 발생했다. 2005년, 애클레스톤은 CVC 캐피털 파트너스와 손잡고 알파프레마(Alpha Prema)를 설립했으며, 2006년에는 SLEC의 나머지 지분 75%를 다시 사들여 알파프레마를 모회사로 하는 포뮬러 원 그룹을 재편했다.

맥스 모즐리 FIA 회장의 섹스 스캔들이 불거진 후, 2008년 6월 3일 회장 신임 투표 직전에 모즐리가 각국 연맹에 보낸 서한에서 "상업권을 쥔 애클레스톤과 CVC의 세력 확대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모즐리가 신임을 얻자, 애클레스톤과 팀 대표들은 모즐리 체제 유지에 따른 이미지 악화와 권력 집중을 우려하며 FIA의 개입 없는 독립적인 신규 시리즈 'GP1' 설립을 논의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모즐리는 2009년 예산 상한선 문제를 둘러싸고 FOTA와 갈등을 겪은 끝에 FIA 회장 선거에 불출마하고 퇴임했다. 애클레스톤은 훗날 모즐리의 스캔들 당시 그를 충분히 돕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지만, 한동안 관계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진다.[114]

애클레스톤은 40년 가까이 F1의 상업적인 측면을 주도해왔으나, 1999년 심장 수술을 받고 고령이 되면서 은퇴와 후계자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었다.[125] 후계자 후보로는 전 르노 대표 플라비오 브리아토레, 레드불 대표 크리스티안 호너, 메르세데스 대표 토토 울프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126][127]

2016년 9월 7일, 미국의 미디어 기업 리버티 미디어가 CVC 캐피탈 파트너스로부터 F1 지분을 인수하여 새로운 소유주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체이스 캐리가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애클레스톤은 CEO직을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128] 그러나 2017년 1월 23일 인수 절차가 완료되면서 캐리가 CEO를 겸임하게 되었고, 애클레스톤은 "명예 회장" 직함을 받게 되었다.[129] 애클레스톤은 인수 전에 3년간 CEO직을 제안받았으나, 캐리로부터 직접 사임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130] 이후 고문 역할을 맡았지만, 서킷 방문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131] 2020년 1월에는 명예 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132]

2022년 7월, 애클레스톤은 싱가포르 은행 계좌에 보관된 4억파운드 이상의 신탁 자산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되었고, 2023년 10월에는 징역 17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수감을 피하기 위해 영국 국세청(HMRC)에 6.52억파운드의 추징금을 납부하기로 합의했다.[133]

5. 논란과 비판

버니 애클레스톤은 포뮬러 원(F1)을 세계적인 스포츠 비즈니스로 성장시킨 주역이지만, 그의 독단적인 운영 방식과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발언 및 행동으로 인해 끊임없는 비판에 직면해왔다.

F1 운영과 관련하여, 그는 포뮬러 원 컨스트럭터 협회(FOCA)와 자신의 회사들을 통해 F1의 상업적 권리를 장악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특히 텔레비전 중계권 협상을 통해 F1의 세계적인 인지도를 높였으나, 그 과정에서 벌어들인 수익의 분배 방식과 독점적인 권력 행사는 지속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9][17] 그는 F1 개최를 원하는 서킷에 높은 개최권료를 요구하여 영국 그랑프리 개최지인 실버스톤 서킷[23][24] 등 전통 있는 서킷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팀들을 분열시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분할 통치' 전략을 사용했다는 비판도 받았다.[114] 2005년 미국 그랑프리에서는 미쉐린 타이어의 안전 문제로 14대의 차량이 레이스를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팬들과 언론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 변화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개인적인 행적으로도 여러 차례 논란의 중심에 섰다. 1994년 아일톤 세나가 1994년 산마리노 그랑프리에서 사고를 당했을 당시, 현장과의 소통 오류로 세나의 가족에게 그가 사망했다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여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다.[20] 1997년에는 노동당에 거액을 기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F1의 담배 광고 금지 예외 조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정치 스캔들에 휘말렸다.[53][54][55][56][57] (자세한 내용은 #노동당 기부 스캔들 참조)

