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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도 저주받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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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름답고도 저주받은 사람들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로,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 앤서니 패치와 아름다운 플래퍼 글로리아 길버트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앤서니는 할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을 예정이었으나, 방탕한 생활로 인해 유산을 받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이 소설은 1920년대 미국 사회의 도덕적 타락, 사랑, 돈, 그리고 소명의 부재를 다루며, 피츠제럴드 부부의 삶에서 영감을 얻었다. 출판 당시에는 비판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현재는 피츠제럴드의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영화로 각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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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도 저주받은 사람들 - [서적]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피츠제럴드의 1922년 소설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 표지. 삽화가 W. E. 힐. 표지는 F.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를 닮은 젊은 부부를 묘사한 연필 스케치로 보인다. 부부는 배경에 큰 금색 원이 있는 배경에서 긴 의자에 기대어 있다. 젊은 남자는 검은 양복에 나비 넥타이와 흰 셔츠를 입고 있다. 그의 팔은 불행한 듯 접혀 있다. 젊은 여자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다리를 꼬고 있다. 그녀의 머리는 밥 스타일이고 하이힐을 신고 있다.
초판본 표지
장르비극
저자F. 스콧 피츠제럴드
삽화가윌리엄 E. 힐
국가미국
언어영어
출판사찰스 스크리브너스 선스
출판일1922년 3월 4일
미디어 유형인쇄 (하드커버, 페이퍼백)
이전 작품낙원의 이쪽 (1920)
다음 작품위대한 개츠비 (1925)

2. 등장인물

F.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 세이어, 1922년 해변에서.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 '''앤서니 패치''': 하버드 대학교 출신으로, 할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예정이다.
  • '''글로리아 길버트''': 캔자스시티 출신의 아름다운 여성으로 앤서니와 결혼한다.
  • '''리처드 "딕" 캐러멜''': 앤서니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글로리아의 사촌이다.
  • '''조셉 블로크먼''': 글로리아를 사랑하는 유대인 영화 제작자이다.
  • '''도로시 "닷" 레이크로프트''': 앤서니가 군 훈련 중에 만나는 여성이다.

2. 1. 앤서니 패치

하버드 대학교 동문이자 고칠 수 없는 게으름뱅이로, 할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이다.[2] 야망이 없고, 여러 직업을 추구하면서도 일하려는 의욕이 없다.[2] 글로리아 길버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즉시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미국 육군에 징집되었지만, 그가 해외로 파병되기 전에 전쟁이 끝난다.[2] 소설 전체에서 그는 직업 없이 파티를 즐기고 점점 더 심해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시간을 보낸다. 미래의 부에 대한 기대는 현재 그를 나태하게 만들고, 결국 공허한 관계만을 남긴다.

2. 2. 글로리아 길버트

글로리아 길버트는 캔자스 시티 출신의 아름다운 플래퍼이자 앤서니 패치의 아내이다. 그녀는 "재즈 베이비"로 불리며,[2] 사치스러운 소비로 앤서니의 몰락에 기여한다.[3] 자기중심적인 성격은 아름다움과 이 특성이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게 만든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아내 젤다를 모델로 이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딸 스코티에게 보낸 편지에서 "글로리아는 당신의 어머니보다 훨씬 더 사소하고 천박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그녀가 사용했던 특정한 표현 외에는 어떤 유사점도 말할 수 없다"라고 설명하며 차이점을 밝혔다. 또한 피츠제럴드는 "물론 나는 우리의 초창기 결혼 생활의 많은 주변 사건들을 사용했다. 하지만 강조점은 완전히 달랐다. 우리는 앤서니와 글로리아보다 훨씬 더 좋은 시간을 보냈다"라고 덧붙였다.

2. 3. 리처드 "딕" 캐러멜

앤서니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글로리아의 사촌으로, 작가 지망생이다. 앤서니와 글로리아를 연결해 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소설 《악마를 사랑하는 자》를 출판하여 한동안 명성을 얻었다.

