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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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련정종은 니치렌이 사망한 후 교리적 분열을 겪다가, 메이지 유신 시기 여러 종파로 통합된 니치렌 불교의 한 종파이다. 1900년 후지파로 분리된 후 1913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으며, 다이세키지를 총본산으로 한다. 교리적으로는 니치렌을 본불로 숭상하며, 남묘호렌게쿄 염불을 통해 성불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삼보, 삼대비법 등을 중요하게 여기며,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입장을 취한다. 창가학회와의 갈등으로 1991년 창가학회와 국제창가학회를 파문했으며, 교리, 수행, 조직, 비판 등의 내용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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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정종 | |
---|---|
개요 | |
이름 | 일련정종 (日蓮正宗) |
로마자 표기 | Nichiren Shōshū |
영어 이름 | The Orthodox School of Nichiren |
종류 | 일련불교 |
설립자 | 니치렌 |
창립일 | 1253년 5월 4일 |
창립 장소 | 미노부, 이후 다이세키지로 이전 (1290년) |
본산 | 다이세키지 |
국가 | 일본 |
조직 | |
종정 | 니치뇨 쇼닌 |
신도 수 | 80만 명 이상 (2021년 1월 기준) |
경전 | |
주요 경전 | 법화경 |
기타 경전 | 니치렌의 어서 |
신학 | |
주요 내용 | 혼몬지 불교 |
삼대비법 | 본문의 본존 (본문계단의 대어본존), 본문의 계단 (본문의 본존 안치 장소), 본문의 제목 (본문의 본존을 향해 제목을 외는 것) |
기타 | |
웹사이트 | 일련정종 영어 웹사이트 |
종표 | 두루미 문양 |
2. 역사
니치렌이 사망한 후, 그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수 세기 동안 교리적 분열이 발생했다.[3] 메이지 유신 동안, 많은 니치렌 종파들이 제국 정부에 의해 여러 주요 종파로 통합되었다.[3] 1874년의 니치렌종, 1876년의 후주후세와 후주후세 코몬, 그리고 1891년의 겐폰 홋케슈, 혼몬 홋케슈, 혼묘 홋케슈, 홋케슈, 혼몬슈 등 5개의 상호 관련된 종파가 있었다.[3]
1253년(건장 5년) 4월 28일에 니치렌은 입종을 선포하고 자신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닛코 쇼닌은 니치렌의 정통 후계자임을 주장하며 다이세키지를 건립했다. 닛코는 니치렌이 불교 삼시에 그의 불교 수행을 전파하기 위해 선택했다고 믿고 있으며, 일련정종은 이 계통이 다음 문서들을 통해 부여되었다고 주장한다.(사본은 존재하며, 원본 문서는 오모스 혼몬지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1581년 다케다 가쓰요리의 군대에 의한 습격으로 도난당했다).[7]
- “니치렌이 평생에 걸쳐 전파한 법을 위탁하는 문서”(日蓮–期弘法付属書, ''니치렌 이치고 구호 후조쿠쇼'')
- “미노부 산을 위탁하는 문서”(身延相承書, ''미노부 산 후조쿠쇼'')
- “106개 조항”(百六箇抄, ''햐쿠 롯카쇼'')
1872년 (메이지 5년) 메이지 정부는 불교 각 파에 대해 천태종, 진언종, 정토종, 선종, 정토진종, 시종, 일련종의 7개 종파로 통합하여 각 파에서 관장 1명을 설치하도록 태정관 포고를 발표했다. 이후, 다이세키지와 그 말사는 1874년 (메이지 7년)까지는 일련종, 1874년부터 1876년 (메이지 9년)까지는 일련종 승열파, 1876년부터 1900년 (메이지 33년)까지는 일련종 흥문파 (1899년 (메이지 32년)에 본문종으로 개칭)에 각각 포함되었다.
이 기간 동안, 다이세키지 제54세 니치인은 1873년 (메이지 6년)에 교부성에 "다이세키지 일본사 독립 원"을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이세키지 제55세 닛푸는 분리 독립을 내무성에 청원했지만, 1884년 (메이지 17년)의 태정관 포고에 의해 철회되었다.
일련종 흥문파(본문종)의 관장은 8개의 본산이 1년 임기의 윤번제로 맡는 운영 형태였고, 다이세키지 제55세 닛푸가 1881년 (메이지 14년)부터 1882년 (메이지 15년)에 걸쳐 제4대, 다이세키지 제56세 닛코가 1891년 (메이지 24년)부터 1892년 (메이지 25년)에 걸쳐 제15대에 각각 취임했다.[29] 1884년 흥문 8산 회의에서, "총본산은 다이세키지이며, 혈맥상승의 적통 연면은 다이세키지의 관주직 외에는 없다"고 다이세키지는 주장했지만 다른 7개의 본산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85년 (메이지 18년) 흥문파 8산은 분리 분파 원을 내무성에 제출했지만, 수개월 후 철회했다. 1900년 다이세키지 제56세 닛코 대에 이르러 다이세키지의 분리 독립이 인가되어, '''일련종 후지파'''로 불리게 되었다. 1912년 (메이지 45년) 6월 7일, 다이세키지 제57세 니치쇼의 결정에 의해, '''일련정종'''이라는 종호가 정부의 인가를 받아 사용되기 시작했다.[30]
쇼와 시대에 종교 통제가 이루어지면서 종교단체법[31]이 1940년 (쇼와 15년)에 시행되었다. 1941년 (쇼와 16년) 3월 10일, 일련정종은 다이세키사 어영당에서 『승속 호법 회의』를 열고, "본종 600년래의 전통과 신조를 살리기 위해, 불순한 합종은 절대로 배척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다이세키사 제62세 닛쿄는 문부성 종무국장과 면회하여, 합종 반대와 단독 인가를 호소했고, 3월 31일자로 단독 종제 인가 결정이 나왔다.
1945년 (쇼와 20년) GHQ의 지령에 의해 종교 단체법이 폐지되었다.[31] 이후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일련정종의 신도 단체인 창가학회가 급성장했고, 일련정종의 규모도 이에 따라 확대되었다.[32] 그러나 1977년경부터 일련정종과 창가학회 양측 간에는 교의 해석 차이 등으로 관계 악화가 시작되었다.[32]
1979년 (쇼와 54년) 7월에 법주 닛타쓰가 사망하고, 닛켄이 뒤를 이었다. 창가학회와의 융화 노선은 지속되었다. 1980년 (쇼와 55년) 창가학회를 비판해 온 「정신각성운동」의 승려가 7월에 「정신회」를 결성하고, 8월에는 일련정종 측의 중지 명령을 무시하고 단도 대회를 개최했다. 이에 일련정종은 승려 201명을 징계 처분했다.[32] 1981년 (쇼와 56년) 정신회 측은 닛켄이 닛타쓰로부터 혈맥상승을 받지 않은 것과, 그 닛켄이 행한 징계는 무효라고 하는 통고장을 닛켄에게 보냈다. 또한 같은 달, 승려 약 180명이 일련정종과 닛켄을 상대로, 닛켄이 법주의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32](판결은 기각). 일련정종 측은 이 재판을 제기한 정신회 승려를 차례로 척폐 처분(승적 박탈)했다.[33]
1990년 (헤이세이 2년) 12월부터 일련정종과 창가학회 양측의 관계는 교의 해석 차이 등의 원인으로 인해 결정적으로 악화되었다. 1991년 (헤이세이 3년)부터 양측의 관계는 항쟁 상태가 되었다. 1991년 (헤이세이 3년) 11월에 일련정종은 창가학회에 대해 파문(처분)했다. 1990년 (헤이세이 2년) 파문 전 일련정종 신자 수는 창가학회원을 포함하여 공칭 1,784만 명이었으나, 2008년 (헤이세이 20년) 종교 연감에 기재된 일련정종 신자 수는 39만 6000명이다.
