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유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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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노 유다이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주니치 드래건스 소속 투수이다. 붓쿄 대학을 졸업하고 2011년 주니치에 입단하여 현재까지 활약하고 있으며, 2019년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고 2020년에는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수상하며 센트럴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과 2020년에는 월간 MVP를 수상했으며, 2019년과 2020년에는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다. 2012년, 2015년, 2019년에는 일본 대표팀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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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유다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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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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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오노 유다이 |
로마자 표기 | Yudai Ono |
가나 표기 | おおの ゆうだい |
한자 표기 | 大野 雄大 |
출생일 | 1988년 9월 26일 |
출생지 | 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 |
키 | 184cm |
몸무게 | 85kg |
포지션 | 투수 |
던지는 손 | 왼손 |
타석 | 왼손 |
등번호 | 22 |
프로 입단 연도 | 2010년 |
드래프트 순위 | 1순위 |
첫 출장일 | 2011년 10월 14일 |
선수 경력 | |
소속팀 | 주니치 드래건스 (2011년~현재) |
고등학교 | 교토외대니시 고등학교 |
대학교 | 불교대학 |
국가대표 경력 | |
대표팀 | 일본 |
올림픽 | 2020년 하계 올림픽 (2021년) |
WBSC 프리미어12 |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2019년 WBSC 프리미어 12 |
수상 내역 | |
사와무라 에이지 상 | 2020년 |
NPB 올스타 | 2014년, 2015년, 2022년 |
센트럴 리그 월간 MVP | 2015년 5월, 2020년 9월 |
센트럴 리그 평균 자책점 | 2019년, 2020년 |
센트럴 리그 탈삼진 | 2020년 |
노히트 노런 | 2019년 9월 14일 |
최고 배터리 상 | 기노시타 다쿠야와 함께 (2020년) |
불교대학 스포츠 명예상 | 2020년 |
개인 성적 (NPB) | |
승패 기록 | 84승 87패 |
평균 자책점 | 3.02 |
탈삼진 | 1,189개 |
연봉 정보 | |
연봉 | 1억 2000만 엔 (2025년) |
메달 정보 | |
올림픽 메달 | 2020 도쿄 금메달 |
WBSC 프리미어 12 메달 | 2015 도쿄 동메달 2019 도쿄 금메달 |
2. 인물
오노는 2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41], 2살 터울의 누나와 함께 어머니 슬하에서 교토시 후시미구 후카쿠사에서 성장했다.[42] 교토시립 사가와 소학교 5학년 때 슈도 스포츠 소년단에 입단하여 연식 야구를 시작했고, 6학년부터 투수를 맡았다. 교토시립 후지모리 중학교에서는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어[43] 2학년 때 연습 경기에서 사구를 연발하여 경기를 망쳤지만,[44][45] 팀 동료들의 격려로 다시 일어섰다. 오노는 이 경기가 투수로서의 첫걸음이 되었다고 말한다. 3학년 여름에는 교토시 대회에서 우승했고, 교토 연식 야구계에서 이름이 알려졌다.[46] 프로 입단 후 팀 동료가 될 츠지 아키히코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1년 후배였다.[47]
모자 가정이었기 때문에 공립인 교토부립 도바 고등학교 진학을 생각했지만, 미하라 신지로가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던 교토가이다이니시 고등학교의 권유로 입학했다. 2학년 봄부터 벤치에 들어갔고, 팀은 제87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고마자와대학 부속 토마코마이 고등학교의 타나카 마사히로의 투구를 보고 "저런 녀석이 프로 선수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 대회에서 오노는 등판 기회가 없었지만, 가을부터 신팀에서 선발을 맡는 기회가 늘어나, 3학년 봄 제78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 첫 경기에서 도카이대학 부속 사가미 고등학교에 패했지만 고시엔 첫 선발을 했다. 3학년 여름에도 고시엔 출전을 목표로 했지만 교토 대회 준결승에서 후쿠치야마 세이비 고등학교에 패했다.
고등학교에서는 미하라 신지로에게 "건방진 인간"이라고 계속 말을 들었기 때문에, "야구인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권유를 받아 불교대학 사회학부 현대사회학과[48]에 진학했다. 2007년 4월부터 불교대학 야구부에 입단하여 1학년 봄부터 벤치에 들어갔고, 춘추 리그 연속 우승을 했다. 가을 킨키 대학전에서는 145km/h를 기록했다. 3학년 가을 교토시가 대학 야구 연맹에서는 44이닝에서 허용한 사구는 2개였다. 학점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2학년 봄부터 반년 동안은 불교대학의 규칙에 따라 연습이나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49] 가을부터는 선발 로테이션에 고정되어 1학년 가을부터 4학년 봄까지 이어지는 16연승[50]의 활약으로 3시즌 연속으로 리그 MVP와 베스트 나인을 획득했다. 4학년 때인 4월 24일에 완봉승(7회 콜드 게임이므로 참고 기록)을 달성하는 등[51]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52] 6월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첫 경기에서 도호쿠후쿠시 대학을 2안타 완봉승[53][54]으로 이기고 대학 최고 좌완으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2회전에서 아키야마 쇼고가 이끄는 하치노헤 대학에 완봉패를 당했다.[55] 교토시가 리그에서는 통산 24경기에 등판하여 18승 1패의 성적을 남겼다. 사이토 유키, 오오이시 타츠야, 사와무라 타쿠이치와 함께 "대학 야구계 BIG4"라고 불렸다.[56]
제5회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의 일본 대표에 탈락했을 때는 의기소침했고, 후보 합숙에서 돌아오는 신칸센 안에서 내내 울었다.[57] 그러나 제25회 하렘 베이스볼 위크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쿠바를 상대로 2실점 완투승을 거두었고, "대표에서 탈락해서 다행이었다. 이 대회에 나간 덕분에 목표가 '메이저리거'로 바뀌었습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58]
2010년 8월 오픈전에서 어깨를 다친 후로는 등판하지 못했고,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니치 드래곤즈로부터 단독 1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2월 1일에 계약금 1억엔, 옵션 5000만엔, 연봉 1500만엔으로 가계약을 체결했다.[59][60] 등번호는 후지카와 큐지와 같은 '''22'''번으로 결정되었다.[61] 12월에는 교토부 경찰청 북경찰서의 2011년 계몽 포스터의 이미지 캐릭터로 기용되었다.
