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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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권택은 1934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성장한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다. 1962년 데뷔 이후 10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했으며, 초기에는 다양한 장르를, 1970년대 중반부터는 한국적인 소재와 주제를 다룬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씨받이》(1986), 《서편제》(1993), 《취화선》(2002) 등은 그의 대표작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 베를린 영화제 명예 황금곰상, 레지옹 도뇌르 훈장 등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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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대학교 교수 - 김대식 (1962년)
김대식은 동의대학교와 오타니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교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여의도연구원 원장을 지냈으며,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사상구 국민의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 국회운영위원회 위원,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으로 활동 중인 정치인이다. - 동서대학교 교수 - 하재봉
하재봉은 시, 소설, 영화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대한민국의 예술가이자 방송인이며, 2000년대 이후에는 아르헨티나 탱고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수상자 - 봉준호
봉준호는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자 각본가로,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하여 《살인의 추억》, 《괴물》, 《기생충》 등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연출하며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수상자 - 박찬욱
박찬욱은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여, 복수 3부작과 인간이 아닌 존재의 3부작 등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들로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세계적인 거장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이며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 임권택 감독 영화 - 취화선
《취화선》은 2002년에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조선 말기의 천재 화가 장승업의 삶을 다룬 작품이며, 최민식이 주연을 맡아 예술혼을 표현했으며,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 임권택 감독 영화 - 씨받이 (영화)
《씨받이》는 1987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조선시대 씨받이 제도를 통해 가문을 잇고자 하는 양반 집안과 가난한 여성의 비극적인 삶을 그리며 여성 묘사 논란과 함께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인 호평을 받았다.
임권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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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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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임권택 |
로마자 표기 | Im Gwontaek |
한자 표기 | 林權澤 |
출생일 | 1934년 12월 8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
직업 | 영화 감독 |
활동 기간 | 1962년~현재 |
종교 | 천주교(세례명: 바오로) |
학력 | 광주장성중학교 졸업 광주숭일고등학교 중퇴 |
자녀 | 임동준(장남), 권현상(차남) |
수상 | 제55회 칸 영화제 감독상 (2002), 제55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명예황금곰상 (2005) 외 다수 |
경력 | |
활동 시작 | 1962년 |
수상 내역 | |
칸 국제 영화제 | 감독상 2002년『취화선』 |
베를린 국제 영화제 | 명예금곰상 2005년 장년의 공로 |
상하이 국제 영화제 | 상하이 국제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1993년『바람의 언덕』 |
기타 수상 | 레지옹 도뇌르 훈장 - 기사 (2007) |
기타 정보 |
2. 생애
임권택은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다. 한국 전쟁 이후 일자리를 찾아 부산으로 이주했고, 1956년 서울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영화 ''오성혈전''(1972)의 정창화 감독에게 숙식을 제공받으며 제작부 조감독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정창화 감독은 1961년 임권택에게 감독직을 제안했다.[19]
2016년, 제3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공로영화인상을 수상했다.[20]
2. 1. 영화계 데뷔 전
1934년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태어나 광주광역시에서 자랐다. 가족 중 좌익 운동가가 있어 주변으로부터 차별을 받았다. 한국 전쟁 이후 부산으로 이주했고, 1956년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서울에서 영화감독 정창화를 만나 영화 제작 조감독으로 일하게 되었다. 1962년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19]2. 1. 1. 어린 시절과 가족 관계
