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만교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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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대만교류협회는 1972년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로 인해 단교된 중화민국과의 비공식 관계 유지를 위해 일본 정부의 승인을 받아 설립된 기관이다. 협회는 일본의 외무성과 국제무역산업성의 승인을 받아 설립되었으며, 이전 일본 대사관 건물에서 운영되며 외교적 면책 특권을 누렸다. 2017년 협회 명칭 변경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는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협회는 일본과 대만 간의 경제, 문화 교류를 촉진하고, 학술 및 인적 교류를 지원하며, 일본어 교육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주요 기능으로는 실질적인 대사관 역할, 경제·문화 교류 촉진, 일본어 교육 지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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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만교류협회 - [정부기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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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기관명 | 일본-대만 교류 협회 |
원어명 | 日本台湾交流協会 (일본어) |
로마자 표기 | Nihon Taiwan Kōryū Kyōkai (일본어) |
중국어 표기 | 日本台灣交流協會 (번체자) |
중국어 병음 | Rìběn Táiwān Jiāoliú Xiéhuì |
중국어 웨이드-자일스 | Jih-pen T'ai-wan Chiao-liu Hsieh-hui |
중국어 민난어 | Ji̍t-pún Tâi-oân Kau-liû Hia̍p-hōe |
약칭 | 일대교류협회 (日台交流協会) |
영어 명칭 | Japan-Taiwan Exchange Association |
종류 | 공익 재단 법인 |
설립일 | 1972년 12월 1일 |
전신 | 일본의 대만 관련 업무 수행 기관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본부 | |
주소 |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롯폰기 3-16-33 아오바 롯폰기 빌딩 7층 |
대표 | |
회장 | 오하시 미츠오 |
이사장 | 타니자키 야스아키 |
타이베이 사무소 대표 | 카타야마 카즈유키 |
가오슝 사무소 소장 | 오쿠 마사후미 |
타이베이 사무소 | |
주소 | 중화민국 타이베이시 쑹산구 칭청가 28호 통타이 상업 빌딩 |
가오슝 사무소 | |
주소 | 중화민국 가오슝시 링야구 허핑 1로 87호 남화 허핑 빌딩 9층, 10층 |
기타 정보 | |
특징 | 2017년 1월 1일에 공익 재단 법인 교류 협회에서 명칭 변경 |
2. 역사
1972년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로 중화민국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되면서, 일본은 대만과의 비공식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식 공식' 방식을 채택했다.[6] 이는 1979년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도 영향을 주었다.[3]
일본대만교류협회는 외무성과 국제무역산업성(현 경제산업성)의 승인을 받아 설립되었으며,[5] 직원들은 일부 외교 특권과 제한적인 외교적 면책을 누렸다.[3] 협회는 이전 일본 대사관 건물에서 운영되었다.[5]
초대 타이베이 사무소 대표와 부대표로는 이토 히로노리 주타이베이 대사관 임시 대리 대사와 나카다 요시오 경제 담당 참사관이 전임했다.[15][16]
타이베이 사무소는 여러 차례 이전을 거쳤다.
순서 | 이전 날짜 | 주소 |
---|---|---|
1 | 1973년 | 청중구 제남로 2단 34호(구 일본 대사관 부지)[17][18] |
2 | 1995년 7월 3일 | 둔화남로 1단 245호(신광인수빌딩) 10층[19] |
3 | 2002년 4월 8일 | 경성가 28호(통태상업빌딩)[20] |
가오슝 사무소는 1973년 전금구 중화 3로 108호(국태빌딩) 3층에 설치되었다.[18]
본 협회는 비자 등 영사 업무를 처리하지만, 비공식 기관이므로 주타이일본대사관에 업무 위탁하는 형식을 취한다.[12] 또한, 재외투표, 출생신고, 혼인신고 등 호적법 관계 업무와 공정증서 유언 및 비밀증서 유언 작성 업무는 하지 않는다.
