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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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출사표는 제갈량이 촉한의 황제 유선에게 올린 상소문으로, 북벌을 앞두고 그 이유와 유선에게 통치에 대한 조언을 담고 있다. 전출사표는 삼국지 제갈량전에 기록되었으며, 소식은 간결하고 직접적이지만 무례하지 않다고 평했다. 제갈량은 유비의 은혜에 보답하고 한나라를 부흥시키겠다는 결의를 밝히며, 인재 등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후출사표는 1차 북벌 실패 후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나 위작 논란이 있으며, 북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비판에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사표는 제갈량의 충절을 상징하며, '국궁진췌'와 같은 고사성어의 유래가 되었고, 한국 정치에서는 정치적 결의를 표명하는 데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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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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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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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표 (表) |
저자 | 제갈량 |
창작 시기 | 227년 또는 228년 |
내용 | |
주요 내용 | 유비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유선을 도와 위나라 정벌에 나서겠다는 의지 표명 |
기타 | |
관련 인물 | 유비 유선 이엄 곽유지 비시 |
원문 | 출사표 (Wikisource) |
2. 전출사표
삼국시대 촉한의 승상 제갈량이 후주 유선에게 제갈량의 북벌([7])을 위해 올린 상소문이다. 흔히 출사표라 하면 전출사표를 말하며, 후세 사람들은 이 글을 보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고 전해진다.
227년에 쓰였으며, 삼국지 제갈량전에 기록되었다. 222년 이릉 전투 패배와 225년 제갈량의 남만 정벌 이후 회복 중이던 촉은 약한 상태였기에, 제갈량은 생존을 위해 경쟁 세력인 위에 대한 공격적인 태세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갈량의 북벌의 시작에 앞서, 촉 황제 유선에게 원정의 이유를 설명하고 통치에 대한 조언을 담은 전 ''출사표''를 썼다.
송나라 시인 소식은 '악전선생문집서'(樂全先生文集敘)에서 "(전) ''출사표''는 간결하고, 직접적이지만 무례하지 않다"고 평했다.[1] 건흥 5년(227년) 유선에게 올린 이 상소문은, "출사표"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이 글을 가리키지만, 후출사표와 구별하기 위해 "'''전출사표'''"라고 불리기도 한다. 자신을 등용해준 선제 유비에 대한 은혜, 젊은 황제 유선을 향한 자식과 같은 마음, 보은의 결의를 담고 있다. 진수의 삼국지 본문, 『문선』, 『문장궤범』 등에 수록되어 제갈량의 진작으로 여겨진다.
가노 나오사다에 따르면, 제갈량이 존경했던 악의의 "연의 혜왕에게 올리는 글"의 영향이 보이며, 악의의 문장을 본떠 만든 부분도 있다고 한다.[4]
2. 1. 내용 요약
제갈량은 선제가 대업을 완수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천하가 셋으로 나뉘었으며, 익주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촉한이 유지되는 것은 충성스러운 신하들 덕분이며, 그들은 선제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다고 언급한다.[7]유선에게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선제의 덕을 널리 알리며, 현명한 판단과 인재 등용을 촉구한다. 또한, 좋은 조언을 막는 부적절한 발언을 삼가고, 황궁과 상서대신의 관청 모두 국가의 신하이므로 포상과 처벌에 있어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곽유지, 비의, 동윤은 훌륭하고 믿음직한 신하들이며, 상총은 군사에 능통한 장군이라고 추천하면서, 유선에게 그들과 국정을 의논하여 결점을 보완하고 효율성을 높이며, 군대 내 결속을 다질 것을 권고한다.
전한은 덕망 있는 신하를 중용하여 번성했고, 후한은 부패한 관리를 등용하여 쇠퇴했음을 언급하며, 환제와 영제에 대한 슬픔과 후회를 표한다. 충성스럽고 유능한 신하들을 믿고 가까이하면 한나라가 부흥할 것이라고 말한다.
제갈량 자신은 남양에서 농부로 살았으며, 유비의 삼고초려에 감동받아 그를 위해 헌신했다고 밝힌다. 이후 21년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중책을 맡아왔으며, 선제의 유지를 받들어 밤낮으로 불안했다고 고백한다. 남쪽 반란을 진압하고 군사력이 충분해졌으니, 이제 북쪽으로 진군하여 중원을 되찾고 한나라를 부흥시키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강조한다.
