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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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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칠궁은 조선 시대 역대 왕들의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칠궁의 유래는 조선 왕실에서 후궁들의 사당을 건립하고 관리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육상궁, 저경궁, 대빈궁, 연호궁, 선희궁, 경우궁, 덕안궁 등 일곱 개의 궁으로 구성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여러 궁들이 육상궁으로 통합되었으며, 1929년 덕안궁이 합설되면서 칠궁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칠궁은 각 궁에 모셔진 후궁들의 역사적 배경과 함께 건축 양식, 제례 의례 등을 보여주며, 현재는 문화재로서 관리되고 있다.

2. 칠궁의 역사

칠궁은 원래 서로 다른 곳에 있던 조선 시대 왕들의 생모인 일곱 후궁의 신위를 모신 사당을 한 곳에 모아놓은 곳이다.

처음에는 육상궁만이 현재 위치에 있었고, 나머지 여섯 신궁은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었다. 1908년(융희 2년) 7월, 육상궁 경내로 저경궁, 대빈궁, 연호궁, 선희궁, 경우궁이 옮겨졌다.[2][3][4][5][7] 마지막으로 1929년 덕안궁이 합쳐지면서 현재의 칠궁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9]

1898년(광무 2)에 ‘칠궁(七宮)’ 중 한 궁이 되었던 의빈궁은 1908년(융희 2) 7월 23일에 제사 제도가 개정되어 칠궁 제향에서 제외되고 신위가 매안되었다.[10][11][12]

2. 1. 칠궁의 유래와 건립

조선 시대에는 왕을 낳은 후궁들의 신위를 모신 사당을 궁(宮)이라 불렀다. 칠궁은 이러한 사당 일곱 곳을 모아놓은 곳으로, 각 신위의 유래와 사당 건립 배경은 다음과 같다.

  • 육상궁: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이다.
  • 저경궁: 조선 선조의 후궁이자 추존왕 원종의 생모인 인빈 김씨의 신궁이다. 영조 19년(1743) 별도로 건립되었으며, 영조 31년(1764) 송현궁(松峴宮)에 옮겨졌다가 저경궁(儲慶宮)으로 개칭되었다.[2][3] 융희 2년(1908) 7월 육상궁 경내로 이봉되었다.
  • 대빈궁: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의 신궁이다. 경종 2년(1722) 10월에 건립되었으며, 희빈 장씨는 옥산부대빈으로 추존되었다.[3][4][5] 융희 2년(1908) 7월에 육상궁 내 현재 위치로 이봉되었다.
  • 연호궁: 조선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왕 진종(효장세자)의 생모인 정빈 이씨의 신궁이다. 정조 즉위 후 건립되었으며,[7] 융희 2년(1908) 7월 육상궁 경내에 완전히 자리잡았다.
  • 선희궁: 조선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왕 장조(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신궁이다. 처음에는 의열묘(義烈墓)로 불렸으나, 정조 12년(1788)에 선희(宣禧)로 개명되었다. 융희 2년(1908) 7월 육상궁 경내 경우궁을 합설하며 옮겨졌다.
  • 경우궁: 조선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신궁이다. 순조 24년(1824)에 별묘(別廟)를 세워 경우궁(景祐宮)이라 하고 이듬해 2월 신주를 봉안하였다.[3][5] 융희 2년(1908) 7월 육상궁 경내에 합설되었다.
  • 덕안궁: 대한제국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의 신궁이다. 영친왕 출생 후 경선궁이 세워졌고 곧 덕안궁으로 개칭되었다.[9] 1929년 7월 11일 육상궁 경내에 합설되었다.
  • 의빈궁: 조선 정조의 후궁이며 문효세자의 사친인 의빈 성씨의 사당이다. 1873년(고종 10)에 저경궁, 육상궁, 경우궁, 대빈궁, 연호궁, 선희궁과 함께 ‘궁(宮)’에 속했고[10] 1898년(광무 2)에는 ‘칠궁(七宮)’ 중 한 궁이 되었다.[11] 1908년(융희 2) 7월 23일에 제사 제도가 개정되어 의빈궁(宜嬪宮)은 칠궁 제향에서 제외되고 신위가 매안되었다.[12]

3. 칠궁을 구성하는 일곱 궁

칠궁은 조선 시대 왕을 낳았거나 왕으로 추존된 이들의 생모인 후궁 일곱 명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각 궁은 다음과 같다.


