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턴 헤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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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찰턴 헤스턴은 1923년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서 태어난 배우이다. 1947년 브로드웨이 데뷔 후, 영화 《지상 최대의 쇼》(1952), 《십계》(1956), 《벤허》(1959) 등에 출연하며 명성을 얻었다. 그는 《벤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엘 시드》(1961), 《혹성탈출》(1968) 등 서사극과 SF 영화에서도 활약했다. 1965년부터 1971년까지 미국 배우 조합 회장을 역임했으며, 보수주의적 정치 활동과 전미총기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2008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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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턴 헤스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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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출생 이름 | 존 찰스 카터 |
출생일 | 1923년 10월 4일 |
출생지 | 미국 일리노이주 윌멧 |
사망일 | 2008년 4월 5일 |
사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
안장 장소 | 세인트 매튜 성공회 교회 납골당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시픽 팰리세이즈 |
학력 | 노스웨스턴 대학교 |
직업 | 배우 활동가 |
활동 기간 | 1941년–2003년 |
작품 | 필모그래피 |
배우자 | 리디아 클라크 (1944년 결혼) |
자녀 | 2명 (장남 프레이저 클라크 헤스턴 포함) |
정당 | 공화당 (1987년 이후) 민주당 (1987년 이전) |
경력 | |
미국 총기 협회 회장 | 제56대 1998년–2003년 |
전임 | 매리언 P. 해머 |
후임 | 케인 로빈슨 |
미국 배우 조합 회장 | 1965년–1971년 |
전임 | 다나 앤드루스 |
후임 | 존 게빈 |
군 복무 | |
군대 | 미국 육군 항공대 |
복무 기간 | 1944년–1946년 |
계급 | 병장 |
부대 | 제77폭격비행대 |
참전 전투 | 제2차 세계 대전 |
수상 | |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 1959년 벤허 |
진 허숄트 박애상 | 1977년 |
AFI 선정 100대 영웅 | 43위 (십계, 2004년) |
골든 글로브상 세실 B. 데밀상 | 1966년 |
골든 라즈베리상 최악의 남우조연상 | 2001년 혹성탈출 |
미국 배우 조합상 평생 공로상 | 1971년 |
주요 출연작 | |
기타 | |
공식 웹사이트 | 찰턴 헤스턴 공식 웹사이트 |
2. 생애
찰턴 헤스턴은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서 태어나 1947년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했다. 그의 첫 할리우드 영화는 《다크 시티》(1950)였으며, 이후 《지상 최대의 쇼》(1952)에서 서커스 매니저, 《대통령의 여인》(1953)에서 앤드루 존슨 대통령 역을 맡았다.
세실 B. 드밀 감독의 《십계》(1956)에서 모세 역을 맡아 열연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11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벤허》(1959)에서 유다 벤허 역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헐리우드 최고의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엘 시드》(1961)에서 스페인의 전사, 《고통과 황홀경》(1965)에서 미켈란젤로, 《일생에 가장 위대한 이야기》(1965)에서 세례자 요한 등 서사적인 역할들을 맡았다. 1968년에는 서부 영화 《윌 페니》와 《혹성탈출》에 출연했다. 《줄리어시 시저》(1970)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1973, 자신이 감독 겸함)에서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을 두 번 맡았다.
1971년 이후에는 《오메가 맨(The Omega Man)》, 《스카이재키드》(1972), 《소일렌트 그린》(1973)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다. 1977년에는 진 허쇼트 우정상을 수상했다.
1990년대에도 개성 있는 조연 배우로 활동했으며, 《PLANET OF THE APES/혹성탈출》(2001년)에서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MY FATHER》(2003년)에서는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요제프 멩겔레를 연기했다.
스크린 배우 조합 회장(1966~71), 미국 영화 연구소 의장(1973~83), 전미총기협회 회장(1998~2003)을 역임했다.
