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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잠수정 침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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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속초 잠수정 침투 사건은 1998년 6월,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이 대한민국 속초 동해 해상에서 발견된 사건이다. 1990년대 후반 남북 관계가 개선되는 시기에 발생한 이 사건은, 어선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해군에 의해 예인되던 중 침몰했다가 인양되었다. 잠수정 내부에서는 승무원 9명이 사망한 채 발견되었으며, 이들의 시신은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사건 이후, 추가적인 무장간첩 시도가 있었고, 1998년 12월에는 여수 반잠수정 침투 사건이 발생하여 남북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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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잠수정 침투 사건 - [전쟁]에 관한 문서
사건 개요
사건명1998년 속초 잠수정 침투 사건
시기1998년 6월 22일
장소강원도 속초시 해안
교전 세력
교전 1대한민국
교전 2조선인민군
지휘관
대한민국미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미상
결과
결과북한 잠수정 및 승조원 손실
전력
대한민국포항급 초계함 1척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유고급 잠수정 1척
피해 규모
대한민국없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잠수정 1척 나포, 9명 사망 (5명 사살, 4명 자살)

2. 배경

1996년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높은 상태였으나,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햇볕정책 추진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등으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되던 복잡한 시기였다.[9] 이러한 복잡한 남북 관계 속에서 북한 잠수정의 침투 사건이 발생하였다.

2. 1. 남북 관계의 변화

1996년 9월, 상어급 잠수함을 이용한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하여 남북 관계는 경색되었다. 이후 1997년 2월에는 주체사상의 이론가인 황장엽이 망명하는 사건이 있었고, 같은 해 12월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 통화 기금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북 포용 정책인 햇볕정책이 추진될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1998년 6월 16일,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이 소 500마리를 트럭에 싣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면서 남북 간 화해와 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었다.[9]

2. 2. 북한 잠수정의 위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74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유고급 잠수정을 수입하였고, 1980년대 이후 자체적으로 건조하기 시작하여 1990년대 말에는 약 50여 척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10]

이 잠수정은 길이 20m, 폭 3.1m, 높이 4.6m 크기에 70톤급이다. 2대의 디젤 엔진을 사용하여 수상에서는 10노트, 수중에서는 4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으며, 수중 항해 가능 거리는 약 50마일이다. 기본 승무원은 4명이지만, 최대 12명까지 탑승할 수 있다.[10][12]

유고급 잠수정은 주로 비정규전 상황에서 특수 요원을 침투시키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침투 시에는 모선에 의해 예인되거나 부착된 상태로 목표 지점 근처까지 이동한 후 분리되는 방식을 사용한다. 특히 선체가 레이다 탐지가 어려운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져 있어 은밀한 침투 작전에 용이하다는 특징을 가진다.[11]

3. 사건 경위

1998년 6월 22일, 대한민국 동해 속초시 인근 해상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속 유고급 잠수정 한 척이 어선 자망 그물에 걸려 발견되었다. 발견 지점은 속초시 동쪽 약 18km, 군사분계선 남쪽 약 33km 해역이었다.[1][2] 어민의 신고를 받고 대한민국 해군과 해양 경찰이 출동하여 잠수정을 확인했으며[12], 해군은 승무원이 탑승한 상태의 잠수정을 동해시 해군 기지로 예인하려 시도했다.[1][2]

예인 도중 잠수정은 원인 미상으로 침몰하였고[3], 6월 25일 인양되었다. 인양된 잠수정 내부에서는 승조원 9명 전원이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이 중 5명은 피살되었고, 4명의 공작원은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었다.[5][14] 잠수정 내부에서는 한국산 음료와 과거 여러 차례 대한민국 해역 침투 기록이 담긴 항해 일지가 발견되어, 이들이 간첩 활동 후 복귀 중이었음을 시사했다.[6][7]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건 발생 다음 날인 6월 2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훈련 중 사고로 잠수정이 표류했다고 주장했다.[4] 사망한 승무원들의 시신은 1998년 7월 3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송환되었다.[8]

