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중화항공 611편 추락 사고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중화항공 611편 추락 사고는 2002년 5월 25일, 승객과 승무원 225명을 태우고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중 펑후 제도 인근 해상에서 기체가 공중 분해되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고이다. 사고기는 1979년에 제작된 보잉 747-209B 여객기로, 22년 전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 착륙 과정에서 테일스트라이크를 일으킨 후 부적절하게 수리되어 기체에 균열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공중 분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 결과, 테일스트라이크 사고 이후 보잉 구조 수리 매뉴얼을 따르지 않은 부적절한 수리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2002년 대만 - 제39회 금마장
    제39회 금마장은 2002년에 개최되었으며, 홍콩 영화가 두각을 나타내 《가장 좋은 시절》이 최우수 극영화상을, 챈 과이가 감독상을, 여명이 남우주연상을, 이심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펑후현의 역사 - 트랜스아시아 항공 222편 추락 사고
    트랜스아시아 항공 222편 추락 사고는 2014년 태풍 마트모의 영향으로 악천후 속에서 가오슝에서 마궁으로 향하던 중 착륙에 실패하여 48명이 사망한 사고이다.
  • 펑후현의 역사 - 펑후 제도 작전
    펑후 제도 작전은 1895년 청일 전쟁 중 일본 제국이 타이완 점령을 위해 펑후 제도를 점령한 군사 작전으로, 일본군은 주요 거점을 점령했으나 콜레라로 인해 많은 병력을 잃었다.
  • 2002년 항공 사고 - 중국국제항공 129편 추락 사고
    중국국제항공 129편 추락 사고는 2002년 김해국제공항 착륙 중 돗대산에 추락하여 129명이 사망한 사고이며, 기장의 부적절한 조종과 승무원 자원 관리 미흡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 2002년 항공 사고 - 2002년 위버링겐 공중 충돌 사고
    2002년 7월 1일 독일 남부 보덴 호 상공에서 바시키르 항공 2937편과 DHL 항공 611편이 공중 충돌하여 탑승자 71명 전원이 사망한 이 사고는 항공 교통 관제 시스템 오류와 조종사 대처 미흡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했으며, 이후 항공 안전 규정 강화와 관제 시스템 개선의 계기가 되었다.
중화항공 611편 추락 사고 - [전쟁]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00년에 촬영된 사고기
사고 항공기 (B-18255)
사고 종류수리 불량으로 인한 기체 구조 결함 및 공중 분해 사고
발생 날짜2002년 5월 25일
발생 위치타이완 해협, 펑후 제도 북동쪽 해상
항공편 정보
항공사중화항공
편명CI611/CAL611/DYNASTY 611
기체 등록 번호B-18255
기종보잉 747-209B
출발지중정 국제공항, 타오위안시, 타이완
목적지홍콩 국제공항
탑승자 정보
승객206명
승무원19명
총 탑승자225명
사망자225명 (전원 사망)
생존자0명

2. 사고 개요

2002년 5월 25일, 중화항공 611편(B-18255)은 승객과 승무원 225명을 태우고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을 이륙하여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이 항공편은 현지 시간 15시 08분(07시 08분 협정 세계시)에 이륙하여 홍콩 시간 16시 28분(08시 28분 협정 세계시)에 홍콩에 도착할 예정이었다.[6][7]

15시 16분, 항공 관제는 고도 35,000피트(약 10,668m)로 상승을 지시했고, 조종사들은 이를 따랐다. 그러나 15시 28분, 펑후 제도 인근 해상에서 기체가 공중 분해되며 추락했다.[9][10] 이 사고로 탑승객 206명(스위스인 1명 포함)과 승무원 19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사고기는 1979년에 제작되어 64,000시간 이상 비행한 보잉 747-209B 여객기였다. 사고기는 22년 전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에 착륙하는 과정에서 테일스트라이크를 일으켰고, 당시 정비사들은 제대로 된 수리 대신 임시 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기체에 균열이 발생했고, 결국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

== 사고 발생 과정 ==

중화항공 611편(B-18255)은 현지 시간 15시 08분(협정 세계시 07시 08분)에 이륙하여 홍콩 시간 16시 28분(협정 세계시 08시 28분)에 홍콩에 도착할 예정이었다.[6][7] 기장은 이칭펑(Yì Qīngfēng/易清豐중국어), 부기장은 시에 야시옹(Xiè Yàxióng/謝亞雄중국어), 항공 기관사는 자오 솅궈(Zhào Shèngguó/趙盛國중국어)였다.[8] 세 조종사 모두 비행 경험이 풍부했는데, 두 조종사는 10,100시간 이상, 항공 기관사는 19,100시간 이상 비행했다.[8]