캘리포니아주 비벌리힐스에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세에 결혼한 리디아 부인과 64년간 해로했다.[112]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존 찰스 카터[1]는 1923년 10월 4일 일리노이주 쿠크군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자료에는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지만,[6][7][8] 그의 자서전[5]에는 일리노이주 윌멧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가 11일이 되었을 때 등록된 출생 증명서에는 그의 이름이 찰턴 카터로 되어 있으며 에반스턴에서 태어났다고 기재되어 있다.[9]헤스턴은 1995년 인터뷰에서 주소나 유년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10] 헤스턴은 프레이저 씨족을 포함하여 부분적으로 스코틀랜드인 혈통이었지만, 그의 조상 대부분은 잉글랜드인이었다.[11][12][13][14][15] 그의 외증조부모이자 동명이인인 잉글랜드인 윌리엄 찰턴과 스코틀랜드 여성 메리 드리스데일 찰턴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그의 할머니인 메리언 에밀리 찰턴은 1872년 캐나다에서 태어났다.[16]
헤스턴이 유아였을 때,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가족은 미시간주 세인트헬렌으로 이주했다. 그곳은 미시간주에서 시골의 울창한 숲 지역이었고, 헤스턴은 고립되었지만 목가적인 생활을 하며 그 지역의 외딴 지역에서 사냥과 낚시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5]
헤스턴이 열 살이었을 때, 세 자녀를 둔 그의 부모는 이혼했다. 그 직후, 그의 어머니는 재혼했고, 찰턴은 여동생 릴라와 남동생 앨런과 함께 윌멧으로 이사했다. 헤스턴과 그의 두 남매는 어머니의 새 남편의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세 자녀는 뉴 트라이어 고등학교에 다녔다.[18] 그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며 "모든 아이들이 가상 놀이를 하지만, 저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했습니다. 시카고로 이사했을 때도 저는 다소 외톨이였습니다. 저희는 노스쇼어 교외에 살았는데, 저는 숲에서 온 마른 시골뜨기였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부유하고 여자아이들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았습니다." 라고 말했다.[19]
찰턴은 그의 외할머니 메리언의 처녀적 성이었다.[16] 헤스턴의 외할머니와 그의 친외할아버지인 찰스 베인스[21]가 1900년대 초에 별거 또는 이혼했을 때, 메리언(née 찰턴) 베인스는 1907년 윌리엄 헨리 로턴과 결혼했다.[22] 찰턴 헤스턴의 어머니 릴라와 그녀의 여동생 메이는 외할아버지에게 입양되어 성을 찰턴으로 바꾸어 원치 않는 아버지인 베인스 씨로부터 거리를 두었다.[23][24] 카터 부부는 1933년 이혼했고 릴라 카터는 체스터 헤스턴과 결혼했다. 새로 결혼한 헤스턴 부인은 자녀들이 자신과 같은 성을 사용하기를 바랐다.[25]
헤스턴은 인구 밀도가 낮은 미시간주 북부에서 자라면서 숲 속을 자주 배회하며 읽었던 책 속 인물들을 "연기"했다고 자주 회상했다.[27] 후에 고등학교 시절, 그는 뉴 트라이어의 연극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입센의 희곡 《페어 귄트》를 각색한 아마추어 무성영화에 출연했다. 그가 활동했던 위넷카 커뮤니티 극장을 통해 그는 노스웨스턴 대학교에 연극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28][29] 그는 1941년부터 1943년까지 대학에 다녔고, 그의 연기 선생님 중에는 알비나 크라우제가 있었다.[28]
2. 2.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1944년, 헤스턴은 군에 입대하여 미국 육군 항공대 11항공대 제77폭격비행대 소속으로 알래스카주 알류샨 열도에 주둔한 B-25 미첼 중폭격기에서 2년 동안 무선 통신수이자 항공 기관총 사수로 복무했다.[31][32] 그는 상사 계급에 올랐다.2. 3. 배우 경력
찰턴 헤스턴은 1947년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하였다. 1950년 첫 할리우드 영화 《다크 시티》에 출연했고, 《지상 최대의 쇼》(1952)에서 서커스 매니저 역을 맡았다. 1953년에는 《대통령의 여인》에서 앤드루 존슨 대통령 역을 연기했다.폭넓은 어깨, 뚜렷한 용모,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가진 헤스턴은 세실 B. 드밀 감독의 《십계》(1956)에서 모세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이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포함하여 11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벤허》(1959)에 출연하여 헐리우드 최고의 배우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는 《엘 시드》(1961)에서 스페인 전사, 《고통과 황홀경》(1965)에서 미켈란젤로, 《일생에 가장 위대한 이야기》(1965)에서 세례자 요한 등 서사적인 역할들을 맡았다. 1968년에는 서부 영화 《윌 페니》와 SF 영화 《혹성탈출》에 출연했다. 《줄리어스 시저》(1970)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1973, 감독 겸)에서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을 두 번 맡았다.