유선에게 자신에게 위나라를 멸하고 한나라를 부흥시키는 임무를 맡길 것을 요청하며, 실패하면 자신을 처벌하고, 좋은 조언을 받지 못하면 곽유지, 비의, 동윤을 처벌하라고 말한다. 또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좋은 조언을 받아들여 선제의 유지를 따르라고 간언한다.
마지막으로, 곧 유선을 떠나게 되어 눈물을 참을 수 없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글을 맺는다.
2. 2. 역사적 평가와 영향
예로부터 명문으로 칭송받으며, 제갈량의 촉한(촉나라)에 대한 충절을 상징하는 글로 여겨진다.[3] 북송 시대의 시인 소식은 "간결하면서 다했다, 정직하면서 방자하지 않다"라고 평가했다.[1] 서진 시대의 장군 양호의 양개부표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예로부터 비교 대상이 되었다.한나라 시대 고문 문체로 쓰여졌으며, 육조에서 수나라, 당나라 시대에 유행한 변려문의 장식적인 문체와는 다른 풍취를 지녔다. 당대·송대의 고문 부흥 운동에서 삼국 시대 문장 중 유일하게 중요하게 여겨졌다.
현대 한국에서는 "출사표를 던지다"라는 표현으로 정치적 결의를 비유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3. 후출사표
228년 제갈량이 1차 북벌 실패 후 다시 북벌을 준비하며 촉한 유선에게 올린 상소문으로 알려져 있다.[2] 1차 북벌 이전에 제갈량이 후주에게 올린 출사표가 있기 때문에 후세에선 이 출사표를 후출사표라 부른다.
후출사표는 장엄의 《묵기(默記)》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지며, 습착치에 의해 《한진춘추》에 수록되었다.[2] 내용이 매끄러우나 후세 사람의 윤색이라는 평과 조작되었다는 평이 있다.
후출사표에 나오는 "한(漢)나라와 간악한 무리는 함께 할 수 없다"(漢賊不兩立|한적불양립중국어)라는 구절은 이후 두 개의 대립하는 세력이 공존할 수 없는 상황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몸을 굽혀 온 힘을 다하고, 죽은 뒤에야 그만두겠습니다." (鞠躬盡瘁,死而後已|국궁진췌 사이후이중국어)라는 구절은 자신의 최선을 다하려는 헌신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3. 1. 내용 요약
선제(유비)께서는 한나라와 간신은 공존할 수 없으며, 촉한은 내부 안정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어, 저에게 역적인 위나라를 토벌하라는 임무를 맡기셨다. 선제께서는 저의 능력이 부족하여 강한 적에게 대항하기 어렵다는 것을 아셨지만, 위나라를 공격하지 않으면 촉한은 더욱 큰 위험에 처할 것이기에, 저에게 이 책임을 맡기셨다.이러한 상황에서 북벌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저는 다음과 같은 6가지 이유를 들어 북벌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번호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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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지금 촉한의 상황은 고제와 장량, 진평과 같은 인재들이 활약하던 한나라 초기에 비해 훨씬 열악한데, 앉아서 천하를 얻으려 하는가? |
2 | 유요와 왕랑처럼 자신의 영토 안에만 머물다가 결국 손책에게 패배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
3 | 조조와 같이 뛰어난 군략가도 위험을 무릅쓰고 싸웠는데, 저와 같은 부족한 사람이 위험을 피해서야 되겠는가? |
4 | 조조조차도 패배를 반복했는데, 저와 같은 사람이 한 번의 패배에 굴복해야 하는가? |
5 | 한중 부임 후 1년 만에 조운 등 많은 장수와 정예병을 잃었지만, 앞으로 더 큰 손실을 각오하고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
6 | 현재 촉한은 익주만을 영유하여 경제력이 부족한데, 이대로라면 경제력이 더 큰 위나라에 대항할 수 없지 않겠는가? |
이처럼 시대의 흐름은 예측하기 어렵고, 약소한 촉한도 위나라에 승리할 가능성이 있기에, 저는 "鞠躬盡瘁 死而後已", 즉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3. 2. 진위 논란
《후출사표》는 《삼국지》 본문에는 없고, 배송지가 주석을 달면서 습착치의 《한진춘추》를 인용하여 수록되었다.[2] 오나라 장엄의 《묵기(默記)》에도 나타난다는 기록이 있으며, 내용상 역사적 사실과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위작 논란이 있다.[2]청나라 학자 전대조는 저서 《삼국지변의(三國志辨疑)》에서 후출사표가 제갈량의 문집에 포함되지 않았고 장엄의 《묵기》에서만 나타난다는 점, 전기 《출사표》와 어조가 크게 다르다는 점, 조운의 죽음에 대한 모순된 내용 등을 들어 위작 의혹을 제기했다.[2]