15시 16분, 611편은 비행 고도 35,000피트(약 10,668m)까지 상승하도록 허가받았다.[9][10] 15시 33분, 항공기와의 교신이 두절되었다.[9][10] 이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조종실 음성 녹음 장치에는 조종실 승무원이 콧노래를 부르는 것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이상 징후는 없었다. 그러나 15시 28분경, 레이더에 나타난 611편의 기체는 크게 4개로 분열되어 사라졌으며, 공중 분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대만의 교통부 차관 창 자지우(Chang Chia-juch)는 해당 지역에 있던 캐세이퍼시픽 항공 소속 항공기 두 대가 B-18255의 비상 위치 표시 신호를 수신했다고 밝혔다.[11] 18시 10분, 수색대는 기체 잔해 주요 부분을 펑후 현 마궁 시 북쪽 해역에서 발견했다. 사고기의 비행 경로 아래에 위치하며, 추락 현장으로부터 약 100km 떨어진 타이완 섬 중부의 장화 현 쑤이수이샹 샤룬촌에서는 승객의 소지품으로 보이는 명함, 항공권, 기내지 등이 발견되었다. 기체 잔해는 광범위하게 흩어졌다.[12] 이 사고로 승무원 19명과 승객 206명, 총 225명 전원이 사망했다.

== 탑승자 정보 ==

탑승객 206명과 승무원 19명을 포함하여 총 22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국적별로는 대만인 190명, 중국인 9명, 홍콩인 5명, 싱가포르인 1명, 스위스인 1명이었으며, 승무원 19명은 모두 대만인이었다. 탑승객 중에는 대만 정치인 유지청과 ''연합보''의 기자 2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114명의 탑승객은 4개의 여행사가 조직한 중국 여행에 참여한 대만 단체 관광객이었다.

탑승객과 승무원 중 175명의 시신이 수습되어 신원이 확인되었다. 처음 82구의 시신은 타이완 해협 해상에서 발견되었으며, 어선과 군함에 의해 수습되었다. 이후 계약된 수색 선박이 항공기 잔해와 나머지 시신을 수습하는 데 사용되었다.

피해자들은 육안 식별, 소지품, 지문, 치아 검사 및 DNA 검사를 통해 신원이 확인되었다. 수습된 3명의 비행 승무원 시신에 대해서만 부검이 실시되었다. 피해자들의 시신은 사진으로 촬영되었고, 옷과 소지품은 목록으로 작성되어 유족에게 반환되었다. 시신 도해, 부상 프로토콜, 사진 및 개인 식별과 관련된 기타 문서 등 피해자 기록은 확인된 각 피해자에 대해 상호 연관되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머리 부상, 경골 및 비골 골절, 심한 등 찰과상, 골반 부상과 일치하는 광범위한 부상을 입었다. 대부분의 시신은 골절된 뼈를 제외하고는 거의 온전했다. 일부 피해자는 폐 조직 팽창, 피하 기종 및 코와 입의 출혈을 겪었다. 수습된 시신이나 옷에서 탄소 잔재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화재, 연소 또는 폭발 손상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기장은 51세, 부조종사는 52세, 항공 기관사는 54세로 모두 남성이었으며, 16명의 객실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국적탑승객승무원총계
대만19019209
중국909
홍콩505
싱가포르101
스위스101
총계20619225


2. 1. 사고 발생 과정

중화항공 611편(B-18255)은 현지 시간 15시 08분(협정 세계시 07시 08분)에 이륙하여 홍콩 시간 16시 28분(협정 세계시 08시 28분)에 홍콩에 도착할 예정이었다.[6][7] 기장은 이칭펑(Yì Qīngfēng/易清豐중국어), 부기장은 시에 야시옹(Xiè Yàxióng/謝亞雄중국어), 항공 기관사는 자오 솅궈(Zhào Shèngguó/趙盛國중국어)였다.[8] 세 조종사 모두 비행 경험이 풍부했는데, 두 조종사는 10,100시간 이상, 항공 기관사는 19,100시간 이상 비행했다.[8]