==== 야구에 대한 열정 ====
오노 유다이는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한신 타이거스의 팬으로 자랐다.[252] 대학 시절에는 휴대전화에 트래키 스트랩을 달고 다녔지만, 주니치 드래건스에 지명된 후 제거했다.[36][253] 이후 한신 관련 발언을 삼갔으나, 2021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해설을 맡아 한신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254]
목표로 하는 선수로는 후지카와 규지와 첸웨이인을 꼽는다.[31][36] 우하라 코우지의 "꿈을 실현하고 최고의 장소에 와서 즐겁기만 하다"는 코멘트는 멘탈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최고가 되는 것"을 목표로, 동세대인 다나카 마사히로, 사카모토 하야토를 존경하며, 사이토 유키에게는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다. 사이토 유키의 은퇴 시에는 위로의 말을 전했으며,[255] 마에다 켄타와는 SNS에서 교류하고 있다.[256]
2020년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경쟁한 스가노 도모유키와는 친분과 동시에 라이벌 관계이다. 스가노는 오노와 겨루는 경기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오노 역시 스가노를 의식한다고 밝혔다. 2023년 오노가 왼쪽 팔꿈치 수술 후 재활 중일 때 스가노는 격려의 말을 전했다.[257]
2018년부터 스코어보드에 풀네임인 "'''오노 유다이'''"로 표기되고 있다.[258] 다트는 오른손으로 던지지만, 공은 왼손으로 던지고, 식사와 글씨도 왼손으로 한다.[259] 사용 용구는 데상트 제품이며, 요시미 카즈키의 소개로 사용하게 되었다.[260] 스파이크는 아식스 제품이다.
==== 가족 ====
오노는 2012년 11월 26일 대학 시절 동급생인 여성과 결혼했으며[261][262], 2013년 시즌 오프에 결혼식을 올렸다.[263] 2015년 5월 20일에는 장녀, 2017년 12월 20일에는 차녀, 2021년 11월 11일에는 장남이 태어났다.[264]
==== 기타 ====
오노는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한신 타이거스 팬으로 자랐지만, 주니치 드래건스에 지명된 후에는 관련된 물품을 모두 제거했다.[36]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후지카와 규지와 천웨이인이다.[31][36]
고향인 교토부에 대한 애정이 깊어,[266] 비시즌 기간에는 후시미이나리 신사에서 새해 첫 참배를 하거나[267] 다이몬지산에서 자율 훈련을 진행하기도 한다.[268]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으로, 대학 시절에는 교토 라면 가게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에는 라면을 끊겠다고 선언했다.[269]
5인조 아티스트 Da-iCE의 보컬 오노 유다이와 동명이인이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다.[270] 2019년 12월 8일 CBC 텔레비전의 「サンデードラゴンズ」에서 함께 출연했으며,[271][272] 2020년 시즌 오프에는 온라인 대담을 진행했다.
2. 1. 가족
오노는 2012년 11월 26일 대학 시절 동급생인 여성과 결혼했으며[261][262], 2013년 시즌 오프에 결혼식을 올렸다.[263] 2015년 5월 20일에는 장녀, 2017년 12월 20일에는 차녀, 2021년 11월 11일에는 장남이 태어났다.[264]2. 2. 야구에 대한 열정
오노 유다이는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한신 타이거스의 팬으로 자랐다.[252] 대학 시절에는 휴대전화에 트래키 스트랩을 달고 다녔지만, 주니치 드래건스에 지명된 후 제거했다.[36][253] 이후 한신 관련 발언을 삼갔으나, 2021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해설을 맡아 한신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254]목표로 하는 선수로는 후지카와 규지와 첸웨이인을 꼽는다.[31][36] 우하라 코우지의 "꿈을 실현하고 최고의 장소에 와서 즐겁기만 하다"는 코멘트는 멘탈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최고가 되는 것"을 목표로, 동세대인 다나카 마사히로, 사카모토 하야토를 존경하며, 사이토 유키에게는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다. 사이토 유키의 은퇴 시에는 위로의 말을 전했으며,[255] 마에다 켄타와는 SNS에서 교류하고 있다.[256]
2020년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경쟁한 스가노 도모유키와는 친분과 동시에 라이벌 관계이다. 스가노는 오노와 겨루는 경기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오노 역시 스가노를 의식한다고 밝혔다. 2023년 오노가 왼쪽 팔꿈치 수술 후 재활 중일 때 스가노는 격려의 말을 전했다.[257]
2018년부터 스코어보드에 풀네임인 "'''오노 유다이'''"로 표기되고 있다.[258] 다트는 오른손으로 던지지만, 공은 왼손으로 던지고, 식사와 글씨도 왼손으로 한다.[259] 사용 용구는 데상트 제품이며, 요시미 카즈키의 소개로 사용하게 되었다.[260] 스파이크는 아식스 제품이다.