2. 4. 조셉 블로크먼

글로리아에게 구애하는 유대인 영화 제작자이다.[2] 글로리아와 블로크먼은 글로리아가 앤서니를 만났을 때 싹트는 관계를 가졌다. 그는 글로리아와 계속 친구로 지내며 앤서니에게 불륜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한다.[2]

2. 5. 도로시 "닷" 레이크로프트

앤서니가 군 훈련 중에 관계를 맺는 하층 계급의 남부 여성이다.[2] 그녀는 자신의 삶을 함께 나눌 사람을 찾는 길 잃은 영혼이다. 앤서니가 결혼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사랑에 빠지고, 글로리아와 앤서니 사이에 문제를 일으키며, 앤서니의 정신 건강 악화를 촉진한다.[2]

3. 줄거리

F. 스콧 피츠제럴드(왼쪽)와 그의 아내 젤다 세이어(오른쪽)는 1919년에서 1920년 사이에 촬영되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피츠제럴드 부부의 결혼 초기의 많은 정황적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2]

1913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로마에서 돌아온 25세 앤서니 패치는 뉴욕시에 살면서 할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예정이었다. 그는 친구 리처드 "딕" 캐러멜의 사촌인 플래퍼 글로리아 길버트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결혼 초기, 앤서니와 글로리아는 행복했지만, 서로의 이기심 때문에 결혼 생활은 파탄난다. 앤서니의 할아버지는 그의 방탕한 생활을 알고 상속을 취소한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앤서니는 글로리아와 재회하지만, 유산 상속 후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글로리아는 아름다움을 잃는다. 부유해졌지만, 부부는 도덕적, 육체적으로 파멸한다.

앤서니는 자신의 삶이 정당하다고 믿으며, 유산은 자신의 성격 덕분이라고 말한다.[2]

3. 1. 만남과 결혼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왼쪽)와 그의 아내 젤다 세이어(오른쪽)는 1919년에서 1920년 사이에 촬영되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피츠제럴드 부부의 결혼 초기의 많은 정황적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2]

1913년, 앤서니 패치는 25세의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으로 최근 로마에서 돌아와 뉴욕시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죽어가는 할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을 유력한 상속자였다. 앤서니는 친구 리처드 "딕" 캐러멜을 통해 딕의 사촌인 아름다운 플래퍼이자 "재즈 베이비"인 글로리아 길버트를 만난다.[2] 앤서니는 그녀에게 구애하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에 빠진다. 글로리아는 황홀경에 젖어 "어머니는 두 영혼이 때로는 함께 창조된다고 말씀하셨어요. 태어나기 전부터 사랑에 빠져서 말이에요."라고 외친다.[2] 격정적인 구애 끝에 앤서니와 글로리아는 결혼한다.

3. 2. 결혼 생활의 파탄

: 1919년에서 1920년 사이에 촬영된 사진으로, 이 소설의 줄거리는 피츠제럴드 부부의 결혼 초기의 많은 정황적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2]

1913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25세의 앤서니 패치는 로마에서 돌아와 뉴욕시에 거주하며, 할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을 유력한 상속자였다. 앤서니는 친구 리처드 "딕" 캐러멜을 통해 그의 사촌이자 아름다운 플래퍼이자 "재즈 베이비"인 글로리아 길버트를 만난다. 앤서니는 그녀에게 구애를 시작하고,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결혼 후 처음 3년 동안 앤서니와 글로리아는 서로에게 헌신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나, 서로의 이기적인 태도에 맞서면서 결혼 생활의 행복은 사라진다. 서로에 대한 열정이 식자, 그들은 서로의 차이점이 좋은 점보다 해로운 점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에게 충족되지 않은 희망을 남긴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망한 부부는 쾌락주의적이고 냉소적인 방탕아가 된다.

앤서니의 할아버지가 그의 방탕한 생활을 알게 되자, 앤서니를 상속에서 제외한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앤서니는 미국 원정군에 복무하고, 글로리아는 혼자 집에 남는다. 앤서니는 군대 훈련 중 도트 레이크로프트와 불륜을 저지른다.[2] 연합국이 1918년 11월 독일 제국과 휴전 협정을 체결한 후, 앤서니는 뉴욕시로 돌아와 글로리아와 재회한다. 할아버지의 유산 쟁탈전이 끝나면서 앤서니는 유산을 얻지만, 희망 없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아내는 아름다움을 잃었다. 부부는 이제 부유하지만 도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파멸되었다.

3. 3. 유산 상속과 몰락

1913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로마에서 돌아온 25세의 앤서니 패치는 뉴욕시에 거주하며 죽어가는 할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을 유력한 상속자였다.[2] 그는 친구 리처드 "딕" 캐러멜을 통해 그의 사촌이자 아름다운 플래퍼인 글로리아 길버트를 만난다. 앤서니는 그녀에게 구애하고,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결혼 후 처음 3년 동안 앤서니와 글로리아는 행복했지만, 서로의 이기적인 태도에 맞서면서 결혼 생활은 불행으로 변한다. 서로에 대한 열정이 식자, 그들은 서로의 차이점이 해로운 점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에게 충족되지 않은 희망을 남긴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망한 부부는 쾌락주의적이고 냉소적인 방탕아가 된다.

