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트 바이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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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은 1834년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1914년 프라이부르크에서 사망한 독일의 생물학자이다. 그는 괴팅겐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로스토크 시립 병원에서 조교로 일했으며, 1863년부터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비교해부학 및 동물학 교수로 재직했다. 바이스만은 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하며, 획득 형질의 유전을 부정하고 생식질 연속설을 주장했다. 쥐의 꼬리를 여러 세대에 걸쳐 잘라도 꼬리가 짧아지지 않는다는 실험을 통해 용불용설을 비판했으며, 1883년 생식세포를 통해서만 유전이 일어나고 체세포는 유전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생식질설을 제창했다. 그는 또한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을 옹호했으며, 다양한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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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트 바이스만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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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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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834년 1월 17일 |
출생지 | [[파일:Hissflagge der Stadt Frankfurt am Main.svg|25px]]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
사망일 | 1914년 11월 5일 |
사망지 | 프라이부르크 임 브라이스가우 |
국적 | (→→) |
분야 | 초기 유전학, 발생생물학, 진화생물학 |
근무 기관 | 빈 박물관, 기센 대학교,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
모교 | 괴팅겐 대학교 |
알려진 업적 | 생식질론 (개체 발생과 진화의 구별) |
수상 | 다윈 메달 (1908년), 다윈-월리스 메달 (1908년) |
기타 정보 |
2. 생애
바이스만은 1834년 1월 1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요한 콘라드 바이스만과 지방의회 의원이자 시장을 역임한 폰 스타데 가문의 딸 엘리제 사이에서 태어났다.[18] 19세기 전형적인 생물학 교육을 받았고 야콥 베커에게서 회화를 배우기도 하였다.
괴팅겐 대학교 졸업 후 로스토크 시립 병원에서 조수로 일했다. 이후 빈으로 유학을 떠나 의사 자격을 취득했다. 1859년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이 일어나자 군의관으로 종군했으며, 휴가 기간에는 북이탈리아와 티롤 지방을 여행했다.
전쟁 후 파리에서 안식년을 보낸 뒤 기센 대학교에서 루돌프 로이카르트와 함께 연구했다. 1861년부터 1863년까지 추방된 오스트리아 대공 슈테판의 개인 의사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다. 1863년 비교해부학 및 동물학 사강사가 되었고, 1866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교수, 1873년부터 1911년까지 동물학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1912년 은퇴 후 1914년 프라이부르크에서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바이스만은 1834년 1월 1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요한 콘라드 바이스만과 지방의회 의원이자 시장을 역임한 폰 스타데 가문의 딸 엘리제 사이에서 태어났다.[18] 19세기 부르주아 교육을 받은 그는 4세부터 음악 수업을, 14세부터는 슈테델 미술관에서 야콥 베커에게 드로잉과 회화 수업을 받았다. 피아노 선생님은 열렬한 나비 수집가여서 그에게 성충과 애벌레 수집을 소개했다. 그러나 자연 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비용 문제와 제한적인 직업 전망 때문에 어려웠다. 가족의 친구인 화학자 프리드리히 뵐러가 의학 공부를 권했고, 바이스만은 어머니의 상속 재산으로 괴팅겐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1856년 졸업 후 인체 내 히푸르산 합성에 관한 논문을 썼다.2. 2. 학문적 경력
바이스만은 대학교 졸업 직후 로스토크의 시립 병원에서 조교로 일했다. 초식동물의 히푸르산에 관한 논문과 발트 해의 염분 함량에 관한 논문으로 두 개의 상을 받았다. 이후 빈의 박물관과 병원을 방문하고, 이탈리아(1859년)와 파리(1860년)를 방문했다. 1861년부터 1863년까지 샤움부르크 성에서 추방된 오스트리아 대공 슈테판 대공의 개인 주치의로 일했다.[7]1859년 이탈리아 통일 전쟁 동안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북부 이탈리아와 티롤 백국을 여행했다. 파리에서 안식년을 보낸 후 기센 대학교에서 루돌프 로이카르트와 함께 연구했다.