수년에 걸쳐 탈세 및 뇌물 수수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영국 세무 당국과는 2008년 1000만파운드를 납부하며 문제를 일단락 지었으나,[58] 독일에서는 F1 지분 매각과 관련하여 은행가 게르하르트 그리브코프스키에게 4400만달러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되었다.[63][66] 이 사건은 2014년 애클레스톤이 1억달러의 합의금을 지불하며 유죄 인정 없이 종결되었다.[69] 이후 2022년에는 영국에서 약 4억파운드 이상의 해외 자산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다시 기소되었고, 2023년 사기 혐의를 인정하며 약 6.53억파운드의 세금 및 벌금을 납부하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79][82] (자세한 내용은 #탈세 및 뇌물 수수 혐의 참조)

그의 발언 역시 많은 논란을 낳았다. 아돌프 히틀러블라디미르 푸틴과 같은 독재적 지도자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59][60][61][62][75][76][78] 여성이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부적절한 언급[46][161][70][71][72][73] 등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2022년 브라질에서는 개인 비행기 탑승 전 미등록 권총 소지 혐의로 잠시 체포되기도 했다.[74] 이 외에도 1963년 대열차 강도 사건 연루설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본인은 부인했다.[52]

5. 1. 노동당 기부 스캔들

1997년, 애클레스톤은 노동당의 담배 스폰서십 정책과 관련하여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 노동당은 1997년 영국 총선 승리 이전 공약을 통해 담배 광고 금지를 약속했으며, 담배 광고 및 스폰서십 금지를 제안하는 유럽 연합 지침을 지지했다.[53] 당시 대부분의 주요 포뮬러 원 팀들은 담배 회사의 막대한 후원을 받고 있었다. 노동당의 담배 광고 금지 입장은 총선 이후 프랭크 돕슨 보건부 장관과 테사 조웰 공공 보건부 장관의 강경한 발언으로 더욱 확고해지는 듯했다.[54]

이에 애클레스톤은 조웰 장관을 거치지 않고 토니 블레어 당시 총리의 비서실장인 조나단 파월에게 직접 연락하여 블레어 총리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노동당에 기부금을 냈던 애클레스톤과 맥스 모즐리는 1997년 10월 16일 블레어 총리를 만났고, 이 자리에서 모즐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모터 레이싱은 영국을 첨단 기술의 선두 주자로 만드는 세계적인 산업이다. 담배 자금이 끊기면 포뮬러 원은 해외로 이전하게 될 것이며, 이는 정규직 일자리 5만 개, 파트타임 일자리 15만 개의 손실과 함께 연간 9억파운드의 수출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54]


이후 11월 4일, "강력한 반(反) 담배주의자"로 알려졌던 조웰 장관은 브뤼셀에서 포뮬러 원에 대한 예외 적용을 주장했다. 언론은 처음에 노동당이 "화려한 스포츠"를 위해 원칙을 저버렸다는 점과, 조웰 장관의 남편이 베네통 포뮬러 팀과 맺고 있던 사업 관계에 대한 의혹에 주목했다.[54] 그러나 11월 6일, 세 곳의 신문사 기자들이 노동당이 애클레스톤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았는지 여부를 문의하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애클레스톤은 1997년 1월 노동당에 100만파운드을 기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논란이 커지자 노동당은 11월 11일, 패트릭 닐 경의 조언에 따라 기부금을 반환하겠다고 발표했다.[55]

11월 17일, 블레어 총리는 직접 나서 정부의 일 처리 방식에 대해 사과하며 "포뮬러 원을 담배 스폰서십 금지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 결정은 (애클레스톤과의) 만남 이후 2주 뒤에 내려졌다. 이는 영국이 포뮬러 원을 유치하려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산업 기반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조치였다"고 해명했다.[56] 하지만 블레어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1년이 지난 2008년에 공개된 다우닝 가 내부 메모에 따르면, 해당 결정은 블레어가 의회에서 밝힌 것처럼 만남 2주 후가 아니라 실제로는 만남이 있던 당시에 이미 내려졌던 것으로 드러났다.[57]