1971년 이후에는 《오메가 맨(The Omega Man)》, 《스카이재키드》(1972), 《소일렌트 그린》(1973), 《세 명의 총사》(1973), 《지진》(1974), 《에어포트 1975(Airport 1975)》(1974), 《미드웨이》(1976)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드라마 ''콜비 가족''에서 주연을 맡았다. 1992년에는 A&E 케이블 네트워크에서 성경 구절을 낭독하는 ''찰턴 헤스턴이 선사하는 성경''에 출연했다. 1993년에는 NBC 특집 프로그램 ''스핑크스의 미스터리''에 참여했다. 또한, 여러 영화에서 카메오로 출연하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2001년, 팀 버튼의 ''혹성탈출'' 리메이크에서 늙고 죽어가는 침팬지로 카메오 출연했다. 그의 마지막 영화 역할은 ''Rua Alguem 5555: My Father''(2003)에서 요제프 멩겔레 역이었다.
헤스턴은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특히 역사극과 SF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또한, 감독, 각본, 제작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하며 할리우드 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2. 3. 1. 초창기 (1947-1955)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서 태어난 헤스턴은 1947년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하였다. 1948년 뉴욕으로 돌아와 캐서린 코넬 주연의 셰익스피어 희곡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브로드웨이 재연 작품에서 조연 제의를 받았다. 텔레비전에서는 1950년대 가장 인기 있던 앤솔로지 드라마 중 하나인 CBS의 ''스튜디오 원''에서 여러 역할을 맡았다.
1949년에는 독립 영화 ''줄리어스 시저''(1950)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을 맡았다. 그의 첫 할리우드 영화는 《다크 시티》(1950)이며, 이어서 《지상 최대의 쇼》(1952)에서 서커스의 매니저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에서 1952년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그 해 가장 인기 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킹 비더는 헤스턴을 제니퍼 존스와 함께 멜로드라마 ''루비 젠트리''(1952)에 출연시켰다. 이어 파라마운트에서 인디언에게 길러진 백인을 연기한 서부극 ''새비지''(1952)에 출연했다. 20세기 폭스에서는 수잔 헤이워드와 함께 ''대통령의 부인''(1953)에서 앤드류 잭슨 역을 맡았다. 파라마운트로 돌아와서는 ''포니 익스프레스''(1953)에서 버팔로 빌을 연기했다. 이후 또 다른 서부극 ''애로우헤드''(1953)에 출연했다.

1953년 헤스턴은 빌리 와일더가 ''스타락 17''에서 세프턴 역으로 가장 먼저 고려한 배우였으나, 그 역할은 윌리엄 홀든에게 돌아갔고, 홀든은 이 역할로 오스카를 수상했다. 할 월리스는 헤스턴과 리자베스 스콧을 멜로드라마 ''서로에게 나쁜''(1953)에서 다시 만나게 했다. 1954년 그는 파라마운트에서 두 편의 모험 영화를 제작했다. ''벌거벗은 정글''에서는 살인 개미떼와 싸웠고, 고고학 유적지 마추픽추에서 촬영된 ''잉카의 비밀''에서는 주연을 맡았는데, 25년 후에 나온 ''레이더스''와 여러 가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헤스턴은 ''먼 지평선''(1955)에서 탐험가 윌리엄 클라크 역을, 프레드 맥머레이는 메리웨더 루이스 역을 맡았다. 유니버설에서 코미디 ''소령 벤슨의 개인 전쟁''(1955)에 출연한 후, 드라마 ''루시 갤런트''(1955)에서는 제인 와이먼을 지원했다.
이후, 세실 B. 드밀 감독의 《십계》(1956)에서 주인공 모세 역을 맡아 열연하였다.[34]
2. 3. 2. 전성기 (1956-1970)
세실 B. 드밀 감독의 《십계》(1956)에서 주인공 모세 역을 맡아 열연하였다.[112]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포함하여 11개의 아카데미상을 휩쓴 《벤허》(1959)는 그의 지위를 헐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배우로 격상시켰다.[82]
그를 서사시적인 역할로 맡게 한 영화들은 이름의 시조가 된 스페인의 전사 역의《엘 시드》(1961), 미켈란젤로 역의 《고통과 황홀경》(1965), 세례자 요한으로 나온 《일생에 가장 위대한 이야기》(1965) 등이다.
1968년 헤스턴은 서부 영화 《윌 페니》와 《혹성탈출》에 출연하였다. 그는 지속적으로 증명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시기적인 드라마들에 계속 출연하였다. 《줄리어시 시저》(1970)와 영화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1973, 자신이 감독을 겸함)에서 두 번이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을 맡았다.