1863년 비교 해부학 및 동물학 사강사가 되었고, 1866년 특별 교수, 1873년부터 1912년까지 알베르트 루드비히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정교수, 동물학과의 초대 학과장 및 동물학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1912년에 은퇴했다.[8]
2. 3. 가족
1867년, 바이스만은 마리 도로테아 그루버와 결혼했다.[18]아들 율리우스 바이스만 (1879–1950)은 작곡가였다.[18]
3. 진화 이론 연구
바이스만은 진화론 연구 초기에는 기독교 창조론을 대안으로 고려했다. 그의 저서 ''Über die Berechtigung der Darwin'schen Theorie'' (''다윈 이론의 정당성에 관하여'')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을 비교하며, 많은 생물학적 사실들이 진화론으로는 자연스럽게 설명되지만, 창조의 결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16]
이후 바이스만은 천문학의 기본 가정(지동설 등)과 마찬가지로 진화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는 유전 메커니즘과 진화에서의 역할에 대해 세 가지 시기로 구분되는 입장을 보였다.
처음에 바이스만은 찰스 다윈을 비롯한 19세기 과학자들처럼 종의 개체에서 나타나는 변이가 "털 변이(Sports, 돌발적인 개체 변이)"의 유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876년 저작에서 그는 종의 변화가 환경 변화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보았다. "만약 모든 변이가 외부 상태에 대한 반응이라면, 발생 계통으로부터의 유전의 이탈로서, 진화는 환경의 변화 없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는데, 이는 현대 진화 개념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는 기관의 용불용설이라는 고전적인 라마르크주의적 메타포를 사용했다.[16]
종분화에 대한 논의에서 바이스만은 지리적 격리가 불필요하며 동소적 종분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체 변이와 지리적 변종을 구분하지 않아 다형성(성적 이형 포함)을 동소적 종분화의 근거로 보았다. 생기론과 정향 진화설은 경험적으로 증명 불가능하다며 반대했다.[16]
바이스만은 1883년 "유전에 관하여" 강연에서 획득 형질을 처음으로 부정했다. 그는 창조 대 진화 논문처럼 두 이론으로 개별 사례를 설명하려 했다. 예를 들어 개미의 불임 카스트 존재, 일부 곤충의 번식처럼 일생에 한 번뿐인 행동은 획득 형질의 유전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생식질 이론으로는 설명 가능하다고 보았다.[16]
바이스만은 다윈의 용불용 비유(가축 물새의 퇴화된 날개와 강한 다리)를 들어 자연 선택으로 설명 가능하다 했다. 그러나 뱀의 사지 퇴화, 동굴어의 눈 퇴화 등은 용불용설을 지지하는 듯해 동시대인을 완전히 설득하지 못했다.[16]
이 시기 바이스만은 강력한 선택 만능론자가 되었다. 그는 생물의 모든 특징이 자연 선택으로 형성된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중립적 형태가 존재함을 인정했다. 또한 적응이 완전하지 않고 다양한 제약이 있다고 보았다.[16]
바이스만은 도약설을 비판했다. 생물은 많은 공적응을 가지며 조화롭게 존재하므로, 갑작스러운 변천은 종을 존속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배수화를 제외하면 현대 관점과 거의 같다. 멘델의 재발견 이후 돌연변이가 도약설 근거로 여겨진 시기에도 도약설에 반대했다.[16]
바이스만은 성게 알 발생 연구를 통해 적도 분열과 감수 분열을 관찰, 명명했다. 그의 생식질설은 다세포 생물이 유전 정보를 가진 생식 세포와 신체 기능을 수행하는 체세포로 구성되며, 생식 세포는 환경, 학습, 형태 변화에 영향받지 않고 이 정보는 매 세대마다 소실된다고 주장한다. 이 개념은 조지 로마네스의 ''Weismannism에 대한 고찰'' 등에서 ''바이스만주의''로 불렸다.[1] 이 아이디어는 20세기 초 그레고어 멘델 연구 재발견(멘델의 유전 법칙)으로 명확해졌다.[16]
창조론자들은 흔적 기관이 '상칭성' 때문이거나 신의 계획 완성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바이스만은 왕뱀은 골반과 뒷다리뼈 흔적이 있지만 다른 뱀은 흔적조차 없는 사례로 '상칭성' 주장을 비판했다. 그는 "창조론자 설명처럼 지구가 태양을,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것이 상칭성 유지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학계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27]
3. 1. 용불용설 비판
1889년, 바이스만은 장바티스트 라마르크가 제안하고 찰스 다윈도 일부 가능성을 인정한 용불용설을 부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다.[21] 그는 여러 세대에 걸쳐 쥐의 꼬리를 자르는 실험을 통해, 자식 세대의 꼬리가 짧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입증하여 용불용설을 부정하였다.[21]바이스만은 68마리의 흰쥐의 꼬리를 5세대에 걸쳐 반복적으로 제거하는 실험을 실시했으며, 그 결과 꼬리가 없거나 더 짧은 꼬리를 가진 쥐가 태어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그는 "5세대에 걸쳐 인위적으로 절단된 부모에게서 901마리의 새끼가 태어났지만, 이 기관(꼬리)에 대한 흔적 꼬리나 다른 기형의 사례는 단 하나도 없었다."라고 말했다.[12]
바이스만은 이 실험의 한계를 인식하고, 당시 동물이 절단을 유전한다는 주장이 많았기 때문에(꼬리를 잃은 고양이가 꼬리 없는 새끼를 많이 낳았다는 주장을 언급) 실험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또한 유대인이 포피 없이 태어났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는 이러한 주장은 부모가 실제로 절단되었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었으며, 수정된 새끼가 돌연변이 유전자의 결과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의 실험 목적은 '유전된 절단'에 대한 주장을 잠재우는 것이었다. 실험 결과는 바이스만의 생식질설과 일치했다.
