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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텐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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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슈텐도지는 일본 전설에 등장하는 오니로, 다양한 판본과 지역에 따라 다른 설화가 존재한다. 크게 단바국의 오에산을 거점으로 하는 "오에산계"와 오미국의 이부키산을 중심으로 하는 "이부키산계"로 나뉘며, 가장 오래된 판본은 이쓰오미술관 소장 『오에산 에마키』와 산토리미술관 소장 『슈텐도지 에마키』이다. 전설에 따르면, 슈텐도지는 교토에서 젊은이들을 납치하는 악행을 저지르다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와 그의 사천왕에게 토벌당한다. 슈텐도지는 에치고국 출신이라는 설과 이부키산의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 등 다양한 기원 설화가 존재하며, 현재는 노, 가부키, 축제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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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텐도지
귀신 정보
슈텐도지
에도시대에 그려진 슈텐도지.
이름슈텐도지
로마자 표기Syeutendoji
이명주탄동자 (酒呑童子)
주전동자 (酒顛童子)
주천동자 (酒天童子)
주점동자 (朱点童子)
거주지오에 산 (大江山)
오에 산 (大枝山)
특징
외모붉은 피부
곱슬머리
5개의 뿔
능력도깨비불 생성
요술
초자연적인 힘
성격난폭하고 잔인함
전설
기원이부키 산의 신의 아들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에게 퇴치당함
퇴치미나모토노 요리미쓰와 그의 부하들이 변장하여 슈텐도지의 성에 잠입
독이 든 술을 먹여 약화시킨 후 퇴치
대중 문화
등장 작품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매체에 등장
종종 강력한 악당 또는 강력한 적으로 묘사

2. 저본

슈텐도지 전설의 저본은 크게 단바국 오에산을 거점으로 하는 "오에산계(大江山系)"와 오미국 이부키산을 중심으로 하는 "이부키산계(伊吹山系)"의 두 가지 계통으로 나뉜다. 다만, 이러한 분류에 대해서는 이견이나 신중론도 존재한다.[55]

가장 오래된 판본은 이쓰오미술관 소장 『오에산 에마키(大江山絵詞)』이며, 에도 시대 오토기조시 판본이 오에산계에 속한다. 산토리미술관 소장 『슈텐도지 에마키(酒呑童子絵巻)』는 이부키산계에 속하며, 역사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는다.[56] 역사학자 다카하시 마사아키는 이 두 계통을 "일본계(逸本系)"와 "사본계(サ本系)"로 부르기도 했다.[56][55]

2. 1. 오에산계

남북조 시대 후기에서 무로마치 시대 초기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에산 에마키』(大江山絵詞)가 대표적이다.[57] 가토리 신사에서 소장했던 것으로, "가토리본(香取本)"이라고도 불린다.[56] 『오에산 에마키』는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여기서는 주천동자(酒天童子)로 표기되어 있다.[57]

2. 2. 이부키산계

무로마치 시대에 성립된 산토리미술관 소장 『슈텐도지 에마키』(酒呑童子絵巻)는 자료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56] 이 외에도 에도 시대에는 다양한 에마키(絵巻)들이 전래되었다.[59]

3. 전승 줄거리

이치조 천황 시대, 교토에서 젊은 남녀들이 카미카쿠시를 당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아베노 세이메이의 점괘에 따라 오에산에 사는 오니 슈텐도지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조토쿠 원년(995년), 조정은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와 후지와라노 야스마사 등에게 슈텐도지 토벌을 명했다. 일설에는 쇼랴쿠 원년(990년)에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에게 토벌 명령이 내려졌다고도 한다.[61]

요리미쓰 일행은 야마부시로 가장하여 오니의 거처로 향했다. 도중에 만난 노파로부터 오니들의 잔혹함과 슈텐도지의 거처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슈텐도지는 이들을 경계하며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요리미쓰 일행은 의심을 풀고 술자리를 가졌다. 슈텐도지는 자신이 술을 좋아하여 "슈텐도지"라 불리며, 원래 히라노산(比良山|히라 산일본어)에 살았으나 전교대사엔랴쿠지를 지은 후 가쇼 2년(849년)부터 오에산으로 옮겨왔다고 이야기했다.

