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수 (소설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오영수는 1909년 울산에서 태어난 소설가이다. 1949년 단편소설 〈남이와 엿장수〉(개명 후 <고무신>)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이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머루〉가 당선되었다. 그의 작품은 어린이의 순수한 세계, 현실 고발, 자연과 고향에 대한 회귀 등을 다루었으며, 한국문인협회상, 아시아자유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수상했다. 1979년 사망 후 오영수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오영수문학상이 제정되었고, 울산에는 오영수 문학관이 건립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고쿠가쿠인 대학 동문 - 와타나베 슌스케
와타나베 슌스케는 언더핸드 투구 폼을 가진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활약하며 2005년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이후 코치와 감독을 역임했다. - 고쿠가쿠인 대학 동문 - 시마 모토히로
시마 모토히로는 뛰어난 수비와 타격으로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한 일본의 야구 선수 출신 지도자로, 라쿠텐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야쿠르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동일본 대지진 당시 감동적인 연설로도 알려져 있다. - 울주군 출신 - 정인섭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영문학자, 평론가인 정인섭은 해외문학파 형성, 신극 운동, 민속학 연구에 기여했으나, 친일 활동으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등재되었고, 해방 후에는 시 번역에 힘쓰며 번역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 울주군 출신 - 신격호
신격호는 롯데그룹의 창업주로서, 일본에서 롯데를 10대 재벌로 성장시킨 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하여 그룹을 확장했으나, 경영권 분쟁과 여러 논란에 휘말린 기업인이다. - 해주 오씨 - 오탁근
오탁근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검찰총장 및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검사로 활동하다 10·26 사건 처리 후 강제 퇴임, 이후 법무부 장관, 한국가스공사 이사장, 변호사 등으로 활동했다. - 해주 오씨 - 오세훈
오세훈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으며, 국회의원, 변호사, 방송인으로 활동하다 서울시장에 4선 당선되었다.
오영수 (소설가)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오영수 |
한자 표기 | 吳永壽 |
로마자 표기 | O Yeongsu |
출생일 | 1909년 2월 11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
사망일 | 1979년 5월 15일 |
사망지 | 경상남도 |
직업 | 소설가 |
학력 | |
학력 | 일본 도쿄 고쿠인 국민예술학원 전문학사 |
작품 활동 | |
활동 기간 | 1949년 ~ 1979년 |
장르 | 소설, 평론, 희곡, 수필 |
대표 작품 | (こだま) (睡蓮) |
가족 | |
배우자 | 김정선 |
자녀 | 오윤(아들) |
기타 | |
소속 | 前 춘천교육대학 초빙교수 |
호 | 월주(月洲), 난계(蘭溪) |
2. 생애
1909년 2월 11일 경상남도 언양군 언양읍(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서 태어났다.[19][3] 언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나니와 중학교와 도쿄 고쿠인 국민예술학원을 졸업했다.[19][4] 귀국 후 경남여자고등학교, 부산중학교 등에서 교직 생활을 했다.[5]
1949년 단편 소설 〈남이와 엿장수〉(이후 〈고무신〉으로 개명)를 발표하고, 1950년 〈머루〉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19][9] 1954년 서울로 이주하여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 창간에 참여했으며, 1966년까지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6][10] 그의 작품은 주로 어린이의 순수한 세계, 따뜻한 인간미와 인정, 자연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다루었다. 대표작으로는 단편집 《머루》, 《갯마을》, 《메아리》 등이 있다.
1955년 제1회 한국문인협회상, 1959년 제7회 아시아 자유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11] 1977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78년 문화훈장을 받았다. 민중판화가 오윤은 그의 아들이다.