1934년 12월 8일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부유한 할아버지 슬하에서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긴 할아버지가 경찰에 아버지를 신고하는 등 가족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다. 식민 통치와 해방, 한국 전쟁을 거치며 집안은 더욱 힘들어졌다.[22] 어머니는 불교 신자였으나, 집안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임권택은 20세에 부산으로 가출했다.[23] 당시 부산은 임시 수도였고, 큰 도시에 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임권택은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으며, 가족 중 좌익 운동가가 있어 주변으로부터 차별을 받았다.[18][19]
2. 1. 2. 부산에서의 밑바닥 생활
가출 당시 아무런 돈도 들고 오지 못했던 임권택은 사흘을 굶으며 가판대에서 잠을 자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부산은 피난민들로 북적였고, 모두가 불행했던 시기였다. 임권택은 생계를 위해 지게꾼 일을 했는데 힘도 약했고, 처음 해보는 일이라 일감을 받지 못했다. 하루 벌었던 푼돈으로 술을 사서 밤을 보냈던 임권택은 20살에 수전증을 겪는 등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24] 다시 마음을 고쳐먹은 임권택은 영도다리로 가서 제2차 세계 대전 때 사용했던 군화를 개조해서 팔아 생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다.[24] 당시 군화는 품질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군화 장수들도 많은 돈을 벌었고, 한국군의 수복으로 수도 서울이 다시 돌아온 후 군화 장수를 하던 몇몇 이들은 서울로 올라가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서울로 떠나면서 임권택에게 부산국제시장 앞에 군화 몇 켤레를 주며 노점을 차려주었다. 그러나 장사에 소질이 없던 임권택은 얼마 안 가 자금난에 시달리게 된다.[38]2. 2. 영화계 활동
임권택은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하였다.[19] 1980년대 이전까지는 주로 상업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며 많은 장르 영화를 연출했지만, 1978년 《족보》를 시작으로 예술 영화에 대한 열망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1년 《만다라》는 그의 경력에 전환점이 되었고, 이후 그의 영화는 예술 영화로 평가받으며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되어 많은 상을 받았다.[1]임권택은 한국의 과거를 주제로 하면서도 현대 한국 문화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을 만들었다. 판소리를 다룬 《서편제》(1993)와 한국 전통 전설을 바탕으로 한 《춘향》(2000)이 대표적이다. 《서편제》는 서울에서만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최초의 국내 영화였고, 《취화선》(2002)은 칸 영화제에서 한국 감독 최초로 감독상을 받았다.[1] 2005년에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명예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임권택의 성공은 "한국 뉴웨이브" 운동과 겹치는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는 박광수, 장선우 등과 함께 한국 영화를 국제적으로 알린 이 운동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다.
2007년, 임권택은 100번째 영화 《천년학》을 개봉했고, 같은 해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2][1] 2013년에는 부산 동서대학교 센텀시티 캠퍼스에 임권택 영화 박물관이 개관했다.[3]
정성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백두 번째 구름》(2018)는 2018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초연되었고,[4][5] 2016년에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공로영화인상을 수상했다.[20]
2. 2. 1. 영화계 입문과 초기 활동
임권택은 군화장수 출신들이 서울에서 《장화홍련전》을 제작할 때 인편으로 연락을 받고 촬영 현장에서 심부름을 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25] 당시 《춘향전》 등이 흥행하며 영화산업이 급속히 발달하던 시기였다. 영화 일을 하면서 흥미를 느낀 임권택은 영화계 입문 4~5년 만에 정창화 감독 밑에서 연출부 일을 맡았다.[26] 1962년에는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를 하였다.[19]2. 2. 2. 《두만강아 잘 있거라》 데뷔와 초기 작품 활동
당시 영화계에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던 사건에 임권택이 휘말리면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안양 촬영소에서 영화를 찍는데 세트 촬영 중 어떠한 이유로 배우가 분장실에서 영화를 촬영 못하겠다며 나오지 않아 영화 촬영이 중단됐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촬영이 중단됐고, 제작자들이 설득해도 통하지 않았다. 연출부 막내였던 임권택은 한 배우가 촬영을 중단시킨다는 사실에 분개해 설득에 나선다. 그러나 2번, 3번에 걸쳐서 설득해도 배우가 거절하자 화가 난 임권택은 배우의 뺨을 때렸다. 촬영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배우는 서울로 가버렸다. 제작진은 촬영을 계속하기 위해 배우의 집에 찾아가서 사과하고 겨우 촬영에 들어가게 된다.[27] 이 사건에 대한 소식은 영화계 전반으로 퍼져나갔고 임권택도 주목을 받았다. 임권택은 영화 일이 재미있어서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고 정창화 감독은 촬영 전반에 걸쳐서 임권택의 의견을 묻는 등 매우 신임했고, 그동안 임권택은 영화를 연출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던 중 1962년 독립군을 소재로 한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 감독 제의가 들어오게 된다. 임권택은 “흥행이 실패하면 다시는 감독을 못하게 된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영화에는 김석훈, 장동휘, 박노식, 독고성, 김승호, 최남현, 허장강, 황해, 엄앵란, 문정숙 등 호화 배우들이 출연했다.[28] 이 영화는 설에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다. 임권택은 1960년대에만 50여 편의 작품을 내놓았는데 임권택은 이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그 시대에는 흥행시키기 위해 수많은 영화를 찍어댔고, 자신이 찍은 영화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38]2. 2. 3. 《잡초》와 작가주의로의 전환
