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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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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글 작전은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MI6가 발트 3국 출신 요원들을 훈련시켜 소련 점령 지역에 침투시킨 비밀 작전이다. 런던 첼시에 훈련소를 설립하고, 과거 나치 독일 협력자들을 요원으로 활용했으며, 영국 해군의 지원과 독일 에스보트를 개조하여 사용했다. 초기에는 침투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나, 소련의 반첩보 활동과 이중 간첩의 활약으로 요원 손실이 증가하여 1955년 4월에 작전이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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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작전 - [전쟁]에 관한 문서
작전 개요
명칭정글 작전
시기1949년–1955년
장소발트해
폴란드
리투아니아
결과소련-폴란드 승리
세부 결과전반적인 작전 실패
해군 작전 성공
관련 분쟁냉전
중앙 및 동유럽의 반공 저항 운동
교전 세력
연합군영국
서독
스웨덴
덴마크
미국
적군소련
폴란드 인민 공화국
지휘관
연합군해리 S. 트루먼
헨리 카
존 하비-존스
한스-헬무트 클로제
라인하르트 겔렌
구스타프 6세 아돌프
프레데리크 9세
적군빅토르 아바쿠모프
라브렌티 베리야
볼레스와프 비에루트
병력 규모
연합군에스보트 2척
모터보트 3척
적군소련 초계정
피해 규모
연합군요원 3명 사망
요원 다수 포획
적군불명
작전 관련 이미지
작전에 투입 중인 에스보트
작전 중인 독일 '질버뫼베'급 모터보트 (정글 작전 후반기 사용)

2. 역사

1940년대 후반, MI6는 런던 첼시에 발트 3국 출신 요원들을 양성하기 위한 특수 기관을 설립했다.[10][2] 이 작전은 "정글"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렸으며, MI6 북동유럽국의 국장 헨리 카가 작전을 총괄했고, 발트 지역 담당관 알렉산더 맥키빈이 요원 훈련을 맡았다.[10][2] 에스토니아 요원들은 알폰소 레바네가, 라트비아 요원들은 루돌프 실라제르가, 리투아니아 요원들은 스타시스 치만타스가 훈련을 담당했다.[10][2] 이들은 과거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전력이 있어, 소련에 대한 반감이 강한 인물들을 선발한 것으로 보인다.

1946년 주독 미군에 의해 설립된 겔렌 조직은 옛 독일 국방군의 동부 외국인 부대와 동유럽 이민 조직을 규합해 만든 것으로 정글 작전을 지원하기로 하였다.[11][3] 요원들은 영국 발트 해 어업 보호국의 지원 하에 이동하였으며 최전방 부대들은 주독 영국군의 기지에서 출발하기도 했다. 영국 왕립 해군 사령관 앤서니 코트니를 대신하여 존 하비 존스가 이 작전에 투입되었고, 그는 왕립 해군에 2척의 에스보트가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12][4] 함선들은 포츠머스로 이동해 무게를 경량화하여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개조 작업에 들어갔다. 옛 독일 에스보트 함장 한스 헬무트 클로스와 독일 해군 부대가 에스보트에 투입되었다.[12][4] 이는 냉전 초기, 서방 정보기관들이 나치 부역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요원들은 에스토니아의 사라메섬, 라트비아의 우차바 교구 또는 벤츠필스, 리투아니아의 팔랑가, 폴란드우스트카 등으로 투입되었고 항상 덴마크보른홀름섬이 경유지였다.[10] 도착지에서 영국군은 런던에서 마지막 무전 송신을 하여 소련의 해역이라 주장하는 곳에 어둠을 틈타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침투했다.

2. 1. MI6의 발트 3국 요원 양성 (1940년대 후반)

1940년대 후반, MI6는 런던 첼시에 발트 3국 출신 요원들을 양성하기 위한 특수 기관을 설립했다.[10][2] 이 작전은 "정글"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렸으며, MI6 북동유럽국의 국장 헨리 카가 작전을 총괄했고, 발트 지역 담당관 알렉산더 맥키빈이 요원 훈련을 맡았다.[10][2] 에스토니아 요원들은 알폰소 레바네가, 라트비아 요원들은 루돌프 실라제르가, 리투아니아 요원들은 스타시스 치만타스가 훈련을 담당했다.[10][2] 이들은 과거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전력이 있다.

