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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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기론은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개념으로, 특히 한국과 중국의 신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리(理)와 기(氣)의 관계를 중심으로, 우주의 원리와 인간의 심성을 설명하며, 주희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이기론은 '체'와 '용', '성'과 '정'의 관계를 통해 사물의 본질과 현상을 설명하며, 특히 조선 시대에는 이기론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논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조선의 이기론은 주리파와 주기파로 나뉘어 학문적 대립을 이루었으며, 사단칠정 논쟁과 같은 심오한 논의를 거치면서 한국 철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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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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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론 | |
유형 | 형이상학 |
철학 학파 | 성리학 |
주요 인물 | 정이 주희 이언적 이황 기대승 이이 |
주요 개념 | 이(理), 기(氣) |
특징 | 이(理)와 기(氣)의 관계 및 역할 규명 |
영향 | 조선 성리학의 주류 이론으로 발전 |
2. 이론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은 주희에 의해 확립되었으며, 존재론의 토대가 된다. 이기론에서 리(理)와 기(氣)는 본래 짝을 이루는 개념이 아니었으나, 송대에 신유학 체계가 정립되면서 세계를 구성하는 두 범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주희는 리와 기를 통해 자연과 인간을 아우르는 이론 체계를 구성하였다.[4]
주희에 따르면 우주 만물은 리와 기의 결합으로 존재한다. 리는 사물이 '그와 같이 이루어진 근거'이자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법칙'을 의미하며, 기는 이러한 근거와 법칙에 의거하여 현상 세계를 구성하는 실질적인 질료가 된다. 리는 형체를 갖지 않는 추상적인 원리이기에, 현상 세계에서 리의 실현은 기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리와 기는 존재론적으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不相離)이며, 동시에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의 범주를 달리하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는 관계(不相雜)이다.[4]
리와 기에는 도덕적인 선악(善惡)의 의미가 부여된다. 리는 절대적으로 선한 반면, 기에는 선과 악이 섞여 있다. 성리학에서는 각각의 사물에게 부여된 리를 성(性)이라고 하는데, 리가 보편적으로 동일한 만큼 만물의 본성 역시 똑같이 선하다고 본다. 그러나 기에는 맑음과 탁함, 온전함과 치우침(淸濁偏全) 등의 차이가 있어, 각각의 존재마다 선악의 정도 차이가 발생한다.[4]
이와 기는 서로 전혀 다른 것(決是二物)이지만, 현상의 세계는 모두 리의 법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므로 서로 떠나려 하지 않는다(不可分開). 우주의 시원(始源-본체)에서 현상으로 될 가능성을 가진 리와 기는 동시에 실재한다. 따라서 주희의 철학을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라 한다. 리와 기는 본래 선후를 말할 수 없지만, 그 근원을 미루어 보면 리가 먼저 있어야 한다. 주희는 기가 있으면 리가 있고, 기가 없으면 리가 없다 하여 이기동시(理氣同時)를 명백히 하였다.[1][5]
2. 1. 리와 기의 본래 의미
리는 본디 옥(玉)의 결이나 무늬를 뜻하는 단어로, 사물의 자연스러운 조리, 순조롭게 일을 이루기 위해 지켜야 할 질서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리 개념은 사상사적 변천을 거쳐 의미를 확장해 가는데, 특히 한·당대 불교적 사유의 영향을 받으며 그 추상적 성격이 강해진다. 송대 정주학(성리학)이 정립되면서 리는 우주를 이루고 만물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절대적인 법칙 내지 원리를 의미하게 된다.기 역시 중국 전통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개념 가운데 하나다. 기는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운동작용을 통해 세상만사를 이루는 모종의 에너지로, 인간을 비롯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생명은 기의 유행에 따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기는 비록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물은 아니지만, 만물을 이루는 기본 요소라는 점에서 물질적인 속성을 가진다. 자연현상과 인간 삶의 물리적·질료적 기반을 기로 보는 세계관은 신유학의 기 개념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3]
2. 2. 이기론의 성립
