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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반잠수정 침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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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수 반잠수정 침투 사건은 1998년 12월 17일, 북한의 반잠수정이 대한민국 여수 해안에 침투한 사건이다. 북한의 해상 도발이 이어지던 시기에 발생했으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북한의 강성대국 정책이 대립하는 배경 속에서 일어났다. 대한민국 해군은 반잠수정을 추격하여 교전 끝에 격침시켰으며, 북한은 사건을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남북 관계의 긴장을 고조시켰고, 이듬해 제1연평해전의 원인이 되었다. 이후 반잠수정은 인양되어 전시관에 전시되었고, 한일 간 군사 공조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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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년 해양 사고 - 속초 잠수정 침투 사건
    속초 잠수정 침투 사건은 1998년 6월 북한 유고급 잠수정이 속초 동해 해상에서 발견되어 승무원 9명이 사망하고, 이후 여수 반잠수정 침투 사건으로 이어진 사건이다.
여수 반잠수정 침투 사건 - [전쟁]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분쟁여수 반잠수정 침투 사건
전체한반도 분쟁
날짜1998년 12월 17일 ~ 1998년 12월 18일
장소전라남도 여수 해안
결과대한민국 승리
교전 세력
지휘관
대한민국알 수 없음
북한알 수 없음
병력 규모
대한민국포항급 초계함 2척
북한반잠수정 1척
사상자 규모
대한민국없음
북한반잠수정 1척 침몰, 약 4명 사망

2. 배경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햇볕 정책으로 남북 협력 기조가 유지되었으나, 북한은 '강성대국' 구호 아래 탄도 미사일 또는 광명성 1호를 시험 발사하고, 여러 차례 해상 도발을 감행하여 긴장이 이어졌다.[10][15]

사건에 사용된 반잠수정은 내부에 GPS가 장착되었고, 외부에는 레이더파 흡수 특수 도료가 칠해져 있었다.[12]

2. 1. 햇볕정책과 강성대국

1998년 김대중 정부(국민의 정부) 출범(2월 25일) 이후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 회장의 소떼 방북(6월 16일), 현대 아산의 금강산 관광(11월 18일) 등 햇볕 정책에 의한 남북협력 기조가 유지되고 있었다.

한편 북한은 '강성대국' 구호 아래 8월 31일 탄도 미사일 또는 광명성 1호를 시험 발사하였고,[10] 그 전후로 속초 잠수정 침투 사건(6월 22일), 동해 무장공비 침투 사건(7월 12일), 강화 반잠수정 침투(11월 20일) 등 해상 도발이 이어졌다.[15]

김대중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은 남북 간의 협력과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보다 화해적인 접근 방식을 옹호했는데, 이는 햇볕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햇볕 정책은 북한이 해상 침투와 도발을 계속하면서 1998년 내내 긴장되었다.[1] 6월에는 북한 유고급 잠수함이 속초 인근 남한 해안에서 어망에 걸렸고, 11월에는 반잠수정이 강화시 인근 해역에서 다시 발견되었다.[2]

2. 2. 북한 반잠수정 (SP-10H)

SP-10 반잠수정의 개량형인 SP-10H는 1995년 조선인민군 해군에 실전 배치되었다. 길이는 12.8m, 폭은 2.96m이며, 최대 속도는 38노트이다.[3] 여수 침투 사건에서 인양된 선박은 GPS를 장착하고 표면에 레이더 흡수 특수 도료가 칠해져 있었다.[3] 승무원은 6~7명 탑승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3]

3. 사건 경위

1998년 12월 17일 23시 15분경 여수시 해안 초소의 관측병이 해안에서 2km 떨어진 지점에서 안테나와 해치가 있는 5톤 크기의 물체를 발견하고 보고했다. 이후 경비정 2척이 일대를 수색했으나, 해당 선박을 발견하지 못했다.

12월 18일 1시 40분경, 40~50노트의 속도로 공해로 이동하는 선박이 8km 해상에서 야간 장비에 포착되어 경비정이 추격했다. 4시 38분, 해군 3함대사령부 소속 포항급 초계함 PCC-782 광명함이 해당 선박이 반잠수정임을 확인했다. 4시 45분에는 수송기가 반잠수정을 발견하고 조명탄을 투하했으며, 무장한 전투기도 상공에서 대기했다.[13]

5시 35분경 거제도 남방 100km 해상에서 반잠수정이 속도를 늦추고 추격하는 참수리급 고속정에 기관총을 발사했다. 5시 48분, 포항급 초계함 남원함에서 76mm 함포와 40mm 함포로 반잠수정을 격침시켰다. 이후 시신 1구를 발견했으며, 함미 갑판으로 인양하여 확인 중 주머니에 넣어진 손에 수류탄이 연결된 것을 발견하여 해군 작전사령부가 있는 진해항으로 입항하여 폭발물을 제거했다.