- 1990년 (헤이세이 2년)
- * 12월 27일: 일련정종(종문)이 이케다 다이사쿠(창가학회 명예 회장)를 법화강 총강두에서 파면(해임)했다.
- 1991년 (헤이세이 3년)
- * 11월 7일: 일련정종(종문)을 비방하고, 또한 화법·화의를 일탈한 창가학회는 외호 단체의 모습을 잃었다고 일련정종이 판단하여 창가학회에 대해 해산 권고를 실시했다.
- * 11월 28일: 일련정종(종문)이 창가학회 및 창가학회 인터내셔널(SGI)에 대해 파문(처분)했다.
- 1993년 (헤이세이 5년)
- * 호다이 묘혼지와 그 옛 말사 겐토쿠지·온폰지가 일련정종에서 이탈하여 단립이 되었다.
- 1998년 (헤이세이 9년)
- * 「종규」 일부 개정. 창가학회에 소속된 자를 제적.
- * 다이세키지 제67세 닛켄의 퇴좌 이후, 정신회 주직 사망으로 인해 25개 사찰이 정신회에서 일련정종으로 복귀.
- * 5월: 정본당 해체.
- 2002년 (헤이세이 14년)
- * 10월: 정본당을 대신하는 봉안당이 완성.
- 2005년 (헤이세이 17년)
- * 12월 16일: 제67세 법주 닛켄 퇴좌. 총본산 제68세 법주로 니치뇨 등좌, 일련정종 관장, 다이세키사 주직에 취임.
- 2019년 (레이와 원년)
- * 9월 20일: 제67세 (전) 법주 닛켄 사망 (96세).
- 2021년 (레이와 3년)
- * 2월 15일・16일: 종조 니치렌 대성인 어성탄 800년 경축 대법요
2. 1. 기원과 발전
니치렌이 사망한 후, 그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수 세기 동안 교리적 분열이 발생했다.[3] 메이지 유신 동안, 많은 니치렌 종파들이 제국 정부에 의해 여러 주요 종파로 통합되었다.[3]1253년(건장 5년) 4월 28일에 니치렌은 입종을 선포하고 자신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닛코 쇼닌은 니치렌의 정통 후계자임을 주장하며 다이세키지를 건립했다. 닛코는 니치렌이 불교 삼시에 그의 불교 수행을 전파하기 위해 선택했다고 믿고 있으며, 일련정종은 이 계통이 다음 문서들을 통해 부여되었다고 주장한다(사본은 존재하며, 원본 문서는 오모스 혼몬지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1581년 다케다 가쓰요리의 군대에 의한 습격으로 도난당했다).[7]
- “니치렌이 평생에 걸쳐 전파한 법을 위탁하는 문서”(日蓮–期弘法付属書, ''니치렌 이치고 구호 후조쿠쇼'')
- “미노부 산을 위탁하는 문서”(身延相承書, ''미노부 산 후조쿠쇼'')
- “106개 조항”(百六箇抄, ''햐쿠 롯카쇼'')
1900년에 다이세키지는 혼몬슈(本門宗)에서 분리되어 니치렌슈 후지하(日蓮宗富士派)로 이름을 변경했는데, 이는 당시 종파의 일반적인 명칭을 나타낸다. 1912년, 종파의 이름은 현재의 "일련정종(日蓮正宗)"으로 변경되었다.[4] 이 변경은 종파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다이쇼 천황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5]
2. 2. 현대
1945년 (쇼와 20년) GHQ의 지령에 의해 종교 단체법이 폐지되었다.[31] 이후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일련정종의 신도 단체인 창가학회가 급성장했고, 일련정종의 규모도 이에 따라 확대되었다.[32] 그러나 1977년경부터 일련정종과 창가학회 양측 간에는 교의 해석의 차이 등으로 관계 악화가 시작되었다.[32]- 1946년 (쇼와 21년)
- 사누키 혼몬지(기타야마 혼몬지 옛 말사)와 그 말사 10개 사찰이 니치렌종을 이탈하여 일련정종에 합류하였다.
- 1950년 (쇼와 25년)
- 시모조 묘렌지(구 혼몬종 본산, 흥문 팔본산 중 하나)와 그 말사 6개 사찰이 니치렌종을 이탈하여 일련정종에 합류하였다.
- 1956년 (쇼와 31년)
- 묘센지 (기타야마 혼몬지 옛 말사)가 니치렌종에서 이탈하여 일련정종에 합류하였다.
- 1957년 (쇼와 32년)
- 니시야마 혼몬지 (구 혼몬종 본산, 흥문 팔본산 중 하나)가 제49세 유이 닛코의 주도로, 본산 단독으로 니치렌종에서 이탈하여 일련정종에 합류하였다. 탑중·단신도의 반대파에 의해, 일련정종과의 합병 절차 무효 소송이 제기되었다.
- 호다 묘혼지 (구 혼몬종 본산, 흥문 팔본산 중 하나)와 그 말사 4개 사찰, 정선지 및 그 말사 5개 사찰이 니치렌종을 이탈하여 일련정종에 합류하였다. (호다 묘혼지는 나중에 이탈)
- 1958년 (쇼와 33년)
- 묘코쿠지(정선지 옛 말사)가 일련정종에서 이탈하여 단립이 되었다. (1976년〈쇼와 51년〉, 니치렌종에 재소속).
- 1960년 (쇼와 35년)
- 혼겐지(경왕산, 정선지 옛 말사), 충정사 (시모조 묘렌지 옛 말사)가 니치렌종을 이탈하여 일련정종에 합류하였다.
- 니시야마 혼몬지 제49세 유이 닛코 사망. 일련정종은 유이 닛코의 후계 지명에 따라 시모조 묘렌지의 전 관주 요시다 니치유를 후임으로 임명하였다.
- 1974년 (쇼와 49년)
- 묘신강(후의 겐쇼카이)을 강중 해산 처분하였다.
- 1975년 (쇼와 50년)
- 니시야마 혼몬지 재판에서 최고 재판 판결. 신도 측이 승소하여 니치유는 니시야마 혼몬지에서 퇴거하였다. 니시야마 혼몬지는 일련정종에서 이탈하여 단립 사찰이 되었다.
- 1977년 (쇼와 52년)
- 신도 단체인 창가학회가, 1월의 학부 대회에서, 회장 이케다 다이사쿠의 저작 「인간혁명」을 니치렌의 유문에 필적하는 어서로 위치시키는 등, 새로운 노선을 제시하였다(52년 노선). 이에 대해, 일련정종 측은 교의로부터의 일탈이라고 비판하고, 창가학회는 이듬해에 사죄하고 화해했지만, 비판은 계속되었다.
- 1979년 (쇼와 54년)
- 7월에 법주 닛타쓰가 사망하고, 닛켄이 뒤를 이었다. 창가학회와의 융화 노선은 지속되었다.