2. 3. 기타
오노는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한신 타이거스 팬으로 자랐지만, 주니치 드래건스에 지명된 후에는 관련된 물품을 모두 제거했다.[36]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후지카와 규지와 천웨이인이다.[31][36]고향인 교토부에 대한 애정이 깊어,[266] 비시즌 기간에는 후시미이나리 신사에서 새해 첫 참배를 하거나[267] 다이몬지산에서 자율 훈련을 진행하기도 한다.[268]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으로, 대학 시절에는 교토 라면 가게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에는 라면을 끊겠다고 선언했다.[269]
5인조 아티스트 Da-iCE의 보컬 오노 유다이와 동명이인이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다.[270] 2019년 12월 8일 CBC 텔레비전의 「サンデードラゴンズ」에서 함께 출연했으며,[271][272] 2020년 시즌 오프에는 온라인 대담을 진행했다.
3. 상세 정보
3. 1. 선수 경력
붓쿄 대학을 졸업하고 주니치 드래건스에 2011년부터 입단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교토 외대 니시 고등학교
- 붓쿄 대학
- 주니치 드래건스(2011년 ~ )
오노는 고교 시절 교토가이다이 니시 고등학교에서 활약하며 2005년 여름 고시엔에서 젊은 다나카 마사히로가 이끄는 팀과 맞붙었다. 전 뉴욕 양키스 투수의 경기를 지켜본 오노는 "이런 선수가 프로에 가는구나"라고 말했다.[2]
봄 센바츠 대회에서 고시엔에 데뷔했지만, 1회전에서 도카이 대학 사가미 고등학교에 4-1로 패했다. 오노는 1⅓이닝 동안 3개의 삼진을 잡고 1실점을 기록했다.[3]
오노는 붓쿄 대학 팀에서 3학년 때 사이토 유키, 오이시 다쓰야, 사와무라 히로카즈와 함께 "대학 빅4"로 주목받았다.[2]
2010년 NPB 드래프트에서 그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주니치 드래곤즈의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2]
2011년, 오노 유다이는 주니치 드래곤즈에서의 선수 생활 초반을 봄 훈련 기간 동안 왼팔 재활에 전념하며 보냈다. 3월부터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여 프로-아마 경기에 출전했지만, 만루 홈런을 허용하는 등 쓴맛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팜 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훈련받았다. 10월 1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Yomiuri Giants)와의 경기에 선발 투수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4이닝 동안 22타자를 상대하며 6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결과는 좋지 못했다.[4][5]
2012년 7월 11일, 오노는 고시엔 구장(Koshien Stadium)에서 한신 타이거스(Hanshin Tigers)를 상대로 두 번째 선발 등판을 했고, 5⅓이닝을 던지며 1자책점 7피안타로 첫 승리를 거머쥐었다.[6][7] 그는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프로 데뷔 첫 시즌을 8경기 선발 등판, 4승 3패, 2.62의 평균자책점으로 마무리했다.
2013년, 그는 드래곤즈의 확실한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여 평균자책점왕 경쟁에 참여할 만큼 충분한 이닝을 소화했다. 오노는 25경기 선발 등판, 146이닝을 투구하며 10승 10패, 3.8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14년, 오노 유다이는 시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개막전 선발 자리는 베테랑 가와카미 겐신에게 내주었다.[8] 4월 26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 1회에 5실점하며 마운드에서 강판되었고, 구단 수뇌부의 질책을 받으며 2군으로 강등되었다.[9] 6월 5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 5이닝 5실점하며 같은 운명을 맞았다.[10] 7월 2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볼넷 없이 완투승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했다.[10] 그는 10승 8패, 평균자책점 2.89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15년, 그는 양대 리그에서 207.1이닝을 투구하며 이닝 소화량 1위를 기록했다. 당시 커리어 최고 기록인 평균자책점 2.52는 센트럴 리그에서 6위였고,[11] 완투 6경기는 한신 타이거스의 후지나미 신타로의 7경기에 이어 2위였다. 오노는 27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1승 10패를 기록하며 커리어 최다 승을 거두었다.
2016년 3월 25일, 오노는 교세라 돔에서 한신 타이거스와의 개막전 선발 투수로 출전하여 5-2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7과 2/3이닝 동안 2자책점, 탈삼진 3개, 볼넷 2개를 기록했다.[12]
오노는 4월 15일 팔꿈치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될 때까지 1승 1패, 평균자책점 2.66을 기록했다.[13]
6월 4일, 그는 라쿠텐 이글스와의 경기(0-3 패)에서 7이닝 동안 3실점(1회 3실점), 탈삼진 3개, 볼넷 3개를 기록하며 복귀했다.[14]
6월 28일, 오노는 도쿄 돔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7탈삼진, 3피안타 완봉승(5-0)을 거두며 시즌 5승째를 기록했다.[15][16]
2017년, 오노 유다이는 다시 한번 선발투수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142이닝을 던져 4.03의 평균자책점과 7승 8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는 포스트시즌 시상식 후보에 오르기 위한 이닝 수 제한을 통과한 유일한 드래곤즈 선발투수였다. 11월 29일, 오노는 연봉이 640만 엔 삭감되었다.[17]
2018년, 오노는 개막전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었고, 단 6경기에 출전하여 0승 3패, 8.5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그 결과 그의 연봉은 최대 25% 삭감되어 6000만 엔에 재계약했다.[18]
2019년, 오노는 새로운 감독인 요다 쓰요시와 투구 코치인 아와노 히데유키의 지도 아래 선발 로테이션에 복귀하며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4월 30일, 오노는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승리 투수가 되었고, 5월 7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레이와 시대 최초의 센트럴 리그 완봉승을 기록했다.[19] 9월 14일에는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100번째 노히트 노런(세계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에 따름)[20]을 달성하며, NPB 역사상 81번째, 그리고 주니치 드래곤스 소속으로는 12번째로 이 업적을 달성한 투수가 되었다.[21] 오노는 2.59의 평균자책점으로 센트럴 리그 1위를 차지하며 시즌을 마무리했고, 이 과정에서 첫 개인 타이틀을 획득했다.[22]