한편, 수필 〈특질고〉 발표 후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일로 말년에 마음고생을 겪으며 지병인 간암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9년 5월 15일 울산 자택에서 간암으로 향년 71세로 별세했으며,[19][8] 언양읍 화장산 선영에 안장되었다.[19]
2. 1. 유년 시절과 교육
1909년 2월 11일, 경상남도 언양군 언양읍(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상북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19][3] 어린 시절에는 전통 교육기관인 서당에서 공부했으며,[4] 1926년 언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19]1933년 일본 오사카에 있는 나니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했다.[19] 이후 니혼 대학에 진학하여 공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각기병에 걸려 학업을 중단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4] 1937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일제의 일본군 '자원' 징집을 피하기 위해 곧 한국으로 돌아왔다.[4] 이후 다시 일본으로 가 1941년 도쿄 고쿠인 국민예술학원을 졸업했다.[19][4]
귀국 후, 일제의 지배를 피해 잠시 만주로 가기도 했으나[4] 곧 한국으로 돌아와 1942년 결혼했다.[4] 이듬해인 1943년 어머니가, 1944년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4] 1945년 기장면(당시 동래군)으로 이사하여 부산 인근의 경남여자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5]
2. 2. 교직 생활과 문단 활동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경남여자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5] 1952년에는 부산중학교로 자리를 옮겼다.[5] 1966년에는 춘천교육대학교의 초빙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문단 활동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부터 1937년 사이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동시를 발표하며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소설가로서의 등단은 1949년 단편 소설 〈남이와 엿장수〉(이후 〈고무신〉으로 개작)를 《신천지》에 발표하면서부터이다.[9] 1950년에는 단편 〈머루〉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9] 1952년에는 〈삼촌〉을 《사병문고》에, 〈화산 부인〉을 《문예》에 발표했다.[5]
1954년 서울로 이주하여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 창간 준비를 도왔으며[6], 창간 이후 1966년까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10] 《현대문학》 편집장 재직 시절 〈봄의 각성〉, 〈철새〉, 〈섬처녀〉 등 약 30편의 단편을 발표했고[5], 다른 문예지에도 〈방앗간의 죽음〉 등을 기고했다. 1966년 위궤양이 악화되어 《현대문학》 편집장직을 사임했다.[7]
1955년 한국문인협회상, 1959년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11] 1968년에는 총 90편의 단편을 모아 《오영수 전집》(전 5권)을 간행했다.[12] 1976년에는 신민당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말년인 1977년에는 여섯 번째 단편집 《황혼》을 출간했으며, 1978년 마지막 단편집을 발표하고 예술원상과 문화훈장을 받았다.
한편, 특정 지역에 대한 고정관념을 담은 수필 〈특질고(特質考)〉를 발표하여 문단 내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비판이 오롯이 작가 개인에게만 향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로 인해 말년에 심적인 고통을 겪으며 지병인 간암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3. 작품 활동과 수상 경력
1935년부터 1937년까지 첫 귀국 시기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동시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1949년에는 《신천지》에 첫 소설 「남이와 엿장수」(이후 「고무신」으로 개명)를 발표했고, 같은 해 「머루」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했다.[19][9] 이어 발표한 「들포도」로 서울신문에서 상을 받았다.[9]1952년에는 「삼촌」을 사병문고에, 「화산 부인」을 《문예》에 발표했다. 1954년부터 1966년까지 《현대문학》 편집장으로 재직하며[10] 「봄의 각성」, 「철새」, 「섬처녀」 등 약 30편의 단편 소설을 발표했으며, 「방앗간의 죽음」 등 다른 정기 간행물에도 꾸준히 작품을 기고했다.
주요 저서로는 단편집 《머루》, 《갯마을》, 《메아리》 등이 있으며, 1968년에는 90편의 단편을 모은 5권짜리 《오영수 전집》을 출간했다.[12] 사망 3년 전에는 여섯 번째 단편집인 '''황혼'''을 출간했고, 1978년 마지막 단편집을 발표했다.
한편, 「특질고」를 발표하면서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동료 문학인들에게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작품 발표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비판의 책임을 오롯이 작가 개인에게만 묻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로 인해 말년에 문학 지성인의 양심 문제로 갈등하며 마음고생을 겪었고, 이는 지병 악화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수상 경력'''
2. 4. 타계와 사후
1979년 5월 15일 간암으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곡천리의 자택에서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19][8] 사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에 있는 화장산 선영에 묻혔다.[19]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3년부터 오영수문학상이 제정되어 매년 기성 작가 및 문학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수상작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19] 또한 2014년 1월 21일에는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오영수 문학관이 울산광역시에 개관하였다.[19]
3. 작품 세계
오영수는 1935년부터 1937년까지 첫 귀국 시기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동시를 발표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인으로 활동하다 1949년 잡지 『신천지』에 「고무신」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전향했다. 같은 해 잡지 『신세계』에 첫 소설 「나미와 타피맨」을 발표했고, 이어 발표한 「들포도」는 서울신문 신춘문예 공모에서 상을 받았다.[9] 1950년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머루」가 당선되어 정식으로 등단했다.
1952년에는 「삼촌」을 사병문고에, 「화산 부인」을 문예에 발표했다. 1954년부터 1966년까지 현대문학 편집장[10]으로 재직하며 「봄의 각성」, 「철새」, 「섬처녀」 등 약 30편의 단편을 발표했고, 다른 정기 간행물에도 「방앗간의 죽음」 등을 기고했다. 1955년 한국문인협회상, 1959년 아시아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11] 1968년에는 90편의 단편을 모은 5권짜리 전집을 출간했으며,[12] 사망 3년 전에는 여섯 번째 단편집 '''황혼'''을, 1978년에는 마지막 단편집을 발표하고 예술원상과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오영수의 작품 세계는 주로 어린이의 순수성, 인정세태와 현실 비판, 자연과 고향 회귀라는 세 가지 경향으로 나뉜다. 그는 한국의 소박한 서정을 바탕으로 한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는다.