5. 2. 탈세 및 뇌물 수수 혐의

독일 검사의 게르하르트 그리브코프스키 사건 관련 인터뷰에 따르면, 애클레스톤은 9년간 영국 세무 당국의 조사를 받았으며, 합법적인 탈세 계획을 통해 12억파운드의 세금 납부를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HM Revenue and Customs(영국 국세청)는 2008년에 1000만파운드를 납부하는 조건으로 이 문제를 종결하기로 합의했다.[58]

2012년, 전 바이에른LB 최고 위험 관리 책임자였던 게르하르트 그리브코프스키에 대한 재판에서 독일 검찰은 애클레스톤을 뇌물 수수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했다. 그리브코프스키는 탈세, 배임, 뇌물 수수 혐의를 인정했다.[115][116] 검찰과 피고인에 따르면, 애클레스톤은 포뮬러 원 지분을 CVC 캐피털 파트너스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그리브코프스키에게 약 4400만달러를 지불했다. 애클레스톤은 그리브코프스키가 전 부인이 관리하는 가족 신탁(밤비노 홀딩스)에 대해 영국 세무 당국(HMRC)에 허위 정보를 알리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에 돈을 지불했다고 주장했다.[63][117] 그리브코프스키는 이 뇌물 수수 및 관련 혐의로 2012년 6월 금고 8년 6개월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115]

뮌헨 검찰 당국은 애클레스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2년간의 조사 끝에 2013년 7월 그를 뇌물 수수 혐의로 공식 기소했다.[65][66][118] 또한, 이 매각 과정과 관련하여 독일의 콘스탄틴 메디안과 미국의 블루워터스 커뮤니케이션스는 손해를 입었다며 각각 소송을 제기했으나, 판결은 애클레스톤 측에 유리하게 내려졌다.[64][119][120]

2014년 1월, 뮌헨 법원은 애클레스톤이 독일에서 뇌물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결정했다.[68]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4년 8월 5일, 법원은 애클레스톤이 1억달러(약 6000만파운드)의 합의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재판을 종결하는 데 동의했다. 독일 법률에 따라 유죄 인정 없이 사건이 종결되었으며, 그의 경력에 범죄 기록은 남지 않았다.[69][121][122][123]

이와 별개로 2022년 7월 11일, 애클레스톤은 4억파운드 이상의 해외 자산(싱가포르 신탁 재산)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허위 진술에 의한 사기)로 영국 왕립 검찰청(CPS)에 의해 기소되었다. 이는 HM 수입관세청의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79][133] 첫 심리는 8월 22일 웨스트민스터 치안 법원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80] 이후 재판 날짜는 2023년 11월로 연기되었다.[81]

2023년 10월 12일, 사우스워크 형사 법원에서 애클레스톤은 사기 혐의를 인정하고, 미납 세금 및 벌금으로 약 6.53억파운드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그는 징역 17개월을 선고받았으나, 형의 집행은 2년간 집행유예되었다.[82][133]

5. 3. 기타 논란

1997년, 애클레스톤은 노동당의 담배 스폰서십 정책과 관련하여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노동당은 1997년 영국 총선 공약으로 담배 광고 금지를 내걸었으나, 애클레스톤은 노동당에 100만파운드을 기부했고[55], 토니 블레어 총리와의 면담 이후 포뮬러 원은 담배 광고 금지에서 예외를 인정받았다.[54] 이 사실이 알려지자 노동당은 기부금을 반환했고,[55] 블레어 총리는 정부의 결정 과정에 대해 사과했지만,[56] 이후 공개된 내부 메모를 통해 면담 당시에 이미 예외 결정이 내려졌음이 드러나기도 했다.[57]

2005년 6월, 다니카 패트릭의 인디애나폴리스 500 4위 성적에 대해 "여성들은 다른 가전제품들처럼 모두 하얀색 옷을 입어야 한다"고 발언하여 성차별 논란을 일으켰다.[46] 이후 패트릭이 2008년 일본에서 우승하자 축하 편지를 보냈다.[46]

2007년 9월, 플라비오 브리아토레와 함께 잉글랜드 축구 클럽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를 인수했다.[48] 이후 지분을 늘려 최대 주주가 되었으나,[50] 2011년 8월 토니 페르난데스에게 모든 지분을 매각했다.[51]