2. 3. 3. 1971년 이후
1971년, 그는 엇갈린 비평을 받았지만 인기를 얻었고 개봉 후 컬트 영화가 된 탈영역 과학소설 영화 《오메가 맨(The Omega Man)》에 주연으로 출연했다.[44] 이 시기에 그는 총기 소지 권리 옹호자가 되었다.[44] 1972년, 헤스턴은 감독 데뷔를 했고, 그의 연극 경력에서 이전에 공연했던 윌리엄 셰익스피어 희곡을 각색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을 맡았다. 힐데가르드 나일(Hildegarde Neil)이 클레오파트라 역을, 영국 배우 에릭 포터(Eric Porter)가 아헤노바르부스 역을 맡았다. 혹평을 받은 후, 이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되지 않았고 텔레비전에서도 거의 볼 수 없다.그의 다음 영화 《스카이재키드》(1972)는 히트를 기록했다.[45] 그러나 《야생의 부름》(1972)은 실패작이었고, 헤스턴이 가장 좋아하지 않는 영화 중 하나였다. 그는 기억에 남는 히트작들을 연달아 선보이며 빠르게 회복했다. 컬트적인 인기를 얻은 또 다른 디스토피아적 과학소설 영화 《솔렌트 그린(Soylent Green)》(1973), 올스타 캐스팅의 일원으로 리슐리외 추기경을 연기한 《세 명의 총사》(1973), 대성공을 거둔 두 편의 재난 영화 《지진》(1974)과 《에어포트 1975(Airport 1975)》(1974), 그리고 전쟁 영화 《미드웨이》(1976) 등이다.
헤스턴의 흥행 성공은 서스펜스 영화 《투-미닛 워닝(Two-Minute Warning)》(1976)과 서부극 《마지막 강인한 사나이들》(1976)로 끝을 맺었다. 그는 《세 명의 총사》 팀의 《왕자와 거지》(1977)에서 헨리 8세를 연기했고, 이후 재난 영화 《그레이 레이디 다운(Gray Lady Down)》(1978)에 출연했다. 헤스턴은 그의 아들이 각본을 쓴 서부극 《마운틴 멘(The Mountain Men)》(1980)과 공포 영화 《각성》(1980)에 출연했다. 그는 그의 아들이 각본을 쓴 두 번째 감독 작품 《모더 로드》(1982)를 만들었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그는 드라마 시리즈인 ''콜비 가족''에서 주연을 맡으며 그의 유일한 프라임타임 TV 시리즈 출연을 했다. 아들 프레이저와 함께 ''보물섬''과 ''모든 사람을 위한 인생''의 리메이크를 포함한 여러 TV 영화를 제작하고 주연을 맡았다. 1992년, 헤스턴은 A&E 케이블 네트워크에서 성경 구절을 낭독하는 짧은 비디오 시리즈 ''찰턴 헤스턴이 선사하는 성경''에 출연했다. 킹 제임스 성경을 낭독하였다.
1993년, 헤스턴은 존 앤서니 웨스트와 로버트 M. 쇼크와 함께 에미상 수상작인 NBC 특집 프로그램 ''스핑크스의 미스터리''에 참여했다. 웨스트와 쇼크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보다 훨씬 이전 시기에 대스핑크스가 건설되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들은 대스핑크스와 주변 울타리 벽에서 보이는 주요 풍화 유형은 오랜 기간 지속된 광범위한 강우로 인해 발생했을 수밖에 없으며, 전체 구조물이 고대의 발전된 문명(예: 중기 신석기 시대 카라운 문화)에 의해 석회암 기반암에서 조각되었다는 것을 시사했다.[46] 그는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무대와 텔레비전에서 모두 데임 에드나 에버리지의 쇼에서 "척"으로 몇 번 출연하기도 했다. 헤스턴은 1993년 ''웨인즈 월드 2''에서 카메오 역할로 출연하여 웨인 캠벨(마이크 마이어스)이 작은 역할에 더 나은 배우를 캐스팅해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에 나왔다. 헤스턴과 함께 장면을 다시 촬영한 후 캠벨은 경외감에 울먹인다. 같은 해 헤스턴은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를 진행했다. 그는 ''햄릿'', ''툼스톤'', ''트루 라이즈'' 영화에서 카메오로 출연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뮤직센터에서 많은 연극 작품에 출연했는데, ''탐정 이야기''와 ''케인의 반란 재판''에 출연했고, 리처드 존슨이 왓슨 박사로 출연한 ''피의 십자가''에서 셜록 홈즈 역을 맡았다. 2001년, 그는 팀 버튼의 ''혹성탈출'' 리메이크에서 늙고 죽어가는 침팬지로 카메오 출연했다. 그의 마지막 영화 역할은 ''Rua Alguem 5555: My Father''에서 요제프 멩겔레 역이었는데, 2003년에 제한적으로(주로 영화제에서) 개봉되었다.[47] 헤스턴의 독특한 목소리는 ''아마겟돈''의 오프닝 장면과 디즈니의 ''헤라클레스''를 포함한 영화 내레이터 역할을 맡게 해주었다. 그는 ''미스터 로버츠''에서 세 번이나 주인공을 연기했고, 이를 자신의 가장 좋아하는 역할 중 하나로 꼽았다. 1990년대 초, 그는 톰 셀렉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 쇼를 부활시키고 연출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48] 1998년, 헤스턴은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프렌즈'' 에피소드 "조이의 더러운 하루"에서 자신을 연기하는 카메오 역할을 했다. 2000년, 그는 ''타임 슬립'' 에피소드 "최종 항소"에서 헤이든 웨인라이트 수석 판사를 연기했다.
