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조르조 마조레 성당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교회로, 790년경에 처음 세워졌으며 여러 차례 재건되었다. 1560년 팔라디오가 베네치아에 도착하여 교회 재건에 참여, 1575년까지 본당이 완성되었고, 이후 내부 장식이 이루어졌다. 1774년 붕괴된 종탑은 1791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교회는 팔라디오의 고전 건축 양식과 틴토레토, 바사노 등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유명하며, 소설 《인도로 가는 길》과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도 등장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610년 완공된 건축물 - 산 마르티노 교회 (베네치아)
베네치아에 위치한 산 마르티노 교회는 10세기에 처음 세워진 후 야코포 산소비노의 설계로 재건되었으며, 신 로마네스크 양식 외관과 다양한 시대의 프레스코화, 천장화, 벽화, 장례 기념비, 제단, 오르간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 베네치아의 대성전 -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 (베네치아)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은 1430년에 완공된 베네치아 최대 규모의 이탈리아 고딕 양식 교회로, 베네치아 도제들의 장례가 거행된 곳이자 조반니 벨리니, 틴토레토, 파올로 베로네세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과 도제들의 기념물이 소장되어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다. - 베네치아의 대성전 - 산마르코 대성당
산마르코 대성당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위치한 성당이자 베네치아의 총대주교좌가 있는 곳으로, 성 마르코의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며 화려한 황금 모자이크와 다양한 예술품으로 장식되어 건축, 예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 로마 가톨릭 대성전 - 밤베르크 대성당
밤베르크 대성당은 독일 밤베르크에 위치한 로마 가톨릭 대성당으로, 1002년 건축을 시작해 1237년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완공되었으며, 하인리히 2세 부부의 묘와 교황 클레멘스 2세의 무덤이 있는 역사적 명소이다. - 로마 가톨릭 대성전 -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 (베네치아)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은 1430년에 완공된 베네치아 최대 규모의 이탈리아 고딕 양식 교회로, 베네치아 도제들의 장례가 거행된 곳이자 조반니 벨리니, 틴토레토, 파올로 베로네세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과 도제들의 기념물이 소장되어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다.
산조르조 마조레 성당 - [지명]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위치 | 베네치아, 이탈리아 |
좌표 | 북위 45.4293, 동경 12.3433 |
종교 | |
교파 | 로마 가톨릭교회 |
소속 수도회 | 베네딕토회 |
관할 구역 | 베네치아 총대주교구 |
건축 | |
건축가 | 안드레아 팔라디오 |
건축 양식 | 교회, 르네상스 건축 |
기공 | 1566년 |
완공 | 1610년 |
2. 역사
산 조르조 마조레 섬에 처음 교회가 세워진 것은 790년경이다. 982년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 트리부노 멤모는 섬을 베네딕토 수도회에 기증하여 수도원이 세워졌으나, 1223년 지진으로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다.[1] 이후 교회와 수도원은 재건되었지만, 1565년에는 팔라디오에게 새로운 교회 설계가 의뢰되었다.[2]
팔라디오의 설계는 1566년 승인되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비록 팔라디오가 1580년 사망하여 완공을 보지는 못했지만, 1575년까지 본당 대부분이 완성되었다.[3] 이후 성가대와 파사드(정면) 공사가 이어져 1610년에 교회가 최종 완공되었다.[4]
원래 1467년에 세워졌던 종탑(캄파닐레)은 1774년에 무너졌다가 1791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2. 1. 초기 역사
섬에 첫 교회가 세워진 것은 약 790년이다. 982년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 트리부노 멤모가 섬을 베네딕토 수도회에 기증했다. 베네딕토회는 이곳에 수도원을 세웠으나, 1223년 지진으로 섬의 모든 건물이 무너졌다.[1]지진 이후 교회와 수도원은 다시 지어졌다. 이때 재건된 교회는 본당과 측면 예배당을 갖추었으나, 현재 교회와 같은 자리는 아니었고 작은 광장 옆 더 뒤쪽에 위치했다. 교회 앞에는 회랑이 있었지만 1516년에 철거되었다. 수도사들은 1521년부터 교회를 다시 짓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1560년 팔라디오가 베네치아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수도원 식당을 다시 짓고 있었다. 그는 식당 개선에 크게 기여했고, 1565년에는 새로운 교회의 설계안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2]
