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누가아라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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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쓰누가아라시토는 《일본서기》에 기록된 인물로, 스이닌 천황 시대에 일본에 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쓰누가아라시토는 일본 지명 쓰루가의 어원과 관련되며, 신라와 관련된 이야기와 함께 등장한다. 그는 미마나(任那)라는 국명을 얻고 신라와의 갈등을 겪는 등, 일본 고대사와 한반도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인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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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누가아라시토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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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목록 | 가야의 왕자 |
개인 정보 | |
이름 | 쓰누가아라시토 |
원어 이름 | 都怒我阿羅斯等 |
성별 | 남성 |
가계 | |
왕조 | 가야 |
2. 기록
'쓰누가'라는 이름은 신라 최고 관직인 '서불한(舒弗邯)' 즉 각간(角干)을 훈독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이 쓰누가가 와전되어 쓰루가(敦賀)라는 지명이 나왔다고도 한다.[4] '아라시토'는 한국어 '알지(閼智)'[2]처럼 신라와 가야 귀족에 대한 경칭으로 보기도 한다.[3][4] 쓰루가에는 식내사(式内社)인 시로키신사(白城神社)•시로키히코신사(信露貴彦神社)라는 신라계 신사도 있어, '쓰누가아라시토'의 이름이나 설화를 통해 한반도 남부에서 쓰루가 지역으로 도래인(渡来人)이 왔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1세기 쓰누가라는 인물과 기원후 6세기 탁순국의 아리사등(阿利斯等), 기능말다간기(재위:?~538년)를 동일시하는 설도 있으나, 탁순국 아리사등은 기원전 1세기 쓰누가아라시토(소나갈질지)가 일본에 온 지 400년 이상 지난 인물로, 일본에 건너가 영주가 된 인물이다. 탁순국 아리사등 후손들이 아리사등과 기원전 1세기 인물인 쓰누가를 동일시하여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전설에 나오는 '히메가타리소샤(比売語曽社)' 중 나니와의 신사는 히메고소신사(比売許曽神社,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가시나리구 소재, 식내명신대사式内名神大社)이고, 도요쿠니(豊国) 구니마에군(国前郡)의 신사는 히메가타리소샤(比売語曽社, 오이타현 히가시쿠니히가시군東国東郡 히메시마무라姫島村 소재)로 비정된다. 아메노히보코(天日槍)라는 이름은 '쓰누가(각간)아라시토(알지)'의 일본 이름이라는 지적도 있다.[5] 아메노히보코는 신라 왕자, 쓰누가아라시토는 대가야 왕자라는 전설은 한반도 유래 전승이 일본에서 특정 지역에 할당된 것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5]
쓰누가아라시토는 '우사기아리질기간기(于斯岐阿利叱智干岐)'라고도 표기되는데, 일본어 발음으로 '우시키아리시치칸키(うしきありしちかんき)'이다. '우시(于斯)'는 '소(牛)'의 고대 한국어이며, '키(岐)'는 존칭 '귀(貴)', 질지(叱知)는 가야 왕족 등급 또는 일본어 '부(父,ちち,치치)', 간키(干岐) 또한 '키(岐)'는 존칭을 뜻한다. 쓰누가아라시토 전승의 '오호카라(意富加羅)'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가락국기(駕洛國記)」의 금관가야(金官伽耶)로 보기도 하고,[6] '오호'를 '크다(大; 오오)'는 의미로 보아 대가야로 해석하기도 한다.[7]
게히신궁(氣比神宮, 후쿠이현 쓰루가시) 전승에서는 쓰누가아라시토가 쓰루가를 통치했다고 한다.[8] 게히신궁 경내 섭사(摂社)인 쓰루가신사(角鹿神社, 식내사(式内社))는 그 정소적(政所跡)이며, 현재 쓰누가아라시토는 제신(祭神)으로 여겨진다.[8]
JR 쓰루가역(敦賀駅) 앞에는 '쓰누가아라시토상(都恕我阿羅其等像)'이 있다.[9]
2. 1. 스진 천황 시대의 전설
《일본서기》에는 스이닌 천황 2년조의 주석으로 소나갈질지 설화에 뒤이어 2개의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첫 번째는 스진 천황 대에 이마에 뿔이 자란 쓰누가아라시토가 배로 아나몬에서 이즈모국을 지나 고시국의 케히우라(笥飯浦)에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쓰누가(角鹿)' 지역의 어원이며, 이 지명은 후에 쓰루가(敦賀)로 바뀌었다고 한다.