앤서니의 할아버지는 그의 방탕한 생활을 알고 상속에서 제외한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앤서니는 미국 원정군에서 복무하고, 글로리아는 혼자 집에 남는다. 앤서니는 군대 훈련 중 도트 레이크로프트와 불륜을 저지른다.[2] 연합국이 1918년 11월 독일 제국과 휴전 협정을 체결한 후, 앤서니는 뉴욕시로 돌아와 글로리아와 재회한다. 할아버지의 유산 쟁탈전이 끝나면서 앤서니는 유산을 얻지만, 그는 이제 희망 없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그의 아내는 아름다움을 잃었다. 부부는 이제 부유하지만 도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파멸되었다.

마지막에 앤서니 패치는 할아버지의 말을 되풀이하며, 유산으로 물려받은 재산은 단순한 상황이 아닌 그의 성격의 결과라고 묘사한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사람들은 그에게 굴복하고, 평범함에 굴복하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의 방식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굳건히 버텼다... '내가 그들에게 보여줬어... 힘든 싸움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해냈어!'"[2]

4. 집필 및 출판 과정

F. 스콧 피츠제럴드는 1920년 8월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에서 ''자비 없는 아름다운 여인'', ''로켓의 비행'' 등 여러 가제를 가진 두 번째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4] 그는 찰스 스크리브너 2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소설이 창의적인 영감 부족과 아름다운 여성과의 결혼 후 "방탕의 여울에 난파된" 예술가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4]

1921년에서 1922년 사이 겨울과 봄에 걸쳐, 피츠제럴드는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의 다양한 초고를 쓰고 다시 썼다. 그는 앤서니 패치의 망가진 캐릭터는 자신을, 글로리아 패치는 아내의 냉담한 이기심을 모델로 했다고 밝혔다. 이 소설은 작가의 첫 소설 ''낙원의 이편''의 성공 이후 피츠제럴드 부부의 격동적인 결혼 초기를 바탕으로, "사물의 유쾌한 부조리", "사물의 낭만적인 쓴맛", "사물의 아이러니한 비극"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구상되었다.[4] 최종 형태는 각각 3개의 장으로 구성된 제목 없는 "책"으로 구성되었다.[4]

피츠제럴드는 친구 에드먼드 윌슨과 편집자 맥스 퍼킨스의 편집 제안을 바탕으로 소설을 수정했다.[4] 퍼킨스는 피츠제럴드의 문학적 기술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고 칭찬했다.[4] 피츠제럴드는 이 소설을 셰인 레슬리, 조지 진 네이선, 그리고 퍼킨스에게 "많은 문학적 도움과 격려에 감사드린다"라며 헌정했다.[4]

소설을 마무리하는 동안, 피츠제럴드는 아내와 유럽 여행을 떠났고,[4] 그의 에이전트 해럴드 오버는 ''메트로폴리탄 매거진''에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의 연재권을 7000USD에 판매했다.[4] ''메트로폴리탄''은 1921년 9월부터 1922년 3월까지 이 소설을 연재했다.[4] 찰스 스크리브너의 아들들에서 책 형태로 출판되기 직전, 젤다 피츠제럴드는 칵테일 잔에 앉아 있는 나체의 플래퍼를 묘사한 남편 소설의 더스트 재킷을 구상하는 스케치를 그렸으나,[4] 출판사는 윌리엄 E. 힐의 삽화를 더스트 재킷에 사용했다.[4] 1922년 3월 4일, 스크리브너는 약 20,000부의 초판을 출판했고, 소설은 추가 인쇄를 거쳐 50,000부까지 판매되었다.[4]

4. 1. 시대적 배경

1920년 3월,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데뷔 소설 ''낙원의 이편''(This Side of Paradise)의 성공으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4] 이로 인해 피츠제럴드는 단편 소설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5] 재정적 전망이 좋아지자 약혼녀 젤다 세이어에게 결혼을 설득했다.[6] 그해 4월 3일, 두 사람은 뉴욕 시의 세인트 패트릭 성당에서 간단한 결혼식을 올렸다.[7][9]

젤다 피츠제럴드가 남편의 소설 더스트 재킷을 구상한 스케치.