3. 1. 어린이의 순수성
오영수 작품의 주요 경향 중 하나는 어린이의 순수한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남이와 엿장수」, 「머루」, 「대장간 두칠이」, 「Y소년의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에서는 어른에게는 없는 어린이 특유의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이 동화처럼 그려진다.3. 2. 현실 고발과 인정 세태
오영수 작품의 두 번째 경향은 인정세태를 그리면서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화산댁이', '박학도', '여우', '명암' 등이 있다. 이 작품들에서 작가는 도시의 혼탁한 세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결국 인간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인정에 있다고 본다.3. 3. 자연과 고향에 대한 회귀
오영수 작품의 세 번째 경향은 자연과 고향에 대한 회귀 의식을 그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갯마을, 「메아리」, 「수련」, 「추풍령」 등이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작가는 인간이 태어난 고향을 잊을 수 없는 존재이며, 인간의 근원적인 고향은 자연이라는 생각을 보여준다. 오영수는 전형적인 단편소설 작가로서, 그의 작품 근본에는 한국의 소박한 서정이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4. 평가
오영수의 작품들은 분량이 짧고 대사가 간결하다는 특징이 있다.[13]
4. 1. 비판
최근 몇 년 동안 오영수는 황순원과 마찬가지로 구시대적이고, 현실 도피적이며, 민족적 또는 역사적 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평가가 낮아졌다.[14] 오영수는 작품에서 정치적인 내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거대 정치·경제 체제를 직접 비판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의 작품에는 이러한 체제가 일반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단면들이 담겨 있다는 평가도 있다.[14]5. 오영수 문학상 및 문학관
오영수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1993년부터 오영수문학상이 제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 상은 기성 작가 및 문학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수상작을 선정하여 시상한다. 또한, 2014년 1월 21일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울산광역시에 오영수 문학관이 개관하였다.
6. 대표작
오영수의 첫 작품 발표는 1935년부터 1937년까지의 첫 귀국 시기에 이루어졌는데, 당시 그의 동시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실렸다. 1949년에는 신세계잡지에 첫 소설 작품인 「나미와 타피맨」을 발표했고, 이어 발표한 「들포도」는 서울신문에서 상을 받았다.[9] 1952년에는 「삼촌」을 사병문고에, 「화산 부인」을 문예에 발표했다.
1954년부터 1966년까지 현대문학지 편집장[10]으로 재직하며 「봄의 각성」, 「철새」, 「섬처녀」 등 약 30편의 단편을 발표했고, 「방앗간의 죽음」 등 다른 정기 간행물에도 글을 기고했다. 1955년에는 한국문인협회상을, 1959년에는 아시아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11]
1968년에는 90편의 단편을 담은 5권짜리 전집을 출간했다.[12] 사망 3년 전에는 여섯 번째 단편집인 '''황혼'''을 출간했고, 1978년 마지막 단편집을 발표하고 예술원상과 정부의 문화훈장을 받았다.
주요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7. 가족 관계
참조
[1]
도서관
Oh Young-Soo Library
[2]
웹사이트
Author Database - Korea Literature Translation Institute
http://klti.or.kr/ke[...]
2013-09-03
[3]
도서관
O Yeong-su Library
[4]
서적
Who's Who In Korean Literature
Hollym
1996
[5]
서적
Good People
Heinemann Publishing
1986
[6]
서적
Good People
Heinemann Publishing
1986
[7]
서적
Good People
Heinemann Publishing
1986
[8]
서적
Good People
Heinemann Publishing
1986
[9]
서적
Good People
Heinemann Publishing
1986
[10]
서적
Good People
Heinemann Publishing
1986
[11]
서적
Who's Who In Korean Literature
Hollym
1996
[12]
서적
Good People
Heinemann Publishing
1986
[13]
서적
Good People
Heinemann Publishing
1986
[14]
웹사이트
Review: "The Good People" by Oh Yong-su
http://www.ktlit.com[...]
[15]
웹사이트
인물정보(人物情報)
http://people.search[...]
2014
[16]
웹사이트
한국문학번역원 문인DB 오영수
http://www.klti.or.k[...]
2014
[17]
웹사이트
한국현대문학대사전
http://terms.naver.c[...]
2014
[18]
웹사이트
국어국문학자료사전
http://terms.naver.c[...]
2014
[19]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etc.ulju.ulsa[...]
2018-05-14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