1971년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는 각본과 감독을 맡아 다재다능한 재능을 선보였다. 1977년에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 진 허쇼트 우정상을 수상했다. 1990년대에도 개성 있는 조연 배우로 인기를 누리며 말년까지 출연을 계속했다. 《PLANET OF THE APES/혹성탈출》(2001년)에서는 제이어스(원숭이 측 장군 세이드의 아버지) 역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MY FATHER》(2003년)에서는 알츠하이머병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죽음의 천사"로 불린 요제프 멩겔레를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연기했다.
2. 3. 4. 후기 활동 (1985-2003)
1985년부터 1987년까지 드라마 ''콜비 가족''에서 주연을 맡으며 그의 유일한 프라임타임 TV 시리즈 출연을 했다. 아들 프레이저와 함께 ''보물섬''과 ''모든 사람을 위한 인생''의 리메이크를 포함한 여러 TV 영화를 제작하고 주연을 맡았다. 1992년, A&E 케이블 네트워크에서 성경 구절을 낭독하는 짧은 비디오 시리즈 ''찰턴 헤스턴이 선사하는 성경''에 출연하여 킹 제임스 성경을 낭독하였다.1993년, 존 앤서니 웨스트와 로버트 M. 쇼크와 함께 에미상 수상작인 NBC 특집 프로그램 ''스핑크스의 미스터리''에 참여했다. 웨스트와 쇼크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보다 훨씬 이전 시기에 대스핑크스가 건설되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46] 그는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무대와 텔레비전에서 모두 데임 에드나 에버리지의 쇼에서 "척"으로 몇 번 출연하기도 했다. 1993년 ''웨인즈 월드 2''에서 카메오 역할로 출연하여 웨인 캠벨(마이크 마이어스)이 작은 역할에 더 나은 배우를 캐스팅해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에 나왔다. 헤스턴과 함께 장면을 다시 촬영한 후 캠벨은 경외감에 울먹였다. 같은 해 헤스턴은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를 진행했다. 그는 ''햄릿'', ''툼스톤'', ''트루 라이즈'' 영화에서 카메오로 출연했다.
로스앤젤레스 뮤직센터에서 많은 연극 작품에 출연했는데, ''탐정 이야기''와 ''케인의 반란 재판''에 출연했고, 리처드 존슨이 왓슨 박사로 출연한 ''피의 십자가''에서 셜록 홈즈 역을 맡았다. 2001년, 팀 버튼의 ''혹성탈출'' 리메이크에서 늙고 죽어가는 침팬지로 카메오 출연했다. 그의 마지막 영화 역할은 ''Rua Alguem 5555: My Father''에서 요제프 멩겔레 역이었는데, 2003년에 제한적으로(주로 영화제에서) 개봉되었다.[47] 헤스턴의 독특한 목소리는 ''아마겟돈''의 오프닝 장면과 디즈니의 ''헤라클레스''를 포함한 영화 내레이터 역할을 맡게 해주었다. 그는 ''미스터 로버츠''에서 세 번이나 주인공을 연기했고, 이를 자신의 가장 좋아하는 역할 중 하나로 꼽았다. 1990년대 초, 톰 셀렉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 쇼를 부활시키고 연출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48] 1998년,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프렌즈'' 에피소드 "조이의 더러운 하루"에서 자신을 연기하는 카메오 역할을 했다. 2000년, ''타임 슬립'' 에피소드 "최종 항소"에서 헤이든 웨인라이트 수석 판사를 연기했다.
3. 정치 및 사회 활동
헤스턴의 정치 활동은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57]
- 1단계 (1955년~1961년): 미국 민주당의 자유주의 후보들을 지지하고 자유주의 정치 운동 청원에 서명했다.