1946년 주독 미군에 의해 설립된 겔렌 조직은 옛 독일 국방군의 동부 외국인 부대와 동유럽 이민 조직을 규합해 만든 것으로 정글 작전을 지원하기로 하였다.[11][3] 요원들은 영국 발트 해 어업 보호국의 지원 하에 이동하였으며 최전방 부대들은 주독 영국군의 기지에서 출발하기도 했다. 영국 왕립 해군 사령관 앤서니 코트니를 대신하여 존 하비 존스가 이 작전에 투입되었고, 그는 왕립 해군에 2척의 에스보트가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12][4] 함선들은 포츠머스로 이동해 무게를 경량화하여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개조 작업에 들어갔다. 옛 독일 에스보트 함장 한스 헬무트 클로스와 독일 해군 부대가 에스보트에 투입되었다.[12][4]

요원들은 에스토니아의 사라메섬, 라트비아의 우차바 교구 또는 벤츠필스, 리투아니아의 팔랑가, 폴란드우스트카 등으로 투입되었고 항상 덴마크보른홀름섬이 경유지였다.[10] 도착지에서 영국군은 런던에서 마지막 무전 송신을 하여 소련의 해역이라 주장하는 곳에 어둠을 틈타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침투했다.

2. 2. 영국 해군의 지원과 에스보트 활용

MI6는 1940년대 후반 런던 첼시에 발트 국가 파견 요원 훈련 센터를 설립했다. 헨리 카와 알렉산더 맥키빈이 지휘한 이 작전은 "정글"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다.[2] 요원들은 영국 발트 해 어업 보호국(BBFPS)의 위장 하에 수송되었으며, 이 조직은 영국 점령 독일에서 시작된 위장 조직으로, 개조된 E 보트를 사용했다.[4]

영국 해군 사령관 앤서니 코트니는 전 E 보트 선체의 잠재적 능력에 주목했고, 해군 정보부의 존 하비-존스가 이 프로젝트를 맡았다. 영국 해군은 P5230과 P5208 두 대의 E 보트를 포츠머스로 보내 무게를 줄이고 출력을 높이도록 개조했다.[4] 부인 가능성을 위해 전 독일 E 보트 선장 한스-헬무트 클로제와 독일 기뢰 소해 관리국 출신의 독일 선원이 E 보트를 조종하도록 모집되었다.[4]

요원들은 에스토니아 사레마 섬, 라트비아 우자바 교구와 벤츠필스, 리투아니아 팔랑가, 폴란드 우스트카 등지에 투입되었으며, 보통 덴마크 보른홀름을 경유했다. 보트는 소련이 주장하는 영해에 진입하라는 무선 신호런던으로부터 받고, 어둠 속에서 목적지로 향해 해안 경비대와 딩기로 접선했다. 때로는 귀환 요원들을 맞이하기도 했다.[4]

3. 작전 전개

정글 작전은 여러 단계로 진행되었다.


  • 초기 침투 작전 (1949-1950)


1949년 5월, 에서 출발한 첫 번째 요원들이 클라이페다 북쪽 팔랑가에 투입되었다. 이들은 고스포트로 귀환하는 배에서 고무보트를 이용해 해안으로 이동했다. 초기 작전의 성공 이후, MI6는 1949년 11월 1일 벤츠필스에 2명의 요원을, 1950년 4월 12일에는 벤츠필스 남쪽에 3명의 요원을, 그리고 12월에는 팔랑가에 2명의 요원을 추가로 상륙시키는 등 즉흥적인 상륙 작전을 여러 차례 수행했다.

  • 영국 해군 정보부와 MI6의 협력 강화 (1950년대 초)


1950년 말, 영국 해군 정보부와 MI6는 협력을 강화하여 더 영구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클로제는 14명의 선원을 고용하여 함부르크-핀켄베르더에 함선 기지를 건립하고, 클로스와 더 깊숙한 침투 작전을 상의했다. 소련군에 의해 고문을 받은 서독 어부의 이야기를 통해 "영국 발트해 어업 보호 서비스"를 작전 위장 명칭으로 사용했다. 이 작전은 부차적으로 에스토니아의 사레마에서 동독의 뤼겐에 이르는 발트해 연안에 대한 시각 및 전자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이를 위해 배는 항해 거리를 늘리기 위한 추가 연료 탱크, 광범위한 안테나, 통신 정보 및 신호 정보 수집을 위한 미국 장비를 갖추도록 개조되었다. 1951년부터 1952년 사이에 4차례의 상륙 작전이 수행되어 16명의 요원이 투입되었고 5명의 요원이 귀환했다.

  • 신호 정보 작전을 위한 지원선 투입 (1952년)

1952년 8월, 제2의 E-보트가 신호 정보 작전을 위한 연료 보급 및 보급선이자 지원선으로 투입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클로제 휘하에서 복무한 전직 행정 장교인 E. G. 뮐러 중위가 지휘했다. 이 기간 동안 8명의 폴란드 요원이 해상 풍선을 이용하여 투입되었다.