- 1980년 (쇼와 55년)
- 창가학회를 비판해 온 「정신각성운동」의 승려가 7월에 「정신회」를 결성하고, 8월에는 일련정종 측의 중지 명령을 무시하고 단도 대회를 개최했다. 이를 받아, 일련정종은 승려 201명을 징계 처분했다.[32]
- 1981년 (쇼와 56년)
- 정신회 측은 1월, 닛켄이 닛타쓰로부터 혈맥상승을 받지 않은 것과, 그 닛켄이 행한 징계는 무효라고 하는 통고장을 닛켄에게 보냈다. 또한 같은 달, 승려 약 180명이 일련정종과 닛켄을 상대로, 닛켄이 법주의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32](판결은 기각으로 확정). 한편, 일련정종 측은 이 재판을 제기한 정신회 승려를 차례로, 척폐 처분(승적 박탈)에 처했다.[33] 일련정종은 척폐 처분한 승려가 주지를 맡고 있는 사찰에 후임 주지를 파견했지만, 그것을 거부했다. 정신회 주지 아래, 일련정종에서 독립한 사찰이 약 150곳(일련정종 사찰의 4분의 1에 해당) 있었다.
- 1982년 (쇼와 57년)
- 혼켄지 (호다 묘혼지 옛 말사)는, 정신회 회원인 주지가 일련정종으로부터 척폐 처분을 받아, 일련정종과는 절연 상태가 되었다. 2019년 (헤이세이 31년), 정신회 주지의 사망으로 일련정종에 복귀하였다.
- 주지가 정신회 회원으로서 척폐 처분을 받은 사찰이 백 수십 곳. 그 대부분은 다이세키지와 함께 니치렌종 후지파(일련정종)의 설립에 참가한 사찰이나, 후지파 또는 일련정종의 사찰로서 건립된 사찰이다.
1990년 (헤이세이 2년) 12월부터 일련정종과 창가학회 양측의 관계는 교의 해석의 차이 등의 원인으로 인해 결정적으로 악화되었다. 1991년 (헤이세이 3년)부터 일련정종과 창가학회 양측의 관계는 항쟁 상태가 되었다. 1991년 (헤이세이 3년) 11월에 일련정종은 창가학회에 대해 파문(처분)했다. 1990년 (헤이세이 2년)의 파문 전 일련정종 신자 수는 창가학회원을 포함하여 공칭 1,784만 명이었으나, 2008년 (헤이세이 20년) 종교 연감에 기재된 일련정종 신자 수는 39만 6000명이다.
- 1990년 (헤이세이 2년)
- * 12월 27일: 일련정종(종문)이 이케다 다이사쿠(창가학회 명예 회장)를 법화강 총강두에서 파면(해임)했다.
- 1991년 (헤이세이 3년)
- * 11월 7일: 일련정종(종문)을 비방하고, 또한 화법·화의를 일탈한 창가학회는 외호 단체의 모습을 잃었다고 일련정종이 판단하여 창가학회에 대해 해산 권고를 실시했다.
- * 11월 28일: 일련정종(종문)이 창가학회 및 창가학회 인터내셔널(SGI)에 대해 파문(처분)했다.
- 1993년 (헤이세이 5년)
- * 호다이 묘혼지와 그 옛 말사 겐토쿠지·온폰지가 일련정종에서 이탈하여 단립이 되었다.
- 1998년 (헤이세이 9년)
- * 「종규」 일부 개정. 창가학회에 소속된 자를 제적.
- * 다이세키지 제67세 닛켄의 퇴좌 이후, 정신회 주직 사망으로 인해 25개 사찰이 정신회에서 일련정종으로 복귀.
- * 5월: 정본당 해체.
- 2002년 (헤이세이 14년)
- * 10월: 정본당을 대신하는 봉안당이 완성.
- 2005년 (헤이세이 17년)
- * 12월 16일: 제67세 법주 닛켄 퇴좌. 총본산 제68세 법주로 니치뇨 등좌, 일련정종 관장, 다이세키사 주직에 취임.
- 2019년 (레이와 원년)
- * 9월 20일: 제67세 (전) 법주 닛켄 사망 (96세).
- 2021년 (레이와 3년)
- * 2월 15일・16일: 종조 니치렌 대성인 어성탄 800년 경축 대법요
3. 교리
일련정종의 교리는 1279년 10월 12일에 종조인 니치렌이 도현한 본문계단(本門戒壇)의 대어본존(大御本尊)을 근본으로 한다.[6] 대어본존은 현재 총본산 다이세키지(大石寺) 봉안당(奉安堂)에 안치되어 있으며, 종조 출세의 본회(本懐)이자 구경(究境)인 대만다라이다. 일련정종은 니치렌을 외용(外用)으로는 법화경에 예언된 말법(末法)의 세상을 구제할 상행보살이며, 내증(内証)으로는 구원원초(久遠元初)의 자수용보신(自受用報身)의 재탄, 즉 본불(本佛)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종조를 니치렌대성인으로 칭한다.
닛코는 1282년에 이개상승(二箇相承)에 근거하여 종조로부터 유수일인(唯授一人)의 혈맥상승(血脈相承)을 받았다. 제3조 니치모쿠(日目上人), 제4조 니치도(日道上人), 제5세 니치교(日行上人)로 차례대로 전해져 현재의 법주(法主)는 제68세 상인이다.
현재 소의경전(所依経典)으로는 법화삼부경(法華三部経), 종조의 유문(遺文) (이를 어서(御書)라 칭한다.), 닛코의 유문, 제9세 니치우의 유문, 제26세 닛칸의 유문을 중시하며, 천태종 계통의 천태삼부(天台三部)인 마하지관(摩詞止観) 10권, 마하지관홍결(弘決), 법화현의(法華玄義) 10권과 법화현의석첨(釈籤), 법화문구(法華文句) 10권과 법화문구기를 방의(傍依)로 하여 인정하고 있다.
다보탑이나 석가, 다보여래 등의 불상 제작·숭배는 일절 금지되어 있다.[28]
일련정종은 다른 모든 종교를 근절하려 하며, 모든 형태의 종교 간 대화를 악하고 이단적인 것으로 맹렬히 거부하며, 어떠한 혼합주의도 창시자 니치렌이 가르친 법에 대한 "비방"(謗法, 호보)이라고 칭한다.[8] 또한 일련정종 외의 다른 종교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부정적인 업을 쌓게 하고, 심각한 벌, 재앙, 대대로 내려오는 고통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9]
3. 1. 기본 교리
일련정종은 1279년 10월 12일에 종조인 니치렌이 도현한 본문계단(本門戒壇)의 대어본존(大御本尊) (현재는 총본산 다이세키지(大石寺) 봉안당(奉安堂)에 안치되어 있음)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6] 니치렌을 말법(末法) 시대의 중생을 구제할 본불(本佛)로 존숭하며, 닛코로부터 현재의 법주(法主)까지 혈맥상승(血脈相承)이 이어진다고 믿는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経) 염불을 통해 누구든지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5]
소의경전(所依経典)으로는 법화삼부경(法華三部経), 니치렌의 유문(遺文) (이를 어서(御書)라 칭한다.), 닛코의 유문, 제9세 니치우의 유문, 제26세 닛칸의 유문을 중시하며, 천태종 계통의 천태삼부(天台三部)인 마하지관(摩詞止観) 10권, 마하지관홍결(弘決), 법화현의(法華玄義) 10권과 법화현의석첨(釈籤), 법화문구(法華文句) 10권과 법화문구기를 방의(傍依)로 하여 인정하고 있다.
신앙의 기본이 되는 삼보(三寶)는 다음과 같다.