  • 육상궁: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이다.
  • 저경궁: 조선 선조의 후궁이자 원종(추존왕)의 생모인 인빈 김씨의 신궁이다.
  • 대빈궁: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의 신궁이다.
  • 연호궁: 조선 영조의 후궁이자 진종(추존왕, 효장세자)의 생모인 정빈 이씨의 신궁이다.
  • 선희궁: 조선 영조의 후궁이자 장조(추존왕,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신궁이다.
  • 경우궁: 조선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신궁이다.
  • 덕안궁: 대한제국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의 신궁이다.

3. 1. 육상궁 (毓祥宮)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이다.[1]

3. 2. 저경궁 (儲慶宮)

조선 선조의 후궁이자 추존왕 원종의 생모인 인빈 김씨의 신궁이다. 인빈 김씨의 사우 인빈궁은 회현동 사현(私峴)에 있던 송현본궁(松峴本宮)에 있었다가, 선조의 8남이자 인빈의 소생인 의창군 이광(珖)의 4대손인 여천군(驪川君) 증(璔)의 집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영조 19년(1743) 인빈 김씨와 의창군, 그의 손자인 낙선군(樂善君)을 한 곳에 함께 모시는 것은 예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별도로 건립하였다.[2]

이후 영조 31년(1764)에는 송현궁(松峴宮)으로 다시 옮겨지며 저경궁(儲慶宮)으로 이름을 바꾸었다.[3] 고종 7년(1870)에 계동의 경우궁 별묘(景祐宮別廟)로 옮겨졌다가 융희 2년(1908) 7월 육상궁 경내로 다시 옮겨졌다. 저경궁터에는 1927년에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가 세워졌다.

3. 3. 대빈궁 (大嬪宮)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의 신궁이다. 경종 2년(1722) 10월에 중부(中部) 경행방(慶幸坊)에 건립되었으며, 이때 희빈 장씨는 옥산부대빈으로 추존되었다.[3][4][5] 고종 7년(1870) 정월에 육상궁에 합설되었다가 고종 24년(1887) 4월 기존 경행방의 궁으로 환봉되었는데,[6] 융희 2년(1908) 7월에 다른 궁들과 마찬가지로 신위를 육상궁 내 현재의 위치로 이봉하였다. 대빈궁 터에는 1913년에 경성측후소가 세워졌다.

3. 4. 연호궁 (延祜宮)

연호궁 현판


조선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왕 진종(효장세자)의 생모인 정빈 이씨의 신궁이다.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정조 즉위 후 진종을 추존하면서 경복궁 동쪽 터에 할머니의 사당을 짓고 제사를 드리며 연호궁이라 불렀다.[7] 이때 연호궁은 북부 순화방에 위치하여 육상궁의 수궁 내관 및 수복에 겸하였다.[3][4][8] 현재는 육상궁 건물에 숙빈 최씨와 함께 신위가 모셔져 있다. 고종 7년(1870) 정월에 육상궁에 합설되었다가 융희 2년(1908) 7월 육상궁 경내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

3. 5. 선희궁 (宣禧宮)

조선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왕 장조(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신궁이다. 처음에는 의열의 익호를 추존받아 의열묘(義烈墓)로 불렸는데, 정조 12년(1788)에 선희(宣禧)로 개명하였다. 고종 7년(1870) 정월에 육상궁에 합설되었다가 건양 2년(1897)에 환봉되고, 융희 2년(1908) 7월에는 다시 육상궁 경내 경우궁을 합설하며 옮겨졌다. 육상궁에 이봉하기 전 선희궁은 북부(北部) 순화방(順化坊)에 있었는데, 구한말 현 신교동(新橋洞) 1번지에 맹아 학교 터가 세워졌다가 1912년 고아원인 총독부 제생원 양육부가 세워졌다.