오노는 2020년 시즌 활약으로 사와무라상을 수상했다. 1.82의 평균자책점, 10경기 완투, 6경기 완봉승, 148⅔이닝, 148탈삼진으로 센트럴 리그를 이끌었다. 11승 6패의 성적을 거두며 주니치 드래건스가 8년 만에 첫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다.[23] 시즌 종료 후, 사와무라상 수상 전에 오노는 주니치 드래건스에 잔류하기 위해 3년, 9억 엔의 인센티브가 포함된 계약을 체결했다.[24][25]
2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고[41], 그때까지 살았던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에서 2살 위 누나와 함께 어머니 밑에서 교토시 후시미구 후카쿠사에서 자랐다.[42] 교토시립 사가와 소학교 5학년 때 슈도 스포츠 소년단에 입단하여 연식 야구를 시작했고, 6학년부터는 투수를 맡았다. 교토시립 후지모리 중학교에서는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어[43], 2학년 때 연습 경기에서 사구를 연발하여 경기를 망쳐버렸고, 오노도 무기력함과 후회로 야구를 그만둘까 생각했지만[44][45] 팀 동료들의 격려로 다시 일어섰고, 그 후 필사적으로 연습하게 되었다. 오노는 이 경기가 투수로서의 첫걸음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때까지 외야수와 겸임했지만 투수에 전념하여, 3학년 여름에 교토시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 무렵부터 교토의 연식 야구계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존재가 되었다.[46] 프로 입단 후 팀 동료가 될 츠지 아키히코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1년 후배였다.[47]
앞서 언급했듯이, 오노는 모자 가정이었기 때문에 공립인 교토부립 도바 고등학교 진학을 생각했지만, 미하라 신지로가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던 교토가이다이니시 고등학교의 권유로 입학했다. 미하라는 1학년 때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2학년 때부터는 카미우바 이사오에게 사사하게 된다. 2학년 봄부터 벤치에 들어갔고, 팀은 제87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고마자와대학 부속 토마코마이 고등학교의 타나카 마사히로의 투구를 보고 "저런 녀석이 프로 선수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 대회에서 오노는 등판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을부터의 신팀에서는 선발을 맡는 기회가 늘어나, 3학년 봄 제78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 첫 경기에서 도카이대학 부속 사가미 고등학교에 패했지만 고시엔 첫 선발을 했다. 3학년 여름에도 고시엔 출전을 목표로 했지만 교토 대회 준결승에서 후쿠치야마 세이비 고등학교에 패했다.
고등학교에서는 미하라에게 "건방진 인간"이라고 계속 말을 들었기 때문에, "야구인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권유를 받아 불교대학 사회학부 현대사회학과[48] 진학을 결심하고, 2007년 4월부터 불교대학 야구부에 입단했다. 1학년 봄부터 벤치에 들어가고, 춘추 리그 연속 우승을 했다. 가을 킨키 대학전에서는 145km/h를 기록했다. 이 무렵부터 구속에 자신감을 가졌다고 한다. 가운데로 던지는 연습을 계속한 결과 구속이 빨라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 결과 사구도 줄어들어 3학년 가을 교토시가 대학 야구 연맹에서는 44이닝에서 허용한 사구는 2개였다. 학점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2학년 봄부터 반년 동안은 불교대학의 규칙에 따라 연습이나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49] 가을부터는 선발 로테이션에 고정되어 1학년 가을부터 4학년 봄까지 이어지는 16연승[50]의 활약으로 3시즌 연속으로 리그 MVP와 베스트 나인을 획득했다. 4학년 때인 4월 24일에 태양케오쿠 야구장에서 완봉승(7회 콜드 게임이므로 참고 기록)을 달성하는 등[51]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52] 6월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첫 경기에서 강호 도호쿠후쿠시 대학을 2안타 완봉승[53][54]으로 이기고 대학 최고 좌완으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2회전에서 아키야마 쇼고가 이끄는 하치노헤 대학에 완봉패를 당했다.[55] 교토시가 리그에서는 통산 24경기에 등판하여 18승 1패의 성적을 남겼다. 전국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사이토 유키, 오오이시 타츠야, 사와무라 타쿠이치와 함께 "대학 야구계 BIG4"라고 불렸다.[56]
제5회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의 일본 대표에 탈락했을 때는 불교대학 감독인 키쿠노 요시로가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의기소침했고, 후보 합숙에서 돌아오는 신칸센 안에서 내내 울었다.[57] 그러나 그 후 제25회 하렘 베이스볼 위크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오노도 "여기도 재팬 유니폼이니까요. 쿠바를 꺾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했고, 말 그대로 쿠바를 상대로 2실점 완투승을 거두었고, 이 경험을 통해 "대표에서 탈락해서 다행이었다. 이 대회에 나간 덕분에 목표가 '메이저리거'로 바뀌었습니다. 자신을 지지해준 가족과 감독, 선수들의 눈이 닿는 곳에서 플레이해서 기뻐하게 하고, 실적을 쌓은 후에 메이저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58]
2010년 8월의 오픈전에서 어깨를 다친 후로는 등판하지 못했고,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니치 드래곤즈로부터 단독 1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2월 1일에 계약금 1억엔, 옵션 5000만엔, 연봉 1500만엔으로 가계약을 체결했다.[59][60] 등번호는 동경하고 목표로 하는 후지카와 큐지와 같은 '''22'''번으로 결정되었다.[61] 또한, 12월에는 교토부 경찰청 북경찰서의 2011년 계몽 포스터의 이미지 캐릭터로 기용되었다. 포스터는 "안전, 안심으로 스트라이크"라는 슬로건과 불교대 시절의 투구폼 사진을 조합한 것으로, 1년간의 게시를 상정했다. 대학 시절에는 1년 위 카와노 히데카즈와 2년 아래 하라모토 유다이가 팀 동료였다.