15시 16분, 611편은 비행 고도 35,000피트(약 10,668m)까지 상승하도록 허가받았다.[9][10] 15시 33분, 항공기와의 교신이 두절되었다.[9][10] 이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조종실 음성 녹음 장치에는 조종실 승무원이 콧노래를 부르는 것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이상 징후는 없었다. 그러나 15시 28분경, 레이더에 나타난 611편의 기체는 크게 4개로 분열되어 사라졌으며, 공중 분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대만의 교통부 차관 창 자지우(Chang Chia-juch)는 해당 지역에 있던 캐세이퍼시픽 항공 소속 항공기 두 대가 B-18255의 비상 위치 표시 신호를 수신했다고 밝혔다.[11] 18시 10분, 수색대는 기체 잔해 주요 부분을 펑후 현 마궁 시 북쪽 해역에서 발견했다. 사고기의 비행 경로 아래에 위치하며, 추락 현장으로부터 약 100km 떨어진 타이완 섬 중부의 장화 현 쑤이수이샹 샤룬촌에서는 승객의 소지품으로 보이는 명함, 항공권, 기내지 등이 발견되었다. 기체 잔해는 광범위하게 흩어졌다.[12] 이 사고로 승무원 19명과 승객 206명, 총 225명 전원이 사망했다.

2. 2. 탑승자 정보

탑승객 206명과 승무원 19명을 포함하여 총 22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23] 국적별로는 대만인 190명, 중국인 9명, 홍콩인 5명, 싱가포르인 1명, 스위스인 1명이었으며, 승무원 19명은 모두 대만인이었다. 탑승객 중에는 대만 정치인 유지청[13]과 ''연합보''의 기자 2명이 포함되어 있었다.[11] 또한, 114명의 탑승객은 4개의 여행사가 조직한 중국 여행에 참여한 대만 단체 관광객이었다.[14]

탑승객과 승무원 중 175명의 시신이 수습되어 신원이 확인되었다. 처음 82구의 시신은 타이완 해협 해상에서 발견되었으며, 어선과 군함에 의해 수습되었다. 이후 계약된 수색 선박이 항공기 잔해와 나머지 시신을 수습하는 데 사용되었다.[23]

피해자들은 육안 식별, 소지품, 지문, 치아 검사 및 DNA 검사를 통해 신원이 확인되었다. 수습된 3명의 비행 승무원 시신에 대해서만 부검이 실시되었다. 피해자들의 시신은 사진으로 촬영되었고, 옷과 소지품은 목록으로 작성되어 유족에게 반환되었다. 시신 도해, 부상 프로토콜, 사진 및 개인 식별과 관련된 기타 문서 등 피해자 기록은 확인된 각 피해자에 대해 상호 연관되었다.[23]

대부분의 피해자는 머리 부상, 경골 및 비골 골절, 심한 등 찰과상, 골반 부상과 일치하는 광범위한 부상을 입었다. 대부분의 시신은 골절된 뼈를 제외하고는 거의 온전했다. 일부 피해자는 폐 조직 팽창, 피하 기종 및 코와 입의 출혈을 겪었다.[23] 수습된 시신이나 옷에서 탄소 잔재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화재, 연소 또는 폭발 손상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23]

기장은 51세, 부조종사는 52세, 항공 기관사는 54세로 모두 남성이었으며, 16명의 객실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국적탑승객승무원총계
대만19019209
중국909
홍콩505
싱가포르101
스위스101
총계20619225


3. 사고 원인

1980년 2월 7일, 중화항공 611편(당시 기체번호 B-18255)은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에서 타오위안 국제공항으로, 킹 압둘아지즈 국제공항과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을 경유하여 중화항공 009편(콜사인 "DYNASTY 009")으로 운항하던 중, 홍콩 카이탁 공항 착륙 과정에서 기체 후미가 활주로에 긁히는 테일 스트라이크 사고를 일으켰다.[23] 사고 당일 항공기는 감압되었고, 대만으로 회송되어 다음 날 임시 수리가 이루어졌다.[23] 이후 1980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중화항공에 의해 영구적인 수리가 실시되었으나,[23] 이 수리는 보잉 구조 수리 매뉴얼(SRM)을 따르지 않은 부적절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23]

SRM에 따르면, 손상된 전체 스킨을 교체하거나 손상된 부분을 잘라내고 보강용 덧대 판을 설치하여 구조 강도를 복원해야 했다.[23] 그러나 중화항공은 손상된 스킨 위에 덧대 판을 설치하는 방식을 택했다.[23] 설치된 덧대 판은 너무 작아서 손상된 영역을 완전히 덮지 못했고, 긁힌 자국이 덧대 판을 고정하는 가장 바깥쪽 패스너 열과 그 바깥쪽에 남아 있었다.[23] 이로 인해 덧대 판 아래 숨겨진 균열이나, 덧대 판의 주변과 리벳 열 사이에서 균열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23]