  • 신형 고속정 도입과 소련과의 충돌 (1954-1955)


1954년부터 1955년까지 3대의 독일제 고속정이 건립되어 낡은 에스보트를 대체했다. 이 함선들의 암호명은 실버굴(Silbermöwede), 스톤굴(Sturmmöwede), 와일드스완(Wildschwande)이었다. 이들은 브레멘-베게작의 뤼르센 조선소에서 서독 국경 경찰을 위해 건조되었지만, 포츠담 조약에서 허용된 속도를 초과한다는 핑계로 프랑스와 영국 당국이 클로제의 임무를 위해 압수했다.

1955년 2월, 브뤼스터오르트에서 리예파야까지의 신호 정보(SIGINT) 수색 작전 중 클라이페다 앞바다에서 소련 순찰선과 15분간 교전이 벌어졌다. 에르하르트의 와일드스완은 소련군에 의해 사격을 받았지만, 독일 해군은 최고 속도로 도주하여 소련군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3. 1. 초기 침투 작전 (1949-1950)

1949년 5월, 에서 출발한 첫 번째 요원들이 클라이페다 북쪽 팔랑가에 투입되었다. 이들은 고스포트로 귀환하는 배에서 고무보트를 이용해 해안으로 이동했다. 초기 작전의 성공 이후, MI6는 1949년 11월 1일 벤츠필스에 2명의 요원을, 1950년 4월 12일에는 벤츠필스 남쪽에 3명의 요원을, 그리고 12월에는 팔랑가에 2명의 요원을 추가로 상륙시키는 등 즉흥적인 상륙 작전을 여러 차례 수행했다.

3. 2. 영국 해군 정보부와 MI6의 협력 강화 (1950년대 초)

1950년 말, 영국 해군 정보부와 MI6는 협력을 강화하여 더 영구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클로제는 14명의 선원을 고용하여 함부르크-핀켄베르더에 함선 기지를 건립하고, 클로스와 더 깊숙한 침투 작전을 상의했다. 소련군에 의해 고문을 받은 서독 어부의 이야기를 통해 "영국 발트해 어업 보호 서비스"를 작전 위장 명칭으로 사용했다. 이 작전은 부차적으로 에스토니아의 사레마에서 동독의 뤼겐에 이르는 발트해 연안에 대한 시각 및 전자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이를 위해 배는 항해 거리를 늘리기 위한 추가 연료 탱크, 광범위한 안테나, 통신 정보 및 신호 정보 수집을 위한 미국 장비를 갖추도록 개조되었다. 1951년부터 1952년 사이에 4차례의 상륙 작전이 수행되어 16명의 요원이 투입되었고 5명의 요원이 귀환했다.

3. 3. 신형 고속정 도입과 소련과의 충돌 (1954-1955)

1954년부터 1955년까지 3대의 독일제 고속정이 건립되어 낡은 에스보트를 대체했다. 이 함선들의 암호명은 실버굴(독일어: 질버뫼베), 스톤굴(독일어: 슈투름뫼베), 와일드스완(독일어: 빌트슈반)이었다. 이들은 브레멘-베게작의 뤼르센 조선소에서 서독 국경 경찰을 위해 건조되었지만, 포츠담 조약에서 허용된 속도를 초과한다는 핑계로 프랑스와 영국 당국이 클로제의 임무를 위해 압수했다.

1955년 2월, 브뤼스터오르트에서 리예파야까지의 신호 정보(SIGINT) 수색 작전 중 클라이페다 앞바다에서 소련 순찰선과 15분간 교전이 벌어졌다. 에르하르트의 와일드스완은 소련군에 의해 사격을 받았지만, 독일 해군은 최고 속도로 도주하여 소련군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4. 작전 구성 및 실패

소련군의 반첩보 활동 담당자와 영국의 이중 스파이에 의해 정글 작전은 구성되었다.[15] 광범위한 반침투 작전에서 소련군은 42명의 요원 대부분을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았다. 대부분의 요원은 전향하여 발트 해의 저항 운동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했다. KGB에 사로잡힌 에스토니아 요원 마르트 메니크는 자신의 자서전을 기록하였고, 그의 죽음 이후 이 책이 출판되어 영어로 번역되었다. 책은 성공적이지 못했던 작전에 대한 그의 경험을 서술하고 있다.[15]

정글 작전은 주로 영국의 "케임브리지 파이브"가 제공한 정보를 통해 소련 방첩기관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뤼르센의 이름을 딴 대규모 역작전 "Lursen-S"에서 MGB/KGB는 현장에 투입된 42명의 발트해 요원 거의 전부를 체포하거나 사살했다. 그들 중 다수는 이중 간첩으로 전환되어 발트해 저항 세력에 침투하여 크게 약화시켰다.