설계안은 1566년에 완성되어 승인받았고, 같은 해 교황이 참석한 가운데 초석이 놓였다. 1580년 팔라디오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는 못했지만, 1575년까지 제단 뒤 성가대와 정면 파사드를 제외한 교회 본당은 대부분 완성되었다. 내부 장식은 그 이후에 이루어졌다.[3]
성가대는 팔라디오가 사망하기 전에 기본 설계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1580년부터 1589년 사이에 지어졌다. 파사드(정면) 공사는 시모네 소렐라의 감독 아래 1599년에 시작되었다. 석공과의 계약에 따라 팔라디오의 설계를 따르되 약간의 변경만 허용되었으며, 1610년에 완공되었다.[4]
1467년에 처음 세워진 종탑(캄파닐레)은 1774년에 무너졌다가 1791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갈 수 있으며, 현재는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다. 종탑 꼭대기에서는 베네치아 시내를 조망하는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2. 2. 팔라디오의 재건
1223년 지진으로 기존 건물이 파괴된 후 교회와 수도원은 재건되었으나, 수도사들은 1521년부터 교회를 다시 짓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측면 예배당이 있는 본당 형태의 이전 교회는 현재 위치보다 뒤쪽에 있었으며, 그 앞의 회랑은 1516년에 철거되었다.1560년, 팔라디오가 베네치아에 도착했을 때는 수도원의 식당 재건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팔라디오는 이 식당을 크게 개선했으며, 1565년에는 새로운 교회 설계를 의뢰받았다.[2]
팔라디오의 설계안은 1566년에 완성되어 승인되었고, 같은 해 교황이 참석한 가운데 초석이 놓였다. 공사는 팔라디오가 1580년에 사망하기 전에 완료되지 못했지만, 제단 뒤의 성가대와 파사드를 제외한 교회의 본당은 1575년까지 완성되었다. 내부 장식은 그 이후에 이루어졌다.[3]
성가대는 팔라디오가 사망하기 전에 구상했던 설계를 바탕으로 1580년에서 1589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파사드 공사는 처음에는 시모네 소렐라의 감독하에 1599년에 시작되었다. 석공과의 계약에 따라 파사드는 팔라디오의 설계를 기반으로 하되 약간의 변경만 가해졌으며, 1610년에 완공되었다.[4]
1467년에 처음 세워진 종탑(캄파닐레)은 1774년에 무너졌고, 1791년까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갈 수 있으며, 현재는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다. 꼭대기에서는 베네치아를 가로지르는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2. 3. 종탑
1467년에 처음 세워진 종탑(캄파닐레)은 1774년에 무너졌다가, 1791년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종탑 내부는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갈 수 있으며, 현재는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다. 꼭대기에서는 베네치아 시내를 가로지르는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3. 건축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건축은 팔라디오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고전주의 건축 원칙을 기독교 교회 건축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특히 성당의 정면(파사드)은 높은 본당과 낮은 측랑이 공존하는 교회의 구조적 특징을 고전 건축 양식으로 조화롭게 풀어낸 팔라디오의 독창적인 설계 해법을 보여준다.[5] 밝은 흰색의 파사드는 두 개의 정면을 겹쳐 쌓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시각적인 통일성과 웅장함을 동시에 구현했다.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따른 내부는 외관과 마찬가지로 밝은 흰색을 기조로 하며, 거대한 기둥과 벽기둥이 내부 공간의 질서를 형성한다. 평면 구조는 긴 바실리카식 본당과 트랜셉트가 교차하는 전통적인 십자가 형태를 채택하여 넓고 밝은 공간감을 제공한다.
3. 1. 외관
교회 정면(파사드)은 눈부신 흰색이며, 높은 네이브(본당)와 낮은 측면 통로(측랑)를 가진 기독교 교회 건축 형태에 고전 건축 양식의 정면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설계상의 어려움에 대한 팔라디오의 독창적인 해결책을 보여준다. 팔라디오는 두 개의 파사드를 겹쳐 쌓는 방식을 사용했다. 첫 번째 파사드는 넓은 박공과 아치트레이브를 가지며 네이브와 양쪽 통로 전체를 아우른다. 이 파사드는 단일 오더의 벽기둥으로 지지되는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 파사드는 이 첫 번째 파사드 위에 겹쳐지는데, 폭이 더 좁아 네이브의 너비에 해당하며, 높은 받침대 위에 세워진 거대한 결합 기둥과 박공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설계 방식은 팔라디오가 조금 더 일찍 설계했던 산 프란체스코 델라 비냐 성당의 파사드와 유사하다. 참고로 산 프란체스코 델라 비냐 성당의 다른 부분은 산소비노가 설계했다.[5] 중앙 출입구 양쪽에는 성당의 이름이기도 한 성 조지와 이 성당이 함께 봉헌된 성 스테파노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3. 2. 내부