결과적으로 비행 중 반복적인 가압 및 감압 주기를 거치면서, 노출된 긁힌 자국 주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고기 파편을 분석한 결과, 정비사는 표면을 연마한 후 손상 부위에 알루미늄 합금으로 된 덧판(더블러 플레이트)을 앞뒤로 2장, 리벳으로 붙여 보강했을 뿐이며, 보강재는 손상 부분을 완전히 덮지 못했고, 리벳도 너무 많이 박아 기체는 그대로 사용되었고 반복되는 가압으로 인해 피로 균열이 확산되었다. 일반적인 피로 균열은 리벳 구멍에서 앞뒤 방향으로 서서히 퍼져나가지만, 이 사고의 경우 남겨진 손상 중 특히 리벳 구멍 사이의 손상을 기점으로 외판 표면 측에서 외판 내부로 향해 피로 균열이 구멍을 잇는 듯이 진행되어, 비교적 조기에 외판이 길게(15.1인치) 피로 균열이 성장했고, 최종적으로 구조 전체가 붕괴되면서 크게 파단(93인치)에 이르렀다. 결국 2002년 5월 25일, 결함 있는 수리가 이루어진 지 22년이 되는 날, 611편은 운항 중 기체가 공중에서 파열되었다. 균열이 열리면서 발생한 급격한 감압으로 인해 항공기 동체가 46번 구역(주 날개 상자 뒤쪽)에서 분리되었다.[23][24] 46번 구역 앞쪽의 나머지 항공기는 급강하하여, 네 개의 엔진이 거의 동시에 날개에서 분리되었고, 엔진 퓨즈 핀이 약 29000피트에서 파손되었다. 이후, 초기 파단 지점 앞쪽의 날개와 동체는 해상 충돌 시까지 연결된 상태로 유지되었다.

비행 안전 조사 위원회와 NTSB는 2002년 12월 25일, 기체 후부 잔해에서 금속 피로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와 마찬가지로, 테일 스트라이크 사고 이후의 부적절한 수리 작업이 원인이었지만,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의 경우에는 보잉에 의한 부적절한 수리 작업이 원인이었던 반면, 이번에는 중화항공에 의해 수리 매뉴얼을 따르지 않은 불완전한 수리가 이루어진 비극이었다.

3. 1. 테일스트라이크 사고와 부적절한 수리

1980년 2월 7일, 해당 항공기는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에 착륙 중 기체 꼬리 부분이 활주로에 긁히는 테일 스트라이크 사고를 일으켰다.[23] 당일 임시 수리가 이루어졌고, 1980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중화항공에 의해 영구적인 수리가 실시되었다.[23][23]

그러나 이 영구적인 수리는 보잉 구조 수리 매뉴얼(SRM)에 따라 수행되지 않았다.[23] SRM에 따르면 손상된 부분을 완전히 교체하거나 잘라내고 보강용 덧판을 설치해야 했지만,[23] 중화항공은 손상된 부분 위에 덧판을 덧대는 방식으로 수리했다.[23] 문제는 설치된 덧판이 너무 작아 손상 영역을 완전히 덮지 못했고, 긁힌 자국이 덧판을 고정하는 리벳 바깥쪽에 남아 있었다.[23] 이로 인해 덧판 아래 숨겨진 균열이나 덧판 주변에서 균열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23]

결국 반복적인 비행 중 압력 변화로 인해 노출된 긁힌 자국 주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사고 당일 기체가 공중에서 파열되었다. 이는 급격한 감압으로 이어져 항공기 동체가 분리되는 원인이 되었다.[23][24]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역시 테일 스트라이크 후 부적절한 수리가 원인이었지만,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는 보잉의 수리 잘못이였던 반면, 중화항공 611편 추락 사고는 중화항공이 수리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비행 안전 조사 위원회와 NTSB는 2002년 12월 25일 기체 후부 잔해에서 금속 피로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으며,[28] 사고기는 이전에 발생한 사고의 수리가 불완전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기체 후부의 금속 피로로 인해 순항 비행 중 공중 분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기 파편을 분석한 결과, 정비사는 표면을 연마한 후, 손상 부위에 알루미늄 합금으로 된 덧판(더블러 플레이트)을 앞뒤로 2장, 리벳으로 붙여 보강했을 뿐이며, 보강재는 손상 부분을 완전히 덮지 못했고, 리벳도 너무 많이 박아 기체는 그대로 사용되었고 반복되는 가압으로 인해 피로 균열이 확산되었다.