협회는 타이완 정보지 「교류」[13]를 발간하고, 공식 사이트에서 타이완 정보[14]를 제공한다.
2012년 4월 1일, 재단법인에서 공익재단법인으로 전환되었다.
2. 1. 설립 배경
1972년 9월 29일, 일중국교정상화에 따라 일본과 중화민국의 국교가 단절되었다.[9] 이에 따라 무역, 경제, 기술, 문화 등 민간 교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실무 기관"으로서 같은 해 12월 1일, "재단법인 교류협회"가 설립되었다.[9] 같은 달 26일, 아동관계협회와의 합의[9]에 따라 타이베이시와 가오슝시에 사무소를 설치했다.[10]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는 중화민국과의 수교 단절과 일중평화조약의 폐기를 요구했다.[4] 일본대만교류협회는 같은 해에 설립되었으며, 일본 외무성과 국제무역산업성의 승인을 받았다.[5]
초기에는 일본 측이 "일대교류협회"라는 명칭을 희망했지만, 중화민국 측이 "일화교류협회"를 주장하여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단순한 "교류협회"가 되었다.[11] 타이완에서는 '''일본교류협회''' 또는 '''일본재단법인 교류협회'''라고 불렸다.
도쿄 본부는 외무성과 타이베이 사무소를 잇는 연락 기관이며, 타이베이 사무소는 일중국교정상화에 따라 폐쇄된 주중화민국일본국대사관을 대신하는 타이완 정부 대표부로서 기능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 정책 하에, 일중 간의 마찰을 피하면서 일대 간의 관계와 타이완 주재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 간 관계가 아니다", "외교 기관이 아니라 민간 기관이다"라는 일종의 편법으로 기능하고 있다.
2. 2. 명칭 변경
2017년 일본대만교류협회의 명칭 변경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는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7]3. 주요 기능 및 역할
일본대만교류협회는 도쿄 본부와 타이베이 사무소에 각각 '''일·대만 교류센터'''(日台交流センター)를 설치하여 양국 간 학술 및 인적 교류를 지원하고 있다. 타이베이 사무소 내에는 '''일본어센터'''(日本語センター)를 두어 일본어 교육을 지원한다.
일·대만 교류센터는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가 제창한 평화우호교류계획에 기초하여 설치되었다.[23] 이 센터는 양국 간 학술 교류와 인적 교류를 지원한다. 일본어센터는 2000년 7월 대만 내 일본어 학습자 증가에 따라 설치되어 일본어 교육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만일본관계협회와 매년 정례 '''무역경제회의'''를 개최하여 양국 간 여러 문제를 협의한다. 2007년 제32회 회의에는 대만 경제부 국제무역국장 등 35명, 일본 경제산업성 부국장급 협상관 등 55명이 참석했다.
이 외에도 일대 어업 협상, 항공 협상, 조세 협정 협상 등이 있다. 1996년 시작된 일대 어업 협상은 2009년 재개되어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주변 어업 분쟁 대응을 위한 긴급 연락 창구를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설치하기로 합의했다.[24] 일대 항공 협상은 2009년 타이베이(쑹산공항)-도쿄(하네다공항) 노선 개설, 2011년 완전 오픈스카이에 합의했다.[25] 2015년에는 조세 조약에 해당하는 「일대 민간 조세 협정」을 체결했다.[26]
3. 1. 실질적인 대사관 역할
1972년 9월 29일, 일중국교정상화에 따라 일본과 중화민국의 국교가 단절되면서, 무역, 경제, 기술, 문화 등 민간 교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실무 기관으로서 같은 해 12월 1일 재단법인 교류협회로 설립되었다. 같은 달 26일, 아동관계협회와의 합의[9]에 따라 타이완의 타이베이시와 가오슝시에 사무소를 설치했다.[10]도쿄 본부는 외무성과 타이베이 사무소를 잇는 연락 기관이며, 타이베이 사무소는 일중국교정상화에 따라 폐쇄된 주중화민국일본국대사관을 대신하는 정부 대표부로서 기능하고 있다. 타이베이 사무소 대표(실질적인 주중화민국대사)는 타이완 관계 기관과의 연락, 정치·경제 등의 동향 조사, 체류 일본인 및 일본인 여행자에 대한 각종 편의 제공, 일본-대만 간의 경제·기술·문화 교류의 원활한 추진을 임무로 한다.