임권택은 1978년 영화 《족보》를 통해 예술적인 영화 제작에 대한 열망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경력의 전환점은 1981년 영화 《만다라》였다. 이 시점부터 그의 영화는 예술 영화로 여겨지며 국제 영화제에서 꾸준히 상영되었고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1]2. 2. 4. 《만다라》와 예술 영화 감독으로의 도약
임권택은 1978년 영화 《족보》를 통해 예술 영화 제작에 대한 열망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1981년 영화 《만다라》를 통해 그의 경력에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시점부터 그의 영화는 예술 영화로 평가받으며 국제 영화제에서 꾸준히 상영되었고, 수많은 상을 받았다.[1]2. 2. 5.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와 국제적 명성
1978년 영화 《족보》를 통해 예술적인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1981년 영화 《만다라》가 그의 경력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 시점부터 그의 영화는 예술 영화로 평가받으며 국제 영화제에서 꾸준히 상영되었고 많은 상을 받았다.임권택 감독은 한국의 과거를 주제로 다루면서도 현대 한국 문화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임 감독의 주목할 만한 영화로는 한국 전통 음악 예술인 판소리를 다룬 《서편제》(1993)와 한국 전통 전설을 바탕으로 한 《춘향》(2000)이 있다. 《서편제》는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하여 서울에서만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최초의 국내 영화가 되었다. 《취화선》(2002) 또한 비평적으로 성공하여 칸 영화제에서 한국 감독 최초로 감독상을 받았다.[1] 임권택 감독은 2005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명예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적 성공은 "한국 뉴웨이브" 운동과 겹쳤다. 박광수, 장선우 감독 등과 함께 한국 영화에 대한 국제적인 비평적 인정과 찬사를 받은 이 운동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2. 2. 6. 《장군의 아들》 시리즈와 대중적 성공
임권택 감독은 《서편제》(1993)와 《춘향》(2000) 등의 영화를 통해 한국 전통 음악 예술인 판소리에 집중했다. 특히 《서편제》는 서울에서만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최초의 국내 영화가 되면서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1] 《취화선》(2002) 역시 칸 영화제에서 한국 감독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1]2. 2. 7. 《서편제》와 한국 영화 르네상스
임권택 감독은 전통 한국 음악 예술인 판소리를 소재로 한 《서편제》(1993)와 《춘향》(2000)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서편제》는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하여 서울에서만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최초의 국내 영화가 되었다.[1] 이후 《취화선》(2002)으로 칸 영화제에서 한국 감독 최초로 감독상을 받았다.[1]임권택 감독의 영화적 성공은 "한국 뉴웨이브" 운동과 겹치는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는 박광수 감독, 장선우 감독 등과 함께 한국 영화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인정받게 한 이 운동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2. 2. 8. 《춘향뎐》, 《취화선》과 칸 영화제 수상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1993)와 《춘향뎐》(2000)은 판소리라는 한국 전통 음악 예술을 소재로 했다. 특히 《춘향뎐》은 한국 전통 전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도 하다. 《서편제》는 비평적으로나 흥행 면에서 모두 성공하여 서울에서만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최초의 국내 영화가 되었다.[1] 《취화선》(2002) 역시 비평적으로 성공하여 칸 영화제에서 한국 감독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1]2. 2. 9. 이후 작품 활동과 업적
임권택은 1978년 영화 《족보》를 통해 예술 영화 제작에 대한 열망을 보이기 시작했고, 1981년 영화 《만다라》를 통해 그의 경력에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시기부터 그의 영화는 예술 영화로 평가받으며 국제 영화제에서 꾸준히 상영되었고, 많은 상을 받았다.[1]임권택은 한국 전통 음악 예술인 판소리를 다룬 《서편제》(1993)와 한국 전통 전설을 바탕으로 한 《춘향》(2000) 등을 통해 한국 과거의 주제를 탐구하는 동시에 현대 한국 문화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서편제》는 서울에서만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최초의 국내 영화로 기록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취화선》(2002)으로 칸 영화제에서 한국 감독 최초로 감독상을 받았다.[1] 2005년에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명예 황금곰상을 받았다.