3. 2. 금속 피로 누적과 공중 분해

1980년 2월 7일, 중화항공 611편(당시 기체번호 B-18255)은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에서 타오위안 국제공항으로, 킹 압둘아지즈 국제공항과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을 경유하여 중화항공 009편(콜사인 "DYNASTY 009")으로 운항하던 중, 홍콩 카이탁 공항 착륙 과정에서 기체 후미가 활주로에 긁히는 테일 스트라이크 사고를 일으켰다.[23] 사고 당일 항공기는 감압되었고, 대만으로 회송되어 다음 날 임시 수리가 이루어졌다.[23] 이후 1980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중화항공에 의해 영구적인 수리가 실시되었으나,[23] 이 수리는 보잉 구조 수리 매뉴얼(SRM)을 따르지 않은 부적절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23]

SRM에 따르면, 손상된 전체 스킨을 교체하거나 손상된 부분을 잘라내고 보강용 덧대 판을 설치하여 구조 강도를 복원해야 했다.[23] 그러나 중화항공은 손상된 스킨 위에 덧대 판을 설치하는 방식을 택했다.[23] 설치된 덧대 판은 너무 작아서 손상된 영역을 완전히 덮지 못했고, 긁힌 자국이 덧대 판을 고정하는 가장 바깥쪽 패스너 열과 그 바깥쪽에 남아 있었다.[23] 이로 인해 덧대 판 아래 숨겨진 균열이나, 덧대 판의 주변과 리벳 열 사이에서 균열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23]

결과적으로 비행 중 반복적인 가압 및 감압 주기를 거치면서, 노출된 긁힌 자국 주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고기 파편을 분석한 결과, 정비사는 표면을 연마한 후 손상 부위에 알루미늄 합금으로 된 덧판(더블러 플레이트)을 앞뒤로 2장, 리벳으로 붙여 보강했을 뿐이며, 보강재는 손상 부분을 완전히 덮지 못했고, 리벳도 너무 많이 박아 기체는 그대로 사용되었고 반복되는 가압으로 인해 피로 균열이 확산되었다. 일반적인 피로 균열은 리벳 구멍에서 앞뒤 방향으로 서서히 퍼져나가지만, 이 사고의 경우 남겨진 손상 중 특히 리벳 구멍 사이의 손상을 기점으로 외판 표면 측에서 외판 내부로 향해 피로 균열이 구멍을 잇는 듯이 진행되어, 비교적 조기에 외판이 길게(15.1인치) 피로 균열이 성장했고, 최종적으로 구조 전체가 붕괴되면서 크게 파단(93인치)에 이르렀다. 결국 2002년 5월 25일, 결함 있는 수리가 이루어진 지 22년이 되는 날, 611편은 운항 중 기체가 공중에서 파열되었다. 균열이 열리면서 발생한 급격한 감압으로 인해 항공기 동체가 46번 구역(주 날개 상자 뒤쪽)에서 분리되었다.[23][24] 46번 구역 앞쪽의 나머지 항공기는 급강하하여, 네 개의 엔진이 거의 동시에 날개에서 분리되었고, 엔진 퓨즈 핀이 약 29000피트에서 파손되었다. 이후, 초기 파단 지점 앞쪽의 날개와 동체는 해상 충돌 시까지 연결된 상태로 유지되었다.

비행 안전 조사 위원회와 NTSB는 2002년 12월 25일, 기체 후부 잔해에서 금속 피로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와 마찬가지로, 테일 스트라이크 사고 이후의 부적절한 수리 작업이 원인이었지만,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의 경우에는 보잉에 의한 부적절한 수리 작업이 원인이었던 반면, 이번에는 중화항공에 의해 수리 매뉴얼을 따르지 않은 불완전한 수리가 이루어진 비극이었다.

4. 사고 조사

대만 비행안전조사위원회(ASC)와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공동으로 사고 조사를 진행했다. 수색대는 희생자 중 162구의 유해와 기체의 85%에 해당하는 잔해를 수습했지만, 어느 것에도 폭발의 흔적이나 불에 탄 흔적이 없었기에 공중 분해된 것으로 단정했다. 그래서 조사를 담당하는 비행 안전 조사 위원회(최고 책임자: Kay Yong)는 협력 기관인 NTSB(미국 국가 교통 안전 위원회, 주임 조사관: John Delisi)에게 유사 사건 중 하나인 TWA 800편 추락 사고의 조사 자료 제공을 의뢰했다.