요리미쓰 일행은 하치만보살에게서 받은 "신편귀독주(神便鬼毒酒)"를 슈텐도지에게 먹였다. 이 술을 마시고 슈텐도지가 잠들자, 요리미쓰 일행은 침소를 덮쳐 그의 목을 베었다. 잘린 슈텐도지의 머리는 요리미쓰의 투구를 물어뜯으려 했지만, 요리미쓰는 동료들의 투구를 겹쳐 써서 위기를 모면했다. 요리미쓰 일행은 슈텐도지의 수급을 교토로 가져왔고, 수급은 우지(宇治)의 뵤도인 보물창고에 보관되었다.[57]

시부카와 세이에몬이 출판한 오토기분코(御伽文庫) 판본(1720년)은 에도 시대에 널리 읽혔으며, 이 판본에는 요리미쓰 일행이 신사에서 참배하고 신들의 도움을 받는 등 보다 상세한 내용이 추가되었다.

3. 1. 『오에산 에마키』 줄거리

이치조 천황 시대, 수도 쿄(京)에서 젊은 남녀들이 카미카쿠시를 당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아베노 세이메이가 점을 쳐보니, 오에산에 사는 오니 슈텐도지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조토쿠 원년(995년), 조정은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와 후지와라노 야스마사 등에게 슈텐도지 토벌을 명했다. 일설에는 쇼랴쿠 원년(990년)에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에게 토벌 명령이 내려졌다고도 한다.[61]

요리미쓰 일행은 야마부시로 변장하여 오니의 거처로 향했다. 슈텐도지는 이들을 경계하며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요리미쓰 일행은 의심을 풀고 술자리를 가졌다. 슈텐도지는 자신이 술을 좋아하여 부하들에게 "슈텐도지"라 불리며, 원래 히라노산(比良山일본어)에 살았으나 전교대사엔랴쿠지를 지은 후 가쇼 2년(849년)부터 오에산으로 옮겨왔다고 이야기했다.[57]

요리미쓰 일행은 하치만보살에게서 받은 "신편귀독주(神便鬼毒酒)"를 슈텐도지에게 먹였다. 이 술을 마시고 슈텐도지가 잠들자, 요리미쓰 일행은 침소를 덮쳐 그의 목을 베었다. 잘린 슈텐도지의 머리는 요리미쓰의 투구를 물어뜯으려 했지만, 요리미쓰는 동료들의 투구를 겹쳐 써서 위기를 모면했다.

요리미쓰 일행은 슈텐도지의 수급을 교토로 가져왔고, 수급은 우지(宇治)의 뵤도인 보물창고에 보관되었다.[57]

3. 2. 오토기조시 판본 줄거리

시부카와 세이에몬이 출판한 오토기분코(御伽文庫) 판본(1720년)은 에도 시대에 널리 읽혔다.[62][63]

교토로 상경한 슈텐도지는 이바라키도지를 비롯한 많은 오니를 거느리고 오오에산을 거점으로 삼아, 종종 교토에 나타나 젊은 귀족 영애들을 유괴하여 곁에 두고 시중들게 하거나, 칼로 베어 인육을 날것으로 먹었다. 이러한 악행이 극심해지자, 임금의 명에 따라 셋쓰 겐지 사람 요리미쓰와 사가 겐지인 와타나베노 쓰나를 필두로 하는 요리미츠 사천왕(와타나베노 쓰나, 사카타노 킨토키, 우스이 사다미쓰, 우라베노 스에타케)이 토벌대를 결성하여 토벌에 나섰다.