임권택의 영화적 성공은 "새 한국 영화" 운동과 겹쳐졌다. 박광수, 장선우 등과 함께 한국 영화에 대한 국제적인 비평적 인정과 찬사를 받은 이 운동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2007년 4월, 임권택은 《서편제》의 비공식 속편인 100번째 영화 《천년학》을 개봉했다. 2007년 11월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2][1]
2013년 부산 동서대학교 센텀시티 캠퍼스에 임권택 영화 박물관이 개관했다.[3]
유명 영화 평론가 출신 감독 정성일의 임권택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백두 번째 구름》(2018)는 2018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초연되었다.[4][5]
2. 3. 가족 관계
임권택의 부인은 배우 출신 채령이다.[6][40] 두 아들 임동준과 임동재(차남은 권현상이라는 예명을 사용한다) 또한 영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다.[7][40] 첫째 아들 임동준은 영화기획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40] 둘째 아들 권현상은 배우를 하고 있다.[40] 권현상은 아버지의 도움 없이 배우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임권택은 배우로써의 자질을 보기 위해 《달빛 길어올리기》에 단역으로 출연시켰다.[41]3. 작품 목록
임권택 감독은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후, 2015년 《화장》까지 100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했다.
1980년대 이전까지 그는 주로 상업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며, 한 해 최대 8편의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8년 영화 《족보》를 기점으로 예술 영화 제작에 대한 열망을 보이기 시작했고, 1981년 영화 《만다라》를 통해 그의 영화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시점부터 그의 영화는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많은 상을 받았다.
최근 그의 영화는 한국 전통 음악 예술인 판소리를 다룬 《서편제》(1993)와 《춘향뎐》(2000) 등이 있다. 특히 《서편제》는 서울에서만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취화선》(2002)은 칸 영화제에서 한국 감독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했다.[1]
임권택 감독은 "새 한국 영화" 또는 "한국 뉴웨이브" 운동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 박광수 감독, 장선우 감독과 함께 한국 영화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7년, 임권택 감독은 《서편제》의 비공식 속편인 100번째 영화 《천년학》을 개봉했다. 같은 해 11월,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2][1]
2013년 부산 동서대학교 센텀시티 캠퍼스에 임권택 감독 기념관이 개관했다.[3]
2018년에는 영화 평론가 출신 정성일 감독이 제작한 임권택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구름, 다시》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4][5]
임권택 감독의 상세한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8]
연도 | 한국어 제목 | 영어 제목 |
---|---|---|
1962 | 두만강아 잘 있거라 | Farewell to the Duman River |
1962 | 전쟁과 노인 | Old Man in the Combat Zone |
1963 | 남자는 안 팔려 | Actors Disguised as Women |
1963 | 망부석 | A Wife Turned to Stone |
1963 | 신문고 | The Throne Memorial Drum |
1964 | 욕망의 결산 | The End of Desire |
1964 | 십자매 선생 | Father of Ten Daughters |
1964 | 십년세도 | The Ten-Year Rule |
1964 | 영화 마마 | 'Queen Yongwhas Avenger'' |
1964 | 단장록 | 'The Princes Revolt'' |
1964 | 단골 지각생 | The Latecomer |
1965 | 빗속에 지다 | Death of an Informer |
1965 | 왕과 상노 | A Bogus Nobleman |
1966 | 전쟁과 여교사 | Schoolmistress on the Battlefield |
1966 | 나는 왕이다 | I Am a King |
1966 | 닐니리 | A Triangle in Noble Families |
1966 | 법창을 울린 옥이 | Miss Ok and the Divided Court |
1967 | 망향천리 | A Wife Retrieved |
1967 | 풍운의 검객 | Swordsmen |
1967 | 청사초롱 | The Feudal Tenant |
1968 | 요화 장희빈 | Femme Fatale, Jang Hee-bin |
1968 | 바람같은 사나이 | A Man Called the Wind |
1968 | 몽녀 | The Waking Woman |
1968 | 돌아온 왼손잡이 | Return from the Sea |
1969 | 뢰검 | Thunder Sword |
1969 | 비나리는 고모령 | Rain on Gomo Bridge |
1969 | 상해 탈출 | Escape from Shanghai |
1969 | 황야의 독수리 | Eagle of the Plains |
1969 | 신세 좀 지자구요 | Would You Help Me? |
1969 | 십오야 | Night of the Full Moon |
1969 | 사나이 삼대 | Three Generations of Men |
1970 | 이슬맞은 백일홍 | Unmarried Mother |
1970 | 월하의 검 | Swords Under the Moon |
1970 | 애꾸눈 박 | One-Eyed Mr. Park |