- 불보(佛寶): 니치렌을 구원원초(久遠元初)의 불보로 한다.
- 법보(法寶):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経)의 본문계단의 대어본존을 법보로 한다.
- 승보(僧寶): 혈맥부법(血脈付法)의 시초인 제2조 닛코를 으뜸으로 하여 역대의 법주(法主)를 승보로 삼는다.
종탈상대, 니치렌 본불론을 제창하며, 다이세키지에 전해지는 본문계단 대어본존과 유수일인의 혈맥을 불법의 근본으로 삼는다. 기본적인 교의는 종교의 오강·종지의 삼과(三箇) (3대 비법)·혈맥상승이다. 종조를 본불로 받들고, 본문계단(本門戒壇)의 대어본존을 믿고, 제목을 외우면, 어떤 자라도 반드시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불교 각 종파에 따라 다양한 계율이 설해지고 있지만, 니치렌 정종에서의 계는 사악[26]과 지선[27]이다.
일련정종의 교리는 불교 경전의 천태 분류를 다음과 같이 확장한다.
'남묘호렌게쿄'는 니치렌 가르침의 본질적인 핵심 수행이며,[5] 이는 '어의구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남묘호렌게쿄'는 '어의구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10]
신독(Shindoku) | 중국어 | 산스크리트어 | 영어 | 일련정종의 해석 |
---|---|---|---|---|
남(Nam) | 南 無 | 나마스카라(Namaskar) | 헌신(Devotion) | 불교 이론과 종교적 실천 모두의 관점에서 묘법연화경의 전파와 진리를 구현하는 부처, 즉 대어본존 삼대비법의 나무 만다라인 니치렌에 대한 삶의 목적 헌신. |
묘호(Myoho) | 妙 法 | 삿달마(dharma) | 신비한 법(The "Mysterious Law") | 무지와 깨달음은 단일 실체이며, 지옥과 천국의 상태도 단일 본질이다. |
연화(Renge) | 蓮 華 | 푼다리카(Puṇḍarīka) | 네룸보 누시페라(Nelumbo nucifera) (연꽃) | 원인과 결과의 단일성 (업(karma)의 순환을 나타내는 이 꽃으로 상징됨) |
경(Kyo) | 經 | 경전(Sutra) | 불교 경전 또는 가르침 | 자비의 부처, 니치렌에 의해 구현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통한 모든 현상. |
3. 2. 삼보
일련정종에서 말하는 삼보(三寶)는 다음과 같다.- 불보(佛寶): 니치렌을 구원원초의 자수용보신불의 재탄이자 본불로 본다.
- 법보(法寶): 남묘호렌게쿄의 본문계단의 대어본존을 법보로 삼는다.
- 승보(僧寶): 닛코를 비롯한 역대 법주를 승보로 삼는다.[6]
이 종파는 불교의 삼보가 일련의 내적 깨달음을 똑같이 공유하는 단일하고 분리할 수 없는 실체라고 가르친다. 더 구체적으로, 이 종파는 부처와 법이 승가 사찰(헤이세이 신펜)에 의해 지속되고 유지된다고 가르친다. 신자들이 세 가지 불교 보물을 묘사하기 위해 이 종파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용어는 "불-법-승"이라고 불린다.
3. 3. 삼대비법
일련정종에서 말하는 독자적인 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존: 신앙의 근본 대상은 1279년 10월 12일에 종조인 니치렌이 도현한 본문계단의 대어본존이다. 대어본존은 현재 총본산 다이세키지(大石寺) 봉안당(奉安堂)에 안치되어 있으며, 종조 출세의 본회(本懐)이자 구경(究境)인 대만다라이다.
- 제목: 남묘호렌게쿄 염불
- 계단: 본문계단의 대어본존이 안치된 다이세키지
일련정종의 기본적인 교의는 종교의 오강·종지의 삼과(三箇) (3대 비법)·혈맥상승이다.[26][27] 종조를 본불로 받들고, 본문계단(本門戒壇)의 대어본존을 믿고, 題目을 외우면, 어떤 사람이라도 반드시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불교 각 종파에 따라 다양한 계율이 있지만, 니치렌 정종에서의 계는 사악(邪惡)과 지선(至善)이다.
일련정종은 '남묘호렌게쿄'가 니치렌 가르침의 핵심 수행이라고 가르치며,[5] 이는 '어의구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남묘호렌게쿄'는 '어의구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10]
신독(Shindoku) | 중국어 | 산스크리트어 | 영어 | 일련정종의 해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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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Nam) | 南無 | 나마스카라(Namaskar) | 헌신(Devotion) | 불교 이론과 종교적 실천 모두의 관점에서 묘법연화경의 전파와 진리를 구현하는 부처, 즉 대어본존 삼대비법의 나무 만다라인 니치렌 대성인에 대한 삶의 목적 헌신. |
묘호(Myoho) | 妙法 | 삿달마(dharma) | 신비한 법(The "Mysterious Law") | 무지와 깨달음은 단일 실체이며, 지옥과 천국의 상태도 단일 본질이다. |
연화(Renge) | 蓮華 | 푼다리카(Puṇḍarīka) | 네룸보 누시페라(Nelumbo nucifera) (연꽃) | 원인과 결과의 단일성 (업(karma)의 순환을 나타내는 이 꽃으로 상징됨) |
경(Kyo) | 經 | 경전(Sutra) | 불교 경전 또는 가르침 | 자비의 부처, 니치렌 대성인에 의해 구현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통한 모든 현상. |
3. 4. 기타 교리
일련정종은 다른 모든 종교나 종파를 "비방"(謗法, 호보)으로 간주하고 배격하며, 종교 간 대화나 혼합주의를 강하게 거부한다.[8] 다른 종교를 지지하는 것은 부정적인 업을 쌓아 심각한 벌, 재앙, 고통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9]인간은 과거와 현재 생의 업보와 조건에 따라 부모에게 다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며, 다른 생명체 또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는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스스로 업보를 생성하고 윤회한다고 가르친다. 여기에는 인간, 동물 및 기타 생명체가 포함되며, 이들은 우주에서 불교적 깨달음을 얻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한다.
일련정종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1052년 이후 현대 시대에 효력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니치렌이 법화경 21장에 예언된 종말론적 예언을 실현했다고 주장한다.[7]
일련정종에서 말하는 삼보는 다음과 같다.
- 불보(仏宝): 니치렌을 불교의 삼시대 중 현대와 영원히 지속되는 "진실한 근본 부처"로 본다.
- 법보(法宝): "묘법"이라고 불리는 ''남묘호렌게쿄''에 담긴 니치렌의 궁극적인 가르침을 의미한다. 이 묘법은 니치렌 자신의 내적 깨달음인 "내증"(内証)이며, 우주의 무한하고 신비로운 영원한 시점(久遠元初, "쿠온간조")에서 비롯된 "근본 진실한 부처"라고 가르친다. 또한, 이 깨달음이 대고본존 목판 만다라에 물리적으로 구현되어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졌다고 가르친다.
- 승보(僧宝): 닛코 쇼닌과 그의 계승된 역대 법주 계통, 그리고 일련정종의 교리와 교리를 가르치고 보호하며 보존하는 데 봉사하는 일련정종 사찰의 모든 사찰들을 의미한다.
일련정종은 불교의 삼보가 니치렌의 내적 깨달음을 똑같이 공유하는 단일하고 분리할 수 없는 실체라고 가르친다. 신자들이 세 가지 불교 보물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는 "불-법-승"이다.