이 판본에서는 무사들이 스스로 전술을 짜고, 야마부시(산악 승려)로 변장하는 것을 고안하여, 갑옷과 무기를 오이(笈, 수행자들의 등짐 궤짝)에 숨기기로 한다. 또한, 일행이 먼저 만나 오니들의 내부 사정을 전해 듣는 세탁부 여인은 여기서는 노파가 아니라 17, 8세의 여성으로, 하나조 가문의 중납언의 외동딸이다.[30]

일행은 야마부시로 변장하여 슈텐도지의 접대를 받고, 슈텐도지는 자신의 신상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서는 슈텐도지가 "본국은 에치고의 사람"이라고 밝히고, 히에이산에 있었지만 덴교 대사에 의해 그곳에서 쫓겨나 이 봉우리(오오에야마)에 살았지만, 이번에는 고보 다이시에게 쫓겨났다. 그러나 구카이고야산에서 죽은 후 돌아왔다고 이야기한다.[31]

요리미쓰 등은 귀족 영애들의 피로 빚은 술과 인육을 함께 먹어 슈텐도지를 안심시킨 후, 신에게 받은 "신변귀독주"라는 독주를 술자리에 마시게 하여[33], 몸이 움직이지 않게 된 틈을 타 제압하여 목을 베어 처단했다. 그러나 목이 잘린 후에도 요리미쓰의 투구에 달려들었다.

술에 취해 움직임을 봉쇄당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속여서 공격해온 요리미쓰 등에게 슈텐도지는 "귀신에게 삿된 길은 없다"며 요리미쓰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4. 지방별 전설

슈텐도지 전설은 일본 각지에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단바국(현 교토부)에는 '오에 산'이라는 이름의 두 산이 있는데, 후대의 문헌인 《오토기조시》에서는 교토 북서쪽의 오에야마 산맥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학설에 따르면 원래 슈텐도지 전설의 배경은 교토 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오에 산(大枝山|오에 산일본어)으로, 가메오카시까지 뻗어 있는 산이다. 이 산에는 오이노사카(老ノ坂)라는 비탈길도 있다.

야마토국(현 나라현) 뱌쿠고지에는 슈텐도지와 관련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뱌쿠고지의 동자승이 근처 산에서 시체를 발견하고 그 살점을 가져와 승려에게 먹게 한 후, 살아있는 사람까지 해치게 되자 승려에게 쫓겨나 슈텐도지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42] 다른 하나는 뱌쿠고지 주지의 아들이 짐승처럼 거친 아이로 태어나 버려진 후 오에 산으로 가 슈텐도지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42]

일설에 따르면 슈텐도지는 에치고국 가마바라군 나카무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서는 이부키 산 기슭에서 스사노오에게 패한 야마타노오로치이즈모국에서 오미국으로 도망쳐 부호의 딸에게서 태어난 것이 슈텐도지라고 하며, 부자(父子) 모두 술을 매우 좋아했다는 점이 그 증거로 제시된다.

4. 1. 니가타현(新潟県)

越後国|에치고 국일본어 蒲原郡|간바라 군일본어 출생 설, 国上寺|고쿠조지일본어의 稚児|시동일본어이었다는 설 등이 있다. 미소년이었으나 여성들의 원한으로 오니가 되었다는 이야기, 대장장이 아들로 태어나 비범한 능력 때문에 "귀신 아이"로 불렸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진다.[18][19]

어떤 이야기에 따르면, 슈텐도지는 에치고의 대장장이 아들이었고, 16개월 동안 어머니의 자궁에 있다가 태어날 때부터 이와 머리카락이 있었고, 즉시 걸을 수 있었으며, 5~6세 수준의 말을 할 수 있었고, 16세의 지혜와 체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거친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비정상적인 재치 때문에 "오니 아이"로 따돌림을 받았다. 젠타이헤이키에 따르면, 그가 6세 때 어머니에게 버려졌고,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다가 오니가 되는 길을 걸었다고 한다.[18][19] 다른 설에 따르면, 오니 아이로 멸시당했기 때문에 절에 맡겨졌지만, 그 절의 주지스님이 비정상적인 수련을 하는 사람이었고, 아이는 그 비정상적인 수련을 배우면서 오니가 되었고, 악의 한계를 다했다고 전해진다.[19]

和納村|와노 촌일본어(현재 니가타)에서는 임신한 여자가 "토치"라는 물고기를 먹으면, 아들이면 강도가 되고 딸이면 매춘부가 된다고 한다. 또한, 그 물고기를 먹은 여자가 16개월 동안 자궁에 머물렀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슈텐도지라고 한다. 와노촌에는 도지 저택과 도지 들판과 같은 지명이 있다.[20]