4. 1. 잔해 수색 및 분석

록히드 C-130 허큘리스 군용기가 펑후 제도 마궁에서 북동쪽으로 23해리(43km) 떨어진 곳에서 추락한 여객기를 발견했다.[15] 유막도 17시 05분에 발견되었고, 첫 번째 시신은 18시 10분에 발견되었다. 추락 전에는 조난 신호나 통신이 전송되지 않았다. 레이더 데이터에 따르면 항공기는 FL 350에서 4조각으로 부서진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기 내에서 발견되었을 가벼운 물품들이 대만 중부의 마을에서 추락 지점으로부터 최대 13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 물품에는 잡지, 문서, 수하물, 사진, 신 대만 달러, 항공기 안전 카드 및 중화항공이 새겨진 피 묻은 베갯잇이 포함되었다.[16][17][18]

비행기는 35,000피트(11,000m)의 순항 고도에 접근하면서 수평 비행을 했다. 파손 직전, 항공기 4개의 엔진 중 2개가 약간 더 높은 추력을 내기 시작했는데, 이는 나중에 정상 편차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4개의 엔진 모두 바다에서 인양되었으며 추락 전에 고장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창화시를 포함하여, 항공기 파편이 바다와 대만에서 발견되었다.[19][20]

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항공기 수색에 협력했다. 중국은 대만 인력에게 타이완 해협의 중화인민공화국 관할 구역에서 시신과 항공기 파편을 수색하도록 허용했다.[9][21] 중화항공은 유족들에게 DNA 검사를 위해 국가경찰청과 다른 두 곳에 혈액 샘플을 제출하도록 요청했다.[22]

《유나이티드 데일리 뉴스》는 승객의 일부 유족들이 홍콩행 이 비행편의 존재가 "불필요하다"고 묘사했다고 보도했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중국 본토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대만과 중국 본토 간의 직항 노선이 없어 여행객들은 홍콩을 경유해야 했다. 유족들은 대만과 중국 본토 간의 직항 노선 개통을 옹호했으며,[21] 이는 결국 실현되었다.

수색대는 희생자 중 175명중 162구의 유해와 기체의 85%에 해당하는 잔해를 수습했지만, 어느 것에도 폭발의 흔적이나 불에 탄 흔적이 없었기에 공중 분해된 것으로 단정했다. 그래서 조사를 담당하는 비행 안전 조사 위원회(최고 책임자: Kay Yong)는 협력 기관인 NTSB(미국 국가 교통 안전 위원회, 주임 조사관: John Delisi)에게 유사 사건 중 하나인 TWA 800편 추락 사고의 조사 자료 제공을 의뢰했다.

4. 2. 유사 사고와의 비교

중화항공 611편 추락 사고 초기에는 TWA 800편 추락 사고와 유사점(더운 날씨, 노후 기종, 상승 중 공중 분해)이 있어 동일 원인이 의심되기도 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중화항공 611편은 1980년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에서 착륙 중 발생한 테일 스트라이크 사고 이후 부적절한 수리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23][23]

사고기는 테일 스트라이크 이후 임시 수리를 거쳐, 1980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중화항공팀에 의해 영구적인 수리가 실시되었다.[23] 하지만 이 영구적인 수리는 보잉 구조 수리 매뉴얼(SRM)에 따라 수행되지 않았다.[23] 중화항공팀은 손상된 스킨 위에 덧대 판을 설치했는데, 이 덧대 판은 너무 작아 손상된 영역을 완전히 덮지 못했고, 긁힌 자국이 덧대 판을 고정하는 가장 바깥쪽 패스너 열과 그 바깥쪽에 그대로 노출되었다.[23] 이로 인해 덧대 판 아래 숨겨진 균열이나 덧대 판 주변, 리벳 열 사이에서 균열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23]

결국, 반복적인 가압 및 감압 주기를 거치면서 노출된 긁힌 자국 주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사고 당일 기체가 공중에서 파열되었다.[23][24]

이러한 테일 스트라이크 후 결함 있는 수리로 인한 747기 추락은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에 이어 두 번째였다.[25] 두 사고 모두 덧대 판이 보잉 기준에 따라 설치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외에도 『항공기 구조 파괴』(엔도 신스케 저)에서는 다음과 같은 유사 사고들을 제시하고 있다.