- 2단계 (1961년~1972년): 계속해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을 지지했다. 1963년에는 할리우드를 넘어 1964년 민권법을 지지하며 전국적으로 주목받았다. 1965년부터 1971년까지 미국 배우 조합 회장을 역임하며 자유주의적 경쟁자 에드 애스너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1968년에는 다른 할리우드 배우들과 함께 1968년 총기규제법을 지지했다.[58]
- 3단계 (1972년 이후): 조지 맥거번의 자유주의를 거부하고 미국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을 대통령으로 지지했다.[59] 1980년대에는 로널드 레이건의 보수적인 대통령 시절 그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 4단계 (1995년 이후): 자신의 정치 자금 모금 위원회를 설립하고 전미총기협회(NRA)의 내부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는 문화 전쟁 연설과 인터뷰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옹호하며 언론과 학계가 역차별로 보는 적극적 차별 철폐 조치를 시행하는 것에 대해 비난했다.[60]
195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애들레이 스티븐슨 2세 후보를 지지했지만, 스페인에서 영화 ''엘 시드''를 촬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존 F. 케네디를 위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었다.[61]
1995년 자서전 ''아레나에서(In the Arena)''에서, 헤스턴은 ''전쟁의 군주'' 촬영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배리 골드워터 대통령 후보" 선거 광고판과 그의 슬로건 "당신의 마음속으로 그는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In Your Heart You Know He's Right)"을 보고 "젠장, 그는 정말 옳았어(Son of a bitch, he is right)"라고 생각하며 보수 공화당원이 되었다고 밝혔다.[64] 그는 나중에 골드워터 지지가 총기 규제 법안에 반대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65]
3. 1. 민권 운동 참여 (1950년대-1960년대)
헤스턴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시민권 운동의 선두 주자로 활동했다.[57][58][59][60]


1961년 인종 차별이 존재하던 오클라호마의 한 영화관에서 그의 영화 ''엘 시드''가 처음 상영될 때, 그는 영화관 밖에서 피켓 시위에 참여했다.[62] 그의 자서전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엘 시드'' 제작사인 얼라이드 아티스츠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오클라호마시티를 방문하여 인종 차별 식당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1963년 8월에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해리 벨라폰테, 말론 브란도,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등과 함께 워싱턴 대행진에 참가했다.[63] 그는 여러 연설에서 할리우드가 시민권 운동을 유행으로 여기기 "훨씬 전부터" 이 운동을 도왔다고 말했다.[63]
1964년 선거에서 그는 린든 B. 존슨을 지지했는데, 존슨은 1964년 시민권법의 통과를 주도하여 남부 민주당원들의 강력한 반대를 극복했다. 그해 헤스턴은 럼퍼드 공정 주택법을 폐지하는 캘리포니아 주 제14호 발의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59]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하여 시민권법 실현과 인종차별 해소에 평생 열정을 쏟았다.
3. 2. 보수주의 활동과 전미총기협회 (NRA) 회장 (1990년대-2003년)
헤스턴은 198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총기 소지 권리를 지지하며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치적 성향을 바꾸었다. 그는 "내가 바뀐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바뀌었다"고 말했다.[75] 1987년 공화당에 등록한 후, 로널드 레이건[77], 조지 H. W. 부시, 조지 W. 부시[78] 등 공화당과 공화당 대통령 후보들을 위해 선거 운동을 벌였다.
헤스턴은 배우 조합이 ''미스 사이공''에서 백인 배우가 유라시아인 역할을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극도로 인종차별적"이라며 항의하며 조합을 탈퇴했다.[80][81] 그는 CNN의 바그다드 방송이 1990~1991년 걸프 전쟁에서 연합군의 노력에 "의심을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으며,[82] 타임 워너 주주총회에서는 아이스-티의 앨범에 경찰관 살해를 다룬 노래 "경찰 살인마"가 포함된 것에 대해 회사를 비난했다.