4. 2. 시가현(滋賀県) 이부키산(伊吹山)

伊吹山일본어을 배경으로 하는 슈텐도지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슈텐도지는 야마타노오로치(이부키 산의 묘진의 화신)와 인간 소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히에이 산에서 수행했지만, 불교에서 금지된 술을 매우 즐겨 마셨기 때문에 모두에게 미움을 받았다. 어느 날, 오니 복장을 하고 종교 축제에 참석한 후, 복장을 벗으려 했지만 얼굴에 달라붙어 벗을 수 없었고, 마지못해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오니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이바라키도지를 만나 함께 교토를 목표로 했다.

『나라 그림책 술전동자』에 따르면, 슈텐도지는 오미국 스가와(마이바라시) 장자의 딸인 타마히메고젠과 이부키 산의 이부키 다이묘진(야마타노오로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부키 다이묘진의 계시에 따라 출산 후 타마히메는 이부키 산으로 올라갔고, 슈텐도지는 조부인 스가와 장자의 아이로 길러졌다.

10세 때, 슈텐도자는 고야 산과 히에이 산 중 한 곳에서 불도 수행을 하도록 권유받았고, 고야 산은 너무 멀다는 이유로 가까운 히에이 산의 치고가 되었다. 입산 후 그는 삼탑 제일의 학승으로 칭송받을 정도가 되었지만, 술을 좋아했다. 이것은 오계 중 하나인 음주계를 위반하는 것이므로 모두에게 경멸받았지만, 스승에게 심하게 꾸중을 듣고 술을 끊었다.

그 무렵, 도읍이 헤이안쿄로 옮겨지고, 조정에서는 축하 행사로 교토 사람들에 의한 후류오도리가 열렸으며, 여러 절에도 후류오도리를 공연하도록 칙명이 내려졌다. 히에이 산이 도읍의 귀문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슈텐도자의 제안으로 히에이 산의 승려들은 "귀춤"을 선보이게 되었다. 춤을 출 때 사용하는 귀신 가면은 슈텐도자가 모두 준비했다.

궁궐에서의 공연이 끝나자 히에이 산의 승려들에게 술이 제공되었다. 술을 많이 마신 슈텐도자는 귀신 가면을 쓴 채 산으로 돌아가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귀신 가면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승려들에게 두려움을 받은 슈텐도자는 사이초에 의해 히에이 산에서 쫓겨났고, 조부인 스가와 장자에게 돌아갔으나, 조부는 귀신 모습이 된 슈텐도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부모가 있는 이부키 산으로 내쫓았다.

슈텐도자는 이부키 산으로 올라가, 어머니의 인도로 산의 북서쪽에 있는 바위 동굴에 틀어박히자, 신통력을 가진 진짜 귀신이 되어 일대의 사람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이를 걱정한 사이초의 기도로 이부키 산에서 쫓겨난 그는, 일본 전국 산들을 떠돌아다니다가, 최종적으로 오에 산에 도착했다.

4. 3. 나라현(奈良県)

야마토국(현재의 나라현) 뱌쿠고지에서 동자승으로 있었다는 설과, 뱌쿠고지 주지의 아들이었으나 짐승처럼 거친 아이여서 버려졌다는 설이 있다.
뱌쿠고지 동자승 설근처 산에서 시체를 발견하고 호기심에 그 고기를 절로 가져와 스승인 승려에게 사람 고기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 먹게 했다. 이후 시체의 살뿐만 아니라 산 사람을 죽여 그들의 살을 가져오는 등 자주 고기를 가져왔다. 수상하게 생각한 승려는 그를 따라가 진실을 발견하고 심하게 꾸짖은 뒤 산에 버렸다. 이 동자는 나중에 슈텐도지가 되었으며, 그가 버려진 곳은 '치고사카'(稚児坂, 동자 언덕)라고 불리게 되었다.[21][42]
뱌쿠고지 주지 아들 설뱌쿠고지 주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성장하면서 송곳니와 뿔이 자라나고 짐승처럼 거친 아이가 되었다. 주지는 세간의 이목을 부끄러워하여 아이를 버렸고, 이 아이는 나중에 오에산으로 가서 슈텐도지가 되었다.[21][42]