하나의 중국 정책 하에, 일본과 중화인민공화국 간의 마찰을 피하면서 일본과 대만 간의 관계와 타이완 주재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 간 관계가 아니다”, “외교 기관이 아니라 민간 기관이다”라는 일종의 편법으로, “외교”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과 타이완 사이에는, 타이완관계법에 상당하는 법률이 없기 때문에, 외교 특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본 협회에서는 다른 대사관이나 총영사관과 마찬가지로, 비자 등의 영사 업무를 처리하고 있지만, 비공식 기관인 본 협회가 직접 처리할 수 없어, 형식적으로 주타이일본대사관에 업무 위탁하고 있다(서류의 주고받기는 도쿄를 통해 이루어진다).[12]
또한, 다른 대사관·총영사관과 달리, 사무소 내에서의 재외투표, 출생신고, 혼인신고 등 호적법 관계의 신고 접수, 공정증서 유언 및 비밀증서 유언의 작성 업무는 하지 않는다.
3. 2. 경제, 문화 교류 촉진
1972년 9월 29일, 일중국교정상화에 따라 일본과 중화민국의 국교가 단절됨에 따라 무역, 경제, 기술, 문화 등 민간 교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실무 기관”으로서 같은 해 12월 1일, “재단법인 교류협회”로 설립되었다.[9] 같은 달 26일, 아동관계협회와의 합의에 따라 타이완의 타이베이시와 가오슝시에 사무소를 설치했다.[10]초기에는 일본 측이 “일대교류협회”라는 명칭을 희망했지만, 중화민국 측이 “일화교류협회”를 주장하여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단순한 “교류협회”가 되었다.[11] 타이완에서는 '''일본교류협회''' 또는 '''일본재단법인 교류협회'''라고 불렸다.
타이베이 사무소는 일중국교정상화에 따라 폐쇄된 주중화민국일본국대사관을 대신하는 타이완 정부 대표부로서 기능하고 있다. 타이베이 사무소 대표(실질적인 주중화민국대사)는 타이완 관계 기관과의 연락, 정치 경제 등 동향 조사, 체류 일본인 및 일본인 여행자에 대한 각종 편의 제공, 일대 간의 경제·기술·문화 교류의 원활한 추진을 임무로 한다.
대만과 일본 간의 여러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대만일본관계협회와 매년 정례적으로 '''무역경제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회의에는 양국의 관계 정부기관 담당자들이 참석하며, 예를 들어 2007년 제32회 무역경제회의에는 대만 측에서 경제부 국제무역국 국장을 필두로 35명의 공무원이 참석하고, 일본 측에서는 경제산업성 부국장급 협상관 등 55명의 공무원이 참석했다.
그 외 중요한 양국 간 협의로는, 일대 어업 협상, 일대 항공 협상, 조세 협정 협상이 있다. 모두 민간 대표 기관의 협상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관계 정부기관 담당자가 협의하고 있어 사실상 정부 간 실무자 협의가 되고 있다.
