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광주원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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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광주원부인은 고려 태조의 후궁으로, 광주 출신 왕규의 딸이다. 태조의 제15비 광주원부인, 혜종의 제2비 후광주원부인과 자매지간이며, 아들 광주원군을 낳았다. 왕규가 외손자인 광주원군을 옹립하려다 혜종 암살에 실패하여 처형당하면서, 소광주원부인과 광주원군의 생애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학자들은 이들이 함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2002년~2003년 KBS 드라마 《제국의 아침》에서 배우 서미애가 소광주원부인 역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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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주원부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이름 | 소광주원부인 (小廣州院夫人) |
본관 | 양근 왕씨 (楊根 王氏) |
생애 | |
출생 | 생년 미상 (生年 未詳), 경기도 광주 (京畿道 廣州) |
사망 | 몰년 미상 (沒年 未詳), 경기도 광주 (京畿道 廣州) |
가족 관계 | |
부군 | 태조 (太祖) |
자녀 | 광주원군 (廣州院君) |
아버지 | 왕규 (王規) |
어머니 | 미상 |
기타 | |
신분 | 고려 태조의 후궁 |
종교 | 불교 (佛敎) |
2. 생애
(내용 없음 - 하위 섹션에서 상세 내용을 다루므로 중복 방지를 위해 본문 생략)
2. 1. 가계와 출신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대광 왕규의 딸이다.[6] 그녀의 자매로는 태조의 제15비 광주원부인과 혜종의 제2비 후광주원부인이 있다. 아버지 왕규는 후진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6], 태조가 사망할 때 그의 유명을 받들어 내외에 선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7]소광주원부인은 남편 태조와의 사이에서 아들 광주원군을 낳았다. 그러나 아버지 왕규는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혜종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였고[8], 이 사건(왕규의 난)으로 인해 945년(정종 즉위년) 음력 9월 처형되었다.[9] 다만, 왕규의 이러한 역모 혐의에 대해서는 학계 일부에서 다른 해석을 제기하기도 한다.[7]
왕규의 난 이후 소광주원부인과 아들 광주원군의 삶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고려사》 등에 남아있지 않다. 일부 현대 학자들은 광주원군이 아버지 왕규가 처형될 당시 함께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10] 또한, 당시 역모죄인의 딸들은 폐출되거나 살해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소광주원부인과 그 자매들 역시 비슷한 운명을 맞았을 것으로 추정된다.[6]
그녀의 생몰년이나 능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아 알 수 없다. 소생으로는 아들 광주원군 한 명뿐이며, 호는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이다.
2. 2. 태조와의 혼인과 광주원군 탄생
소광주원부인은 태조와의 사이에서 아들 광주원군을 낳았다.[6] 아버지 대광 왕규는 외손자인 광주원군을 보위에 앉히기 위해 혜종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였고, 이 사건(왕규의 난)으로 945년(정종 즉위년) 음력 9월 처형되었다[8][9]. 그러나 왕규의 행동이 실제 역모였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해석이 엇갈리기도 한다[7].《고려사》에는 소광주원부인과 아들 광주원군의 이후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광주원군이 아버지 왕규의 역모 사건 때 함께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10]. 또한, 당시 반역자의 딸들도 함께 폐출되거나 살해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소광주원부인 역시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6].
2. 3. 왕규의 난과 몰락
소광주원부인의 아버지 왕규는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을 보위에 앉히기 위해 혜종을 암살하려 하다가 실패하였다[8]. 이 사건으로 왕규는 945년(정종 즉위년) 음력 9월 처형되었다(왕규의 난)[9]. 다만, 왕규의 역모에 대해서는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그 해석이 엇갈리기도 한다[7].왕규의 난 이후, 소광주원부인과 그녀의 아들 광주원군의 생애에 대해서는 《고려사》에 자세히 전하는 내용이 없다. 현대 학자들 중 일부는 광주원군이 왕규의 역모 사건 때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10]. 또한 반역자의 딸들도 폐출되거나 함께 살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소광주원부인과 그 자매들(광주원부인, 후광주원부인) 역시 이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6].
2. 4. 최후
소광주원부인과 그녀의 아들 광주원군의 생애에 대해서는 《고려사》에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아버지 왕규가 945년 왕규의 난으로 처형된 후[9], 광주원군은 이 사건에 휘말려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있다.[10] 또한, 당시 반역자의 딸들은 폐출되거나 함께 살해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소광주원부인 역시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6]언제 태어나고 사망했는지, 그리고 능이 어디인지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소생으로는 아들 광주원군 한 명뿐이며, 호는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이다.
3. 가족 관계
4. 대중문화에서의 등장
(내용 없음)
4. 1. 드라마
참조
[1]
웹사이트
http://www.surname.i[...]
2021-10-04
[2]
웹사이트
http://db.history.go[...]
2021-05-29
[3]
서적
고려사》권127〈열전〉권40
[4]
웹사이트
http://db.history.go[...]
2021-05-29
[5]
서적
고려사》권2〈세가〉권2
[6]
웹인용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광주원부인〉항목
http://people.aks.ac[...]
2012-06-07
[7]
웹인용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왕규〉항목
http://people.aks.ac[...]
2012-06-07
[8]
서적
고려사》권127〈열전〉권40
[9]
서적
고려사》권2〈세가〉권2
[10]
서적
네이버 책 - 김창현, 《광종의 제국》
http://book.naver.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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