4. 4. 교토부(京都府)

헤이안 시대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교토를 어지럽힌 오니로, 단바국 오에산 또는 교토시 니시쿄구 오에(大枝)에 근거지를 두었다는 설이 있다.[22] 오이노사카(老ノ坂) 전설에서는 요리미쓰 일행이 슈텐도지의 목을 교토로 가져가려다 지장보살의 경고를 받고 그 자리에 묻었다고 한다.[23][24]

요리미쓰 일행은 슈텐도지의 머리를 교토로 가져가던 중, 오에 산(老ノ坂) 근처 길가의 지장보살로부터 "부정한 것을 수도로 가져오지 마시오"라는 경고를 받았다.[43] 머리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일행은 그 자리에 머리를 묻었다. 일설에 따르면, 슈텐도지는 죽기 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머리 질환을 앓는 사람들을 돕고자 했으며, 그 때문에 다이묘진(大明神)으로 숭배되었다고 한다. 이 오이노사카 언덕의 쿠비즈카 다이묘진(首塚大明神)은 머리 질환에 영험이 있다고 전해진다.[43]

교토부 후쿠치야마시의 오에산에 묻혔다고도 전해지며, 이곳은 오니타케이나리산 신사(鬼岳稲荷山神社)의 기원이다.

교토부의 나리아이지 절에는 슈텐도지를 취하게 만든 술인 신벤키도슈(神便鬼毒酒)를 따르는 데 사용되었다고 전해지는 술병과 술잔이 보관되어 있다.[25]

5. 해석

타카하시 마사아키는 슈텐도지가 사는 오에산 속 바위동굴을 삶과 죽음의 경계로 해석하고, 슈텐도지의 대궐은 용궁과 같은 선경(仙境) 또는 명계(冥界)로 보았다.[56] 쇼랴쿠 5년(994년)에 천연두가 크게 유행한 것이 슈텐도지 전설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56][57] 또한 『사기』의 치우 전설, 당나라 소설 『보강총백원전』, 명나라 소설 『진순검매령실처기』와의 유사성도 지적했다.[56]

민속학자 코마츠 카즈히코는 중세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요괴 셋을 꼽으라면 슈텐도지, 타마모노마에, 오타케마루였을 것이라고 보았다. 코마츠는 이 3대 요괴는 특별한 취급을 받음으로써 걸출한 요괴로 간주되었다고 보았다. 이 세 요괴는 퇴치된 이후에는 지배자(교토의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들)의 “보물”이 되며, 그 유해가 지배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보물창고”에 들어갔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 보물창고란 바로 후지와라노 요리미치가 건립한 뵤도인의 우지의 보장이다. 오니의 목이나 구미호의 유해를 보물창고에 보관하는 것은 어탁이나 박제와 같은 발상으로서 전승의 기념품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64]

오에야마 에마키의 장면.


라이코가 슈텐도지와 싸우는 모습. 17세기판 ''오에야마 에마키''의 장면. 체스터 비티 도서관


가장 오래된 전설 텍스트(''오에야마 에코토바'' 또는 ''오에야마 에마키'')에 따르면,[2] 이치조 천황(재위 986–1011) 치세 동안, 수도 교토에서 젊은 여성을 포함한 많은 실종 사건이 보고되었다. 아베노 세이메이는 오에 산의 오니 왕(슈텐도지)이 납치의 배후임을 밝혀냈다. 천황은 미나모토노 요리미쓰(미나모토노 라이코)와 후지와라노 호쇼(藤原保昌일본어)에게 이 악마를 처치하라고 명령했다. 라이코는 그의 네 명의 부하들을 ''시텐노''라고 불렀고, 호쇼는 다자이후의 말단 서기관 한 명만을 조력자로 두었다. 일행은 995년에 교토를 떠났다.

일행은 네 명의 신의 화신인 네 명의 남자를 만났다. 그들의 권고에 따라 라이코와 그의 수행원은 야마부시 승려로 변장했다. 그들은 동굴 터널을 지나 강가에서 납치된 늙은 여인이 세탁하는 것을 발견했다. 늙은 여인은 납치된 어린 소녀들이 하녀 역할을 강요당했지만, 오니들은 소녀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그들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셨다고 설명했다.