일대 어업 협상은 1996년에 시작되어 2005년 7월 제15회 협의 이후 중단되었지만, 2009년 2월에 재개되어,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주변에서의 어업 분쟁에 대응하는 긴급 연락 창구를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설치하기로 합의했다.[24]
일대 항공 협상에서는 2009년 2월 협의에서 타이베이(타이베이 쑹산공항)와 도쿄(도쿄 국제공항) 간 항공 노선을 2010년 개설하기로 합의하여 취항을 시작했고, 2011년 11월 협의에서 일대 노선의 완전 오픈스카이에 합의했다.[25]
2015년 11월에는 조세 조약에 해당하는 「일대 민간 조세 협정」을 체결했다.[26]
3. 3. 일본어 교육 지원
도쿄 본부와 타이베이 사무소에는 각각 '''일·대만 교류센터'''(日台交流中心)가 설치되어 있으며, 타이베이 사무소 내에는 '''일본어센터'''(日本語中心)가 설치되어 있다.일·대만 교류센터는 1995년 10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내각총리대신이 제창한 “평화우호교류계획”[23]에 따라 설치되어 일본과 대만 간의 학술 교류 및 인적 교류를 지원하고 있다. “평화우호교류계획”은 2004년도에 종료되었지만, 2005년도 이후 “일·대만 지적 교류 사업”으로 계승되고 있다.
일본어센터는 2000년 7월 대만에서 일본어 학습자가 증가함에 따라 설치되어, 대만의 일본어 교육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4. 조직
일본대만교류협회는 도쿄 본부, 타이베이 사무소, 가오슝 사무소로 구성되어 있다. 역대 회장에는 재계의 주요 인사가 취임했으며, 이사장과 타이베이, 가오슝 각 사무소장에는 전직 대사가 취임하고 있다.
협회는 타이완 정보지 「교류」[13]를 발간하고, 공식 사이트를 통해 타이완 정보[14]를 제공한다.
4. 1. 도쿄 본부
도쿄 본부에는 '''일·대만 교류센터'''(日台交流中心)가 설치되어 있고, 타이베이 사무소에는 '''일본어센터'''(日本語中心)가 설치되어 있다.일·대만 교류센터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총리대신이 제창한 “평화우호교류계획”[23]에 따라 1995년 10월에 설치되어 일본과 대만 간의 학술 및 인적 교류를 지원하고 있다. “평화우호교류계획”은 2004년도에 종료되었지만, 2005년도 이후 “일·대만 지적 교류 사업”으로 계승되고 있다.
일본어센터는 대만에서 일본어 학습자가 증가함에 따라 2000년 7월에 설치되어 대만의 일본어 교육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4. 2. 타이베이 사무소
도쿄 본부와 타이베이 사무소에는 일본대만교류센터(日台交流センター)가 설치되어 있고, 타이베이 사무소 내에는 일본어센터(日本語センター)가 설치되어 있다.일본대만교류센터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제창한 평화우호교류계획에 기초해 1995년 10월에 설치되어 양국 간의 학술 및 인적 교류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어센터는 중화민국의 일본어 학습자가 증가함에 따라 2000년 7월 설치되어, 일본어 교육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1972년 9월 29일, 일중국교정상화에 따라 일본과 중화민국의 국교가 단절되면서, 무역, 경제, 기술, 문화 등 민간 교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실무 기관”으로서 같은 해 12월 1일 “재단법인 교류협회”가 설립되었다. 같은 달 26일, 아동관계협회와의 합의[9]에 따라 타이완의 타이베이시와 가오슝시에 사무소를 설치했다.[10]
초기에 일본 측은 “일대교류협회”라는 명칭을 원했지만, 중화민국 측이 “일화교류협회”를 주장하여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결국 단순한 “교류협회”가 되었다.[11] 타이완에서는 '''일본교류협회''' 또는 '''일본재단법인 교류협회'''라고 불렸다.
도쿄 본부는 외무성과 타이베이 사무소를 잇는 연락 기관이며, 타이베이 사무소는 일중국교정상화에 따라 폐쇄된 주중화민국일본국대사관을 대신하는 타이완 정부 대표부로서 기능하고 있다. 타이베이 사무소 대표(실질적인 주중화민국대사)는 타이완 관계 기관과의 연락, 정치 경제 등 동향 조사, 체류 일본인 및 일본인 여행자에 대한 각종 편의 제공, 일대 간의 경제·기술·문화 교류의 원활한 추진을 임무로 한다.