3. 1. 잠수정 발견 및 신고

1998년 6월 2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고급 잠수정 한 척이 대한민국 동해안에서 발견되었다. 잠수정은 속초시 항구에서 동쪽으로 약 18km 떨어진 해역이자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33km 떨어진 대한민국 영해 내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의 자망 그물에 걸렸다. 그물을 걷어 올리던 대한민국 어선은 잠수정 승무원 여러 명이 어망에서 잠수정을 빼내려고 시도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신고했다.[1][2] 신고를 받은 대한민국 해군은 즉시 포항급 코르벳을 현장으로 급파하여, 승무원들이 탑승한 상태의 잠수정을 동해시 해군 기지로 예인하기 시작했다.[1][2]

3. 2. 군의 대응 및 예인

1998년 6월 2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고급 잠수정 한 척이 대한민국 동해 속초시 항구 동쪽 약 18km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대한민국 어선의 자망 그물에 걸렸다. 이 해역은 남북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약 33km 떨어진 곳이었다. 어선 승무원들은 잠수정 승무원 여러 명이 그물에서 잠수정을 빼내려고 시도하는 것을 목격했다. 신고를 받은 대한민국 해군포항급 코르벳을 현장에 급파하여, 승무원이 탑승한 상태 그대로 잠수정을 동해시의 해군 기지로 예인하기 시작했다.[1][2] 그러나 잠수정은 항구로 예인되던 중 침몰했는데, 침몰 원인이 잠수정 자체의 손상 때문인지 아니면 승무원들이 자침시킨 것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3]

3. 3. 잠수정 인양 및 승무원 사망

동해시 항구로 예인되던 잠수정은 침몰했는데, 이것이 잠수정 손상 때문인지 승무원들이 스스로 침몰시킨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3] 6월 25일, 침몰한 잠수정은 약 약 30.48m 깊이에서 인양되었고, 내부에서 9명 승무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들 중 5명은 선원이었고, 4명의 공작원은 자살한 것으로 보였다.[5] 잠수정 내부에서 발견된 한국산 음료는 이들이 간첩 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이었음을 시사하였다.[6] 또한, 잠수정에서 발견된 항해 일지에는 이전에 여러 차례 대한민국 해역에 침투했던 기록이 남아 있었다.[7] 사망한 승무원들의 시신은 1998년 7월 3일 판문점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었다.[8]

4. 사후 처리 및 사회적 여파

1998년 6월 22일, 속초시 동쪽 약 18km 해상에서 대한민국 어선의 그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속 유고급 잠수정이 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1][2] 어민의 신고로 출동한 대한민국 해군은 잠수정을 동해시 해군 기지로 예인하려 했으나, 잠수정은 예인 도중 침몰했다.[1][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다음 날인 6월 2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훈련 중 사고로 잠수정을 잃었다고 발표했다.[4] 그러나 6월 25일, 약 약 30.48m 수심에서 인양된 잠수정 내부에서는 9명의 승무원 시신이 발견되었으며, 이 중 4명은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었다.[5] 또한 잠수정 내부에서는 한국산 음료와 여러 차례 대한민국 해역 침투 기록이 담긴 항해 일지 등이 발견되어, 단순 훈련 사고가 아닌 간첩 활동을 위한 침투였음이 드러났다.[6][7]

대한민국 정부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1998년 7월 3일, 9구의 시신을 판문점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송환했다.[15][16][17][8] 잠수정 내부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무기와 장비, 서류 등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북한의 침투 목적을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18]

4. 1. 시신 송환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와는 달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의 침투 사실 인정과 사과가 없었기에 송환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으나,[15] 대한민국 정부의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1998년 7월 3일 9구의 시신이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었다.[16][17][8]

4. 2. 유류품 분석

잠수정 내부에서는 총 203종 1,388점의 유류품이 발견되었다.[18] 주요 유류품은 다음과 같다.