전사들은 승려인 척하며 오니 왕에게 숙소를 제공해 달라고 설득했다. 오니 왕은 손님들에게 을 대접하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술을 좋아하는 취미 때문에 부하들에게 "술을 마시는 아이"라는 뜻의 슈텐도지라고 불렸고, 엔랴쿠지 사찰이 근처에 세워지면서 히라 산맥에서 쫓겨나 849년부터 오에 산에 있었다고 말했다.

라이코는 신 중 한 명이 준 술을 슈텐도지에게 건네주어 무력화시켰다. 전사들은 승려의 배낭 가슴(''오이'') 속에 숨겨둔 갑옷과 무기를 착용했다. 그들은 슈텐도지의 침실로 쳐들어가 네 명의 신이 오니의 사지를 붙잡고 있는 동안 라이코는 도지기리 칼로 슈텐도지의 머리를 베었다. 잘린 머리는 여전히 살아있었고 턱을 벌려 라이코의 머리를 노렸지만, 전사는 자신의 헬멧 외에도 부하들의 헬멧 두 개를 더 착용하여 스스로를 방어했다. 일행은 머리를 가지고 교토로 개선했으며, 뵤도인 사찰의 (우지의 보물창고)에 안치되었다.

악마는 형상 변환자이며 강력한 적이기 때문에, 일행은 이와시미즈 하치만구, 스미요시 신사, 구마노 신사에 참배하기로 결정한다.[5] 이후, 일행은 늙은 남자의 모습으로 변장한 세 신사의 신들을 만난다. 신들은 라이코에게 "악마에게 독이 되는" 신성한 술(神便鬼毒酒일본어, 진벤 키도쿠 슈)을 주는데, 이 술은 도깨비들이 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하고 정신을 잃게 할 것이다.

초기 슈텐도지 전설에서는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와 후지와라노 야스마사가 대등한 관계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무로마치 시대 중기부터 센고쿠 시대에 걸쳐 요리미츠와 그의 사천왕이 슈텐도지 퇴치의 주역으로 부상하면서 야스마사는 조연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5. 1. 역사적 해석

역사학자 다카하시 마사아키는 슈텐도지가 사는 오에산 속 바위동굴을 삶과 죽음의 경계로 해석하고, 슈텐도지의 대궐은 용궁과 같은 선경(仙境) 또는 명계(冥界)로 보았다.[56] 쇼랴쿠 5년(994년)에 천연두가 크게 유행한 것이 슈텐도지 전설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56][57] 또한 『사기』의 치우 전설, 당나라 소설 『보강총백원전』, 명나라 소설 『진순검매령실처기』와의 유사성도 지적했다.[56]

슈텐도지가 사람의 피를 술처럼 마시는 묘사가 있는데, 이는 단고에 표착한 독일인 '슈타인 도치'가 유래이며, 그가 마셨다는 적포도주가 "생피"로 오해받았다는 설이 있다.[44] 다카하시 마사아키에 따르면, 1952년 『주간 아사히』에 게재된 단편 소설 「슈텐도지」에서 단고 해안에 난파된 서양인이 피와 비슷한 와인을 마셨다는 내용이 이 이야기의 출처일 수 있다고 한다.[44][45][46][47]

5. 2. 민속학적 해석

민속학자 코마츠 카즈히코는 중세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요괴 셋을 꼽으라면 슈텐도지, 타마모노마에, 오타케마루였을 것이라고 보았다. 코마츠는 이 3대 요괴는 특별한 취급을 받음으로써 걸출한 요괴로 간주되었다고 보았다. 이 세 요괴는 퇴치된 이후에는 지배자(교토의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들)의 “보물”이 되며, 그 유해가 지배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보물창고”에 들어갔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 보물창고란 바로 후지와라노 요리미치가 건립한 뵤도인의 우지의 보장이다. 오니의 목이나 구미호의 유해를 보물창고에 보관하는 것은 어탁이나 박제와 같은 발상으로서 전승의 기념품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64] [48] 그렇다면 보물창고는 그 소유자, 즉 천황이 이 3대 요괴의 영력보다 더한 무력과 지략, 신불의 가호를 지니고 있음을 선전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며, 우지의 보물창고에 들어간 요괴는 그만큼 강대했을 것이라는 것이 코마츠의 해석이다.