교회 내부는 매우 밝으며, 장식이 없는 흰색 벽에 거대한 붙임 기둥과 벽기둥이 있다. 내부는 르네상스 건축의 기본을 따라 긴 바실리카식 본당과 트랜셉트가 있는 십자가 형태의 평면을 결합하고 있다.틴토레토의 매우 큰 그림 두 점은 성찬례의 제정과 관련이 있으며, 성가대석 양쪽에 배치되어 제단 난간에서 볼 수 있다. 이 그림들은 '최후의 만찬'과 '광야의 유대인'이다. '광야의 유대인'은 이집트 탈출 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이 내린 선물인 만나를 모아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는 성찬례의 선물을 예고한다.[6]
카펠라 데이 모르티(죽은 자들의 예배당)에는 야코포 틴토레토의 또 다른 그림인 '그리스도의 매장'이 있다.[7]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은 교회 내 예배당을 통제했으며, 많은 베네치아 교회에서 흔했던 것처럼 가족에게 예배당을 판매하여 원하는 대로 장식하게 하지 않았다. 수도사들은 자신들의 재산에서 수입을 얻었고 더 강력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일부 제단은 저명한 가문에게 넘겨졌지만 장식은 수도사들이 통제했다. 주 제단 오른쪽에 있는 예배당은 볼라니 가문 소유였다(도메니코 볼라니는 1547년 영국 에드워드 6세의 대사였으며 나중에 주교가 되었다). 이 예배당 공사는 도메니코 볼라니의 사망 후 지연되었고, 1619년에도 미완성 상태였으며, 제단화는 수준 낮은 그림이었다. 1693년에 다른 그림으로 대체되었지만, 현재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인 세바스티아노 리치의 '성모자와 성인'이 자리 잡은 것은 1708년이 되어서였다.[8]
성소 왼쪽의 제단은 모로시니 가문의 책임이었다. 이 제단은 성 안드레아에게 봉헌되었으며(빈첸초 모로시니의 죽은 아들을 기리기 위해), 제단화는 야코포와 도메니코 틴토레토가 그린 '부활한 그리스도와 성 안드레아, 빈첸초 모로시니와 그의 가족 구성원'이다.[9]
트랜셉트의 제단은 수도사들이 유지했다. 남쪽 트랜셉트에는 야코포와 도메니코 틴토레토가 그린 '성인들과 함께한 동정녀 마리아의 대관식'이 있다.[10]
본당 오른쪽 첫 번째 제단에는 야코포 바사노의 '목자들의 경배'가 있다. 왼쪽에는 레안드로 바사노의 '성 루치아의 불가사의'가 있다. 이 그림은 성 루치아가 매춘으로 정죄되었지만 기적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이야기를 묘사한다.[11]
수도원 건물에는 다른 그림들도 있다.
4. 예술 작품
교회 내부는 매우 밝으며, 장식이 없는 흰색 벽에 거대한 붙임 기둥과 벽기둥이 특징이다. 내부는 긴 바실리카식 본당과 트랜셉트가 있는 십자형 평면 구조를 결합하고 있다.
성당 내부에는 여러 중요한 예술 작품들이 있다. 특히 야코포 틴토레토의 작품이 다수 있다.
- 성가대석: 성찬례 제정과 관련된 틴토레토의 대형 회화 두 점이 성가대석 양쪽에 배치되어 제단 난간에서 볼 수 있다. 이 그림들은 ''최후의 만찬''과 ''광야의 유대인''이다. 후자는 출애굽 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신이 내린 선물인 만나를 모아 먹는 장면을 묘사하며, 이는 성찬례의 선물을 예고하는 의미를 지닌다.[6]
- 카펠라 데이 모르티 (죽은 자들의 예배당): 야코포 틴토레토의 또 다른 그림인 ''그리스도의 매장''이 있다.[7]
- 볼라니 예배당 (주 제단 오른쪽): 본래 볼라니 가문 소유였던 이 예배당에는 세바스티아노 리치의 중요한 작품인 ''성모자와 성인'' (1708년)이 제단화로 있다. 이 작품이 설치되기 전에는 여러 차례 제단화가 교체되는 과정이 있었다.[8]
- 모로시니 제단 (성소 왼쪽): 모로시니 가문이 관리했던 이 제단은 성 안드레아에게 봉헌되었으며, 야코포 틴토레토와 그의 아들 도메니코 틴토레토가 함께 그린 ''부활한 그리스도와 성 안드레아, 빈첸초 모로시니와 그의 가족 구성원''이 제단화로 있다.[9]
- 남쪽 트랜셉트: 야코포와 도메니코 틴토레토가 그린 ''성인들과 함께한 동정녀 마리아의 대관식''이 있다.[10]
- 본당 제단:
- 오른쪽 첫 번째 제단에는 야코포 바사노의 ''목자들의 경배''가 있다.
- 왼쪽 첫 번째 제단에는 레안드로 바사노의 ''성 루치아의 불가사의''가 있다. 이 그림은 성 루치아가 매춘으로 정죄되었으나 기적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이야기를 다룬다.[11]
수도원 건물에도 다른 그림들이 있다.
성당을 주제로 한 외부 화가들의 작품도 유명하다.
5. 관련 작품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는 그의 소설 『인도로 가는 길』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장에서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을 언급한다. 소설의 주인공 시릴 필딩은 인도 건축물에서 자신이 감지하는 불균형과 이탈리아 건축의 완벽함을 대조하며 이 성당을 예시로 든다.
일본 예술가 아라키 히로히코는 그의 장편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다섯 번째 이야기인 "황금의 바람" 516화에서 이 교회를 등장시킨다.
참조
[1]
서적
[2]
서적
[3]
서적
[4]
서적
[5]
서적
Western Architecture
[6]
서적
[7]
서적
[8]
서적
[9]
서적
[10]
서적
[11]
서적
[12]
서적
もっと知りたいターナー 生涯と作品
東京美術
[13]
웹사이트
ターナーからモネへ―英国の至宝
http://www.museum.pr[...]
熊本県立美術館
2018-07-0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