신혼 부부는 뉴욕 빌트모어 호텔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으며,[7][8] 피츠제럴드의 소설 성공만큼이나 그들의 거친 행동으로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스콧은 빌트모어 호텔 로비에서 물구나무를 섰고,[9][10] 젤다는 호텔 난간을 미끄러져 내려왔다. 몇 주 후, 호텔은 다른 손님들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떠나달라고 요청했다. 부부는 42번가 (맨해튼)의 코모도어 호텔로 이사하여 회전문에서 30분을 보내기도 했다. 작가 도로시 파커는 택시 지붕에서 그 부부를 처음 만났는데, "그들은 둘 다 햇빛에서 막 나온 것처럼 보였고, 그들의 젊음은 눈에 띄었다. 모두가 그를 만나고 싶어했다."라고 회상했다.

피츠제럴드의 행복은 재즈 시대의 이야기를 대중화한 재즈 시대의 사회적 흥분과 일치했다.[11] 그는 그 시대를 "돈이 가득한 거대한 주유소의 지원을 받으며 자체 동력으로 질주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피츠제럴드에게 그 시대는 미국인들이 지배적인 사회 규범에 환멸을 느끼고 자기 만족에 사로잡힌 도덕적으로 관대한 시대를 의미했다.[12] 이 쾌락주의 시대에, 밀주를 포함한 알코올[13]은 피츠제럴드 부부의 사교 생활에 불을 지폈고, 부부는 모든 외출에서 진과 과일 혼합물을 소비했다. 공개적으로 그들의 알코올 섭취는 파티에서 낮잠을 자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았지만, 사적으로는 격렬한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4. 2. 피츠제럴드 부부의 삶

F.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 세이어는 1919년에서 1920년 사이에 촬영되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피츠제럴드 부부의 결혼 초기의 많은 정황적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4]

1920년 3월, 데뷔 소설 ''낙원의 이편''(This Side of Paradise)의 성공으로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새로운 명성 덕분에 단편 소설에 대한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고, 재정적 전망이 개선되면서 약혼녀 젤다 세이어에게 그녀의 특권적인 생활 방식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득하여 결혼에 이르게 했다. 재약혼에도 불구하고, 피츠제럴드의 젤다에 대한 감정은 최저로 떨어졌고, 그는 친구에게 "그녀가 죽는 것은 신경 쓰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이 그녀와 결혼하는 것은 참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7] 1920년 4월 3일, 뉴욕 시의 세인트 패트릭 성당에서 간단한 결혼식을 올렸지만, 결혼 당시 피츠제럴드는 자신도 젤다도 서로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그들의 결혼 초기는 실망스러운 우정과 비슷했다.

뉴욕 시의 뉴욕 빌트모어 호텔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신혼 부부는 피츠제럴드의 소설 성공만큼이나 그들의 거친 행동으로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빌트모어에서 스콧은 로비에서 물구나무를 섰고, 젤다는 호텔 난간을 미끄러져 내려왔다.[15] 몇 주 후, 호텔은 다른 손님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떠나달라고 요청했다.[15] 부부는 두 블록 떨어진 42번가 (맨해튼)의 코모도어 호텔로 이사하여 회전문에서 30분을 보냈다.[16] 피츠제럴드는 뉴욕 시에서의 그들의 유치한 행동을 두 명의 "크고 밝고 탐험되지 않은 헛간의 어린아이들"에 비유했다.[17] 작가 도로시 파커는 택시 지붕에서 그 부부를 처음 만났다.[18] 파커는 "그들은 둘 다 햇빛에서 막 나온 것처럼 보였고, 그들의 젊음은 눈에 띄었다. 모두가 그를 만나고 싶어했다."라고 회상했다.[18]

피츠제럴드의 덧없는 행복은 그의 에세이와 소설에서 재즈 시대의 이야기를 대중화한 재즈 시대의 사회적 흥분과 일치했다.[19] 그는 그 시대를 "돈이 가득한 거대한 주유소의 지원을 받으며 자체 동력으로 질주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피츠제럴드의 눈에는 그 시대가 미국인들이 지배적인 사회 규범에 환멸을 느끼고 자기 만족에 사로잡힌 도덕적으로 관대한 시대를 나타냈다. 이 쾌락주의 시대에, 종종 밀주인 알코올은 피츠제럴드 부부의 사교 생활에 불을 지폈고,[20] 부부는 모든 외출에서 진과 과일 혼합물을 소비했다.[21] 공개적으로 그들의 알코올 섭취는 파티에서 낮잠을 자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았지만, 사적으로는 격렬한 말다툼으로 이어졌다.[20] 그들의 말다툼이 심해지면서 부부는 서로의 불륜을 비난했다. 그들은 친구들에게 그들의 결혼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22]

1921-22년 겨울과 봄에 걸쳐 피츠제럴드는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의 다양한 초고를 쓰고 다시 썼다. 그는 앤서니 패치의 망가진 캐릭터를 자신을 모델로 하고, 글로리아 패치를 - 그의 말에 따르면 - 아내의 냉담한 이기심을 모델로 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첫 번째 소설 ''낙원의 이편''의 성공 이후 피츠제럴드 부부의 격동적인 결혼 초기를 그려낸다.