3년 뒤 11대 스이닌 천황은 쓰누가아라시토가 귀국할 때에 선대 스진 천황의 휘인 '미마나(任那, 弥摩那, 彌摩那)'를 국명으로 하라는 조서를 내리고 적견을 하사했다. 쓰누가아라시토는 의부가라국왕(意富加羅國王; 오호카라노쿠니)의 아들이었는데, 이 교를 받은 까닭에 나라 이름을 미마나(임나)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천황이 선물한 비단은 신라인이 이를 듣고 병사를 일으켜 모두 빼앗았으며, 이 일로 이후 신라와 임나는 불화하게 되었다.[1]
두 번째 전설은 아라시토가 국(國)에 있었을 때 누런 소 값으로 얻은 백석(白石)이 아름다운 동녀(童女)로 변하자, 쓰누가아라시토가 동침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동녀는 쓰누가아라시토를 떠나 일본으로 갔고, 나니와(難波)와 함께 도요쿠니 구니마에군(国前郡)의 히메가타리소샤(比売語曽社)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쓰누가아라시토는 동녀를 쫒아 일본까지 건너갔다.
또한 두 번째 전설과 관련된 전승이 《고사기》의 아메노히보코, 아카루히메노카미 설화나 《셋쓰국풍토기(摂津国風土記)》 일문(逸文)(《萬葉集註釈》 소인)에 보인다.[1]
2. 2. 스이닌 천황 시대의 전설
《일본서기》에는 스이닌 천황 2년조의 주석으로 소나갈질지 설화에 뒤이어 2개의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1]첫번째는 스진 천황 대에 이마에 뿔이 자란 쓰누가아라시토가 배로 아나몬에서 이즈모국을 지나 고시국의 케히우라(笥飯浦)에 왔다는 것이다.[1] 그리고 이것이 '쓰누가(角鹿)' 지역의 어원이며, 후에 쓰루가(敦賀)로 바뀌었다고 한다.
3년 뒤 11대 스이닌 천황은 쓰누가아라시토가 귀국할 때에 선대 스진 천황의 휘인 '미마나(任那, 弥摩那, 彌摩那)'를 국명으로 하라는 조서를 내리고,[1] 적견을 하사했다. 쓰누가아라시토는 의부가라국왕(意富加羅國王; 오호카라노쿠니)의 아들이었는데 이 교를 받은 까닭에 나라의 이름을 미마나(임나)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천황이 선물한 비단은 신라인이 이를 듣고 병사를 일으켜 모두 빼앗았으며, 이 일로 이후 신라와 임나는 불화하게 되었다.[1]
두번째 전설에서 아라시토가 국(國)에 있었을 때에 누런 소에 대한 댓가로 얻은 백석(白石)이 아름다운 동녀(童女)로 변하였기에, 쓰누가아라시토는 동침하려 하였다.[1] 그러자 동녀는 쓰누가아라시토를 떠나 일본으로 갔고, 나니와(難波)와 함께 도요쿠니 구니마에군(国前郡)의 히메가타리소샤(比売語曽社)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1] 쓰누가아라시토는 동녀를 쫒아 일본까지 건너갔다.