1997년 "미국의 문화 전쟁과 싸우다" 연설에서 헤스턴은 언론인, 교육자, 연예인, 정치인들이 문화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헌법은 우리 나라를 만든 현명한 늙은 백인들이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내려준 것입니다! … 그들은 백인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문화 전쟁에서 승리하기"라는 연설에서 헤스턴은 "만약 미국인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믿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조지 3세의 신하였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83] 브랜다이스 대학교 연설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은 예의 바른 폭정이다"라고 주장했으며,[85] 1997년 전국 언론 클럽 연설에서는 "독재자나 범죄자 침입자에 맞서 무기로 말린 신문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86]
헤스턴은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전미총기협회(NRA) 회장(대부분 의례적인 직책)이자 대변인을 역임했다. 2000년 NRA 총회에서 그는 소총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앨 고어 행정부가 수정헌법 제2조 권리를 "차가운 내 시체에서 빼앗아 갈 것"이라고 선언했다.[87][88] 2003년 사임 발표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하며 소총을 들어올렸다. 헤스턴은 명예 회원이었다.[89]
2002년 영화 《볼링 포 컬럼바인》에서 마이클 무어는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직후인 1999년 4월 NRA가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개최한 회의에 대해 질문하며 헤스턴과 인터뷰했다. 무어는 회의 시기와 장소의 부적절함을 비판하며, 미국 내 총기 관련 살인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묻자 헤스턴은 "더 혼합된 민족 구성" 또는 "다른 국가보다 많은 폭력의 역사" 때문일 수 있다고 답했다.[90] 이후 헤스턴은 인터뷰를 중단하고 자리를 떴다. 무어는 인터뷰 방식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91][92][93]
일리노이주 남부 출신으로 "무장할 권리 옹호" 관점에서 전미총기협회(NRA) 회원이던 헤스턴은 1997년 협회 이사로 선출되었고, 1998년 회장에 취임했다.
회장 임기는 원래 2기(1기 1년)였지만, 규정 개정으로 2003년까지 5기 동안 재임했다. 그는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 당선과 200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승리에 기여했고, 감소 추세였던 회원 수를 500만 명 가까이 늘렸다. 그 결과 총기 규제 논쟁은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고,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도 이를 쟁점화하지 않았다.
2003년 8월, 헤스턴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음을 공표하고 전미총기협회 회장직에서 사퇴했다.[113]
3. 3. 이라크 전쟁 지지
찰턴 헤스턴은 1968년 로버트 F. 케네디 상원의원 암살 이후, 그레고리 펙, 커크 더글러스, 제임스 스튜어트와 함께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1968년 총기규제법(Gun Control Act of 1968)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66][67] 존슨 백악관은 헤스턴의 지지를 요청했다.[68] 그는 1968년 대통령 선거에서 허버트 험프리를 지지했다.[69]4. 개인사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서 태어났다. 출생 이름은 '''존 찰스 카터'''(John Charles Carter)이다.[111] 12세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옛 성 차일턴)가 재혼하면서 계부의 성인 헤스턴을 따서 찰턴 헤스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생극에 출연하면서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장학금을 받고 노스웨스턴 대학교에 진학하여 연극부에서 활동했다. 1944년 대학에서 만난 연극 동료 여학생 리디아 클라크와 결혼하여 사망할 때까지 64년 동안 함께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졸업 후 미국 육군에 입대하여 B-25 무전수로 알류샨 열도 지역에서 3년간 복무했다.
제대 후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1947년 브로드웨이에 데뷔하였다. 1944년 3월, 노스웨스턴 대학교 학생이었던 리디아 마리 클라크와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 시내의 그레이스 감리교회에서 결혼했다.
헤스턴은 미국 성공회 신자였으며, "세속적인 기질을 지닌 영적인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는 "종교 전통을 존중했으며" 특히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 측면"을 즐겼다고 한다.[97]
1996년, 헤스턴은 고관절 치환술을 받았다. 1998년에는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 암은 관해 상태에 들어갔다. 2000년에는 유타주의 한 클리닉에서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98]
2002년 8월 9일, 알츠하이머병과 일치하는 증상을 진단받았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99] 2003년 7월, 마지막 공개석상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백악관에서 자유의 대통령 메달을 받았다. 2005년 3월, 여러 신문들은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그의 병세 악화에 충격을 받았고, 때로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보도했다.[100]