4. 3. 출판 과정

1920년 3월,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데뷔 소설 ''낙원의 이편(This Side of Paradise)''의 성공으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4] 같은 해 8월,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에서 피츠제럴드는 두 번째 소설 집필에 착수했다.[4] 이 소설은 ''자비 없는 아름다운 여인'', ''로켓의 비행'' 등 여러 가제를 거쳤다.[4] 8월 12일, 피츠제럴드는 찰스 스크리브너 2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설의 줄거리가 창의적인 영감 부족과 아름다운 여성과의 결혼 후 "방탕의 여울에 난파된" 예술가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4]

1921-22년 겨울과 봄에 걸쳐 피츠제럴드는 ''아름답고도 저주받은 사람들''의 다양한 초고를 쓰고 수정했다.[4] 그는 친구 에드먼드 윌슨과 편집자 맥스 퍼킨스의 제안을 바탕으로 소설을 수정했으며, 퍼킨스는 피츠제럴드의 문학적 기술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고 칭찬했다.[4] 피츠제럴드는 이 소설을 셰인 레슬리, 조지 진 네이선, 그리고 퍼킨스에게 "많은 문학적 도움과 격려에 감사드린다"라며 헌정했다.[4]

소설을 마무리하는 동안 피츠제럴드는 아내와 함께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고,[4] 그의 에이전트 해럴드 오버는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의 연재권을 ''메트로폴리탄 매거진''에 7000USD에 판매했다.[4] ''메트로폴리탄''은 1921년 9월부터 1922년 3월까지 이 소설을 연재했다.[4] 찰스 스크리브너의 아들들에서 책 형태로 출판되기 직전, 젤다 피츠제럴드는 남편 소설의 더스트 재킷을 구상하는 스케치를 그렸는데, 칵테일 잔에 앉아 있는 나체의 플래퍼를 묘사했다.[4] 그러나 출판사는 윌리엄 E. 힐의 삽화를 더스트 재킷에 사용했다.[4] 1922년 3월 4일, 스크리브너는 약 20,000부의 초판을 출판했고, 소설은 추가 인쇄를 거쳐 50,000부까지 판매되었다.[4]

1922년 4월, 출판 한 달 후, 스콧의 친구이자 코미디언인 버튼 라스코는 홍보 책략으로 젤다 피츠제럴드가 《뉴욕 트리뷴》에 이 책에 대한 풍자적인 서평을 써야 한다고 제안했다.[4] 젤다는 소설 초고를 꼼꼼히 교정했지만,[16] 라스코는 젤다에게 서평에서 처음 읽는 척하며 선정적인 "부분"을 넣어 논평을 유도하고 판매량을 늘리도록 지시했다.[4]

젤다는 라스코의 지시에 따라 서평 제목을 "남편 친구의 최신작"이라고 붙이고, 스콧의 "탐욕스럽고 자기중심적인" 배우자인 척하며,[4] 남편 소설의 상업적 성공으로 "42번가의 한 상점에서 단돈 300USD에 가장 귀여운 금색 드레스를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농담했다.[4] 또한 젤다는 "어느 페이지에서 내 옛 일기 내용의 일부와, 많이 편집되었지만 어렴풋이 익숙한 편지 조각들을 발견했다. 피츠제럴드 씨는 표절은 집에서 시작한다고 믿는 것 같다"고 썼다.[17][18][19][20]

이러한 홍보 전략으로 인해 젤다가 사망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그녀가 스콧의 소설을 공동 집필했다는 추측이 나왔지만,[4] 대부분의 피츠제럴드 학자들은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는 데 동의한다.[21] 피츠제럴드는 젤다의 허락을 받아 그녀의 일기 "한 페이지"와 편지 "조각"을 사용했지만,[22] 학자 매튜 J. 브루콜리는 "피츠제럴드의 현존하는 원고 중 그녀의 손길이 나타나는 것은 없다"고 말하며 젤다가 공동 참여를 주장하지 않았다고 밝혔다.[4] 학자 메리 조 테이트 역시 "피츠제럴드는 그녀의 일기와 편지 조각을 사용했지만, 그녀는 공동 작업자가 아니었다"고 동의한다.[4]