또한 두번째 전설의 관련 전승은 《고사기》의 아메노히보코, 아카루히메노카미 설화나 《셋쓰국풍토기(摂津国風土記)》 일문(逸文)(《萬葉集註釈》소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1]
2. 3. 두 번째 전설과 관련 전승
《일본서기》에는 스이닌 천황 2년조의 주석으로 2개의 전설이 기록되어 있으며, 소나갈질지 설화의 뒤에 뒤이어 나온다.3년 뒤 11대 스이닌 천황은 쓰누가아라시토가 귀국할 때에 선대 스진 천황 휘인 '미마나(任那)'를 국명으로 하라고 조서를 내렸으며, 적견(赤絹)을 하사했다. 쓰누가아라시토는 의부가라국왕(意富加羅國王)의 아들이었는데 이 교를 받은 까닭에 나라의 이름을 미마나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천황이 선물한 비단은 신라인이 이를 듣고 병사를 일으켜서 모두 빼앗았다. 이 일로 이후 신라와 임나는 불화하게 되었다고 한다.[1]
두 번째 전설에서 아라시토가 국(國)에 있었을 때에 누런 소에 대한 대가로 얻은 백석(白石)이 아름다운 동녀(童女)로 변하였기에, 쓰누가아라시토는 동침하려 하였다. 그러자 동녀는 쓰누가아라시토를 떠나 일본으로 갔고, 나니와(難波)와 함께 도요쿠니의 구니마에군(国前郡)의 히메가타리소샤(比売語曽社)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쓰누가아라시토는 동녀를 쫓아 일본까지 건너갔다.
또한 두 번째 전설의 관련 전승이 《고사기》의 아메노히보코・아카루히메 설화나 《셋쓰국풍토기(摂津国風土記)》의 일문(逸文)(《萬葉集註釈》所引)에 보인다.[1]
3. 고증
쓰누가아라시토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해석은 여러 가지가 존재하며, 주로 일본 역사서와 신사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3. 1. 쓰누가아라시토의 정체
'쓰누가'라는 이름은 신라 최고 관직인 '서불한(舒弗邯)' 즉 각간(角干)을 훈독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이 쓰누가가 와전되어 쓰루가(敦賀)라는 지명이 나왔다고도 한다.[4] '아라시토'는 한국어 '알지(閼智)'[2]에서 보이는 것처럼 신라와 가야의 귀족에 대한 경칭으로 보기도 한다.[3][4] 쓰루가에는 식내사(式内社)로서 시로키신사(白城神社)•시로키히코신사(信露貴彦神社)라는 신라계 신사도 분포하고 있으며, '쓰누가아라시토'의 이름이나 설화를 볼 때 한반도 남부에서 쓰루가 지역 주변으로 도래인(渡来人)이 건너와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기원전 1세기의 쓰누가라는 인물은 기원후 6세기 일본측에서 기록한 탁순국의 아리사등(阿利斯等), 기능말다간기(재위:?~538년) 와 동일인물이라는 설도 있으나, 탁순국의 아리사등은 기원전 1세기 쓰누가아라시토(소나갈질지)가 일본에 도착한 이후 400년 이상 지난 6세기 인물로 일본으로 건너가 영주가 된 인물이며, 탁순국 아리사등 후손들이 아리사등과 기원전 1세기 인물인 쓰누가를 동일시하여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두 번째 전설에 보이는 '히메가타리소샤(比売語曽社)' 가운데 나니와의 신사는 히메고소신사(比売許曽神社,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가시나리구 소재, 식내명신대사式内名神大社)와 도요쿠니(豊国)의 구니마에군(国前郡)의 신사는 히메가타리소샤(比売語曽社, 오이타현 히가시쿠니히가시군東国東郡 히메시마무라姫島村 소재)로 비정된다. 두번째 전설은 아메노히보코 전설과 같은 전설의 다른 버전으로 보고, 동일한 신에 관한 전승으로 보기도 한다.[5] 아메노히보코(天日槍)라는 이름 자체가 상술한 '쓰누가(각간)아라시토(알지)'의 일본이름이 되었다는 지적도 있다.[5] 아메노히보코는 신라 왕자, 쓰누가아라시토는 대가야 왕자라고 하지만, 이는 한반도 유래 전승이 일본에서 특정 지역에 할당되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5]