3. 1. 발견 및 보고

1998년 12월 17일 23시 15분경 여수시 해안 초소의 관측병이 해안에서 약 2 km 떨어진 지점에서 안테나와 해치가 있는 5톤 크기의 물체를 발견하여 보고하였다.[13] 23시 30분경, 대한민국 해군 경비정 2척이 일대를 수색하였으나, 해당 선박을 발견하지 못했다.[13],[4]

3. 2. 추격

1998년 12월 18일 01시 40분경, 40~50노트 속도로 공해로 이동하는 선박이 레이더에 포착되어 대한민국 해군 경비정이 추격을 시작하였다.[13] 04시 38분경, 대한민국 해군 3함대사령부 소속 포항급 초계함 광명함(PCC-782)이 해당 선박이 반잠수정임을 확인하였다.[13] 04시 45분경, 대한민국 해군 수송기가 반잠수정을 발견하고 조명탄을 투하하였으며, 무장 전투기도 상공에서 대기하였다.[13]

3. 3. 교전 및 격침

05시 35분경 거제도 남방 100 km 해상에서 북한 반잠수정이 속도를 늦추고 추격하는 해군 참수리급 고속정에 기관총을 발사하며 교전이 시작되었다. 05시 48분경 해군 포항급 초계함 남원함이 76mm 함포와 40mm 함포를 발사하여 반잠수정을 격침시켰다.[4][5] 이후 대한민국 해군은 수류탄을 소지한 북한군 시신 1구를 인양하였다.

4. 원인 분석 및 논란

잠수정은 간첩 활동이나 그 지원을 위해 침투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14] 일각에서는 이러한 해상 도발이 북측이 '햇볕정책'을 시험하고 무력을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15]

4. 1. 침투 목적

북한 잠수정은 간첩 활동 또는 그 지원을 위해 침투한 것으로 추정되었다.[14] 일각에서는 이러한 해상 도발이 북측이 '햇볕정책'을 시험하고 무력을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15]

4. 2. 햇볕정책 시험 및 무력 과시

북한의 해상 도발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시험하고, 동시에 북한의 군사력을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15]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은 남북 간의 협력과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화해적인 접근 방식인 햇볕 정책을 옹호했다. 그러나 햇볕 정책은 북한이 해상 침투와 도발을 계속하면서 1998년 내내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1] 6월에는 북한 유고급 잠수함이 속초 인근 남한 해안에서 어망에 걸렸고, 11월에는 반잠수정이 강화시 인근 해역에서 다시 발견되었다.[2]

4. 3. 북한의 공식 입장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998년 12월 19일 이 사건이 남한의 조작극이며 북한과는 무관하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9]

> 남조선 괴뢰들은 12월 17일 오후 11시 15분께 전라남도 여수 앞바다에서 "잠수함"을 발견하고 교전을 벌여 "잠수함"을 격침시켰으며 잠수복을 입은 시체를 육지로 끌어냈다고 말했다. 그들은 또한 남한의 해안 지역 전체에 "진돗개 n.1"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적색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괴뢰들은 이 "사건"을 "북의 침투"라고 묘사하며 북쪽으로 책임을 전가했다.

>

> 이 광적인 반공 캠페인은 한국 서해 강화도 해안 인근에서 벌어진 "북의 선박 침투"라는 허위 사실이나 강화도 앞바다에서 갈매기 떼를 "뭔가 기이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과 같은 반공, 반북 캠페인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사건들은 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재 남조선은 미국 제국주의자들의 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쟁 움직임에 맞춰 북에 대한 전쟁을 일으킬 구실을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북 잠수함 침투 사건"이 바로 그 목적을 위해 꾸며진 소극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남조선의 지속적인 반공 캠페인과 북에 대한 비방을 수수방관할 수 없다. 그 캠페인은 아무도 설득할 수 없다. 우리는 도발자들이 쓴 잔을 마시도록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우리는 남조선에게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9]

5. 사후 처리 및 여파

잠수정이 침몰한 주변 해역 수색에서 무장한 시신 1구가 발견되었다.[16] 대한민국 해군은 1999년 1월 20일 격침 위치에서 450m 떨어진 수심 150m 해저에서 반잠수정을 발견했고,[17] 1월 22일에는 인양 작업 중 선미에서 기관총과 실탄을 소지한 안내원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를 추가로 발견했다. 이후 청해진함에 의해 1999년 3월 17일에 인양되었고, 내부에서 2구의 시신이 추가로 발견되었다.[18]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12월 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한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한국군은 일본 방위당국에 방공식별구역에서의 작전 사실을 사전에 통지하고, 선박이 일본 영해로 이동했을 때의 협력을 요청하였다.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고 해상자위대 소속 초계기와 호위함 4척을 인근 해역에 파견하였으며,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관측선이 잠수정과의 교전을 지켜보았다.[19]

여수시는 2002년 8월 29일 옛 율림초등학교 부지에 330m2 규모의 전시관을 완공하여 국방부에서 대여 형식으로 인수한 반잠수정을 전시하고 있다.[20]

5. 1. 반잠수정 인양

대한민국 해군은 1999년 1월 20일 반잠수정이 격침된 위치에서 450m 정도 떨어진 수심 150m 해저에서 반잠수정을 발견하였다고 발표하였다.[17] 1월 22일에는 반잠수정 인양 작업 중 선미에서 소총과 실탄을 소지한 북한군 시신 1구가 추가로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7] 이 시신은 안내원으로 추정되었다.

