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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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봉출은 1925년 경상남도 함안군 출생으로, 대한민국 해병대 장교이다. 1946년 해방병단에 입대하여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6.25 전쟁 당시 해병대 제25대대 대대장, 인천 상륙 작전 및 서울 탈환 작전에 참여했으며, 베트남 전쟁에서는 청룡부대 초대 여단장을 역임했다. 1971년 대한민국 해병대 부사령관을 지냈으며, 1992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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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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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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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이름 | 이봉출 |
한자 이름 | 李鳳出 |
로마자 표기 | Yi Bongchul |
출생일 | 1925년 1월 1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함안군 |
사망일 | 1992년 1월 12일 |
국적 | 대한민국 |
소속 정당 | 무소속 |
직업 | 군인 |
군 경력 | |
소속군 | 대한민국 해병대 |
복무 기간 | 1945년-1971년 |
최종 계급 | 준장 |
지휘 | 제2해병여단 |
참전 |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
주요 전투 | 전쟁 |
수상 | |
훈장 |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국 공로 훈장 |
경력 | |
주요 경력 | 해병대 중장 초대 청룡부대장 대한알루미늄 사장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부회장 |
군 복무 | 해병대사령부 부사령관 |
임기 | 1929년 2월 15일 ~ 1929년 11월 1일 |
2. 생애
이봉출은 1925년 1월 1일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태어났다.
2. 1. 출생과 성장
이봉출은 1925년 1월 10일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태어났다.[1] 1940년 일본 후쿠오카현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광복 후 1946년 2월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 신병 1기로 입대하였다.[1]2. 2. 군 경력
1946년 9월 대한민국 해군 소위로 임관했으며, 1949년 4월 대한민국 해병대 창설 후 해병대로 전출되었다.[1] 한국 전쟁 발발 당시 대위였던 이봉출은 제25해병대대대를 지휘했다.[1] 그는 이 부대를 이끌고 방어전을 벌여 부산 교두보의 최서단을 방어했고, 인천 상륙 작전과 서울 탈환 작전에서 부대를 이끌었다.[1] 1951년 1월, 서울 탈환 작전 중 김포 지역을 방어하는 독립 제9대대를 지휘했다.[1]퀀티코 해병대 기지 내 미국 해병대 학교를 졸업했다.[3]
남베트남에서 제2해병여단을 지휘했다.[4]
1971년 6월, 대한민국 해병대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5]
3. 활약
1946년 9월, 대한민국 해군 소위로 임관했으며, 1949년 4월 대한민국 해병대(ROKMC) 창설 후 해병대로 전출되었다. 한국 전쟁 발발 당시 대위였던 이봉출은 제25해병대대 지휘관으로 부산 교두보 최서단을 방어했다. 인천 상륙 작전과 서울 탈환 작전에 참가했다. 1951년 1월, 서울 탈환 작전 중 김포 지역을 방어하는 독립 제9대대를 지휘했다. 이후 미국 해병대 학교 (퀀티코 해병대 기지)에서 수학하였다. 1971년 6월, 대한민국 해병대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3. 1. 6.25 전쟁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할 당시 대한민국 해병대 제3중대장이었던 이봉출 대위는 해병대의 첫 전투인 7월 장항, 군산, 이리지구 전투[3], 낙동강 방어선 최서부 지역을 지킨 8월 진동리지구 전투[4]와 통영상륙작전, 그리고 9월 인천 상륙 작전[5]과 서울탈환작전[6] 등 주요 작전에 참가하였다. 특히 9월 22일~9월 23일 연희고지(現 궁동공원)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조선인민군의 마지막 서울 방어선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는 전공을 세웠다. 이듬해인 1951년 1월에는 김포 일대를 방어하는 독립 제5대대(영어 문서에는 제9대대로 표기)를 지휘했다. 1952년 11월에는 백령도, 연평도를 방어하는 서해부대를 지휘하여 서울의 해상관문을 지키는 해병대의 전통을 정착시켰다.[3]3. 2. 베트남 전쟁
1965년 9월, 이봉출 준장은 국군 최초의 해외파병 전투부대인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의 초대 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3. 2. 1. 베트남전쟁 당시 이봉출 장군 여하의 부대 편제
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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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해병대대 |
제2해병대대 |
제3해병대대 |
제5해병대대 |
제2야전포병대대 |
제628야전포병대대, 1포대 (육군) |
직접통제중대 |
군사정보대 |
근무중대 |
치료중대 |
공병소대 |
수색소대 |
군사경찰소대 |
4. 일화
1948년 10월 중순 경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해군사관학교 축구팀과 부산 팀과의 축구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에서 부산 선수들이 해사생도들에게 과격하게 태클을 하자, 이봉출은 권총을 빼들어 경고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1]
5. 업적
을지무공훈장[8]


미국 공로훈장[9]

충무무공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