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일제강점기의 잡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삼천리》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 6월 12일 김동환이 창간한 종합 잡지이다. 초기에는 자유주의, 서구 사상, 여성 운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지식인과 청년층의 호응을 얻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친일적인 논조로 바뀌었다. 검열과 압수를 겪으며 1941년 11월 통권 150호를 마지막으로 종간되었고, 1942년 잡지명을 《대동아》로 변경하여 발행했으나 7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 해방 이후 김동환에 의해 속간되었으나 한국 전쟁으로 인해 다시 폐간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일제강점기의 언론 - 폐허 (잡지)
《폐허》는 1920년에 창간되어 3·1 운동 이후의 시대 분위기를 반영, 자유주의와 낭만주의 경향의 작품을 게재했으나 비판과 검열로 인해 폐간되었지만 한국 문학사에 영향을 미쳤다. - 1929년 창간 - 리뷰 오브 모던 피직스
리뷰 오브 모던 피직스는 1929년에 창간되어 물리학의 다양한 주제에 대한 심층적인 리뷰 논문을 게재하며 물리학 연구 발전에 기여하는 학술지이다. - 1929년 창간 -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1929년 창간된 미국의 비즈니스 잡지이며, 블룸버그 L.P.에 인수된 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고, 2024년 월간 잡지로 재출간될 예정이다.
삼천리 (일제강점기의 잡지) | |
---|---|
개요 | |
제호 | 삼천리 (三千里) |
창간 | 1929년 |
폐간 | 1941년 |
발행인 | 김동환 |
편집인 | 김동환 |
발행처 | 개벽사 |
특징 | |
성격 | 종합 교양 잡지 |
경향 | 민족주의 대중주의 |
내용 | 시 소설 수필 평론 기사 사진 삽화 |
자매지 | 별건곤 |
시대적 배경 | |
시기 | 일제강점기 |
관련 이념 | 대동아공영권 |
검열 | 일본 제국의 검열을 받음 |
기타 | |
평가 | 애국 계몽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 친일 행위로 변절 비판 |
2. 창간과 발전
1929년 6월 12일 김동환이 발행한 종합 잡지로, 발행은 삼천리사에서 맡았다. 판형은 A5판, 50쪽이었으나, 창간호는 B5판 70쪽이었다. 이후 월간·격주간, B4판·A5판 등으로 판형을 바꾸며 간행되었다. 취미 중심의 잡지였으나 저속한 취미로 타락하지 않았으며, 주로 고십난(가십 난)에 치중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끌 만한 특종을 지면에 반영했다.[1]
이광수, 김동인 등은 고정 필진이자 편집을 일부 맡았다. 창간호에는 한용운, 이광수, 이은상, 박팔양, 심훈의 시와 염상섭의 소설, 안재홍, 홍명희, 신흥우, 문일평 등의 논문이 실렸다. 이광수 등의 자유연애론자, 정지용, 장면 등의 가톨릭계 인사, 개신교계 인사 등 다양한 주제와 필진이 참여했다.[1]
2. 1. 창간 배경
1929년 6월 12일에 김동환이 창간한 종합 잡지로, 발행은 삼천리사에서 맡았다. 김동환은 창간 당시 사보에 다음과 같은 목표를 게재했다.[1]- 훨씬 값이 싼 잡지를 만들자
- 누구든지 볼 수 있고 또 버릴 기사라고는 없는 잡지를 만들자
- 민중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잡지를 만들자
체재는 대략 A5판 50쪽이었으나, 창간호는 B5판 70쪽이었다. 이후 월간이나 격주간으로 바뀌거나 B4판, A5판 등으로 판형을 바꾸면서 간행을 이어갔다.
2. 2. 주요 필진 및 내용
김동환,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정지용, 나혜석, 김일엽, 심훈, 장면, 한용운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필진으로 참여했다.[1] 이들은 정치, 시사, 사회, 문화, 가정, 역사, 여성 운동, 취미, 연애 문제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기고했다. 특히, 자유주의, 서구 사상, 여성 운동과 성 해방 담론에 호의적인 논조를 보여 나혜석, 김일엽, 허정숙 등도 필진으로 참여했다. 문일평, 안재홍, 장도빈, 정인보 등은 역사 관련 칼럼과 논문을 게재했다.[1]2. 3. 인기와 영향력
1929년 김동환이 발행한 종합 잡지 《삼천리》는 성 담론과 시중의 은어를 소개하면서도 저속하지 않아 지식인과 청년층에게 인기를 얻었다.[2] 초기에는 대도시 독자층이 주를 이루었으나, 1930년대에는 지방 중소도시까지 독자층이 확대되었다. 야사(野史), 시사, 역사, 여성 운동, 취미, 연애 문제 등을 다룬 기사들로 1만~2만 부 이상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별건곤과 경쟁하였다.[2]문예강좌, 작가 연구, 작품 연대표 등은 한국 현대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평가받으며, 문학사에 중요한 자료로 회자된다.
3. 일제의 탄압과 친일 논조
《삼천리》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의 독립운동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조선총독부의 검열과 탄압을 받았다. 일부 글은 압수되었고, 과장과 공상이 지나치다는 비판과 함께 성 담론, 시중의 은어 등을 다룬다는 지적도 있었다.
3. 1. 검열과 압수
한용운의 '당시의 추억', 송진우의 '세계를 향하여' 등은 압수되었다.[3] 주요한(朱耀翰)의 '세계의 거인 장개석(蔣介石)'은 일본의 적국인 중화민국 인사를 찬양한다는 이유로, 설의식(薛義植)의 '인도시성(印度詩聖) 타고르 회견기'는 일본의 동맹국인 영국에 저항하는 인사 찬양 및 조선인 독립운동 고취 등의 이유로 압수되었다.[3] 그 밖에도 '민족문학과 무산문학의 합치점과 차이점' 등의 글들도 모두 실리지 못하였다.[3]3. 2. 친일 행적
1937년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화되면서 《삼천리》는 점차 현실과 타협하여 친일적인 논설을 게재하기 시작했다.[1] 1941년 11월 통권 150호로 종간되었다.1942년 3월 1일 김동환은 대동아사(大東亞社)를 설립하고, 1942년 5월 《대동아》라는 친일 잡지를 복간했으나,[1][4] 7월에 폐간되었다.[5]
4. 해방 이후와 복간
5. 평가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호감을 보이기도 했다.[1] 당시 사회로서는 저속하다고 여겨지는 성 담론과 시중의 은어, 비속어 등도 거침없이 소개하였기에 조선총독부 학무국과 검열 당국의 통제를 다소 덜 받았다.[1]
일제의 가혹한 검열 밑에서 수차례 원고 압수와 삭제의 곤욕, 압수, 정간 조치 등을 당하면서 점차 현실과 타협하여 1940년 이후에는 친일적인 논설들도 수록하였다.[1]
한국 현대 문학에 끼친 공로도 적지 않아서 문단의 중견 작가들이 쓴 문예강좌를 비롯하여 여러 명이 집필한 소설과 작품을 쓰는 방법 등에 대한 간단한 소개, 김동인의 '춘원연구 (春園硏究)', 여러 중견 작가들의 작품 연대표 등은 문학사에 회자되기도 한다.[1]
참조
[1]
웹사이트
삼천리
http://contents.hist[...]
국사편찬위원회
2018-11-13
[2]
서적
[3]
논문
『조선출판경찰월보』에 나타난 문학작품 검열양상 연구
https://www.kci.go.k[...]
2018-11-12
[4]
서적
[5]
서적
越境する文学 朝鮮児童文学の生成と日本児童文学者による口演童話活動
花書院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