주희(朱熹)에 의해 확립된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은 존재론의 토대가 된다. 리(理)와 기(氣)는 본래 짝을 이루는 개념이 아니었으나, 중국 송대에 신유학 체계가 정립되면서 세계를 구성하는 두 범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주희는 별개의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리와 기를 대치시킴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아우르는 거대한 이론 체계를 구성하였다. 주희에 따르면 우주 만물은 리와 기의 결합으로 존재한다. 리는 천하의 사물이 '그와 같이 이루어진 근거[所以然之故]'이자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법칙[所當然之則]'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기는 그러한 근거와 법칙에 의거하여 현상 세계를 구성하는 실질적인 질료가 된다. 리는 추상적인 원리로서 형체를 갖지 않는 존재이기에, 현상 세계에서 리의 실현은 기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 면에서 존재론적으로 리와 기는 상보적이며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不相離]라 할 수 있다. 반면 리와 기는 각각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의 존재로 그 범주를 달리 하기에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는 관계[不相雜]이기도 하다.[4]리와 기에는 도덕적인 선악(善惡)의 의미가 부여된다. 선악의 관점에서 볼 때 리는 절대적으로 선한 반면, 기에는 선과 악이 섞여 있다. 성리학에서는 각각의 사물에게 부여된 리를 성(性)이라고 하는데, 리가 보편적으로 동일한 만큼 만물의 본성 역시 똑같이 선하다고 본다. 그러나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각각의 사물을 구성하는 기에는 맑음과 탁함, 온전함과 치우침[淸濁偏全] 등의 차이가 있다. 그러한 기의 차이에 따라 각각의 존재마다 선악의 정도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리는 만물에 공통적으로 내재한 동일성과 보편적인 선을 보장하는 개념이며, 기는 만물 간에 존재하는 차별성과 선악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4]
리와 기는 서로가 전혀 다른 것(決是二物)이지만, 현상의 세계는 모두 리의 법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므로 리와 기는 항상 서로 떠나려 하지 않는다(不可分開). 그러므로 우주의 시원(始源-본체)에서 벌써 현상으로 될 가능성을 가진 리와 기는 동시에 실재한다. 따라서 주희의 철학을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라 한다. 리와 기는 본래 선후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근원을 미루어 보면 모름지기 먼저 리가 있어야 한다. 본원에서 논한다면 리가 있은 뒤에 기(현상물)가 있는 것이요, 품부(稟賦, 현상)에서 논한다면 기가 있은 뒤에 리가 따라서 갖추어진다. 이 말은 우주 발생론적으로 리와 기의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리는 이기무선후(理氣無先後)의 형이상학이며 또 인식론적 고찰이다. 여기서 주희는 기가 있으면 리가 있고, 기가 없으면 리가 없다 하여 이기동시(理氣同時)를 명백히 하였다.[1][5]
2. 3. 체(體)·용(用)
이기론에서 이(理)와 기(氣)를 논할 때, 이(理)는 '체(體)', 기(氣)는 '용(用)'이라 한다. '체'는 움직이지 않는 본체로서 형이상자(形而上者)이고, '용'은 움직이는 작용으로서 형이하자(形而下者)이다. 여기서 말하는 형이상·형이하는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본체와 현상의 개념이 아니고, 움직임(동, 動)과 움직이지 않음(부동, 不動)의 작용면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므로 이(理)와 기(氣)는 모두 본체로서 형이상자를 가리킨다.[1]2. 4. 성(性)·정(情)
이기론에서 심성을 논할 때, '성(性)'은 본체로서의 리(理)를, '정(情)'은 작용으로서의 기(氣)를 나타내며, 리와 기는 각각 성과 정에 해당한다. 주희는 이기이원론의 관점에서 성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은 마음의 리이고, '정'은 성의 작용이며, 마음은 성과 정을 주재한다. 인(仁)·의(義)·예(禮)·지(智)는 '성'이고,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는 '정'이며, 인으로 사랑하고, 의로 미워하고, 예로 사양하고, 지로 아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성은 마음이 갖춘 리이고, 정은 성이 외부 대상과 접촉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맹자가 말한 인·의·예·지 4덕(四德)은 마음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으로 본체가 되고, 측은·수오·사양·시비의 마음작용인 4단(四端)은 정으로 작용이 되며, 마음은 성과 정을 합한 것으로 성과 정을 주재한다.[1]맹자가 말한 4단 외에도 정으로서 희(喜)·노(怒)·애(愛)·구(懼)·애(哀)·오(惡)·욕(欲)의 7정(七情)이 있다.[6] 또한, 4덕에 신(信)을 더하여 5상(五常)이라 하는데, 5상은 성의 덕으로서 여기에 해당한다.[1] 성의 선악 문제에 있어서, 주희는 장재와 정이의 성설을 이어받아 성을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누고, 본연지성은 리로서 순수하게 선하며, 기질지성은 리와 기를 겸하여 선과 악이 모두 있다고 한다. 이는 기존의 성설을 종합한 것이며, 이일분수설(理一分殊說)에 바탕을 두고 우주(하늘)와 인성(사람)을 일관되게 설명한 것이다.[1]
3. 이기론 논쟁
주희의 어류(語類)에 나타난 리와 기에 대한 설명은 전체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아 후대 학자들 간의 이해 차이를 낳았고, 이는 조선 유학에서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1]
4덕·5상·4단·7정 및 4정 등은 '이·기·성·정' 문제와 더불어 조선 유학의 치열한 논쟁을 촉발했다.[1] 특히 이황과 기대승, 이이와 성혼의 논쟁은 주리파와 주기파로 나뉘는 양대 진영의 대립을 낳으며 조선 철학계의 주요 논쟁점으로 자리 잡았다.