'남묘호렌게쿄'는 니치렌 가르침의 핵심 수행이며,[5] '어의구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10]
신독(Shindoku) | 중국어 | 산스크리트어 | 영어 | 일련정종의 해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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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Nam) | 南 無 | 나마스카라(Namaskar) | 헌신(Devotion) | 불교 이론과 종교적 실천 모두의 관점에서 묘법연화경의 전파와 진리를 구현하는 부처, 즉 대어본존 삼대비법의 나무 만다라인 니치렌 대성인에 대한 삶의 목적 헌신. |
묘호(Myoho) | 妙 法 | 삿달마(dharma) | 신비한 법(The "Mysterious Law") | 무지와 깨달음은 단일 실체이며, 지옥과 천국의 상태도 단일 본질이다. |
연화(Renge) | 蓮 華 | 푼다리카(Puṇḍarīka) | 네룸보 누시페라(Nelumbo nucifera) (연꽃) | 원인과 결과의 단일성 (업(karma)의 순환을 나타내는 이 꽃으로 상징됨) |
경(Kyo) | 經 | 경전(Sutra) | 불교 경전 또는 가르침 | 자비의 부처, 니치렌 대성인에 의해 구현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통한 모든 현상. |
4. 수행
다른 대승 불교 수행과 달리 니치렌은 법화경을 유일한 정통 불교 수행으로 옹호했으며, 삶의 위치, 상황, 성별, 직업적 역할에 관계없이, 그리고 반드시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날 필요 없이, 누구든지 성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로 ''남묘호렌게쿄'' 염불을 제시했다.[6]
일련정종은 니치렌이 확립했다고 가르치는 세 가지 영적 수행과 그에 해당하는 세 가지 대비밀법은 다음과 같다.
- 계율: 매일의 불교 수행에 대한 불교 서약("수계") 유지, ''다이고혼존'' (최고의 예배 대상)
- 명상: "남묘호렌게쿄"("초대")를 염송하여 마음을 정화, ''다이모쿠'' (''남묘호렌게쿄''의 최고의 염송)
- 지혜: 주석사("개단")의 직무를 통해 종교의 가르침을 유지, ''다이세키지노 혼몬 카이단'' (''다이세키지'') (지혜의 권위 있는 직무를 근원으로 하는 본문의 높은 성역의 플랫폼)
법화경은 이 종파 가르침의 핵심 기반이며, "이적문"(1~14장)과 "본문"(15~28장)으로 나뉜다. 이적문은 석가모니 부처가 인도 보드가야에서 부처가 된 후 설법한 것이고, 본문은 인도에서의 깨달음이 임시적인 것이었고 실제로는 우주의 신비롭고 영원한 지점에서 이미 부처가 되었다고 선언한 내용이다. 이러한 해석으로 아미타여래, 대일여래, 약사여래 등은 하나의 근본 부처로 통합되었다.
법화경 제2장은 석가모니 부처 깨달음의 "씨앗"을 드러내지 않지만, 이 비밀은 허공장보살에 의해 제16장에서 니치렌에게 드러났고, 그는 남묘호렌게쿄의 공적 암송을 표현했다고 주장한다. 제2장 암송은 석가모니 부처가 가르친 다양한 종교와 불교 형태를 거부하고 폐지하겠다는 선언이고, 제16장 암송은 이 불교의 비밀("숨겨진 보물")을 구체화하며, 이를 통해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친다.
일련정종은 '남묘호렌게쿄'가 니치렌 가르침의 본질적인 핵심 수행이며,[5] '어의구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고 가르친다.[10]
신독(Shindoku) | 중국어 | 산스크리트어 | 영어 | 일련정종의 해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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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Nam) | 南 無 | 나마스카라(Namaskar) | 헌신(Devotion) | 대어본존 삼대비법의 나무 만다라인 니치렌 대성인에 대한 삶의 목적 헌신 |
묘호(Myoho) | 妙 法 | 삿달마(dharma) | 신비한 법(The "Mysterious Law") | 무지와 깨달음, 지옥과 천국의 상태는 단일 본질 |
연화(Renge) | 蓮 華 | 푼다리카(Puṇḍarīka) | 네룸보 누시페라(Nelumbo nucifera) (연꽃) | 원인과 결과의 단일성 (업(karma)의 순환) |
경(Kyo) | 經 | 경전(Sutra) | 불교 경전 또는 가르침 | 니치렌 대성인에 의해 구현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통한 모든 현상 |
재가 신자들은 호케코 그룹에 소속되어 활동하며, 지역 사찰이나 개인 주택에서 열리는 법회에 참석한다. 법회는 승려가 집전하지만, 승려가 없을 때는 재가 지도자가 대신하기도 한다. 신자들은 '고쇼'라고 불리는 니치렌의 저술 등 니치렌 쇼슈의 가르침을 연구한다.
4. 1. 일상 수행
신도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법화경 방편품과 여래수량품을 독송하고,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부르는 근행을 한다.[36] 총본산 다이세키지 참배(등산)와 말사 참배는 중요한 수행으로 여겨지며, 성불로의 공덕을 쌓을 수 있는 행위로 여겨진다.일상적인 근행은 법화경 방편품, 여래수량품(장행[36], 자아게)을 독송하고,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외우는 것(창제)을 기본으로 하며, 예로부터 아침 5좌, 저녁 3좌의 형식을 지켜 행해진다.
일련정종의 단신도 명부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말사에서 수계를 받아야 한다. 수계만 받고 본존을 받지 않는 것은 내득 신앙이라 불린다.
4. 2. 의식
일련정종의 관혼상제는 화의(化儀)에 따라 거행되지만, 지역 풍습 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5. 조직
일련정종은 일본에 700개 이상의 사찰 및 사찰과 유사한 시설(일반 신도 포교소)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 외에도 24개의 사찰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80만 명 이상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닛코 쇼닌으로부터 직접적인 계통(''유이주 이치닌 케치묘쿠 소조'')을 주장하며, 닛코 쇼닌은 니치렌이 불교 삼시에 그의 불교 수행을 전파하기 위해 선택했다고 믿는다. 이는 니치렌슈 등 다른 니치렌 불교 종파에서도 주장하지만, 일부에서는 거부하고 있다.[7]
현재 종파의 지도자는 제68대 법주 니치뇨 쇼닌(1935–)이다. 일련정종 승려들은 니치렌이 그랬다고 믿기 때문에, 대부분의 다른 종파와 달리 흰색과 회색 법의와 흰색 설법대(surplice)만을 착용하여 구별된다.
1872년 메이지 천황의 칙령인 태정관 칙령 제133호에 따라 일련정종 승려들은 다른 일본 불교 종파와 마찬가지로 결혼이 허용되었다. 따라서 이 종파는 성별, 결혼 관계 등에 관한 불교 윤리 규정을 부과하지 않는다.
일련정종은 비신자로부터의 금전적, 물질적 기부를 받지 않으며, 이는 니치렌의 "니이케에게 보내는 편지"(''니이케 고쇼'')와 닛코 쇼닌의 "26개 경고"(''닛코 유카이 오키몬'')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다.
일련정종은 등록된 신자들을 위한 세 가지 형태의 기부를 분류한다.