이러한 진위 논란은 현재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3. 2. 1. 위작설의 근거
- 유요나 왕랑을 비판한 뒤 조휴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30년 가까이 시기가 다른 이야기를 동일하게 다루는 것은 부자연스럽다.[2]
- 조조가 신하 이복에게 모반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복이라는 인물은 『삼국지』 위서에 등장하지 않는다.[2]
- 조조가 창패와 다섯 번 싸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삼국지』 촉서에서는 싸운 횟수가 한 번으로 모순된다.[2]
- 조운이 죽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의 몰년은 229년이며, 후출사표를 쓴 것으로 알려진 시점에는 조운이 아직 살아 있었을 것이다.[2]
- 진수의 삼국지 본문이나 제갈량집에 수록되어 있지 않고, 장엄의 『묵기』에 등장하는 것은 의문이다. 왜 오나라에 남아 있는데 촉나라에 남아 있지 않은가. 진수는 제갈량을 매우 존경했으며, 전출사표만 수록하고 후출사표가 누락될 가능성은 없다.[2]
3. 2. 2. 진작설의 반론
- 전출사표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서술이 존재한다.[2] 왕랑의 이야기 다음에 조휴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다.
- 이복은 동승과 함께 모반을 일으켜 처형된 왕복(왕자복)일 가능성이 있다.[2]
- 『삼국지』 위서(魏書)의 여러 곳에 창희가 여러 번 조조에게 반란을 일으킨 것이 기록되어 있어 모순되지 않는다.[2]
- 조운은 후출사표가 작성된 시점에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2]
- 후출사표는 오(吳)나라에 있던 제갈량의 친족 제갈교나 제갈각이 전승한 것으로, 촉(蜀)나라에 남아 있지 않더라도 부자연스럽지 않다.[2] 진수가 삼국지에 수록하지 않은 것은 위(魏)나라를 "도적"이라고 칭하는 등 표현이 과격하기 때문일 수 있다.
4. 출사표의 현대적 의미와 활용
오늘날 '출사표'는 전쟁에 나가며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본래 의미 외에도, 비유적인 표현으로 널리 사용된다. 어떤 일에 대한 굳은 결의나 각오를 밝히는 것을 '출사표를 던지다'라고 표현한다.
4. 1. 고사성어 "국궁진췌"
鞠躬盡瘁 死而後已|국궁진췌 사이후이중국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널리 사용된다. "후출사표" 중의 "신은 몸을 굽혀 온 힘을 다해 죽은 후에야 그만두겠습니다(臣鞠躬盡瘁、死而後已)"는 사자성어 "국궁진췌(鞠躬盡瘁)"로 "온 힘을 다해 완수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5][6] 삼국지연의에도 인용되었으며, 황종희의 "순무천진우첨도어사류선풍공신도비명"에도 인용되었다. 현대에는 주룽지 총리가 2001년 연설에서 사용했다.4. 2. 한국 정치에서의 "출사표"
한국에서는 경기, 선거 등에 출마를 표명할 때 "출사표를 내다" 또는 "출사표를 던지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5][6]4. 3.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립하는 중화민국의 입장
장제스는 후출사표의 “한적불양립(漢賊不兩立)”을 인용하면서, 중화민국이 유일합법정부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는 중화민국의 영토라고 주장했다.참조
[1]
서적
Su Shi Collection vol. 34
http://www.eywedu.co[...]
[2]
인용
Xi, cited in Chen and Pei
[3]
기타
『箋解古文真宝』の安子順の発言部分
[4]
서적
孔明「出師表」を読む
학습연구사
[5]
웹사이트
"[알고 쓰는 말글]던질 수 없는 ‘출사표’"
https://m.khan.co.kr[...]
2014-10-01
[6]
웹사이트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출사표
https://stdict.korea[...]
2024-03-06
[7]
문서
여기서 '북(北)'은 [[위 (삼국)|위(魏)나라]]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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