3. 1. 조선의 이기론
조선시대 이기론은 매우 심오하게 연구되었다. 주기파(主氣派)는 기(氣)를, 주리파(主理派)는 이(理)를 중심으로 보았다. 이황은 이(理)와 기(氣)가 모두 동(動)한다고 보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했고, 기대승은 이기공발설(理氣共發說)을 주장했다. 이 외에도 주리설과 주기설을 절충한 학자들도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극단적인 유리론(唯理論)과 유기론(唯氣論)으로 발전하기도 했다.[1]명대의 양명학(陽明學)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일부 학자들은 양명학을 연구했고, 양명학파(陽明學派)가 형성되었다. 심학(心學)이 크게 발전하면서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 또는 '사칠이기설(四七理氣說)'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많은 학자들이 등장했다.[1]
서경덕은 이기이원론(理氣二原論)을 일원론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태허(太虛)를 기(氣)의 본체로 보아 일기(一氣)이자 선천(先天)이라고 했고, '일기'가 음기와 양기의 이기(二氣)로 나뉘어 후천(後天)이 생긴다고 주장하여 주기적(主氣的) 경향을 보였다. 반면 이황은 이기이원론을 바탕으로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했다. 이는 기대승의 '이기공발설(理氣共發說)'과의 논쟁, 즉 퇴·고논쟁(退高論爭)을 일으켰다. 이 논쟁은 이이(李珥)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과 성혼(成渾)의 '이기분속설(理氣分屬說)' 간의 율·우논쟁(栗牛論爭)으로 이어졌다. 이황의 '이발(理發)'과 이이의 '기발(氣發)'이라는 상반된 견해는 주리파(主理派)와 주기파(主氣派)라는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심즉리(心卽理)'라는 극단적인 대립을 낳았고, 조선 철학계의 주요 논쟁점이 되었다. 주리파는 영남지방에서, 주기파는 경기·호서 지방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각각 영남학파, 기호학파라고 불렸다. 양쪽 모두 자신들의 학문적 근거를 성리학의 대가인 주희에게서 찾으려 했다. 주기파의 송시열과 한원진(韓元震)은 《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考)를 통해 주희의 어록을 자세히 조사하여 주기론의 근거를 제시했고, 주리파의 이진상(李震相)은 《이학종요》(理學宗要)에서 주희의 어록이 '이발'을 주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시열은 스승 김장생을 통해 이이의 기발이승을 이어받아 사단칠정이 모두 '기발'이므로 '사단'도 순선(純善)일 수 없고 '칠정'처럼 불선(不善)도 있다고 주장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1]
4. 조선시대 주요 학자들의 이기론
(요약 또는 참조할 원문 소스가 주어지지 않아, 작업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참조
[1]
간행물
조선전기의 철학사상[槪說]
글로벌 세계 대백과
[2]
인용문
[3]
서적
17세기 조선, 마음의 철학
[4]
서적
17세기 조선, 마음의 철학
[5]
인용문
[6]
문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의 4정(四情)이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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