2009년 7월,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끔찍한 말이지만, 그가 많은 사람들을 지휘하여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고 언급하고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 큰 비판을 받았다.[59] 유대인 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자[60] 사과했지만,[61] 이후 세계 유대인 회의의 사임 요구에 대해 "그들이 은행을 정리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며 비꼬는 듯한 발언을 하여 논란을 키웠다.[62]

독일 은행 바이에른LB의 전 임원 게르하르트 그리브코프스키에게 4400만달러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2012년부터 조사를 받았다.[63] 애클레스톤은 영국 세무 당국에 자신의 가족 신탁 정보를 알리겠다는 그리브코프스키의 협박 때문에 돈을 지불했다고 주장했다.[63] 2013년 독일 검찰은 애클레스톤을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했고,[66] 2014년 뮌헨 법원에서 재판이 열렸다.[68] 재판은 애클레스톤이 유죄를 인정하지 않는 대신 6000만파운드의 합의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69]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 이후 루이스 해밀턴이 주도한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대해 CNN 인터뷰에서 "많은 경우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더 인종차별적이다"라고 발언하여 또다시 논란을 일으켰다.[70] 해밀턴은 애클레스톤의 발언이 "무지하고 무식하다"고 비판했으며,[71][72] 포뮬러 원 그룹 역시 애클레스톤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의 명예 회장직이 이미 2020년 1월에 만료되었음을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했다.[73]

2022년 5월, 브라질에서 개인 비행기 탑승 전 수하물에서 미등록된 권총(LW 시캠프 .32)이 발견되어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잠시 체포되었다. 애클레스톤은 총기 소지 사실은 인정했으나 가방에 들어있는 줄 몰랐다고 해명했으며,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74]

버니 애클레스톤이 미국의 경영자 체이스 캐리 및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함께 2017년 러시아 그랑프리에 참석한 모습


2022년 6월, 영국 ITV '굿 모닝 브리튼'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일류 인물"이라 칭하며 "그를 위해 총알을 막아줄 것"이라고 발언했다.[75]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실수"라고 표현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쟁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여 거센 비판을 받았다.[76] 포뮬러 원 측은 애클레스톤의 발언이 개인적인 견해이며 스포츠의 현대적 가치와는 매우 대조적이라고 선을 그었다.[78]

2022년 7월, 영국 국세청(HM Revenue and Customs)은 애클레스톤이 4억파운드 이상의 해외 자산을 신고하지 않았다며 왕립 검찰청(Crown Prosecution Service, CPS)에 조사를 의뢰했고, CPS는 그를 탈세 혐의("허위 진술에 의한 사기")로 기소했다.[79] 2023년 10월, 애클레스톤은 사기 혐의를 인정하고 미납 세금 및 벌금으로 약 6.53억파운드을 납부하기로 합의했다. 그는 징역 17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82]

이 외에도 오랫동안 1963년 대열차 강도 사건 연루설이 있었으나, 애클레스톤 본인은 강도 중 한 명이었던 로이 제임스와의 친분 때문에 생긴 소문이라고 부인했다.[52] 또한 F1의 그리드 걸 폐지 결정에 반대 의사를 표하거나,[165] 역사상 최고의 F1 드라이버로 알랭 프로스트를 꼽는 등[167] 여러 인터뷰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들을 남겼다.

6. 개인사

애클레스톤은 1930년 10월 28일, 벙게이에서 남쪽으로 3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인 세인트 피터, 사우스 엘름햄에서 태어났다.[7][4][5] 어부였던 아버지 시드니 애클레스톤과 어머니 버사 소피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가족은 원래 켄트주 출신이었다.[7] 서퍽의 위셋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1938년 가족이 런던 남동부의 벡슬리히스로 이사했다.[6][5]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시골로 피난가지 않고 가족과 함께 지냈다.[7]

16세에 다트포드 웨스트 센트럴 중학교를 졸업하고,[7] 지역 가스 공장 화학 실험실 조수로 일하며 가스 순도를 검사했다.[8] 이후 울위치 공과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으며,[7] 오토바이 타기를 취미로 삼았다.

