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토메 피르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토메 피르스는 1468년경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약사이자 탐험가로, 인도에 파견되어 동방 상품을 취급했다. 그는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일대를 여행하며 아시아 무역에 대한 역사적 서적인 『동방지』를 저술했다. 1516년에는 명나라에 파견된 사절단을 지휘했으나, 광저우 감옥에 갇혀 1524년에 사망했다. 그의 저서인 『동방지』는 동양에 대한 귀중한 기록으로 평가받으며, 포르투갈 제국의 기초를 다진 인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인도네시아 탐험가 -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영국의 자연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찰스 다윈과 독립적으로 자연 선택을 통한 진화 이론을 제창하고, 아마존과 말레이 군도 탐험을 통해 '월리스선'을 발견했으며, 생물지리학, 경계색 이론, 종 분화에 기여하고 환경 문제에 대한 경고와 우주생물학 연구, 심령술에 대한 믿음으로도 알려져 있다.
  • 인도네시아 탐험가 - 프레데릭 더하우트만
    프레데릭 더하우트만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항해사이자 탐험가로, 동인도 제도와 호주 서해안을 탐험하며 새로운 별자리를 발견하고 말레이어 사전을 편찬했으며, 호주 서해안 지역을 '더 에델스란트'로 명명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 포르투갈의 여행 작가 - 루이스 프로이스
    루이스 프로이스는 1532년 리스본에서 태어나 일본 선교 활동과 저술 활동으로 유명하며,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과 교류하며 일본의 기독교 선교의 영광과 비극을 기록했고, 일본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를 남겼다.
  • 포르투갈의 여행 작가 - 페르낭 멘드스 핀투
    페르낭 멘드스 핀투는 16세기 동남아시아를 탐험하고 《순례기》를 저술한 포르투갈의 탐험가이자 작가로, 아시아 문명에 대한 유럽의 시각을 보여주는 사료를 남겼으며, 일본에 조총을 전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토메 피르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토메 피르스
원어 이름Tomé Pires
직업약재상, 외교관
국적포르투갈인
출생c. 1468, 리스본, 포르투갈 왕국
사망1524년 또는 1540년, 명나라

2. 생애

토메 피르스는 1511년 "약품 관리인"으로 임명되어 인도로 갔다.[1] 당시 향신료 무역은 중요한 무역 요소였다. 그는 말라카와 코친에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지역에 대한 정보를 열정적으로 수집하고 기록했으며, 자바, 수마트라, 말루쿠 제도를 직접 방문했다.

2. 1. 초기 생애

피르스는 1468년경에 태어났으며, 레이리아의 포르투갈 마을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포르투갈의 주앙 2세의 약제사였으며, 피르스 본인은 1491년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왕위 계승자였던 아폰수 왕자의 약제사였다.[1] 그는 적어도 형제 주앙 페르난데스와 누이 이사벨 페르난데스가 있었다.

2. 2. 인도 파견과 동방지 저술

말레이반도인도네시아 일대를 여행한 후, 피르스는 아시아 무역에 관한 역사책인 『동방지(東方志)』를 저술하였다. 책의 원제는 "홍해에서 중국인까지 다룬 동방 개설서(Suma Oriental que trata do Mar Roxo até aos Chins)"이다. 1512년에서 1515년에 걸쳐 피르스는 말라카와 인도에서 이 책을 저술하였고,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Afonso de Albuquerque)가 사망한 1515년 12월 전에 저술을 마쳤다.[6]

이 책은 말레이 제도(Malay Archipelago)에 대한 첫 유럽인의 저술이자, 포르투갈령 동인도(Portuguese East)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광범위한 저술이다. 역사, 지리, 종족, 식물, 경제, 상업은 물론 동전, 무게 단위, 부피 단위 등 광범위한 정보를 집대성한 것이다. 피르스는 자신이 만났던 상인이나 항해사 등으로부터 수집한 정보의 정확도를 조사하는데 만전을 기하였다. 이는 피르스가 복잡한 산문 형식으로 서술하였음에도 당대 여느 포르투갈 문인들보다도 뛰어난 상당히 까다로운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7]

책은 마누엘 1세(Manuel I)에게 보내는 보고로서, 리스본을 떠나기 전에 받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8] 이 책은 당시 인도의 지리와 교역 연구를 위한 1차 사료로서는 가장 충실한 것이며, 당시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확장(The spread of Islam in Indonesia (1200 to 1600))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료이다. 내용의 세부 사항에 있어서 부정확한 부분이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시 상황을 증명하는 것들과 분명히 일치하며, 지역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오류가 있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사료로서 이에 버금가는 당대 자료로는 그보다 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두아르테 바르보사(Duarte Barbosa)의 책과 가르시아 데 오르타(Garcia de Orta)의 책 뿐이다.[9]

동방지는 출간되지 않았으며[10] 1944년까지 문서고에서 분실된 것으로 처리되었다. 또한 동방지는 반다제도(Banda Islands)의 향료제도(Spice Islands) 즉 말루쿠제도(Maluku Islands)에 관한 최초의 기술이기도 하다.[11] 이 섬은 처음에는 유럽인들을 인도네시아로 밀어내었다. 현대의 편집자 아르만두 코르테상(Armando Cortesão)은 "1세기 혹은 2세기 동안은 여러 면에서 다른 책이 이를 추월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다.[12] 파리(Paris)에서 오랫동안 분실된 사본이라 하면 동방지를 의미한다. 피르스가 작성한 네 통의 서신은 남아 있으며, 동시기 문헌들을 통해 피르스의 글을 참조한 것들만이 있다. 여기에는 1513년 11월 30일 알부케르크가 국왕에게 작성한 서신 한 통도 포함되어 있다.