# 남묘호렌게쿄와 석존 염불을 통해 비신자들에게 종교적 수행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것.
# 지역 사찰과 승려들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 및 금전 기부.
# 사찰을 위한 무료 노동 봉사(청소, 자원 봉사)를 제공함으로써 불교 공덕을 얻는 고대 아시아 관습(일본어: 廻向, 에코).
종파의 신도 조직인 "호케코–렌고–카이"는 도쿄도 도시마구의 그랜드 호도-인 사찰에 본부를 두고 있다.
재가 신자들은 호케코 그룹으로 알려진 공식 신도회에 속해 있으며, 니치렌 정종의 교리를 연구하고 일본의 본산으로 순례하는 '도잔'을 계획하기 위해 동료 회원 간의 연대성을 장려하도록 설계되었다.
일련정종 내에서는 여러 의식이 거행되는데, 일부는 칭송받는 인물에 대한 기념식이고, 다른 일부는 중대한 사건을 기념하거나 축하하기 위한 것이며, 불교 개종, 결혼, 장례식 등 개인의 생애 주기 행사 의식도 포함된다.
일련정종 사찰에 대한 기부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며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되므로 항상 ''고쿠요''라고 표시된 작은 흰색 봉투에 담겨 기부 목적을 표시하는 체크리스트와 함께 제공된다. 비신도의 금전 기부는 엄격히 금지된다.
일련정종에서 발행하는 고혼존은 일련정종에서 특별히 승인한 유일한 고혼존이다.
''남묘호렌게쿄''라는 구절은 일련정종에서 존경받는 경전인 법화경의 ''타이모쿠''(題目: "제목")라고 불린다. 이는 창시자 니치렌이 광범위한 전파를 위해 밝힌 ''Nam''과 법화경의 일본어 제목인 ''묘호렌게쿄''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총본산
- * 다보후지대일련화산 다이세키사(多宝富士大日蓮華山大石寺, 시즈오카현후지노미야시)
- 본산
- * 다보후지산묘렌지(下条妙蓮寺,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
- * 고에이잔 혼몬지(高永山本門寺, 가가와현미토요시)
- * 닛치야산조젠지(日知屋山定善寺, 미야자키현휴가시)
- 고찰・명찰
- * 구온산조센지(久遠山常泉寺, 도쿄도 스미다구)
- * 료쥬산조자이지(霊鷲山常在寺, 도쿄도 도시마구)
- * 쇼에이산묘엔지(正栄山妙縁寺, 도쿄도 스미다구)
- * 고쇼산묘코지(高照山妙光寺, 도쿄도 시나가와구)
- * 호도인(法道院, 도쿄도 도시마구)
- * 다이닛치렌게산시노보(大日蓮華山下之坊,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
- * 호에이산조교지(法栄山上行寺, 미야기현 도메시)
- * 료엔산주혼지(良円山住本寺,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 * 신렌산쿄다이지(心蓮山敬台寺, 도쿠시마현 도쿠시마시)
- * 호센산닛쇼지(法泉山日正寺, 삿포로시 기타구)
- 기타
- * 사원은 총본산・본산의 탑중방, 또는 산호와 사호 혹은 원호 공칭 - 예: △△산 ○○사, △△산 ○○원(실법산권지인, 롯코산 켄지인, 코치산 다이지인의 3개 사찰만, 단 지바현 다테야마시・지토쿠인은 예외적으로 사원 취급), 교회는 산호 없이 원호 공칭, 또는 ○○교회(오다와라 교회, 호후 교회, 조야마 교회만)
5. 1. 종무 행정
종교법인 일련정종의 종무 행정 기관으로 종무원이 있으며, 그 사무를 총괄하는 장으로 관장을 둔다. 관장은 총본산 법주이자 대석사 주지가 겸임한다. 종무원은 총본산 대석사 경내에 설치되어 있다. 관장을 보좌하는 총감의 지휘·감독 아래 서무부, 교학부, 포교부, 섭외부, 해외부, 재무부의 6개 부문으로 종무 행정이 분담되는 근대적 사무 기구가 구축되어 있다. 법적으로 종교법인 일련정종의 대표 임원은 법주인 관장이 맡고, 총감, 중역은 그 책임 임원이다.각 부에는 부장, 부부장(현재 서무부, 교학부, 포교부, 섭외부 및 재무부는 공석), 주임, 서기가 배치되어 있으며, 특히 서무부장은 실질적으로 총감을 보좌하는 입장에 있다. 이 외에 승려 중에서 선거로 선출되는 종회, 기강 숙정 기관인 감정회, 관장이 임명한 권대승도 이상의 5명으로 구성된 자문 기관인 참의회 등 합의제도 도입되어 있다.
종무원은 전국에 대포교구와 이에 통할되는 포교구를 두는 교구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대포교구에는 종무대지원을, 포교구에는 종무지원을 두고 있다. 총본산 대석사 탑중에는 특별포교구를 두고 있으며, 특별포교구 사무는 대석사 내사부에서 처리한다. 내사부에서는 법주인 대석사 주지 아래, 탑중 방의 주지 중에서 주임 이사 1명, 이사 약간 명, 집사 약간 명을 임명하여 대석사 사찰 사무의 책임자로 삼는다. 법적으로 종교법인 대석사의 대표 임원은 법주인 주지가 맡고, 주임 이사, 이사, 총대가 그 책임 임원이다.
또한 집사는 법주인 대석사 주지의 법무를 보좌하는 입장에 있으며, 법주인 주지가 부재할 경우 대리하여 법요의 도사를 맡기도 한다.
5. 2. 법주

'''유일 수여의 혈맥 상속'''을 받은 자가 총본산 법주(法主)로서 일련정종 종문에서 승려 최고위이며, 승계(승려의 계급)는 '''대승정'''(大僧正)이다. 근년의 종규에서는, 법주만이 '''관장 추대 회의'''의 선정으로 종무 행정의 장인 관장(종교법인 니치렌 정종의 대표 임원)의 직에 반드시 취임하게 되어 있다. 또한 법주는 다이세키지의 주지(종교법인 다이세키사의 대표 임원)를 겸하고 있다. 현재의 법주는 제68세 하야세 니치뇨(早瀬日如)이다.[34]
법주의 위호로서 "상인(上人)"이 사용되며, 종내에서는 통상 "법주"라고 부르지 않고 "법주 상인"으로 한다. 또한, 존칭으로서 "어법주 니치○ 상인 게이카(御法主日○上人猊下)" 혹은 "어법주 상인 게이카(御法主上人猊下)", 종무 행정상으로는 "관장 게이카(管長猊下)" 등, "게이카(猊下)"가 사용된다. 생전에 퇴좌하여 은거한 전 법주는 "어은존 상인 게이카(御隠尊上人猊下)" 또는 "어은존 게이카(御隠尊猊下)"로 존칭된다.
지역의 근본 단가는 "고젠상(御前さん)"이라고 부르고 있다.
차기 법주 후보자가 미리 공표된 경우, 차기 법주 후보자는 학두로 임명된다. 학두의 승계는 '''권대승정'''이 된다. 그러나 공표되지 않은 경우에는 학두는 공석으로 남는다. 법주 아래에는 약간 명의 능화가, 법주 다음가는 고승들로서 존재하며, 현재는 11명의 승려가 능화의 위에 있다.
일호·상인호·원호·아사리호의 수여권은, '''본존 서사권'''이나 '''교의 재정권'''과 함께 "법주만의 권능"으로 여겨진다[34]。 이러한 법의상의 중요 권능은 정종이 인정하는 중요 상전서인 『이개상승서』 및 파조 유문인 『부지일적문도존지사』, 『오인소파초』, 『일흥적조조사』, 『일흥유계치문』 등에 규정된 종규로, 750여 년에 걸쳐 계승되어 왔다고 한다. 통일적인 규율을 갖지 않고, 주지가 개별적으로 문자 만다라 본존을 서사하여, 신도에게 하사하는 니치렌종과는 대조적이다.