2008년 4월 5일 아침, 캘리포니아주 비벌리힐스 자택에서 64년 동안 함께한 아내 리디아 곁에서 사망했다. 향년 84세였다. 헤스턴은 아들 프레이저 클라크 헤스턴과 딸 홀리 앤 헤스턴을 남겼다. 그의 가족은 사망 원인을 공개하지 않았다.[101][102] 한 달 후, 언론은 그의 사망 원인이 폐렴이었다고 보도했다.[103]
주요 인사들로부터 조의가 쏟아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헤스턴을 "품격과 정직, 그리고 큰 마음을 가진 사람…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조국을 위해 봉사했고, 시민권 운동에 참여했으며, 노동 조합을 이끌었고, 미국인들의 수정헌법 제2조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라고 추모했다. 전 영부인 낸시 레이건은 헤스턴의 죽음에 대해 "마음이 찢어진다"라고 말하며 성명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그가 연기한 역할에서 그를 대형 스크린의 영웅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그를 인생의 영웅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는 로니가 무엇을 하든지 항상 그를 지지해 주었습니다."[104]
헤스턴의 장례식은 일주일 후인 2008년 4월 12일에 열렸으며, 낸시 레이건과 캘리포니아주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 올리비아 드 헤빌랜드, 키스 캐러다인, 팻 분, 톰 셀렉, 1999년 영화 ''에니 기븐 선데이''에서 헤스턴을 캐스팅했던 올리버 스톤, 롭 라이너, 크리스찬 베일 등 할리우드 스타들을 포함한 250명이 참석했다.[105][106][107]
장례식은 로스앤젤레스 패시픽 팔리세이즈에 있는 세인트 매튜스 성공회 교구 교회에서 거행되었는데, 이곳은 헤스턴이 1980년대 초부터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주일 예배에 참석했던 교회이다.[108][109] 그는 화장되었고 그의 유골은 그의 가족에게 주어졌다.[110]
5. 사망
Charlton Heston영어은 2008년 4월 5일 아침, 캘리포니아주 비벌리힐스 자택에서 64년 동안 함께한 아내 리디아 곁에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01][102][112] 그의 가족은 사망 원인을 공개하지 않았으나,[101][102] 한 달 후, 언론은 그의 사망 원인이 폐렴이었다고 보도했다.[103] 그는 아들 프레이저 클라크 헤스턴과 딸 홀리 앤 헤스턴을 남겼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헤스턴을 "품격과 정직, 그리고 큰 마음을 가진 사람…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조국을 위해 봉사했고, 시민권 운동에 참여했으며, 노동 조합을 이끌었고, 미국인들의 수정헌법 제2조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라고 추모했다. 전 영부인 낸시 레이건은 헤스턴의 죽음에 대해 "마음이 찢어진다"라고 말하며, "저는 그가 연기한 역할에서 그를 대형 스크린의 영웅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그를 인생의 영웅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는 로니가 무엇을 하든지 항상 그를 지지해 주었습니다."라고 성명을 발표했다.[104]
헤스턴의 장례식은 일주일 후인 2008년 4월 12일에 열렸으며, 낸시 레이건과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 올리비아 드 헤빌랜드, 키스 캐러다인, 팻 분, 톰 셀렉, 올리버 스톤, 롭 라이너, 크리스찬 베일 등 할리우드 스타들을 포함한 250명이 참석했다.[105][106][107] 장례식은 패시픽 팔리세이즈에 있는 세인트 매튜스 성공회 교구 교회에서 거행되었는데, 이곳은 헤스턴이 1980년대 초부터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주일 예배에 참석했던 교회이다.[108][109] 그는 화장되었고 그의 유골은 그의 가족에게 주어졌다.[110]
6. 주요 출연 작품
원제
Dark City
The Greatest Show on Earth
The Savage
Ruby Gentry
'The Presidents Lady''
Pony Express
Arrowhead
The Naked Jungle
Secret of the Incas
The Far Horizons
The Private War of Major Benson
Lucy Gallant
The Ten Commandments
Three Violent People
Touch of Evil
The Big Country
The Buccaneer
The Wreck of the Mary Deare
Ben-Hur
El Cid
The Pigeon That Took Rome
Diamond Head
55 Days at Peking
The Greatest Story Ever Told
Major Dundee
The Agony and the Ecstasy
The War Lord
Khartoum
Counterpoint
Planet of the Apes
Will Penny
Number One
Beneath the Planet of the Apes
Julius Caesar
The Hawaiians
The Omega Man
Antony and Cleopatra
Skyjacked
The Call of the Wild
Soylent Green
The Three Musketeers
Airport 1975
The Four Musketeers
Earthquake
The Last Hard Man
Midway
Two-Minute Warning
Crossed Swords
Gray Lady Down
The Mountain Men
The Awakening
Mother Lode
Nairobi Affair
Proud Men
A Man for All Seasons
Original Sin
Treasure Island
Solar Crisis
The Little Kidnappers
Almost an Angel
Crash Landing: The Rescue of Flight 232
'Waynes World 2''
Tombstone
True Lies
In the Mouth of Madness
The Avenging Angel
Alaska
Hamlet
Hercules
Armageddon
Any Given Sunday
Town & Country
Cats & Dogs
Planet of the Apes
The Order
Bowling for Columbine
My Father, Rua Alguem 5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