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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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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세번은 삼번의 난의 주요 인물인 오주의 초대 황제 오삼계의 손자이자, 오주의 2대 황제이다. 1678년 오삼계가 사망한 후 황위에 올랐으나, 청군의 공세에 쿤밍에서 자결하며 오주는 멸망했다. 오세번의 죽음으로 삼번의 난이 종결되었고, 청나라가 중국을 직접 지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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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번
기본 정보
우 (吳)
왕조우저우 (吳周)
통치
계승우저우 왕조의 황제
재위 기간1678년–1681년
이전오삼계
연호홍화 (洪化)
연호 기간1679년–1681년
가족
배우자 종류배우자
배우자곽황후
아버지오응웅
어머니격순공주
출생과 사망
출생일1663년
사망일1681년 12월 7일 (향년 18-19세)
사망지쿤밍, 윈난성, 청나라

2. 생애

오세번은 오삼계의 손자이자, 오응웅과 화석각순공주(태종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오세림의 이복동생이다. 할아버지 오삼계가 삼번의 난을 일으켜 오주를 건국하고 초대 황제가 되었다.

2. 1. 황제 즉위와 최후

삼번의 난의 주요 인물이자 오주의 초대 황제인 할아버지 오삼계의 황위를 계승하여 연호를 홍화(洪化)라 하였다.[2] 그러나 쇠퇴하고 있는 오주는 청군을 막아내지 못하였고 오세번은 피난하던 도중 청군에 포위되어 쿤밍에서 자살하였다.[3]

소무제(昭武帝)의 손자이자, 오응웅과 화석각순공주(태종 홍타이지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오세림의 이복동생이다. 소무(昭武) 원년(1678년)에 즉위한 조부가 곧바로 승하하자 즉위하였으나, 조부의 죽음으로 청군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호남(湖南)을 시작으로 장사(長沙), 중경(重慶), 성도(成都)를 차례로 함락시켰고, 홍화(洪化) 4년(1681년)에 피신했던 쿤밍이 청군에 함락되자 스스로 목을 매 자결하였고, 이로써 오주는 멸망하였다. 이 무렵 평남왕(平南王) 상지신, 경남왕(靖南王) 갱정충 두 왕의 봉토도 삭탈되면서 삼번의 난은 진압되었다.

강희제(康熙) 22년(1683년)에는 대만의 정씨 정권도 청에 항복하였고, 이로써 청의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 체제가 완성되었다.

3. 삼번의 난 종결과 청의 지배

오삼계의 손자이자, 오응웅(呉応熊)과 화석각순공주(和碩恪純公主)(태종 홍타이지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오세림(呉世霖)의 이복동생이다. 1678년 조부 오삼계가 소무제로 즉위하였으나 곧 사망하자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그러나 조부의 죽음으로 청군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호남을 시작으로 장사, 중경, 성도를 차례로 함락시켰고, 1681년 피신했던 쿤밍이 청군에 함락되자 스스로 목을 매 자결하였고, 이로써 주(周)는 멸망하였다. 이 무렵 평남왕 상지신, 경남왕 갱정충 두 왕의 봉토도 삭탈되면서 삼번의 난(三藩の乱)은 진압되었다.

1683년에는 대만의 정씨 정권도 청에 항복하였고, 이로써 청의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 체제가 완성되었다.

4. 가계

항목내용
조부오삼계[1]
오응웅[1]
오세림 (이복형)[1]


참조

[1] ECCP Wu San-kuei
[2] 웹사이트 연호 https://terms.naver.[...]
[3] 웹사이트 내용 https://terms.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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