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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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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은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된 법수사지에 위치한 석탑으로, 높이는 5.8m이며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규모 축소, 지붕돌의 과도한 치켜올림, 기단과 탑신의 장엄 등의 특징을 보인다. 하층 기단에 3개의 안상이 나타나는 지역적 특성을 보이며, 주변 보물 석탑에 비해 조형미가 뛰어나다. 노반만 남아 있는 상륜부를 갖추고 있으며, 통일신라 후기 석탑으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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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2010년의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 (문화재청)
2010년의 모습 (문화재청)
이름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 (星州 法水寺址 三層石塔)
종류보물
지정 번호1656
지정일2010년 7월 5일
주소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1215-1
시대남북국 시대
소유자국유
참고성주 법수사지
문화재청 ID12,16560000,37
구 지정 정보
이름 (구)법수사지삼층석탑 (法水寺址三層石塔)
국가 (구)경상북도
유형 (구)유형문화재
지정 번호 (구)86
지정일 (구)1975년 12월 30일
해지일 (구)2010년 7월 5일
문화재청 ID (구)21,00860000,37

2. 연혁 및 입지

신라 애장왕(800~809년) 때 법수사(法水寺)를 창건하였고, 법수사지 삼층석탑은 이 절터 내에 위치하고 있다. 법수사지는 가야산 계곡에 석축으로 단을 쌓아 조성하였으며,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높은 곳에 있어 경관이 수려하고 전망이 매우 좋다.

935년(경순왕 9) 10월 경순왕이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를 시켜 고려 태조에게 항복을 청하는 국서를 보내자, 막내 아들 계자(季子)는 화엄종(華嚴宗)에 귀의하여 중이 되었는데, 법명을 범공(梵空)이라 하였다. 범공은 훗날 법수사와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2]

법수사가 언제, 어떻게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경산지》 불우조에는 9개의 금당과 8개의 종각이 있는 거대한 사찰이었다고 전한다. 사찰 터는 남북 150m, 동서 150m 정도이며 크게 세 단으로 나뉘어 있다. 금당 터로 추정되는 축대 아래에는 백운동마을이 있고, 마을 앞에는 당간지주가 고목 뿌리에 일부 쌓인 채 남아 있다.

석탑 주변에는 석등 하대석, 불좌대석 등 여러 유물이 흩어져 있어, 이를 통해 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3. 구조 및 양식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은 높이 5.8m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 있으며,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전체적인 구조는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나눌 수 있다.[1]

3. 1. 기단부

지대석과 하대중석은 4매(4개의 판석) 부재가 맞물려 한 몸돌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중석 각 면에는 안상 3개씩이 음각되어 있다. 하대갑석은 4매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부에는 3단의 상대중석 괴임이 있다. 상대중석은 4매로 구성되어 있고, 남·북쪽 면석에는 탱주(기둥)와 우주(모서리 기둥)를, 동·서쪽 면석에는 탱주만 양각하였다. 상대갑석은 남쪽과 북쪽 2매로 결구되어 있고, 옥신괴임은 2단이다. 하층 기단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에 비해 높다.[1]

3. 2. 탑신부

1~3층 탑신석은 단일 부재로 네 모서리에 우주를 양각하였다. 1층과 2층의 탑신석 상부와 1층 옥개석 하부에는 사리공을 설치해 놓았다. 1층 탑신석 상부의 정방형과 1층 옥개석 하부의 사다리꼴형이 맞닿아 있는데, 단변 형태가 서로 맞지 않아 사리 장구가 특수한 것인지 1층 옥개석 사리 장엄구를 별도로 두었는지 잘 알 수 없다.[1] 사리 장치는 해체 당시 이미 모두 수습된 상태로 1층에는 나무토막 3개가 매납되어 있고 나머지는 비워져 있었다.[1] 옥개석의 낙수면은 비교적 완만하며 우동의 전각은 반전이 심하고 전체 두께도 얇다.[1] 1~3층의 옥개석 모두 전각부가 만나는 모서리 하부에 원형 풍경공이 한 개씩 뚫려있다.[1] 1~3층의 옥개받침은 5단으로 위 단으로 올라갈수록 내밀어져 있고 그 단부는 사절되어 있다.[1] 3층 옥개석의 상부에는 1단 노반 괴임을 각출하고 중앙에 원추형 찰주공을 뚫었다.[1]

3. 3. 상륜부

상륜부에는 노반만 남아 있고 복발 이상의 상륜부는 없다. 노반은 방형의 단일 부재로, 각형 층급이 있고 중앙에 찰주공이 뚫려 있다. 찰주원공은 3층 옥개석 상부의 찰주 구멍과 꼭 맞게 설치되어 있다. 노반 상부에는 자연석 1개를 얹어 보주를 대신하게 했다.

4. 양식적 특징 및 의의

법수사지 삼층석탑은 규모가 작아지고 하층 기단이 높으며, 안상이 음각된 점 등 9세기 후반 석탑의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옥개석 층급받침이 5단인 점 등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을 유지하고 있어, 법수사의 창건 시기인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 인제 한계사지 남 삼층석탑 등의 하층 기단에서 3개의 안상이 나타나는 지역적 특성을 보인다. 인근 지역의 보물로 지정된 합천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합천 청량사 삼층석탑, 산청 내원사 삼층석탑, 산청 대포리 삼층석탑에 비해 조형미가 뛰어나다.

이처럼 법수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탑으로 추정된다. 주변의 빼어난 경관과 함께 법수사지의 원래 위치를 지키고 있으며, 우수한 조형미를 가지고 있어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참조

[1]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고시 문화재청 2010-07-05
[2] 서적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https://terms.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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