바이스만의 실험은 획득형질 유전설에 대한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음을 보여주었지만, 개체의 주체성을 중시하는 라마르크주의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생식세포와 체세포, 개체 발생과 진화를 구별하는 바이스만의 아이디어는 종합설에 기초한 현재의 진화생물학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이스만의 연구는 멘델의 법칙의 재발견보다 먼저 이루어졌다. 바이스만은 멘델 유전학의 수용에 소극적이었지만, 다음 세대의 유전학자들은 즉시 바이스만과 멘델 양쪽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라마르크나 당시의 다른 라마르크주의자들이 요구한 것은 필요성이나 의지, 의지를 통해 얻어지는 특징의 유전과 환경이었다. 바이스만의 실험은 이들과는 관련이 없었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1944년 저서 『창조적 진화』에서 바이스만의 실험에 대해, 라마르키즘이 부정되지 않았음을 해설했다.
3. 2. 생식질 연속설
바이스만은 유성생식에 의한 대립형질의 다양성을 진화의 주된 원인으로 보았다. 그는 정자와 난자가 몸의 다른 부분과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생식질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영속성을 가지며 유전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생식질 연속설이라고 한다.[22]바이스만은 획득 형질의 유전을 부정하고, 오직 생식질과 자연선택만이 진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23] 그는 유성생식이 자연선택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며, 진화를 가속화시킨다고 주장했다. 그의 생식질 연속설은 오랫동안 진화 이론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진화가 방향성이 없는 변화라는 점이 증명되면서 반론에 부딪혔다.[25]
바이스만이 상정한 생식질은 발생의 원리를 설명하는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생식질에 신체의 다양한 형질을 결정하는 결정 인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생식 세포 분열에서는 이들이 모두 동등하게 상속되지만, 난할의 경우에는 이들이 점차적으로 분할되어 개별 세포는 그에 따라 분화의 가능성을 잃고, 최종적으로는 어떤 정해진 성질의 세포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가설은 실험 발생학의 발전을 뒷받침했지만, 다양한 실험 결과 이 가설은 부정되었다.
3. 3. 바이스만 장벽
바이스만이 제안한 개념으로, 배아 계통 세포가 경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체세포(신체)와 독립적으로 각 세대에 전달되는 정보를 포함한다는 내용이다. 이 개념은 '바이스만 장벽'이라고 불리게 되었다.[1] 이는 라마르크의 이론과 획득 형질의 유전에 대한 이론을 종식시키는 것으로 자주 인용된다. 라마르크는 노력이나 의지를 통해 획득한 형질이 유전된다고 주장했다.바이스만에 따르면, 다세포생물에서 유전은 생식세포(정자나 난자 등)에 의해서만 일어난다. 그가 소마 세포라고 부른 그 외의 체세포는 유전과 관계가 없다. 영향은 일방통행이다. 즉, 생식세포는 많은 생식세포와 체세포를 만들지만, 생식세포는 체세포가 그 생애에서 얻은 어떠한 변화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유전 정보는 체세포에서 생식세포로 전달되지 않으며, 따라서 다음 세대에 계승되지 않는다.[17]
바이스만은 68마리의 흰쥐의 꼬리를 5세대에 걸쳐 반복적으로 제거하는 실험을 실시했으며, 그 결과 꼬리가 없거나 더 짧은 꼬리를 가진 쥐가 태어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그는 "5세대에 걸쳐 인위적으로 절단된 부모에게서 901마리의 새끼가 태어났지만, 이 기관(꼬리)에 대한 흔적 꼬리나 다른 기형의 사례는 단 하나도 없었다."라고 말했다.[12] 바이스만은 이 실험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당시 동물이 절단을 유전한다는 주장이 많았기 때문에(꼬리를 잃은 고양이가 꼬리 없는 새끼를 많이 낳았다는 주장을 언급) 정확히 그 실험을 시작했다고 분명히 밝혔다. 또한 유대인이 포피 없이 태어났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는 이러한 주장은 부모가 실제로 절단되었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었으며, 수정된 새끼가 돌연변이 유전자의 결과였을 가능성을 완벽하게 배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의 실험 목적은 '유전된 절단'에 대한 주장을 잠재우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바이스만의 배아질 이론과 일치했다.