에스토니아로 파견되어 KGB에 체포된 요원 중 한 명인 마르트 메니크는 자서전 ''얽힌 거미줄: 에스토니아의 영국 스파이''를 썼는데, 그는 사망 3년 후인 2001년에 출판되었으며, 2008년에 영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은 작전 실패 전후 그의 경험을 설명한다.[7]

MI6는 증가하는 요원 손실치와 작전의 종결을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1955년 4월 작전을 중단했다.[16] 마지막 작전은 1955년 4월 사라메 섬의 상륙이었다.[16] 쿠를란트에서의 전반적인 MI6 작전은 낭패로 여겨지지만 미군 감시 체계와 영국 해군의 첩보 활동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작전에 투입된 고속정은 신설된 독일 연방 해군에 1956년 인계되었다.

4. 1. 소련의 반첩보 활동과 이중 간첩

소련군의 반첩보 활동 담당자와 영국의 이중 스파이에 의해 정글 작전은 구성되었다.[15] 광범위한 반침투 작전에서 소련군은 42명의 요원 대부분을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았다.[15] 대부분의 요원은 전향하여 발트 해의 저항 운동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했다.[15] KGB에 사로잡힌 에스토니아 요원 마르트 메니크는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작전의 실패를 증언했다.[15]

정글 작전은 주로 영국의 "케임브리지 파이브"가 제공한 정보를 통해 소련 방첩기관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Lursen-S"에서 MGB/KGB는 현장에 투입된 42명의 발트해 요원 거의 전부를 체포하거나 사살했다. 그들 중 다수는 이중 간첩으로 전환되어 발트해 저항 세력에 침투하여 크게 약화시켰다.

MI6는 증가하는 요원 손실치와 작전의 종결을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1955년 4월 작전을 중단했다.[16] 마지막 작전은 1955년 4월 사라메 섬의 상륙이었다.[16] 쿠를란트에서의 전반적인 MI6 작전은 낭패로 여겨지지만 미군 감시 체계와 영국 해군의 첩보 활동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작전에 투입된 고속정은 신설된 독일 연방 해군에 1956년 인계되었다.

4. 2. 작전 중단과 평가

MI6은 증가하는 요원 손실과 작전의 종결을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1955년 4월 작전을 중단했다.[16] 마지막 작전은 1955년 4월 사라메 섬 상륙이었다.[16][8] 쿠를란트에서의 전반적인 MI6 작전은 낭패로 여겨지지만, 미군 감시 체계와 영국 해군의 첩보 활동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광범위한 반침투 작전에서 소련군은 거의 42명의 요원 대부분을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았다.[15] 대부분의 요원은 전향하여 발트 해의 저항 운동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했다. KGB에 사로잡힌 에스토니아 요원 마르트 메니크는 자신의 자서전을 기록하였고, 그의 죽음 이후 이 책이 출판되어 영어로 번역되었다. 책은 성공적이지 못했던 작전에 대한 그의 경험을 서술하고 있다.[15] 작전에 투입된 고속정은 신설된 독일 연방 해군에 1956년 인계되었다.

5. 작전의 유산

참조

[1] 서적 MI6: Inside the Covert World of Her Majesty's Secret Intelligence Service Simon and Schuster
[2] 서적 War in the Woods: Estonia's Struggle for Survival, 1944-1956 Howells House
[3] 서적 The General Was a Spy: The Truth about General Gehlen and his spy ring Coward, McCann & Geoghegan
[4] 서적 Twilight Warriors Naval Institute Press
[5] 간행물 The Clandestine Operations of Hans Helmut Klose and the British Baltic Fishery Protection Service (BBFPS) 1945-1956 https://books.google[...] LIT Verlag Münster
[6] 웹사이트 Die Schnellboot-Seite - S-Boats Federal GE Navy http://s-boot.net/sb[...] 2016-01-15
[7] 서적 A Tangled Web: A British Spy in Estonia http://www.phototour[...] Grenader Publishing 2010-03-27
[8] 서적 Historical Dictionary of German Intelligence https://archive.org/[...] Scarecrow Press
[9] 서적 MI6: Inside the Covert World of Her Majesty's Secret Intelligence Service Simon and Schuster
[10] 서적 War in the Woods: Estonia's Struggle for Survival, 1944-1956 Howells House
[11] 서적 The General Was a Spy: The Truth about General Gehlen and his spy ring Coward, McCann & Geoghegan
[12] 서적 Twilight Warriors https://archive.org/[...] Naval Institute Press
[13] 저널 The Clandestine Operations of Hans Helmut Klose and the British Baltic Fishery Protection Service (BBFPS) 1945-1956 https://books.google[...] LIT Verlag Münster
[14] 웹인용 Die Schnellboot-Seite - S-Boats Federal GE Navy http://s-boot.net/sb[...] 2016-01-15
[15] 서적 A Tangled Web. A British Spy in Estonia http://www.phototour[...] Grenader Publishing 2016-10-01
[16] 서적 Historical Dictionary of German Intelligence Scarecrow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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