2011년 합동 자주 훈련 및 오키나와 캠프는 왼쪽 어깨 재활에 전념했으며, 3월 말부터 본격적인 투구 훈련을 시작했다. 6월 25일 프로-아마 교류전(나고야 구장)에서 실전 데뷔했지만 만루 홈런을 맞았다. 그러나 이후 2군에서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10월 8일 2군 일본 시리즈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어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1군으로 승격하여, 팀이 매직넘버 2를 남겨둔 10월 1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도쿄 돔)에 데뷔 첫 선발 등판했다. 4이닝 7실점(자책점 6)으로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이 등판을 통해 자신의 무기는 직구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 경기에서 당시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은 "몇 점을 내주더라도 상관없으니, 네 투구를 해라"라고 전했다. 2011년에는 이 한 경기 등판에 그쳤고, 오프 시즌인 11월 25일에 연봉 1350만 엔(150만 엔 감소)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2012년 7월 상순에 1군으로 승격하여, 7월 11일 한신 타이거스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시즌 첫 등판·첫 선발(본인 두 번째 선발 등판)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5⅓이닝 7안타 1실점으로 호투하며 프로 첫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해에는 8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4승 3패의 성적을 거두었고,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첫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승리투수가 되었다. 오프 시즌 11월에 개최된 "사무라이 재팬 매치 2012「일본 대표 VS 쿠바 대표」" 일본 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12월 4일에 400만 엔 증가한 연봉 175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2013년 개막 로테이션에 포함되었다. 개막 2경기째인 3월 30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나고야 돔)에 선발 등판했지만, 3이닝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후에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개막 4연패를 당했지만, 6번째 등판인 5월 3일 DeNA전(나고야 돔)에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 해에는 선발 투수로서 1군에 정착했다. 자신의 25번째 생일인 9월 26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나고야 돔)에서는 9이닝 1실점으로 프로 첫 완투승을 거두었고, 이 경기에서 자신의 첫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최종적으로 25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0승 10패, 평균자책점 3.81의 성적을 기록했다.
오프 시즌 11월에는 타이완에서 개최된 "2013 BASEBALL CHALLENGE 일본 VS 차이니즈 타이페이"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11월 13일, 105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28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2014년 오픈전에서 평균자책점 1.29로 호투했지만, 가와카미 노부노부와의 개막전 선발 투수 경쟁에서 패했다. 개막 2경기째인 3월 29일 히로시마전(나고야 돔)에 선발 등판했지만, 6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후에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4월 26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선발 등판했지만 1회에 5실점하고 강판되었다. 경기 중 나고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2군으로 내려갔다. 5월 14일 DeNA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복귀하여 7이닝 2실점으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 해에는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선출되어, 7월 18일 1차전(세이부 돔)에 등판하여 2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후반기에는 7월 2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나고야 돔)에서 첫 완봉승(무사사구)을 거두었고, 10월 1일 DeNA전(나고야 돔)에서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최종적으로 10승 8패, 평균자책점 2.89(리그 4위)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오프 시즌에 17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4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2015년 본거지 개막전인 3월 31일 자이언츠전(나고야 돔)에서 시즌 첫 선발 등판하여 승리투수는 되지 못했지만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5월에는 리그 최고인 4승을 거두며 처음으로 월간 MVP에 선출되었다. 7월 8일 한신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리그 최고인 9승째를 거두는 등 전반기를 9승 4패, 평균자책점 2.13(리그 3위)의 성적으로 마쳤다. 또한, 이 해에도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선출되어 7월 18일 2차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에 등판했다.
9승을 거둔 이후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만, 8월 20일 히로시마전(나고야 돔)에서는 8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어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8월 27일 DeNA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자신의 최다이자 리그 최다인 11승째를 거두었지만, 이후 타선의 지원 부족 등으로 승수를 늘리지 못했다. 또한 6연패, 4연패 등으로 마운드에 오른 경우 연패를 끊지 못하며 승부처에서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후반기에는 2승 6패로 부진했지만, 최종적으로 11승 10패, 평균자책점 2.52(리그 6위)를 기록했다. 207.1이닝은 12구단 최고였다. 같은 해 11월 29일 다니시게 모토노부 감독이 TV 프로그램에서 다음 해 개막전 투수로 기용한다고 언급했다(이는 12구단 최고속 발표였다). 11월 30일 선수 회식에서 오시마 요헤이를 대신하여 다음 해부터 선수회장을 맡게 되었다. 12월 8일 63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1억 800만 엔으로 일괄 갱신했다.
2016년 3월 25일 한신전(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첫 개막전 투수를 맡아 7⅔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왼쪽 팔꿈치 통증으로 4월 15일에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6월 4일에 복귀하여 같은 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나고야 돔)에 선발 등판했지만, 7이닝 3실점(자책점 0)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6월 28일 자이언츠전(도쿄돔)에서 시즌 첫 완봉승(5승째)을 거두었지만, 이후 8월 21일 DeNA전(나고야 돔)에서 6승째를 거둘 때까지 2개월 가까이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팀은 구단 사상 최악인 11카드 연속 패배를 기록했다. 본인 또한 5연패를 당하고 엔트리 말소를 경험했다.