잠수정 내부 유류품[18]
구분주요 유류품
무기류로켓포, 소총, 수류탄, 권총, 실탄 수백 발, 자폭용 폭약
서류 및 책자류한반도 주변 해도, 지도 복사물, 약어표, 난수표, 조선인민군 전술·통신교범, 잠수정운용교범, 수리의뢰서, 대남선동문건, 전투함문양표, 1995년 5월 발행 군인생활잡지
기타비상용 진통제로 추정되는 아편 한 봉지, 비상식량



이러한 유류품들과 함께 발견된 한국산 음료, 여러 차례 대한민국 해역 침투 기록이 담긴 항해 일지 등은 잠수정이 단순 표류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대한 간첩 활동 및 무력 도발을 목적으로 침투했음을 시사한다.[6][7]

4. 3. 추가적인 북한 도발

속초 잠수정 침투 사건이 발생한 지 20일 후인 1998년 7월 12일, 동해시 부근 해안에서 수중 침투용 추진기와 함께 기관총, 수류탄을 소지한 무장간첩의 사체가 발견되었다.[19] 당국은 추가 침투 인원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색을 벌였으나 발견하지 못했고, 7월 18일 통행금지를 해제하고 19일에는 작전 병력 일부를 철수하며 사실상 수색을 종료했다.[20]

같은 해 12월 18일에는 여수 반잠수정 침투 사건이 발생했다. 조선인민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반잠수정이 여수 인근 해상의 레이다 기지에 포착되었고, 대한민국 해군과의 추격전 및 교전 끝에 발견 4시간 만에 거제도 남쪽 해상에서 격침되었다.[21] 침몰한 선체는 이듬해인 1999년 3월 17일에 인양되었다.[22] 이러한 사건들은 북한의 대남 도발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5. 평가 및 영향

1998년 동해에서 발생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속 유고급 잠수정 침투 사건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평가와 영향을 남겼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겨주며 국가 안보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인양된 잠수정 내부에서 간첩 활동의 증거와 과거 침투 기록이 발견되면서 북한의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났고, 이는 단순한 표류 사고가 아닌 명백한 군사적 도발 행위로 규정되었다.[6][7]

또한, 이 사건은 당시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발생하여 남북 관계에 상당한 긴장을 초래했다. 북한의 도발은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를 구축하려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평가되었으며,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상호 불신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비록 대한민국 정부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 승조원의 시신을 송환했지만[8], 이 사건은 북한의 예측 불가능성과 군사적 위협이 여전히 상존함을 보여주며 향후 대북 정책 및 남북 관계 설정에 중요한 고려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5. 1. 대한민국 사회의 안보 의식 강화

1998년 6월 22일, 대한민국 동해속초시 동쪽 약 18km, 군사분계선 남쪽 33km 해역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속 유고급 잠수정 한 척이 어선의 그물에 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어선은 잠수정 승조원들이 그물에서 벗어나려 시도하는 것을 목격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대한민국 해군포항급 초계함을 동원하여 잠수정을 승조원이 탑승한 상태로 동해시 해군 기지로 예인하려 했다.[1][2] 그러나 잠수정은 예인 도중 침몰했는데, 이것이 파손 때문인지 승조원들의 자침 행위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3]

사건 발생 다음 날인 6월 23일, 조선중앙통신은 이례적으로 잠수정이 훈련 중 사고로 손실되었다고 발표했다.[4]

6월 25일, 침몰한 잠수정은 수심 약 약 30.48m 지점에서 인양되었으며, 내부에서 9명의 승조원 시신이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 5명은 교전 등으로 사망하고 4명은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었다.[5] 잠수정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생산된 음료수가 발견되어, 이들이 이미 간첩 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이었음을 시사했다.[6] 또한, 잠수정에서 발견된 항해 일지에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대한민국 해역을 침투했던 기록이 남아 있어 충격을 주었다.[7] 이러한 북한 잠수정의 대담한 침투 및 간첩 활동 사실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안보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수습된 북한 승조원들의 시신은 1998년 7월 3일 판문점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에 인도되었다.[8]

5. 2. 남북 관계에 미친 영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고급 잠수정이 대한민국 영해를 침투한 이 사건은 남북 관계에 큰 긴장을 야기했다. 1998년 6월 22일, 속초시 동쪽 약 18km 해상에서 대한민국 어선의 자망 그물에 잠수정이 걸리면서 발견되었다.[1][2] 대한민국 해군이 잠수정을 동해시 해군 기지로 예인하는 과정에서 잠수정은 침몰했는데, 이는 손상 때문인지 승무원들의 자침 시도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3]