1999년 3월 17일, 해난구조대 요원과 청해진함이 반잠수정을 인양하였고, 내부에서 2구의 시신이 추가로 발견되었다.[18]

5. 2. 남북 관계 영향

대한민국 정부는 사건 당일인 1998년 12월 18일 오후 5시에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한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였다.[1] 당시 대통령 김대중은 햇볕 정책을 통해 남북 간의 협력과 평화를 증진하고자 했으나, 북한은 해상 침투와 도발을 계속하여 1998년 내내 긴장이 고조되었다. 같은 해 6월에는 북한 유고급 잠수함이 속초 인근 해안에서 어망에 걸렸고, 11월에는 강화도 인근 해역에서 반잠수정이 발견되기도 했다.[2]

이 사건으로 인해 양국 정부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으며, 이듬해 더 큰 규모의 해상 교전이 벌어지는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

북한 정권의 조선중앙통신은 1998년 12월 19일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9]

> 남조선 괴뢰들은 12월 17일 오후 11시 15분께 전라남도 여수 앞바다에서 "잠수함"을 발견하고 교전을 벌여 "잠수함"을 격침시켰으며 잠수복을 입은 시체를 육지로 끌어냈다고 말했다. (중략) 우리는 남조선에게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

5. 3. 한일 공조

대한민국 해군은 일본 방위 당국에 방공식별구역에서의 작전 사실을 사전에 통보하고, 반잠수정이 일본 영해로 이동할 경우 협력을 요청하였다.[19] 일본은 이를 받아들여 해상자위대 소속 초계기와 호위함 4척을 인근 해역에 파견하였으며, 인근 해협에 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관측선이 4시 45분부터 진행된 잠수정과의 교전을 지켜보았다.[19]

5. 4. 북한 반잠수정 전시관

여수시는 옛 율림초등학교 부지에 330m2 규모의 전시관을 건립하여 2002년 8월 29일에 완공하고, 국방부에서 대여 형식으로 인수한 반잠수정을 전시하고 있다.[20]

참조

[1] 웹사이트 North Korean Vessel Is Chased and Sunk Off Coast of South https://www.nytimes.[...] 1998-12-18
[2] 뉴스 체제유지-햇볕정책 떠보기 다목적포석 1998-12-19
[3] 뉴스 北 반잠수정 비밀침투용 개조 1999-03-24
[4] 뉴스 발견서 격침까지 육해공 완벽한 입체작전 1998-12-19
[5] 웹사이트 여수침투 북한 반잠수정 간첩선 격침[임태성] https://imnews.imbc.[...] 1998-12-18
[6] 뉴스 격침 北 반잠수정 1개월만에 발견 1999-01-21
[7] 뉴스 침몰 北잠수정서 시체 1구 발견 1999-01-23
[8] 뉴스 잠수정서 사체2구 발견 1999-03-18
[9] 웹사이트 Past news http://www.kcna.co.j[...]
[10] 간행물 강성국가론과'햇볕' 한겨레 1998-09-14
[11] 간행물 격침 北잠수정은 수출용 경향신문 1998-12-21
[12] 간행물 "北 반잠수정 비밀침투용 개조" 경향신문 1999-03-24
[13] 뉴스 "<북한 반잠수정 침투사건> 육,해,공 입체작전의 개가" https://news.kbs.co.[...] 1998-12-18
[14] 간행물 북한 속셈을 묻는다 한겨레 1998-12-19
[15] 간행물 체제유지-햇볕정책 떠보기 다목적포석 동아일보 1998-12-19
[16] 뉴스 북 반잠수정 발견서 격침까지 숨가쁜 추격전…7시간만에 '상황끝' https://www.mk.co.kr[...] 1998-12-19
[17] 뉴스 남해안 침투했다가 격침된 북한의 반잠수정 발견 https://news.kbs.co.[...] 1999-01-20
[18] 뉴스 12월 침투 북 반잠수정 인양- 시체2구 발견 https://imnews.imbc.[...] 1999-03-17
[19] 간행물 한·일 군사협력 의미 '유사사태'공동대응 밑그림 한겨레 1998-12-19
[20] 뉴스 "[광주/전남]여수 北잠수정 전시관 건립하기로" https://n.news.naver[...] 200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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