“하나의 중국” 정책 하에, 일중 간의 마찰을 피하면서 일대 간의 관계와 타이완 주재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 간 관계가 아니다”, “외교 기관이 아니라 민간 기관이다”라는 일종의 편법으로, “외교”의 숨막이로서 기능하고 있다.
본 협회에서는 다른 대사관이나 총영사관과 마찬가지로, 비자 등 영사 업무를 처리하고 있지만, 비공식 기관인 본 협회가 직접 처리할 수 없어, 형식적으로 주타이일본대사관에 업무 위탁하고 있다(서류의 주고받기는 도쿄를 통해 이루어진다).[12]
또한, 다른 대사관·총영사관과 달리, 사무소 내에서의 재외투표, 출생신고, 혼인신고 등 호적법 관계의 신고 접수, 공정증서 유언 및 비밀증서 유언의 작성 업무는 하지 않는다.
1973년, 이토 히로노리 주타이베이 대사관 임시 대리 대사와 나카다 요시오 경제 담당 참사관이 각각 초대 타이베이 사무소 대표·부대표로 전임했다.[15][16] 그 당시, 타이베이 사무소 1대 청사는 청중구 제남로 2단 34호인 구 일본 대사관 부지에 설치되었고,[17][18] 가오슝 사무소 1대 청사는 전금구 중화 3로 108호(국태빌딩) 3층에 위치했다.[18] 1995년 7월 3일, 타이베이 사무소는 제남로 부지에서 둔화남로 1단 245호(신광인수빌딩) 10층으로 이전되었다.[19] 2002년 4월 8일, 경성가 28호(통태상업빌딩)의 현 주소로 다시 이전되었다.[20]
2012년 4월 1일에 재단법인에서 공익재단법인으로 이행했다.
2017년 1월 1일에 「'''공익재단법인 일본대만교류협회'''」로 개칭했고,[21] 같은 해 1월 3일에 타이베이시에서 새로운 명칭의 간판 제막식이 거행되었다.[22]
일본대만교류협회 타이베이 사무소는 지룽시, 타이베이시, 신베이시, 타오위안시, 신주시, 신주현, 먀오리현, 타이중시, 장화현, 난터우현, 이란현, 화롄현, 진먼현, 롄장현을 관할하고 타이베이시 쑹산구 칭청제 28호 1동에 위치해 있다.
4. 3. 가오슝 사무소
일본대만교류협회 가오슝 사무소는 가오슝시 링야구 허핑이루 87호 난허 허핑 빌딩 9-10동에 위치해 있으며, 윈린현, 자이현, 자이시, 타이난시, 가오슝시, 핑둥현, 타이둥현, 펑후현을 관할한다.[9][10]1972년 12월 26일, 아동관계협회와의 합의에 따라 타이베이시와 가오슝시에 사무소가 설치되었다.[10] 1973년 당시 가오슝 사무소 1대 청사는 전금구 중화 3로 108호(국태빌딩) 3층에 있었다.[18]
5. 역대 주요 간부
역대 회장에는 거물급 재계 인사가 취임했으며, 이사장과 타이베이, 가오슝 각 사무소장에는 전직 대사들이 취임하고 있다.