5. 3. 후지와라 야스마사(藤原保昌)와의 관계

초기 슈텐도지 전설에서는 슈텐도지를 퇴치한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와 후지와라노 야스마사가 대등한 관계로 묘사되었다. 예를 들어, 『미도 간파쿠기(御堂関白記)』에는 간닌 원년 3월 8일(1017년 4월 7일)에 요리미쓰의 동생인 요리치카가 야스마사의 부하인 기요하라노 무치노부(세이 쇼나곤의 친오빠)를 살해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고지단(古事談)』(권2-57)에서는 무치노부를 살해한 것이 요리미츠 사천왕으로 바뀌어 있는데, 이를 통해 요리미츠와 야스마사 사이의 경쟁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오에산의 슈텐도지(酒呑童子)와 미나모토노 요리미츠 사천왕, 그리고 후지와라노 야스마사(쓰키오카 요시토시, 메이지 시대)


또한, 『호겐 이야기(保元物語)』, 『바이쇼론(梅松論)』, 『이제이테이킨오라이(異制庭訓往来)』 등에서도 "타무라(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 토시히토(후지와라노 토시히토), 요리미츠, 야스마사"를 옛날부터의 명장 4명으로 함께 언급하고 있다. 간제 노부미쓰(観世信光)의 『라쇼몽(羅生門)』에서도 야스마사와 와타나베노 쓰나가 논쟁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이러한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무로마치 시대 중기부터 센고쿠 시대에 걸쳐 요리미츠와 그의 사천왕이 슈텐도지 퇴치의 주역으로 부상하면서 야스마사는 조연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오토기조시의 『슈텐도지』에서는 야스마사가 요리미츠 사천왕과 함께 요리미츠의 부하로 묘사되었으며, 이러한 묘사가 후세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다만, 남북조 시대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치바씨(千葉氏)의 「호세이 검」 전승[49]과 같이 야스마사 단독으로 슈텐도지를 퇴치했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6. 현대 문화 속 슈텐도지


  • 『오오에야마』(大江山)
  • 『오오에야마 슈텐도지』(大江山酒呑童子)

: 하기와라 유키오가 17대 나카무라 칸자부로를 위해 쓴 나가우타의 무용극이다. 1963년 6월 가부키좌에서 초연되었다.

11번 히키야마. 요네야마치의 슈텐도지와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의 투구

  • 간다 축제

: 도쿄도 지요다구에 있는 간다묘진에서 매년 5월에 열리는 "간다 축제"에서는 2년에 한 번 열리는 본 축제에서만 실시되는 신코사이의 부제(つけまつり)로서,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요리미쓰 사천왕·종자들로 분장한 사람들이 슈텐도지의 목을 본뜬 야마와 함께 행진하는 '''"오에야마 개진"'''이 열린다. 이 행사는 예전에 이 축제가 "천하제"라고 불렸던 시절에 인기를 누렸던 히키모노 중 하나이다.[50] 『에도 명소도회』의 "간다묘진 제례" 그림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이후 히키야마가 없어지면서 오랫동안 중단되었지만, 2007년 신코사이에서 [http://bunkashigen.jp/kanda/index.html 문화자원학회]의 협력으로 높이 4m의 풍선으로 복원되어 약 170년 만에 부활했다.[51][52]

  • 가라쓰 군치

: 사가현 가라쓰시에서 매년 11월에 열리는 가라쓰 신사의 추계 예대제 "가라쓰 쿤치"에서는 요네야마치의 "슈텐도지와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의 투구"가 시내를 순행한다.

  • 슈텐도지 행렬

: 슈텐도지의 출생 전설이 있는 니가타현 쓰바메시(에치고국)에서는, 이 시의 가을 이벤트 "슈텐도지 행렬" 등에서 요사코이풍 연무팀 "슈텐도지"가 그 전설을 컨셉으로 한 연무를 선보이고 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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