1970 | 속눈썹이 긴 여자 | A Snapshot and a Murder |
1970 | 그 여자를 쫓아라 | A Woman Pursued |
1970 | 비검 | The Flying Sword |
1970 | 비나리는 선창가 | 'A Vagabonds Story'' |
1970 | 밤차로 온 사나이 | Man on the Night Train |
1971 | 원한의 두 꼽추 | Revenge of Two Sons |
1971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내린다 | Snowing on Grudge Street |
1971 | 요검 | Swordswoman |
1971 | 명동 삼국지 | Gangsters of Myeongdong |
1971 | 둘째 어머니 | 'A Stepmothers Heartache'' |
1971 |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 'Dont Torture Me Anymore'' |
1971 | 30년만의 대결 | The 30-Year Showdown |
1972 | 삼국대협 | Seize the Precious Sword |
1972 | 명동 잔혹사 | Cruelty on the Streets of Myeongdong |
1972 |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 | One Returns and the Other Leaves |
1972 | 대추격 | The Big Chase |
1973 | 잡초 | Weeds |
1973 | 장안 명기 오백화 | Five Hostesses for the Resistance |
1974 | 증언 | The Testimony |
1974 | 울지 않으리 | 'Ill Never Cry Again'' |
1974 | 연화 | The Hidden Princess |
1974 | 속 연화 | The Hidden Princess, Part 2 |
1974 | 아내들의 행진 | Wives on Parade |
1975 | 왜 그랬던가 | Who and Why? |
1975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Yesterday, Today and Tomorrow |
1976 | 낙동강은 흐르는가 | Commando on the Nakdong River |
1976 | 맨발의 눈길 | Barefoot In The Snow |
1976 | 아내 | The Industrious Wife |
1976 | 왕십리 | Wang Sib Ri, My Hometown |
1977 | 옥례기 | The Life of Okrye |
1977 | 임진왜란과 계월향 | Madame Kye in the Imjin War |
1978 | 가깝고도 먼 길 | Near Yet Far Away |
1978 | 상록수 | The Evergreen Tree |
1979 | 족보 | The Family Pedigree |
1979 | 저 파도위에 엄마 얼굴이 | The Little Adventurer |
1979 | 내일 또 내일 | Again Tomorrow |
1979 | 신궁 | The Divine Bow |
1980 | 깃발없는 기수 | The Hidden Hero |
1980 | 복부인 | Mrs. Speculator |
1981 | 만다라 | Mandala |
1982 | 우상의 눈물 | Tears of the Idol |
1982 | 나비 품에서 울었다 | In the Bosom of a Butterfly |
1982 | 오염된 자식들 | The Polluted One |
1982 | 안개 마을 | Village in the Mist |
1982 | 아벤고 공수군단 | Abenko Green Berets |
1983 | 짝코 | Pursuit of Death |
1983 | 불의 딸 | Daughter of the Flames |
1984 | 비구니 | The Woman Monk |
1984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 The Eternal Flow |
1985 | 길소뜸 | 길소뜸 |
1985 | 씨받이 | 씨받이 |
1986 | 티켓 | Ticket |
1987 | 아다다 | 아다다 |
1988 | 연산일기 | Diary of King Yeonsan |
1989 | 아제 아제 바라아제 | 아제 아제 바라 아제 |
1989 | 손에 손 잡고 | Hand in Hand |
1990 | 장군의 아들 | 장군의 아들 |
1991 | 개벽 | Fly High Run Far |
1991 | 장군의 아들 2 | 장군의 아들 2 |
1992 | 장군의 아들 3 | 장군의 아들 3 |
1993 | 서편제 | 서편제 |
1994 | 태백산맥 | The Taebaek Mountains |
1996 | 축제 | Festival |
1997 | 창 | Downfall |
2000 | 춘향뎐 | 춘향뎐 |
2002 | 취화선 | 취화선 |
2004 | 하류인생 | 하류인생 |
2007 | 천년학 | 천년학 |
2011 | 달빛 길어올리기 | 달빛 길어올리기 |
2014 | 화장 | Revivre |
3. 1. 연출
임권택 감독은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이후, 2014년 《화장》에 이르기까지 10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했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 영화사의 중요한 흐름을 반영하며,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다루고 있다.연도 | 주요 작품 |
---|---|
1960년대 |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 《망부석》(1963), 《십년세도》(1964), 《전쟁과 여교사》(1966), 《요화 장희빈》(1968) |
1970년대 | 《월하의 검》(1970),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내린다》(1971), 《잡초》(1973),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
1980년대 | 《만다라》(1981), 《안개 마을》(1982), 《길소뜸》(1985), 《씨받이》(1986), 《아다다》(1987) |
1990년대 | 《장군의 아들》(1990), 《서편제》(1993), 《태백산맥》(1994) |
2000년대 이후 | 《춘향뎐》(2000), 《취화선》(2002), 《하류인생》(2004), 《천년학》(2007), 《화장》(2014) |
- 1960년대에는 사극, 멜로 등 다양한 장르 영화를 연출했다.