'''일호'''는, '일' 자가 붙는 본종 승려의 실명(じつみょう)을 말하며, 승려는 득도 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법주로부터 의복을 면허받는다. 또한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법주로부터 가사를 면허받는데, 이때 일호도 면허된다. 단, 능화(권승정 이상)의 고승만이 생전에 칭하는 것이 허용된다. 또한, 드물게 보이는 독실한 재가 신도에 대해서, 생전에 일호가 법주로부터 면허되는 경우도 있다. 사망 후, 가사 면허 전의 승려나 독실한 재가 신도에게 법주에 의해 계명 중에 일호가 붙여지는 경우가 있다.
'''상인호'''는, 본종에서는 고승의 존칭·존칭이라기보다는 실질적으로, 법주 또는 법주 경험자의 위호이다. 또한, 법주의 면허에 의해, 승정 이상의 능화가 천화 후에 추호, 권승정의 능화는 추증되는 것이 통례가 되고 있다. 대승도의 자에게도, 서거 후에 추증되는 경우가 있다.
'''원호'''는, 능화 보임 시에 법주로부터 면허된다.
'''아사리호'''는, 권승도 이상의 자가 청원에 의해 법주로부터 면허된다. 생전에 면허되지 않더라도 대강사 이상의 자에게 서거 후에 추호되는 경우가 있다.
5. 3. 승려
일련정종의 승려가 되기 위해서는 매년 1월경에 실시되는 득도 심사에 합격하고 법주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35] 대다수는 소년 득도로 12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출가하며, 18세부터 57세까지 일반 득도자도 모집한다.[35]
승려는 교사(教師)와 비교사(比敎師)로 구분되며, 각 계위는 내부 규정에 따른다. 교사의 계위는 다음과 같다.
- 대승정(법주 및 법주 경험자), 권대승정(학두<드물게 대학두>=차기 법주 후보), 승정(능가), 권승정(능가)
- 대승도, 권대승도, 승도, 권승도, 대강사, 강사, 소강사, 훈도, 권훈도
비교사의 계위는 다음과 같다.
- 1등 학중, 2등 학중, 3등 학중, 사미, 무계(득도 후 약 3개월)
소년 득도의 경우, 출가 득도하여 고등학교 졸업까지 총본산 다이세키지에서 수행하고, 지방 사찰·교회(주로 본산 격 사찰이나 대도시권 사찰·교회)에서 4년 정도 재근(在勤)한 후, 총본산에서 1년 재근하고 교사로 임명된다.[35] 이후 교사 보임식을 거쳐 고좌 설법이 법주로부터 면허된다. 관장의 사령으로 지방 사찰·교회의 주지·주관(부주지·부주관의 경우도 있음)으로 파견된다. 일부는 득도 후 총본산에서 일생을 보내기도 한다.
메이지 천황 칙령에 따라 1872년부터 일련정종 승려의 결혼이 허용되었다.[35] 그러나 사찰은 세습제가 아닌 중앙집권적 제도로 운영되며, 관장 사령으로 총본산에서 주지나 주관이 파견된다.[35] 따라서 주지·주관은 사찰·교회 재산을 사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법의(法衣)는 모든 승려가 백 오조 가사(白五条袈裟)에 엷은 먹색 의(衣)를 착용하지만, 가사·의는 관장 면허가 있어야 착용할 수 있다.[35]
5. 4. 신도 단체
법화강은 종조가 명명한 일련정종 유일의 신도 단체이다. 말사(末寺)의 일련정종 신도에 대해, 관장인 법주가 허가한 조직을 법화강이라고 한다. 법화강은 일상적인 창제행(唱題行)이나 총본산 참배를 행하는 것으로, 종사상 고래로부터 존재했지만, 1962년(쇼와 37년)에 이들 ○○강의 연합체로서 일련정종 법화강 전국 연합회 (약칭 '''전련''')가 결성되어 가맹하게 되었다. 이 '''전련'''은 1967년(쇼와 42년)에 일련정종 법화강 연합회 (약칭 '''연합회''')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6]일련정종의 신도 단체를 만들려면, 말사의 주지가 신도 단체의 지도 교사가 되어 신도 단체를 만들려고 하는 대표자와 연명으로 "조직 결성 허가원"을 종무원에 제출하고, 종무원에서의 심의를 거쳐 일련정종의 관장인 법주가 "조직 결성 허가서"에 서명 날인하여 "조직 결성 허가서"가 교부되어 지도 교사로부터 ○○강에 전달된다. 이것은 메이지 시대부터의 제도이지만, 제2조 닛코의 "이 법문은 사제(師弟)를 바로잡아 부처가 되는 법문이니라"(사도국 법화강중 어반사)의 전통과 관습을 답습한 것이며, "조직 결성 허가서"와 유사한 에도 시대의 고문서도 남아 있다. 이렇게 결성된 ○○강은, 일련정종 법화강 전국 연합회에 가맹 신청서를 제출하고, 총본산 내의 일련정종 법화강 전국 연합회 사무소 (통칭 '''법화강 사무소''')에서 가맹 절차가 진행된다. 따라서 "조직 결성 허가원"과 지도 교사가 없는 단체는 일련정종의 정규 신도 단체라고 할 수 없다.[7]
법화강에서는, 일련정종 법화강 연합회 발행의 《대백법(大白法)》이 유일한 기관지가 되고 있다. 매월 1일과 16일에 발행되며, 정가는 110JPY (2016년〈헤이세이 28년〉4월 1일 개정)이다.[6]
각 말사의 법화강에는 강중의 대표자인 강두, 부강두, 간사, 회계를 임원(役員)으로 둘 수 있다. 강두는 각 법화강 지부의 대표자이지만, 반드시 소속 사찰의 총대 중에서 취임하는 것은 아니며, 총대 이외의 자가 취임하는 경우도 있다. 법화강의 임원은 모두 "조(組) 세와야쿠(世話役)"로 정의되며, 사찰에 소속된 다른 강원(講員)에 대해 지도하는 것은 지도교사(주지·주관)에 대한 월권 행위에 해당되므로 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일련정종 법화강 연합회에는 사무기구상, 위원장, 부위원장, 이사, 지방부장 등의 직책이 있지만, 이것도 "조 세와야쿠"로 정의되며, "연합회"에 가맹하는 각 법화강을 지도·감독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명예직으로 총강두, 대강두의 칭호가 있지만, 신도를 지도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신도 앞에서 스피치를 하는 경우에는 "인사"나 "격려"의 명목으로 행한다. 또한, 전 총강두 야나기사와 키소지(柳沢喜惣次) 씨가 사망한 이후 총강두는 임명되지 않아, 현재 총강두는 공석이다.[7]
명예직으로, 명예총강두, 법화강연합회 회장직이 있다.[6]
: 신도 단체의 전국 조직인 법화강연합회가 월 2회 발행하는 신도 대상 신문.[7]
6. 비판 및 논란
일련정종은 닛코 쇼닌으로부터 직접적인 계통(''유이주 이치닌 케치묘쿠 소조'')을 주장하며, 닛코 쇼닌은 니치렌이 불교 삼시에 그의 불교 수행을 전파하기 위해 선택했다고 믿는다. 이는 니치렌슈와 같은 다른 니치렌 불교 종파에서도 주장하지만, 일부에서는 거부되고 있다.[7]
일련정종은 성별, 결혼 여부, 빈부, 개인적인 습관, 이혼, 낙태, 채식, 육류, 유제품 또는 알코올 섭취, 의복, 식단 선택 등과 관련하여 어떠한 불교 윤리 규정도 부과하지 않는다. 또한, 지역 사찰에 등록되지 않았거나 소속되지 않은 비신자로부터의 금전적, 물질적 기부를 거부하며, 비신자 및 다른 종교에 속한 자로부터의 "업적 불순"을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니치렌의 "니이케에게 보내는 편지"(''니이케 고쇼'')와 닛코 쇼닌의 "26개 경고"(''닛코 유카이 오키몬'')에서 가르쳐진다.