선희궁터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고, 건물이 일부 남아있다.[1]

3. 6. 경우궁 (景祐宮)

조선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신궁이다. 처음에는 창덕궁 내 전각에 봉안하며 현사궁(顯思宮)이라 하다가, 순조 24년(1824)에 상의 기간이 끝남에 따라 별묘(別廟)를 세워 경우궁(景祐宮)이라 하고 이듬해 2월 신주를 봉안하였다. 경우궁은 북부 양덕방에 있는 용호궁(龍虎營) 터[3][5], 현재의 종로구 계동 (강남으로 이전하기 전의 휘문고등학교 운동장 자리, 2023년 현재 현 순이네 가게 자리)에 세워졌다.

갑신정변 때 개화당이 고종 부부를 임시로 경우궁에 옮긴 적이 있는데, 고종이 경복궁으로 이어한 후인 고종 23년(1886) 봄에 경우궁 이어 공사를 시작하였다. 융희(隆熙) 2년(1908) 7월 육상궁 경내에 합설하여 칠궁을 이룬다. 경우궁 터에는 1910년 경성부립 순화병원이 세워졌다.

3. 7. 덕안궁 (德安宮)

덕안궁 외경


대한제국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의 신궁이다. 궁인이던 엄씨가 영친왕을 낳으면서 엄씨가 지낼 궁으로 경선궁을 세웠는데[9], 곧이어 덕안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1913년에 현재의 태평로 1가 61번지에 새 궁을 건립하여 엄씨의 묘우로 정하고, 이름도 마찬가지로 덕안궁이라 하였다. 1929년 7월 11일에는 육상궁 경내에 합설하여 칠궁을 이루게 된다. 덕안궁이 있던 자리에는 1935년 경성부민회관이 세워졌다.

4. 칠궁에서 제외된 궁

조선 정조의 후궁이며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 성씨의 사당 의빈궁은 1873년(고종 10) 저경궁 등과 함께 ‘궁(宮)’으로 지정되었고,[10] 1898년(광무 2)에는 ‘칠궁(七宮)’ 중 하나가 되었다.[11] 1908년(융희 2) 제사 제도 개정으로 칠궁 제향에서 제외되어 신위가 매안되었다.[12]

4. 1. 의빈궁 (宜嬪宮)

조선 정조의 후궁이자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 성씨의 사당이다. 1873년(고종 10)에 저경궁, 육상궁, 경우궁, 대빈궁, 연호궁, 선희궁과 함께 ‘궁(宮)’으로 지정되었고,[10] 1898년(광무 2)에는 ‘칠궁(七宮)’ 중 하나가 되었다.[11] 1908년(융희 2) 7월 23일 제사 제도 개정으로 의빈궁(宜嬪宮)은 칠궁 제향에서 제외되어 신위가 매안되었다. 의빈의 묘소에서는 의소태자와 문효세자의 원소(園所)의 예에 따라 1년에 한 번 제사를 지냈다.[12]

5. 칠궁의 건축과 문화

원본 소스에 칠궁의 건축과 문화에 대한 내용이 없으므로, 해당 섹션은 작성할 수 없습니다.

6. 칠궁의 현재와 미래

(이전 출력이 없으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 원본 소스를 제공해주시면 '칠궁의 현재와 미래' 섹션을 작성해 드리겠습니다.)

7. 갤러리

참조

[1] 문서 칠궁 사적 안내문
[2] 실록 영조실록 58권, 영조 19년 6월 13일 갑자 3번째기사
[3] 서적 동국여지비고
[4] 서적 한경식략
[5] 서적 궁궐지
[6] 실록 고종실록 24년 4월 30일 정해 1번째 기사
[7] 실록 정조실록 5권, 정조 2년 3월 18일 무인 1번째기사
[8] 실록 정조실록 5권, 정조 2년 3월 19일 기묘 1번째 기사
[9] 웹사이트 숙명여자대학교 https://www.sookmyun[...]
[10] 디지털장서 태상지2(太常志二) 권지3(卷之三): 궁(宮), 고제(告祭)
[11] 디지털장서 향수조사책(享需調査冊) 8책 – 칠궁(七宮) 이묘(二廟)
[12] 실록 순종실록 2권, 순종 1년 7월 23일 양력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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