사고 명칭발생 연월일항공기추정 원인
영국 해외 항공 783편 추락 사고1953년5월 2일코멧 I구조 파괴
영국 해외 항공 781편 추락 사고1954년1월 10일코멧 I동체 피로 파괴
남아프리카 항공 201편 추락 사고1954년4월 8일코멧 I동체 피로 파괴
1958년 미국 공군 B-47B 플로리다 사고1958년3월 13일B-47B주익 하면의 피로 파괴
1958년 미국 공군 TB-47B 오클라호마 사고1958년 3월 13일TB-47B주익 하면의 피로 파괴
1969년 미국 공군 F-111 네바다 사고1969년12월 22일F-111좌측 주익 피로 파괴
영국 유럽 항공 706편 추락 사고1971년10월 2일뱅가드부식에 의한 압력 격벽 파괴
아메리칸 항공 96편 화물 도어 손상 사고1972년6월 12일DC-10화물실 도어 분리
터키 항공 DC-10 파리 추락 사고1974년3월 3일DC-10화물실 도어 분리
1977 Dan-Air Boeing 707 crash영어1977년5월 14일B707수평 꼬리 날개 피로 파괴
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 사고1979년5월 25일DC-10부적절한 엔진 교체 작업
원동 항공 103편 추락 사고1981년8월 22일B737동체의 부식
알로하 항공 243편 사고1988년4월 28일B737접착 박리, 피로 손상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불시착 사고1989년7월 19일DC-10꼬리 부분 엔진 파괴
중화항공 358편 추락 사고1991년12월 29일B747엔진 부착 금구 피로 파단
엘알 항공 1862편 추락 사고1992년10월 4일B747엔진 부착 금구 피로 파단
아메리칸 항공 587편 추락 사고2001년11월 12일A300-600R수직 꼬리 날개 분리



한편, 중화항공에서는 1971년에 중화항공 825편 폭파 사건이 발생하여 같은 지역에서 공중 분해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이 사건은 항공 테러 혐의가 짙었지만, 희생자 유해와 유류품이 거의 회수되지 않아 사건 배경은 불명이다.

5. 사고 이후

5. 1. 중화항공의 대응

5. 2. 유사 사고 방지 노력

5. 3. 대만-중국 간 직항 노선 개설

6. 기타

6. 1. 사고기의 특이사항

사고기 B-18255(일련 번호 MSN 21843)는 사고 당시 중화항공이 운용하던 유일한 보잉 747-200 여객기였다.[23][1][2][3] 1979년 8월 2일 중화항공에 인도되었으며,[2] 4개의 프랫 & 휘트니 JT9D-7AW 엔진을 장착했다.[1][2][3] 총 비행 시간은 64,810시간, 총 비행 횟수는 21,398회였다.

사고기는 1979년 7월 15일에 제작되어, 중화항공 인도 당시 기체 번호는 B-1866이었으나 이후 B-18255로 변경되었다. 사고기는 태국의 항공사 오리엔트 타이 항공에 145만 미국 달러로 매각될 예정이었고, 사고 당일 운항이 중화항공에서의 마지막 비행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고 발생으로 인해 매각 계약은 취소되었다.[9]

6. 2. 영상화

이 사고는 캐나다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메이데이》 시즌 7 "Scratching the Surface" 에피소드에서 다루어졌다.[16]

7. 같이 보기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 테일스트라이크 사고 후 부적절한 수리가 원인이 된 사고이다.

중국국제항공 129편 추락 사고 : 2002년 대한민국 부산에서 발생한 대형 항공 사고이다.

영국 해외 항공 783편 추락 사고 : 1953년 5월 2일 발생, 드 하빌랜드 DH.106 코멧 구조 파괴.

영국 해외 항공 781편 추락 사고 : 1954년 1월 10일 발생, 코멧 I. 동체 피로 파괴.

남아프리카 항공 201편 추락 사고 : 1954년 4월 8일 발생, 코멧 I. 동체 피로 파괴.

1958년 미국 공군 B-47B 플로리다 사고 : 1958년 3월 13일 발생, B-47B. 주익 하면의 피로 파괴.

1958년 미국 공군 TB-47B 오클라호마 사고 : 1958년 3월 13일 발생, TB-47B. 주익 하면의 피로 파괴.

1969년 미국 공군 F-111 네바다 사고 : 1969년 12월 22일 발생, F-111. 좌측 주익 피로 파괴.

영국 유럽 항공 706편 추락 사고 : 1971년 10월 2일 발생, 비커스 뱅가드. 부식에 의한 압력 격벽 파괴.

아메리칸 항공 96편 화물 도어 손상 사고 : 1972년 6월 12일 발생, DC-10. 화물실 도어 분리.

터키 항공 981편 추락 사고 : 1974년 3월 3일 발생, DC-10. 화물실 도어 분리.

1977 Dan-Air Boeing 707 crash영어 : 1977년 5월 14일 발생, B707. 수평 꼬리 날개 피로 파괴.

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 사고 : 1979년 5월 25일 발생, DC-10. 부적절한 엔진 교체 작업.

원동 항공 103편 추락 사고 : 1981년 8월 22일 발생, B737. 동체의 부식.

알로하 항공 243편 사고 : 1988년 4월 28일 발생, B737. 접착 박리, 피로 손상.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불시착 사고 : 1989년 7월 19일 발생, DC-10. 꼬리 부분 엔진 파괴.