사건 발생 다음 날인 6월 2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중앙통신은 잠수정이 훈련 중 사고로 손실되었다고 주장했다.[4] 그러나 6월 25일, 약 약 30.48m 깊이에서 인양된 잠수정 내부에서는 9명의 승무원 시신이 발견되었으며, 이 중 4명은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었다.[5] 특히 잠수정 내부에서 발견된 한국산 음료 등은 이들이 단순 표류한 것이 아니라 간첩 활동을 수행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6] 또한, 잠수정에서 발견된 항해 일지에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대한민국 해역에 침투했던 기록이 남아 있어, 북한의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났고 계획적이고 반복적인 도발 행위였음이 밝혀졌다.[7]

이러한 북한의 명백한 무력 도발 행위는 당시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던 햇볕정책 기조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상호 불신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1998년 7월 3일 판문점을 통해 잠수정 승무원들의 시신을 북한 측에 송환했다.[8]

6. 기타

'''동해 무장간첩 침투 사건'''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한 지 20일 후인 7월 12일, 동해시 부근 해안에서 수중 침투용 추진기와 함께 기관총, 수류탄을 소지한 무장간첩의 사체가 발견되었다.[19] 대한민국 군 당국은 추가로 2명의 간첩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색을 진행했으나, 며칠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7월 18일에는 통행금지를 해제하고, 19일에는 작전에 투입되었던 일부 병력을 철수시키며 사실상 수색 작전을 종료했다.[20]

'''여수 반잠수정 침투 사건'''

1998년 12월 18일, 조선인민군 소속의 반잠수정여수시 레이다 기지에 포착되었다. 대한민국 해군과의 추격전과 교전 끝에, 반잠수정은 발견된 지 4시간 만에 거제도 남쪽 해상에서 침몰하였다.[21] 침몰한 반잠수정의 선체는 이듬해인 1999년 3월 17일에 인양되었다.[22]

참조

[1] 웹사이트 North Korea Sub is snagged off South https://www.nytimes.[...] 1998-06-23
[2] 뉴스 S. Korea Seizes Another Northern Sub Off Coast https://www.latimes.[...] Los Angeles Times 1998-06-23
[3] 웹사이트 Sub incident harms Korean relations http://news.bbc.co.u[...] 1998-06-22
[4] 웹사이트 N. Korea admits submarine wrecked while training http://www.thefreeli[...] 1998-06-23
[5] 웹사이트 9 North Koreans dead in submarine https://www.nytimes.[...] 1998-06-27
[6] 웹사이트 'Suicide' crew found in North Korean sub https://www.independ[...] 1998-06-26
[7] 웹사이트 N.Korean Subs Ply East Sea with Impunity http://english.chosu[...] 2010-05-27
[8] 웹사이트 N. Korea Sub Crew's Bodies Returned https://apnews.com/a[...] Associated Press 1998-07-03
[9] 뉴스 南北민간교류 새章 열어 경향신문 1998-06-17
[10] 뉴스 최대11명탑승…해안침투용 北유고급 잠수정 제원 경향신문 1998-06-23
[11] 뉴스 잠수정 제원 한겨레 1998-06-23
[12] 뉴스 첫 신고 교신내용 "50~60도 방향 항해중…2명이 우리쪽 향해 손 흔들고 있다" 동아일보 1998-06-23
[13] 뉴스 수차례 교신 시도…묵묵부답 동아일보 1998-06-24
[14] 뉴스 처참한 시신9구 3시간 걸쳐 수습 경향신문 1998-06-27
[15] 뉴스 北 침투사실 부인땐 유해송환 난항예상 동아일보 1998-06-27
[16] 뉴스 인도주의 원칙 거듭 천명 한겨레 1998-07-02
[17] 뉴스 북 의장대·취재진 안보여 한겨레 1998-07-04
[18] 뉴스 추가로 발견된 노획물 군사교범-'약어표'나와 동아일보 1998-06-28
[19] 뉴스 동해市부근서"수상한2명"주민신고 동아일보 1998-07-13
[20] 뉴스 간첩수색 사실상 종결 작전지역 통금도 해제 경향신문 1998-07-20
[21] 뉴스 잠수정 인양 1개월 이상 걸릴듯 동아일보 1998-12-19
[22] 뉴스 인양 北잠수정 위성위치확인기 장착 동아일보 1999-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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