F1 관련 상업권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2024년 2월 기준, ''포브스''는 그의 순자산을 29억달러로 추정했다.[85] 선데이 타임스 부자 순위에서는 2002년 영국 5위,[86] 2003년에는 추정 자산 24억파운드로 3위에 올랐다. 2004년에는 자산이 23.43억파운드로 다소 감소했음에도 8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이혼으로 인한 위자료 지급과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등의 영향으로 2009년에는 추정 자산 14.66억파운드로 24위까지 순위가 내려갔다.[144] 2004년 초에는 런던 켄싱턴 팰리스 가든에 있는 저택을 한 번도 거주하지 않고 인도 철강 재벌 락슈미 미탈에게 5710만파운드에 매각했으며,[87] 2005년에는 자신의 요트 ''Va Bene''를 친구 에릭 클랩튼에게 900만파운드 상당에 팔았다.[88][89] 그랑프리 개최지에서는 "버니의 버스"로 알려진 회색 이동식 주택을 본부로 사용했다.[88]

1996년에는 CBE 수훈을 거절했고,[90] 2000년대 초반에는 자신이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기사 작위 수여 제안도 거절했다. 2019년 인터뷰에서 그는 국가에 기여했다면 기쁘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니었기에 인정을 받을 자격은 없다고 말했다.[20]

테리 로벨은 2003년 3월 애클레스톤의 전기 ''Bernie's Game: Inside the Formula One World of Bernie Ecclestone''을 출판했다. 이는 법적 문제로 인해 2001년 11월 예정이었던 출판이 지연된 후였다.[89]

애클레스톤은 세 번 결혼했다.


  • 첫 번째 부인 아이비 밴포드(Ivy Bamford)와 1952년 결혼하여 딸 데보라(Deborah)를 두었으나 이후 이혼했다. 데보라를 통해 손주 5명(손녀 2명, 손자 3명)과 증손주를 두고 있다.[91]
  • 1984년까지 17년간 투아나 탄(Tuana Tan)과 관계를 유지했으나, 슬라비카 라디치가 임신하면서 관계가 끝났다.[92]
  • 두 번째 부인 슬라비카 라디치(Slavica Radić)는 유고슬라비아(현 크로아티아) 출신의 전 아르마니 모델로, 애클레스톤보다 28세 연하이며 키가 30cm 더 크다. 1984년 재혼하여 23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93] 슬하에 두 딸 타마라(Tamara, 1984년생)와 페트라(Petra, 1988년생)를 두었다.[94][95] 타마라와 페트라는 "영국판 힐튼 자매"로 불리며 셀러브리티로 활동하고 있다.[146] -- 타마라는 방송 진행자 겸 모델로 활동하며 『PLAYBOY』지에 누드 화보를 싣기도 했다.[147] 슬라비카는 2008년 11월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96][148] 2009년 3월 11일 이혼이 성립되었다.[98][150] 이혼 합의금은 10억달러에서 1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었으며,[97] 이혼 직후 슬라비카는 추정 자산 7.34억파운드로 선데이 타임스 부자 순위 58위에 올랐다.[144] 애클레스톤의 지주회사였던 SLEC의 이름은 슬라비카의 이름(''''SL'''avica '''EC'''clestone')에서 유래했다.
  • 세 번째 부인 파비아나 플로시(Fabiana Flosi)는 브라질인으로 브라질 그랑프리 마케팅 부사장 출신이며, 애클레스톤보다 46세 연하이다.[100] 두 사람은 2012년 8월 결혼했다.[99][151] 2020년 7월, 애클레스톤이 89세일 때 아들 에이스(Ace)가 태어났다.[101][102][154] 이로써 그는 가장 나이 많은 아버지 중 한 명이 되었다. 장녀 데보라와는 65세 차이의 이복 동생이 된다. 2016년에는 파비아나의 어머니(애클레스톤의 장모)가 브라질에서 유괴되어 몸값으로 3650만달러(당시 약 38억)를 요구받았으나, 9일 만에 무사히 구출되었다.[152] 범인 중 한 명은 애클레스톤이 고용한 헬리콥터 조종사였다.[153] 2021년 12월, 파비아나 플로시는 국제 자동차 연맹(FIA)의 남미 지역 담당 스포츠 부회장으로 임명되었다.[155]