5. 비평 및 분석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두 번째 소설 ''아름다운 것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나타났다. 초기에는 낙원의 이편의 가벼움에서 벗어난 비관적인 분위기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뉴욕 타임스의 루이즈 필드와 패니 부처는 이러한 비관주의를 지적했다.[2][3]

반면, 폴 로젠펠드와 H. L. 멩켄 등은 피츠제럴드의 문체와 구성이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로젠펠드는 소설의 특정 구절이 D. H. 로렌스에 비견될 정도라고 평했고,[15] 멩켄은 "진지한 목적과 기술의 징후가 백 개나 있다"며 피츠제럴드가 성숙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4] 존 V. A. 위버와 멩켄은 피츠제럴드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그의 미래를 밝게 전망했다. 위버는 피츠제럴드가 미국 문학의 대표 작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고,[5] 멩켄은 세 번째 작품에서 더 큰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예상했다.[6]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학자들은 ''아름다운 것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을 피츠제럴드의 상대적으로 약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하게 되었다.[7] 피츠제럴드 자신도 아내 젤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소설의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8]

비평가들은 이 소설을 도덕 이야기, 사랑, 돈, 타락에 대한 성찰, 사회 다큐멘터리 등으로 분석하며, 등장인물들이 과거에 매몰되어 현재를 낭비하는 경향에 주목했다. 이러한 주제는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구절처럼 피츠제럴드의 후기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제임스 L. W. 웨스트 3세는 이 소설이 '소명'의 문제, 즉 '할 일이 없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룬다고 보았다.[9] 웨스트는 피츠제럴드가 남녀 모두에게 의미 있는 역할의 필요성을 인식했다고 설명한다.[10] 글로리아는 남편을 얻는 것 외에 다른 소명이 없는 여성으로, 안소니는 유산을 기다리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인물로 그려진다.[11]

에드먼드 윌슨은 "작가가 의도했을지도 모르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에는 더 심오한 진실이 담겨 있다"고 평했다.[1] 그는 등장인물들의 광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책에서 가장 이성적인 사람들처럼 보이며, 조직화된 사회를 잊고 순간의 재즈를 위해 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진다고 분석했다.

5. 1. 문학적 평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두 번째 소설 ''아름답고도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이전 소설 ''낙원의 이편''의 대학 교양 소설 형식을 벗어나 토마스 하디의 문학적 사실주의와 비슷한 "아이러니-비관적" 소설을 썼다.[15] ''낙원의 이편''의 가벼운 분위기를 기대했던 많은 평론가들은 가차없는 비관주의에 놀랐다.[16] ''뉴욕 타임스'' 평론가 루이즈 필드는 이 소설이 피츠제럴드의 재능은 있지만 지나치게 비관적임을 보여준다고 했다.[17] 패니 부처는 피츠제럴드가 ''낙원의 이편''의 경쾌함을 "현실의 쓴 찌꺼기"를 파고드는 우울함으로 바꿨다고 비판했다.[18]

일부 평론가들은 피츠제럴드의 문체와 구성이 발전했음을 감지했다.[19] ''낙원의 이편''이 세련되지 않은 문체와 혼란스러운 구조를 보인 반면, ''아름답고도 저주받은 사람들''은 뛰어난 형식과 구성, 깨어난 문학적 의식을 보여주었다.[20] 폴 로젠펠드는 소설 속 특정 구절들이 D. H. 로렌스와 견줄 만하다고 했다.[15] H. L. 멩켄은 ''더 스마트 세트'' 리뷰에서 "진지한 목적과 기술의 징후가 백 개나 있다. 결점에서도 노력한 증거가 있다. 피츠제럴드는 ''신동''이기를 그만두고 성숙해지기 시작한다."라고 썼다.[21]

평론가 존 V. A. 위버 (왼쪽)와 H. L. 멩켄은 ''아름답고도 저주받은 사람들''을 칭찬했다. 위버는 피츠제럴드가 미국 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낙원의 이편''보다 문체와 구성이 개선되었다는 평도 있었지만, 획기적이지 않다는 평가도 있었다.[22] 독창성이 넘친다는 찬사를 받은 ''낙원의 이편''과 달리, 패니 부처는 ''아름답고도 저주받은 사람들''을 더 전통적인 작품으로 보았다. 부처는 "피츠제럴드는 1920년에 밝은 미래를 가지고 있었지만, 1923년에는 그 뒤에 있을 것"을 걱정했다.