- 1970년대에는 액션 영화와 사회성 짙은 영화들을 연출했다. 특히,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반공영화로서,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 1980년대는 임권택 감독의 작품 세계가 더욱 깊어진 시기이다. 이 시기 영화들은 불교적 성찰, 소외된 사람들의 삶, 분단의 아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씨받이》(1986)를 통해 강수연이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 1990년대에는 《장군의 아들》 시리즈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서편제》를 통해 한국 전통 예술인 판소리를 재조명하여 전국적인 판소리 열풍을 일으켰다.
- 200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취화선》은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였다.[8]
3. 2. 출연
-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2005년, 다큐멘터리 영화)
- 황금어장 (2010년, TV 예능, 3월 9일 및 3월 16일 방송분 게스트)
4. 수상 및 서훈
연도 | 상/훈장 | 작품 | 비고 |
---|---|---|---|
1974 | 아시아영화제 감독상 | ||
1976 |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작품상 | ||
1977 |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 ||
1978 | 대종상 감독상, 우수작품상 | ||
1981 | 대종상 감독상, 우수작품상 | ||
1983 |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작품상, 대상 | ||
1986 |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 대상 대종상 감독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 | ||
1987 | 대종상 감독상, 인기상, 최우수작품상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감독상 | ||
1989 | 보관문화훈장(3등급) | ||
1991 |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슈발리에 춘사대상영화제 감독상 청룡영화상 감독상 | 개벽 | |
1992 |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 ||
1993 | 대종상 감독상, 최우수작품상 상하이 국제 영화제 감독상 춘사대상영화제 감독상 청룡영화상 대상, 최우수작품상 | 서편제 | |
1994 |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 동아일보 선정 93올해의 인물 금호예술상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 ||
1995 | 춘사대상영화제 춘사영화예술인상 | ||
1996 | 청룡영화상 감독상, 최우수작품상 | ||
1997 | 씨네21 영화상 올해의 감독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문화상 | ||
1998 |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구로자와상 | ||
2000 |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대상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하와이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특별상 | ||
2002 | 칸 영화제 감독상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1등급) 유네스코 펠리니 황금메달 올해를 빛낸 한국인상 춘사대상영화제 춘사탄생100주년 기념공로상 청룡영화상 감독상, 최우수작품상 | ||
2003 | 호암상 예술상 | ||
2004 | 만해대상 | ||
2005 | 베를린국제영화제 명예황금곰상 자랑스런 전남인상 | ||
2007 | 앙드레김 베스트 스타 어워드 특별상 두바이국제영화제 평생공로상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 | ||
2009 | 마라케시 국제영화제 골드스타상 | ||
2011 | 올해의 인간상록수 문화영화인 부문 | ||
2014 | 싱가포르국제영화제 평생공로상 | ||
2015 | 아시안 필름 어워드 공로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 | ||
2016 | 춘사영화상 공로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공로상 |
5. 관련 서적
- 사토 다다오 저, 《한국 영화의 정신 임권택 감독과 그 시대》(2000년, 이와나미 쇼텐(岩波書店)) ISBN 4000028421
- 후쿠오카 유네스코 협회 편, 《임권택은 말하다: 영화·판소리·시대》(2015년, 겐쇼보(弦書房)) ISBN 486329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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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ビョンホン&ソン・イェジン「韓国映画評論家協会賞」で男女演技賞を受賞“10年ぶりのトロフ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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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상 1936년 5월 2일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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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영화감독 되기까지..20살 가출, 지게꾼-장사꾼 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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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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