2007년에는 르노 F1 대표였던 플라비오 브리아토레와 공동으로 잉글랜드 2부 리그 축구팀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QPR)를 인수했다. 이후 브리아토레의 지분을 인수하여 최대 주주가 되었으나, 2011년 에어아시아의 토니 페르난데스에게 매각했다.[145]

7. 평가 및 유산

"무슨 일이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한다"는 신조로 알려진 행동파이다.[113] 파독이나 레이스 전 그리드 위에서 직접 발로 뛰며 일하는 모습이 자주 중계 화면에 잡혔다. 내빈(VIP) 접대 외에도 모터홈의 주차 위치나 접대용 접시 배치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지시하는 완벽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다. 2011년 브라질 GP에서는 바쁜 와중에도 F1 포토그래퍼 카네코 히로시에게 직접 영구 취재 패스를 전달하기도 했다[171]

1986년 동구권 최초의 F1 개최를 성사시킨 헝가리의 헝가로링크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매년 관계자들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F1을 둘러싼 상황을 풍자하는 일러스트를 담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8년에는 맥스 모즐리의 스캔들을 풍자하여 "브리아토레의 엉덩이를 채찍으로 때리는 모즐리"를 묘사한 카드를 보내기도 했다[172]

서킷 레이스에 대한 이해는 깊지만, 랠리는 싫어했다. 과거 웨일스 랠리 GB에 게스트로 초대받았을 때 "옷이 더러워진다"는 이유로 타고 온 차에서 일절 내리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2010년 11월 런던 시내에서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습격당해, 스위스의 "우블로" 브랜드의 시계와 보석 등 약 31만달러 상당을 도난당하는 피해를 입었다[173]。 이때 본인도 머리를 발로 차여 오른쪽 눈 주변에 멍이 남는 부상을 입었지만, 같은 해 12월에는 멍이 뚜렷하게 남은 얼굴 그대로 "우블로"가 발매하는 F1 공식 시계 광고에 등장하여 화제를 모았다[174]。 이때 사용된 얼굴 사진은 사건 직후, 에클레스톤이 개인적으로 친한 우블로 사장에게 휴대폰 메일로 보낸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을 우려하여, 같은 해의 일본 GP 개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 기자 회견에서 개최를 명언하고, 피해 지역에서 3000명을 일본 GP에 무료 초청했다(통칭 버니 시트)[175]

현장 제일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오스트레일리아 GP에는, 2016년 현재 일절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176]。 주최자 측의 전 회장인 론 워커와 한때는 맹우와 같은 관계였지만, 현재는 사이가 틀어졌기 때문이다[176]

F1의 각 그랑프리에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개인 제트기(봄바디어 제)로 이동하지만, 객실 승무원을 고용하지 않아, 그 때문에 기내에서는 일절 기내식이 나오지 않는다. 본인은 "20시간 이상의 이동에서도 수분 보충만 하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 부인을 동반하여 일본 GP에 왔을 때에는, 부인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불만을 토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176]

자신의 경영 수법에서 "금만"이라는 평가도 있는 한편, 자신의 재량으로 로터스 F1 팀이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을 때에는 직원의 식사[177]와 급료를 가불 형식으로 떠맡거나, 좋은 성적을 거두는 한편 재정난이었던 포스 인디아에 원래 시즌 종료 후에 확정되는 분배금의 일부를 몇 년이나 앞당겨 지불하거나, 경영난으로 팀 매각을 검토하던 윌리엄스 F1의 매각처 찾기를 지원하는 등 온정적인 면도 있었다. 현재 F1의 경영권을 쥔 리버티 미디어는 이러한 일은 하지 않는다.

혼다에 대해 호의적인 발언이 눈에 띄며, 앞서 언급한 제4기 맥라렌-혼다 시대에 관해 맥라렌 측의 태도를 비판한 외에도, 2019년 아제르바이잔 그랑프리를 방문했을 때 "드디어 톱을 노릴 수 있는 포지션에 왔다는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정말 보고 싶은 것은 F1에서 그들이 승리하는 모습이야"라고 말했다[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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