존 V. A. 위버와 H. L. 멩켄은 피츠제럴드의 문학적 형식과 구성의 개선이 미래에 대한 좋은 징조라고 보았다. 위버는 피츠제럴드가 미국 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으며, 멩켄은 세 번째 작품에서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1세기 후, 많은 피츠제럴드 학자들은 ''아름답고도 저주받은 사람들''을 약한 소설 중 하나로 간주한다. 피츠제럴드는 아내 젤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름다운 것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이 성숙하게 쓰여진 책이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망쳤다."라며 소설의 품질에 동의했다.

비평가들은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을 도덕 이야기, 사랑, 돈, 타락에 대한 성찰, 사회 다큐멘터리로 분석했다. 등장인물들이 과거에 과도하게 몰두하여 현재를 소모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과거에 대한 몰두는 피츠제럴드의 후속 작품들에서도 나타나는데,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구절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며, 조류에 거슬러 배를 저어간다"에서 잘 요약되어 있다. 이 구절은 메릴랜드주 세인트 메리 묘지에 있는 피츠제럴드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

제임스 L. W. 웨스트 3세는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이 '소명'의 문제, 즉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때,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진다고 보았다. 웨스트는 "피츠제럴드는 소명의 문제를 주로 남성에게 적용했지만, 여성 역시 삶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설명한다. 글로리아는 남편을 잡는 것 외에는 소명이 없는 여성으로 제시된다. 안소니와 결혼 후, 글로리아의 유일한 소명은 방종과 나태함이고, 남편의 유일한 소명은 유산을 기다리는 것이며, 그동안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5. 2. 주제 분석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두 번째 소설 ''아름다운 것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토마스 하디의 문학적 사실주의와 더 유사한 "아이러니-비관적" 소설을 선보였다.[15] ''낙원의 이편''의 유쾌함을 기대했던 많은 평론가들은 이 소설의 비관주의에 놀라움을 표했다.[16] 뉴욕 타임스 평론가 루이즈 필드는 피츠제럴드가 재능은 있지만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평가했다.[17] 패니 부처 역시 ''낙원의 이편''의 경쾌함이 "현실의 쓴 찌꺼기"를 파고드는 우울함으로 바뀌었다고 비판했다.[18]

그러나 일부 예리한 평론가들은 피츠제럴드의 문체와 구조가 이전보다 발전했음을 감지했다.[19] ''낙원의 이편''이 세련되지 못한 문체와 혼란스러운 구조를 보인 반면, ''아름다운 것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은 향상된 구성과 더불어 깨어난 문학적 의식을 보여주었다.[20] 폴 로젠펠드는 이 소설의 특정 구절들이 D. H. 로렌스의 작품과 견줄 만한 예술성을 지녔다고 언급했다.[15] H. L. 멩켄은 ''더 스마트 세트''에 기고한 리뷰에서 "진지한 목적과 의심할 여지 없는 기술의 징후가 백 개나 나타난다"고 호평했다.[21]

평론가 존 V. A. 위버(왼쪽)와 H. L. 멩켄은 모두 ''아름다운 것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위버는 피츠제럴드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문체와 구조의 개선을 칭찬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아름다운 것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이 획기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존재했다.[22] 패니 부처는 이 소설을 전통적인 작품으로 평가하며, "피츠제럴드는 1920년에는 밝은 미래를 가졌지만, 더 나은 작품을 쓰지 않는다면 1923년에는 뒤처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우려와 대조적으로, 존 V. A. 위버와 H. L. 멩켄은 피츠제럴드의 문학적 형태와 구성이 크게 발전했음을 주목하며 그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위버는 피츠제럴드가 성숙하면서 미국 문학의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멩켄은 그의 세 번째 작품에서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1세기 이상이 지난 후, 많은 피츠제럴드 연구자들은 ''아름다운 것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을 그의 약한 소설 중 하나로 평가한다. 피츠제럴드 자신도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아내 젤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름다운 것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이 좀 더 성숙하게 쓰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 내용은 모두 진실이었기 때문이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비평가들은 이 소설을 도덕 이야기, 사랑, 돈, 타락에 대한 성찰, 그리고 사회 다큐멘터리로 분석해왔다. 이러한 분석은 등장인물들이 과거에 과도하게 몰두하여 현재를 소모하는 경향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대한 몰두는 피츠제럴드의 후속 작품에서도 반복되는 주제이며, 1925년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구절인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며, 조류에 거슬러 배를 저어간다"에 잘 요약되어 있다.