최종적으로 7승 10패, 규정 투구 이닝 미달, 평균자책점 3.54를 기록했다. 이 해에는 25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한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상성이 나빴고, 5경기 등판에서 1승 4패, 평균자책점 7.36으로 크게 얻어맞았다. 또한 7월 19일 경기(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는 4이닝을 던져 자책점 11을 기록하는 최악의 경기를 펼쳤다. 오프 시즌 11월 18일, 2160만 엔 감소한 추정 연봉 864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2017년 2년 연속 개막전 투수로 지명되어, 3월 31일 자이언츠와의 개막전(도쿄돔)에 등판했지만, 6이닝 6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후에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5월에는 중간 계투로 보직 변경되었다. 하지만 5월 14일 야쿠르트전(봇찬 스타디움)에서는 동점인 9회말에 등판했지만 아라키 타카히로에게 끝내기 만루 홈런을 맞았다. 이후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5월 31일에 1군에 복귀하여 6월 7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ZOZO 마린 스타디움)에서 10번째 등판 경기에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지만, 경기 후 영웅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렸다. 최종적으로 24경기 등판하여 규정 투구 이닝에는 도달했지만, 5월까지의 부진이 영향을 미쳐 7승 8패, 평균자책점 4.02의 성적을 거두었다.
오프 시즌 11월 29일, 640만 엔 감소한 추정 연봉 8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또한 이 해의 춘계 캠프부터 아사쿠라 겐타 투수 코치(다음 시즌 종료 후 퇴단)와의 불화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같은 성의 오노 쇼타가 FA로 입단하면서, 자신의 의사에 따라 스코어보드 표기를 성명 전체인 "오오노 유다이"로 변경했다.
2018년 개막 로테이션 진입에 실패했다. 4월 25일 자이언츠전(조모 신문 시키시마 구장)에서 시즌 첫 선발 등판했지만, 4이닝 5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2군에서는 평균자책점 2.10으로 안정감을 보였지만, 1군에서는 6경기 선발 등판하여 0승 3패, 평균자책점 8.56으로 부진했다. 11월 25일 감봉 한도인 25% 감소한 추정 연봉 6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2019년 개막전을 1군에서 맞이하여, 4월 16일 DeNA전(나고야 돔)에서 7이닝 중간까지 1실점으로 호투하며 2017년 이후 첫 승리를 거두었다. 4월 30일 자이언츠전(도쿄돔)에서 구단에서 헤이세이 시대 마지막 승리 투수가 되었고, 5월 7일 히로시마전(나고야 돔)에서는 세 리그에서 레이와 시대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 또한 8월 13일 한신전(나고야 돔)에서 통산 1000투구 이닝을 달성했고, 9월 14일 한신전(나고야 돔)에서는 NPB에서 81번째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이 해에는 4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1년간 로테이션을 지키며 2년 만에 규정 투구 이닝에 도달했고, 첫 최우수 평균자책점을 획득하는 등 부활의 시즌이 되었다. 오프 시즌에 7000만 엔 증가한 1억 3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구단으로부터 3년 계약을 제안받았지만, 1년 계약을 선택했다.
2020년 6월 19일 야쿠르트와의 개막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개막전 투수를 맡았지만, 4이닝 8안타 6실점으로 강판되었다. 이후에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6경기에 등판한 시점에서 0승 3패, 평균자책점 4.04의 성적을 거두었지만, 국내 FA 자격을 취득한 7월 31일 야쿠르트전(나고야 돔)에서는 9이닝 3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며 7번째 등판 경기에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 경기부터 9월 1일 히로시마전(나고야 돔)까지 구단 최다 타이 기록인 5경기 연속 완투승을 거두었다. 9월에는 평균자책점 1.35(리그 2위), 40투구 이닝, 42탈삼진(이상 리그 1위) 등의 성적이 평가되어 5년 만에 월간 MVP를 수상했다. 10월 22일 DeNA전(나고야 돔)에서는 9월 15일 히로시마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 2회부터 이어온 연속 이닝 무실점을 "41"로 만들어 1956년 오야네 히로오미를 넘어 구단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22일 9회까지 이어져 역대 12위인 "45"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11월 11일에는 시즌 중에 취득한 국내 FA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3년 총액 9억 엔+성과급으로 잔류하기로 대략 합의했다는 것이 발표되었다.
최종적으로 20경기에 등판하여 2년 연속 리그 최다 투구 이닝인 148.2이닝을 기록하고, 5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평균자책점 1.82, 148탈삼진으로 최우수 평균자책점과 첫 최다 탈삼진을 획득하여 투수 2관왕을 달성했다. 2년 연속 최다 투구 이닝과 최우수 평균자책점을 달성한 것은 1957년-1958년 이나오 가즈히사 이후 두 번째이다. 45이닝 연속 무실점과 양 리그 최다인 10완투 6완봉이 평가되어, 중일에서는 가와카미 노부노부 이후 16년 만에 첫 사와무라상을 수상했다. 또한 8월·10월 월간 MVP와 연간 최우수 배터리상을 포수
3. 1. 1. 국가 대표 경력
2012년 비시즌에 오노 유다이는 쿠바 국가대표 야구팀과의 경기를 위해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26] 2012년 11월 6일, 侍재팬 매치 2012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11월 16일 제1차전 (후쿠오카 돔)에서 8회 초 1사부터 등판하여 2/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212]2013년 11월, 오노는 중화 타이베이 국가대표 야구팀과의 경기를 위해 다시 한번 사무라이 재팬(Samurai Japan) 팀에 선발되었다.[27] 2013년 10월 28일, 타이완에서 개최된 "2013 BASEBALL CHALLENGE 일본 VS 차이니스 타이페이"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2015년 7월 16일, 11월에 개최되는 제1회 WBSC 프리미어12 일본 대표팀 1차 후보 선수로 선발되었다.[213][214][215] 10월 9일, 그는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다.[29]
2016년 시즌 개막 전 3월에 개최된 야구 차이니스 타이페이 대표팀과의 강화 경기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216]
2019년 오프 시즌 11월에 개최된 제2회 WBSC 프리미어12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217] 2회 연속 2번째 선발이 되었다. 2019년 10월 1일, 그는 2019 WBSC 프리미어12(2019 WBSC Premier12)에 선발되었다.[30]
2021년 6월 16일, 도쿄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218] 오노는 준준결승 미국전에서 구원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219] 오노의 등판은 이 한 경기에 그쳤지만, 팀은 금메달을 획득했다. 시상식에서 오노는 금메달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8월 3일에 사망한 기노시타 유우스케에게 금메달 획득을 보고했다.[220] 또한 금메달 획득의 영예를 기념하여 같은 해 12월 16일, 나고야시 히가시구 나고야 돔(반테린돔 나고야) 2층 오픈 데크 1번 게이트 부근에 기념 골드 포스트(31호)가 설치되었다(골드 포스트 프로젝트[221]).