쓰누가아라시토는 '우사기아리질기간기(于斯岐阿利叱智干岐)' 라는 이름으로도 표기되는데 일본어 발음으로 '우시키아리시치칸키(うしきありしちかんき)'라고 표기된다. '우시(于斯)' 는 '우시(牛, 소)'의 고대 한국어이며 '키(岐)' 는 존칭을 뜻하는 '貴', 질지(叱知)는 가야의 왕족 등급인 질지 또는 일본어로 부(父,ちち,치치)를 뜻하고 칸키(干岐) 또한 '키(岐)'는 존칭을 뜻한다. 쓰누가아라시토 전승에서 등장하는 '오호카라(意富加羅)'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가락국기(駕洛國記)」의 금관가야(金官伽耶)로 보기도 하며,[6] '오호'를 크다(大; 오오)는 의미로 보아 대가야로 해석하기도 한다.[7]
3. 2. 아리사등과의 동일 인물설 비판
'쓰누가'라는 이름은 신라 최고 관직인 '서불한(舒弗邯)' 즉 각간(角干)을 훈독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이 쓰누가가 와전되어 쓰루가(敦賀)라는 지명이 나왔다고도 한다.[4] '아라시토'는 한국어 '알지(閼智)'[2]에서 보이는 것처럼 신라와 가야의 귀족에 대한 경칭으로 보기도 한다.[3][4] 기원전 1세기의 쓰누가라는 인물에 대하여 기원후 6세기 일본 측에서 기록한 탁순국의 아리사등(阿利斯等), 기능말다간기(재위:?~538년)와 동일시되는 설도 있으나, 탁순국의 아리사등은 쓰누가아라시토(소나갈질지)가 일본에 도착한 기원전 1세기 이후 400년 이상 지난 6세기 인물로 일본으로 건너가 영주가 된 인물이다. 탁순국 아리사등 후손들이 아리사등과 기원전 1세기 인물인 쓰누가를 동일시하여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인다.3. 3. 히메가타리소샤 비정
'히메가타리소샤(比売語曽社)' 가운데 나니와의 신사는 히메고소신사(比売許曽神社,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가시나리구 소재, 식내명신대사式内名神大社)와 도요쿠니(豊国)의 구니마에군(国前郡)의 신사는 히메가타리소샤(比売語曽社, 오이타현 히가시쿠니히가시군東国東郡 히메시마무라姫島村 소재)로 비정된다.[4] 두번째 전설은 아메노히보코 전설과 같은 전설의 다른 버전으로 보고,[4] 동일한 신에 관한 전승으로 보고 있다.[5] 아메노히보코(天日槍)라는 이름 자체가 상술한 '쓰누가(각간)아라시토(알지)'의 일본 이름이 되었다는 지적도 있다.[5] 그리고 이런 전설에 아메노히보코는 신라 왕자, 쓰누가아라시토는 대가야 왕자라고 하지만 이는 한반도 유래 전승이 일본에서 특정 구니에 할당되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5]3. 4. 출신 배경