1974년, 도쿄 시나가와구 묘코지(妙光寺)의 묘신코(Myōshinkō)라는 재가 신도 단체가 창가학회가 쇼와 천황의 종교 개종 없이도 쇼혼도(正本堂) 건물이 니치렌이 명한 진정한 영구적인 국가 성역이라고 주장하며 공개 시위를 벌인 후, 호소이 닛타쓰에 의해 일련정종에서 제명되었다. 이 단체는 이후 법인명을 '후지 타이세키지 겐쇼카이'(富士大石寺顕正会, 현정회)로 변경했다.
1980년, 정신회(영어: Correct Faith Group)라고 불리는 일련의 일련정종 승려들과 신도들이 아베 닛켄에 의해 본산에서 축출되었다. 이는 닛켄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창가학회의 사찰 운영에 대한 영향력을 비판한 것에 대한 조치였다.
6. 1. 창가학회와의 갈등
일련정종은 1991년 11월 28일 창가학회와 국제창가학회(SGI)를 파문했다.[15][16] 이는 교리적 갈등과 당시 정치적, 재정적 스캔들에 연루된 소카학회(創価学会, Soka Gakkai)의 평판 때문이었다.창가학회는 재가 신자 단체로 시작했지만, 1956년 이른 시기부터 교리적 갈등이 있었다. 아베 닛켄은 소카학회가 일련정종의 전통적인 교리에서 벗어났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또한, 일련정종은 "특정 출판물에 대한 방해나 PC 명예 회장의 전화 통화 엿듣기 사건과 같은 일련의 스캔들과 반사회적 행위, 그리고 더 최근에는 (...) 리크루트 정치 및 주식 시장 스캔들, 르누아르 그림 불법 거래, 허위 소득 신고 사건 연루" 등을 비난했다.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일련정종이 1991년 소카학회의 지도자들을 파문하고 일련정종의 재가 신자 단체로서의 지위를 박탈한 후 양측은 완전히 공식적으로 결별하게 되었다. 이케다 다이사쿠는 아베 닛켄에 의해 재가 지도자인 ''소코토'' 역할에서 파문되었으며, 공식적인 파문령으로 인해 소카학회는 일본 법에 따라 사찰과의 제휴 부족으로 세금 면제 지위를 잃게 되었다. 1997년 9월 30일, 일련정종은 모든 국제창가학회 회원들을 파문했다.[18][19]
1990년 12월부터 니치렌정종과 창가학회 양측의 관계는 교의 해석 차이 등의 원인으로 인해 결정적으로 악화되었다. 1991년부터 니치렌정종과 창가학회 양측의 관계는 항쟁 상태가 되었다.
연도 | 사건 |
---|---|
1990년 (헤이세이 2년) | 12월 27일: 니치렌정종(종문)이 이케다 다이사쿠(창가학회 명예 회장)를 법화강 총강두에서 파면(해임)했다. |
1991년 (헤이세이 3년) | 11월 7일: 니치렌정종(종문)을 비방하고, 또한 화법·화의를 일탈한 창가학회는 외호 단체의 모습을 잃었다고 니치렌정종이 판단하여 창가학회에 대해 해산 권고를 실시했다. |
11월 28일: 니치렌정종(종문)이 창가학회 및 창가학회 인터내셔널(SGI)에 대해 파문(처분)했다. | |
1998년 (헤이세이 9년) | 「종규」 일부 개정. 창가학회에 소속된 자를 제적. |
6. 2. 기타 비판
전 신자들은 일련정종의 정통 신앙을 비판하며, 종교적 경건함과 의식을 강조하고 다른 문화와 종교에 대한 관용을 금지한다고 주장한다.[21] 특히, 신자가 다른 종교 행사에 참석하거나 다이세키지 인근 이외의 불교 용품을 구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비판한다. 다이 고혼존에 대한 ''도잔'' 순례를 통한 니치렌 불교의 독점성도 비판받는다.[21] 기부는 자발적이지만, ''토바'' 추모패, ''카코초'' 조상 책 등 일본의 보수적 관습 및 불교 수행과 관련된 것에 제공된다.[22]쇼와 천황의 전쟁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제2차 세계 대전 중 신토 부적 오후다 및 오마모리를 수용한 것은 다른 종교를 거부하는 교리적 신념과 모순된다는 비판도 있다. 당시 사찰 승려와 마키구치 쓰네사부로는 일본 천황의 지시에 따라 전쟁 노력을 지원했다. ''다이캬쿠덴''에 안치된 태양 여신 아마테라스에게 헌정된 첫 번째 부적은 일본 제국 육군에 의해 설치되었다.
일부에서는 법주를 부처의 깨달은 본질인 "살아있는 본질" 또는 "법의 상속"의 유일한 상속자로 추대하는 것을 비판하며, 창가학회는 특별한 승려 계보 없이 "신앙의 상속"을 상속한다고 주장한다. 1970년대 신자 기부로 건립된 ''쇼혼도'' 및 기타 창가학회 자금 지원 건물 파괴는 오랜 부정적 정서의 결과이다. 또한, 승려와 종파에 대한 비판으로, 계층적 정서를 맞추기 위해 니치렌의 저작물인 ''고쇼''를 축약하거나 조작하는 혐의도 제기되었다.
외부 연구자 다니엘 메트록스는 인식된 권위 문제를 갈등의 핵심으로 보았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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謗法を捨てる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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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大秘法の受持信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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類似の記述は{{Harv | 宗旨建立750年慶祝記念出版委員会 | 2002 | pp=166 - 167 }}にもあるが、ここでは僧宝を一義的には派祖とし、大石寺第26世日寛の文を引用して、歴代も含まれる、としている。また、{{Harv | 日蓮正宗宗務院 | 2008 | pp=18 - 19 }}には、引用文同様に「日興上人を随一として、総本山のご歴代上人を僧宝として崇める」とあるも、僧宝は派祖とし、広義では「日蓮正宗の僧俗も含まれます」と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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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門宗#歴代管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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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v | 金岡秀友 | 1979 | p=205 }}{{Harv | 斎藤昭俊 | 1988 | p=441 }}には、大石寺が本門宗より独立して日蓮宗富士派と称したのは1899年、日蓮正宗と改称したのは1912年(大正元年)、とそれぞれ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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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主=管長への過度な中央集権化」との批判があるが、これは法主としての法義上の権能と、管長としての組織運営上の権限を混同した批判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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ただし、1872年太政官布告133号により妻帯禁止が解除されて以後、僧侶の結婚自体は認めら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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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じょうごう」または「ちょうぎょう」と読む。
[37]
서적
宗旨建立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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