생식세포와 체세포, 개체 발생과 진화를 구별하는 바이스만의 아이디어는 종합설에 기초한 현재의 진화생물학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 4. 세포학 연구
에두아르트 스트라스부르거, 발터 플레밍, 하인리히 폰 발데이어와 에두아르 반 베네덴과 같은 19세기 후반 독일 생물학자들의 연구는 세포 분열 메커니즘(유사 분열, 감수 분열)을 이해하고, 진화에 대한 결과에 주목하는 데 기여했다.[11] 바이스만은 이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의 연구를 진행했다.바이스만은 성게 알의 발생학 연구를 통해 적도 분열과 감수 분열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세포 분열을 관찰하고, 그 용어를 직접 만들었다. 감수 분열은 1876년 오스카 헤르트비히에 의해 처음으로 성게 난자에서 발견되고 묘사되었으며, 1883년 반 베네덴에 의해 ''회충'' 난자 수준의 염색체에서 다시 묘사되었다. 바이스만은 1890년에 염색체의 수를 유지하려면 하나의 이배체 세포를 네 개의 반수체 세포로 변환하는 데 두 번의 세포 분열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번식과 유전에 대한 감수 분열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묘사했다.[11]
이러한 발견은 유사 분열, 감수 분열 및 염색체의 발견과 함께 역대 가장 중요한 100가지 과학적 발견 중 하나[9]이며, 세포 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10가지 발견 중 하나로 여겨진다.[10]
3. 5. 창조론과의 논쟁
창조론자들은 흔적 기관이 생물체의 형태를 일관성 있게 창조한 조물주의 '상칭성' 때문이라거나, 자연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한 신의 뜻이라고 주장하였다. 바이스만은 왕뱀은 골반과 뒷다리뼈가 흔적기관으로 남아있지만, 다른 뱀에게서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사례를 들어 이러한 '상칭성' 주장을 비판하였다. 그는 "창조론자의 설명처럼 어떤 천문학자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것과 상칭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달이 지구를 공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면 그는 학계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27]4. 사회진화론과 우생학
바이스만은 인종 차별을 자연선택에 의한 적자생존으로 파악하는 사회진화론을 진화 이론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는 "개인은 무의미하며 종이 전부이다", "종에 봉사하는 한 개인의 삶은 가치가 있다"와 같은 발언을 하였다.[28] 현대 의학의 진보로 인해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오히려 불리한 유전형질을 온존케 하는 반(反) 진화적 방향이라고 보았다. 1905년 독일인종협회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였다.[28] 그의 이러한 인종 차별적 주장과 우생학은 유럽과 미국의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영국의 로널드 피셔와 같은 집단유전학 학자나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로 생각하였던 미국의 사회학자 에드워드 A 로스와 같은 학자들이 바이스만의 영향을 받아 우생학을 지지하였다.[21]
오늘날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은 진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이비 과학으로 평가받는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저서 《인간에 대한 오해》에서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이 갖는 비과학성을 비판하였다.[29]
5. 수상 내역
연도 | 수상 내역 |
---|---|
1876년 | 코테니우스 메달 |
1906년 | 미국 철학회 국제 회원[13] |
1908년 | 런던 린네 학회 다윈-월리스 메달 |
1913년 |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 국제 회원[14] |
6. 주요 저서
- 1868년. Über die Berechtigung der Darwin'schen Theorie|다윈 이론의 정당성에 관하여de: 1868년 7월 8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학술 강연. 엥겔만, 라이프치히.