년 도 | 대 표 | 등 판 | 선 발 | 승 리 | 패 전 | 세 | 이브 | 타 자 | 투 구 회 | 피 안 타 | 피 홈 런 | 사 구 | 고 의 | 사 구 | 탈 삼 진 | 폭 투 | 볼 | 넷 | 실 점 | 자 책 점 | 방 어 율 |
---|---|---|---|---|---|---|---|---|---|---|---|---|---|---|---|---|---|---|---|
2015 | 일본 | 2 | 0 | 0 | 0 | 0 | 13 | 3.2 | 4 | 0 | 0 | 0 | 0 | 3 | 0 | 0 | 1 | 1 | 2.45 |
2019 | 3 | 0 | 2 | 0 | 0 | 19 | 5.0 | 5 | 1 | 3 | 0 | 0 | 7 | 0 | 0 | 1 | 1 | 1.80 | |
출전: 2회 | 5 | 0 | 2 | 0 | 0 | 32 | 8.2 | 9 | 1 | 3 | 0 | 0 | 10 | 0 | 0 | 2 | 2 | 2.08 |
3. 2. 수상 및 타이틀 경력
3. 2. 1. 타이틀
최우수 평균 자책점 : 2회(2019년, 2020년) ※2년 연속은 스가노 도모유키에 이어 센트럴 리그 공동 2위, 좌완 투수로는 역대 5번째[22][23]최다 탈삼진 : 1회(2020년)[23]
3. 2. 2. 수상
- 사와무라 에이지상 : 1회(2020년)[23]
- 월간 MVP : 2회(2015년 5월, 2020년 9월) ※투수 부문
- 최우수 배터리상 : 1회(2020년) ※포수: 기노시타 다쿠야
- 월간 최우수 배터리상 : 2회
- * 2020년 8월 ※포수: 기노시타 다쿠야
- * 2020년 10월 ※포수: 기노시타 다쿠야
3. 3. 개인 기록
; 투수 기록- 첫 등판·첫 선발: 2011년 10월 1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22차전(도쿄 돔), 4이닝 7실점(6자책점)으로 패전 투수[288][289]
- 첫 탈삼진: 상동, 2회말에 사카모토 하야토로부터 헛스윙 삼진
- 첫 승리·첫 선발 승리: 2012년 7월 11일, 한신 타이거스 11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5⅓이닝 1실점[290]
- 첫 홀드: 2012년 10월 3일, 한신 타이거스 24차전(나고야 돔), 7회말 무사에 3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291][292]
- 첫 완투·첫 완투 승리: 2013년 9월 26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23차전(나고야 돔), 9이닝 1실점 8탈삼진[293]
- 첫 완봉 승리: 2014년 7월 2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13차전(나고야 돔), 9이닝 7탈삼진, 5피안타, 무4사구[294]
; 타격 기록
- 첫 타석·첫 안타 : 2011년 10월 1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22차전(도쿄 돔), 3회초 사와무라 타쿠이치를 상대로 유격수 내야 안타
- 첫 타점: 2014년 9월 1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23차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 6회초 나가카와 카츠히로를 상대로 2루수 땅볼 사이 [295][296]
; 주요 기록
- 1000투구 이닝: 2019년 8월 13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19차전(나고야 돔), 1회말 1사에 콘모토 코우스케를 상대로 1루수 땅볼 [297]※ 역대 355번째
- 1000탈삼진: 2021년 5월 2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9차전(반테린 돔 나고야), 7회말에 히로오카 다이시를 상대로 삼진(헛스윙) ※ 역대 152번째
- 1500투구 이닝: 2023년 4월 4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1차전(반테린 돔 나고야), 2회초 1사에 무라카미 무네타카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 ※ 역대 183번째 [298]
; 기타 기록
- 노히트노런: 2019년 9월 14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23차전(나고야 돔), 9이닝 9탈삼진 1사사구(1볼넷 0사구)※ 역대 81번째, 92번째
- 1경기 29명 연속 아웃: 2022년 5월 6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6차전(반테린 돔), ※ 10회 2사까지 퍼펙트 피칭, 프로야구 신기록
- 개막전 투수: 4회 (2016년, 2017년, 2020년, 2022년)
- 올스타전 출전: 3회 (2014년, 2015년, 2022년)
3. 3. 1. 투수 기록
- 첫 등판·첫 선발: 2011년 10월 1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22차전(도쿄 돔), 4이닝 7실점(6자책점)으로 패전 투수[288][289]
- 첫 탈삼진: 상동, 2회말에 사카모토 하야토로부터 헛스윙 삼진
- 첫 승리·첫 선발 승리: 2012년 7월 11일, 한신 타이거스 11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5⅓이닝 1실점[290]
- 첫 홀드: 2012년 10월 3일, 한신 타이거스 24차전(나고야 돔), 7회말 무사에 3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291][292]
- 첫 완투·첫 완투 승리: 2013년 9월 26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23차전(나고야 돔), 9이닝 1실점 8탈삼진[293]
- 첫 완봉 승리: 2014년 7월 2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13차전(나고야 돔), 9이닝 7탈삼진, 5피안타, 무4사구[294]
3. 3. 2. 타격 기록
3. 3. 3. 기록 달성 경력