2. 3. 명나라 파견과 최후

1516년, 토메 피르스는 마누엘 1세가 명나라 정덕제에게 보낸 사절단을 지휘하여, 페르낭 피르스 드 안드라드의 선단을 이용하여 광둥 성 광주로 향했다.[13] 1517년, 피르스와 임시 말라카 사신이자 통역관 화자아삼이 광주 근해에 도착하여, 중국 명나라에 관계 결성을 요구하였다. 1518년, 이들은 광주에 상륙할 수 있었고, 이윽고 남경에 갔다. 이들은 총신 강빈에게 뇌물을 주고 남순(南巡) 중이었던 정덕제를 만났다. 이후 정덕제를 따라 북경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피르스는 황제를 접견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중국인들이 이들 이방인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었고, 1511년 포르투갈인들의 말라카 정복으로 말라카 술탄 마흐무드 샤가 쫓겨났다는 이야기 등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포르투갈인에 대한 소문 때문이었다. 또한 1521년 정덕제가 북경에 도착하자마자 물놀이 도중 물에 빠지면서 폐렴으로 급사한 것도 있었다. 광주만에 있던 포르투갈인들의 약탈로 명군과 포르투갈인 사이에 포격전(둔문해전)이 발생하였고, 이 일로 피르스는 신임 황제 가정제의 지시에 의해 광주 감옥에 하옥되었으며, 일부는 살해되었다. 이로써 30년 동안 명의 포르투갈인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1524년 5월 피르스는 광주 감옥에서 병사하였다. 일부에서는 피르스가 중국을 떠날 수 있는 허가가 없어 강소에서 1540년까지 생존했다고 주장한다.[3]

1342년에서 1345년까지 교황에 의해 북경에 파견된 지오반니 데 마리뇰리 이후, 피르스 사절단은 유럽 국가에서는 최초로 파견된 공식 사절단이었다.

3. 평가와 영향

토메 피르스는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일대를 여행한 후, 아시아 무역에 관한 역사서인 『동방지(東方志)』를 저술하였다. 책의 원제는 "홍해에서 중국인까지 다룬 동방 개설서(Suma Oriental que trata do Mar Roxo até aos Chins)"이다. 피르스는 1512년에서 1515년에 걸쳐 말라카와 인도에서 이 책을 썼으며,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가 사망한 1515년 12월 전에 완성했다.[6]

이 책은 말레이 제도에 대한 최초의 유럽인 저술이자, 포르투갈령 동인도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광범위한 저술이다. 역사, 지리, 종족, 식물, 경제, 상업은 물론 동전, 무게 단위, 부피 단위 등 광범위한 정보를 집대성했다. 피르스는 자신이 만났던 상인이나 항해사 등으로부터 수집한 정보의 정확성을 조사하는데 만전을 기했다. 이는 피르스가 복잡한 산문 형식으로 서술했음에도 당대 여느 포르투갈 문인들보다도 뛰어난 안목을 가진 인물임을 보여준다.[7]

책은 마누엘 1세에게 보내는 보고로서, 리스본을 떠나기 전에 받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8] 이 책은 당시 인도의 지리와 교역 연구를 위한 1차 사료로서 가장 충실하며, 당시 인도네시아 이슬람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료이다. 세부 내용에 있어서 부정확한 점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시 상황을 증명하는 것들과 분명히 일치하며, 지역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오류가 있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와 견줄 만한 당대 자료로는 두아르테 바르보사의 책과 가르시아 데 오르타의 책 정도가 있다.[9]

『동방지』는 출간되지 않았으며,[10] 1944년까지 문서고에서 분실된 것으로 처리되었다. 또한 반다제도의 향료제도(Spice Islands), 즉 말루쿠제도에 관한 최초의 기술이기도 하다.[11] 이 섬들은 초기에 유럽인들을 인도네시아로 이끌었다. 현대의 편집자 아르만두 코르테상(Armando Cortesão)은 "1세기 혹은 2세기 동안은 여러 면에서 다른 책이 이를 추월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다.[12]

피르스가 작성한 네 통의 서신은 남아 있으며, 동시대 문헌들을 통해 피르스의 글을 참조한 것들이 있다. 여기에는 1513년 11월 30일 알부케르크가 국왕에게 보낸 서신 한 통도 포함되어 있다.

참조

[1] 인용
[2] 문서
[3] 서적 The Suma Oriental of Tome Pires: The Suma oriental of Tome Pires, books 1-5 Asian Educational Services 1990
[4] 인용
[5] 인용
[6] 인용
[7] 인용
[8] 인용
[9] 문서
[10] 문서
[11] 서적 Maluku: Indonesian Spice Islands Periplus Editions
[12] 인용
[13] 서적 The Suma Oriental of Tome Pires: The Suma oriental of Tome Pires, books 1-5 Asian Educational Services 199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