- 1872년. Über den Einfluß der Isolierung auf die Artbildung|종 분화에 대한 격리의 영향de. 엥겔만, 라이프치히.
- 1875년. [http://vlp.mpiwg-berlin.mpg.de/library/data/lit39349 Studien zur Descendenz-Theorie. I. Ueber den Saison-Dimorphismus der Schmetterlinge|하강 이론 연구. I. 나비의 계절적 이형성de]. 라이프치히.
- 1876년. [http://vlp.mpiwg-berlin.mpg.de/library/data/lit39350 Studien zur Descendenztheorie: II. Ueber die letzten Ursachen der Transmutationen|하강 이론 연구: II. 변환의 궁극적인 원인de]. 라이프치히.
- 1883년. Die Entstehung der Sexualzellen bei den Hydromedusen: Zugleich ein Beitrag zur Kenntniss des Baues und der Lebenserscheinungen dieser Gruppe|히드로메두사의 생식 세포 생성: 이 그룹의 구조와 생명 현상에 대한 기여de. 피셔, 예나.
- 1885년. Die Continuität des Keimplasmas als Grundlage einer Theorie der Vererbung|유전 이론의 기초로서의 생식질의 연속성de. 피셔, 예나.
- 1887년. Zur Frage nach der Vererbung erworbener Eigenschaften|획득 형질의 유전에 대한 질문de. In: ''Biol. Zbl.'' '''6''':33–48
- 1887년. Über die Zahl der Richtungskörper und über ihre Bedeutung für die Vererbung|방향체 수와 유전에 대한 의미de. 피셔, 예나.
- 1889년 [http://www.esp.org/books/weismann/essays/facsimile/ Essays upon Heredity|유전론에 관한 에세이영어] 옥스퍼드 클래런던 출판사 - 전체 온라인 텍스트][15]
- 1892년. Das Keimplasma: eine Theorie der Vererbung|생식질: 유전 이론de. 피셔, 예나.
- 1892년. [https://web.archive.org/web/20051127070220/http://caliban.mpiz-koeln.mpg.de/~stueber/weismann/icon_page_00000.html Aufsätze über Vererbung und angewandet biologische Fragen|유전 및 응용 생물학적 문제에 관한 논문de]. 피셔, 예나.
- 1893년. Die Allmacht der Naturzüchtung: eine Erwiderung an Herbert Spencer|자연 선택의 전능함: 허버트 스펜서에게 보내는 답변de. 예나. 번역되어 Contemporary Review, 1893년에 출판됨. The all-sufficiency of natural selection. A reply to Herbert Spencer|자연 선택의 완전성: 허버트 스펜서에게 보내는 답변영어. Contemporary Review 64: 309-338
- 1902년. Vorträge über Deszendenztheorie|하강 이론에 관한 강연de: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진행됨. 피셔, 예나. 2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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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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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penlibrary.[...]
The Open court publishing company
[2]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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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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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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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논문
August Weismann on Germ-Plasm Variation
2001
[5]
웹사이트
Essays upon heredity (1889) Oxford Clarendon Press – Full online text
http://www.esp.org/b[...]
2012-02-25
[6]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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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Weismann, Au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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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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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웹사이트
100 Greatest Discoveries – Carnegie Institution
http://carnegieinsti[...]
2007-09-27
[10]
웹사이트
The Science Channel :: 100 Greatest Discoveries: Biology
http://science.disco[...]
200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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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12]
서적
Handbook of Epigenetics: The New Molecular and Medical Genetics
https://books.google[...]
Elsevier Science
[13]
웹사이트
APS Member History
https://search.amphi[...]
2024-01-22
[14]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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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asonlin[...]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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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Review of ''Essays upon Heredity and kindred Biological Problems'' by August Weismann
https://babel.hathit[...]
1890-04
[16]
서적
進化論と生物哲学
東京化学同人
[17]
서적
Die Entstehung der Sexualzellen bei den Hydromedusen: Zugleich ein Beitrag zur Kenntniss des Baues und der Lebenserscheinungen dieser Grup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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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피지컬 클럽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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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d Queen
김영사
[23]
서적
생명과학
동국대학교출판부
[24]
서적
The Red Queen
김영사
[25]
서적
The Red Queen
김영사
[26]
논문
DNA secretion and gene-level selection in bacteria
[27]
서적
종의 기원 2
신원문화사
[28]
서적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
에코리브르
[29]
서적
인간에 대한 오해
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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