'쓰누가'라는 이름은 신라 최고 관직인 '서불한(舒弗邯)' 즉 각간(角干)을 훈독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이 쓰누가가 와전되어 쓰루가(敦賀)라는 지명이 나왔다고도 한다.[4] '아라시토'는 한국어 '알지(閼智)'[2]에서 보이는 것처럼 신라와 가야의 귀족에 대한 경칭으로 보기도 한다.[3][4]쓰루가에는 식내사(式内社)로서 시로키신사(白城神社)•시로키히코신사(信露貴彦神社)라는 신라계 신사도 분포하고 있으며, '쓰누가아라시토'의 이름이나 설화를 통해 한반도 남부에서 쓰루가 지역 주변으로 도래인(渡来人)이 건너와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1세기의 쓰누가라는 인물에 대하여 기원후 6세기 일본측에서 기록한 탁순국의 아리사등(阿利斯等), 기능말다간기(재위:?~538년)와 동일인물이라는 설도 있으나, 탁순국의 아리사등은 기원전 1세기 쓰누가아라시토(소나갈질지)가 일본에 도착한 이후 400년 이상 지난 6세기 인물로 일본으로 건너가 영주가 된 인물이며, 탁순국 아리사등의 후손들이 아리사등과 기원전 1세기 인물인 쓰누가를 동일시하여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전설에 보이는 '히메가타리소샤(比売語曽社)' 가운데 나니와의 신사는 히메고소신사(比売許曽神社,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가시나리구 소재, 식내명신대사式内名神大社)와 도요쿠니(豊国)의 구니마에군(国前郡)의 신사는 히메가타리소샤(比売語曽社, 오이타현 히가시쿠니히가시군東国東郡 히메시마무라姫島村 소재)로 비정된다. 두번째 전설은 아메노히보코 전설과 같은 전설의 다른 판본으로 보고, 동일한 신에 관한 전승으로 보고 있다.[5] 아메노히보코(天日槍)라는 이름 자체가 상술한 '쓰누가(각간)아라시토(알지)'의 일본이름이 되었다는 지적도 있다.[5] 이러한 전설에서 아메노히보코는 신라 왕자, 쓰누가아라시토는 대가야 왕자라고 하지만, 이는 한반도 유래 전승이 일본에서 특정 지역에 할당되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5]
쓰누가아라시토는 '우사기아리질기간기(于斯岐阿利叱智干岐)' 라는 이름으로도 표기되는데 일본어 발음으로 '우시키아리시치칸키(うしきありしちかんき)'라고 표기된다. '우시(于斯)' 는 '우시(牛, 소)'의 고대 한국어이며, '키(岐)' 는 존칭을 뜻하는 '貴'이다. 질지(叱知)는 가야의 왕족 등급인 질지 또는 일본어로 부(父,ちち,치치)를 뜻하고, 칸키(干岐) 또한 '키(岐)'는 존칭을 뜻한다. 쓰누가아라시토 전승에서 등장하는 '오호카라(意富加羅)'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가락국기(駕洛國記)」의 금관가야(金官伽耶)로 보기도 하며,[6] '오호'를 크다(大; 오오)는 의미로 보아 대가야로 해석하기도 한다.[7]
4. 전승
게히신궁(氣比神宮, 후쿠이현 쓰루가시) 전승에 따르면 쓰누가아라시토가 쓰루가를 통치했다고 한다.[8] 게히신궁 경내 섭사(摂社, 신사의 주신과 연관된 신을 봉헌한 건물)인 쓰루가신사(角鹿神社, 식내사(式内社))는 쓰누가아라시토의 정소적(政所跡)이며, 현재 쓰누가아라시토는 제신(祭神)으로 여겨진다.[8]
JR 쓰루가역(敦賀駅) 앞에는 '쓰누가아라시토상(都恕我阿羅其等像)'이 있다.[9]
참조
[1]
서적
日本の神々(岩波新書618)
岩波書店
1999
[2]
문서
[3]
사전
国史大辞典
[4]
서적
私の日本古代史 上
新潮選書
2012
[5]
서적
日本神話の謎がよく分かる本
大和書房
2007
[6]
간행물
日韓共同歴史研究報告書
https://www.jkcf.or.[...]
日韓共同歴史研究会
2010
[7]
논문
蘇那曷叱智考(소나갈질지고)
博英社(박영사)
1976
[8]
문서
氣比神宮由緒書
[9]
웹인용
県道敦賀港線 ‐28‐
http://www2.pref.fuk[...]
福井県
202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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