통산 1000탈삼진: 2021년 5월 2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전 (반테린 돔 나고야)에서 7회초에 히로오카 다이시로부터 루킹 삼진으로 달성. 역대 152번째.[311]3. 3. 4. 기타
- 노히트 노런 : 2019년 9월 14일, 대 한신 타이거스 23차전(나고야 돔), 9이닝 9탈삼진 1사사구(1볼넷 무사구) ※역대 81명째, 92번째[20][21]
- 올스타전 출장 : 2회(2014년, 2015년)
- 개막전 선발 투수 : 3회(2016년 ~ 2017년, 2020년)
3. 4. 투구 스타일
오노는 오버핸드 투구폼[31][32]으로 투구하며, 평균 시속 약 142km/h, 최고 시속 152km/h의 포심 패스트볼을 구사한다.[33] 또한, 시속 100km/h대의 포크볼, 커브볼,[34] 두 가지 종류의 슬라이더, 그리고 낙차가 큰 투심 패스트볼을 던진다.[31] 아마추어 시절에는 상체를 강하게 사용하는 투구폼 때문에 부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오노 본인은 폼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227] 2020년 투구 데이터에 따르면 포심 51%, 싱커 36%, 슬라이더 13%의 비율로 투구하며, 평균 구속은 포심 146km/h, 싱커 136km/h, 슬라이더 130km/h이다.3. 5. 연도별 투수 성적
연도 | 소속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4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사구 | 몸에 맞는 볼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2011년 | 주니치 | 1 | 1 | 0 | 0 | 0 | 0 | 1 | 0 | 0 | .000 | 22 | 4.0 | 9 | 2 | 1 | 0 | 0 | 2 | 1 | 0 | 7 | 6 | 13.50 | 2.50 |
2012년 | 9 | 8 | 0 | 0 | 0 | 4 | 3 | 0 | 1 | .571 | 188 | 44.2 | 40 | 1 | 14 | 1 | 3 | 41 | 3 | 0 | 15 | 13 | 2.62 | 1.21 | |
2013년 | 25 | 25 | 1 | 0 | 1 | 10 | 10 | 0 | 0 | .500 | 624 | 146.1 | 151 | 12 | 43 | 1 | 5 | 117 | 3 | 0 | 65 | 62 | 3.81 | 1.33 | |
2014년 | 25 | 25 | 3 | 1 | 1 | 10 | 8 | 0 | 0 | .556 | 682 | 165.0 | 156 | 14 | 47 | 0 | 6 | 119 | 3 | 0 | 60 | 53 | 2.89 | 1.23 | |
2015년 | 28 | 27 | 6 | 3 | 1 | 11 | 10 | 0 | 1 | .524 | 826 | 207.1 | 169 | 12 | 47 | 1 | 3 | 154 | 1 | 0 | 67 | 58 | 2.52 | 1.04 | |
2016년 | 19 | 19 | 3 | 1 | 1 | 7 | 10 | 0 | 0 | .412 | 547 | 129.2 | 126 | 11 | 37 | 0 | 2 | 85 | 0 | 0 | 59 | 51 | 3.54 | 1.26 | |
2017년 | 24 | 22 | 2 | 1 | 0 | 7 | 8 | 0 | 0 | .467 | 629 | 147.2 | 143 | 17 | 51 | 0 | 6 | 117 | 0 | 0 | 71 | 66 | 4.02 | 1.31 | |
2018년 | 6 | 6 | 0 | 0 | 0 | 0 | 3 | 0 | 0 | .000 | 130 | 27.1 | 32 | 7 | 19 | 0 | 0 | 21 | 1 | 0 | 27 | 26 | 8.56 | 1.87 | |
2019년 | 25 | 25 | 2 | 2 | 0 | 9 | 8 | 0 | 0 | .529 | 696 | 177.2 | 132 | 18 | 43 | 2 | 2 | 156 | 2 | 0 | 52 | 51 | 2.58 | 0.98 | |
2020년 | 20 | 20 | 10 | 6 | 2 | 11 | 6 | 0 | 0 | .647 | 559 | 148.2 | 106 | 13 | 23 | 2 | 0 | 148 | 3 | 0 | 33 | 30 | 1.82 | 0.87 | |
2021년 | 22 | 22 | 1 | 0 | 1 | 7 | 11 | 0 | 0 | .389 | 566 | 143.1 | 121 | 12 | 26 | 1 | 2 | 118 | 1 | 0 | 48 | 47 | 2.95 | 1.03 | |
통산 : 11년 | 204 | 200 | 28 | 14 | 7 | 76 | 78 | 0 | 2 | .494 | 5469 | 1341.2 | 1185 | 119 | 351 | 8 | 29 | 1078 | 18 | 0 | 504 | 463 | 3.11 | 1.14 |
- 2021년 시즌 종료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 2017년에는 포스트시즌 시상식 후보에 오르기 위한 이닝 수 제한을 통과한 유일한 드래곤즈 선발투수였다.[17]
- 2018년에는 개막전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었고, 단 6경기에 출전하여 0승 3패, 8.5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18]
- 2019년에는 4월 30일에 헤이세이 시대(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승리 투수가 되었고, 5월 7일 히로시마 카프(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레이와 시대(레이와 시대) 최초의 센트럴 리그 완봉승을 기록했다.[19] 9월 14일에는 한신 타이거스(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100번째 노히트 노런(세계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에 따름)을 달성했다.[20][21]
- 2020년에는 사와무라상을 수상했다. 1.82의 평균자책점, 10경기 완투, 6경기 완봉승, 148⅔이닝, 148탈삼진으로 센트럴 리그를 이끌었다.[23]
3. 6. 연도별 수비 성적
기
살
살
책
살
비
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