중화항공 358편 추락 사고 : 1991년 12월 29일 발생, B747. 엔진 부착 금구 피로 파단.

엘알 항공 1862편 추락 사고 : 1992년 10월 4일 발생, B747. 엔진 부착 금구 피로 파단.

TWA 800편 추락 사고 : 1996년 7월 17일 발생, B747. 중앙 날개 연료 탱크 폭발.

아메리칸 항공 587편 추락 사고 : 2001년 11월 12일 발생, A300-600R. 수직 꼬리 날개 분리.

중화항공 825편 폭파 사건 : 1971년 발생. 항공 당국은 기내 폭발물에 의한 테러 혐의가 짙다고 보았으나, 희생자 유해 및 유류품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사건 배경은 불명이다.

참조

[1] 웹사이트 NEWS UPDATE OF CHINA AIRLINES CI611 FLIGHT http://www.china-air[...] 2010-04-22
[2] 뉴스 Jet Crashes Off Taiwan With 225 People Aboard https://www.latimes.[...] 2002-05-26
[3] 웹사이트 B-18255 Seat Plan https://web.archive.[...] International Aviation Safety Association 2020-07-08
[4] 웹사이트 ASN Aircraft accident Boeing 747-209B B-18255 http://aviation-safe[...] Flight Safety Foundation 2014-11-03
[5] 뉴스 Taiwan Airliner Broke Apart in Midair, Investigators Say https://www.nytimes.[...] 2002-05-27
[6] 웹사이트 News update of China Airlines CI611 Flight https://web.archive.[...] 2002-05-25
[7] 웹사이트 Version time: 2002/05/28 PM 02:00 CI 611 / 25 May https://web.archive.[...] 2002-05-28
[8] 간행물 In-Flight Breakup Over the Taiwan Strait Northeast of Makung, Penghu Island, China Airlines Flight CI611, Boeing 747-200, B-18255, May 25, 2002 https://www.ttsb.gov[...] Aviation Safety Council 2005-02-25
[9] 뉴스 Catastrophic failure, but how? https://timesofindia[...] 2002-05-26
[10] 뉴스 Taiwanese Airliner With 225 Aboard Crashes in Sea https://www.nytimes.[...] 2002-05-25
[11] 뉴스 CAL 747 crashes with 225 aboard http://www.taipeitim[...] 2002-05-26
[12] 뉴스 All 225 feared dead in Taiwan air crash https://web.archive.[...] 2002-05-25
[13] 뉴스 前立委游日正改行程 搭上死亡班機 http://old.ltn.com.t[...] 2002-05-26
[14] 뉴스 Taiwan's Tragic Air Crash Kills 225 People http://english.peopl[...] 2002-05-26
[15] 뉴스 China missile ruled out in Taiwan crash https://web.archive.[...] 2002-05-27
[16] 에피소드 Scratching The Surface Cineflix Productions
[17] 뉴스 Military aviation expert says flaws in Taiwan plane crash theory: report https://web.archive.[...] 2002-07-08
[18] 웹사이트 78 Bodies From Crashed Taiwanese Plane Retrieved http://www.highbeam.[...] Xinhua News Agency 2002-05-26
[19] 뉴스 Relatives fly to Taiwan crash site http://news.bbc.co.u[...] 2002-05-26
[20] 뉴스 225 dead in mystery Taiwan crash https://www.theguard[...] The Observer 2002-05-25
[21] 뉴스 Crash brings Taiwan, China together https://web.archive.[...] 2002-05-27
[22] 웹사이트 NEWS UPDATE OF B18255 INCIDENT (6) http://www.china-air[...] 2002-05-26
[23] 간행물 In-Flight Breakup Over the Taiwan Strait Northeast of Makung, Penghu Island, China Airlines Flight CI611, Boeing 747-200, B-18255, May 25, 2002 https://www.ttsb.gov[...] Aviation Safety Council 2005-02-25
[24] 뉴스 Cracks blamed for 2002 China Airlines crash https://www.cbc.ca/n[...] Canadian Broadcasting Corporation 2005-02-25
[25] 뉴스 Boeing admits bad work on ill-fated Japanese Boeing 747 https://news.google.[...] 1985-09-08
[26] 보도자료 China Airlines Statement on CI 611 Accident Investigation Report https://web.archive.[...] China Airlines 2005-02-25
[27] 웹사이트 Taiwan's Deadliest Plane Crash China Airlines Flight 611 Disintegrates - Mayday https://www.youtube.[...] 2022-01-06
[28] 간행물 航空技術 (출판사 정보 없음) 2018-0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