피츠제럴드 연구가 제임스 L. W. 웨스트 3세에 따르면, ''아름다운 것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은 '소명'의 문제, 즉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때,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룬다. 웨스트는 "피츠제럴드는 소명의 문제를 주로 남성 등장인물에게 적용했지만, 여성 역시 삶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피츠제럴드는 글로리아를 남편을 잡는 것 외에는 아무런 소명이 없는 여성으로 묘사한다. 안소니와 결혼한 후, 글로리아는 방종과 나태함에 빠져들고, 남편은 유산을 기다리며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5. 3. 사회적 의미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두 번째 소설인 ''아름다운 것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토마스 하디의 문학적 사실주의와 유사한 "아이러니-비관적" 소설을 만들었다.[12] ''낙원의 이편''의 유쾌함을 기대했던 많은 평론가들은 두 번째 소설의 비관주의에 놀랐다.[13]

두 번째 작품이 출판되면서, 일부 평론가들은 피츠제럴드의 문체와 구조의 진화를 감지했다.[14] 폴 로젠펠드는 피츠제럴드의 두 번째 소설의 특정 구절이 예술성에서 D. H. 로렌스와 경쟁한다고 언급했다.[15] 평론가 H. L. 멩켄은 "그 안에는 진지한 목적과 의심할 여지 없는 기술의 징후가 백 개나 있다. 결점에서도 열심히 노력한 증거가 있다. 피츠제럴드는 ''신동''이기를 그만두고 성숙해지기 시작한다."라고 썼다.[16]

평론가 존 V. A. 위버와 H. L. 멩켄은 피츠제럴드의 문학적 형태와 구성의 개선이 그의 미래에 대한 좋은 전망을 예고한다고 평가했다. 위버는 피츠제럴드가 미국 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고,[17][18] 멩켄은 피츠제럴드가 그의 세 번째 작품에서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19]

1세기 이상이 지난 후, 많은 피츠제럴드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것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을 피츠제럴드의 약한 소설 중 하나로 간주한다.[20] 피츠제럴드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아내 젤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소설의 품질에 동의하며, "나는 ''아름다운 것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이 성숙하게 쓰여진 책이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진실이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21]

비평가들은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을 도덕 이야기, 사랑, 돈, 타락에 대한 성찰, 그리고 사회 다큐멘터리로 분석해 왔다. 이러한 분석은 종종 등장인물들이 과거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는 현재를 소모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 대한 몰두라는 주제는 피츠제럴드의 후속 작품들에서도 계속 나타나는데, 이는 1925년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구절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며, 조류에 거슬러 배를 저어간다"에서 가장 잘 요약되어 있다.[22]

피츠제럴드 연구가 제임스 L. W. 웨스트 3세에 따르면,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은 '소명'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때,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가?' 웨스트는 "피츠제럴드는 소명의 문제를 주로 남성 등장인물에게 적용했지만, 그는 여성들 역시 삶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피츠제럴드는 글로리아를 남편을 잡는 것 외에는 아무런 소명이 없는 여성으로 제시한다. 안소니와 결혼한 후, 글로리아의 유일한 소명은 방종과 나태함으로 빠져드는 것이고, 남편의 유일한 소명은 유산을 기다리는 것이며, 그 기간 동안 그는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6. 각색

1922년 영화 각색의 로비 카드. 현재는 유실 영화이다.


1922년 윌리엄 A. 사이터가 감독하고 케네스 할란이 앤서니 패치 역을, 마리 프레보스트가 글로리아 역을 맡은 영화가 개봉했다.[1]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평론가들의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 영화를 "내 평생 본 영화 중 최악의 영화였다. 싸구려 같고, 저속하며, 조잡하고, 허술하다. 우리는 그것에 완전히 부끄러웠다."라며 혹평했다.[2]

참조

[1] 서적
[2] 서적
[3] 서적
[4] 서적
[5] 서적
[6] 서적
[7] 서적
[8] 서적
[9] 서적
[10] 서적
[11] 서적
[12] 서적
[13] 서적
[14] 서적
[15] 서적
[16] 서적
[17] 서적
[18] 서적
[19] 서적
[20] 서적
[21] 서적
[22]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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