5. 1. 역대 회장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
초대 | 호리코시 사다조 | 1972년 12월 ~ 1984년 9월 | 경단련 부회장, 공해대책협력재단 이사장 |
2대 | 하세가와 슈시게 | 1984년 9월 ~ 1993년 9월 | 경단련 부회장 |
3대 | 하토리 레이지로 | 1993년 9월 ~ 2011년 6월 | 세이코 명예회장 |
4대 | 오하시 미쓰오 | 2011년 6월 ~ 현재 | 쇼와덴코 고문 |
5. 2. 역대 이사장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
---|---|---|---|---|---|---|---|---|---|---|---|---|---|---|---|---|---|---|---|---|---|---|---|---|---|---|---|---|---|---|---|---|---|---|---|---|---|---|---|---|---|---|---|---|---|---|---|---|---|---|---|---|---|---|---|---|---|---|---|---|---|---|---|---|---|---|---|---|---|---|---|---|---|---|---|---|---|---|---|---|---|---|---|---|---|---|---|---|---|---|---|---|---|
초대 | 이타가키 오사무 | 1972년 12월 ~ 1974년 5월 | 전 주캐나다, 대만 대사 | ||||||||||||||||||||||||||||||||||||||||||||||||||||||||||||||||||||||||||||||||||||||||||
2 | 기무라 시로치 | 1974년 5월 ~ 1978년 2월 | 전 주체코슬로바키아, 대만, 한국 대사 | ||||||||||||||||||||||||||||||||||||||||||||||||||||||||||||||||||||||||||||||||||||||||||
3 | 니시야마 아키라 | 1978년 2월 ~ 1981년 10월 | 전 주캐나다, 한국 대사, 타이베이 사무소장 | ||||||||||||||||||||||||||||||||||||||||||||||||||||||||||||||||||||||||||||||||||||||||||
4 | 우오모토 후지요시로 | 1981년 11월 ~ 1986년 3월 | 전 주소련 대사 | ||||||||||||||||||||||||||||||||||||||||||||||||||||||||||||||||||||||||||||||||||||||||||
5 | 마에다 리이치 | 1988년 5월 ~ 1990년 7월 | 전 주아프가니스탄, 한국 대사 | ||||||||||||||||||||||||||||||||||||||||||||||||||||||||||||||||||||||||||||||||||||||||||
6 | 하라 후지오 | 1990년 7월 ~ 1991년 11월 | 전 과테말라 대사, 타이베이 사무소장 | ||||||||||||||||||||||||||||||||||||||||||||||||||||||||||||||||||||||||||||||||||||||||||
7 | 가야 하루노리 | 1991년 11월 ~ 1998년 3월 | 전 주스위스, 덴마크, 브라질 대사 | ||||||||||||||||||||||||||||||||||||||||||||||||||||||||||||||||||||||||||||||||||||||||||
8 | 고토 도시오 | 1998년 3월 ~ ? | 전 주한국 대사 | ||||||||||||||||||||||||||||||||||||||||||||||||||||||||||||||||||||||||||||||||||||||||||
9 | 다카하시 마사지 | ? ~ ? | 전 주남아프리카, 호주 대사 | ||||||||||||||||||||||||||||||||||||||||||||||||||||||||||||||||||||||||||||||||||||||||||
10 | 5. 3. 역대 타이베이 사무소장
5. 4. 역대 가오슝 사무소장
6. 주요 사건
6. 1. 천황탄생일 축하회 개최2003년 12월 12일, 타이베이 사무소는 단교 이후 32년 만에 천황탄생일 축하회를 주최하였다. 대만 측에서는 허수덕 아동관계협회 회장이 축사를 했고, 간우신 외교부장, 소만장 중국국민당 부주석 등 정재계 관계자 400명 이상이 참석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일본에 강력히 항의하였다.[30]2007년 12월 12일, 재개 후 다섯 번째 천황탄생일 축하회에서 황지방 행정원 외교부장이 외교부장(외무대신)으로서 처음으로 축사를 하였다. 이케다 대표를 "대사"라고 부르며 "의미 깊은 회합에서 대만 정부와 국민을 대표하여 인사를 드리고, 천황 폐하를 비롯한 일본 정부와 국민에게 축하의 뜻을 전할 수 있어 영광이다"라고 말하였다.[30] 축하회는 가오슝에서도 가오슝 사무소 주최로 개최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https://www.koryu.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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